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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 있는 길] 종로통 구석구석 옛 기억이 살아나다
- 세상 모든 길에 사람이 지나다닌다. 이들 중에는 길과의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추억이란 살아온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날씨와 감정이 잘 섞이고 버무려져 예쁘게 포장된 것이다. 박미령 동년기자와 함께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더듬으며 종로 길을 걸었다. 흑백사진 속 전차가 살아나고 서울시민회관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행복한 발견. 감동이 잔잔히 밀려왔다. 경복궁에서 스케이트 타던 시절이 있었어요!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난 박미령 동년기자는 대학 시절을 넘어 결혼 전까지 종로에서 산 토박이다.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서울시민회관 계단이 놀이터였고, 중학생이 돼서는 경복궁과 인왕산 활터가 주 무대였다. “인왕산에 활터가 있어요. 활터 아저씨들이랑 얘기하고 맛있는 것을 주시면 먹기도 했어요. 경복궁은 젊었을 때 너무 많이 왔어요. 경회루 연못이 얼면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그때는 뭣도 모르고 탔죠. 스케이트 날을 가는 아저씨와 스케이트 빌려주는 아저씨가 저기 경회루 계단 아래 앉아 있었어요.” 현재를 사는 젊은이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경복궁은 문화재청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문화재다. 취재 당일에도 문화재청에 경회루 사진촬영허가신청서를 냈다. 스케이트를 탔다는 말이 그저 충격이었다. “창경원에서 보트도 탔는걸요. 밤벚꽃놀이도 하고요.” 이 부분에 있어 옛 추억으로 그냥 넘어가기에 씁쓸함이 앞선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불렸다.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 놀이시설이 들어섰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 수천 그루를 심어 놓고 밤벚꽃놀이를 즐겼다. 왕이 사는 궁궐의 의미를 상실한 시대를 지나야만 했다. 경복궁 내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 철거됐고, 창경원으로 불리던 창경궁은 1983년 원래 명칭으로 환원하였다. 시니어의 추억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잔인한 역사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아침식사, 금천교시장 기름떡볶이 1960년대, 박미령 동년기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서울시민회관 옆 길가에는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이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아버지는 아침잠이 많은 어머니를 깨우지 않고 박미령 동년기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먹고 부인 먹을 것을 싸들고 온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근데 거기서 먹었던 콩국이 정말 맛있었어요. 콩국에 찹쌀튀김을 잘라 넣은 것인데 시리얼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서 중국여행 가면 찾아는 보는데 딱 그 음식 맛이 나는 걸 아직은 못 먹어봤어요.” 함경도 출신인 박미령 동년기자의 아버지는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북 사람들은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을 가장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래서 음식 솜씨가 좋은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모자 못지않게 친했다. 그리고 기름떡볶이에 대한 추억도 나눠주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기름떡볶이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엄마 따라 시장에 갔습니다. 제 기억에 떡볶이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고 기름에 바짝 구운 떡볶이예요.” 박미령 동년기자의 말에 곧장 기름떡볶이를 파는 통인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박미령 동년기자가 말한 기름떡볶이는 통인시장에서 파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 금천교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팔던 故 김정연 할머니(향년 98세)의 떡볶이다. 북에서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고 돌아가셨다. “김 할머니는 간장으로 간을 한 기름떡볶이만 했어요. 금천교시장 할머니가 원조죠. 할머니는 곤로에다 무쇠솥 하나 올리고는 낚시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만드셨어요. 할머니 앞에 손님들이 빙 둘러앉으면 ‘몇 개 줄까?’ 하고 물어보셨어요. 겉을 바삭하게 무쇠솥에 지져서 구워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어렸을 때 그 기름떡볶이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정신여고 회화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통인시장에서 택시를 타고 박미령 동년기자의 모교인 정신여고가 있던 종로구 연지동 옛터를 찾아갔다. 명성왕후의 주치의이자 선교사였던 애니 엘러스 벙커(Annie Ellers Bunker)가 1887년 중구 정동에 설립한 정신여고는 1895년 종로구 연지동으로 교정을 옮겼다. 1978년 지금의 교정인 잠실로 이전하기 전까지 깊은 역사의 흔적이 쌓인 곳이 연지동 교정 터다. 이곳에서 박미령 동년기자는 여중·여고 시절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다녀봤지만 내려서 학교 쪽을 가본 적은 없어요. 종로5가 뒤쪽 대학로로 가는 중간에 있어요. 종로통을 잇는 전차를 이용해 통학했는데 종로4가에 내려서 학교로 걸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학교 시설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라디에이터 난방을 했다. 기숙사에는 침대가 설치돼 있는 등 당시에는 최고 시설을 갖춘 서양식 학교였다. 예쁜 교정이 그립지만 정신여고 옛터에는 본관과 기숙사로 사용됐던 세브란스관만 남아 있다. 현재는 다양한 기업체들이 상주해 과거 교실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사용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우리 저기 뒤쪽으로 가보면 안 될까요? 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정신여고 부지를 사들였다는 보험회사 건물과 남아 있는 정신여고 본관 건물 사이에 조성된 녹지공원이 보였다. 그곳에 가보니 정신여교의 교목인 회화나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 학교 교목이에요. 옆에 건물도 보니 우리 학교 건물이 맞아요.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 다리도 기억나고요. 제가 찾아올 줄 알았겠어요? 나무를 찾아서 너무 좋아요.” 정신여고의 교목인 회화나무는 독립운동을 함께한 고마운 나무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애국부인회의 출발점인 정신여고가 일본 관헌의 수색을 받았을 때 비밀문서와 태극기, 국사책 등을 고목의 구멍에 숨겨 보존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날에 만나 시원한 바람으로 마무리한 멋진 데이트였다.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종로의 작은 틈, 작은 돌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와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2017-09-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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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 좋은 우리 동네 사람들
-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 변두리 산 밑이다.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같은 아파트 사람 이외는 친분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남편은 같이 산에 물이라도 뜨러 갈 때면 언제 사귀었는지 온 동네 사람과 다 인사를 나눈다. 그런 남편이 참 생소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필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들고 들어오는 청첩장이나 부고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동네 사람 경조사에도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 며칠 전 남편이 이번 일요일에 동네 아는 분의 자제가 결혼하는데 결혼식 장소가 청주라 버스를 대절해서 동네 사람들과 축하하러 가게 되었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혼주 되는 분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 망설여졌다. 요즘도 이웃 경사에 버스를 타고 지방까지 내려가는 일이 있는 것일까? 변두리 우리 동네 아니면 별로 흔한 일은 아닐 듯했다. 그런데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치르게 되니 축하객이 너무 적을 것 같아 걱정이라는 혼주의 이야기를 전하며 남편이 필자에게 같이 가면 좋겠다고 했다. 이전 같으면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텐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일까 모르는 사람들과의 하루 나들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속마음은 어디론가 훌쩍 나서고 싶었는데 잘됐다고 쾌재를 불렀다. 일요일 오전 9시 아파트 앞 도로로 나가니 커다란 대형버스가 서 있었다. 한두 사람은 안면이 있지만 거의 처음 보는 사람들이 30여 명 앉아 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기온이 차가웠지만 어디론가 떠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마냥 설레었다. 촉촉한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두 시간쯤 달리니 그제야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며 햇빛이 활짝 피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 날 혼사가 있으니 더 경사스럽다는 덕담들이 터져 나왔다. 필자는 이전에 청주를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 친지를 방문하러 오기도 했고 여행으로 들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톨게이트를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필자의 눈을 가득 채웠던, 무성한 플라타너스 잎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였다. 알고 보니 그 가로수 길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거리였다. 풍경이 아름다워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많이 나왔다는데 예전에 푹 빠져 보았던 드라마 에서 최민수가 오토바이로 질주하던 곳도 바로 이곳이란다. 청주에 가까워져 갈수록 플라타너스 거리를 기대했지만 가는 길이 다른지 가로수 길은 보이지 않은 채 어느 새 예식장 앞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대형 결혼식장이었다. 좋은 날짜인지 식을 올리는 커플이 많아 축하객들도 만원이었다. 머리 올리고 한복을 차려입은 하객이 유난히 많아 축제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신랑 신부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게 사람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잘 아는 사람 아니어도 하객 부족할까 걱정하지 않게 동참해주는 이웃이 있는 우리 동네가 정겹다. 비록 변두리지만 인간의 정이 넘치는 자랑할 만한 곳이다. 훈훈한 인심을 가진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처럼 즐거운 나들이를 했다.
- 2017-09-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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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성 높고 감각적인 백팩 패션
- 필자는 평소 백팩을 메고 다닌다. 캐주얼 의상이든 정장이든 항상 백팩을 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패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백팩이 아직 낯선 모양이다. 백팩을 애용하는 이유는 양손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양손이 자유로우면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어 좋다. 원래는 댄스 하는 날 댄스용 신발과 의상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백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백팩은 큰 편이라 쇼핑 물건을 담을 때도 편리하다. 백팩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재질이나 크기도 중요하다. 한때는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주로 메고 다녔으나 숄더백은 한쪽에 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한쪽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007 백’이라 불리는 서류가방도 마찬가지다. 신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게다가 내용물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다. 서류가방에 수박을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백팩은 다르다. 내용물의 형태에 관계없이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 필자의 백팩은 명품 가방들의 역사를 볼 때 원조 백팩에서 진화된 형태의 디자인이다. 인조 가죽으로 만들었고 윗부분을 끈으로 조인 뒤 뚜껑으로 덮게 되어 있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백팩의 디자인을 보면 99%가 지퍼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야 가방 안의 내용물이 빠져 나오지 않을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상단이 뚜껑으로 되어 있어도 백팩을 뒤집지 않는 한 중력의 작용으로 내용물이 빠져 나올 일은 없다. 지퍼로 되어 있는 가방은 열고 닫을 때 양손을 써야 한다. 한 손으로는 가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지퍼 고리를 잡고 당겨야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뚜껑으로 디자인된 백팩은 집어넣기도 빼기도 쉽다. 또한 옆쪽으로 지퍼가 달려 있어 아래쪽에 있는 내용물도 쉽게 꺼낼 수 있다. 필자가 메고 다니는 백팩의 단점은 인조 가죽이라 수명이 짧다는 데 있다. 인조 가죽은 늘어나기도 하고 습도 때문에 오래 쓰면 껍질이 벗겨진다. 발트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로 여행을 갔을 때 같은 모양의 가죽 백팩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가격을 물어봤더니 100달러를 불렀다. 그러나 가죽 소재가 너무 무거워 결국 사지 않았다. 백팩은 디자인도 실용적이어야 한다. 몸통 바깥쪽으로 사이드포켓이 있어야 좋다. 한쪽에는 물병을 넣어 다니고 한쪽에는 삼단 우산을 넣고 다니면 편리하다. 생수병과 삼단 우산이 들어갈 만큼 깊이도 있어야 한다. 그 외의 잡동사니는 정면의 사이드포켓에 넣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면 곤란하다. 몸통에 온갖 내용물을 다 넣으면 찾기가 어렵다. 수납공간이 따로 없어 마구 뒤섞여버리는 것이다. 물건이 섞이지 않을까 우려되면 부직포로 된 별도의 작은 가방을 넣어가지고 다닌다. 필자의 백팩은 디자인 면에서는 명품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게 많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도 같은 백팩을 멘다. 어지간한 필수품은 백팩 안에 다 들어간다. 해외여행 때는 세면도구와 양말, 여벌의 옷가지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한번은 초봄에 서울 근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날씨가 추웠다. 눈도 왔다. 일행 중 추위를 유난히 타는 사람이 있어 우산도 꺼내주고 장갑도 꺼내줬다. 가볍고 부피도 크지 않아 항상 가지고 다니는 바람막이도 꺼내줬다. 필자는 모자를 꺼내 썼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도 잡아주고 눈발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사람들은 백팩 안에 없는 게 없다며 놀라워했다. 다만, 견딜 수 있는 무게가 3kg 정도인데 더 무거울 경우 어깨 근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는 들었다.
- 2017-09-0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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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지친 반려견의 바디 케어 꿀팁!
- 길고 긴 여름이 지나갔다. 폭염에 피부가 상하는 것은 반려동물도 다르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더위에 지친 반려동물의 피부를 진정시켜주는 팁을 알아볼까 한다. 강아지의 경우, 피부층의 두께가 1mm 이하로 매우 얇다. 1차적인 방어역할을 하는 표피층은 0.1mm 정도로 사람의 피부보다 훨씬 약해 쉽게 상처 입고 땀샘이 없어 배출도 원활하지 않다. 피부 표면에서 나오는 피지와 수분으로 인해 털 사이 세균 번식 및 가려움, 피부병을 동반할 수도 있다. 자료 제공 반려동물이야기 박박 깎는 미용, 반려견은 싫어해요! 여름철이 되면 온몸을 깎은 반려견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 입장에서 시원해 보이지만 반려견에게는 위험하다. 사람보다 훨씬 약한 피부를 가진 반려견의 털을 짧게 깎으면 피부가 직접 햇빛에 노출돼 피부병 혹은 종양이 생길 수 있다. 더울 것 같지만 털은 피부를 덮어 보호하고 해로운 세균에 저항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드어 준다. 그런데 자주 목욕을 시키고 털을 밀어버리면 이러한 물질이 없어진다. 반려견의 털을 밀 때는 피부를 덮을 정도는 남겨야 한다. 목욕 자주 하면 안 좋아요, 주인님! 과한 미용과 목욕은 반려견의 털과 약한 피부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좋지 않다. 여름철에는 반려견이 더울까봐 목욕을 자주 시킨다. 이때 목욕시간은 5분에서 10분이면 되지만 털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잘 말려야 한다. 젖은 채로 반려견을 내버려두면, 곰팡이가 생기거나 피부질환에 걸릴 수 있다. 피부병은 한 번 걸리면 이전의 피부로 되돌릴 수 없고 쉽게 재발한다. 병원 치료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는 반려견과 견주에게 큰 부감이 되는 일이니 미리미리 살피고 예방하는 것이 좋다. 발바닥 관리 중요해요 여름철은 기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땅바닥과 도로도 뜨겁게 달궈지기 때문에 산책하고 난 후 반려견의 발 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발바닥 사이에 털이 나 있으면 필요 이상으로 다리에 힘을 주거나 미끄러질 수 있다. 미용 면도기나 가위로 발바닥 털을 깎아주고 반려견 전용 수분연고제를 발라준다. 귀 청소도 잊지 말아요 귀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불그스름하거나 염증이 있는 곳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귀는 매주 전용 세정제로 청소해줘야 하며 귀가 아래로 처지는 반려견은 습한 날씨에 염증이 날 수 있으니 주의한다. 환절기 털 관리 비법 반려견은 1년 중 크게 봄, 가을에 털갈이를 하는데 가을 에는 겨울철 보온을 위한 털갈이를 한다. 이 시기에는 평소보다 털이 많이 빠지고 뭉치는데 빗질을 해서 털 뭉침을 막아줘야 한다. 또 피부가 평소보다 더 예민하기 때문에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피부와 모질 개선에 좋은 기능성 사료를 먹이면 털갈이 시기를 보다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피부 유형에 맞는 관리 필요 날씨가 선선하고 건조해지면서 반려견 피부에 또 하나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바로 비듬이다. 죽은 피부가 털 사이에 쌓여 보기 흉하고 반려견도 발로 긁는 등 불편해한다. 가을과 겨울 동안에는 최대한 화학적인 자극을 받지 않도록 하고 천연재료로 만든 샴푸를 사용하면 좋다. 중탕 목욕이면 충분하고 보습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따끔거리는 피부를 가진 반려견이 예방시기를 놓쳤다면, 오트밀(귀리)로 목욕을 시켜보시라. 오트밀의 다당류 성분이 피부의 보호막 역할을 해줘 피부 진정효과가 있다. 가려운 피부를 위한 약용샴푸도 있지만, 반려견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한다. 반려견의 빗은 털 유형과 겹쳐지는 피부층을 가졌는지에 따라 선택한다. 부드러운 브러시는 모낭과 땀샘을 자극해 죽은 피부 세포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고 피부 자생력을 높여준다. 피부에 좋은 사료 뭐 없을까요? 반려동물의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려면 사료 선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경우 피부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이 섭취하는 사료나 음식물은 피부병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반려동물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피부 각질 장애와 탈모는 단백질 및 에너지가 부족한 경우에 발생한다. 비타민E가 부족하면 홍반성 낭창 및 천포창 등의 피부 질환에 걸리기 쉽다. 따라서 반려동물이 가지고 있는 피부병 증상을 토대로 부족한 영양소를 예측해 사료로 적절하게 제공해줘야 한다. 피부가 약한 반려견의 경우 가끔씩 생식을 주는 것도 좋다. 처음 생식하는 반려견은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사료에 섞어주거나 간식으로 만들어서 재료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차차 양을 늘려준다. 반려견 피부에 좋은 음식들 연어- 연어는 오메가3가 풍부해 반려견의 피부에 좋다. 익혀서 먹인다. 귀리- 귀리에는 다당류가 함유되어 있어 피부 보호막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건조한 피부와 가려움증이 많은 반려견에게 좋다. 코코넛오일- 피부병을 앓고 있는 반려견에게 발라주면 좋다. 코코넛오일은 몸무게 4.5kg당 하루에 1스푼씩 먹인다. 체리- 체리는 항산화 작용을 도와 강아지의 간과 신장에 영양을 공급한다. 간과 신장이 튼튼해지면 장기 내부의 독소로 인한 트러블을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다.
- 2017-09-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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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크로 고생한 중년 남성과 20년간 그를 지킨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의 라뽀
- 다른 큰 사고들과 마찬가지로 발단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은행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이경호(李京浩·48)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그래머다. 업무에서는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고도의 보안을 요구하는 업무의 특성상 여러 대의 컴퓨터를 다뤄야 하는 그의 주변은 당연히 복잡한 케이블이 얽혀 있었다. 임시로 가설해놓은 전선이 문제였다. 바퀴가 달린 의자로 몸을 모두 움직여 좌우의 다른 컴퓨터를 조작해야 했지만 케이블이 걸리적거리면서 손과 목만 움직여 다루는 습관이 생겼다. 말 그대로 사소한 것이었다. 별것 아니라 여겼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몸에 피로를 쌓았고,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어느 순간 활을 밀어내듯 통증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자리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작스럽게 목이 아프더라고요. 마치 담 걸린 것처럼. 별것 아니라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았어요. 나중엔 두통까지 와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어요.” 이씨의 근무환경은 영화 속 펀드매니저를 상상하면 된다. 4대의 모니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각각의 모니터는 별개의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 이메일 등 일반 용도의 컴퓨터와 프로그램 개발용, 서버관리용 컴퓨터 등은 철저히 분리되어 관리된다. 수많은 고객의 예금이 관리되는 만큼 사소한 보안의 허점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목과 상체만 돌려 이런저런 업무를 오래 보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허리 때문에 이미 고생해본 적이 있어,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일 있겠나 싶었죠. 그게 오만이었나봐요.” 파스 몇 장으로 낫지 않는 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이씨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병을 해결해 줄 사람을 마음속으로 결정해놓은 상태였다. 오랜 시간 그들을 이어준 라뽀 세연통증클리닉의 최봉춘(崔鳳春·58) 원장과 이경호씨의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20년의 시간이다. 1997년 이씨는 허리가 아파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다 최봉춘 원장 덕분에 겨우 정상생활을 할 수 있었고, 관리를 위해 계속 인연을 유지했다. 최 원장은 이씨와는 이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사와 환자 사이로 만난 시간이 워낙 오래되었으니까요. 지금 자리가 아닌 초창기 개원 시절부터 환자로 저를 찾아주었어요. 누구보다도 몸 상태를 잘 알고, 함께 늙어가는 과정을 오롯이 지켜보고 있습니다(웃음).” 그런데 통증클리닉이라는 병원명이 좀 생소해 보이기도 한다. 통증클리닉은 어떤 곳일까. 최 원장은 “말 그대로 통증의 원인을 찾아 환자를 안 아프게 해주는 것이 목적인 곳”이라고 설명한다. “통증의 원인은 다양해요. 근골격계 통증일 수도 있고, 신경 통증일 수도 있어요. 환자의 환부를 진찰해 통증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습니다. 정형외과와 다른 부분은 외과적 치료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씨의 증상은 전형적인 목디스크로 치료가 그리 어려운 경우는 아니라고 했다. 목디스크는 왜 생기는 것일까. “척추의 뼈와 뼈 사이에는 추간판, 그러니까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쿠션 역할을 해줘요. 목뼈에 걸리는 무게를 분산시켜주는 거죠. 그런데 간혹 이 디스크가 삐져나와 목의 신경을 누를 때가 있어요. 디스크가 삐져나오는 경우는 매우 흔한데, 그중 일부가 통증을 유발합니다. 디스크가 삐져나와 있다고 해서 무조건 통증이 있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디스크 질환은 퇴행성입니다. 허리디스크도 마찬가지고요. 노화 과정에서 디스크에 변형이 오는 거죠.” 최 원장은 최근 목디스크 환자의 증가를 의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달라진 생활환경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과거엔 책과 서류 볼 때를 제외하면 앞을 보면서 생활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주위를 보세요.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심지어 걸을 때도 말이죠. 이러다 보니 당연히 목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죠. 또 잘못된 자세도 큰 원인 중 하나예요. 평소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스크 수술, 이럴 때만 해야 한다 이쯤 되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디스크, 수술 해야 하나? “대부분 수술이 필요 없습니다.” 최 원장은 잘라 말한다. “허리디스크나 목디스크 환자 중에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정해져 있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마비 증세가 왔을 때, 대변이나 소변을 보는 데 문제가 생기는 배뇨장애가 왔을 때, 6개월 이상 치료를 했는데도 통증이 지속될 때입니다. 그 외에는 수술이 아닌 치료 방법으로 충분히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어요.” 최 원장이 또 하나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운동이다. 척추 주변의 근육을 강화시키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 디스크로 인한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가끔 디스크 질환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픈 허리를 운동으로 혹사시키는 분들이 있어요. 이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척추 주위 근육을 강화시키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어요. 바로 치료입니다.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아 디스크 증세를 어느 정도 안정시켜놓고 의사가 안내하는 운동법에 따르는 것이 중요해요. 무턱대고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간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십상입니다.” 치료 미루다 삶의 질 떨어져 최 원장은 목디스크로 다시 찾아온 이씨에게 목신경성형술을 실시했다. 최 원장의 표현을 빌리면 “대단한 수술이 아닌” 시술이다. 척추뼈 사이의 구멍을 통해 척추 경막외강에 1mm 두께 바늘 모양의 카테터를 삽입해 통증이 발생하는 부위에 약물을 주입한다. 이를 통해 신경 주위의 염증과 유착을 사라지게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회복도 빠르다. 시술 후 곧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최 원장은 목이나 허리디스크 치료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치료 시기라고 조언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정상생활로의 복귀시간도 단축된다는 이야기다.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마비 증세가 올 때까지 참고 버티는 것이 최악이에요. 통증이 지속되어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불면이 계속되면 피곤함은 물론 우울증까지 올 수 있어요. 결국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겠죠. 작은 통증이라도 멈추지 않으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디스크 환자들이 쉽게 하는 실수 중 하나는 통증의 위치로 잘못된 진단을 스스로 하는 것. 허리디스크의 대표적 증상은 다리저림인데 다리가 아프다 보니 척추의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 원장은 “다리가 저리면 허리디스크일 수도 있고, 협착증일 수도 있고, 고관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엉덩이 주변 신경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부터 가야 합니다. 스스로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방치하면 병만 키우게 됩니다.” 부주의가 큰 병 불러와 이씨가 처음 최 원장을 찾은 것은 허리 때문이었다. 그때도 부주의가 문제였다고 이씨는 말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예요. 당시 테니스에 푹 빠져 지냈는데, 집에 있어도 코트 생각만 났죠. 1997년 겨울이었어요. 빨리 손맛을 보고 싶은 생각에 몸을 제대로 풀지 않고 덤볐다가 사달이 났죠. 추운 날씨에는 충분히 준비운동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허리를 삐끗한 뒤 용하다는 한의원과 정형외과 등을 전전했지만 낫질 않아 고생하다 스포츠신문 기사를 보고 최 원장님을 찾게 됐어요. 병원에 와 보니 프로농구 용병 선수 몇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여기서는 허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씨는 허리 치료 후 최 원장 추천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덤으로 모든 영법도 마스터했다. 이후 웨이트 트레이닝도 시작했다. 이제는 테니스 라켓을 다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정상이 됐다. “허리가 아팠을 때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는데 20m도 걷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니 몸을 제대로 관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테니스도 한동안 쉬고 몸을 위한 운동에만 집중했죠.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에는 최 원장님을 가끔씩만 봬도 될 만큼 호전됐어요.” 몇 년 동안의 투병 때문인지 이씨는 자신이 허리 박사가 다 됐다고 말한다. “한 가지 질환 때문에 20년 고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박사 수준이 돼요. 허리에 좋은 바른 자세나 운동 방법 등은 훤히 꿰고 있어요. 아무래도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간혹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가 있어요. 그럴 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줍니다.” 이씨는 디스크로 인한 ‘두 번째 고생’을 마치고 나서 다시 한 번 ‘바른생활’을 하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한동안 운동도 열심히 하고 관리도 잘해왔는데 방심했다가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을 샀어요. 계속 앉아서 일하는 게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틈틈이 서서도 일하려고요. 물론 걸리적거렸던 케이블도 진작에 치웠습니다(웃음). 아파보지 않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짐작조차 못할 거예요. 겪어보니 몸은 방심을 참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평소에 제대로 관리하셔서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 2017-09-0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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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좋은 동네
- 얼마 전 신문에 보도 된 바에 의하면 성수동에 있는 서울 공기 오염의 원인이라고 말이 많은 삼표 레미콘 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 곳에 현재 있는 서울의 숲이 확장 되어 들어선다고 한다. 서울의 숲은 필자가 살고 있는 청구동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이다. 필자는 결혼 후 강남의 반포에서 30년 가까이 살다가 아들을 결혼 시키고, 수 년 전에 우연히 강북의 약수역 근처인 청구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항공 회사에서 근무하는 아들의 직장이 김포 공항 근처라 공항 가까운 목동에 집을 마련 해주고 우린 옛날 어릴 때 살던 장충동과 가까운 이 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보니 우선 서울의 중심인 중구이기 때문에 국립극장이나, 덕수궁, 경복궁 등의 문화재가 집과 아주 가까워서 만약의 경우 택시를 타게 되어도 돈 만원 정도면 해결이 된다. 또 광화문이 가까워 세종 문화회관의 공연도 가기가 편해서, 교통의 불편으로 악마의 장소로 불리는 예술의 전당의 공연보다 훨씬 쉽게 즐길 수 있다. 또 남산 공원이나 장충단 공원도 가까워 답답한 날에는 drive를 즐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이다.. 동대문 의류 시장이 가까워 옷 값이 싸고, 과일 야채도 재래 시장이 멀지 않고 저소득 층 상대라 강남에 비해 너무 싸고, 물건도 아주 싱싱하고 좋다. 또 의류 시장에 납품하는 의류 수선 점이 많아 수선비가 싸서 몸이 불어서 못 입는 옷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수선할 수 있다. 또 최근에 젊은이들의 뜨거운 장소로 뜨고 있는 이태원의 경리단 길이나 서울의 Central park 라고 불리는 연남동의 ‘연트랄 파크’의 이름난 중국 요리 집도 자동차로 가면 멀지 않아 어렵지 않게 가서 외식도 즐길 수 있다. 또 날씨 좋은 가을 날에는 가끔 뚝섬 역 가까이에 있는 서울 숲에 가서 산책을 즐기는데 너무 넓어서 한 바퀴 돌려면 휠체어를 타야만 한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애인이 되었고 후유증으로 지금도 몸의 한쪽이 불편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먼 거리는 혼자서 걷지 못하고 올해 77세인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물론 집안 살림은 거의 남편이 맡아서 하고 또 하루에 3시간 씩 오는 도우미 아줌마에게도 많은 의지를 한다.
- 2017-08-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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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 끓이지 말고 좋은 말로 부탁하자
- 필자는 유달리 더위를 타는 사람이다. 몸속에도 열이 많은지 한겨울에도 냉동실 얼음 칸에 얼음을 가득 채워야 마음이 놓일 정도다. 마시는 물도 미지근한 물이 몸에 좋다는데 필자는 꼭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시니 주변에서 걱정해주기도 한다. 체온이 1도 오르고 내리는 데 따라 몸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한다는데 그렇게 차가운 물을 마셔대냐고 충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마신다. 또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면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필자만 허덕거리고 부채질을 해댄다. 그래서 “너 갱년긴가보다” 하는 말도 듣는데 갱년기가 아니라 이제는 노년기에 접어든 나이이니 그 증상은 아닐 듯하다. 어떤 분은 필자가 부럽다고 한다. 젊으니까 더운 거라며 본인은 항상 추워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 입장에서 더위는 웬수다. 남보다 더위를 많이 타서 안 좋은 점은 여러 가지다. 단체로 여행을 갈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따뜻한 환경을 선호한다. 추운 겨울에야 뜨끈한 방이 좋지만 봄가을에도 다들 따뜻한 잠자리를 선호한다. 필자는 마룻바닥 베란다 쪽에 바싹 붙어서 잔 적도 있다. 도무지 후끈한 실내 공기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에어컨 좀 켜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따뜻한 게 좋다는데 필자 혼자 덥다고 그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저 부채질을 해대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강화도 탐방 나들이가 있었다. 전철 5호선 송정역에서 내려 30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쯤 가면 강화도에 도착한다고 했다. 12시에 송정역에 모여 강화도로 가서 서너 시간 유적지를 걸어서 둘러본다는데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를 필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5시에 있는 식사시간에 맞춰 참석하기로 했다. 혼자 3시간여를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가니 어디 먼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송정역에서 갈아탄 3000번 버스는 요금이 2400원이었다. 뒤편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버스에서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버스 안이 너무 더웠다. 옆자리의 아주머니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좌석 위쪽에 있는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필자만 더운 건 아니었나보다.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 날 승차비를 2400원이나 받는 버스가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지 급기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기사분에게 에어컨 좀 세게 틀어달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만 했다. 속 시원하게 부탁하면 좋으련만 그러지도 못 하는 성격에 큰 소리도 못 내고 덥다고 혼잣말을 하며 30여 분간 분을 참고만 있었다. 요즘은 자가용 줄이기 목적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보편화됐다. 자가용을 타는 것보다 전철이나 버스가 냉난방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많이들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버스는 관광지로 가는 차인데도 불구하고 승객을 더위에 지치게 했다. 분통이 터졌다. 목적지에 도착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승객들은 부채질을 해대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있으니 이상하기도 했다. 드디어 필자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님께 가서 좌석이 너무 더우니 에어컨 좀 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기사분이 “켰는데요?” 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만지니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역시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부글부글 끓을 필요 없이 진즉에 좋은 말로 부탁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필자에게 찜통더위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많은 승객 앞을 지나 앞자리의 운전석까지 부탁하러 가는 일이 부끄러워 망설였지만 역시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용기 내어 한마디하고 시원하게 목적지까지 잘 다녀왔다.
- 2017-08-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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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형이 완만해 시니어 라운딩에 딱 좋아! 알펜시아 700 GC
- 걷기 좋은 골프장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카트를 타고 이동하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동료와 수다를 떨며 걸어보자. 대관령의 선선한 바람과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골프장, 알펜시아 700 GC를 소개한다. 2016년 11월, 경기도 광주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연결되는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덕분에 강원도 골프장으로의 접근이 한결 수월해졌다. 예전엔 강원도 한번 가려면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서울에서 평창까지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대관령에 위치한 알펜시아 리조트는 동계올림픽 유치와 사계절 복합 관광단지를 조성한다는 목표로 건설됐다. 여름엔 수영, 겨울엔 스키를 즐길 수 있고 잘 관리된 골프장까지 갖추었으니 레저활동을 좋아하는 방문객에겐 안성맞춤이다. 당일치기가 무리라면 알펜시아 리조트 내의 인터컨티넨탈 호텔, 에스테이트, 리조트, 콘도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이용해보자. 머무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진 대관령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빠질 것이다. 국내 최초 레플리카(Replica) 코스 아무리 골프가 좋다고 해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라운딩을 즐기기란 쉽지 않다. 땀에 젖어 딱 달라붙은 옷은 스윙을 불편하게 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는 미간을 저절로 찌푸리게 한다. 이런 날씨에도 쾌적한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골프장이 있다. 바로 대관령 해발 700m에 자리 잡은 알펜시아 700 GC.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쾌적한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한여름에도 20도를 약간 웃도는 기온과 대관령의 선선한 바람은 이따금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준다. 골프 마니아라면 한 번쯤 세계 곳곳의 유명 골프장에서 샷을 날리는 꿈을 꿔봤을 것이다. 알펜시아 리조트 내의 알펜시아 700 GC(72파, 6659야드)는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그 꿈을 실현해주는 특별한 골프장이다. ‘골프의 성지’라 불리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12번 홀, 골프 전문잡지 가 선정한 세계 1위 코스인 파인밸리의 5번 홀,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의 11번 홀 등 이름난 골프장의 시그니처 홀을 재현해 18홀을 구성했다. 이 중에는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코스도 있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펼치며 우승을 거머쥔 블랙울프 런의 2번 홀, 최경주가 한국인 최초 PGA(미국프로골프협회) 투어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잉글리시 턴 골프클럽의 10번 홀 등이다. 알펜시아 700 GC의 또 다른 매력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골프장 관계자는 “11번 홀에선 스키점프대를 바라보며 샷을 할 수 있다”며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홀로 꼽았다. 로열 트룬 골프클럽 7번 홀에서 영감을 얻은 11번 홀은 탁 트인 그린과 알펜시아 리조트의 자랑인 스키점프대가 어우러져 알펜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전경을 연출한다. 국내 유일의 바이애슬론 경기장과 스키점프대 등 동계올림픽 시설물을 바라보며 샷을 할 수 있는 골프장은 알펜시아 700 GC가 유일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8홀을 모두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시간에서 4시간 반. 큰 언덕이 없고 완만해 산책하듯 라운드하기 좋다. 4번과 14번 홀 앞의 그늘집에선 시원한 음료와 간단한 간식을 구매할 수 있으니 중간중간 체력을 충전하도록 하자. 이용 정보 주소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솔봉로 325 전화번호 033-339-3711 이용요금 주중 13만원 주말 16만원 (성수기 16만원) 캐디피 10만원/팀 카트피 8만원/대(5인승) 평일에 방문하는 여성 골퍼에게는 그린피를 25% 할인해준다. 셰프가 꼽은 골프장 대표 메뉴 - 맛과 자연을 담은 황태짬뽕 강원도 대관령의 특산물인 황태를 주재료로 한 황태짬뽕(1만3000원)은 알펜시아 700 GC의 대표 메뉴다. 낮엔 따뜻하고 밤에는 추운 대관령의 큰 일교차는 보들보들하고 고소한 황태 만들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곳의 황태짬뽕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말려진 대관령 황태와 쫄깃한 오징어, 새우, 홍합,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맵지 않고 부드러운 맛을 담아냈다. 운동 후에 먹는 따끈한 황태짬뽕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총주방장 윤영범씨는 “황태로 우려낸 담백한 맛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황태는 알코올 해독 능력이 뛰어나 숙취 해소에 좋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좋은 음식”이라 소개했다. 황태짬뽕의 뒤를 잇는 메뉴는 뚝배기 오삼불고기(1만3000원). 자연송이가 들어가 향이 일품인 오삼불고기 한 상이면 허기진 배를 충분히 달랠 수 있다.
- 2017-08-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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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밤의 하모니, ‘어느 멋진 날에’
- 어제 그제 쏟아진 폭우로 그리도 무덥던 여름이 막을 내린 듯 선선한 날씨가 되었다. 아침저녁 시원해도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곡식이 영글 수 있도록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이 쨍쨍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은 한낮에도 그리 덥지 않아 쾌적한 기분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갔다. 좀 늦은 시간인 오후 8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공연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저녁 시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앞 분수대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화려한 분수 쇼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야외에서의 멋진 물의 향연을 감상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 공연은 서울 그랜드필하모닉과 함께 바리톤 김동규와 국악 소녀 송소희, 베이스 손태진의 멋진 콜라보레이션 무대이다. 서울 그랜드필하모닉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서훈 씨는 연주 사이사이 알기 쉽게 음악 해설도 곁들여서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 구성은 물론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날은 주말이 아닌데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일, 이 층 넓은 좌석이 꽉 찼다. 출연자들의 시원한 성량을 기대하며 한여름 밤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인 것 같이 보인다. 시간이 되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먼저 서울 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서곡이 연주되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연주자로 구성된 창립 23주년의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이라 한다. 첫 연주가 끝나자 성악가 김동규씨가 무대에 등장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많이 보아 온 분이라서인지 낮 설지 않고 우리 이웃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무대 매너도 매우 노련해서 관객과의 소통도 매끄럽게 잘 했다. 이런 저런 제스춰로 인사를 하는데 옷자락을 펄럭이는 게 투우사를 연상하게 했다. 역시 첫 노래는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 였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자신이 옷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올레~”하고 외쳐달라고 주문했다. 시원하고 화통한 울림으로 노래가 시작되었고 옷자락을 펄럭일 때마다 관객들은 모두 “올레~”하고 외쳤다. 성악가와 관객이 한마음이 되어 즐기는 멋진 공연이 펼쳐졌다. 필자도 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올레~”소리치며 즐거웠다. 두 번째 들려준 노래는 필자마음을 울렸다. 에디뜨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의 샹송으로 필자가 매우 좋아한 음악인데 김동규 씨의 성악 발성에 에디뜨 피아프의 애절한 음색이 오버랩으로 다가와 필자 마음을 흔들었다. 두 번째 출연자 송소희는 반짝반짝 눈부신 드레스로 무척 예뻤다. 등장하자마자 “배 띄워라~”청량하고 강한 울림이 귓전을 때렸다. 어린 나이에 어쩜 저렇게 성량이 풍부하고 우리 가락을 잘하는지 감동적이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아주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듯 인사를 해서 청중을 웃겼다. 좀 전의 노래할 때와 너무나 다른 목소리였다. 그저께가 광복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리랑’이 더욱 처연하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출연자는 베이스의 매력적인 보이스 손태진씨로 얼마 전 TV프로인 팬텀싱어에서 최종 우승을 해서 이름을 알린 분이다.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각자 노래도 좋았지만, 세분이 함께한 콜라보 무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볼라레’나 ‘싱싱싱’ 등 잘 알고 있는 노래를 관객과 함께 부르며 즐긴 공연이었다는 점이다. 이 곡에는 관객 모두 일어나서 손뼉 치며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러 열광의 무대를 함께 했다. 클래식과 국악이 어우러진 감미롭기도 하고 격정적이기도 했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타이틀처럼 한여름 밤 ‘멋진 어느 날’이 된 이 날을 필자는 잊지 못할 것이다.
- 2017-08-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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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의 홍어 맛
- “홍어회 드실 줄 아세요?” 새 친구를 만나면 필자가 꼭 해보는 질문이다. 홍어도 음식이니까 다들 잘 먹을 줄 알았는데 홍어회를 못 먹는 사람이 많았고 그 냄새가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홍어회를 좋아한다면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홍어회를 진짜 좋아한다. 한 입 물었을 때 알싸하게 퍼지는 맛과 식감이 너무 좋다. 네모로 가지런하게 썰어서 내온 홍어회와 막걸리 한 사발은 굳이 삼합이 아니어도 필자를 황홀하게 만든다. 심하게 삭힌 것은 입천장이 까지고 숨을 못 쉴 정도로 톡 쏜다는데 그런 홍어는 아직까지 맛보지 못해 서운하다. 홍어 파는 음식점에서는 매번 많이 삭힌 거라고 했지만 기회가 되면 좀 더 푹 삭힌 걸 먹어보고 싶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TV에서 전라도에 사는 할머니가 큰 장독에 짚으로 넣고 홍어를 삭히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흑산도 홍어가 제일 맛있고 귀하다는데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더 선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홍어를 좋아하게 됐을까? 어릴 때부터 그 맛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는 특히 홍어찜을 자주 해주셨다. 푹 쪄낸 홍어찜을 대나무 채반에 담아 상 위에 올려놓고 온 식구가 양념간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살도 맛있었지만 오독거리는 뼈도 너무 맛났다. 결혼한 후에는 시어머니가 홍어회무침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친정에서 먹었던 찜보다 더 맛이 좋았다. 새빨간 홍어회무침은 매우면서도 쫄깃하고 부드럽고 새콤달콤했다. 필자는 그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요리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아니, 살림에 취미가 없었던 필자가 먹을 줄만 알았지 요리법 배울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곁눈질로 보니 식초에 절였다가 꼭 짜서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에 무치셨던 것 같은데 후에 홍어를 사다가 어림짐작으로 만들어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물도 흥건하게 생기고 고춧가루를 아무리 넣어도 시어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색이 곱지도 않았으며 꼬들꼬들한 식감도 없었다. 그때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걸 몹시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홍어로 알고 먹는 것들은 대부분 가오리라는 생선이란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진짜 홍어는 귀해서 그 값이 엄청 비싸다고 하는데 그래도 물량이 없단다. 가오리면 어때? 홍어랑 비슷한 맛이니 굳이 그런 걸 따지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홍어가 한 마리에 수십 만원 한다고 하니 비슷한 맛을 값싸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가오리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경동시장에 갔더니 홍어가 있다. 아니 가오리이겠지만 반쪽을 사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홍어찜을 해봤다. 양념장을 만들어 쪄낸 가오리찜을 한입 맛보았는데 이것도 예전 맛이 아니었다. 결대로 살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부드러운 맛이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홍어회처럼 손맛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맛이 안 나는 걸까? 이제부터라도 정말 필요한 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홍어찜을 했는데 엄마가 해준 맛이 안 난다 했더니 팔순이 넘으신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왜 그렇지?”라고만 하셔서 필자 마음이 슬펐다. 두 분께 홍어찜과 홍어회무침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게 영 아쉽다. 홍어찜도 좋고 매우면서도 새콤달콤한 홍어회무침도 좋지만, 날씨 좋은 날 마음 맞는 친구랑 네모반듯하게 썰어진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 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필자를 기분 좋게 한다.
- 2017-08-09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