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초 고령화 사회로 곧 진입한다고 '어쩌면 좋아!' 하는 식의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다년간 복지관에 근무한 관장님이 연사로 나오는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주제발표를 들어보면 학술 발표장이고 노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고발장(場)이였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성공적 노화란 질병과 장애를 피하고 높은 수준의 인지적,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며 활기찬 인간관계 및 생산적 활동을 통하여 삶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목청 높여 주제를 발표 합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노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는 들으나마나 뻔한 소리고 공허하게 들립니다. 나는 속으로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노인복지관에 오시는 노인 분의 평균 연령이 79.3세라고 합니다. 복지관 관장님이 이 분들의 모습을 말하는데 나이든 내가 그 자리에 있기가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노인들이 경로식당 줄서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경찰을 부르고 행사기념품을 받고 다시 줄서서 또 받으시고 서로 싸우고 복지관 바둑알 가져가시고 없다고 새로 사 달라 하신답니다.
화장실 LED등을 빼가지고 집에 가져가시고 물통을 배낭에 담아 오셔서 복지관 정수기에서 물 받아 가시고 복지관 화장실용 휴지를 통째로 들고 가시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초복 날 식당 대기 줄에서 새치기 막는 여직원 빰을 때리고 복지관 바자회 물품 모아놓은 것 가져가시기도 한답니다. 이를 듣는 대다수 40대의 중장년의 청중 표정에서 어쩜 노인들이 그럴 수가 있어 !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조소의 비웃음이 번져 갑니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이란 연극이 인기몰이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청중으로써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져서 내가 말했습니다. 노인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 노인 발표자가 없는 것을 우선 시정 건의 했습니다. 노동문제를 다루는데 노동자 없이 사용자끼리 공청회 하는 형국입니다. 노인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에는 노인을 한 사람 정도는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라도 꼭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유아원 아이도 싸우고 학교폭력도 있고 승려나 목사님들도 서로 싸웁니다. 노인이라 하여 전부 성인군자 같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노인 복지관 평군 연령이 79세라면 절반은 80이 넘은 사람입니다. 이 분들은 6.25를 겪으며 산업현장에서 조국 근대화에 한평생을 바친 사람들 입니다. 가난해서 물자절약이 몸에 배인 분들입니다. 본능적으로 무엇을 챙기려하고 가벼운 치매증상도 있을 수가 있는 나이 입니다. 우리가 보듬어 주어야 할 노약자들이지 손가락질 하며 흉볼 대상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지하철 공짜에다 고궁이나 문화제 관람 공짜 극장 할인 등 살판났다고 비아냥거리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낸 세금으로 노인들이 복지라는 이름의 버스에 무임승차 한다고 세대 간 갈등 운운 합니다. 나는 좀 달리 생각합니다. 우리가 남의 집에 세 들어가면 매월 일정액의 월세를 내야 합니다. 지금의 근대화된 집을 만든 기성세대에 젊은 세대들이 세 들어 살고 집세를 낸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난민들을 보면 우리의 선배님들이 고생으로 이 만큼 만들어 진 집에 우리는 편안하게 세 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먹여주고 키워준 부모에게 자식이 봉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인이 다 못하니 개인은 세금을 내고 국가가 대신 하는 것이 사회보장 제도입니다.
OECD국가 중 노인 자살률1위 노인빈곤 1위가 우리나라입니다. 이제 갓 68세가 된 중학교 교감 출신 여성분이 있습니다. 남편의 병 치례로 전 재산을 다 날리고 가정형편상 계속 일 하기를 원합니다. 컴퓨터와 외국어를 잘 하여 보수는 적어도 취업할 곳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번번이 서류 불합격, 면접 불합격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 합니다. 심지어 정부지원 교육을 받으려 해도 65세가 넘었다고 퇴자를 놓는다고 울상입니다. 나이 65세가 넘으면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고 이방인 취급당하고 바보를 만드는 세상이라고 울먹입니다.
사실 나이가 75세가 넘으면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복지관이나 공원의 벤치로 몰려나오는 노인 분들을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봉사활동도 75세가 넘으면 다칠까봐 도와주는 것도 고맙지 않다고 손 사레를 칩니다. 75세가 넘으면 눈과 귀는 노화되고 허리는 굽고 몸은 굼뜨고 판단은 흐려집니다. 생산대열에 참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고 놀고먹는다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우선 노년의 신체 변화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너의 젊음이 네가 잘나 받은 훈장이 아니고 나의 늙음이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는 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 뒷동산 고갯마루에서 꿈을 키웠다. 성년이 되어서는 대도시 고갯마루를 찾았다. 어머님 품 같이 포근한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활력을 얻었다. 가는 곳마다 필자의 아지트 ‘고갯마루’이다.
◇시골 뒷동산으로 가출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계셨다. 할아버님께서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고 할머님은 항상 업어주셨다. 그때까지 아버님, 어머님에게 안겼던 기억이 없다. 조부모님의 손자사랑 덕분에 꾸지람 한 번 들어본 일도 없었다.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부모님의 직할통치가 시작되고 ‘훈시’가 본격화 되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몇 년 후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맘 때로 기억된다. 어느 날 아버님으로부터 이유도 모르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무나 서러웠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있기 싫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이른바 가출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보는 논과 밭이 있는 마을 앞으로는 갈 수 없었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뒷동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큰 산으로 연결되는 곳이다. 비교적 쉬운 길을 걷다가 경사진 대목 ‘고갯마루’에 이르자 덜컥 겁이 났다. 뛰어봐야 벼룩이지! 어린이가 어디로 가겠는가?
◇어린 시절 꿈을 키운 뒷동산 고갯마루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있고 펑퍼짐한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 멈췄다. 그날따라 석양에 물든 빨강·분홍·하얀색 새털구름·조개구름·뭉게구름이 황홀하게 피어났다. “저 구름 위에 오를 수 없을까? 구름을 타면 어디까지 갈까?” 짧은 시간이지만 상상의 날개는 끝이 없었다.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았다. 구름 위로, 더 멀리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아버님의 꾸지람은 이미 잊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에 왔으나 농사일에 바쁘신 부모님은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아니 어린 아들의 겁 없는 가출(?)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셨다. 몇 시간의 짧은 가출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필자에게만 남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다시는 가출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성장하면서 동생과 가끔 그곳에 오르곤 하였다. “우리는 무엇이 될까?” 제일 많이 나누었던 이야기로 기억된다. 더 자라면서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는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 꿈을 키운 필자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새로운 아지트 도시의 고갯마루
성인이 되어서 산행을 꾸준히 하였다. 북한산·관악산·청계산을 올라서면 ‘고갯마루’를 만났다. 여름에는 바람이 제일 시원하게 불고, 겨울에는 눈으로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쉬면서 교차하는 곳이었다. 잘 자란 나무 몇 그루가 햇볕을 가려주고, 평탄한 자리는 막걸리 한 잔 들이키면서 대화하는 광장이 되었다.
고갯마루 가는 곳마다 새로운 아지트로 삼았다.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었다. 조개껍질처럼 옹기종기 ‘도시’가 발아래 펼쳐졌다. ‘천군만마 위에 군림’하는 호기를 부릴만한 곳이 고갯마루다. 책 한 권 펼쳐들면 신선이 따로 없다. 모두가 다 아는 만인의 아지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장, 졸업장, 수료증, 자격증 등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보관해 두기에 왠지 불편해서 요즘은 40장짜리 파일에다가 모두 다 모아서 보관해두고 있다. 필자의 인생 전부가 담긴 이 파일을 한장 한장 넘겨 볼 때가 있는데 맨 첫 장이 성경암송대회 상장이고, 두 번째 장이 바로 ‘교회 주일학교 졸업장’이다. 어릴 적, 언제부터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주일학교 졸업도 했다. 낡고 초라하기까지 한, 교회 주일학교의 작은 졸업장을 볼 때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항상 느끼는 것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구나!’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낡고 작은 주일학교 졸업장이 말해주듯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할 수 없는것 투성이고,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의 중심에 있어야 할 ‘하나님이 없다.’는걸 깨닫게 될 때면, 필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아니라 단지, ‘교인’이었을 뿐이었다고 통탄을 하곤 한다.
교인과 성도의 차이
사람들은 교인과 성도가 뭐가 다르냐?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한다. 그렇다! 본래는 교인과 성도는 같은 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행하게도, 그 단어 속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달라져버렸다.
‘교인’은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는 신앙생활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교회생활일 뿐이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마음 씀도 똑같고, 행동도 똑같아서 본인의 입으로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교인인 것을 모른다.
또 다른 부류는 교회 안에서 교회봉사는 가리지 않고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매우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믿음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들로 여겨져 교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존경도 받는다. 그러나,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리 교회에서 활동이 많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도 그는 성도가 아니라 단지 교인일 뿐이다. 요즘 흔히들 하는 말이 교회활동도 취미생활이요, 유익한 사회활동이라고 하지를 않는가! 그들은 바로 종교취미활동이나 종교사회활동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경책도 열심히 읽고 모르는 말씀이 없을 정도인데, 그 말씀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적용해 나가기 때문에 세상밖에 나오면, 마음 씀과 행동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똑같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 볼 수가 없어 ‘교인’이라고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익혀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말씀대로 똑같이 살지는 못 한다 해도, 적어도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 씀과 사람들을 대하는 행동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며, 또한, 진정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성도’라고 하는데,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며, 세상에 나가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필자도 이런 성도가 되기를 늘 갈망해 왔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올바르게 배우고 싶은 갈급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교회에서 마침, ‘성경공부반’을 개강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성경공부의 교재는 「통큰 통독」이라는 책인데, 이 책을 배우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읽고 이해해야 하며, 성경책에 나오는 그 시대의 사건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행하심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마음은, ‘그의 백성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성경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참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주었으며,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은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잘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천천히 성도의 길을 향해 가다
「통큰통독」을 만나면서 필자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에 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몰아내고 마음 밭을 온통 다 갈아 엎어버린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다시 경작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삶이 한순간에 확 바뀐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슬비에 서서히 옷이 젖어가듯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기 위해 긍정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이 더 성도답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성도답다면, 필자는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으로 거듭나는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 과는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통큰통독」을 삶의 지침서로 삼다
하나님이 오늘밤에라도 이 생명 거두어 가시면 그뿐인 삶에 대해서, 필자는 욕심도 내려놓고, 교만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법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책이 닳고 닳아서 글씨를 볼 수 없을 때까지 읽고 또 읽으려고 한다. 그래서, 일생을 통해 삶을 변화시켜 가야할 삶의 올바른 지침서로 삼게 되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영화이다. '아버지와 딸'이란 뜻이다. 늘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는 러셀 크로우가 아버지 역에, 연기의 화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딸 케이티 역으로 나온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이 만들었다.
딸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7개월 동안 이모집에 맡겨두었다가 찾으러 간다. 그러나 이모집에서도 이 딸을 예쁘고 보고 입양을 원한다. 비록 백만장자 이모집보다는 못하지만 부녀가 같이 살기를 원해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나온다. 감자칩이라는 별명을 부르며 딸을 예뻐한다. 둘의 관계는 좋지만 현실은 배고프다. 이모부는 입양 소송을 걸어온다. 미국은 아버지의 경제적인 어려움도 딸을 양육할 조건이 안 되며, 이모부에 대한 행패 등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여 소송 이유가 되는 나라이다.
아버지는 착수대금만 2만5천 달러나 되는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대야 한다. 미래의 수입을 담보로 대출도 받는다. 보통 몇 년 걸리던 작품을 3개월 만에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긴다. 바로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쓴 ‘파더 앤 도터’이다. 이 책이 퓰리처상을 받게 되지만, 수상을 못하고 병으로 죽고 만다. 천년만년 오래 같이 살자던 약속을 못 지키고 먼저 죽는다.
딸은 아버지와의 정을 잊지 못해 성인이 되고 나서도 방황한다. 여러 남자와 동침하는 등 자학적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 책의 팬인 카메론을 만난다. 카메론이 진정한 팬임을 알고 ‘파더 앤 도터’ 원본을 선물로 준다. 카메론과 술집에 갔을 때 그전에 케이티가 동침했던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가 행패를 부리면서 케이티가 후회하지만, 카메론은 문제 삼지 않는다. 카메론은 진정으로 케이티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하지만, 케이티는 오히려 뒷걸음친다. 부모를 만나러 간다는데 도망친다. 한 남자와 여인이 된다는 사랑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카메론에게 돌아갔는데 카메론의 방에는 다른 여자가 와 있다. 그러나 카메론도 뛰어나가 케이티를 받아 준다.
부녀의 정이란 게 뭘까 생각해 봤다. 아버지는 밤마다 딸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줬다. 원고에 한창 빠져 있을 때도 딸이 원하면 만사를 멈추고 딸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딸은 아버지가 어머니처럼 일찍 죽으면 안 된다며 오래 살라고 약속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손가락 걸며 약속했는데 아버지가 제 명에 못 죽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모집으로 가서 살며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나서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케이티는 아버지와의 정을 잊지 못해 자학하며 산다. 그 부분은 이해가 잘 안되지만. 이모집과 아버지 간의 소송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남자와의 비교에서 다른 남자들에게서는 아버지 같은 정을 못 느꼈던 것 같다.
필자는 젊은 시절 중동에 파견 나가 장기간 일했다. 잠시 휴가 나와 딸을 만들었지만, 출산도 못 보고 이름도 못 지어줬다. 딸이 어렸을 때 여전히 나가 있었고 크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아내는 딸의 크는 모습을 그때 못 보면 후회할 것이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 은행을 미련 없이 그만 두었다. 그리고 3년 간 같이 보내고 복직했다. 그때 필자는 외국에 있었고 귀국해서도 딸과 둘만의 정을 쌓지 못했다.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등, 정을 만들지 못한 것 때문에 두고두고 한이 된다.
부고(訃告)문자를 받았습니다. 필자보다 두 살 아래의 후배이자 직장동료이었든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는 알림이었습니다. 죽었다는 아들은 30대 중반의 결혼한지 3년차인 젊은 사람입니다.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사인지 알았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망자의 아버지이자 후배는 울고 또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슬픔에 겨워 넋을 놓고 있습니다. 눈동자가 풀려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자식을 잃은 슬픔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뭘 모르고 뛰어다니는 두 살짜리 손자와 구석에서 흐느끼는 젊고 젊은 며느리를 보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릴까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필자는 자식뻘의 문상은 처음이여서 장례예법 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해 합니다. 그래도 망자가 결혼을 한 성인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향을 피우고 고인에 대한 인사로 절을 했습니다. 절을 하면서도 ‘이거 내가 절을 하는 것이 예법에 맞나’ 하는 의심은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승을 하직하는 사람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예를 표하는 것이 도리지 하면서 마음속으로 좋은 곳으로 갔다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원했습니다.
문상객중 몇몇 아는 사람들이 눈에 뜁니다. 옛 직장 동료들입니다. 어느 직장이나 특유의 직장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다녔던 직장은 길흉사 같은 큰일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참석하는 것이 전통입니다. 이미 퇴직을 했는데도 많은 문상객이 올 것입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택쥐 페리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남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숨어있는 보석’ 이라고 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문상을 하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문상객들이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이 왜 죽게 되었는지 이유를 서로 물었습니다. 교통사고나 사고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잠시 뒤 후배이자 망인의 아버지가 내게 다가 왔습니다. 이런 곳에서 뵙게 되어 너무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합니다. 아들은 분가해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돌연사라하고 합니다. 며느리 말에 의하면 전날 술도 안 먹고 일찍 잤고 아내는 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잤는데 아침에 죽어있더랍니다. 이런 허망한 일이 있습니까? 가끔은 망자가 직장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하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일이 어디 있나? 젊은 놈이 그런 것 하나 못 참고.’ 하고 타박만 한 것이 마음에 걸리나 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죽었는데 다음날 찾아가 보니 누군가에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기를 잡아당겨 전화기 줄이 다 끊어져 있더라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을 거라고 혼자 사는 두려움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족이 옆에 있는데도 젊은 사람이 돌연사를 하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는데 원인 모르는 돌연사가 있다는데 더욱 놀랍니다. 고인이 된 사람은 고인이 된 것이고 살아있는 가족들이 슬픔을 이겨내기를 기원합니다.
레옹 (Leon, Léon)
1994년에 만든 영화이다. ‘니키타’, ‘택시’. ‘테이큰’ 시리즈를 만든 유명한 뤽베송 감독 작품이며 킬러 레옹 역에 장 르노, 가족의 복수를 꿈꾸는 소녀 마틸다 역에 나탈리 포트만이 데뷔작으로 나온다. 프랑스 영화로는 드물게 개봉 당시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아직도 평점이 10점 만점에 가깝게 매겨져 있고 18년 만에 재개봉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레옹의 옆집 소녀 마틸다가 심부름 갔다 왔는데 온 가족이 몰살 당한다. 12살 마틸다는 킬러 레옹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족을 죽인 원수는 부패 마약 경찰 스탠스인데 워낙 노련한 자라서 복수의 기회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 최후의 결전에서 마틸다는 혼자 살아 돌아가고 레옹은 장렬하게 스탠스와 함께 자폭한다.
이 영화 이후로 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쏟아졌다. 그러나 레옹만큼 강렬하게 캐릭터를 남긴 작품은 많지 않다. 레옹의 작고 동그란 검은 안경, 그리고 검은 턱수염. 비니 모자는 레옹의 강렬한 아이콘이자 캐릭터이다. 물론 마틸다의 헤어스타일 및 역시 검은 안경 등이 요즘도 그런 안경을 쓰고 나오면 “레옹” “레옹”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왜 사람들이 “레옹” “레옹”, 하는지 모른다.
나탈리 포트만은 1981년생으로 12살 마틸다 역으로 나온다. 강렬한 복수심을 표정에 담은 당찬 역을 하는데 그 후 성인이 되어 ‘블랙 스완’에 주연으로 나오며 아카데미 주연상을 거머쥔다.
레옹 역의 장 르노는 1948년생으로 모로코 국적의 배우이다. 어찌 보면 교장 선생님 스타일인데 서늘한 킬러의 눈빛을 하면 그 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도 흔치 않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늘 젊고 잘 생긴 사람들이 이런 역으로 나오는데 그러다 보면 레옹처럼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 무리가 있다. 표정연기가 강렬한 중견 배우에서 액션 배우를 찾아야한다.
둘의 나이 차는 아버지와 딸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찬 마틸다는 레옹에게 남자를 느낀다. 그러나 레옹은 역시 그가 늘 지니고 다니던 화분처럼 그녀를 아낀다. 레옹이 죽고 난 후 마틸다가 학교 한 구석에 그 화분을 심으며 둘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2살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등학생인데 나타리 포트만처럼 강렬한 눈빛 연기를 할 만한 배우를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예쁜 배우 위주로 뽑기 때문이다.
레옹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그동안 청부살인으로 번 돈을 마틸다에게 주라는 말을 자신에게 청부업을 맡겼던 친구에게 남긴다. 엄청난 액수일 텐데 아직 나이가 어리니 매달 와서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며 우선 100불을 준다. 레옹이 죽었는데 그 돈을 고스란히 마틸다에게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총기 소지가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영화처럼 민간인들인데 권총이 흔하고 자동소총이 난무하는 장면은 만들기 어렵다. 치안이 좋은 나라인 것은 다행이다. 스트레스는 이런 영화를 보며 풀면 된다.
“함께! 너와나 & 우리”라는 슬로건을 통하여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을 2016년 3월 3일(목요일)부터 현제까지 광진구 화양동 주민센터(주소:서울시 광진구 능동로17길 39, 전화 : 02-450-1515 동장 김용식)에서 매주(수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3~6시 실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아동(18세미만) 청소년교육은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성인(고교 졸업) 후부터는 교육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요청을 받고 희망벨이라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경찰이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과 관련해 농장주 부부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중앙일보 8월1)는 보도를 접한다. 지적장애인을 노예취급하며 노동력 착취와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기사를 볼 때 분개한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면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등을 말한다.
지적장애인은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여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폐성장애인은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신체표현·자기조절·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밖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아니하거나 크게 지연되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다.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2014년 11월 19(법률 제12844호)‘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발달장애인법)[시행 2015.11.21.]에서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특성 및 복지 욕구에 적합한 지원과 권리옹호 등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권리를 보호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목적)라고 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3월부터 시작된 교육은 발달장애가 있는 만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개별 발달 장애특성에 따라 기초문예, 사회활동증진, 건강관리지원, 신체활동, 여가지원, 직업준비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비롯해 미술표현, 무용, 음악, 취미활동을 대상자의 요구와 가족들의 필요에 따라 맞춤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일상생활과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며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10여명의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는 희망벨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센터는 부모와 장애인 당자사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개별적인 욕구와 보호를 함께 나누어 가기를 기대해본다.
관 주도가 아닌 민간이 계획하고 관(주민센터나 지자체)이 협력하는 모델을 통하여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다른 복지영역도 민관이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 확대되기를 소망해본다.
한국인들에게 마케도니아에 대해 물어봤을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 아니면 마더 테레사가 태어난 곳? 하지만 이 답변은 소수의 마니아급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일 게다. 많이 낯설어서 설레는 나라, 바로 마케도니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흐리드 호수
마케도니아(Macedonia)의 여러 여행지 중에서도 유럽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오흐리드(Ohrid) 호수 마을이다. 오흐리드는 세계역사문화유산(1979년)과 세계자연문화유산(1980년)으로 지정된 도시다. 오흐리드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알바니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알바니아 국경에서 택시를 타고 30km를 달려 오흐리드에 도착해 동상이 많은 선착장 광장 근처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올드 타운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계속 만나게 되는 비잔틴 방식의 정교회 건물에 깜짝 놀라게 된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오흐리드에는 한때 365개나 되는 교회가 있었고 현재도 ‘마케도니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린다. 엇비슷한 형태의 작은 교회 몇 개를 지나치자 웅장한 성소피아(St. Sophia) 교회를 만난다. 오흐리드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빼어난 중세 건축물로 손꼽힌다. 이 교회는 음향 설계가 잘 되어 있어 매년 오흐리드 여름 축제를 주최한다.
교회와 골목을 벗어나 절벽 호수 길을 따라 걷는다. 벼랑 밑으로 펼쳐지는 호수 풍경은 마치 바다와 같다. 그도그럴 것이 500만 년 전, 바다 밑이 솟구쳐 올라 만들어진 호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유럽에서는 가장 깊고(290m) 1년 내내 얼지 않는다.
*오흐리드 호수를 정원 삼은 교회와 수도원
호수 길, 벼랑 끝에 카네오 성 요한 교회(Saint John at Kaneo Church)가 그림처럼 걸쳐 있다. 13세기에 요한복음의 저자, 성 요한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교회에서는 14세기의 프레스코화(1964년 복원)와 20세기의 나무 성화 등을 볼 수 있다. 그것보다 이 교회는 오흐리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치를 보여준다. 확 트인 언덕받이에 저 홀로 호수를 정원 삼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교회. 교회 밑, 호수 위로 기선과 유람선이 호수의 물살을 가르며 유유히 교차하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영화 은 이 아름다운 교회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교회를 비껴 언덕으로 올라서면 9세기 말(893년), 오흐리드의 수호성인인 성 클레멘트(St. Clement)가 세운 성 판텔레이몬(Saint Panteleimon)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 자리는 슬라브족 최초의 대학이었다. 수도원을 예배당으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글라골 문자’(Glagolitic alphabet)를 가르치는 학교로 사용했다. 글라골 문자란 마케도니아의 토어를 기초로 해 만든 최초의 슬라브 문자. 당시 슬라브족은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라틴문자를 차용해 사용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의 키릴로스(Kyrillos, 826∼869)가 그의 형 메토디오스(Methodios, 815∼885)와 함께 알파벳을 토대로 슬라브 언어를 만든 것이다.
*제 1차 불가리아 제국시절의 유적, 사무엘 요새
오흐리드의 가장 높은 곳에 사무엘 요새(Samuil's Fortress, 2003년 복원)가 있다. 성내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 중이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오흐리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무일 요새는 1차 불가리아 제국 시절 사무엘(958~1014 재위 980~1025) 왕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무일은 인근 프릴레프의 귀족집 아들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은 후 불가리아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980년, 소피아 근처에서 비잔틴 황제 바실리우스 2세(Basilius II, 958~1025, 재위 976~1025)를 격파한 후 불가리아의 ‘차르(왕)’로 정식 즉위한다. 마케도니아를 통치하다가 독립국 세르비아를 정복하고 나아가 불가리아 북부, 알바니아, 그리스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시키고 ‘오흐리다’(오흐리드)에 수도를 정한다. 그러나 비잔틴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014년, 결국 벨라시차 전투에서 바실리우스에게 완패하고 말았다. 사무일은 고향 프릴레프까지 도망을 갔고 바실리우스는 불가리아인 포로들(1만5000명에 달했다고 함)을 장님으로 만들어 돌려 보냈다. 사무엘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는 설이 전해온다. 이 사건으로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록토누스(Bulgaroktonos, 불가르족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에 병합되면서 1차 불가리아 제국은 사라진다.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
사무엘 요새에서 멀지 않은 곳에 BC 2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원형극장(Ancient Theatre)이 있다. 마케도니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의 극장으로 현재는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오흐리드 여름 축제 등 여러 행사와 공연이 열린다.
원형극장에서 다시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성 보고로디차 페리블렙타(St. Bogorodica Perivlepta) 교회와 이콘 갤러리가 있다. 1295년,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세워진 이 교회는 성 클레멘트의 유해를 안치하고 있어, 성 클레멘트 교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묵은 향 가득한 골목길마다 오랜 역사의 사연이 풍겨나는 곳. 발길에 채이고 채이는 문화유적지의 보고인 호반의 도시 오흐리드.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Travel Data
항공편오흐리드 사도 성 요한 국제공항이 있다.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알리탈리아, 아드리아, 코렌던더치, 세르비아 항공 등 총 8개 항공사가 취항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위스 취리히와 바젤,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은 직항이다.
교통편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마케도니아는 기차보다 버스 여행이 편하다.
음식 정보올드타운 입구에 있는 안티코(Antiko) 레스토랑은 상호처럼 옛 건물을 그대로 이용해 만들었다. 인테리어도 돋보이고 음식 맛도 좋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게미스타(Gemista)가 있다. 그리스식 음식으로 피망, 토마토 속에 밥과 고기를 넣고 찐 음식이다.
특산품오흐리드 호수의 물고기 비닐로 윤기를 낸 진주 제품이 있다.
주변 볼거리오흐리드에서 멀지 않은 도시가 스트루가(Struga, 8km)다. 알바니아(20km)와 국경인 이 소도시엔 치미 드림(Crni Drim)강이 흐르고 토요일이면 대형 시장이 선다. 또 해마다 8월 말이면 국제 시 축제(SPE, Struga Poetry Evenings)를 위해 이곳으로 시인들이 몰려온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은 제53회(2014년) 스트루가 시 축제에서 최고의상인 '황금화관상'을 수상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2014년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불량공주 모모코 (下妻物語)'. 일f본 코미디 드라마 영화이다. 원제는 ‘가마가제 소녀’인데 가미가제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고려해서 ‘불량공주’로 바꾼 것 같다. 감독은 나카시마 테츠야, 주연은 모모코 역에 후카다 쿄코, 폭주족 이치코 역에 츠치야 안나가 나온다. 네티즌 평점이 8.3으로 꽤 높다.
이 영화를 보면 일본은 과연 만화 공화국이고 사람들도 만화에 취해 사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지만, 어릴 때부터 만화를 많이 보고 성인들도 만화를 많이 보는 일본은 만화처럼 사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만화 같은 삶을 나쁘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코미디 물이므로 가볍게 보면 된다. 모모코의 아버지는 베르사체 짝퉁 의류를 만들어 팔면서 재미를 좀 보았으나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시모츠마라는 시골로 잠수 차 이사 간다. 이 동네 사람들은 촌이라 편한 추리닝을 선호하여 늘 추리닝 바람이다. 어지간한 옷도 동네에 유일한 마트인 자스코에서 사 입는다. 그러나 모모코는 다르다. 고등학교 2학년이다. 유럽 중세 로코코 풍의 드레스를 좋아해서 언제나 양산을 쓰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는다. 그런 옷을 사기 위해 아버지에게 거짓말도 해가며 용돈을 타내고 동경까지 가서 그런 옷을 구입해 입는다.
아버지가 짝퉁 판매하다가 재고로 남은 옷들을 모모코가 인터넷에 내 놓는다. 인터넷 광고를 보고 찾아 온 여인은 여자 스쿠터 폭주족의 일원인 이치코이다. 거친 말투와 외모까지 모모코와는 정 반대의 여자이다. 불량배들처럼 침을 칙칙 내 뱉고, 박치기 공격을 하지 않나, 자수를 곁들인 특공복 패션을 하고 다닌다.
이치코는 폭주족의 리더가 결혼한다며 송별폭주 행사에 참가하려는데 리더를 위해 특공복에 전설의 자수명인 자수를 놓겠다며 자수 명인을 찾아다닌다. 돈이 필요하니 빠찡코에 갔는데 엉뚱하게도 모모코가 대박을 터뜨린다. 주인이 속임수를 썼을 거라며 트집을 잡자 앞머리를 길게 한 이상한 모습의 남자가 나타나 모모코 편을 들어준다. 이치코는 이 남자를 첫사랑의 대상자로 찜한다.
모모코는 동경에 간 김에 수제 로코코 드레스 점에 자주 간다. 한번은 벌레 먹어 모자에 구멍이 여러 군데 생겨 손수 자수로 구멍을 활용했다. 그걸 본 점원이 사장에게 얘기하고 사장은 모모코의 재주를 알아본다. 그래서 샘플로 제작한 하얀 드레스에 장미 자수를 놓아달라고 부탁한다.
전설의 자수 명인을 찾아 다니던 모모코와 이치코는 전설의 명인은 가상 인물일 거라며 찾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어릴 때부터 자수에 소질을 보인 모모코에게 특공복 자수를 부탁한다.
로코코 드레스의 장미 자수가 다 되어갈 무렵, 이치코에게 위기가 생겼다. 빠찡코에서 자기네들 편을 들어준 앞 머리 긴 남자가 폭주족 두목의 남자로 결혼한다고 발표하자 좌절하며 탈퇴를 선언한다. 동료 폭주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려는 순간에 모모코가 스쿠터를 몰고 나타난다. 야구배트를 하나씩 든 집단 폭행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모모코는 자신이 전설의 자수 명인 딸로서 기법을 전수 받아 이치코의 특공복에 자수를 놓아준 것이라며 분위기를 장악한다. 그 덕분에 이치코와 모모코는 스쿠터로 그 현장을 빠져 나온다. 이치코는 그 후 모델로 성공하고 모모코는 로코코 드레스 회사와 손잡고 일한다.
모모코의 아버지는 짝퉁 옷을 만들어 팔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다. 술집 골목에서 좌절하여 신세타령을 할 때 술집에서 튀어나와 토하던 모모코의 어머니가 눈이 맞아 바로 결혼한다. 모모코를 임신하여 출산 후 얼마 안 가 가출하고 이혼장을 보낸다. 미모가 출중하여 미인대회에도 나간다. 모모코는 치매 초기의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다. 학교에서도 왕따이고 동네에서도 별난 드레스 때문에 손가락질 당한다.
이 영화는 만화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들이 보기에 유치하지 않고 재미가 있다. 일본의 정서를 읽는 것 같다. 폭주족 문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우리나라 폭주족들도 그런 인식에서 보면 이해할만 하다. 모모코는 별난 드레스 때문에 왕따이지만 자기 세계를 고집한다. 그런 점이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타는 자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 모카포트나 반자동ㆍ,자동ㆍ수동커피머신이 없어도 커피 여름음료 즐길 수 있다.
우선 에스프레소 1샷, 혹은 도피오(2샷).을 테이크아웃해서 집이나 원하는 장소에 갖고 간다. 에스프레소 테이크아웃 잔이 따로 제대로 있는 매장이 별로 없어서 집에 있는 빈병이나 텀블러를 갖고 가서 넣어가지고 오면 더욱 좋다.
(스타벅스를 비롯해 텀블러나 본인 갖고온 용기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할 경우 할인해준다)
1>아포카토[ Affogato ]
아포가토(Affogato)는 이탈리아 어로 '끼얹다', '빠지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식사 후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Espresso)를 얹어 내는 것 고급레스토랑에서 호텔레스토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제공된 메뉴다. 이젠 가정에서 에스프레소를 가지고 만들어 먹는 커피와 아이스크림의 하모니가 환상적인 맛의 결과를 내는 메뉴이다.http://blog.naver.com/mefun/120203677547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만들어서 아포카토완성하는 내용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이스크림 어느종류던지 간에 좋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호두아이스크림이 가장 맛있는 아포카토를 느끼기 쉽다.
2>핸드드립으로 아이스커피 만들기
얼음을 먼저 넣고 그 위에 필터와 커피를 갈아낸 것을 올리고 핸드드립으로 원두커피를 추출하여 맛과 향을 잡아주는것이 포인트. 원두커피에 뜨거운 물로 적셔준뒤에 50원짜리 원만큼 돌려주고 100원짜리 이렇게 원을 크게 하면서 핸드드립합니다. 물줄기는 일정하게 드립해준다. 점드립(점을 찍듯이 천천히 한 방울 한방울 뜨거운물을 부어줌)으로 뜸을 들 인후 하면 더욱 좋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못해도 된다. 핸드드립 도구가 없다면 역시 테이크아웃 하여 갖고 온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이용하는 게 좋다..
3>아이스카페라떼완성
테이크아웃 하여 커피를 카페에서 갖고 오거나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렸을 경우 우유만 즉석에서 거품 내어 섞어주셔도 아주 좋다. 커피도구의 하나인 우유거품기가 없다면 힘좀 잠깐 쓰면 멋진 아이스카페라떼 가능하다. 계란 거품 내는 도구로 냉장고를 부탁해 에서 쉐프님들 머랭치듯이 거품 내어서 살짝 올린다. 정성이 느껴지고 실제 에스프레소를 써서 못마시는 경우에도 부드럽고 제대로 커피맛을 즐길수 있다.
4>술성분들어간 커피
시원하게 에스프레소테이크아웃한 것 1샷20~30ml 본인기호에 따라 양조정해서 혹은 배달원두커피도 좋습니다. 설탕20g과 정도를 쉐이커에 넣고 흔들거나 집에서 쓰는 믹서에 설탕, 양주위스키1/2ts과 에스프레소를 넣고 갈아준 뒤 우유거품낸 것을 풍성하게 얹고 설탕을 맛조정하면서 경우에 따라 위스키대신 커피와 술의 조화로운 맛이 인기 좋은 깔루아를 넣어도 좋다. 술은 인터넷에서 살수 없으니 성인이라면 백화점이나 주류전문매장에서 구매하시면 된다. 격식이나 꼭 고가의 커피머신이나 홈카페도구가 없어도 즐길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