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그렇습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춘삼월 다시 돌아오니 산에 들에 또다시 바람이 붑니다. 처녀, 총각 가슴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그 봄바람 따라 봄 야생화들이 다시 또 피어납니다. 복수초, 노루귀, 제비꽃, 변산바람꽃, 중의무릇, 현호색, 양지꽃, 개별꽃, 광대나물 등등.
노래 교실에 갈 때마다 앞자리의 K 회장은 늘 필자의 커피까지 한잔 사 온다. 백화점에서 파는 커피이므로 한잔에 5천 원 정도 한다. 혼자 마시기는 미안하니까 사는 김에 한 잔 더 사오는 모양이다. 양도 많아서 다 마시기에는 벅차지만, 성의를 봐서 다 마신다. 사실 저녁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자칫 불면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사오지 말라고 하기도
서둔야학교 학생 중 몇 명은 주로 인근에 있는 ‘푸른지대’로 일당을 받고 일을 다녔다. 푸른지대는 그 당시 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는 서둔벌이 온통 선남선녀의 물결이었다.
농대 후문에서 도보로 3분 이내 거리의 유원지로 개발이 잘된 푸른지대는 갖가지 수목이 우거졌는데 커다란 백합나무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빨갛게 핀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므로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다닌 지 20년이 되었다. 갑자기 노래 강사가 그만 둔다고 했다.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노래 강사가 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폐강된다는 것이었다. 새 학기 등록을 하려다가 접수처에서 접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필자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건축 문화에 새겨진 ‘다름’을 언급한 바 있다. 중국 건축의 지붕선(Roof line)에서는 ‘권력, 권세’가 묻어나고, 일본의 지붕선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한국 건축물에서는 ‘여유와 푸근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선(線)의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예술가로 오스트리아
시니어 코하우징(senior co-housing)은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어서도 잘 사는 데(aging-in-place) 초점을 두고 개발된 시니어 주택 대안 중 하나다.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현대 코하우징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돼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시니어 코하우징은 널찍한 커먼하우스(common house
서울시 지하철 1호선 동묘역과 6호선 창신역 사이의 창신동은 최근 예쁜 옛 동네로 주목받고 있다. 낡고 오래되면 ‘뉴타운’이라 이름 붙여 첨단 건축물을 세우고 땅값을 올리는 것이 불과 몇 년 전까지 도시의 운명이었다. 창신동은 개발을 거부하고 주민들의 푸근함을 담아 이른바 재생의 길을 택했다. 창신동 구석구석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가 바로 동덕여자중·고등
“맛이 서로 싸우는 걸 알아야 해요.” 명인의 한마디는 예사롭지 않았다.
20여 년간 커피와 함께한 삶. 육화된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엄살도 없고 과장도 없다. 오로지 그 세월과 맞짱 뜨듯 결투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절창이다. 국내에 커피 로스터가 열두 대밖에 없던 시절, 일본에서 로스팅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그가 문을 연 청담동 ‘커피미학’에는
새벽에 차 시동을 걸었다. 한탄강이 흐르는 전곡 원불교 교당을 찾아가는 길. 가는 내내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거대한 독수리들이 검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고 두려웠다. 논길을 지나고 작은 마을의 고불고불한 길을 빠져나와 언덕을 넘으니 옅은 안개 속에 아담한 교당이 나타났다
차갑고 흐린 겨울 한낮. 집 앞 황토 구릉지 쪽에서 불어온 맵찬 바람이 나무들의 몸을 흔든다. 이미 누드로 늘어선 초목들은 더 벗을 것도 떨굴 것도 없다. 그저 조용히 삭풍을 견딘다. 좌정처럼 묵연하다. 봄이 오기까지, 화려한 꽃들을 피우기까지 나무들이 어떻게 침잠하는지를 알게 하는 겨울 정원. 봄이면 화들짝 깨어날 테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이 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