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해외연수 도전기] 목포역장, 셰프 되어 목포로 돌아오다

입력 2026-09-14 06:00

[배움으로 채운 해외 한달살기]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연수, 피렌체역 식당 운영

(이미지=유영현 기자ㆍAI 생성)
(이미지=유영현 기자ㆍAI 생성)

목포역 인근에는 유럽의 작은 마을에 있을 법한 이탤리언 레스토랑 ‘피렌체역’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셰프는 박석민 씨다. 2022년 목포역장을 끝으로 40년 가까운 철도 공무원 생활을 마친 그는 셰프가 돼 다시 목포역 앞으로 돌아왔다. 요리 실력은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배웠다고 하는데, 역장에서 셰프가 된 그의 인생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목포역장 재직 당시 박석민 씨.(박석민 제공)
▲목포역장 재직 당시 박석민 씨.(박석민 제공)

40년 철도 인생 마침표, 새로운 도전

19세에 강원도 영월에서 역무원 생활을 시작한 박 씨는 40년 가까이 한길을 걸었다. 하지만 50세 무렵부터 퇴직 후에는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요리였다. 현직에 있을 때 이미 한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라도 음식은 전국에서도 손꼽히고, 특히 목포는 미식의 도시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한들 어머니·이모들 손맛을 당해낼 재간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양식 셰프가 되기로 결심하고, 해외연수를 계획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 어디로 갈지 고민했는데, 피자와 파스타의 종주국인 이탈리아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죠.”

박석민 씨는 퇴직 이듬해인 2023년 3월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준비부터 무모하다 싶을 만큼 과감했다. 목포에는 이탈리아어 학원도 없어 문법책 한 권을 사서 읽은 것이 전부였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현지 레스토랑에서 숙식만 제공받으며 훈련생처럼 일하고, 언어도 현지에서 익히겠다는 계획이었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동기들과 함께.(박석민 제공)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동기들과 함께.(박석민 제공)

거절당해도 다시 문을 두드리다

로마에 도착한 그는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가 “숙식만 제공된다면 월급을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부탁했지만 무비자 신분이라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에 현지 교민의 조언을 받은 그는 정식 요리학교 입학으로 방향을 틀었고, 수소문 끝에 움브리아주 테르니의 ‘Chef Academy’를 찾았다.

“입학 신청을 했더니 나이가 너무 많고 이탈리아어도 서툴다며 거절하더라고요. 한국에서 취득한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보여주면서 입학 기회를 달라고 읍소했어요. 결국 어학원에 다니며 언어를 빨리 익힌다는 조건으로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유학 비자를 받았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요.”

입학 후에도 난관은 계속됐다. 셰프반 동기 11명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이탈리아 청년이었고, 박 씨만 50대였다. 입학 전 3개월간 어학원을 다니고 현지 주민들에게 김치 등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며 이탈리아어를 익혔지만, 전문적인 요리 강의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수업 사진과 영상을 찍어 매일 숙소에서 배운 음식을 다시 만들어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처음 듣는 음식 용어에 처음 보는 재료와 요리 이름까지 외우려니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어요. 파스타와 치즈, 와인만 해도 각각 700종류가 넘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라’는 정신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지막 관문은 움브리아 주정부에서 시행하는 셰프 자격시험이었다. 필기시험과 구술시험, 음식 조리까지 모두 이탈리아어로 치러졌다. 시험을 앞두고 늦은 밤까지 공부한 끝에 박 씨는 마침내 합격했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것은 조리 기술만이 아니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스톡과 소스 같은 기본부터 정성 들여 만드는 요리 철학도 배웠다. 그는 지금도 토마토소스를 4시간 동안 끓이고, 닭 한 마리에 양파·당근·셀러리를 넣어 치킨스톡을 직접 만든다.

▲이탤리언 레스토랑 ‘피렌체역’에서 요리하는 모습.(박석민 제공)
▲이탤리언 레스토랑 ‘피렌체역’에서 요리하는 모습.(박석민 제공)

목포로 돌아온 셰프

1년간의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고민은 이어졌다. 레스토랑을 열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고, 나이 들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두려움도 컸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박 씨는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마지막 근무지였던 목포역 인근에 이탤리언 레스토랑 ‘피렌체역’을 열었다. 기차를 타고 전국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역장 시절과는 또 다른 행복을 느낀다.

해외연수를 꿈꾸는 시니어에게는 작은 경험부터 미리 쌓아볼 것을 권한다. 박 씨 역시 평소 혼자 해외를 여행하고 도시와 철도를 답사한 경험 덕분에 낯선 곳으로 떠나는 두려움을 줄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계획을 주변에 미리 알리는 것이다.

“저는 퇴직 5년 전부터 유학 계획을 주변에 알렸습니다. 자랑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막상 때가 되면 겁이 나서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퇴직한 뒤 만나는 사람마다 언제 출국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동안 뱉어놓은 말 때문에 안 갈 수 없게 된 거죠. 계획을 세운 뒤 주변에 선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피렌체역을 꾸려가고 있다. 현직 시절 주말부부로 지낸 시간이 많았던 만큼 이제는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는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

“어떤 여행객은 레스토랑이 너무 예뻐서 들어왔는데 실내가 예뻐서 놀라고, 음식이 맛있어서 놀라고, 가격이 착해서 또 놀랐다며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이탈리아 소도시에 집집마다 꽃이 피어 있던 풍경을 이곳에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맛도 멋도 있는 목포 피렌체역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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