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며 서울둘레길의 제2코스(용마-아차산코스)의 일부분인 아차산(285m)이 있다. 등산하는 산이라고 말하기는 낮 간지럽지만 뒷동산 같은 평탄한 산길이여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 유튜브의 음악을 들으며 아차산에 올랐다.
아차산의 중턱쯤에 누군가 소나무위에 장갑을 벗어놓고 깜빡 잊고 그냥 가버렸다
모든 스포츠는 ‘힘 빼는 데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잘 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되는 이유가 있다.
필자도 아직 당구를 세게 치는 편이다. 세게 치다 보면 공이 이리 저리 굴러다니다가 공에 맞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시니어들은 파워가 약하다 보니 3 쿠션 이상을 거치는 대회전 길이 보여도
축 늘어진 젖, 엉덩이는 뒤로 쑥 빠지고, 빠진 만큼 허리는 굽었다. 층층시하에 열 자식을 낳아 여덟을 건졌지만 그 많은 식솔들을 건사하느라 무명 저고리와 치마에 물 마를 날이 없었던 어머니.
마흔둘에 낳은 막냇동생이 불쌍하다고 늘 품에 끼고 고된 농사일과 집안 허드렛일을 했다. 단아하고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막내의 특권인 어리광은 어
2018년 1월 1일. 짝지의 60세 생일이다. 이제는 헤아리기도 버거운 시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어쩌다 보니 같이한 세월도 34년이다. ‘인생 금방’이라는 선배들의 푸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시절 데이트는 대부분 ‘두 발로 뚜벅뚜벅’이었다. 좋아서 걷고, 작업하려고 걷고, 돈이 없어서 걷고, 사색하느라
“맛이 서로 싸우는 걸 알아야 해요.” 명인의 한마디는 예사롭지 않았다.
20여 년간 커피와 함께한 삶. 육화된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엄살도 없고 과장도 없다. 오로지 그 세월과 맞짱 뜨듯 결투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절창이다. 국내에 커피 로스터가 열두 대밖에 없던 시절, 일본에서 로스팅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그가 문을 연 청담동 ‘커피미학’에는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
50여 년간 장미를 그려온 화가의 심상은 무엇일까? 그것도 화병에 꽂은 정물이 대부분일 때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장미의 화가라면 김인승(金仁承, 1910~2001)이나 황염수(黃廉秀, 1917~2008) 화백이 떠오르지만, 성백주(成百冑, 1927~) 화백만큼 긴 세월 ‘장미’라는 주제에 천착해오지는 않았다.
성백주 화백은 화필이 무르익은 중년을 지나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규슈(九州) 지방. 그중 오이타 현의 벳푸(別府) 시는 예로부터 온천 여관, 온천 욕장으로 번창해 1950년 국제관광온천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한마디로 온천 천국의 도시. 현재 300여 개의 온천이 있다. 시영온천에서는 단돈 1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전통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온천욕으로 건강 다
키 157cm의 작은 체구, ‘작은 거인’ 심권호(沈權虎·45)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 선수권에서 총 9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그랜드슬램을 48kg, 54kg 두 체급에서 모두 달성했다. 2014년엔 국제레슬링연맹이 선정하는 위대한 선수로 뽑히며 아시아 지역 그레코로만형 선수 중에선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필자는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 요즘 등산하는 인구가 많아져서 산은 항상 붐빈다. 남들은 자가용이나 버스로 이곳까지 와서 산에 오르지만, 필자는 운동화 끈만 질끈 매고 문을 나서면 언제라도 산에 오를 수 있으니 비록 땅값 집값이 싼 동네라지만 만족하고 공기 좋은 우리 동네를 사랑하고 있다. 잠시 전에도 산에 다녀왔다. 흰 눈이 내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