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끔 영화를 본다. 서둘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집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는다. 조조영화는 거의 반값이다. 한 사람 표값이면 둘이 볼 수있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이리저리 쇼핑도 하고 여유를 즐긴다. 평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TV 채널 돌려가며 좀 보다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된다. 아내와 제대로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 언젠가
대전의 보문산(寶文山) 사정(沙亭)공원에는 시비(詩碑)들이 있어, 언제 가도 느리고 깊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의 이란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가슴에 꽂히는 구절을 새기며 추수 김관식(秋水 金冠植·1934~1980)의 를 읽는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
제3국, 멕시코를 향하여 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비자를 받기 위한 과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사람이 막상 닥치고 나면 없던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한 투쟁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았다.
필자는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멕시코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3국을 향해, 두려운 마음은 있었지만,
저는 옷 입는 데는 잠방이입니다. 무신경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걸치고 나왔다가 푸른색 양복 하의에 노란색 스포츠 양말 차림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이 차림이 괴상망측하단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온종일 돌아다녔다는 겁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아내로부터 “패션 테러리스트”란 핀잔도 듣고서야 문제
사진은 필름이나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져 있어서 언제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SNS를 통하여 열어 볼 수 있다. 또한 필요한 경우 인화할 수 있다. 판화도 마찬가지다. 원판이 있어서 언제고 희망하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해당 원판을 이용하여 한없이 찍어내거나 만든다면 작품의 희소가치는 떨어진다. 작가가 죽은 후에 그 값어치가 더 올라가는
필자는 도라지 꽃을 좋아한다. 꽃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꽃을 꼽으라면 아마 도라지 꽃을 꼽을 것이다. 도라지 꽃은 귀품이 있어 보이고 깔끔하다. 반듯한 성품과 바른 심성을 가진 모습이다. 흩뜨러져 보이지 않고 교활하거나 사악해 보이지도 않다. 과하거나 넘치지도 않아 보인다. 녹색의 바탕 위에 보라색을 띄고 피어난 귀공자이거나 청초한 여인상이다. 왠지 도라지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음악을 들으며 수학문제를 푸는 학생이 있습니다. 봉제공장 작업장에서 라디오를 계속 켜놓고 라디오 연속극도 듣고 뉴스도 들으며 옷감 재단도 하고 재봉틀로 박음질도 합니다. 별 실수 없이 두 가지 일을 해내는 걸 보면 젊은 사람이고 젊음이 좋기만 합니다.
나이 들면서 두 가지 일이 어렵습니다. 은행가서 카드로 돈을 찾고 통장정리하고 시계방에 가서
[요즘은 외출할 일이 있으면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젊어 한때는 바로 몇 정거장 아래에 있는 시장이나 은행 일을 볼 때도 차를 운전하고 나갔었다.
차가 내 발이라고 생각했고 마침 정비소에 갔거나 남편이 타고 나가 집에 차가 없으면 외출을 하지 않았으며 있던 약속도 “차가 없어서 못 나가니 다음 날 만나자.”라며 취소한 적도 있다.
오래
말이 씨가 된다고 8년 전에 친구들과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 크루즈 여행을 친구 3가족과 같이 6월 초에 다녀왔다. 8년 이상 적금을 들어 준비한 것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처음에는 알래스카로 가기로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지중해로 변경되어 10일 동안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비행기로 가서 배로 제노아, 로마, 시칠리아섬, 몰타,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