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5월의 풍금소리

기사입력 2017-05-24 09:23 기사수정 2017-05-24 09:23

▲그해 5월의 풍금소리(이현숙 동년기자)
▲그해 5월의 풍금소리(이현숙 동년기자)
해마다 5월이면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가 많아 분주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면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이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하게 되는 일일 명예교사 일을 빠뜨릴 수 없었는데, 그해 아들의 5학년 교실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날, 약속된 시간이 되어 아들 녀석의 학교로 갔는데 교실 복도에 다다르자 왁자지껄 우당탕 개구쟁이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교실 밖까지 들렸다. 필자는 담임선생님을 잠깐 만나 일일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수업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이 소란을 잠재우려는 듯 선생님께서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풍금 앞에 앉으셨다. ‘갑자기 음악을 들려주시려는 걸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이내 마치 파도소리 같은 반주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마치 아기새가 어미새 앞에서 먹이를 받아먹으려 입을 크게 벌리듯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창밖으로 보이던 싱그러운 오월의 하늘도 마냥 푸르렀다. 아이들의 노래는 가슴이 시원하도록 온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조금은 쓸쓸한 가사였지만 아이들이 노래 부르자 예쁘고 유쾌한 노래가 되었다.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수업은 더없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인간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흰머리 희끗희끗했던 그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외에도 특별한 장르의 음악 또는 민중적이거나 대중성이 짙은 여러 노래들을 가르쳐줘서 필자도 아들에게서 종종 그런 노래들을 듣곤 했다.

그 선생님은 해맑은 얼굴로 필자에게 이런 말도 했다.

“제 나이가 쉰셋이에요, 요즘은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나이 많은 선생은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얼마 동안은 더 하려고 해요.”

회갑이 지나고 또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순진무구함을 끝까지 간직할 것 같은 그 선생님은 그 후 인천의 어느 섬에 있는 학교로 옮겼고 중학생이 된 아들이 그 섬으로 한 번 찾아갔던 적이 있다.

요즘에도 이렇게 참 좋은 선생님들이 있을 텐데 김영란법 대상이 되어 일단 생각을 해보고 찾아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단비처럼 가끔 기억나는 스승들이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고마운 마음도 그리운 마음도 조심하고 계산해봐야 하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래오래 아이들과 지내야 할 참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생각이 난다. 여전히 풍금소리 울리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여생을 멋지게 보내고 계시리라 믿는다.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욕심에서 해방되어 한껏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 참 아름다운 사람. 나이 듦과는 무관한 그 해맑음이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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