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이 내리더니 대설(大雪)을 넘어 동지(冬至)가 다가오기도 전에 매서운 추위가 들이닥쳤다. 이렇게 되면 야외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문화유산 답사도 지장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산과 들이 낙엽 지고 썰렁하다 못해 가슴 한가운데로 찬바람이 뚫고 지나가는 계절적 처연함이 가득한 늦가을과 초겨울이 엉겨 붙는 이때가 폐사지 답사에는 제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일곱 번째는 해남 대흥사로 ‘한국의 산사 7곳’을 마무리하는 순서이다.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옛날에는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 혹은 한듬산 등으로 불렀기 때문에 대둔사 또는 한듬절이라고도 했다. 근대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흥사 창건은 426년에 정관존자, 혹은 5
언젠가 ‘한국 미술을 몇 마디로 집약하는 표현은 무엇일까’라는 화제(話題)가 떠오른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서슴지 않고 ‘검이불루 화이불치(檢而不陋 華而不侈)’를 꼽았다. 그의 근작 ‘안목(眼目)’의 첫 대목도 그렇게 시작한다.
얼마 전 필자는 일본 최고의 명품관임을 자랑하는 도쿄 와코(和光)백화점에서 일본 도
숲으로 들어서자 솔 그늘이 짙다. 부소(扶蘇)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을 일컫는 백제 말이란다. 부소에 산성을 쌓았으니 부소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산의 높이는 겨우 106m. 낮고 평평하나, 이 야산에 서린 역사가 애달파 수수롭다. 부소산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백제의 도성(都城). 백제 최후의 비운과 아비규환이 화인(火
우리나라의 열세 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7곳’ 네 번째는 순천 선암사이다.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위치하며,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에 가람을 배치하였다. 많은 대중이 생활하는 대규모 산사였기 때문에 사방으로 둘러싸인 ‘ㅁ’자 형태인 건물이 많이 건립되었다.
절 서쪽에 신선이 바둑을 두던 평평한 바위가 있어 ‘
지난 6월 30일(현지시각),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열세 번째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갖게 되었으니 7곳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다.
당초 통도사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무등산 자락에 가면 ‘생오지문예창작촌’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80) 씨가 추구하는 문학의 열정을 증명하는 이곳 주변의 도로명은 생오지길. 원래는 만월2구라 불렸다고 한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문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이곳을 생오지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문학의 집을 만들어 생오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 지금에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지방호족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화합책으로 혼인정책을 펼쳐 모두 29명의 부인을 두었다. 그중 첫째 정부인 신혜왕후 유씨와 둘째 장화왕후 오씨는 왕건이 즉위하기 이전에 결혼한 부인들인데 그중 장화왕후 오씨가 나주 사람이다.
태조 왕건이 궁예 휘하의 장수 시절, 견훤의 후백제와 자웅을 겨루면서 후백제의 후방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숫자는 아라비아 숫자라고 한다. 원래 숫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지만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유럽에 전해져 오늘날 유럽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로마숫자나 한자로 된 숫자도 있지만 사용의 편리성에 있어 아라비아 숫자를 따라 갈 수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숫자를 만들 때 기본원리가 각의 개수에서 시작되었다는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토요일,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를 여행했다. 부추겉절이를 넣어 먹는 독특한 곰탕으로 따뜻하게 점심을 먹은 뒤 궁남지를 찾았다. 가늘게 내리는 빗속의 궁남지 분위기는 그윽하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634년) 때 만든 왕궁의 정원이라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만든 연못으로 삼국 중, 백제의 정원 기술이 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