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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세계 당구의 큰 시장이 될 것
- 20여 년 전 댄스스포츠를 한창 즐기며 배울 때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은 우리나라 방문을 기피했었다. 어차피 극동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투어에서 일본에는 가지만, 한국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던 프로선수들이 불과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자주 온다. 한국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번 오면 고액의 시범료를 받을 수 있고 온 김에 레슨비를 두둑이 챙겨서 갈 수 있다. 당구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생겨난 당구의 세계적인 수준에 편승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세계 당구계의 변방이었으나 이제는 4대 천왕이라는 세계 프로 당구계의 거물들이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올해만 해도 LG U+대회와 청주 직지 당구 월드컵 대회 등 세계대회를 두 차례나 치렀다. 그리고 여기저기 동호회에서 초대 받아 시범 몇 차례 보여주면 레슨비가 만만치 않다. 한국 당구 계는 TV나, 관련 업체 등에서도 이들 4대 천왕을 통하여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LG U+대회의 우승 상금은 무려 8천만 원이었다. 대부분의 세계 대회 우승 상금은 1천만 원 내외로 알고 있다. 청주 직지 당구 월드컵 대회의 우승 상금은 1천만 원이었으나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몰려 와서 경합했다. 전 세계적으로 세계 대회는 일 년에 10개 남짓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세계대회에서 심판이 국제 공용어인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쿠드롱 3점”, “득점”, “안 맞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보니 외국 선수들도 아쉬우면 한국말을 배워야할 판이다. 물론 당구 용어는 뻔하고 득점수는 본인이 몇 점 쳤는지 잘 알고 기록원이 틀림없이 기재하기 때문에 신경 쓸 것은 없다. 전 세계 태권도 사범들이 “준비”, “차렷” 등 우리말로 구령을 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 프로 당구 선수들의 수입은 아직은 경기 상금만으로는 생업으로 삼기에 부족하다. 대회 성적이 좋은 선수는 기업체의 후원을 받고 있거나 그 명성으로 레슨비를 수입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구 신동 조명우 선수의 경우 4대 천왕 중 한 명인 산체스를 키워낸 세계적인 종합스포츠 클럽 FC포르투에 입단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종합스포츠클럽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 그러나 인프라는 가장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당구의 본고장 유럽에 가 봐도 우리나라처럼 몇 십 미터 간격으로 당구장이 많지 않다. 당구장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더구나 당구의 기초 과정을 배울 수 있는 4구 경기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만 즐기고 있다고 한다. 4구에서 발전하여 3구 경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4구 동호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거기에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당구 붐을 타고 왕년에 당구 맛을 봤던 시니어들이 대거 당구 쪽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재력 있는 시니어들은 골프를 즐겼으나 골프는 날씨와 관계가 많고, 최소 4명의 마음 맞는 동반자를 구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등 난점이 많아 손쉬운 당구가 각광을 받는 것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당구를 생업으로 삼아 열심히 정진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아 세계적인 프로당구선수들을 다수 배출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당구 계는 점점 더 세계적인 입지를 굳히게 될 것이다. 댄스 계 초기에 붐이 크게 일면서 젊은 선수들이 댄스에 정진했던 일과 비슷하게 비교된다.
- 2017-10-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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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를 위한 행동 원칙
- 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냐?”, “환불은 안 되냐?” 하며 자식들 눈치를 본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5070세대가 모으고 아끼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이에 이번 호에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이하, 나·행·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유가 아닌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호 교수는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서 이제는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크게 ‘소유를 위한 소비’와 ‘경험을 위한 소비’로 나눌 수 있다. 과거 5070세대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자동차, 집, 옷 등을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소비의 행복감은 단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위한 소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령 학습하며 강의를 듣는 것, 여가활동,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훨씬 행복감이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경험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가장 선호하는 여행([자료1]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왜 그럴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70세대에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는 익숙하지 않다. 경험을 위한 여가활동은 기껏해야 TV 시청 정도뿐이다. 5070세대가 성장해왔던 과거 1970년대에는 마땅한 여가 활동도 없었다. 화투 정도가 전부였고 1980년대에 와서야 도심에서 탁구, 당구, 볼링, 테니스 등을 즐겼다. 최근에는 골프와 캠핑 등도 여가활동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경험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여가활동이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좌표를 배움에서 찾는 5070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60세 이상 학점은행제 등록자는 2만2915명(대학학점인정 과정 기준)이며, 55~64세의 평생교육 참여현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교육과학기술부 국가평생교육 통계조사). 또한 지난 2013년에는 1972년 방송통신대 개교 이래 최고령자인 정한택(입학 당시 91세)씨가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5070세대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위해서는 ‘갖고 싶은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활동의 주역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고수입의 활동적인 70대가 레저시장의 주도세력이다. 유병장수시대 행복하게 하는 소비 과거 학창 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의식주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욕구로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궁극적으로 꿈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욕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론이자 경험론이다. 나·행·소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1단계 생리 욕구는 의식주 관련 소비로, 2단계 안전 욕구는 건강 예방을 위한 소비로, 3단계 소속감 욕구는 친구/동호회 활동을 위한 소비로, 4단계 존경 욕구는 학습/교육 활동을 위한 소비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는 여행을 위한 소비로 매칭할 수 있다([자료2] 참조). 앞서 필자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나·행·소 첫 번째 요소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모든 5070세대가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빼어난 경치라도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은퇴생활을 하는 5070세대의 소비 성향과 욕구도 동일하지 않다. 은퇴 후에 소득이 중단되어 의식주 관련 소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자료3] 참조). 여기에 의료, 간병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험을 위한 소비’는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5070세대가 나·행·소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비욕구 5단계에 따르면 1, 2단계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와 건강과 관련된 소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자산을 모으는 웰스(wealth)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헬스(health)에 관심을 갖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야말로 최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건강하지 못하면 노후생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준비된 노후자산은 조금 부족해도 몸이 건강하면 긴 노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산의 품질이 아닌 몸의 건강품질을 높이는 소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건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지 모른다. 건강을 통해 더 젊게 살고, 더 즐겁게 살며, 더 행복하게 사는 궁극적 가치에 한발 다가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먹고, 건강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야말로 나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Clean & Dress up 소비에 인색하지 말라 몇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퇴직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70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은 다운타운에 방 여럿 딸린 자택을 소유한 나름 성공한 중산층이다. 비록 아내와 사별했지만 자녀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독립했고, 취미로 요가나 화초 재배를 하며, 가끔 손자 재롱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은퇴세대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은퇴세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 옷매무새 하나도 빈틈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한 시니어다. 옷차림새뿐만 아니다.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한다(Clean up).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은 CEO뿐만 아니라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액티브시니어들도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옷은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라며 집에서도 외출할 때도 늘 입는 아웃도어 복장은 아닌지 살펴보라. 이왕이면 깔끔하게 잘 갖춰 입고(Dress Up) 다니자.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반듯하게 차려 입은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손주들도 좋은 향기가 나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잘 차려 입은 옷은 자신감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Clean & Dress Up 소비’에 절대 인색하지 말자.
- 2017-09-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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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7월 포도밭에서 열리는 음악콘서트, 국내에도 유명
- 미국산 백색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의 대표 브랜드로 웬티가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서 샤도네이 포도 묘목을 들여와 와인주조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팀과 협력해 미국 토양에 맞게 개량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미국 곳곳의 포도밭에 전수한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꾸준히 운영해온 웬티 빈야드의 4대째 주인 에릭 웬티(Eric Wente·67)를 수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일본을 들러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리버모어 계곡에 자리 잡은 지 134년째. 한 번도 주인 바뀐 적 없이 웬티 창업자 가족의 4대와 5대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포도밭이다. 미국 서부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나파 밸리 지역의 파 니엔테(Far Niente) 와이너리가 아기자기한 맛의 아름다운 포도밭이라면, 웬티 빈야드는 영지 내 호주의 프로골퍼 그렉 노먼이 설계한 골프장도 갖고 있는 호방한 느낌의 포도밭이다. 작년 미국 와인 작황은 어떠했나. 2015년이 어려운 해였다면 작년 작황은 2013~ 2014년도 평균치로 회복되었다. 날씨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유럽에 비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와인 작황은 좋은 편이다. 웬티 와이너리의 해외 사업은 어떤가. 현재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와인을 판매하는 데 걸림돌이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략 미국인 20% 정도가 통상적으로 와인을 마신다고 보면 된다. 외국 가운데 웬티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캐나다이고 한국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와인시장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하던 TPP(환태평양파트너십 협정)나 유럽과 미국 간에 논의 중인 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 협정) 등을 통해 해외 시장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TPP 파기 결정은 너무 안타깝다. 비행기 안에서도 웬티 와인을 만난 기억이 있는데. 마케팅 덕분인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인지 많은 항공사에서 우리 와인을 찾고 있다. 캐세이퍼시픽,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등에 납품하고 있다. 4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좋은 점이 있나. 아들과 딸이 와인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니 이미 5대째 경영인 셈이다. 손자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에 따라 머지않아 6대째 경영이 가능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가족들은 대부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우리는 3대가 이래저래 사업으로 얽혀 있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감사할 따름이다. 포도 수확과 와인 제조에 새로운 기술을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바로 포도압축 공정을 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포도를 수확해 처리공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두 시간을 단축해 15분 만에 현장에서 처리한다. 신선도와 온도 유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다른 하나는 야간에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저녁에는 매우 선선해 밤 10시경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 되었을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 야간작업 시간을 조정한다.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도의 품질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도 재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햇볕과 물인데, 물 관리에도 새로운 기술력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새크라멘토 강에서 수로를 따라 물을 공급하는데 마침 우리 포도밭에는 골프장도 있어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 방안을 늘 강구하고 있다. 일례로 적외선 공중촬영을 통해 포도밭과 골프장의 모든 블록에 균등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센서 장치를 설치하고 연중 온도와 수분공급량을 측정하여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 운용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웬티 빈야드의 샤도네이는 미국뿐 아니라 유렵 지역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풍미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 샤도네이는 미국식, 유럽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웬티식 고유한 맛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만큼 대대로 품질 관리에 신경 써왔다고 자부한다. 곧 여름이 오는데 포도밭에서 열리는 음악콘서트 자랑 좀 해보시라. 벌써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10여 차례 콘서트가 열린다. 주로 재즈나 대중음악인데 야외에 무대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개최한다. 제임스 테일러, 쉐릴 크로, 링고 스타, 윌리엄 넬슨 등 유명 연주가들이 참여한 바 있다. 얘기 나온 김에 ‘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포도밭 안에 상주하는 전문가의 감독 아래 유기농 채소밭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한 야채들을 식탁에 바로 올리고 있다. ‘더 레스토랑’의 명성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2016년 JTBC 예능 프로그램 샌프란시스코 원정 편에 소개된 바 있다. 에릭은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했다. 아들과 딸도 각각 스탠포드,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부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와이너리 운영은 영락없이 농부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주잡은 농부 에릭의 두툼한 손이 믿음직했다.
- 2017-06-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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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 잘 키우면 노후가 행복해져요”
- 교육 좀 안다는 사람에게 전혜성(全惠星·88)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24년간 예일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4남 2녀를 모두 명문대에 입학시킴으로써 자녀교육의 전설적인 대가로 일찌감치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때 화제가 됐던 그녀의 자식들은 지금 교수 또는 미국 정부 차관보로 지내는 등 사회의 최고 엘리트로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교육에 있어 현역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와중에 한국을 찾은 전혜성 박사에게서 특별한 교육철학과 인생의 보람에 대해 들어봤다. 무려 24년 동안 예일대학교 교수를 지낸 전혜성 박사는 그녀 자신의 커리어도 커리어이지만 무엇보다도 자녀교육의 대가로 유명하다. 큰딸 고경신씨는 중앙대 화학과 교수였으며, 장남 경주씨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건후생부 장관을 지냈다. 2남 동주씨는 매사추세츠 주립대 의대 교수이며, 3남 홍주씨는 미국 연방정부 국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차녀인 경은씨도 예일대 법대 교수이며 4남인 정주씨는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야말로 일일이 경력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미국 이민자 가정이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엘리트들을 키운 그녀의 자녀교육 철학은 수많은 부모들에게 귀중한 영감이 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그녀는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이자 세계적인 사회학자로서 ‘교육의 대모’로 불리며 그녀의 자녀교육법은 오바마 정부의 교육부에 의해 아시아계 미국인 가정교육의 성공사례로 연구됐다. 골든 에이지, 전혜성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 전 박사는 주미대사관 공사를 역임한 남편 고광림 박사(1989년 작고)와 함께 동암문화연구소(ERI)를 설립,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미 문화교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1972년), (1982년), (1996년), (2006년), (2010년), (2012년)가 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계속 만들어진 책들은 그녀가 자신을 꾸준하게 단련하는 학자임을 우회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녀의 공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녀가 입주한 실버타운은 미국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곳으로 총장급을 비롯한 교수 사회의 지식인층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곳에선 사회에서 은퇴했지만 인생에서는 은퇴하지 않은 시니어들이 살아가고 있다. “실버타운에 입주했을 때 미국 사회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짐도 풀기 전에 한 할머니가 저에게 한국 문화에 관해 강의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자기가 어시스턴트를 해주겠다고. 알고 보니 헌법 교수였어요.” 그녀가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니 첫 강의에 34명이 등록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일은 34명 중 70%는 그녀가 아는 사람이거나 지인 또는 자녀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실버타운 사람들은 그날 아침 를 읽지 않으면 저녁을 먹으러 나가지 않을 정도로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 책 한 챕터는 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갸륵한 라이프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한국 문화 강의를 요청했던 헌법 교수는 겨울에 나가서 깡통을 집어와요. 그걸 팔아서 번 돈을 기증하기 위해서죠. 항상 남루한 옷만 입고 다니는 그녀가 한번은 화려한 옷을 입었길래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니 중고장터에서 산 옷이라고 하더군요. 가족의 백그라운드가 하버드대 교수들로 이뤄진 집안의 딸이 청빈을 유지하며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거죠.” 휘트니 센터라고 불리는 이 실버타운에는 동아리가 19개가 있다. 음식에서부터 강의 커뮤니티 등등. 전 박사는 계속 배우고 누릴 수 있는 삶이 만족스러워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며 실버타운 생활은 기대 이상이라 했다. “그런데 서울에 왔을 때 실버타운을 가보니 제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과는 너무나도 운영 시스템이 달랐어요. 한국은 사우나와 골프장이 몇 개씩 있지만 호사만 시키는 거지, 사회에 기여를 해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은 없더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나이 들었다고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며 미국에는 이처럼 독립적으로 시니어들이 자랑스럽게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했다. 열정적이되 지치지 않게 평생을 공부하는 사람답게, 전 박사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16세 때부터 마음먹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해방 후에 감옥에서 우국지사들이 나와서 정치를 했는데, 정책적인 아이디어가 너무 없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한국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싶었죠. 그걸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인 고황경 박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했지만, 결혼을 안 하니 주변에서 인정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한국에서 인정받으려면 혼인하고 아이를 낳은 후 박사 학위를 가져야겠구나 하고 결심하게 됐어요.” 이화여대 영문과 2학년을 마치고 미국 유학에 나섰고, 22세가 되던 해에 결혼한 그녀는 고광림 박사와 하버드대에서 최초로 한국학 과정을 신설했다. 사회 참여적 인물로서 그녀의 의지는 그만큼 확고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준비되고 예상한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전 박사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유교사상이 너무 강한 집안이었어요. 고단했고 할 일도 많았고…. 집을 나가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녔죠. 그런데 내가 선택한 것이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극복했어요. 더구나 내가 명색이 비교문화 사회구조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싶었고(웃음).” 부모는 행동과 실천으로 아이를 설득해야 고통스러웠던 결혼생활 끝에, 전 박사는 ‘이런 도전을 주신 것은 하느님이 필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바깥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스트레스가 사라지더군요. 그리고 사람을 바꾸는 건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들을 잘 키워서 며느리들은 편하게 해주자 싶었죠(웃음).”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도 일어났다. “아이들은 서양식으로 자랐으니까, 아버지에게 여기가 미국인데 왜 한국식으로 사시냐고 따지는 일도 일어났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난 항상 중간 역할을 하게 됐어요. 나중에 남편이 없을 때 자식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 내가 남편 역할을 하기도 했죠.” 전 박사는 본의 아니게 남편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자녀교육에서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밸런스였다. “부모 중 한 사람만이 아이를 키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닦달하고, 쉬게 하고, 사랑도 하고 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부 두 사람이 공동 목적이 서면 역할 교환이 잘되더군요.” 대를 이어가는 자녀교육 철학 전 박사는 부모의 역할 모델이 가장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간단히 말하면 “공부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녀는 말이나 기계적인 지식의 한계를 알고 있었고 지극히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의 중요성을 믿고 있었다. “말의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말로 하면 23%가 전달되고,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면 100% 전달됩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한 거지요. 자녀교육의 핵심은 부모가 열심히, 성실하게, 그리고 봉사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가정 내에서 의사소통이 계속 이뤄질 수 있도록 아침식사를 늘 같이하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꾸준히 귀 기울였어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우리가 모르는 걸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하나하나를 한 명의 성인으로 보고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가족 공동의 목적을 세워 그걸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방법이 좋겠죠.” 사실 전 박사의 삶의 저변에도 부모님의 존재가 두텁게 드리워져 있다. “어머니는 과거부터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아무리 똑똑해도 덕망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사실 제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약속한 걸 성취하려고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 자신도 부모님의 성공적인 자녀 교육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녀교육의 철학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부모가 삶의 목적을 먼저 세워라 미국 최고 대학의 교수이자 여섯 남매의 어머니, 그리고 엄격한 유교 집안의 며느리로 살아야 했던 전 박사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삶에서 ‘일과 가족’은 새의 두 날개와 같다고 말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와 가족을 한데 묶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좋은 아내, 현명한 엄마라면 사회에 대해 그만큼 알아야 하며 일과 가족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쉽지 않은 모든 것들을 겪어내면서 어떻게 자신에 대한 힐링을 했는지 물어봤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한 일인데 그 일이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이 돼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에게 다시 찾아오는 일이 있어요. 정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오죠. 그게 제 자부심을 높여줍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 후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그녀가 말하는 가치 있는 삶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삶의 목적이 뚜렷하고, 자식들과 대화할 수 있는 부모가 되면 아이들이 잘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의 삶의 모범이 되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따라온다는 것이다. 성공보다는 성취에 목적을 두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이 정립되면 부모와 아이들 인생 모두는 성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자식을 잘 키우면 노후가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다. 장수가 악몽이 되는 노후파산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다양한 사회 지표는 우리 사회에 노후파산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을 꿈꿀 수 있지만 아무나 행복수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 교육이든 노후 문제이든 일생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삶을 설계해야 한다는 전 박사의 조언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서울에 왔을 때 실버타운을 가보니 제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과는 너무나도 운영 시스템이 달랐어요. 한국은 사우나와 골프장이 몇 개씩 있지만 호사만 시키는 거지, 사회에 기여를 해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프로그램은 없더군요 신라호텔 룸에서 만난 백발의 전혜성 박사는 다리만 빼고 다 건강하다고 말한다. 한국과 비교해서 실버타운 생활을 얘기하던 중에 그녀는 “오래 사는 것보다 보람 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며 “자녀 교육 못지않게 부모의 노후 대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 2017-04-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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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단카이 세대의 취미
-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정년퇴직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며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욕과 체력이 따라주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의 씨’를 뿌려두는 게 중요하다.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젊었을 때 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러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의욕도 체력도 아니고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이자 타이밍’이니 남은 삶에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재미’와 ‘보람’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의 ‘애호가’일 것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취미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주식, 등산, 워킹, 낚시, 독서, 자수, 골프, 볼링, 시쓰기, 체스, 데생, 원예, 역사, 장기, 분재, 서예, 유화, 과자만들기, 수묵화, 시계수집, 게이트볼, 꽃꽂이 등을 꼽는다. 크게 몸을 움직이는 취미, 머리를 쓰는 취미, 손동작이 필요한 취미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러한 취미는 운동 부족을 해소해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또한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넓혀주고 쓸쓸한 노후의 고독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60대 남녀의 인기 취미 순위 350개 이상의 취미를 소개하는 일본의 ‘취미찾기닷컴’이 조사한 인기 순위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60대 남성은 혼자 하는 여행, 사이클링, 오토바이, 재택근무, 사진, 전자공작(PIC), 절과 신사 순례, 주식, 워킹 순으로 조사됐다. 60대 여성의 경우는 혼자 하는 여행, 재택근무, 온천 순례, 절과 신사 순례, 워킹, 자수, 양궁, 등산, 심리학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50대 남성의 취미로 사격, 50대 여성의 취미로 소설쓰기, 기타, 퍼즐 맞추기 등이 눈에 띄었다. 내 꿈을 찾아라~ 인생은 60부터 일본의 주쿄(中京) TV는 매주 일요일 아침 5시 45분부터 을 방송하고 있다. ‘아라칸’은 Around Kanreki의 줄임말로 칸레키는 우리말로 환갑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갑 전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꿈에 도전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힌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소개된 이색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2015년 12월 6일 방송에서는 빙상 위의 컬링(curling)이 아닌 날씨와 관계없이 체육관에서 즐길 수 있는 ‘커롤링(curolling)’이 소개됐다. 20여 년 전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래 경기 인구 40만 명을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로 체력보다는 두뇌게임이라는 점에서 ‘마루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2016년 1월 10일에는 미술 취미로 ‘어탁(魚拓)’이 소개됐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어탁’은 기존의 수묵(水墨) 중심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되며 모든 사물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만드는 ‘탁화(拓畵)’라는 장르가 새롭게 소개됐다. 그다음 주인 1월 17일에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차려입고 컨트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컨트리 댄스가, 3월 13일에는 1960~1970년대에 붐이 일어나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던 세대들이 밴드를 결성해 제2의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 4월 17일에는 실제 동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리얼 양털 퀼트 아트가, 8월 7일에는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넥타이를 재활용해 가방과 인형 등을 만드는 리폼이 소개됐다. 이 밖에 9월 4일에는 경이로운 종이접기의 세계, 9월 11일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 하는 미니어처의 세계, 10월 9일에는 종이를 오려내 그림을 만드는 ‘키리에(切り絵)’, 10월 23일에는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 모형 등이 소개됐다. 2017년에 들어와서는 우쿨렐레와 돌하우스(미니어처 장난감 집), 천사의 소리 핸드벨 음악, 볼펜 그림의 세계 등이 전파를 탔다. 이색(異色) 취미보다는 다양한 취미 인구가 많아지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면서 취미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끌던 취미들은 최근 덕후(마니아, 광)들이 등장하며 주류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만큼 취미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역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개척하는 자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에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치매 예방 차원에서 손가락과 뇌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주산, 바둑, 장기, 손글씨, 그림, 색칠하기, 민요, 노래방, 꽃꽂이 등을 권한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도 좋다. 몸 푸는 기분으로 이런 취미는 어떨까? 사단법인 일본 화살불기 레크레이션협회는 폐활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화살불기를 권한다. 실제로 전국의 화살불기 교실에는 60~70대 회원들이 많은데 90세가 넘은 고령자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모으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수집한 물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취미활동을 확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을 하는 사람이 도예 교실을 다니며 직접 만들어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어떨까? 또 인물과 동물, 자연 풍경 등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은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등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들이 많다. 먼저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취미를 선택해보자. 슬슬 발동을 걸어보자 지난 2014년 5월에 구성된 댄스 그룹 ‘TGK48’은 일본 기후 현 다지미 시의 고령자들이 만든 그룹이다. 그룹명은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다지미, 겐키(건강), 고레샤(고령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를 기치로 내걸고 2016년 8월 60대 42명, 70대 21명, 80대 1명 등 총 64명(남성은 5명)으로 구성된 ‘TGK48’은 힙합도 소화하는 본격 댄스 그룹으로 공공시설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연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최근 춤을 잘 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출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강사 레슨비 등 연간 100만엔가량의 운영비는 다지미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비 등의 삭감과 관련해 길게 내다본 다지미 시의 획기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16년 3월 16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TGK48’ 멤버 35명의 체력을 측정한 결과 전 항목에 걸쳐 동세대의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깜빡이는 빛을 보고 도약하는 데 걸리는 ‘전신 반응속도’는 무려 0.3초대로 2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5초간 빠르게 스텝을 밟는 ‘서서 스텝핑’의 평균 횟수도 60대 멤버가 40.1회, 70대 멤버가 37.7회를 기록해 젊은이 못지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이들의 체력을 측정한 기후대학교 교육학부의 가스가 히카루 교수는 “힙합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는 춤으로 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2017-04-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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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골프 전성시대, 올해도 계속될까?
-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박세리가 세계 정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이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투어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해마다 정신력과 기술로 무장한 최강의 여성 골퍼들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며 대회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고, 그에 따라 대중의 관심과 규모 면에서도 확장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더할 나위 없는 한국 여자 프로 골프, 그 전성기가 올해도 계속될까? 우리나라 여성들이 골프 종목에 유독 강한 이유를 두고 별의별 분석들이 언론에 소개돼왔다. “한국 고유의 바느질 전통 덕분에 손끝 감각이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믿고는 싶되 선뜻 믿어지지 않는 분석이 등장하기도 했다(근거가 될 만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희생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의 열정적 지원 덕분”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왜 하필 골프인가?”에 대한 대답이 되기는 어렵고 근거의 계량화가 어렵다는 난점도 도사리고 있지만 신뢰할 만한(또는 신뢰하고 싶은) 분석이다. 실력과 성적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KLPGA 주최로 매년 치러지는 일련의 대회들, 이른바 KLPGA 투어의 인기는 가히 절정이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다인 32개 대회가 개최됐고 총상금도 역사상 처음으로 200억원을 돌파했다(총 212억원). 그 결과 KLPGA 투어는 출범 38년 만에 상금 규모 면에서 유럽 투어를 제치고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여자프로골프 3대 투어로 손꼽히게 됐다. 2017년 시즌에도 기세는 여전하다. 31개 대회가 치러질 예정이어서 지난 시즌보다 한 개가 줄어들었지만 평균 상금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평균 상금은 지난 시즌보다 1000만원 늘어난 약 6억7000만원이며, 총상금은 209억원).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최근의 국내 경제사정을 감안하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셈이다. 그 이유로는 역시 투어 전체의 높은 수준을 들 수 있다. 그동안 KLPGA 투어에는 세계 정상급 수준의 스타들이 꾸준히 참여해왔다. 국내 투어의 일인자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 진출한 뒤 하나같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 현재 LPGA 랭킹을 살펴보면 전인지(4위), 류소연(5위), 장하나(6위), 박인비(9위), 김세영(10위) 등이 톱 10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국내 투어를 발판으로 세계에 진출한 스타들. 여기에 지난해 국내 투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박성현은 올해 LPGA에 진출하자마자 11위에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상위권 선수들만이 아니다. 중하위권 골퍼들조차도 높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KLPGA 투어에서는 특정 선수가 대회를 ‘싹쓸이’하는 독주 현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현재 국내 투어가 애국심에 따른 의무감 없이도 ‘흔쾌히 관람할 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대회 수준이 높아지면 기업들의 지원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마련. KLPGA 투어 스폰서들의 만족도 역시 다른 어떤 프로 스포츠보다 높다. 지난 시즌에는 불경기임에도 4개 대회가 새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그런 지원들이 지속적이라는 사실 또한 KLPGA 투어가 자랑할 만한 점. 올해 치러질 31개 대회 가운데 12개 대회가 10년 이상 꾸준히 개최돼왔으며, 5년 이상 열리는 대회로 범위를 넓히면 숫자는 20개 대회로 대폭 늘어난다. 2010년 당시 10년 이상 개최된 대회가 3개, 5년 이상 개최 대회가 9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지속적으로 대회를 개최하는 스폰서가 크게 늘어났다. 국내외 기업들이 투어에 꾸준히 투자하는 까닭은 달리 없다. KLPGA 투어가 스폰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최고의 스포츠 마케팅 수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어가 일취월장하는 이유로 협회의 효과적인 운영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KLPGA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수 선수들의 해외 유출 문제’에 대해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 올 시즌만 해도 ‘한화금융 클래식’이 메이저 대회로 치러진다. 이로써 KLPGA 투어의 메이저 대회는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이수그룹 KLPGA 챔피언십’, ‘KB금융 스타 챔피언십’,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 ‘한화금융 클래식’까지 더해져 총 5개가 됐다. 메이저 대회의 확대가 ‘스타 유출 현상’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은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회 규모와 관심이 큰 만큼 우수한 선수들이 국내 투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질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KLPGA는 국외 투어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회를 확대하고 있다. 올해도 ‘더 퀸즈 presented by 코와’를 포함해 5개의 해외 공동 주관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선수 특별 추천 인원을 확대해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등 아시아 골프 허브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덕분에 2015년의 인터내셔널 퀼리파잉 토너먼트 참가 선수는 8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참가 선수가 20명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투어가 외국 선수들에 개방됐을 때 장점은 하나둘이 아니다. ‘투어 수준의 향상’과 ‘참가 선수층의 다양화’는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효과. KLPGA 강춘자 수석 부회장은 “KLPGA는 혼란스러운 국정과 대외적인 불확실성, 다양한 변수로 스포츠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많은 스폰서가 국내 여자 골프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아, 일정 및 날짜를 고려해 최다 대회와 최적의 스케줄로 2017년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스폰서와 선수, 그리고 골프 팬들 모두가 만족하는 대회를 개최하고 운영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해마다 톱스타들이 더 큰 무대인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KLPGA 투어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스타가 그 자리를 메워왔다. 2015년에는 김효주의 빈자리를 전인지가 메웠고, 전인지가 떠난 뒤에는 박성현이 높은 경기력을 바탕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팬들의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그로써 투어의 경제 사정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좋은 기량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여기에 상업 규모까지 갖춰지는 ‘프로 스포츠의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자 프로 골프의 앞날은 여전히 밝다.
- 2017-03-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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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으로 살까? PART2] 시니어타운 부부 “커뮤니티가 건강한 삶을 만들어요”
- 시니어타운 하면 우리가 흔히 갖는 선입견이 있다. 바로 ‘돈이 많이 든다’, ‘나이든 사람들만 있어서 지루하다’는 것이다. 1947년생 윤규성 전 조흥은행 상무와 그의 아내인 1950년생 장진 도자기 작가는 삼성노블카운티에 입주해 살고 있다. 시니어타운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던 이들 부부가 시니어타운으로 들어가 살면서 느낀 감정은 ‘매우 만족한다’였다.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 걸까? 금융계에 청춘을 바쳤던 윤규성 전 조흥은행 상무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시니어타운에 대해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그가 시니어타운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하게 된 궁극적 이유는 무엇일까? “집사람 친구가 먼저 와서 좋다, 한번 와보라고 추천했어요. 움직이기 전에 정서적인 면, 생활 반경, 재정상태 확인 등을 했죠. 아내가 좋다는데 못할 게 무어냐 싶어 결정하게 됐어요. 그런 후에 직접 와보니 생각을 바꾸게 만들더군요.” 삼성노블카운티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자연 속에 있으면서 내부에 스포츠센터, 문화센터 등이 부족함 없이 다 갖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비로소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거죠. 뭐든 배우고 싶은 걸 맘대로 배울 수 있고 운동도 맘대로 할 수 있고. 이런 곳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싶어요.” 다양한 친구를 사귀기 좋은 곳 윤규성씨는 인터뷰 내내 굉장히 만족한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의 호의적인 반응에는 시설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만족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만남이 직장 친구, 학교 친구 등 폭이 좁았어요. 여기 오니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해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 분야에서 뚜렷한 획을 그은 사람, 일가를 이뤄 성공한 분, 300억 기부자 등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산 사람들이죠. 대학교수, 공직자, 변호사, 기업인 등등. 그렇다 보니 새로운 관계 속에서 대화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어요.” 봉사활동의 기회도 발견할 수 있었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는데 여기 오니 그런 기회가 많았어요. 파파합창단이 있는데, 외부 발렌티어가 와서 지도와 지휘를 합니다. 그리고 소년원, 노인대학 등에 위문을 가고 있죠.” 그는 시니어타운에서의 행복한 삶이란 바쁘고 화려한 삶이 아니라 사소한 자유를 맘껏 누리는 조용한 삶이라고 설명했다. 운동, 취미,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들 이들 부부는 서초동에서 10년, 방배동에서 30년을 살았다. 그가 오랫동안 누린 주거문화와 시니어타운의 문화는 전혀 다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생활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각종 기반 프로그램과 시설 그리고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봉사 기회도 많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나이를 먹을수록 운동과 취미활동이 매우 중요한데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어요. 시설과 시간, 여건 모두가 제공되는 셈입니다.” 그는 삼성노블카운티에 입주하면서 골프를 끊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로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골프를 다 끊고 있다고 해요. 운동한 만큼 효과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으로 이사 온 뒤 배드민턴을 배웠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이 가르쳐주고 파트너가 돼주고 있어요.” 윤규성씨는 시니어타운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그러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너무 많다, 양로원이다. 그렇게들 말하죠. 그런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그 사람들을 보며 나의 10년 후 20년 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그래서 저는 60대 후반쯤, 좀 더 젊을 때 입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여유 아내 장진씨는 덜 늙어가도록 꼼꼼하게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오페라 강좌 등 문화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우선 생각나는 장점으로 들었다. 부부는 아침을 먹고 나면 각자의 생활에 집중한다. 특히 도자기 작가인 장씨는 곤지암 작업실로 가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부부가 각자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되는 것이다. 윤씨의 말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이 사람(장진씨)이 나가면 내가 알아서 점심도 사먹고 극장도 가고 그러면서 지내요. 하루가 자유로워요. 영통역 근처에도 오가고. 이런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즐거움이죠. 서로의 독립적인 면을 인정하며 살아야죠. 보금자리는 하나여도 각자의 생활을 누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씨는 자신이 하고 싶을 때 작품전을 열 생각이라고 밝혔다. 젊었을 때 열심히 살았으므로 이제는 건강을 챙기며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게 그녀의 목표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함께 운동도 열심히 한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항상 운동을 합니다. 아내는 필라테스를 해요. 점심을 먹은 후에는 문화 강좌를 듣고 저녁식사 후에는 같이 걸어요.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기본적으로 운동을 하는 셈이죠.” “이곳으로 부인을 데려온 남편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에요” 인터뷰를 하는데 부부의 얼굴이 둘 다 굉장히 밝다.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건강이죠. 그리고 행복은 현실 속에서 자기 마음으로 만들어야지, 여건으로 만들려고 하면 안 돼요. 올라가면 또 언덕이 있을 테니까.” 부부가 서로 의리를 지키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었다. 우선 장씨의 대답. “신뢰, 믿음.” 그리고 윤씨의 대답. “난 없어(웃음). 흘러가는 대로 살아요.” 대답처럼, 윤씨의 기질은 꾸미는 것을 싫어해 자연 그대로를 추구하며 사는 듯 보였다. 그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털어놨다. “아내가 젊었을 때 가족 때문에 빼앗겼던 시간을 더 늦기 전에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아이들 챙기는 것은 물론 가족들 수발 다 들며 살았죠. 그만큼 자기완성의 길이 멀어졌어요. 이제 자손들과 헤어지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거예요.” 윤씨의 말에 장씨는 “(시니어타운에) 부인을 데려온 남편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에요”라는 말로 맞장구를 쳤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오세요” 시니어타운 추천에 대해 장씨는 윤씨와 비슷한 말을 한다. “실제로 살아보니 들어와서 사는 게 생활비가 더 절약돼요. 그래서 며느리 둘에게 육십 지나면 여기 와서 살라고 추천했죠. 그랬더니 첫째 며느리가 자기가 봐도 그렇게 보인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입주를 고민했을 때와 입주 후의 자식들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다들 좋아해요. 상의해서 오게 된 건 아닌데 걔네들은 마음이 편안해졌겠죠. 부담을 덜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보완했으면 하는 점은 없냐고 물었다. 우선 장씨의 대답. “셔틀버스가 있는데 지금보다 운행을 좀 더 자주 하면 좋겠어요.” 윤씨는 사업적인 부분과 연결시켜 신선한 제안을 했다. “해외 시니어타운과 체인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태국, 하와이, 일본에 가면 노블카운티와 자매 계약을 맺은 곳이 있어 갈 수 있으면 좋겠고, 그 나라에서도 올 수 있는 그런 연결망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센터를 이용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익힐 수도 있겠죠.” 윤씨와 장씨는 시니어타운 입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오래 망설이지 말라고 한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오세요. 건강할 때 와야 합니다. 건강할 때 와야 여기 있는 서비스들을 마음껏 즐기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오면 그 좋은 시설들, 문화 관련 프로그램, 운동센터 등이 무용지물이에요. 이 좋은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 2017-01-0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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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란법 시행, 물줄기를 바로 잡아라
- 기대와 우려를 안고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확 바뀌었다” 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통 끝에 새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많은 시민은 연줄문화에서 개인문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실개천까지 뒤져서 송사리를 잡아서야 되겠는가? 세상에 공짜 없다 수사대상 공직자가 있는가 하면, 제자에게 음료수 하나 받아든 교수도 신고 되었다. 골프장 예약이 무더기 취소되고,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하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접대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은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지갑을 닫았다. 예식장·장례식장을 꽉 채웠던 꽃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김영란법이 몰고 온 폭풍과 같은 변화다. 그러나 실개천까지 품어대는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겉모양이다. 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금품수수를 금지한다. 이 법을 제안하였던 김영란 교수도 공직자의 ‘청탁거절법’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3·5·10제 접대한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인심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에도 이런 것으로 문제되거나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강물을 더럽히다가 줄줄이 엮이는 큰 물고기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새 발의 피일뿐이다. 국가개혁을 위하여 ‘세상에 공짜 없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의식개조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있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거래에는 항상 계산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다가 공짜함정에 빠져든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각자내기가 살길이다 각자내기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생활화 되었다. 젊은이들도 각자계산을 당연시하고 실천한다. 은퇴자들은 ‘만원의 행복’을 즐기고 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이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는 소식이 왜 뉴스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시·도지사도 조찬 회동에서 예외 없이 각자내기는 당연하지 않는가? 기자들에게 더는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계 풍경도 달라졌다. 음료수를 비롯해 교사에게 건네려고 가지고 온 선물을 잠시 넣어뒀다가 다시 가져가라는 취지의 물품보관함이 학교에 설치됐다. 담임교사에게 커피나 빵을 대접하는 것도 불법인 바에야 차라리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사회 전체의 권위주의적 조직문화가 청산돼야 김영란법이 정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법도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의 늪에 빠지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갑옷부터 벗어야 한다. 누구도 영원한 갑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갑과 을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이 세상사다. 을이라는 반대 입장을 생각하고 실천하면 이 법은 성공하리라 믿는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 문화’에서 선물은 미풍양속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끈끈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해 과도하게 주고받고, 접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문화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낳거나 준법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곤 했다. 우리사회의 유별난 학연·지연·혈연 등 연줄문화가 빚은 부정청탁 만연도 문제였다.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합의 속에 태어난 것이 이 법이다. 세상을 확 바꿀 이 법의 시행초기부터 물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
- 2016-10-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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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김성철 교수
-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성공한 덕후(마니아)’ 같다고. 다른 분야가 아닌 ‘불교 덕후’. 그러자 웃으며 그가 화답했다. “맞아요. 덕후는 나쁜 표현이 아니에요. 결국 한 분야에 능통하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미래를 주도하며 세상을 바꿀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를 덕후라 말하고 있는 그는 바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이자 치과의사이기도 한 김성철(金星喆·58) 교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들었어? 남일이가 죽었대. 숙명여고 애들이랑 대성리에 갔잖아. 물에서 못 나왔대.” 서울고등학교 1학년 학생 김성철은 친구의 죽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남일이와 같은 미술반이었던 그 역시 그곳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학교 클럽과의 비공식적인 교류는 학교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저 혼나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에. 처음엔 무덤덤했다. 그저 교실에 빈자리 하나만 눈에 띌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사고로 인해 그해 여름방학에 떠난 학교 해양훈련은 엄격해졌다. 선생님들은 안전사고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엄하게 감시를 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모처럼 신나고 재미있어야 할 행사가 힘들기만 한 것이 죽은 남일이 때문은 아니냐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어린 김성철은 조금씩 죽음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고. 김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의 병’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무작정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사춘기 소년이었으니까. 알베르 카뮈의 이나 장 폴 사르트르의 와 같은 실존주의 문학 작품들이었죠. 또 엠마누엘 칸트의 같은 철학책들도 있었어요. 뜻도 잘 모르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사실 미술반에 들어갔던 것은 화가가 되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화가를 꿈꾸는 모든 소년,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가족에게 그 꿈을 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치열한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놀고먹는’ 예술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좋은 학교에 어려운 시험을 거쳐 들어간 우등생이었기에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고3이 된 김성철 학생은 이과인 전공에 미술이라는 취미를 덧대려면 건축학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건축이라면 그림에 소질 있는 손재주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손재주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선생님이 추천한 것은 ‘치과대학’이었다. 그 추천에 반감이나 저항은 없었다. 무엇보다 치과의사가 되면 근무시간이 짧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치과를 하는 친구는 늦게 출근해서 오후 일찍 퇴근한데, 그리고 골프 치러 간다더라”라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실컷 그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큰 고민 없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치과대에 입학해서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그림에 관심 있었던 친구들과 함께 아틀리에를 차렸어요. 대학 입학 후 우리가 다니던 화실에 매달 내는 돈만 모아도 월세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2년을 열심히 그렸어요. 학교가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해서, 전공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서대문구 북아현동까지 4번을 옮겨 다녔어요.” 마음의 병에 해답을 얻다 김 교수는 그 와중에서 가슴 한편에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바로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이다. 밀교사상과 선종 사상을 설한 대승경전으로, 그는 이 경전을 읽다 죽음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고. “책에서 변치 않고 죽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는 파사익(波斯匿)왕의질문에 부처는 이렇게 대답해요. 저 흐르는 강의 모습이 어릴 때와 지금이나 차이가 없듯, 그대 역시 외모는 바뀌었지만 보는 성품은 그대로라고. 원래의 나는 멸(滅)함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하나의 깨달음과 함께 불교 교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불교에 관한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의 ‘덕후’적인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 출판된 불교 관련 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니 불교에 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 단 한 곳뿐이었다. 불교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동국대학교 도서관. 그 도서관을 편하게 들락날락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동국대학교 학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불교연구원을 설립한 이기영(李箕永) 교수의 강의를 청강까지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교수가 있었던 인도철학과였다. “치대에서 만난 아내는 처음에 이해를 못했어요. 책 때문에 대학원에 가다니. 그것도 치과의사가 인도철학과에 말이죠. 그래도 2년만 기다리면, 그 이후에는 마음껏 도서관을 다닐 수 있으니 참아 달라고 부탁했죠. 처음엔 학부 출신 학생들에 비해 많이 모자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별 차이가 나진 않았어요. 알고 보니 제가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불교학과 학부생들의 교과서였어요.” 그렇게 대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불교라는 학문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내는 이번에는 선선히 응해줬다.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당시엔 이미 치과를 차려 개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치과의사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번역서 통해 불교학계에서 ‘주목’받다 그가 불교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번역해 1993년에 발표한 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은 나가르주나(중국에서는 용수(龍樹)라 불림)라는 1800년 전에 활동한 인도의 고승이 쓴 책으로, 나가르주나가 쓴 책들은 대승불교의 뿌리가 된다. 은 인도철학, 불교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그동안 이 책은 제대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었다. 그가 번역하기 전까지. “일반 불교학과는 일본어 정도만 할 줄 알면 됐지만, 인도철학과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까지 할 줄 알아야 했어요. 영어는 기본이고.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언어를 익히는 것을 잘해서, 그간 번역이 안 된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불교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원전을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다른 학자들이 원전과 비교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해놓았죠.” 어쩌면 이 선택도 가장 ‘덕후’다운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동안 국내의 많은 불교학자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현직 치과의사가 이뤘다는 점에서 불교계는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5년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을 체계화한 개론서인 을 번역해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인도의 불교학자 무르띠(Murti)가 영어로 저술한 책이다. 그리고 내놓은 세 번째 책 으로 학계의 찬사를 받게 된다. 은 중론을 쓴 나가르주나가 에 대한 비판을 반박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티베트역본, 한역본이 남아 있는데, 김 교수는 이 3가지 언어를 각각 우리말로 번역해 정확한 뜻과 번역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후학을 위한 문법적 해설도 잊지 않았다. 3가지 책에 대한 번역이 끝나 있을 때, 그는 이미 불교학계에서 ‘불교에 관심 있는 치과의사’가 아닌 ‘불교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치과 폐업하고 대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그가 준비한 것은, 치과를 쉬고 인도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불교 발상지에 가서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은 학문적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불교학에 대한 욕심’을 멈추게 만든 것은 가족도 치과도 아니었다. 바로 동국대학교였다. “제가 전공한 공(空)사상 분야의 전공교수님이 건강이 나빠져 퇴직하셨다면서, 그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이 왔어요. 사실 그 분야는 논리학과 수학이 바탕이 되어야 해서, 일반 불교학자들 중에도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인연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물론 치과는 그만뒀고. 단지 강의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치과의사로, 그리고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주저함은 없었어요.” 공사상은 의 ‘색즉시공’을 떠올리면 쉽다.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이나 의식이 이와 같다는 뜻이다. 흔히 공(空)을 무(無)와 혼동하기 쉬운데,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흔히 우리가 살면서 큰방, 작은방 이런 표현을 하죠. 하지만 어떤 방을 보고 큰방이라고 부를 땐 이미 우리 기준엔 비교할 수 있는 방이 들어서 있는 거예요. 그런 이분법적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죠. 게다가 요즘의 승자가 독식하는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더욱 부추겨 우리 삶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늘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삶 말이에요. 이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경제 원리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행정과 교육, 문화에까지 도입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 같은 프로그램을 보세요. 예술을 도구로 경쟁하고 있잖아요. 그 프로그램을 통한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죠. 결국 크게 소리 지르며, 성량이 큰 사람이 이기는 구도로 변질되잖아요. 노래라는 예술이 큰소리를 내는 시합이 아닌데, 경쟁을 통하다 보니 결국 획일화되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가장 외면 받고 있는 세대 중 하나가 바로 시니어들이다. 육체적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성과주의로 인해 설 곳을 잃고 사회적 수명은 짧아졌다. 그들에게 김 교수는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도 나름의 노력과 수행이 더해진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타적인 삶을 사세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데,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일종의 종족 보전 본능이에요. 나라는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동족을 보존하면서 그 욕구가 충족되는 셈이죠. 거기에 수행을 통해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제2의 삶을 살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머리로 깨닫고, 수행을 통해 마음에서 욕심, 분노, 교만과 같은 번뇌를 지울 수 있다면 가벼워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빈자리 채워가며 기여하고파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국 불교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번역서들을 내놓으면서 기여했던 것처럼. 그가 2014년에 내놓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진화생물학, 일반적으로 종교와 대립각을 세운다고 여겨지는 ‘진화론’을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최근 각광받는 뇌과학도 불교적 관점에 분석해냈다. “뇌과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마음’이에요. 뇌파나 뇌의 기능에 대해서 뇌과학자들은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과학적 연구 결과를 모두 포용하면서 마음이나 윤회(輪廻)까지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불교학의 힘이죠.”
- 2016-09-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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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초등하교 전학] (15) 오후 4시는 간식시간
- 아이들이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대강 배꼽 시간에 맞춰진, 아빠를 뺀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다. 엄마의 정성으로 준비하고 있는 집으로 가서 간식을 먹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처음에 왜 4시가 되기 무섭게 그렇게 재미있게 놀다가도 얼른 장난감이나 게임기들을 수선스럽게 정리하고 ‘오쟈마시마시다~(안녕히 계십시오+잘 놀았습니다.+감사합니다가 다 합쳐진 인사말)’를 외치고 황급하게 나가는지 의문이었다. 왜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가는 거지? 이상한데 뭘까? 하는 정도로 갸우뚱하며 지냈다. 일본생활에 적응해 가는 도중에 엄마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이 가면서, 아이들을 귀찮게도 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생각 속에 귀갓길을 신나게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해 놓았을까? 먹는 즐거움을 연상시켜가며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는 정말 괜찮은 방법으로 역시 얄미운 족속들이라며 감탄을 했다. 가족이 이해와 사랑으로 잘 지속되어야 하는 데는 가족단란이 매우 중요하다 했다. 퇴근을 해서 집으로 온 아빠가 샤워를 하고나면 대략 8시 정도가 된단다. 아이들의 발육 상! 또 가족단란을 지키기 위해 다 모이는 저녁식사가 너무 늦어지니 그 전에 간식시간을 만들어서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취지로 정해진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늦게 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없어져 일거양득이 되었단다.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가족이 오붓하게 앉아 서로가 보낸 시간들을 얘기를 나눠가며 의견교환을 한단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혹시 문제가 생길 때는 서로가 도와가며 해결하는 방법도 교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월급이 가까워 오면 각자 그 달에 꼭 필요한 구입품이나 돈의 액수도 부모에게 얘기하고 왜 필요한지 또는 왜 거절하는지 부모 자식 간의 소통도 된단다. 아버지의 월급은 어디 까지나 가족 공동 간에 소용되거나 필요한 것들을 위해 쓰여 지는 가족 서로의 모두의 돈이란다. 오로지 본인에게 필요한 돈은 각자 알바를 해서 벌어서 쓰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실천하는 예로 한 엄마가 골프를 배우고 싶다고 본인이 알바를 해서 그 돈을 버는데 혀를 찼었다. 저녁 식사시간은 가족회의, 소통과 단란 유지를 위해 중요한 시간이라 했다. 그 동네에 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회사 부사장 부인이 20년을 밍크코트를 사고 싶다고 어리광을 부려도 아직도 자긴 못 입고 있는데 한국 엄마들은 하나도 아니고 둘씩도 가지고 있는 걸 안다면서 어떤 요령이 있는 거냐며 가르쳐 달라고 해서 속으론 놀라고 겉으론 “나도 아직 한 개도 없어요~‘ 얼버무리며 웃었던 일이 생각났다. 외국 엄마들은 월급을 소중하게 전 가족을 위해 요긴하게! 잘 꾸려 가는지 전 가족이 체크하는 시간이 있음에 가슴 뜨끔했었다. 가족 사랑을 이뤄가며 치우치지 않게 가정경제를 잘 이끌어 가는 묘안들이 있음에 머리 숙여졌다. 거기엔 벌어오는 남편의 입김이 아주 셌다.
- 2016-09-26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