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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아픈 인연
- 머리를 박박 깎은 녀석들이 1월의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드넓은 논바닥 옆 부대 정문 앞에서 기간병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대열을 이룬다. 불안감을 감추기라도 하듯 허허롭게 웃으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들과 같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열차를 탔다. 눈치껏 빈자리를 찾아 웅크리고 앉았다. 객차 한가운데 분탄 난로 근처가 최상의 자리였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앉으려 하지 않는다. 옷차림새도 다시는 안 입을 요량으로 집에서 가장 남루한 것을 골랐는지 하나같이 꾀죄죄하다. 거지보다 아주 조금 나아 보이는 행색이다. 모두들 잠을 자지 않는다. 열차가 달릴수록 말수들이 확 줄고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어두워질 무렵 논산훈련소 옆 신체검사 대기 막사에 도착했다. 배정을 받고 들어갔는데 미리 도착해 자리를 차지한 전라도 병력이 서울내기는 다마내기라며 자리 양보를 안 했다. 누구도 선뜻 끼어들지 못했다. 눈치껏 틈새를 비집고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체격이 월등히 좋았던 필자가 틈을 비집고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그제야 하나둘 끼어들었다. 하지만 비좁은 막사에 워낙 많은 병력 인원을 집어넣다 보니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모두 옆으로 누워야 잘 수 있었다. 앞 사람 등에 배를 붙이고 자는 소위 칼잠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필자 앞에서 자던 전라도 김제에서 온 녀석은 3일 전에 도착해 신체검사를 다 받았는데도 일찍 훈련소 들어가기 싫다며 뭉그적댔다. 녀석이 필자 손을 잡고 신체검사장을 안내하듯 데리고 다녀 그날 하루에 검사를 다 마칠 수 있었다. 서류도 함께 제출하고 훈련소도 같은 날 들어가게 된 녀석은 군번이 나보다 하나 빠르다고 자기가 고참이라고 우겼다. 그 후 자대 배치가 달라 녀석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져 각자 군대생활을 했다. 그런데 의장대, 병기근무대, 유격대에서 근무하던 중 공수부대 차출을 명령받아 필자가 김포로 간 날 전라도 친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기수로 온 것이다. 군번이 하나 빠르다고 고참이라 우겨댔던 친구는 필자를 보더니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자대 복귀가 원칙이었다. 그 친구는 백마부대로 필자는 유격대로 가야 했다. 그런데 필자 몸에 이상이 생겨 수도육군병원에 입원해 한 달 반을 보냈다. 이후 친구를 만나고 싶어 유격대가 아닌 백마부대 근무를 신청했는데 도착해 보니 녀석이 없었다. 월남 팀에 합류해 오음리 훈련장으로 가버린 상황이었다. 필자도 친구 따라 월남 팀에 지원을 하고 오음리 훈련장으로 갔지만 이미 앞 기수들은 훈련을 마치고 일주일 휴가 중이었다. 결국 친구는 만나지 못했다. 필자가 훈련을 시작한 첫날 그들이 월남으로 출발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이후 필자도 훈련을 마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그런데 몸에 또다시 이상이 생겨 수도육군병원에 재입원하게 되었고 월남 팀에 합류하지 못한 채 자대인 유격대로 되돌아와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교육생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그 친구 이름이 들려왔다. 혹시 동명이인인가 해서 자세히 물으니 전사를 했다는 것이다. 육군본부를 찾아가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비좁은 막사에서 같이 칼잠을 잤던 친구. 얼싸안고 부둥켜안으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던 친구. 그 친구는 지금 필자 곁에 없다.
- 2018-02-0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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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위로의 손
- 사진 촬영을 명령받을 때가 있다. 내 스스로 정한 곳이 아니라,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다녀와야 하는 지역과 대상이 정해질 때다. 프놈펜에서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길이 주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유엔 요원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나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멈추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보트 엔진이 꺼지면 침입자로 오인받아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나를 태운 보트는 두 대의 엔진을 가동하면서 만약을 위해 중간중간 연료를 채워 넣어야 했다. 막무가내인 엔진 소음도 투명한 긴장을 깨진 못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이 얕아지더니 구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한 진동이 일었다. 프놈펜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다. 보트가 바닥을 긁고 있었다. 좁고 얕아진 물길에서 배의 프로펠러는 물이 아니라 모래를 밀어내며 탱크처럼 움직였다. 한동안을 그렇게 가면서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제야 유엔 요원이 들려준 주의사항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엔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엔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마침내 그 고비를 넘기자 거대한 호수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목적지에 닿은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톤네샵 호수는 장관이었다. 두 시간 동안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음으로 피곤해진 귀가 놀랐다. 고요함. 너무 조용해도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귀도 상대적인 감각기관인가보다. 어디 귀뿐인가. 눈과 코가 열렸다. 피부도 긴장해 소름이 돋았다. 호수의 엄청난 크기와 고요 앞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내가 느낀 긴장감과는 아무 상관없이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극적인 반전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오감을 되찾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나에게 주어진 다큐멘터리 취재 사진이 아니다.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을 감싸고 안아주는 구름과 하늘빛이다. 부드러운 메시지는 긴박한 현장 고발 사진보다 더 강했다. 거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난 거기서 알았다. 눈에 보이는 평화와 낭만과는 다른 현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바람과 물 그리고 구름들로부터 위로받고 있었다. 호수 위로 바람이 불자 새들이 날았고, 사람들은 곧 있을 비바람에 대처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여자아이 둘이 아버지를 따라 지붕에 올라가 노는 모습이 뷰파인더에 잡혔다. 아이들은 지는 해를 배경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조금 더 빨라진 호수의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과 노는 아이들. 이들이 과연 어른들의 싸움에 휘둘리는 아이들인가? 불안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누가 그들에게 평화를 가르쳤을까? 비 내린 다음 날 하늘은 맑았고 호수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다시 무더운 오후가 되자 그 얕은 평화 위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서너 명의 아이들은 벌써 연잎 하나를 꺾어 머리 위에 썼다. 물에 들락거리느라 벌거벗은 아이들은, 젖는다는 기준으로 보면 연잎 우산을 쓰나 안 쓰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이들의 유희다. 세상의 아이콘이다. 자연과 함께 노는 아이들의 방식이다. 톤네샵이 준 선물. 사진을 찍을수록 나의 카메라가 그 선물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서 바람과 비와 나무의 소리를 빼앗고 그 대용물로 장난감과 전자게임기를 건네준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웃는 웃음 지키기와 빼앗긴 웃음 뒤에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몇 배의 돈이 드는지 나는 사진으로 전해야 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난감해 있는 내게, 연어 빛으로 물들어가는 톤네샵 구름이 보이지 않는 위로의 손이 되었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 2018-02-0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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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어보니 점점 소심해져요
- 나이 들어가면서 왠만한 걱정거리나 별별 소리를 들어도 귓전에 바람소리처럼 흘러들을지 알았다. 아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할 일도 마음에 맺혀지고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예전에도 나쁜 일은 어른들 모르게 쉬쉬했다. 아시면 괜히 마음고생 하신다면서 철저히 숨겼다. 내가 겪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헌혈과 관계되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지금까지 헌혈을 66회 했는데 이제 와서 헌혈 부적격자로 딱 걸렸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매독항체 검사에서 판정보류를 받은 것이다. 양성 반응이면 양성반응이고 음성반응이면 음성 반응이지 판정보류가 뭔가! 잘 모르겠다는 말이 아닌가! 혈액에 대한 모든 검사는 혈액검사소에서 하기 때문에 헌혈을 직접 하는 ‘헌혈의집’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해줄 전문가가 없다. 발만 동동 굴리며 걱정을 한다. 매독은 성병의 일종이다. 필자는 결단코 여기에 연루될 지저분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뭔가 혈액검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혈액검사를 다시 해 달라고 팔을 걷어붙이고 요구를 했다. 검사결과는 변함없는 딱 넉자 ‘판정보류’를 재차 받았다. 필자는 당뇨약이나 고혈압 약 같은 모든 약을 먹지 않는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헌혈을 하는 것이다. 가끔씩 비타민C를 먹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가을에 아들이 한의사 이경제씨가 직접 조제해서 만들었다는 ‘황제 천용단’을 먹은 적은 있다. 홈쇼핑에서도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건강 보조제다. 이것의 내용물이 이런 검사 반응을 불러왔나 하는 말도 안 되는 별별 의심도 다했다. 병원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하면서 피를 뽑아 혈액검사를 했지만 아무런 이상통보를 받지 못했다. 다시 헌혈의 집을 찾아 혈액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똑 같은 ‘판정보류’다. 헌혈100회를 달성하여 헌혈명예의 전당에 오르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2016년 4월12일 헌혈 50회를 달성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부터 금장을 받았다. 이만하면 목표도 이루었고 나이도 있으니 이제 헌혈을 그만 하겠다고 헌혈의 대열에서 이탈하였다. 한참을 지나 적십자사 홍보요원으로부터 전화한통을 받았는데 계속 헌혈을 해 달라는 헌혈독려 전화였다. 잊고 지내던 헌혈 욕구가 되살아났다. 다음 목표를 세운다면 헌혈 100회를 달성해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일이다. 100회라면 앞으로 50회를 더 해야 한다. 까마득한 목표에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 해보기로 했다. 이런 헌혈 목포와 순조로운 진행이 난데없는 복병을 만나 중지 되는 것도 억울하지만 진짜 내 혈액 속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앉으나 서나 낮이나 밤이나 늘상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을 믿으면서도 의심은 걱정을 낳는다. 어렵게 적십자사 혈액 전문상담사와 통화를 했다. 몇 달 쉬었다가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너무 걱정이 되면 종합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종합병원에서 이상이 없다는 증명을 받아도 헌혈은 혈액검사소의 자체 검사를 통과해야 받아준다. 이런 기능은 정말 잘 하는 시스템이다. 자신을 믿기 때문에 검사방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찜찜해 했다. 두 달이 지났다. 다시 헌혈의 집에 가서 혈액검사를 신청했다. 간호사가 몇 달 더 있다가 해보라는 것을 불안해서 그러니 해 달라고 했다. 이틀 뒤 검사결과를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지극히 정상이다. 합격이 된 것이다. 허망했다. 자신을 믿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불안했는데 해외여행이나 매춘에 관계되었다면 자살할 만큼의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나이든 사람의 소심함을 이해하고 더욱 신경을 써줘야 한다.
- 2018-01-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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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 진동 증후군
- 필자는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차고 다닌다. 대표적인 ‘할배 스타일’이라며 힐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방식이 가장 편하다. 필자 같은 사람이 별로 없는지 벨트 형 스마트폰 케이스는 취급하는 곳이 드물어 사기도 어렵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서 보기 안 좋다.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디 앉았다 하면 스마트 폰을 꺼내 테이블이 놓고 나와서 분실하기도 한다. 시함 사람은 스마트폰을 벌써 10여 차례 분실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트에 차고 다니는 짓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이다. 스마트 폰을 허리 벨트에 찼을 때 진동으로 전화나 문자가 온 것을 알게 된다. 영화관이나 회의, 교육장 등에 참석할 때 진동으로 해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진동이 울린 것으로 알고 스마트폰을 열어 봤는데 전화가 온 것도 아니고 아무 문자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을 ‘유령 진동 증후군’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필자가 카톡 등을 소리 나지 않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급한 연락 때 금방 답을 못한다. 민폐라는 것이다. 전철 타고 가다가 우리 집 근처에 다가 오니 잠시 만날 수 있느냐는 등의 연락 등이다. 답이없으니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다. 이처럼 긴급 번개 모임 등을 하려고 연락했는데 답이 없어 취소하거나 카톡에 대한 아무 대꾸가 없어 카톡도 안 보고 다니느냐는 원망을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과 강박관념 때문에 부지런히 스마트폰을 자주 열어 봐야 한다. 진동이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신경이 반응하는 것이다. 하긴 원래 유령진동 증후군은 팔다리가 절단 된 사람도 발가락이나 손등이 가렵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환영사지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필자는 동전을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꼭 필요한 동전으로는 500원, 100원, 10원짜리 동전 하나씩만 있으면 가장 좋다. 커피 빼 먹을 때 500원 동전을 쓰고 마트에서 상품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100원이나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없어서 거스름돈으로 동전 900원, 90원을 받을 때 이런 동전 하나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전을 계속 왼쪽 주머니에 쓸어 담다 보면 주머니가 불룩해지고 동전이 피부에 닿는 허벅다리 근처가 간지러워진다. 동전을 그래서 빨리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식점에 1000원짜리 지폐 대신 동전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껏해야 생수 한 병 사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동전은 따로 모아 둔다. 언젠가는 은행에 가서 지폐로 교환을 할 작정이다. 그런데 동전을 주머니에서 빼고 난 후에도 동전이 그득하게 들어 있다는 착각이 생긴다. 동전과 닿았던 피부가 아직 동전이 그득하던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시 유령 진동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자율신경이 다소 과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율신경이 민감하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좋다는 얘기도 된다.
- 2018-01-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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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터처블한 고전을 터처블하게 만든 강신장 대표
- 강신장(60) (주)모네상스 대표는 지식 디자이너이자 창조 프로듀서다. 지식 속에 숨겨진 창조의 씨앗을 찾아내고 가치를 재해석해 창조의 영감을 생산해낸다. 삼성경제연구소 근무 시절,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을 일으키고, 1만 개에 달하는 5분 동영상 콘텐츠로 1만 명이 넘는 CEO들을 매혹시켰던 그가 2014년 모네상스를 창업, 고전 전도사로 나섰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고전’을 세계 최초로 5분 동영상으로 시각화하는 무모한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문학뿐 아니라 역사, 철학, 정치 등 비문학에 이르기까지 총 500권의 고전을 5분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작업 대장정을 마쳤다. “고전(古典) 보기, 더 이상 고전(苦戰)하지 마세요” 그가 만든 영상 고전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재미있다는 점. ‘읽기도 힘들지만 읽었어도 몰랐던 고전의 의미’를 손에 잡히게 해설해준다. 고전의 줄거리와 평론을 결합, 5분으로 간결하게 만들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강력한 그래픽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해 ‘읽는 책’을 ‘보는 책’으로 구성한 게 특징이다. 강신장 대표는 요즘 고전과 노는 게 일이다. 5분 고전동영상(모네상스닷컴) 작업, 고전책(‘고전 결박을 풀다’) 집필, CEO를 위한 고전학교 ‘루첼라이 정원’ 운영 등 ‘고전 삼두마차’를 이끌며 고전의 바다에 풍덩 빠져 있다. 퇴직 후 창업 아이템(?)으로 ‘고전’을 선택하셨습니다. 고전을 5분 동영상화하는 작업에 도전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창조는 ‘나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티브’라기보다는 ‘오리지널’에 가까운 것이죠. 나다운 것을 만들려면 내가 왔던 곳 오리진(origin)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창조는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역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기업 임원생활을 해보았지만 책임이란 짐, 권위와 형식,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하는 틀에 박힌 삶이었어요. 작은 변화도 두려웠고, 나다움을 살리는 생활은커녕 생각 자체가 퇴화되더군요. 그래서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고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겨우겨우 읽어도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웠지요. 누구나 고전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고전을 외과수술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조는 전진이 아니라 역진이다.” 전진과 속도만 외치는 시대라 그 의미가 더 와 닿습니다. 창조력의 비밀을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창조력의 근원은 휴머니티(humanity)입니다. 창조력은 결국 사람을 보고 사람들 마음속에 충족되지 못하고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아픔과 결핍과 갈증을 보는 인문정신에서 출발하니까요. 그런데 휴머니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오직 연민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기에 최고의 창조기술은 ‘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살펴보면 위대한 발견은 모두 연민의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파편화된 삶을 살다 보니, 모두가 아픕니다. 그래서 타인의 아픔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민의 눈을 뜰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고전을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상력은 자신이 가진 레퍼런스에 비례하게 마련이지요.” “모든 혁신은 연민의 자식들이다.” 연민의 힘을 강조하셨는데요. 고전 공부를 통해 깨닫게 된 강 대표의 인생 모토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수페르 아스트라(super astra)’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별보다 더 높이’인데요. 별보다 더 높은 곳은 고도가 아니라 흡수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철저히 상대방 입장에서 그 사람 마음을 봐줄 수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별보다 더 높은 곳이고, 또 만약 우리가 철저히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나를 보고 내가 하는 일을 볼 수만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별보다 더 높은 곳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고전을 통해 사람을 보고 나를 보는 성찰의 인문학을 비로소 만난 것 같습니다.” 고전 미니동영상의 부제가 ‘나를 만나는 5분의 기적’이더군요. 고전을 요약본으로 만든다, 특히 5분 동영상으로 고전의 맛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는데요. 마치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야 할 어머니의 손맛을 영양제 한 알로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 같습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나 할까요. 아마 제가 학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고전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로부터의 비판이 너무나 두려웠을 테니까요. 저는 고전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읽도록 만들어주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고전을 읽지 못하는 독자의 아픔을 공감했기에,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습니다. 제 장점은 복잡한 지식을 말랑말랑 쉽고 재미있게 만들 줄 아는 데 있으니까 이것을 결합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저명한 영문학자이신 김욱동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김 교수님께서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용기를 주셨기에 다른 전문가와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고전을 읽지 않기보다는 고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이란 말이 있지요. 5분 동영상 500편 리스트를 살펴보니 저 역시 중도 포기한 책이 많더군요. “어려움, 두꺼움, 두려움의 결박을 풀고 언터처블(untouchable)을 터처블(touchable)로 만들자. 읽는 고전을 보는 고전으로 만들자. 이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단지 축약이 아니라 에센스 농축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고전을 한눈에, 한 손에 잡을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딱딱한 책을 오감을 자극하는 5분 영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고난도 외과수술이자 성형수술이었습니다.(웃음) 답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주인공보다 나를 만나게 하는 관점 전환에 초점을 뒀습니다. 고전은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도와주고, 다른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키워줍니다. 다 읽고서도 그 뜻을 몰랐던 고전의 의미를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됐다는 독자 소감을 들을 때 행복합니다.” 고전이 좋긴 한데, 일각에선 ‘돈이 되나?’ 하면서 실용적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하. 저는 고전, 나아가 인문학으로 팔자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접체험과 성찰을 통해 세상의 아픔을 볼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 마음속에 있는 고통을 보는 좋은 방법은 삶의 밑바닥으로 가보는 것입니다. 밑바닥에 내려가 보면 더 이상 남의 일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거든요.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지요. 초연결 시대에 그런 연결지능만큼 우수한 재능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전은 그걸 가능하게 하지요. 인생의 고전(苦戰)을 대리경험하게 해주니까요. 고전은 한마디로 고전(苦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닐까요? 역지사지, 백번 강조하지만 상상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바닥을 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치고 올라왔는지 대리경험을 하고, 내 삶에 적용할 지혜를 얻지요. 운이 좋아지고, 운을 바꿀 수 있는 혁신과 창조력의 원천을 얻는 데 이 이상의 방법이 있나요?” 그의 입에서 ‘주홍 글씨’, ‘노인과 바다’ 등의 고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인생반전의 포인트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예컨대 ‘주홍 글씨’의 진정한 교훈은, 우리 모두가 의도하지 않았던 잘못으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그 낙인을 지울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성찰하도록 하는 것이 그 가치라고 설명한다.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 삶과 투쟁 속에 그 길이 있기에 주홍 글씨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또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허탕을 친 후에 몇 날을 싸워 어렵게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모두 뜯긴다. 즉 천신만고 끝에 겨우 한 가지를 이루었는데 그것마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때 과연 나라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성공이 아니라 과정 속에 있는 것이고, 비록 물질적 가치로는 파멸할 수 있지만, 정신적 가치로는 패배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기에, 공평하지도 않고 선택할 수도 없는 운명의 비정하고 부당한 공격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성찰해보는 것이 진정한 문학작품의 가치라는 조언이다. 강 대표에게 가장 와 닿은 고전은 어떤 작품이었는지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입니다. 성공한 중견 판사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겪는 마음의 분노와 불안, 치유를 다루는 내용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다 생각하고 매달렸던 것들이 죽음이란 거대한 필연 앞에서 얼마나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성찰하도록 해주는 내용인데요. 이 작품은 저에게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더군요.” 10년 전, 삼성경제연구소 상무 시절 만났을 때 창조학교에 대한 꿈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야심차게 설명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임원 시절의 그때와 지금의 늦깎이 고전 전도사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요? “혁신과 창조는 제 커리어를 관통하는 키워드였어요. 재미있기도 했고 열심히 일한 결과 과분한 인정도 받았습니다. 큰 실패가 없는 삶을 살았죠. 하지만 돌아보니 일에 대한 집착이 하늘을 찔렀어요. 그것은 쥐어짜는 상상력이지, 따뜻한 상상력이 아니었습니다. 일만 보고 사람을 돌보지 못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이제 인격의 바탕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지요. 잘난 리더보다 따뜻한 리더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그게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58년 개띠이시지요. 개띠는 치열하게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첫 스타트 세대입니다. 올해 환갑이신데요. 인생의 뉴스타트 기점에서 되새기는 인생의 의미를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인간적으로 좀 더 성숙해져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형식에 갇히지 않고, 모든 것을 해체해보고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환갑이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진정한 시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빨간 운동화를 신어도 보고 자유롭게 살아보려 해요. 그 속에 행복이 있더군요. 원점에서 모든 것을 해체해 다르게 보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데 강 대표가 인용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한 구절이 귀를 맴돌았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삶, 살면 살수록 생기가 빠져나가는 삶, 나는 내가 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실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맞아.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딱 그만큼씩 진짜 삶이 내 발 아래로 멀어져가고 있었어….” 2018년 한 해, 우리가 세우는 야심찬 계획은 산 정상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딱 그만큼 내려가면서도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계획인가. 혹시 우리는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새해엔 별보다 더 높은 곳, 그곳에 이르는 사다리를 놓아보는 것 어떻겠는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성공하는 CEO의 습관’, ‘하이터치 리더’, ‘용인술, 사람을 쓰는 법’ 등이 있다.
- 2018-01-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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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구장의 배경음악
- 공식 당구 시합이 벌어지는 장소는 각양각색이다. 쇼핑몰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체육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쇼핑몰은 쇼핑객들에게 구경거리를 선사하고 쇼핑몰 광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각종 잡음이 있어 별로 좋지 않다. 체육관에서 하는 경우는 객석이 너무 멀리 있어 관심 있는 선수의 경기를 보기 어렵다. 당구대가 여러 개 있어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려 집중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국제 경기는 독립된 건물에서 하기도 한다. 큰 건물이 있는 휴양지에서도 국제 경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경기는 기존 당구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당구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당구 치는 사람들의 잡담 소리만 들린다. 조용히 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을 칠 때마다 한마디씩 하게 되므로 다른 당구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 소위 방해 작전으로 하는 말도 있다. 당구 치는 사람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로 일부러 말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좋은 매너는 아니다. 어느 당구장은 TV 스포츠 경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다. 프로야구 경기를 틀어놓기도 하고 UFC 경기를 틀어놓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시끄럽다. 당구장을 투기 오락장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야구 경기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안타라도 치면 괴성을 지르니 문제다. 아무 소리가 없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어느 당구장은 들어가자마자 개 두 마리가 짖으며 달려 나와 놀란 적이 있다. 계속 짖어대는 바람에 그만 치고 나갈 생각까지 했다. 주인은 개를 사랑한다지만 개를 싫어하는 손님들도 있다. 영업장에 개를 풀어놓을 일은 아니다. 경기도 한 당구장은 대회 때 감미로운 바이올린,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배경 음악을 깔아 호평을 받았다. 선수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대한체육회장 배 당구대회에서는 수시로 공지 멘트를 마이크로 하는 통에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선수별 당구대 배정 멘트인데 댄스대회처럼 한쪽 벽에 붙여놓으면 될 일을 왜 소음에 버금가는 소리로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의 국제 당구대회장에서는 축구장에서나 사용할 법한 나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해설자 얘기로는 독일만 그렇다는데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이 한 사람 있는 모양이다. 당구는 귀족 오락이다. 궁정에서 하던 스포츠였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요즘은 고급 라운지처럼 차려놓은 당구장도 종종 보인다. 물론 게임비가 일반 당구장보다 비싸다. 당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멘탈 게임이다. 심리적 요소가 경기에 많이 작용한다. 고급 당구장들은 클래식 음악을 낮게 틀어놓는다. 좋은 일이다. 당구를 치면서도 스스로 격이 올라가는 기분이다.
- 2017-12-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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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에 직접 나와야 안심하는 사람들
-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서 은행에 통장정리를 하기로 했다. 필자는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다보니 한 달에 수십 건의 은행일도 안방이나 직장의 책상에서 대부분 해결 한다. 그러나 별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꼭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일이 통장정리다. 인터넷으로 다 확인 한 일이지만 통장정리를 해 오던 습관으로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하고 다 쓴 통장은 보관하고 새 통장을 발급받는 일이다. 거래하던 은행에 10시경 가보니 대출상담이나 펀드가입 등 차원 높은 은행업무일을 보는 사람은 별도의 창구에서 한산하게 있고 일반 창구에는 전부 노인 분들이 고객이다. 이 분들이 무슨 은행 업무를 보는지 옆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첫째로 돈을 여직원이 있는 창구에서 직접 찾는다. 카드로 현금지급기에서 직접 찾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되돌아오는 대답이 카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카드 분실의 위험이 있어서 아예 만들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찾는 돈도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의 소액 금액이 대부분이다. 한 할머니는 출금전표에 이름과 금액을 적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는지 은행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 고지서를 직접 들고 와서 현금으로 납부한다. 공과금 자동이체를 해두거나 납부기한일 전에 인터넷 뱅킹을 하면 좋으련만 통장과 도장을 갖고 와서 현금을 찾고 찾은 돈으로 다시 공과금을 납부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제법 걸린다. 은행에서는 수익성이 별로 없는 이런 잡다한 일에 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만들 모양이다. 우선 은행 방문객을 인터넷 뱅킹으로 유도하여 창구 방문을 줄이도록 한다. 그런데도 인터넷 뱅킹을 마다하고 창구로 오는 고객은 업무는 처리해 주되 수수료 징수 등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는 모양이다. 앞으로 종이 통장도 없앨 태세다. 은행입장에서 바라볼 때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참 불안하겠다는 생각이다. 종이통장을 직접 눈으로 보거나 종이 영수증을 보관해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 노인의 특성이다. 남들에게 은행 업무를 부탁하는 것도 노인 특유의 의심이 많은 성품으로 볼 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금전적 사기를 당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까딱하면 자신이 옳게 처리한다고 믿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보이스피싱이었다는 황당한 사실들이 방송에 나오므로 노인 분들이 컴퓨터 전산을 더 무서워한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은행에 직접 찾아가서 은행에서 보증하는 창구 직원과 면대면 방식으로 업무를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수수료 징수라는 제도로 막으려는 것은 경제적 약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런 나이든 분들의 은행 업무를 보조할 시니어 은행도우미를 은행에서 채용하면 좋겠다.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노령연금 수혜자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무조건 나이 많은 은행고객을 경비절감과 편의 위주로 전산화로만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현실성도 심각히 생각해볼 문제다.
- 2017-12-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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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라도 자리를 지키고 싶다
- 경쟁은 극도로 심한 사회를 살고 있다. 환경의 급변과 국내외 경제의 악화로 구조조정과 조기퇴직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는 직장인의 숫자가 엄청나다. 1000만 명에 이른다. 머지않은 훗날에는 그 숫자가 1800만 명에 이르리라 예측된다. 우리나라 총인구 5천만 명의 36%에 해당한다. 11월 21일 자 한국경제신문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가 54만 개가 새로 생겼으나 68만 개가 사라져 전체적으로 14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심화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일자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충분한 경제적 노후준비를 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일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퇴직하려는 직장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불안하고도 막연 그 자체이지 싶다. 될 수 있으면 지금의 자리를 하루라도 더 지키고 싶지 않을까? 그런 길이 있다면 물에 빠진 사람이 한 가닥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필자는 소소한 일상의 피사체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카메라로 이야기를 쓴다. 포토스토리텔러라 자칭한다. 필자는 오늘 아침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발견했다. 카메라를 들고 계절에 상관하지 않고 아침마다 산책길에 나서는 들길에 언제부터인가 노랗게 페인트칠을 한 방지 턱에 가느다란 줄로 매어 놓는 낡은 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산불감시원이 주변에 있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주변 고봉산 산불을 감시할 때 앉기 위하여 설치한 의자였다. 혹시 다른 사람이 의자를 가져갈까 보아서 줄로 매어 놓았다. 몇 번을 지나가며 유심히 관찰했다. 드디어 이야기를 찾았다. 하루라도 더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간절한 마음을 사진 속에 담았다. 가느다란 줄로 매어진 낡을 대로 낡은 의자가 마치 퇴직을 앞에 둔 직장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행여 하루라도 더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가느다란 줄에 느껴져 오기 때문이다. 평생을 헌신하며 등골이 빠진 직장인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이 낡은 의자와 같지 않을까?
- 2017-12-2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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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백과사전을 떠나보내던 날
- 이사할 때마다 무수히 책을 버렸건만 끝내 버리지 못한 책이 있다. 바로 30권짜리 세계대백과사전이다. 젊은 시절 직장 생활할 때 우연히 책 외판원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장기할부로 산 책이다. 두꺼운 장정에다 몹시 무거워 한 번에 세 권 이상을 드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한 번 옮기려면 열 번은 왕복해야 하고 자주 펼쳐 보지도 않는 책인데 버리지 않고 끼고 다니는 것은 불가사의다. 물론 자신을 과시하는 듯이 중후한 외관 때문이기는 하다. 책장의 맨 아랫단에 일렬로 가지런히 세워 놓으면 품위도 있거니와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어 그 무거운 녀석들을 막무가내로 끌고 다닌 혐의가 짙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이삿짐 옮기는 인부들의 눈총을 참아가며 보관을 고집한 것은 아닐 터이다. 어쩌면 거기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심오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와서 그리도 버리지 못한 이유가 어쩌면 그것이 내 몸의 일부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비록 읽지는 못했으나 언제나 거기에 머리를 대신하는 무수한 지식이 놓여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마치 요즘 스마트폰이 없으면 잠시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심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세계대백과사전은 아날로그 시대에 나의 신체 일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달라져 지금은 손안의 작은 스마트폰 속에 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지식이 들어 있으니 방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세계대백과사전은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어느덧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한 시대를 대표하던 스승의 죽음 같다고나 할까.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스승의 모습이 안쓰러워 마침내 장례를 치러 드리기로 결심했다. 장례의 결단은 내렸지만 치우기도 만만치 않아 일단 고물을 취급하는 곳을 검색했다. 혹시 약간의 금전을 받고 무거운 것을 처치하면 일거양득이란 얄팍한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해 보니 옷가지면 몰라도 책은 가져가 봐야 돈이 되지 않고 무겁기만 해서 안 가져간단다. 어쩔 수 없이 재활용 처리장을 장례식 장소로 정했다. 책장에서 빼내 문 앞으로 옮기면서 문득 시신 기증이 떠올랐다. 언젠가 ‘죽으면 썩어질 몸! 태우는 데 돈을 쓰느니 자손들 편하게 시신 기증을 하면 어떨까.’ 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다. 우리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면 아무 쓸모 없는 몸뚱이에 불과하듯 방대한 지식으로 가득 차 구텐베르크 이후 근대의 가장 찬란했던 성과물인 세계대백과사전도 어느덧 흘러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듯 시신 기증을 하는 처지로 전락했구나 생각하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 시대의 거인도 이젠 한낱 미용 티슈로 전락하겠구나 생각하며 마치 임종을 지키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 남편과 낑낑대며 재활용 처리장으로 향했다. 늘 처리장을 지키며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노인과 눈인사를 하고 종이 수집망 앞에 책을 놓았다. 순간 노인의 눈이 빛나는 것을 눈치챘다. 노인은 슬며시 책을 따로 챙겼다. 짐짓 모르는 체하고 “아, 책은 분리수거 대상이 아닌가요?” 하고 물었다. 노인은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아니 이 책은 귀한 것 같아 손주 녀석들 공부하라고 주고 싶어서.” 아! 이런 걸 기사회생이라고 하는구나! 아직 구시대 스승을 존중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정중히 시신을 인계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편과 집으로 돌아왔다.
- 2017-12-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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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구를 잘 치기 위한 숨은 노력
- 당구 고점자들은 그만한 수준이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물론 소질이 있어서 빨리 고점자가 된 사람도 있기는 하다. 일반인들은 대부분은 거기서 거기이다. 그래서 200점대에 가장 많고 대부분 거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당구는 심심하면 시간 날 때 치는 편이지만, 고수들은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 중 몇 가지는 참고가 될 만했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브리지를 한다. 스트로크 할 때 큐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브리지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공 때문에 가려져 편안하게 브리지하기가 곤란할 때도 있다. 소위 “큐 자세가 불안하다”고 하는데 이럴 때 손가락 힘이 필요하다. 특히 위에서 찍는 마세를 할 때는 심지어 새끼손가락만으로 브리지를 할 때가 있다. 그러려면 손가락 힘이 필요한데 그럴 때를 대비하여 평소 악력기로 손아귀 힘을 기른다는 것이다. 체력 검사할 때도 악력 검사를 한다. 팔 근육을 강화시키는데 악력기가 좋은 것이다. 당구를 잘 치기 위해서도 좋지만, 손아귀 힘을 세게 해준다는데 일석이조라 할 수 있겠다. 또, 고점자들은 개인장비를 갖고 다닌다. 당구장에 있는 큐를 사용하지 않고 개인 큐를 갖고 다니는 것이다. 당구장 큐도 손질을 잘 해 놓으면 쓸 만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에 맞는 큐를 못 고르면 당구 치는데 막대한 지장을 준다. 특히 큐 무게가 스트로크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심지어 초크도 가지고 다닌다. 당구장에서 쓰는 초크는 분가루가 날리고 공을 칠 때 큐 팁 마찰에 적당하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장갑도 고점자들은 자기 장갑을 가지고 다닌다. 엄지와 검지 끝을 가위로 잘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당구장에서 제공하는 장갑은 끝부분이 막혀 있고 심지어 손가락보다 길다. 브리지 할 때 손가락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 사용한다는 것이다. 프로 선수 중에는 장갑을 안 끼고 경기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만큼 민감하다는 얘기이다. 연습하는 과정도 고점자들은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공이 굴러가서 배치된 대로 계속해서 치는 것을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한 가지 형태를 놓고 조금씩 변형해서 계속 반복해서 연습한다. 일반인들은 경기 중에 안 맞은 형태의 공은 그때가 지나면 기억도 못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프로 선수들은 그 공 배열을 기억해서 다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도해본다. 그러면 다음에 비슷한 유형의 배치가 되었을 때 자신감을 갖고 성공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제1목적구가 멀리 쿠션에 붙어 있고 수구가 거리가 멀면 치기 어렵다. 일반인들은 대충 쳐서 맞으면 다행이고 안 맞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점자들은 맞히기 위해서 정성을 다 한다. 고점자들은 다음 공을 치기 쉽게 만들기 위해 힘 조절이나 두께 조절을 해서 공의 움직임을 조정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우선 맞히기 급급하기 때문에 다음 공까지 못 본다. 바둑에서 고점자들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과 같다. 시스템 연습이라는 것도 있다. 당구대 프레임에 일정 간격으로 점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공의 움직임을 정하는 것이다. 뱅크 샷으로 쿠션만 먼저 맞혀 3 쿠션으로 맞혔을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시니어들은 당구를 배울 때 순전히 감으로 배웠기 때문에 시스템 계산을 안 하고 치는 사람이 많다. 시스템 계산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을 상대방에게 미안해하고 계산도 익숙해지기 전에는 복잡하기 때문이다.
- 2017-12-14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