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한 소년이 있었다. 호메로스의 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린 아이는 언젠가 신화 속 도시 트로이를 발견해낼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어른이 되어 러시아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손에 쥔 소년은 어릴 적 꿈을 잊지 않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고고학을 공부했고, 그리스로 건너가 고대 유물 발굴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터키 히사를르크 언덕에서 꿈에 그리던 고대도시 트
얼마 전, 필자는 지난 50년간 패션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를 해외의 한 패션 디자이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마 ‘미니스커트’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런데 예상 외의 답이 돌아왔다. “블루진(blue jeans).”
의상 패션은 예로부터 왕족이나 귀족사회, 즉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점유물처럼 자리매김해왔고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
이재준
안네 소피 무터(Anne Sophie Mutter, 1963~ )의 바이올린 독주회 맨 앞자리에 김영태 시인과 나란히 앉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k.304를 들었다. 41개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한 단조의 선율은, 봄밤을 깊은 심연의 사색에 잠기게 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잠시 하늘을 보았다. 아
김영희(金英姬) 前 대사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방앗간 집과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다. 1949년 한글날 태어난 나는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집 우물에 던져져 죽을 뻔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집에다 큰아들이 국군 장교로 참전 중이어서, 인민군이
필자가 기억하는 첫 탱고는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59)’에서 여자로 변장한 잭 레먼이 코미디언 조 E. 브라운과 함께 입에 물고 있는 꽃을 바꾸어 물어가며 춤추던 불후의 명곡 ‘라 쿰파르시타’이다. 그 후 카테리나 발렌테가 부르는 ‘불의 키스(Kiss of Fire/El Choclo)’에 매료되어 여러 장의 탱고 판을 사서 듣
1970년대를 살았던 국민이라면 밤 12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기억한다. 24년 전인
1982년 1월 5일, 광복 후 줄곧 갇혀 있었던 대한민국의 밤이 세상에 풀려났다. 밤 12시~새벽 4시의 야간 통행금지(통금)가 해제된 날이다. 전국 도시의 거리에 사람이 오가게 된 것도, 새벽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술자리 습관도 모두 이때 시작됐다.
지난 여름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1951년에 그렸다는 과 다시 만났다. 순간 20세기 거장의 작품을 보며 왠지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필자의 국적 때문은 아니었다. 이념의 덫에 걸린 예술 문화 작품을 다시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원로 서양화가 김병기(金秉騏
가왕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가요는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게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킬리만자로를 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조용필씨는 탄자니아 및 케냐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단다. 글ㆍ사진 변종경 언론인
지구 온난화로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
‘포니 개발 프로젝트’ 때도 최전방에서 활약했던 이충구(李忠九·70)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지능형 자동차플랫폼센터장(前 현대·기아자동차 통합연구 개발본부 사장)은 자동차업계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현대자동차 총 35종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포니 생산 40돌이 되는 12월을 맞아 이 센터장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선 시대에는 “초상화의 시대”(이태호 교수)라고 일컬을 정도로 많은 초상화가 제작됐다. 이는 또한 상대적으로 다른 문화유산에 비해 미술사적으로 훌륭한 초상화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선 시대의 여러 초상화를 살펴보던 중 우리의 정서와 거리감이 있는 작품이 눈길을 끈다. 바로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의 것이다.
좀 더 깊이 알아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