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L 칼럼] 자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기사입력 2016-01-21 09:17 기사수정 2016-01-21 09:17

임철순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버지와 아들의 불통을 그린 한국영화 ‘사도’(2015).
▲아버지와 아들의 불통을 그린 한국영화 ‘사도’(2015).

최근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독일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에서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던 아버지는 자신의 거짓 부고를 자식들에게 보냅니다. 충격과 슬픔 속에 모여든 자식들 앞에 펼쳐진 것은 장례식이 아니라 성탄절 만찬 테이블이었습니다. 놀라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너희 모두를 불러 모을 수 있었겠니?”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보내준 이 동영상을 본 60대 후반의 여성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눌리듯 아픈 그 순간들을 그들이 어찌 알리오? 묻어두고, 그리곤 눌러 놓고 흐르는 눈물 못 흐르게 하늘을 쳐다보는 그 아픔을 알 리가 없지요. 한 겹은 그들을 향한 그리움, 한 겹은 저 아이가 저런 아이였나 하는 낯섦, 한 겹은 흥건한 서러움... 그 여러 겹 사이사이는 저 아이를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십사는 기도로 가득 차고, 나는 괜찮으니 저 아이만 늘 괜찮게 해주십사고 비는 마음. 저 아이의 가슴을 옥토로 만드사 그곳에 말씀의 씨 떨어뜨려 주소서. 한평생 주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시경 개풍(凱風)에 “슬하에 일곱 형제가 있지만/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구경에는 “열 아들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 한 분마저 봉양하지 않는 열 아들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비슷한 말이 여러 나라 속담에 나옵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 대해서는 동·서양이 같고, 옛과 지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어려서 양팔의 짐, 자라서는 마음의 짐”, 이건 영국 속담입니다. “어린 자식은 어머니의 얼을 밟고, 큰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을 밟는다”, 이건 독일 속담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게 있습니다.

아들과 딸을 일컫는 자식의 息자는 참 절묘합니다. 쉬다, 숨 쉬다, 생존하다, 번식하다, 자라다, 키우다 이런 뜻 외에 그치다, 그만두다, 중지하다, 망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인간의 일생을 담고 있는 게 바로 이 글자입니다. 태어나서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늙어서 죽게 되는 과정이 息, 한 글자에 다 새겨져 있습니다.

인생이란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다가 부모와 이별하고, 그러는 동안 스스로 부모가 되어 자식들이 부모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듯이 자식도 골라 낳는 게 아니지만, 나는 부모의 분신이며 자식은 나의 분신입니다. 분신이 된 인연을 보살피고 갚아야 합니다. 시경에 “아버지 없으면 누굴 믿으며 어머니 없으면 누구를 의지하랴”[無父何怙 無母何恃]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는 자식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부모은중경에는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메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살갗이 닳아 뼈가 드러나고 다시 골수가 보이게 되도록 수미산을 수천 번 돌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이며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도 자신을 염려하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나와 다름없는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어버이는 제 자식을 가르치기 어려우니 남들과 바꿔 가르친다[易子敎之]는 게 동양의 옛 가르침이었고, 공자도 아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버이는, 특히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폐족(廢族)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식에게 할 법한 말입니다.

제갈량의 계자서(戒子書)는 천고의 명문입니다. 제갈량은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는 말부터 합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말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나아갈 수 없다”[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고 강조합니다. 바빠서 아들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던 제갈량은 편지 한 통으로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는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며 정진과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서’는 용맹과 겸손 온유 소박함 유머를 주시기를 주님께 빌면서 “그리하여 주시면 그의 아비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맥아더의 기도도 행동이나 일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를 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은 어버이의 분신이지만 어버이의 것은 아닙니다. 대장 부리바는 적국의 여인에게 마음을 뺏겨 조국을 배반한 아들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네 생명을 내가 주었으니 내가 거둔다”고 했지만, 부모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준 것은 생명이지만 그 뒤에 줄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지혜를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는 대로 받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게 적거나 없더라도 자식에게는 많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보다 나은 자식을 만드는 것이 부모의 할 일입니다.

이제 삶이 더 이상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시니어세대에게는 아쉬움과 후회가 많습니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아들을 아는 데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다지만 자식에 대해 뭘 알고 있으며 그들이 자랄 때 무슨 대화와 접촉을 해왔던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절로 좋은 영향을 주고 교육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 아닙니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아쉬움이 많은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식을 기를 때의 아쉬운 마음을 내 자식이 그의 자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극복의 대상이며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은 대화 단절과 갈등의 시대에는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바탕부터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들이 이에 응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아들세대의 땅으로 건너뛰어 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낡은 세대, 지는 세대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옳게 가르치는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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