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가 살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시골에 거처를 마련할 실력이 여의치 않은가? 빈손인가? 걱정 마시라. 찾다 보면 뾰족한 수가 생긴다. 일테면, 재각(齋閣)지기로 들어앉으면 된다. 전국 도처에 산재하는 재실, 재각, 고택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 임대료도 의무적 노역도 거의 없는 조건으로 입주할 수 있다. 물론 소정의 면접은 치러야겠지만 당신이 남파된
늦은 밤 아직 다 못 치운 부엌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켜놓은 TV에서 귀에 아련한 노래가 들려왔다.
'찬바람이 싸늘하게에~' 그리고는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멜로디와 가사가 오늘 왜 이리 필자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걸까?
물 묻은 손 그대로 TV 앞으로 가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디바 정미조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와 같은 다양한 히트곡들이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인생의 제3막에서 가수로 돌아온 그녀
일본문화를 논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 아닐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베네딕트는 한 번도 일본을 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전후 일본을 다스리게 된 미국 정부의 의뢰로 다양한 책과 문서를 분석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고전이 된 것은 일본 문화의 핵심
이십 년 전부터 기부하는 단체가 세 곳이 있다.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은퇴 후 씀씀이가 팍팍해지고 있어 기부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마침 오늘 이웃들에게 미용 기술로 봉사하는 여성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지금이라도 뭔가 배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낡은 바이올린을 들고 템즈강 가에서 연주하는 노인이 있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벼루[硯], 먹[墨], 붓[筆], 종이[紙]를 말한다. 예로부터 선비나 문사(文士)들 곁에는 이 네 가지가 늘 함께 있었다. 벼루에 먹을 갈고 붓에 먹물을 적셔 종이에 글씨를 쓰면 서찰(書札)도 되고 시(詩)도 되고 서화(書畵)도 되고 상소문(上疏文)도 되었다. 보조기구로는 벼루와 먹을 넣어두는 연상(硯箱)이 있고 종이를 말아서 보관하
아내와는 연애결혼을 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장차 장인장모가 될 어른들에게 인사 가기로 했다. 서울근교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이나 가야하는 거리였다. 시골동네라 결혼 안한 남녀가 같이 다니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시절이다. 혼자 찾아가야 했다. 아내를 통해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고 어디쯤 내려 어떤 집으로 찾아오라는 약
사돈은 아주 멀고도 어려운 사이라고 한다. 필자는 아들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사돈댁과 멀리 지내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남들은 사돈이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좋은 사돈 사이가 돼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서로 격차가 나는 사이도 아니고 장인 장모 될 분들의 인상이 아주 좋았기
아침 6시 40분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몸이 흔들린다. 바깥 풍경은 오랜만에 선명히 잘도 보인다. 세련되지 않지만 뭔가 여유롭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한국 예술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부산포 주모(酒母) 이행자(李幸子·71)씨를 만나러 가는 길. 옛 추억으로 젖어들기에 앞서 느릿느릿 기차 여행이 새삼 낭만적이다. 한껏 기대에 부
조카는 어릴 때 성당에서 같이 봉사하던 남자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자신의 친구 소개팅을 부탁했다. 조카는 마침 미혼인 친구가 있어 소개하기로 했다. 둘 다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들이라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
약속 장소에서 4명이 함께 만나 서로 소개를 해주고 좀 거들다가 둘은 빠져나왔다.
둘은 몇 번 만나더니 뭔가 삐꺽거리는 것 같았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