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베풀고 의로써 행했다’ 하여 이성계가 목조(穆祖)로 추존한 4대조 이안사(李安社). 이안사는 전주에서 삼척으로 옮기면서 부모의 묘도 이장해 모셨다. 부친 양무장군의 묘가 준경묘(濬慶墓), 모친의 묘가 영경묘(永慶墓)이다. 이곳은 5대손 안에 군왕이 나온다는 왕조 창건 전설이 시작된 곳이다. 한 도승이 개토제(開土祭)때 소 백(百牛)마리를 잡아 올리라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
의료 쇼핑이란 단어는 이제 생활 상식이 됐다. 병원을 몇 군데 들러야만 진단 결과에 대해 안심을 할 수 있다는 다소 서글픈 사회현상이다.
이런 환자들의 의구심은 치과도 예외는 아니다. “왜 치과마다 불러주는 충치 개수가 다르냐”며 분통을 터뜨리기 일쑤다. 구강검진을 한 치과의사의 기준에 따라 충치의 개수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이유인데, 결국
전대미문의 발견이었다. 대작이 전시장에 걸려도, 이번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예술품이라고 소리 높여 말해도 콧방귀도 안 뀌던 전문가 집단이 수군거렸다. 흔하디흔한 골동품이라며, 귀신 붙은 그림이라며 내다버리고 없애버린 민화. 곱게 단장하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사람들은 바로 무장해제돼 버리고 말았다. 고집불통 깐깐한 개인의 취향에 몰입하며
작년 브라보마이라이프 12월 호 ‘추억이 있는 길’에 필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일이 있다. 37년 전에 동네 친구들과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과 취재 당시 오래 전 사진과 같은 배열로 찍은 사진이 책에 올라가 있다. 4명 중 한명은 미국에 살고 있고, 한명은 멀리 용문, 또 한명은 분당에 살고 있어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마침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2011년 5월 어느 날 TV에서 91세에 검도를 시작했다는 이상윤 옹의 이야기를 보면서 크게 자극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상윤 옹은 1917년 생으로 2008년 91세에 검도를 배우기 시작해서 2010년에 초단을 땄다고 한다.
이튿날부터 인터넷을 뒤져 직장에서 가깝고 괜찮다는 평이 난 검도장을 찾아서 전화를 했다. 관장에게 50대 중반인데 운동할
마치 1980년대 극장가를 휩쓸었던 영화 ‘돌아이’의 주인공 황석아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전영록은 어리숙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뜨거운 청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채 인터뷰 내내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와 같은 명곡들을 부른 주인이자 ‘바람아 멈추어다오’, ‘사랑은 창밖에 빗
또 다른 느낌의 에너지였다. 붓이 물 안에서 살랑, 찰랑. 물 묻은 붓이 물감을 만나면 생각에 잠긴다. 종이에 색 스밀 곳을 물색한다. 한 번, 두 번 종이 위에 붓이 오가면 색과 색이 만나고 교차한다. 파고, 풀고. 수백, 수천 번 고민의 흔적에 마침표를 찍으면 삶의 향기 드리운 수채화 한 점이 생명을 얻는다. 수채화 그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김재열 교수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역시나 시월이 가기 직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노래를 들었다. 시월 끝 날에 의미를 두기보다 말일까지 처리해야 할 각종 고지서에 신경쓰다보니 어느덧 11월이 훌쩍 넘어갔다.
요즘 대전과 충남지역에서 마을공동체 붐이 한창이라 대전시 주관으로 공동체를 소개하는 책자 발간 작업에 참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중장년 세대가 떠올리는 추억의 뉴스는 아마 ‘대한늬우스’일 것이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요즘 뉴스는 최첨단 기술 덕분에 시각적으로 다양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앵커의 말투와 톤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런 시대의 흐름에 역주행하며 7080 레트로 뉴스를 제작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스파-크 뉴우스’의 이화원(19), 정광석(33), 배욱진(34)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