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술을 못 마신다. 아니 넘기기는 하는데 곧 이상이 생긴다.
“우리 막걸리 마실까?”
“웬 막걸리요?”
“TV서 지금 막걸리들 마시는데 맛있어 보여서….”
“그럼 하시죠, 제가 사올게요.”
막걸리가 어울리는 나이도 됐다 싶다.
학창 시절 무교동에 낙지 골목이 있었는데 찌그러진 양은 대접에 술안주라곤 매운 새끼낙지볶음과 단무지가 전부. 단숨에 한잔
33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들은 그동안 얼마나 변했을까. 첫 모임 때에는 30명가량이 나왔는데, 다시 각자 아는 동창생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일 때마다 인원이 늘었다. 나중에는 전체 동창생 500명 중 200명가량이 모였다.
그런데 덜컥 내가 동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재학 시절 전교 회장을 한 이력이 있어 봉사의 책임감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노여움을 자주 느낀다. 과거 한창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가슴에 맺히고 자꾸 곱씹게 된다. 글쎄 이런 현상이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아니면 늙어갈수록 옹졸해져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이제는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도 듣기 싫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자랑하는 모습도 꼴불견이다.
이런 일을 겪을
며느리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3개월이 되어간다. 그동안 뭔가 정리가 안 된 듯 미진함이 늘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영정 사진이 필요하니 찾아놓으라는 아들 전화를 받고 사진을 찾다가 아들 방 한쪽에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흰 주머니를 봤다.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살짝 열어보니 새하얀 봉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 장례식 때 조문객들에게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지만 거두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권대욱(65)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매니지먼트 사장의 말이다. 31년을 최고경영자로 살아온 인물의 첫 멘트로는 의외다. 선입관 없이 듣는다면 달관한 성직자 내지 철학자의 말 같다. 인터뷰 장소인 도심 복판의 강남 특급호텔이 갑자기 호젓한 사찰로 변해 수도승과 선문답을 나누는 느낌이다. 탈속 버
서울이라는 ‘황야’를 누벼 먹이를 물어 나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새벽 침상에서 와다닥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가는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직장에선 너구리 같은 상사와 노새처럼 영악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 종일토록 끙끙댄다. 퇴근길에 주점을 들러 소주병 두어 개를 쓰러뜨리며 피로를 씻어보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고 깨어난 이튿날 새벽이면,
4월 초순경, 장고항 어부들의 몸짓이 부산하다. 실치잡이를 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실치가 적을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그물을 올리지만 많을 때는 수시로 바다에 나가 바쁘게 작업을 해야 한다. 흰 몸에 눈 점 하나 있는, 애써 눈여겨봐야 할 정도로 작은 물고기인 실치가 작은 몸집 흐느적거리면서 장고항 앞바다를 회유한다. 실치는 장고항 봄의 전령사
우리에게는 어떤 인류도 경험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길들이 펼쳐져 있다.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길은 당연한 듯하지만 생각할수록 경이롭다. 단순한 길이든 먼 길이든 길이라면 출발지와 도착지는 있어야 한다. 더구나 끊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길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쉬지 않고 꿈틀대며 흐르고 있다. 물리적인 길도 확장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