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관련 핫 키워드 중 하나는 탈모다. 탈모 예방·치료 제품 시장규모는 업계에서 4조원대로 추산되고 있고, 탈모 치료제 시장은 1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탈모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철지난 뉴스가 된 지 오래다. 돈이 몰리다 보니 병원뿐만 아니라 한의원, 미용실까지 내가 해결하겠다며 업계에 뛰어들었고, 대기업들도 기능성 샴푸를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많은데 해결할 방법은 딱히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09~2013년) 탈모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연간 4.8%씩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세는 고령화와 맞물려 당분간 그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가 늘고, 돈도 몰리면서 탈모 시장은 일종의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로 내 방법이 진짜라며 상대를 헐뜯거나, 치료보다는 제품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 인터넷 홍보나 매체를 통한 간접광고가 늘면서 정보가 차고 넘쳐 되레 정확한 정보를 선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확한 의학적 견해를 듣기 위해 대한탈모치료학회 이세원 학술이사(연세리앤피부과 원장)와 대한모발이식학회 황성주 회장(황성주털털한피부과 원장)을 만나 탈모의 원인과 치료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머리카락은 왜 빠질까?
탈모는 크게 남성형 탈모와 여성형 탈모, 원형 탈모로 나뉜다. 이 중 원형탈모는 일종의 자가 면역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혈액 속의 T 임파구가 자신의 털을 자신의 몸의 일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여 모발의 탈락을 유발하는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이기 때문에 몸의 이상으로 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에 반해 남성형 탈모나 여성형 탈모는 유전이나 남성호르몬과 관계가 있다. 즉 몸의 질병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나 식생활도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세원 이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형 탈모의 주요 원인으로 학계에서는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DHT는 모공을 공격하는 성향이 있는데, 사람마다 유전적으로 DHT 공격에 대한 민감성을 다르게 갖고 태어납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탈모 가능성을 안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죠. 생활습관과 건강관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탈모가 될 운명이 유전자에서부터 결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에서 말하는 열(熱)이 탈모의 원인이라는 열성탈모 이론이나, 체질을 바꾸면 탈모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은 과학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약물치료·모발이식이 대표적 치료방법
그렇다면 탈모 치료 방법은 무엇이 좋을까? 이에 대한 이들의 의견은 단호하다. 궁극적으로 탈모, 특히 남성형 탈모를 치료하는 방법은 탈모치료제와 모발이식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성주 회장은 “탈모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입니다. 모낭 속 모근이 모두 죽은 다음에는 늦습니다. 이럴 땐 이식밖에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 됩니다. 때문에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전에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탈모가 시작되면 빠진 자리에 새 머리가 자라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아 있는 머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전문의와 상담하셔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탈모치료제는 크게 바르는 미녹시딜과 먹는 프로페시아가 대표적이다. 여성형 탈모에는 프로페시아가 제한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녹시딜이 주로 쓰인다. 이에 반해 남성형 탈모에는 프로페시아가 대표적이다. 미녹시딜은 두피에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발모를 유도하는 반면, 프로페시아는 앞선 언급한 DHT의 분비를 억제해 탈모를 막아준다. 남성형 탈모에 프로페시아가 선호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로페시아는 이미 2008년에 특허가 만료돼 시중에 제네릭(복제약)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4년 프로페시아는 324억원어치가 판매됐고 복제약인 JW중외신약 모나드와 한미약품 피나테드가 각각 70억원, 3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미녹시딜 역시 시중에 제네릭들이 유통되고 있다.
관련 상품 늘었지만 소비자 혼란만
탈모 치료제 특히 프로페시아는 많은 카더라에 시달리는 대표적 약물 중 하나다. 일부 관련 업체에선 “고자가 된다”는 근거없는 험담을 하고 있다는 목격담까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이세원 이사는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고 이야기한다.
“프로페시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남성호르몬 중 DHT를 제어하는 약제일 뿐 모든 남성호르몬을 억제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낮은 확률로 성기능 저하 부작용에 대한 보고가 있을 뿐이고, 이 중 상당수는 장기간 복용했을 때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DHT 분비가 억제되면서 다른 남성호르몬이 이를 대체한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프로페시아를 처방한 환자와 가짜약을 처방한 환자를 대조한 실험을 했을 때 부작용 발생 비율이 2~3%로 비슷하게 나왔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부작용으로 느끼는 환자 중 일부는 플라시보 효과(위약효과)라고 추측됩니다.”
황성주 회장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효과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계속 복용을 해야 하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치료약을 복용한다고 편안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탈모치료제 효과는 6개월 정도 지나야 모낭 속에서 머리털이 생성돼 솜털처럼 자라나는 정도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수술은 절개 여부에 따라 방식, 금액 달라져
일부 환자들은 아예 약물치료를 포기하고 ‘나중에 수술하자’ 마음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조언한다.
이세원 이사는 “완전 탈모된 상태에서 모발이식을 통해 해결하려면 비용이나 시간이 많이 소요될 뿐더러 듬성듬성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모발이식을 위해서라도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모발이식 수술은 절개식(절편식)과 비절개식으로 나뉜다. 절개식은 머리가 풍성한 뒷머리의 특정 공간을 모내기 모판처럼 절개해 분리한 뒤, 이를 다시 모낭 단위로 잘라 탈모된 부위에 식립하는 방법이다. 이에 반해 비절개식은 도구(펀치)를 이용해 뒷머리의 모발을 모낭 단위로 채취해 이식한다. 어떤 방식이 더 좋은가에 대해 황성주 회장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절개식은 모낭의 생존율이 높고, 많은 모낭을 한꺼번에 채취할 수 있어 많은 모발을 이식할 때 효과적이고, 비절개식은 부분 모발이식이나 흉터제거 등에 효과적입니다. 절개식의 경우 흉터가 남는 단점이 있지만, 뒤통수에 절개선 수준의 작은 흉터가 남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량 이식 시 의료기관에서 무리하게 비절개 방식을 추천한다면 상업적인 목적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시중 병원에서 모발이식 수술비는 3000모(毛) 기준으로 절개식은 300만~500만원, 비절개식은 600만~1000만원선이다. 한국인의 평균 모발 수는 6만에서 8만모 정도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부담 없는 비용은 아니다.
탈모 상식 잘못 알려진 ‘카더라’ 많아
전문의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탈모샴푸와 같은 탈모 용품에 대한 맹신이다.
이세원 이사는 “탈모의 원인이 두피 표면의 상태와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샴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입니다. 되레 한방 약제의 장기보관을 위한 첨가물들이 두피를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모발의 영양상태에 도움이 될 순 있어도 탈모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빗으로 두피를 두드리는 것도 가장 잘 알려진 카더라 중 하나.
황 회장은 “두피를 빗으로 두드리면 두피에 상처를 일으킬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염증을 유발해 탈모를 촉진합니다. 때문에 빗으로 두드리기보다는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것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 전문의들은 최근 일부 두피모발관리실에서 탈모에 대한 전문적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곳들은 결국 두피용 화장품이나 샴푸 등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오히려 적절한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해 탈모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6개월간(2015년 6∼11월) 온·오프라인에서 자주 광고된 30개 탈모방지 샴푸를 조사한 결과, 총 7개(23.3%) 제품이 허위·과장 광고로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난 1월 12일 밝혔다.
또한 2012∼2014년 탈모 관련 제품·서비스 이용 경험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탈모관리서비스 경험자 64.0%도 탈모치료나 발모효과 같은 위법적인 내용의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분노조절장애(충동조절장애)로 인한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아버지도 경찰 범죄심리분석관의 범죄 행동분석 결과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에도 충동조절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병을 앓던 50대 남성이 식당에서 흉기를 들고 ‘묻지마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과연 이 충동조절장애는 무엇일까?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도움말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
흔히 일반적으로 분노조절장애 혹은 분노충동조절장애라고 부르는 이 질병을 의학계에서는 충동조절장애라고 이야기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방화, 절도 등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려는 충동을 자제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 해결하는 경우가 반복될 때 충동조절장애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에서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충동조절장애는 이것보다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단일 질환이 아닌 자기 조절의 어려움이 많은 대부분의 경우를 포함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파괴적 행동을 반복하거나, 각종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등 행동이나 정서적으로 자기조절이 어려운 경우를 뜻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생물학적, 사회 심리적 요인 등 복합적으로 작용
그렇다면 충동조절장애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현장의 의료진은 충동조절장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공통적으로는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하는 정도다.
생물학적으로는 뇌의 변연계와 안와전두엽 부위의 기능장애, 세로토닌 신경전달이 감소한 경우가 흔히 원인으로 거론된다. 또한 과거의 뇌 손상, 두부 손상, 뇌염 등과도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환경적, 사회심리적으로 볼 때는 아동기에 알코올중독, 학대와 방임, 부모 간의 불화 등이 많았던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이 장애가 더 흔하게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실제로 초등학생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 역시 아동기에 학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벌을 많이 받았다고 진술했다.
지속적인 음주, 충동조절장애 유발할 수도
노화와 충동조절 장애는 상관이 있을까?
이에 대해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김선미 교수는 “노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지만, 술과 같은 독성물질을 만성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발병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라고 설명하고, “섭취 기간이 늘어날수록 뇌의 기능 저하를 일으키면서 충동조절장애의 유발인자로 작용할 수 있어 위험합니다”라고 경고했다.
치매 등의 퇴행성 뇌 질환에서도 충동조절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노인 우울증의 한 증상으로서 우울감과 함께 분노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치매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중에서도 전두측두엽치매는 기억력 저하보다 충동과 행동조절의 어려움, 성격변화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은 초기에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런 증상이 의심되면 진단도구로 신경인지검사와 함께 뇌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 단층촬영) 등의 뇌 영상 촬영이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중독도 충동조절장애 증상
충동조절장애의 증상으로는 단지 화를 참지 못하는 것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나 적대 행동도 증상 중 하나고, 폭력 행동이나 파괴적 행동, 방화, 도둑질도 이에 속한다. 특히 병적인 도박은 충동조절장애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로, 도박중독의 치료 역시 충동조절장애 치료에 기반을 둔다.
최근에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인터넷 중독이나 컴퓨터 중독, 게임 중독, 쇼핑 중독 등도 의학계에서는 충동조절장애로 보고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충동조절장애를 진단하는 특이한 검사법은 딱히 없는 상황. 다만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혈액검사, 뇌파검사, 뇌 영상 검사(MRI), 심리평가, 고위인지기능검사 등이 진단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방방법 역시 딱히 알려진 것은 없다.
충동조절장애의 치료는 질환별로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인지행동치료, 분석적 정신치료, 지지치료, 상담 등)를 병행하는 방법이 가장 흔히 이용된다.
때에 따라서는 약물치료도 겸하게 되는데, 우울감이나 분노, 충동성 등을 조절하기 위해 항우울제, 기분 조절제, 항정신병 약물 등의 다양한 약물이 치료에 이용된다.
활발한 활동이 정신건강 유지 비결
김선미 교수는 이러한 정신건강의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발한 활동이 좋다고 조언한다.
“시니어들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도 있지만, 질병, 퇴직으로 인한 경제력 상실, 배우자의 죽음, 신체적 능력 저하 때문입니다. 또한, 신체적 노화로 인해 불안해하거나 자아존중감이 상실되며, 가정, 사회에서의 역할 상실로 인해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자원봉사, 종교생활, 평생교육, 재취업 등 사회적 활동을 통해 삶에 대한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인대학이나 복지관 등의 시설을 이용해 꾸준히 평생교육을 받거나 취미, 운동, 종교,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며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돈 관리는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물가나 자산 시장의 변화를 어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살이처럼 돈 관리도 마음가짐과 행동 변화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 판단해서 노후생활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미국 은퇴자협회 1월호에 실린 ‘금전관리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7가지의 결정적인 오류’ 부분을 정리했다.
죽을 때까지 쓸 돈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참 좋은 일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낙관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금전 문제에서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래를 낙관해서 저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지출을 많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돈 관리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철저히 절약하고 저축하는 사람들이라 은퇴 후에 오히려 넉넉할 수 있다.
텍사스테크대학(Texas Tech University)의 마이클 핑케(Micheal Finke) 개인자금관리 전공 교수는 가장 좋은 예방법으로 통장에서 자동 저축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퇴직연금에 가입해서 급여에서 자동으로 이체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뮤추얼 펀드나 정기저축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제품을 구입하면 정말 기분은 좋지만 이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한다. 새로운 사치품을 구입하는 쾌락적 느낌은 금방 사라지고 또 다른 신제품을 찾는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항상 자기보다 나은 신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의 저자인 조나단 클레멘츠는 신제품 구입을 결정할 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신제품을 구입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실제 구입하는 것 만큼이나 즐거워질 때가 많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는 돈 관리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저축을 해봐야 이자가 거의 없고 그렇다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려면 돈이 묶이거나 손해를 볼 수도 있어 마땅찮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그냥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보통예금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 저물가라 하지만 그것이 장기화되면 엄청난 이자 손실이 발생한다.
보통예금보다는 저축성 예금계좌를 이용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CD 등 단기상품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금리라고 하지만 이것이 장기화되면 큰 이자가 된다.
무력감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누가 어떤 주식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투자하다 보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미끼다. 전혀 위험없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주식은 오르내릴 수밖에 없고 떨어지면 겁이 나서 그냥 팔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행동을 자제하고 많이 생각하라.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박사는 그의 저서 에서 인간은 2가지 방식으로 사고한다고 밝혔다. 급하고 감정적이며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방식(시스템 1)과 느리고 논리적이며 의식적이고 계산하는 사고체제(시스템 2)다. 시스템 1에 가까운 사람은 천천히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시스템 2에 가까운 사람은 찬반과 장·단점을 논리적으로 생각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맹신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요청하는 것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 카네기멜론대학의 조지 로웬스타인 경제학 및 심리학 교수는 이런 성향을 아부성향이라고 표현했다. 상대방의 솔직한 제안을 거절하게 되면 신뢰를 못하는 것처럼 비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성향이다. 그런 제안을 한 사람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거절하지 못하고 비싸게 구입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제안하는 사람을 신뢰하되 맹목적으로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완전히 납득이 될 때까지 여러 각도로 질문을 해보고 따져야 한다. 로웬스타인 교수는 “바로 행동하는 것을 절대 자제해야 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상의 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정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좋은 투자는 투명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위험 고수익을 좇다보면 낭패를 당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점검하더라도 고수익상품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험 없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같이 보이는 투자상품이나 제안은 일단 피하라. 세상에 남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사는 사람이나 상품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러 은행에 계좌를 열거나 투자를 분산시키면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 세월이 가고 집이나 직장을 옮기면서 여기저기 계좌를 열다보면 정리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계좌를 통합하여 자금관리를 질서 있게 해나가야 한다. 은퇴 예정일에 맞추어 주식과 채권을 통합 관리하는 펀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금관리 상담전문가에 자문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상담전문가도 고객의 취향에 맞춰 즉흥적으로 투자하는 등 비슷한 잘못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상속을 둘러싸고 형제 사이가 나빠지거나 친척간의 왕래가 끊기는 경우는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 그런 슬픈 사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잡음이 생기기 쉬운 포인트를 일본에선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일본 시니어 월간지 의 기사를 발췌해 보았다. 가족 모두가 모인 정초는 상속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홍수미 suming72@gmail.com
“우리 형제들은 사이가 좋으니까 걱정 없어”, “다툴 만큼 재산은 없으니까”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실제로 상속의 상황이 되면 자신만 손해보고 싶지 않다. 받을 수 있다면 1엔이라도 더 많이 받는 게 사람의 심리. 그렇기 때문에 먼저 상속은 다툼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라고 기타무라 쇼고(사회보험 노무사, 행정서사) 는 말한다.
실제로 일본 가정재판소에서 상속에 관한 조정과 재판을 한 사람은 늘어나고 있고, 그 내역을 보면 상속 재산이 5000만엔 이하로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속이 싸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상속의 수속에는 먼저 누가 상속인(상속을 받는 사람)으로 상속할 재산은 어느 정도 있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부모의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지는 실제 자식들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예금액 등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일람표로 만들어 형제 모두가 그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시모이리사 마유미 사법 서사)
상속할 재산의 비율은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준. 상속인 전원이 이야기를 하고서 나누는 방법을 바꿔도 괜찮다.
법정상속분에서는 나누는 방법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경우에 쓸 수 있도록 ‘특별수익’(예를 들어 부모가 살아계신 동안에 집과 맨션의 보증금을 지불한 경우, 그 금액을 상속분에서 빼는 등), ‘기여분’(예를 들어 부모의 일을 무보수로 도운 경우, 그 몫을 더 많이 상속하는 등)이라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어느 정도 인정받을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다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나눌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꼭 부모 등 재산을 남기는 피상속인이 건강할 때 해 두는 게 최선이다. 상속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확실하게 형제 모두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될까라고 신경이 쓰인다. 말 꺼내기가 힘들지 모르겠지만 누가 입을 떼지 않으면 이야기에 진전이 없다.”(기타무라 쇼고)
또한 부채 유산이 있어서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는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아무런 수속을 밟지 않고 3개월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부채 유산도 상속받아야 한다. 주의하자.
1. 상속 트러블이 생기기 쉬워 주의가 필요한 경우 '부동산 유산이 있을때'
‘재산은 없다’ 혹은 ‘집과 토지만 있으니 상속으로 다툴 걱정은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상속에서 가장 많이 잡음이 생기는 재산이 부동산이다.
“돈을 균등하게 나눌 수 있지만, 부동산 그 자체로는 나눌 수 없다. 나눌 수 없는 재산을 상속하는 사람 전원이 불만 없도록 나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로 다투는 것이다”라고 기타무라는 말한다.
부동산과 균등의 가치가 있는 재산이 따로 있는 경우는 부동산을 받는 사람, 그밖의 재산을 받는 사람 식으로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독자들의 고민 상담처럼 부동산밖에 없는 경우는 골치아프다.
또한 부모가 유언장을 남기는 등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돌아가시면 남은 부동산은 상속인(상속할 권리가 있다고 법률로 인정받은 사람) 전원의 공동 소유가 되고, 처분할 때에도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는 등 이것 역시 번거롭다.
“토지를 그냥 계속 공동 소유하게 되면 돈은 생기지 않는데도 세금만 내게 된다”고 기타무라는 말한다.
부동산 유산은 이게 골치
① 공동소유가 되는 게 흔하다
유산 분할이 처리될 때까지 피상속인(재산을 양보하는 사람) 명의 그대로의 부동산은 상속인 전원이 소유주인 공동소유가 된다. 공동소유의 부동산은 다른 공유자 동의가 없는 한 빌려 주는 것도 파는 것도 할 수 없다. 그 토지에 세워진 집의 개수와 철거 등도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② 지방의 토지는 매각하기 힘들다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지방 등에서 인구 감소가 급속하게 진행돼 빈집이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을 상속해도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으니 매각하려고 생각해도 지역에 따라서는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팔려면 엄청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지도.” (기타무라)
③ 농지는 전매 허가가 필요하다
상속하는 부동산이 택지가 아니라 논과 밭 등 농지라면 이게 또 골칫덩어리! 농업은 이어받지 않을 생각이니 거기에 집을 지을꺼라고 생각해도 농지 이외에 전용하기 위해서는 수속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참으로 힘든 경우도 있다. “농지는 농업위원회 등의 허가 없이는 매매도 할 수 없다.”(시모이리사)
④ 지가는 변동하기 쉽다
“일본인은 부동산 신앙이 강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평당 지가도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기타무라) 안이하게 생각해 부동산을 상속하면 손해를 볼 가능성도. “이 토지는 000만엔의 가치가 있을 거라”는 등 부동산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잡음을 없애는 포인트
⑴ 부동산은 가능하면 단독소유로
⑵ 상속인이 다 모였을 때 부모의 의향을 들어 둘 것
⑶ 거주 목적이 아니면 부모님 집은 매각해 현금화할 것
“부동산이 있는 가정의 경우, 장래에 그 토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재산을 남긴 부모와 상속하는 자식 모두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둬야 한다. 누가 부동산을 이어 받을 것인지, 그 경우 받지 않는 형제에게는 무엇을 남길 것인지. 상속할 대상이 아무도 없는 경우는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 처분해도 좋다고 본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는 부동산 처분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준비하자.”(기타무라)
2. 상속 트러블이 생기기 쉬워 주의가 필요한 경우 '부모님 돌보기를 혼자서'
상속을 받는 사람(상속인), 상속을 받는 재산의 비율(법정상속분)은 분명하게 민법에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법정상속분’대로 나누는 식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모의 간호와 간병이 얽혀 있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매일처럼 부모집에 다니면서 부모를 모셨다. 형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자신과 동등하게 상속한다니 납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기타무라는 말한다.
부모 등 피상속인을 간병한 경우 기여분이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가능하면 간병에 들어간 돈, 사용한 시간 등을 기록해 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답답한 심정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은 “부모의 간병은 자식들 전원이 나눠 부담하는 것”이라고 기타무라는 조언한다.
“간병이라는 게 형제들 중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 모든 걸 짊어지기 쉬운데, 그렇지만 예를 들어 장남 가족이 간병한다고 하면 그 외의 형제들이 매월 1만엔씩 모아서 형 가족에게 전달하는 등 분담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가 돌아가신 뒤 ‘나만 손해를 본다’, ‘다른 형제는 부모를 모시지 않았는데 똑같이 유산을 요구하는 건 맞지 않다’라는 기분이 생기게 된다.”
또한 상속에서는 며느리, 딸의 남편, 친척 등 상속하는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참견해서 다투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간병은 실제로 며느리가 했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는 가족이지만 상속에 있어서는 제3자라는 미묘한 입장이다. 원래 며느리와 시어머니, 며느리와 시누이라는 관계는 어려운 데다가 상속에 관해 며느리가 참견하기 시작하면 잘 정리될 일도 정리되지 않게 된다.
“유산분할 협의는 상속 권리가 있는 혈연자들만이 하는 것으로 하자.”(기타무라)
(유산분할 협의란? 유언장이 남아 있지 않는 경우 유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상속인 전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정한다. 이 이야기를 유산분할 협의라고 한다. 상속인의 누군가가 행방불명이 됐거나 인지증(치매)에 걸린 경우에도 제외는 안 된다. 제외하면 그 유산분할협의는 무효가 된다.)
상속인 전원이 이야기를 나눠 정하지 못하는 경우는 가정재판소에서 조정을, 그래도 안 되면 재판하게 된다.
잡음을 없애는 포인트
(1) 생전부터 부모 돌보기, 간병은 자식들 모두가 분담
(2) 유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유산분할 협의는 상속인만으로
3. 상속 트러블이 생기기 쉬워 주의가 필요한 경우 '가족 관계가 복잡 & 독거'
이혼을 해 아이를 양육받지 않았던 경우,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 내연 관계의 상대방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 등 가족관계가 복잡한 경우도 상속으로 자주 잡음이 생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상속인인 자식들이 다른 엄마와 다른 아버지의 형제가 있는 걸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모른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해서 그런 형제를 상속인으로부터 제외하는 것은 할 수 없고, 유산분할협의에 참가시키거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인정하게끔 할 필요가 있다.”(시모이리사)
예를 들어 남편이 죽은 경우 그 재산의 상속권은 부인만이 아니라 부모와 형제에게도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로 재산을 모두 배우자에게 남기고 싶은 경우는 유언장을 써 두자. 부모의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에는 유류분(遺留分)이라고 해서 예를 들어 유언장이 있어도 상속인이 최저한 상속할 수 있는 재산이 있다. 하지만 형제의 재산 상속에는 유류분이 없기에 100퍼센트 유언장대로 유산을 나눌 수가 있다.”(기타무라)
잡음을 없애는 포인트
(1) 배우자가 아이가 없는 경우
아이가 없는 경우 부모와 형제에게 상속의 권리가 생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생활을 부모와 형제에게 의존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부부의 재산은 부부가 쌓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 “남편(아내)의 재산은 아내(남편)에게 남기고 싶다”고 한다면 유언으로 분명하게 그 취지를 기재해 두자.
(2) 가족관계가 복잡한 경우
예를 들어 모친이 전남편 사이의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 모친의 재혼 상대자인 현 남편이 사망해도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도 실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재산을 넘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양자 관계를 할지 유언이 필요하게 된다. 유언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장 문제가 생기기 어려운 건 법률 전문가인 공증인이 만드는 공정증서유언. 비용은 10만엔 정도(재산액과 상속인의 숫자 등에 따라 다르다)로 전문가가 만들기 때문에 안심. 병원과 시설 등에 공증인을 불러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 집, 토지 이외에 어떤 재산이 있는지?
△ 부모 의향을 들어 두자
△ 상속인이 누구이고 몇 명 있는지?
△ 빚은 없는지?
△ 부모의 간병 등 상속인 한 사람에게 부담이 몰려 있지 않은지?
※기사 중 법률적인 내용은 일본 현지의 법률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국내법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중년이라면 성공적인 자식과의 관계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아들과 같은 패션을 공유하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집에 와서는 아들의 고민을 상담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 그리고 내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자식의 미래에 커다란 멘토 역할을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부모자식 관계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것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여기 두 남자가 있다. 아들보다 옷을 더 잘 입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무너진 자존감을 세워주는 아들이다.
지난해 3월 서울패션위크, 최수혁씨는 아버지와 함께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찾았다. 대한민국의 패션 피플이 모두 모인다는 그 주에 아버지와 함께 멋지게 빼입고 부산에서 상경한 것이다. 그곳에 입장하기 전 최씨는 지인으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다.
“수혁아, 아마 너와 아버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거야. 준비 단단히 해라.”
지인의 이야기에 콧방귀를 뀐 최수혁씨와 그의 아버지 최용환씨는 인생에서 믿기지 않는 경험을 한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여기서 포즈 좀 취해주세요.”
지인의 말이 맞았다. 믿기지 않지만 이 부자(父子)의 사진을 찍기 위해 두 줄, 세 줄의 카메라 라인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연신 플래시가 터졌다. 이 부자의 패션은 SNS를 타고 네티즌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아버지인 최용환씨는 이탈리아의 ‘중년 멋쟁이’로 소문난 이탈리아의 패션 에디터 닉 우스터(Nick Wooster)에 버금간다며 찬사가 쏟아졌다.
아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 옷을 입고, 아버지는 옷을 구매할 때 아들 것까지 두 벌을 맞춘다. 패션에서 전혀 거리낌이 없으며, 세대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수혁씨가 아버지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것은 ‘함께 살며’ 비밀까지 터놓는 친구 같은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의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노래방에서 함께 즐기는 아버지는 영락없는 친구다.
함께 살기? 이들처럼만 한다면 인생,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섹스 이야기를 하는 부자
“아들에게 그래요. ‘야동’ 보지 말라고요. 그것은 판타지잖아요. 섹스는 서로가 좋아야 하는 것인데 야동을 보고 배우면 파트너는 전혀 좋지가 않거든요.”
아들인 수혁씨는 깊은 고민이 있을 때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하는 것도 좋지만, 인생의 깊은 이야기는 함께 사는 아버지에게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는 아들에게 아버지 용환씨는 결코 충고를 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스토리텔링과 조언이 있을 뿐이다. 그 고민의 소재 또한 다양하다. 부자지간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아버지는 스스럼없이 한다.
“아들과 벽 없이 지내려고 노력해요. 벽 사이엔 거짓이 있으니까요. 아들과 친구가 되려면 제 모든 것을 꺼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비밀이 없어야 둘 사이에 거짓이 없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버지 용환씨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보여줄 것’과 ‘안 보여줄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아들에게 털어놓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흑역사’라도 말이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아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용환씨. 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고, 잘못된 것이라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어려운 것 모르고 자랐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됐어요. 아버지는 제가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뭐든지 해주셨죠. 철이 없던 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그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제 아들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되기 싫었습니다. 꼭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죠.”
사실 아버지 용환씨가 아들의 친구들과 맞담배를 피우고, 그들의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날의 그들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 아버지 용환씨는 소위 한가닥했던 ‘놀아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창문을 180개 정도 깼어요. 자해 시도까지 한 적도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들에게도 이 이야기는 해줘야겠어요. 놀아봐야 인생을 알거든요.”
윈-윈의 관계라 함께 살아 좋다
“아버지와 같이 살면 좋은 점요?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함께 사니 무엇이 좋으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수혁씨의 답변이 조금은 의외였다. 워낙 빼어난 패션 센스로 기자를 놀라게 했던 탓에 ‘아버지의 패션 센스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답변은 소금 간을 하지 않은 음식처럼 조금은 싱거웠지만, 담백하고 영양가가 있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신중년이 들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경청’이었다. 여러 관계에서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은 바로 소통의 시작이자 성공적인 관계의 출발점 이었다.
우리네 자식들도 배워야 할 점은 있다. 바로 부모 세대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북돋워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들 수혁씨가 아버지를 ‘SNS 핫 피플’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도 이와 같다. 자신에게는 최고의 ‘패션왕’인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를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아버지를 위해 아들 수혁씨가 패션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일종의 아버지 ‘기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중에 아버지의 패션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물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확신에 차서 아버지께 제대로 빼입고 사진 한번 찍자고 했어요. 그리고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저보다 아버지에 대한 반응이 더 폭발적이더라고요.”
처음엔 어색해하던 용환씨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변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업 실패로 떨어진 자신감이 아들 덕분에 생겼어요. 이제는 부산 서면(西面)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저를 알아보고 사진 찍자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정말 놀라운 일이죠.”
함께 살고, 함께 입고, 함께 사업한다.
아버지 용환씨의 패션 철학은 뚜렷하다. 바지의 길이는 복숭아뼈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 없고, 바지의 통은 항상 7인치를 유지한다. 옷을 살 때는 사이즈보다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합리적인 가격이어야 한다, 어떨 때는 옷값보다 수선비가 더 많이 나올 때가 있다. 옷은 몸에 꼭 맞게 입어야 한다는 그만의 철칙 때문이다.
“아들이 갓 성인이 됐을 때 옷을 입고 나가는데 너무 짜증이 나더라고요. 옷을 너무 못 입어서요. 내가 ‘이렇게 입으라’고 조언을 하면, 자기 뜻대로 입으려고 고집을 피우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합니다. 참으로 우습죠.”
이런 아버지의 패션 센스를 보고 자란 덕분인지 아들 수혁씨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패션 사업을 같이한다는 게 궁합이 잘 맞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보다 더 젊게 옷을 입는 아버지 덕에 그런 걱정은 이미 날려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역할도 뒤바뀐 듯하다. 마케팅과 디자인은 아들이 맡고, 모델은 아버지다. 참으로 비범한 사업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는 항상 옷을 살 때 제 것까지 두 벌을 맞추셨죠. 이제는 그 옷을 입고 함께 사업을 하려 합니다. 아버지의 ‘Father’와 아들의 ‘Son’을 결합해 ‘Fason’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어요. 늘 아버지와 함께하니 힘도 두 배가 됩니다.”
이 부자는 묘하게 닮았다. 여유로운 행동이나 꼿꼿한 자세.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까지. 함께 살기란 닮아가는 것이다. 무의식 중에 서로를 배려하고 닮아가려 한다는 것. 그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함께 산다면 가족의 얼굴을 보라. 함께 살며 닮아 있는 것은 이 부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터이니.
“한때는 꿈이 있었지/가슴에 묻어 왔던 꿈이/사랑은 영원하다고/철없이 믿어 왔던 날들/하지만 그 꿈은 잠시/한순간 사라져 버렸네” ( 삽입곡 ‘I dreamed a dream’)
아내 윤이남(尹二男·70)씨가 첫 소절을 부르자 남편 권영국(權寧國·75)씨가 부드러운 화음을 넣는다. 그들이 부른 노래처럼 부부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가수를 꿈꾸었던 소년과 간호사를 꿈꾸었던 소녀, 잠시 사라진 듯했던 그들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가수를 꿈꾸었던 권씨와는 다르게 음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윤씨. 그녀가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었다. 신혼 시절, 어느 날 가야금을 사들고 온 남편은 “당신 가야금 연주하면 정말 아름답겠다. 어머니 환갑 때 연주하면 좋겠다”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가야금은커녕 악기는 배워볼 생각도 없던 아내는 그 말을 웃어넘겼고, 가야금은 집 한편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윤씨는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년간 연습한 끝에 시어머니의 환갑잔치 날 ‘아리랑’과 ‘도라지’를 연주해냈다.
남편이 그랬듯 아내는 “당신, 내 가야금 연주에 판소리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함께 음악의 즐거움을 공유하기 시작해 색소폰, 플루트, 하모니카 등 악기뿐만 아니라 스포츠댄스, 합창, 사물놀이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해오던 그들은 2007년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당시 예순을 넘긴 부부였지만 ‘아무리 고되어도 인생의 두 번째 문은 열린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2008년, 노년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의 오디션에 부부가 동시에 합격하게 된다. 20명 남짓 뽑는 오디션에 14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한 덕에 그들은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꿈을 펼친 뮤지컬 (2008)의 공연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다. 1967년 12월, 당시 시민회관이었던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고, 결혼 40주년이 되던 해에 그곳에서 뮤지컬 배우로 서게 된 것이다. 꿈을 이룬 이후에도 그들의 일상은 분주하다. 연기활동 외에도 함께 구연동화 자격증을 따서 봉사활동도 다니고, 노인 상담, 인문학 강의, 악기 연주 재능기부도 하는 등 다정히 손을 잡고 행복한 제2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 부부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고 노래를 부르느라 새벽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고 한다. 잦은 대화는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노력이다. 그런 추억을 모아 2014년에는 이라는 부부 자서전도 만들었다. 이후 각자의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은 늘 그렇듯 함께 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담아가고 있다.
Q & 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남편) 학창시절부터 노래의 즐거움을 알았고, 무대를 동경해왔죠. 음악은 취미로만 여겼을 뿐, 직업이 되기는 어려웠어요. 직장생활하고 연년생인 삼남매를 정신없이 키우느라 ‘꿈’은 정말 꿈도 못 꾸고 살았죠.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남편) 50세가 되던 해, 무엇이든 아내와 같이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러던 어느 날 ‘충무아트홀 연극 교실’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죠. 아직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 길로 아내와 연극 교실에 등록했고, 그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꿈의 무대에 도전하게 됐어요.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아내) 어릴 땐 나이팅게일처럼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늘 ‘멘소래담’ 같은 연고를 들고 다니며 다친 아이들에게 발라주곤 했죠. 결혼을 하고 꿈이라는 것은 딱히 없이 지냈는데, 남편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잠재된 재능을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꿈과 목표가 생겼죠. 중년 이후의 꿈은 남편이 찾아준 것과 마찬가지예요.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아내) 뮤지컬 배우는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노래, 연기, 춤,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대사 암기가 난관 중 하나였어요. ‘연습만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언제 어디서든 남편과 대사를 맞추고 안무를 익혔죠.
당신의 꿈은 무슨 색?
(남편) 어떤 꿈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죠. 젊어서 꾸던 진취적인 꿈, 중년에 꾸던 삶의 돌파구 같던 꿈 등. 지금 떠올려보면, 행복했던 꿈도 있고 서글픈 꿈도 있고 그래요. 지금은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빛을 띤 색이라 하고 싶어요.
(아내) 저는 아직도 무지갯빛 꿈을 꿔요. 모든 일이 재밌고, 신나고, 행복하고, 그만큼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색깔의 삶을 살고 있죠.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남편) 커튼콜. 그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그 광경은 잊지 못해요.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꿈을 이뤘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 부부도 많이 없지만, 우리처럼 노년에 뮤지컬 배우가 된 부부는 거의 없잖아요.
(아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노년의 삶이 준 선물이죠.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어르신 모시느라 제 삶이 없었잖아요.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제 삶을 사는 시간도 많아졌죠.
불현듯 옛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좋았을 때가 생각나면 크게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아쉽게도 안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 않았어야 할 말들,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행동들, 만나지 말아야 했을 사람들, 겪지 않아도 좋았을 경험들….
무심결에 실수하거나 다분히 고의로 악행을 저지르는 과거의 나와 머릿속에서 마주칠 때마다, 또는 내게 그렇게 하는 다른 누군가와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다. 반성보다는 후회를 먼저 하는 것이, 그래서 곱씹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기보다는 그저 떨쳐버리려 하는 것이 나라는 용렬한 인간의 한심한 습성이다.
저마다 삶의 무게는 다르다, 트라우마도 다르다
요즘 부쩍 늘어난 그런 현상을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설명했더니, 대뜸 용어 정리부터 해주었다. 트라우마(trauma)는 옛날 그리스말로 ‘상처’를 뜻하는 단어라고, 그러므로 내가 의도한 뜻으로 쓰려면 앞에 ‘정신적’이라는 말을 붙여야 좀 더 옳다고, 트라우마가 ‘심적 외상’이라는 뜻으로 곧장 쓰이는 분야는 정신의학과밖에 없다고. 누가 이과 출신 아니랄까봐 자못 까다롭다.
그러면서 큰 인심 쓰듯 걱정 말라고 했다. 후회와 미련은 누구나 갖고 살아간다면서 그 정도는 정신적 외상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했다. 하긴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끔찍한 테러를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고민은 차라리 사치스럽다.
친구는 그러면서도 당부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 견디지 못할 정도면 언제든 병원에 찾아오라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실은 거의 빠짐없이 과거 자신이 한 일이나 겪은 일 때문에 고통 받는다. 그렇게 되는 과정을 의학적으로 설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뇌의 변연계에 존재하는 편도와 해마라는 두 부분의 구실에 대해 안다면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아주 쉬워진다.
편도와 해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편도는 무의식, 해마는 의식과 연관된 반응과 기억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심리 상태는 편도 때문이다. 해마는 그 뒤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이었다면서 놀란 가슴 진정시키는 몫을 떠맡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편도와 해마는 당시의 경험과 감정을 각각 나눠 저장한다.
문제는 정신적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격렬한 경험을 하게 되면 편도와 해마가 제 할 일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이 급증하고 세로토닌은 급감하는, 나로서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을 생화학적 과정을 거치면서 편도의 힘이 지나치게 세지고 해마의 힘이 지나치게 약해진다.
전에 없이 활발해진 편도는 조그만 자극에 시도 때도 없이 그때 그 기억을 끄집어낸다. 세상에서 부지런한 바보처럼 해로운 것이 없다는데, 해마가 바로 그런 ‘부지런한 바보’가 되는 것이다.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는 마음의 병은 바로 그 때문에 생겨난다.
이 어려운 이름의 정신질환은 창작물, 그 가운데에서도 영화, 그 가운데에서도 스릴러 장르에 애용된다.
영화 속 트라우마의 두 얼굴
어떤 영화의 악당이 지나치게 잔혹하다면 십중팔구 이 병을 앓고 있다. 영화에는 플래시백이란 편집 기법이 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과거 회상 장면’이다. 현재 장면과 구별되게 촬영되거나 알기 쉽게 흑백 또는 세피아 톤으로 처리되곤 한다. 악당이 눈을 크게 뜨고 인상을 푹 쓰면서 천연색 영상이 세피아 톤으로 바뀐다면 ‘어릴 적 나쁜 기억이 등장하겠군’ 하면 된다.
악당만이 아니다.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 역시 부모가 흉탄에 죽음을 맞이한 끔찍한 기억과 어릴 때 우물에 갇힌 폐쇄 공포의 기억 때문에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밤낮으로 브루스 웨인과 박쥐 사나이라는 두 얼굴로 살아간다.
007 시리즈의 신작이 개봉돼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능글맞은 제임스 본드조차도 실은 어릴 때의 기억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전작 에서 제임스 본드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킨케이드(앨버트 피니)는 부모가 죽을 때 어린 제임스가 밀실에 사흘 동안 갇혀 있었다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지.”
꼬마가 더 이상 꼬마가 아니었다니, 제임스 본드의 해마 역시도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진 게 틀림없다. 부모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처절한 경험과 폐쇄 공포라는 극단적 경험을 한꺼번에 치른 이후에.
스스로 진단하는 기준이 있다
얼마나 힘들어야 힘든 것일까? 바보 같은 해마가 얼마나 부지런해져야 ‘마음의 병’이라고 부를 수준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생활하기 힘들 정도면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좀 젠체하는 의사라면 미국정신의학회의 에 실려 있는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말이 나왔으니 그곳에 실린 진단기준이라는 녀석을 써보기는 하겠는데, 과히 기대는 않는 게 좋겠다. 문장이 너무 까다로워서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거기에 따르면 이 병에 걸리려면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실제적 죽음 또는 죽음의 위협에 대한 사건들 또는 심한 부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위협을 경험, 목격하거나 직접 직면한 적이 한 번 또는 여러 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뒤 ‘강한 두려움, 무력감 또는 공포를 포함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
이 정신없는 진단기준은 심지어 자주 바뀌기까지 한다. 1980년에 처음 정해진 뒤로 벌써 다섯 번 이상 고쳐졌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서 기준에 대한 연구와 주장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란다.
과거의 극심한 경험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게 병적으로 좋다면 또 몰라도,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기준 따위는 그냥 잊도록 하자. 다행히 미국정신의학회도 자신들의 기준이 좀 심란한 줄은 알았는지 일반 사람들이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PTSD 자가 진단 기준’ 참조)
물론 이것은 테스트용일 뿐이다. 정확한 진단은 전문의에게 맡겨야 한다.
완벽한 해결방법은 없음을 인정하는 것
많은 의사들은 말한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현실이 힘들다면, 그 끔찍한 기억에 스스로 대항하는 수밖에 없다고.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뜻이다.
“한 번 상처 난 마음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적절하게 예를 들더군요. 종이 한 장을 집어 들더니 꾸깃꾸깃 구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뒤 ‘지금 이 종이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렇습니다. 한 번 구겨진 종이는 두 번 다시 예전처럼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짙건 옅건 구김이 남아 있지요.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 사건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함으로써 ‘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 나아가 자신의 대처능력에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일본 무사시노대학 심리임상센터의 고니시 세이코(小西聖子) 박사의 말이다. 완벽한 해결방법은 없음을 인정하고 과거에 용감히 맞부딪치면서 이겨나가는 것, 적어도 그렇게 마음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섣불리 “그냥 잊어”라고 종용하는 것은 술 마신 다음 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그리 마셨어?” 하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술 마시는 사람은 다음 날 괴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알면서도 마시는 것이다.
PTSD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잊고 싶다. 다만 잊히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괴로울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대해상 블로그에 트라우마와 관련해 흥미로운 제안이 실려 있어 소개하기로 한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나름대로의 답안이다.
결국은 욕심을 버리고 더 부지런하고 솔직해지면서 착해지자는 말인데, 비단 정신질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충고는 아닌 것 같다.
>> 김유준(金裕俊)
1966년생. 20여 년 동안 영화전문지 , 남성교양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도서출판 현재) 등을 번역했다.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1.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비 오는데 전화도 안 받네. 워런 도사님 거기는 어디야?” BJ(Broadcasting Jockey) 오작교가 노래를 부르다 말고 혼잣말을 하다가 채팅창을 보며 대화를 한다. 아프리카TV 최고령 BJ 진영수(74)씨의 최근 인터넷 1인 방송이다.
#2. BJ 슈기(최슬기·21)가 떡볶이 네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는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쩝쩝 소리를 낸다. 이어 치즈 스틱을 먹는다. 끊임없이 “후루룩 쩝쩝”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인터넷 1인 방송 ‘슈기 잘 먹는 먹방’이다.
#3.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중계방송하는 양띵(양지영·25)은 1인 방송 구독자 및 애청자가 201만 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온라인 게임에 관심 있는 10~20대에게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진영수씨는 인터넷 1인 방송을 통해 인생 상담도 하고 자신의 힘든 상황을 전달하며 네티즌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1인 방송을 하면서 우울증도 극복하고 삶이 활기차다고 말한다. 최슬기씨는 먹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만으로 대기업 임원 월급 수준인 월 15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양지영씨는 게임방송으로 연예인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얻으며 KBS 진행자로 진출했다.
인터넷 1인 방송 열풍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프리카TV에서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만 22만 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1인 방송을 하는 사람이 수십만 명에 달하고 1인 방송 시청 인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 1인 방송자(BJ), 시니어층까지 다양
인터넷 1인 방송은 특별한 기술 없이 카메라와 마이크 등 간단한 장비로 PC와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PC 등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다. 웹이나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스트리밍 혹은 주문형(VOD) 방식으로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1인 방송자(BJ)들은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다음-카카오, 네이버,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통해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1인 방송은 대화창이 떠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쌍방향 방송을 할 수 있다. 먹방, 쿡방, 게임방송, 증권방송, 인생상담, 스포츠 중계, 공부방송, 뷰티방송 등 방송 콘텐츠는 제한이 없다. 방송하는 사람 역시 일반인부터 연예인 등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젊은 10대나 20대가 1인 방송을 많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진영수씨처럼 중·장년과 시니어에서도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 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10월 14일 발표한 19~50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인터넷 개인방송 관련 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4%가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1인 방송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64.3%는 1인 방송을 시청자의 다양한 욕망을 표출해주는 창구로 인식하고 있다. 1인 방송을 시청하는 이유(중복응답)로는 50.2%가 ‘콘텐츠가 재미있어서’라고 답해 1위를 차지했고 다음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기 위해(37.2%), 실시간 참여가 가능해서(24.8%), 전문가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21.3%), 누군가와 소통하는 느낌이라서(18.3), 함께 댓글을 달면서 참여하는 재미가 있어서(14.5%) 누군가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11.7%), 대리만족하려고(1.7%) 순이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진이 2016년 내년 트렌드를 전망한 ‘트렌드 코리아 2016’에서 꼽은 소비 트렌드 10가지 중 하나가 바로 1인 방송을 비롯한 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1인 방송을 하는 BJ 중 양띵, 악어, 대도서관, 허팝, 최군, 슈기, 김이브, 영국 남자, 소프, 쿠쿠크루 등 유명 BJ들은 연간 2억~4억 원의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독창적이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네티즌의 눈길을 끌면 누구나 고액의 수입을 올리는 BJ가 될 수 있다.
◇ MCN 사업자들 국내의 콘텐츠 내보내
1인 방송 BJ의 수입 창출원은 크게 두 가지다. 아프리카TV의 1인 방송처럼 방송을 본 네티즌이 100원짜리 별 풍선을 구입해 마음에 드는 1인 방송자에게 주면 이것이 수입으로 직결된다. 또 하나의 이윤 창구는 유튜브 등 1인 방송에 붙는 광고를 통한 수입이다.
외국의 경우는 1인 방송으로 연간 135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등장했다. 미국 경제잡지 10월 14일자에 게재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유튜브 스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유튜브 1인 방송 스타 중 게임방송을 하는 퓨디파이(방송자 펠릭스 셀버그) 채널은 구독자가 4000만 명에 이르고 수입이 1200만 달러(135억원)에 달한다. 코미디 패러디를 전문으로 하는 스모시(방송자 이언 해콕스, 앤서니 파딜라) 채널은 구독자 2136만 명, 수입 858만 달러이다.
1인 방송의 잠재적 사업성과 문화적 파급력에 주목한 기업과 방송사들이 앞다퉈 1인 방송자를 양성하고 관리해 이윤을 창출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s)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선두주자는 CJ E&M에서 운영하는 ‘다이아TV’다. 다이아TV는 현재 417개 1인 개인 방송을 운영, 관리하고 있으며 구독자 수가 2701만 명에 달한다. CJ E&M의 다이아TV 다음 규모의 MCN 사업자는 ‘트레저 헌터’다. 양띵, 악어, 김이브 등 유명 BJ가 속한 트레저 헌터는 채널 수 38개에 구독자 수가 850만 명에 이른다.
이밖에 최근 아프리카TV와 연예기획사 미스틱 엔터테인먼트가 설립한 조인트 벤처 ‘프릭’역시 인터넷 1인 방송을 관리하는 MCN 사업을 펼치고 있다. 다이아TV 등 국내 MCN 사업자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MCN사업자와 제휴해 1인 방송 콘텐츠를 해외에도 내보내기 시작했다.
◇ 1인 방송이 대중문화 판도를 바꾸다
급부상하고 있는 1인 방송은 미디어 산업 지형도를 바꿀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독창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한 콘텐츠로 무장했을 뿐만 아니라 네티즌의 참여로 방송이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이용과 인기가 급증하면서 1인 방송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MBC, KBS 등 지상파 TV와 1인 방송의 결합이 눈에 띄는 변화다. 요즘 인기가 높은 MBC 프로그램 은 바로 1인 방송과 TV 방송을 결합한 포맷이다. KBS도 최근 1인 방송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KBS가 8월부터 방송하고 있는 는 1인 방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1인 방송 콘텐츠는 방송을 비롯한 영화, 음악, 드라마 등 문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 김영주 박사는 “MBC, KBS 등 지상파 TV에 유입되기 시작한 1인 인터넷 방송이 언젠가는 전통적인 방송 프로그램과 방송 사업자들을 능가하는 빅파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1인 방송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구글은 2020년이면 전통적 방송사 스튜디오들은 25%에 그치고 75%를 1000여 개의 1인 채널과 MCN 사업자들이 차지할 것으로 관측했다. 미디어와 IT 전문가들은 “1인 방송은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방송, 대중문화의 흐름도 선도하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엄청나다”고 진단한다.
최근 들어 정부도 1인 방송 지원에 나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한국전파진흥협회와 함께 1인 방송 제작자 양성에 나섰다. 신중년도 이제 주류 미디어로 부상하며 수입과 보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1인 방송과 함께 인생 2막을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진영수씨를 비롯한 신중년 1인 방송자들은 “신중년이 1인 방송을 하면 생활에 활력이 생길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세대와의 교류와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의 접촉 기회가 많아져 삶의 스펙트럼도 확장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높다”고 입을 모은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시어머니와 장모, 어느 회사의 CEO. 미혼 여성은 미혼 여성대로, 기혼 여성은 기혼 여성대로, 대한민국 중년여성들은 각자 주어진 책임과 의무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자로서 가졌던 꿈과 정체성을 잃어가기도 한다.
“나와 함께 늙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전반이 존재하나니.”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시 ‘랍비, 벤 에즈라’의 한 구절이다. 통념과는 달리 인생의 절정기가 인생 후반에 온다는 이 구절은 나이 듦과 잘사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꽃중년은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과 다른 길을 향한 갈망, 성취감과 상실감, 자신감과 회의, 체념과 희망, 흥분과 무력감 등이 동시에 찾아오는 시기다.
여전히 중년은 기회가 주어진 가능성의 시간이다.
한평생을 자식과 남편, 가정을 위해 살아온 사람의 열정과 역량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간의 에너지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구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바퀴가 돌다 보면 어느 한쪽이 부서지고 닳게 마련. 무엇이 더 필요한지, 버릴 것은 없는지 구석구석 들여다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멈추고 쉬어야 한다. 자신을 내어주는 일과 내게 필요한 것을 재충전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 시기가 바로 50대, 60대, 70대인 것이다.
관계 맺기에 로그인을 잘해야 할 꽃중년
중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고립’이다.
나이가 들면서 여성들은 기존의 외부 인맥이 끊어진다.
개인적인 인맥을 유지하기에는 이사, 가사, 육아 등등 주어진 일들과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에 대하여 가족들에게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꾸려지는 공동체다. 그러나 여성들은
어느 순간 사람은 간 데 없고 역할만 남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로서의 역할, 아내로서의 역할.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은 그 ‘역할’들 속에 파묻히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맺은 가장 소중한 인연(人緣)
나이 들수록 소수정예 친구와 좁고 깊게 사귄다. 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다. 한 심리학 교수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을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돈을 벌수록 남을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이유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64세 최인순 씨는 “남편이 저와 대화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제가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남편 입장에서 보면 제가 정말 쉬지 않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요. 게다가 남편은 제가 하는 모든 말을 ‘수다’라 칭하며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기기도 해요” 라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여성의 인간관계는 어디서부터 올까? 바로 ‘말’이다. 여성이 대화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게 주목적인 남성과 달리, 여성은 내 기분을 상대방과 함께 나누고 공감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대화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수다 금지령을 내린다면 많은 우울증 환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여자가 말이 많다며 인신공격하는 남자는 더 이상 신사가 아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말을 끊는다. 길어지는 대화에 남편은 점점 지루해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용건만 간단히 말하기보다는 최근에 재미있고 슬픈 일 등 새로운 정보를 말하면서 상대방이 공감해주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심정을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더 잘 나누기 위해 여성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남성의 뇌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남편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아내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남녀의 대화 속도는 절대 같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떠한 결정을 해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응대만 해줘도 아내는 행복해한다.
그렇다. 부부클릭 전문가 소장은 “여자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감정이 좋은 사람과의 관계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자들이 남성에 비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있어 수다는 단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인 것 같다.
남편 아닌 다른 인연과의 관계 맺기
가족 아닌 관계를 잇고 싶은 여성들은 사는 지역에서, 혹은 종교 단체에서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리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만난 친구들이 평생 친구가 되는 이유는,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솔직히 보여줄 수 있는 나이 때에 만나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만나게 된 인연들은 서로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없을 뿐더러, 보여준다 해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족, 그리고 가족 외 관계에서 부딪히게 되는 이 모든 상황들은 중년 여성에게 고립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년 여성이 관계를 확장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건 어려우니 현재 있는 관계, 그중에서 정말 내가 믿어볼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솔직하게 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니 자꾸 가리게 되고 서로 오해가 쌓이고 친해졌어도 왠지 공허하게 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기존 관계 중에서는 가족, 그중에서 우선 배우자를 들 수 있다. 중년이 되면 남성들은 남성 호르몬이 내리막길이고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면 사회가 아닌 가족과 보낼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어서 아내와 같이 늙어간다는 걸 보다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반면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댁과 남편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시점이 오고, 그렇게 되면 조금 더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중년 여성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고 남편을 영혼의 동반자로 생각해서 솔직한 대화를 하면 관계 회복이 가능해진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재설정할 수 있다. 이미 장성한 아이는 어른 대 어른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은 서로를 믿을 수는 있지만 그간 살아온 시간과 경험들 때문에 너무 서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서드 에이지 여성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오랜 친구들에게 “우리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떠냐”라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면서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방법도 있다.
강현식 누다심심리상담센터 대표가 이런 방법도 제안했다. “지역 문화센터나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곳에 가는 방법이다. 그곳에 가서 서로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마음이 풀리고 인맥이 넓어지기도 한다. 잘 보이려 애쓰지 말고, 솔직해져 보라.” 이 모든 방법들에서 중요한 것은 숨기지 않고 솔직해지려는 자신의 다짐이다. 그 다짐이 없으면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강 대표는 강조했다.
중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특히 강 대표는 “우울증, 울화병, 쇼핑중독 현상은 모두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게 몰두한다고 해도 공허감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마음의 공허함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해소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어떤 여성들은 그러한 공허감을 해소하기 위한 관계를 맺을 때, 남편이나 자녀 같은 가족과의 관계 개선은 뒤로 미룬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여성들은 가족 안에서 그동안 관계가 아니라 역할과 희생만을 했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들은 그토록 쉽게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밖에서 관계 개선이 잘 된다고 해도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돌아오게 되는 곳은 집이고 그 안에는 가족이라는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맛집 투어를 하는 이들 못지않게 동네 유명 빵집들을 한꺼번에 둘러보는 ‘빵집 순례객’이 늘고 있는 요즘. 빵 굽는 내음이 솔솔 풍기는 서울 마포구 일대의 빵집 네 곳을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3色 공간의 매력, 프랑스 빵 공장 ‘퍼블리크(Publique)’
프랑스 밀가루를 사용한 프랑스 전통 빵을 판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이글과 빵드퍼블리크는 퍼블리크의 대표 건강빵이다.
천연발효종을 이용하고, 자동차 운전대처럼 큼직하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호밀의 함유량에 따라 세이글(호밀 100%)은 단단한 질감에 탄맛과 신맛이 나고, 빵드퍼블리크(호밀 80%)는 부드러우면서 강한 신맛이 난다. 한때는 상수동 가게에서 빵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광흥창 공장에서 그날 구운 빵을 받아 판매하고 있다. 달콤한 디저트 에끌레르도 선물용으로 인기다.
주소 서울 마포구 독막로15길 19
운영시간 11:00~22:00 (일요일/공휴일) 11:00~19:00
문의 02-333-6919
◇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크루아상 전문 베이커리 ‘르뾔이따쥬(Le Feuilletage)’
크루아상처럼 앙금이나 크림이 들어 있지 않은 빵일수록 그 맛을 결정하는 데는 버터가 한몫을 한다. 프랑스에서 공수해온 고급 버터 3종(이시니, 엘레앤비르, 에쉬레)을 사용해 모양은 같지만 각기 다른 맛과 향의 크루아상을 굽는 곳이다. 에쉬레 버터가 들어간 빵은 진하고 깊은 맛이 나고, 이시니 버터가 들어간 빵은 가볍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엘레앤비르는 그 중간 정도). 특히 에쉬레 버터는 에 소개된 재료이기도 하다.
대개 빵은 아침에 한 번 구워 하루 동안 판매하는데, 오전 10시께 방문하면 모든 종류의 빵이 진열된다. 주인장이 직접 1년에 3~4회 프랑스를 방문해 구입해오는 38가지의 다양한 티도 준비돼 있으니 곁들여 맛볼 것을 추천한다. 르뾔이따쥬는 오픈된 주방에서 베이킹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전화 상담 후 신청 가능하다.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5길 30
운영시간 8:00~22:00
문의 070-5022-1142
◇맛과 정성으로 경쟁하는 동네빵집의 자존심 ‘롤앤브레드 리퀴드(Roll&Bread Riquide)’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롤앤브레드 리퀴드는 그 규모는 작지만 내공 있는 빵맛을 내는 곳이다. 여느 빵집과는 다르게 커피나 음료를 판매하지 않고 오로지 빵 본연의 맛에만 집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매장의 반 이상을 차지한 주방에서는 시간대별로 맛있고 건강한 빵이 구워진다.
빵 별로 나오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진열된 모습을 보려면 오후 1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다.
모든 빵은 건포도 발효종과 요구르트 발효종, 신안천일염과 호주산 천연 버터로 맛을 낸다. 대표 메뉴인 탕종호밀빵은 크랜베리, 건포도, 오트밀, 해바라기씨, 호두 등 영양가 있는 재료가 호밀(함량 60%)과 어우러져 구수하고 건강한 느낌을 준다. 탕종호밀빵의 ‘탕종(湯種)’이라는 말은 쫄깃한 식감을 위해 끓는 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제빵 기술이다. 같은 방법으로 만든 탕종우유식빵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인기다.
롤앤브레드 리퀴드의 모든 식빵은 촉촉하고 연한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르지 않은 상태로 판매하고 있다. 커팅을 원하는 경우엔 카운터에 요청하면 된다.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길 34
운영시간 10:00~21:00
문의 02-334-1500
◇할머니의 손맛처럼 친근한 ‘베이커리 봉교’
창업 당시 제빵사의 외할머니 이름 ‘봉교’를 따서 이름 지었다는 베이커리 봉교는 투박하지만 그리운 할머니의 손맛처럼 정겨운 빵집이다. 저온에 장시간 숙성해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스콘은 봉교의 효자 메뉴다.
스콘과 어울리는 산딸기 잼, 살구 잼, 블루베리 잼 등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스콘을 비롯해 부드러운 우유크림이 가득한 우유크림빵, 치아바타 삼총사(콩콩 치아바타, 치즈 치아바타, 올리브 치아바타), 벌꿀로 맛을 낸 꿀 바게트 등은 오전 11시 이후에 가면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인기 제품은 일찍 동이 나기 때문에 저녁 7시 이전에 가는 것이 좋다.
주소 서울 마포구 독막로19길 46
운영시간 8:00~21:00, 매주 월요일·매월 첫째 일요일 휴무
문의 02-322-7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