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의 시작은 국제결혼 회사와의 상담부터 시작된다.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제적 능력, 어떤 여자를 원하는가 등을 고려한 상담을 통해 맞는 여성을 고르는 것이다. 국제결혼 회사는 서로의 프로필을 인터넷에 올리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오면 서로 영상 통화를 하게 한다. 그리고 베트남으로 가 맞선을 본다. 둘이 오케이 하면 신부는 그날 산부인과에 가서
꿈에 대한 열망 하나로 89세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을 또 입학하는 우제봉(禹濟鳳·89) 씨는 내친김에 박사까지 도전한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서 삶의 관록이 묻어난다. 1남 2녀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어머니로서의 삶을 완성한 그녀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
느닷없이 옛날 일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어가다 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날보다 아팠던 상처들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딸들을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며느리인 필자가 극심한 차별을 당했을 때, 또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남편. 눈앞의 억울한 현실
카드 회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딱 6일간의 기한을 주고 해당 카드로 5만 원 이상의 물건을 사면 5000원을 할인해준다고 한다. 필자를 VIP 고객이라고 추켜세우고 문자를 받는 고객에게만 베푸는 특혜라고 한다. 5만 원의 5000원은 10%다. 은행금리가 2%대인데 10%라니 그것도 공짜로! 당장 뭘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뭘 사지? 옷이나
“58년 개띠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첫마디다. 개띠의 당당함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세월이 그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아기가 많이 태어났는데 그 절정기가 1958년이다. 개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뺑뺑이 추첨으로 배정받아 들어갔다. 58년 개띠라는 말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별되고, 이후 세대와도 분
얼마 전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발언 중에 비정규직 급식 요원을 ‘밥 하는 아줌마’로 비하했다고, 매스컴의 공격을 받고 발언자가 당사자들인 급식요원 앞에서 공개 사과하고 곤욕을 치룬 일이 있었다.
옛날 우리 모두가 못 살던 시절, 서울의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거의 대부분 ‘밥하는 아줌마’인 가정부를 집에 두고 살았다. 다만 한 식구라도 먹는 입을 줄이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맞아주었다.
둘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팔이 아파서 병원에 다닌다고 필자가 카톡에 근황을 올렸더니 갓김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여 울산에서 서울로 택배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여 보내야 할 지 몰라 평소 시어머니가 즐겨 만들어 준 음식을 생각하며 둘째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래시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20대 초반쯤 아버지가 살고 계시던 사택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담 너머로 무심코 눈길을 돌리던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무 막대기로 얼기설기 엮은 짐승우리 같은 곳에 발가벗은 사람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이 오물을 벽에 칠한다는 치매 환자임을 알게 됐다. 가족
12년 만에 최고로 길었던 추석 연휴가 지났다. 긴 연휴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수많은 며느리들에게 육체적인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늘어난 휴일만큼 더 많은 가사에 시달리면서 허리와 손목, 어깨 등에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정형외과는 명절 연휴 직후가 성수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연세에이스정형외과에서 만난 이순옥(李純玉·64)씨도 명
열흘간의 추석 황금연휴가 지났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새 옷도 입었던 어릴 적 추석 명절이 행복했다. 성년이 되어 밤새워 차를 몰아 부모님을 찾아뵈었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올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 증후군, 명절 이혼, 고부 갈등이란 이름의 명절 스트레스가 커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명절준비가 제일 큰 문제였다.
아내는 시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