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맞아주었다.
둘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팔이 아파서 병원에 다닌다고 필자가 카톡에 근황을 올렸더니 갓김치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하여 울산에서 서울로 택배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여 보내야 할 지 몰라 평소 시어머니가 즐겨 만들어 준 음식을 생각하며 둘째 며느리는 인터넷에서 래시피를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치를 담고 반찬을 만들어 보낸다는 글과 함께 보내져 온 것이다.
잘 만들고 싶어 너무 간과 맛을 많이 봐서인지 혀가 얼얼하다 못해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어찌 자신이 직접 만들어온 음식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놀랐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만 하다가 아들을 만나 연애결혼을 한 터라 요리를 하는 것을 배울 기회도 없었을 며느리가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라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반포지효라는 말을 들어봤지만 요즘 아이들이 그런 말을 안다하더라도 실천하기 힘든 것이 세태인데 며느리가 팔이 아픈 시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것도 혀 감각이 없을 정도로 맛을 봐가면서 만들어 보냈다는 글을 읽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그런 며느리에게 지난 구정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 번 호통을 쳐서 며느리를 울린 필자로서는 미안하고 죄스런 느낌이 더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내심 교육적인 목적으로 했다지만 방법상 좋지는 않았었다. 더욱이 어린 손주를 엎고 천리 길을 달려온 기특한 며느리에게 한 언행은 시아버지답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 온갖 반찬을 다 만들어 골고루 보내왔으니 이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 그 반찬으로 나의 잘못도 함께 용서해주는 것 같아 더욱 내심 기뻤다.
얼마 전 며느리가 어지러움증이 있어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을 때도 그것이 혹시 나 때문이 아닌지 가슴이 덜컥 했었다. 체면상 호통을 치고도 따로 불러 다독거려 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며느리가 이제 효도할 줄 아는 사람임을 그 한 번의 효행으로 다 예상이 되니 이제 더 이상 며느리를 나무라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며느리의 효행에 대해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지금부터 곰곰이 생각해서 실행에 옮겨야 하는 숙제를 받게 된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
손자는 그냥 크는 것이 아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희생으로 크는 것처럼 손자도 아들 내외의 보살핌과 희생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평소 손자를 부모에게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효도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오면서도 어찌 그날은 그런 며느리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주마가편이라 하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하여 기대하는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