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품 상속에 쏠리는 자산가의 시선
- 현금 및 유가증권, 귀금속류, 부동산(회원권), 주식(상장 및 비상장 불문), 금융자산(금융상품) 등의 전통적인 상속 재산 이외에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 문의가 늘고 있다. 미술품은 고급 취미를 즐기면서 저금리 시대의 대체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세무변호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동산, 주식 및 금융자산은 실명 등기 또는 등록이 의무이고 그 평가기준이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어 과세당국이 양도, 증여 및 상속과 같이 그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쉽게 포착해 과세할 수 있다. 반면, 미술품은 양도, 증여 및 상속 여부와 같은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과세당국이 쉽게 포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이를 포착하더라도 그 과세표준(즉,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미술품 부과 세금, 이렇게 다르다 그렇다면 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어떻게 부과될까? 원칙적으로는 미술품의 생성단계(작가의 측면), 유통단계(화랑, 경매 회사의 측면), 소비단계(수집가, 미술관의 측면)로 구분해야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범위인 수집가 측면에서 미술작품을 양도, 증여 및 상속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미술품 과세를 소개한다. 먼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이 미술품을 양도할 경우다. 양도인은 미술품 양도로 인해 일정한 소득을 얻는다. 그 소득에 대해서는 ①그 양도가액이 건당 6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 한해(금액 기준), ②그 작품이 외국 작가의 작품이거나 또는 양도 시점에 국내 원작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 한해(작가 기준), ③‘양도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된다(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④기타소득으로 과세되는 경우라도, 미술품 양도가액의 80%, 미술품 보유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양도가액의 90%까지 필요경비가 인정되고, 실제 소요된 필요경비가 위 금액보다 크다면 실제 소요된 금액만큼 필요경비가 인정된다(고율의 필요경비 인정). ⑤분리과세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미술품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양도가액에서 위 필요경비를 차감한 금액에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을 적용한 금액을 원천징수한 뒤, 다음 달 10일까지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으로 세금 납부가 종결된다(세금신고 및 납부의 간편성). 요약하면, 다른 경우에 비해 소득세 부담이 적고 소득세 신고납부의 절차도 간편하다. 또한 미술품 거래에는 부가가치세가 면세된다. 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까지 과세되는 귀금속 거래에 비해 유리하다. 주식거래와 달리 증권거래세도 없고, 부동산(회원권) 거래와 달리 취득세도 없다. 게다가 실무적으로 볼 때 미술품은 등기·등록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양도의 경우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원천징수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과세당국이 포착해 과세하기는 더더욱 어렵다(참고로 양도인이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 경우 원천징수불이행가산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다운계약서, 불법적 요소 주의해야 양도와 달리,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경우에는 다른 재산 대비 유의미한 절세제도는 도입되어 있지 않다.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때는 다른 재산과 동일하게 증여 또는 상속세를 신고 및 납부해야 한다. 다만, 증여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기 위해서는 증여 또는 상속 재산을 증여 또는 상속일 당일의 ‘시가’가 얼마인지를 금액으로 평가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인 이상 전문가의 감정평균금액과 국세청위촉 3인에 의한 감정평가심의회 감정가액 중 높은 금액으로 미술품의 ‘시가’를 결정한다. 미술품의 경우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작품별 소장가치 및 투자가치가 가격 형성의 기초가 되어 참고할 만한 다른 가격을 찾기 어렵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평가에 주관적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 그 평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평가금액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최선은 아니겠지만 차선으로 위와 같은 ‘시가’ 결정의 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 때문인지 위와 같은 미술품의 ‘시가’ 결정에 대한 세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실무상으로는 세무조사 단계에서 피상속인의 미술품 취득가액이 입증될 경우 그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는 사례도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고려해 일단 미술품 취득에 대해서는 소위 ‘다운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다운계약서’ 작성은 오히려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서 조세포탈죄로 처벌받을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다운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취득가액을 기재한 매매계약서나 경매기록을 보관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고, 실제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기록들은 관리를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챙겨두는 것이 자녀들의 상속세 또는 세무조사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길이다. 한편,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달리 상속 재산인 미술품으로 물납(物納)할 수 없다. 즉 미술품의 경우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에게 다수의 미술품을 상속하려면 그에 대한 상속세 납부재원을 반드시 함께 마련해야 한다. 미술품을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공익법인에 출연해 자녀들에게 관리하게 함으로써 당장의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절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공익법인의 경우 미술품 출연 이후 생각보다 까다로운 규제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미술시장은 거래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거래비용이 과다하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을 추진 중이고, 부동산처럼 일정 기준 이상은 등록제 또는 공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지적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향후 어떻게 미술품 관련 법과 세제가 정비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도록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하고, 개인 소장자의 미술품 양도에 대한 과세기준을 현행 6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며, (이번에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미술품 구매에 대한 손금 인정 한도를 건당 취득금액기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 이를 통해 전체적인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 및 양성화되길 바란다.
- 2018-10-01 09:27
-
- 다주택자 양도세 폭탄 피하는 절세전략
- 다(多)주택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사실 한발 늦었다. 3월 31일까지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다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한 출구가 매우 좁아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을 팔 수 없어 ‘보유’로 가닥을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증여나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양도세를 줄이는 대안 마련이 필수다. 다주택자 ‘최고 68.2%’ 양도세 중과 수도권 소재 주택 세 채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김모(62) 씨는 당초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집 한 채를 물려줄 작정이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세금 압박이 커지면서 증여 시점을 앞당기게 됐다. 부동산 세금에 대한 김 씨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다주택자를 정조준한 정부의 규제에 무작정 ‘버티기’로 대응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만일 김 씨의 주택이 조정대상 지역에 있고, 집값이 구입 당시보다 5억 원이 넘게 올랐다면 양도차익의 7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4월 1일부터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가 대폭 늘어난다. 조정대상 지역에서 주택을 매각하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가 추가된다. 여기에 올해 세법 개정으로 양도세 최고세율이 기존 40%에서 42%로 2%포인트 높아졌다. 양도차익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면 38%, 3억 원을 넘으면 40%, 5억 원 초과인 경우 42%의 세율을 각각 적용받는다. 3주택자인 경우 기본세율에 20%포인트가 추가되고, 양도세의 10%가 다시 주민세로 붙기 때문에 최고 68.2%의 양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집값 상승분의 7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단 양도세 중과세는 조정대상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주택자라도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매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과세는 물지 않는다. 현재 조정대상 지역은 서울 전역(25개구), 경기 7개시(과천,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남양주, 동탄2신도시), 부산 7개구(남구, 해운대구, 수영구, 연제구, 동래구, 부산진구, 기장군)와 세종시다. ‘부담부 증여’ 양도세 따져라 주택 수는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로 계산된다. 본인 및 배우자 소유의 주택은 물론이고 세법상 동일 세대원의 소유 주택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별도 세대로 분리할 수 있는 세대원 소유의 주택은 떼어내는 것이 절세 포인트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이다. 자녀가 세법상 별도 세대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면 세대를 분리해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세법에서는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으로 독립생계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독립세대로 인정한다. 앞서 김 씨의 자녀가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이고, 소득이 있다면 자녀에게 증여해 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미혼이고 독립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증여해도 주택 수가 별도로 계산되지 않는다. 증여 방법은 크게 단순 증여나 부채를 승계하는 부담부 증여 중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부담부 증여를 선호한다. 부담부 증여는 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 증여자(부모)의 채무를 수증자(자녀)가 인수하는 조건의 증여 방식이다. 전체 평가액 중 부채 승계금액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내고, 부채 승계금액에 대해서는 양도세가 붙는다. 김종필 세무사는 “4월 이후 부담부 증여의 경우 양도세 중과가 적용될 수 있어, 단순 증여와 부담부 증여 시 세금을 비교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경우라면 배우자에게 증여하는 방법도 있다. 배우자에게 증여할 때 주택 수는 달라지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부부간 증여는 6억 원까지 배우자 공제가 적용된다. 가령 3년 전 4억 원에 구입해 6억 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아내에게 증여하면, 배우자 공제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배우자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후 제3자에게 6억 원에 매도하면 양도차액이 발생하지 않아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단 증여 후 단시일 내 양도는 주의해야 한다. 증여 후 5년 이내에 매매할 경우 조세 회피를 위한 것으로 간주해, 애초 취득금액인 4억 원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이 계산된다. 증여 후 5년이 지나면 증여 당시 평가금액이 취득금액이 되므로, 5년 이상 보유 의사가 있다면 가족 간 증여 후 양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절세 방안이 될 수 있다. 임대사업 등록 … 8년 이상 장기전략 서울 마포구에서 다가구주택을 세놓은 임모(68) 씨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놓고 고심 중이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 외에도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비롯해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은 노후 생활비여서 당장의 매각은 고려하지 않지만, 자칫 임대사업 등록으로 소득만 드러나고 실익은 크지 않을 수도 있어 망설인다”고 말했다. 최근 임대사업자 등록을 선택하는 다주택자가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2월 한 달간 신규 등록한 개인 임대주택사업자는 9199명으로 지난해 2월(3861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지난 1월(9313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2월은 설 연휴로 등록 가능한 근무일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평균 등록자는 1월 423명에서 2월 511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는 굳이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세청은 신고하지 않더라도 임대차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직장인의 월세소득공제는 물론, 주민센터를 통해 확정일자 정보도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대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각종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조정대상 지역에서 (임대)수익률이 높고 집값 상승 여력이 있는 주택을 가진 경우라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장기적으로 세금을 줄여나가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이 줄거나 면제된다. 장기특별보유공제 혜택도 있다. 다만 4월 1일 이후 사업자 등록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8년 이상 ‘장기임대’로 좁혀진다. 3월까지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 의무기간 4년의 단기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고, 5년 이상 임대하면 양도세와 종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4월 이후에 양도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혜택을 받으려면 8년 이상 임대주택 등록을 해야 한다. 8년 임대 시 건보료의 80%가 감면되고, 매각 시에는 매매 차익의 7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장기 임대주택 혜택은 시·군·구청과 세무서에 모두 등록해야 하며, 임대료는 의무임대기간 동안 연 5% 범위로 인상폭이 제한된다. 의무임대기간에 주택을 매매할 경우 주택당 최대 1000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감면된 세금도 추징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 2018-03-29 10:36
-
- ‘치즈 공방’으로 은퇴 후 인생 숙성 어때요?
-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치즈 시장은 어디일까? 와인이나 참치 등 다양한 식품을 소비해내는 세계 시장의 블랙홀 중국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 주인공은 한국이다. 우리나라 치즈 시장은 2011년부터 6년간 56%가 성장했다. 한국인의 입맛이 치즈에 길들여지는 상황에서 시니어의 두 번째 직업으로 치즈 공방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은퇴자의 새로운 직업으로 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귀농과 결합한 생활 설계가 가능하고, 소자본으로도 시작해 볼 수 있다. 농촌 토착민들과 경쟁해야 할 가능성도 낮다. 굳이 시골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즈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1960년대.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임실 사람들에게 자급자족할 수단을 만들어주기 위해 산양 두 마리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프랜차이즈 피자 식당이 대중화하면서 치즈 소비는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한국 낙농가들이 치즈를 제조하기 시작한 계기는 1998년 7월이다. 국립순천대학교에서 낙농가를 대상으로 한 유제품 제조 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것이 시초가 돼 생산이 본격화됐다. 국내에서 개인이 유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직접 젖소를 키워 생산한 원유로 유제품을 만드는 목장유가공장과 원유를 외부에서 공급받아 제조해 유통하는 소규모 유가공장 그리고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가내수공업형 치즈 공방이 있다. 목장유가공장과 소규모 유가공장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제조가공업에 속하지만, 치즈 공방은 즉석제조판매가공업으로 분류 신고 대상이다. 큰 욕심내다간 ‘낭패’ 여러 가지 형태 중 은퇴자들이 교육을 받고 유제품을 만들어 수입을 낼 수 있는 형태로 전문가들은 가내수공업형 치즈 공방을 꼽는다. 국내에서 최초로 목장유가공 교육을 실시해온 배인휴 국립순천대학교 동물자원과학과 교수는 낙농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무리해 사업화하기에는 넘어야 할 기술적, 제도적 장벽이 높다고 설명한다. “국내에선 완전히 정착된 산업 분야가 아니어서 도전해볼 만합니다. 유제품으로 식품제조가공업을 하기 위해선 고도의 유가공 기술뿐만 아니라 위생을 위한 시설도 갖춰야 하고, 까다로운 해썹(HACCP) 인증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준이라면 치즈 공방으로도 충분해요. 큰돈 바라지 않고 친척이나 자녀, 손주에게 건강한 먹거리 나눠주며 할 수 있는 사업을 원한다면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거예요.” 만약 유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원유를 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국내 낙농가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남아서 문제가 될 지경이지만, 관련법상 살균 상태에서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관련 시설을 갖춘 목장을 찾아야 한다. 국내 원유의 품질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어서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에 적당하다. 목장의 수배가 마땅치 않다면 대형 유가공 회사의 저온살균유나 유기농시유를 구입해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제조시설을 갖추는 데도 큰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3중 재킷 솥의 일종인 치즈 배트(vat)와 발효탱크, 숙성고, 냉장고에 상온을 유지할 냉·난방장치 정도면 가능하다. 10평 내외의 공간에서 이런 장비를 갖추려면 약 3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위치는 공간 확보만 가능하면 도심에서도 가능하다. 관련법상 시설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만 지키기 까다로운 수준은 아니다. 몇 가지 절차만 따르면 백화점 설치도 가능하다. 만약 규모를 키워 식품제조가공업 수준으로 확장하려면 어떨까? 전문가들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경고한다. 관련 규정이 까다로워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은 낙농업계의 숙원사업이 됐을 정도다. 가공 기준과 성분 검사도 매달 받아야 하고, 품목별로 자가품질검사도 필요하다. 각종 농장일지도 철저하게 작성해야 한다. 해썹 인증을 받으려면 지켜야 할 규정이 더욱 많아진다. 관련 규정이 대기업형 유가공 공장을 기준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생산 인원이 일정 규모가 되지 않으면 교육 이수 규정을 지키기도 어렵다고 낙농가들은 말한다. 국립축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목장형 유가공 사업을 통해 낙농가는 총 103여 개소로, 유제품 제조와 판매를 하고 있는 목장은 목장 42개소, 낙농체험목장은 13개소, 유제품 판매와 낙농체험목장을 겸한 곳은 48개소로 추정된다. 신선치즈로 틈새 노려야 치즈는 크게 가공치즈와 자연치즈로 나뉘고 자연치즈는 신선치즈와 숙성치즈로 구분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슬라이스 치즈는 가공치즈에 속하고, 피자 위에 뿌려지는 슈레드(shred) 치즈나 리코타 치즈같이 만들어 바로 먹는 것을 신선치즈, 15일부터 3개월 이상 숙성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것이 숙성치즈에 해당한다. 국내 치즈 시장을 살펴보면 피자용 치즈로 사용되는 모차렐라가 60%로 압도적이다. 이어 가공치즈가 35% 정도이고 신선치즈나 숙성치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에 불과하다. 국내 치즈 자급률, 즉 국산 치즈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기준 4.5%에 불과하다. 시니어들이 치즈 공방을 통해 창업에 도전한다면 신선치즈가 적당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배 교수는 “신선치즈는 냉동 상태로 수입되기 때문에 신선하게 만들어 판매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이 고급화·서구화하고 있어 향후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와인이나 빵처럼 치즈와 어울리는 식품과 함께 판매하면 상품성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인 되려면 3년 이상 시행착오 겪어야 국내에서 유가공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충남대학교 동물자원연구센터에서 매년 두 차례 진행하는 목장형유가공 과정과 경북대구낙농농협이 진행하는 목장형유가공 교육과정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서울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으로는 한국낙농유가공기술원이 건국대학교와 함께 진행하는 유가공기술 기초과정이 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순천대학교의 경우 지난해 교육과정이 폐지됐다. 사설 교육기관으로는 에코드림치즈연구소가 운영 예정에 있다. 교육비는 대부분 60시간 교육과정 기준 75만 원 내외이며 일부 교육과정은 우유자조금에 의한 낙농가 대상 비용 일부가 지원되고 있다. 해외 교육기관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있다. 한때 김정은의 입맛을 위해 북한 공무원의 입학신청에 퇴짜를 놓은 프랑스의 국립유가공기술학교(ENIL)도 한국인 졸업생을 배출한 바 있다. 캐나다의 구엘프대학교(University of Guelph)의 치즈 제조 단기 교육과정도 유명하다. 치즈는 인류사에서 역사가 오래된 식품인 만큼 유럽과 아메리카 등지에도 다양한 교육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물론 교육 한 번으로 유제품 장인이 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교육 후 생산하는 유제품이 일정한 수준 이상 오르려면 3년 이상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숙성과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과 감(感)이 필요하다. 실제로 각 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서 수강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론만큼이나 실기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치즈에 미쳐 뉴질랜드에서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직접 제조한 치즈를 와인과 함께 판매하고 있는 이태원 치즈플로의 조장현 셰프는 치즈를 너무 쉽게 생각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고 경고한다. “치즈 분야는 육체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또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르려면 오랜 기간 공부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고요.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는 것도 큰 숙제입니다.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많은 분이 도전하신다면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 2018-01-31 08:50
-
- 신의 빛을 만나러 떠나는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 여행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여행 아닐까. 이왕이면 평소 사는 곳과 다른 곳일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일수록 완벽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 하지만 누군가는 별을 보고 있다네”라고 했던가. 살면서 꼭 한 번은 밤하늘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빛을 만나보고 싶다.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나면 우주는 더욱 위대해 보일 것이고 우리네 삶도 조금은 숭고하게 느껴질 것 같다. 최고의 오로라 관측소, 옐로나이프! 전 세계적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북구의 나라와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화이트호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옐로나이프는 나사(NASA)가 지정한 오로라 관측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11월에서 4월 사이 밤이 긴 겨울이 가장 좋다. 북극광(northern light) 혹은 극광이라고도 불리는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을 뜻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자석 성질을 가진 지구의 극지방 주변을 둘러싸면서 붉은색이나 녹색, 파랑, 노랑, 분홍 등 다양한 색의 자기 에너지 띠로 나타나는 것이다. 엘로나이프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영국 등지에서 온 유럽인들, 그리고 캐나다인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보인다. 일본은 오로라 여행이 대중화되어 일반인과 신혼여행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오로라가 뜰 때 아기를 가지면 그 아기가 천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라지만, 혹한과 어둠을 뚫고 세상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빛을 함께 경험하는 일은 두 사람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엷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저기… 저기… 오로라다.” 반대편에 앉은 승객이 창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기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향한다. 나도 벌떡 일어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하늘에 두 줄기 오로라가 어른댄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오로라구나.”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오로라, 그것은 마치 바닷속의 돌고래를 보는 것과 같다. “고래다!” 하고 소리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존재 말이다.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모든 예약이 하나로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를 간다면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를 통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한국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캐나다 구스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곳 옐로나이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평소엔 입을 일이 없기에 오로라 빌리지에서 대여해준다. 방한 점퍼와 바지, 마스크, 두터운 신발과 장갑까지 착용하고 나면 마치 우주복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사진마다 등장하는 아름다운 원주민 텐트 ‘티피(teepee)’ 안엔 따뜻한 화로가 있고 간단한 수프와 빵, 차와 커피, 코코아 등이 준비되어 있어 장시간 오로라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다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캄캄한 어둠속을 달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스고이”, “스고이”라는 일본말과 외국인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뛰어나가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지상에서 보는 오로라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환상적일까? 깜깜한 밤하늘에서 처음엔 희미한 듯하더니 점점 더 강렬하게 하얀 빛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20초. 마침내 신의 영혼인 듯, 천상의 빛인 듯,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내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오로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낮 동안의 신나는 북극 체험 전날 밤 오로라를 보고 숙소에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 이곳에서의 일정은 밤에 오로라를 보기 위한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바쁠 것 없는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화 속 엘사가 살던 ‘겨울 왕국’ 그 자체였다. 밤엔 매일 오로라를 관측하고, 낮엔 다양한 북극 체험을 했다. 얼어붙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를 걸어보는 아이스로드(ice road) 체험, 시베리안 허스키를 타고 하얀 숲을 달리는 개썰매 체험,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신던 스키를 신고 산속을 트레킹하는 스노슈잉(snow shoeing) 체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경험은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이색 체험들로 반드시 해보기를 권한다. 노스웨스트 의회 청사나 박물관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노슨이미지(Nothern Image)에서는 원주민이 직접 그리거나 만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밤, 오로라를 보며 신에게 감사를 드디어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길, 호텔 로비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밤 9시의 기온은 영하 33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실제로 체험해보기 전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온이다. 그러나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오로라도 별이나 달처럼 날이 맑을수록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티피 안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4박 6일의 여행기간 중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오로라가 나타나줬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어둠을 뚫고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운 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올라왔다. 좀체 보기 힘들다는 핑크오로라도 볼 수 있었다. 마시초 갓(Mahsi-cho, god)! 원주민어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오로라의 아우라’를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원 하나를 이룬 느낌이다. 모든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꿈을 꾼 듯했다. 지구별이 아닌 다른 행성으로 다녀온 꿈 말이다. travel tips>> 항공편>>인천-밴쿠버-캘거리-옐로나이프로 연결된다.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바로 가는게 없고, 캘거리를 거쳐야 하므로 비행기를 최소한 세 번을 바꿔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는데만 하루가 소요되는 힘든 길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로라 빌리지 예약 시스템>> 옐로나이프 여행의 핵심은 오로라빌리지이다. 모든 여행 시스템은 오로라빌리지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개별여행자는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방한복 대여 및 오로라관측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Aurora village (www.auroravillage.com)4720 Northwest Territories Ltd.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669-0006 추천숙소>> 옐로나이프엔 혹한과 어두음을 피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가 다양하다. 필자의 경우, 더운 나라에 갈때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곳은 혹한의 환경이라 가장 좋은 익스플로러 호텔을 선택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텔급에서부터 inn, B&B, 게스트하우스, 로지, 콘도스타일까지 다양하므로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숙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시내 중심의 관광 인포메이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Explorer Hotel 익스플로러 호텔 엘리자베스 여왕도 묵고 갔다고 해서 로비에 사진도 걸려있는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다. 그날그날의 일기예보는 물론 친절하고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로비와 방에서 무료인터넷도 가능하다. (www.explorerhotel.ca) P.O.Box 7000,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레스토랑>> 극지방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 먹어볼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익스플로러 호텔 1층에 있는 트레이더스 그릴(Trader's Grill) 레스토랑은 극지방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원주민 전통요리인 순록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Address 4823-49th Avenue,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 준비물>> 오로라 사진은 핸드폰으로는 잘 찍히지 않는다. 일정시간 이상 노출을 해야 하므로 오로라 사진을 찍고 싶다면 트라이포드(삼각대)와 수동설정이 가능한 카메라와 광각렌즈(18mm이상)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행경비400만원 내외
- 2018-01-08 15:30
-
- 족저근막염 환자 90%이상은 비수술적 치료 가능해
- 최근 유병률이 높아지는 족저근막염 한때 신고 걷기만 해도 살을 빼준다는 슈즈가 유행했다. 이후에는 척추를 바로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슈즈가 또 유행했다. 산에 갈 때는 등산화를, 축구를 할 때는 축구화를 신는 것처럼 신발은 목적과 상황에 맞게 신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신발들이 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발바닥부터 뒤꿈치까지 이어진 족저근막에 염증이 생긴 것을 족저근막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플랫슈즈나 킬 힐처럼 발뒤꿈치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신발을 즐겨 신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통증이 시작되면 부랴부랴 신발을 바꿔 신고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데, 이는 잘못된 선택이다. 발에 통증을 주지 않는 편하고 부드러운 신발이 족저근막염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치료’가 필요한데 신발만으로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환자 90%이상은 비수술적 치료 가능해 우신향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박재철과장은 “족저근막염 치료를 받는 환자 90% 이상은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치료가 끝나지는 않는다. 물리치료나 주사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같은 비수술적 치료를 수주이상 꾸준히 받아야 한다. 치료를 하다 통증이 사라졌다고 바로 치료를 멈추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치료기간에 계속되는 통증과 발의 불편함으로 빨리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이해하지만 응급처치만으로는 완치가 되지 않고, 재발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치료와 병행했을 때 신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걸을 때 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고, 흡수하는데 도움이 되는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꾸준히 물리치료를 하면서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신향병원 박재철과장은 “최소 한 달 이상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해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족저근막을 절개하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다행히도 수술적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전체 족저근막염 환자 가운데 10%미만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미리부터 수술을 걱정하기 보다는 하루빨리 족저근막염의 원인을 살펴 제거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2017-12-26 11:15
-
- [라이프@] 과천 시민발레단, 백조의 날개를 달다
- 세상 다양한 무용 중 가장 범접하기 어려운 장르가 발레 아닐까? 단단하게 몸의 중심을 잡고 팔과 다리를 뻗는 화려한 동작들. 이미 굳어버린 내 몸은 허락하지 않을 듯싶다. 발레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면서 관심이 가지만 유독 전문가에게만 허락된 듯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이에 과감하게 발레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시민들을 만나봤다. 올해로 다섯 번째로 모인 과천 시민발레단이다. 나이와 몸무게쯤은 싹 다 잊고 화려한 춤사위에 몸을 맡겨볼까? 발레 슈즈를 신고 사뿐히 자세를 잡다 매주 화요일 7시, 과천시설관리공단 상주 단체인 서울발레시어터(단장 나인호)의 연습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거울 앞에 선다. 이들은 지난 6월 초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과천 시민발레 5기 단원들. 비전공자와 비전문가로 구성된 이들은 11월로 다가온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발레 공연을 위해 선생님의 구령에 귀 기울이고 동작을 맞추는 모습이 진지하다. 4개월여 짧은 연습기간이지만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니 꽤 발레리나·발레리노 느낌이 난다. 과천 시민발레단은 2013년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서울발레시어터의 전문 발레 공연에 시민발레단이 잠깐 출연한 것이 첫 무대였다고. 이듬해부터는 시민발레단 전 단원이 올라가 무대를 꾸미는 형식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과천 시민발레단의 김치훈 강사는 특히 이번 공연이 시민 발레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도전의 무대라고 귀띔했다. “지난 2회부터 작년까지 7분에서 길게는 9분 정도로 작품을 짧게 만들어 공연을 올렸어요. 그런데 올해는 1막 2장을 무대에 올립니다. 저희도 도전을 해보는 거예요.” 는 발레 작품 중에서도 어려운 작품에 속한다. 차후 시민발레단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시험 무대라고 했다. “시민발레단원은 매년 바뀌니까 새로울지 모르지만 저희는 아니잖아요. 매번 좋은 방향을 찾고 연구하려고 애씁니다. 음악은 같지만, 구성이나 돌아가는 패턴을 조금 다르게 구성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동작이 새로운 것은 아니고 한 50% 이상을 새로운 동작으로 꾸몄습니다. 기본 틀은 두되 쉽게요.” 무대에 오르는 그날까지 하나, 둘, 셋, 넷! 일생 한 번뿐일지 모를 기회이자 도전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이들의 연습시간은 끝날 줄 모른다. 재미있게 발레 연습에 임하는 것은 기본이고 밤 10시를 넘기면서 개인 연습을 하는 단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같은 동작을 하는 팀끼리 모여 발과 선, 동작을 맞춘다. 심지어 지난 추석 때도 모여 연습을 감행한 열혈 단원도 있었다고. “매 기수는 네이버 밴드에서도 소통하는데 단원들끼리 너무 잘 뭉쳐서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어요. 서로 필요한 음악이나 영상 자료도 올려주고 말입니다. 열의가 대단하세요. 미리 와서 연습하고 나머지 연습도 쉬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뒷바라지, 직장에서의 쳇바퀴 같은 삶을 잠시 잊고 난생처음 무대 위에 오르는 시민들의 신선한 도전이 아름답다. 공연은 11월 18일 오후 5시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열린다. mini interview 유일한 남자 단원입니다 (배상운·44·푸르덴셜생명 강남지점) 사실 어렸을 때 개그맨이 꿈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 같은 데 나가서 사람들 웃기는 것도 좋아했어요. 옷도 남들이랑 다르게 멋지게 입으려고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했는데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좋아서 동기 중에서 운동을 가장 오래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운동보다 좀 더 예술적인 것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발레에 도전했습니다. 운동할 때는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했는데 정말 해보니까 체형이 달라져요. 다리도 사실 잘 안 붙었는데 제 나이에도 교정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마침 유일한 남자 단원이라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어요. 책임이 막중합니다. 잘 안 되는 부분이 정말 많은데 최선을 다해보려고 영상을 계속해서 봅니다. 발레는 예술적인 면도 있고 확실히 운동으로서도 좋은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어요. 초등4학년 때 느낌 그대로 (이수자·54·과천맑은물사업소장) 과천 시민발레단이 생겼다기에 예전부터 생각이 있었어요. 3기, 4기 때도 마음엔 있었는데 ‘내가 뭘 나가’ 이러다가 5기 때 신청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레를 좀 배워 발레 대회도 나갔었어요. 그 이후 처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사실 과천시청 직장인 바이올린 동아리 회장을 14년 동안 하고 있어요. 저는 칩거형이라 책보고 숨 쉬는 거밖에 안 해요. 그래도 공무원이다 보니 어쨌든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건강도 챙기고요. 그래서 시민발레단원이 됐습니다. 오디션 당일에는 시장님 모시고 하는 큰 행사가 있어서 올해도 아닌가보다 했는데 시장님이 ‘어서 오디션 보러 가라’고 해주셔서 조금 늦게 도착해서 오디션을 봤어요. 10개의 동작을 하는데 정말 앞에 분 따라 하느라고 힘들었습니다(웃음). 저 불쌍해서 뽑아주신 것 같아요. 시민발레단원이 된 이후 다들 발레 잘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통에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마침 시민발레단이 끝나면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해서 쭉 발레를 하고 싶어요. 서울발레시어터가 과천에 있는 게 소중하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 2017-11-16 09:00
-
- [이봉규의 心冶데이트] 아직도 소녀처럼 청순한 진미령
- 가수 진미령은 한 설문조사에서 재혼하고 싶은 여자 1위에 뽑힌 적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다. 아직도 소녀 같은 진미령이 내 나이와 비슷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 나이에 이토록 섹시한 스타는 가요계 통틀어서도 드물다. 아직도 잘록한 허리에 조막만 한 얼굴과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소녀와 마주하고 가을 냄새를 느꼈다. 가수는 “히트곡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 때문일까? 불행하게도 요절가수들의 히트곡은 대부분 엄청 슬프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 ‘마지막 잎새’를 부른 배호, ‘슬픈 노래’와 ‘안녕 친구여’를 부른 김광석, ‘슬퍼하지 말아요’와 ‘이별의 종착역’을 부른 김현식 등 요절가수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슬프다. 그에 반해 진미령은 ‘소녀와 가로등’으로 히트를 쳐서 그런지 아직도 청순한 소녀 같다. 5년 전에 발표한 ‘미운 사랑’이 중장년층에 큰 호응을 받고 있는데 그 가사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의 인생과 닮아 있다.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는 사랑 어제는 기다림에 오늘은 외로움 그리움에 적셔진 긴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난 운명인 거야 -‘미운사랑’ 1절 가사 진미령이 가사를 직접 쓴 이 노래가 실제로 전유성과의 이별과는 상관이 없겠지만, 한량 이봉규가 듣기에는 아픈 이혼의 경험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듯하다. 진미령은 전유성과의 이혼에 대해 더 이상 말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나와 술 마시다가 불쑥 뱉어낸 적이 있다. 냉면을 먹다가 이혼을 결정했다는 것. 냉면 먹다가 이혼을 결심했다 진미령은 “냉면이 먹고 싶어 전유성과 단골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도착해보니 전유성은 이미 냉면을 다 먹고 난 후였다”며 “자신이 냉면을 먹는 동안 함께 있어주겠다고 한 전유성이 갑자기 지루한지 먼저 가겠다고 일어섰다”는 것. 당시 서운한 감정을 떠올리며 “냉면을 먹는 이 짧은 순간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남자인데 앞으로 함께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전유성과 헤어지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또 다른 사랑이 있었나?” 물었더니 먼저 한숨부터 튀어나오더니 “남자들이 입이 가벼워 그들의 무용담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기 싫어서”라며 말문을 막는다. 급히 화제를 돌리려 하기에 이에 질세라 나도 물고 늘어졌다. “그동안 육체적 욕망은 어떻게 참을 수가 있었나?” 도발했더니,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여자는 성적인 충동을 잘 조절할 수 있고 혼자 어느 정도 기간이 흐르면 성적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각종 행사 등 바쁘게 가수 활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돌아서 나름 행복하고 또 요즘은 골프 삼매경에 빠져 시간 날 때마다 골프를 치니 외로움 따위는 없단다. 자유로운 사랑이 좋아 “앞으로 남은 평생을 이렇게 계속 혼자 살 작정인가?”라며 또 파고들었다. 그녀는 “좋은 남자 생기면 결혼하고 싶다. 그런데 따로 살면서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고, 보고 싶을 때만 만나 데이트하면서 살고 싶다”며 한술 더 뜬다. 보통 우리네 평범한 여인네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마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과 철학을 엿보는 듯했다. 진미령은 사실 전유성과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계약결혼 비슷하게 살았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전유성의 전처 밑으로 호적이 올라가는 게 싫어서”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작고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남자에게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심이 강하고 사랑도 주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진미령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내 아내의 엉뚱함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었다. 내 아내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의 전처를 ‘형님’이라고 호칭하면서 가끔 나를 놀리곤 한다. 내 아내의 그런 놀림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유머 코드로 치부하고 넘어가곤 한다. 정신 차리고 다시 진미령과의 인터뷰에 탄력을 붙였다.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나?”라는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아침에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서 화장하고 싶지 않아서 연하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다섯 살 이상 많은 할아버지랑 사는 것도 썩 내키지 않고 내 나이와 시추에이션이 난처하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나이가 비슷하고 친구였던 사람이면 좋겠다는 뜻이다. 맥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탈 주연의 영화 의 주인공 커플처럼 되고 싶다는 고백으로 이해했다. 故 김동석 영웅의 딸 화제는 진미령의 아버님 얘기로 이어졌다. 사실 진미령과 내가 알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아버님 때문이었다. 진미령의 아버지 김동석 대령은 미국이 선정한 ‘6·25전쟁 4대 영웅’ 중 한 사람이다. 미국 측의 맥아더 장군과 리즈웨이 장군, 그리고 한국 측의 백선엽 장군과 김동석 대령이 그들이다. 의정부 미2사단 전쟁박물관 내에 마련된 김동석 영웅실에는 훈장을 비롯한 유품과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미국도 김동석 대령을 영웅으로 선정해 극진히 대접하는데 모국인 대한민국이 그를 푸대접하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방송에서 여러 번 다룬 적이 있다. 그때 진미령이 내 전화번호를 방송국에서 수배해 연락을 해왔다. “아버님을 제대로 평가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울먹이며 통화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로 나이도 비슷해서 가끔 만나 술도 한잔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김동석 대령은 육사 8기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북한군 15사단을 전멸시키기도 했고 맨몸으로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서 적진에 침투해 결정적인 첩보를 수집했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데 1등 공신이 되었다. 당시 맥아더는 김동석 사진을 가리키며 ‘This man!’이 준 첩보는 믿을 만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사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도 크고 여러 가지 여건상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부적절했지만 김동석의 결정적인 첩보가 맥아더 장군의 선택에 용기를 부여했던 것이다. 김동석 대령은 이때부터 맥아더 장군에게 ‘This man’이라는 별칭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을 무서워했던 진미령은 아버지 같은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기야 목숨을 내놓고 북파 공작원으로 살았기에 보통 사람의 눈매를 가졌을 리 만무하다. 아버지는 칠십이 넘어 눈이 부드러워졌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좋아졌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어눌한 말투의 부드러운 눈매를 지닌 전유성과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요리도, 노래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가수 진미령은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맡을 정도로 요리를 잘한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서 정식 디그리(degree) 과정을 마쳤다. 이 때문에 그녀는 요리와 관련해 가장 많은 섭외를 받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 외국어도 능통하다. 다재다능한 재주를 지녔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직업을 갖길 원하나?”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골프를 아주 잘 치는 가수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가수가 천직이라는 말. 솔직히 말해 한량 이봉규도 다시 태어나면 평론가보다는 가수가 되고 싶다. 그만큼 가수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이다. 가수로서 진미령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는 참으로 복 받은 여인이다. 하느님은 공평해서 모든 걸 다 주지 않는가보다. 본인은 그 나이에 혼자 살아도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만(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완벽한 부부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봉규가 보기에는 진미령이 다소 외롭게 보인다. 다재다능한 재주에 가수로서도 성공해 만족스러운데 거기에 완벽한 부부생활까지 누린다면 시샘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느님이 진미령에게 사랑의 여백만은 남겨두신 걸까? 아니면 조만간 그 여백을 채워주실까? 누군가 어렵다면 주머니 털어서 다 주고 재능기부를 하도 많이 해서 ‘진 봉사’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이기에 후자에 기대를 걸어본다.
- 2017-11-02 08:11
-
- 쓰레기장의 노인 유품 뭉칫돈
- 일본 NHK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에 쓰레기장에서 주었다고 신고한 금액이 우리 돈으로 약 1900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혼자 살면서 장롱 속에 보관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뭉칫돈이라는 것이다. 신고하지 않은 금액은 더 많을 것이다. 상속받을 사람이 없어 국고로 귀속된 금액도 4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KBS 보도로 우리나라도 고독사로 추정되는 죽음이 연간 1만 건이 넘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왜 뭉칫돈을 은행에 안 넣고 장롱 속에 보관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만한 돈이 있다면 쓰다가 죽어야 하는데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노인이 되면 사실 돈 쓸데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친구들 밥이나 사고 친척 손주들 용돈이나 주는 정도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보면 이미 갖고 있는 재산이 많은데도 돈 벌 궁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돈 벌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큰돈이지만, 이미 갖고 있는 재산은 돈으로 안 친다.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금은 없단다. 그러니 하우스 푸어인 셈이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살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부자들도 많다. 현금은 아내가 갖고 있어서 쓸 권한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막상 돈 쓰는 데는 인색하다. 안 써 봐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시니어들은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쓰는 교육에 대해서는 받은 적이 없다. 선진국처럼 기부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하는 행사에 일부 기부하는 것도 서툴다. 모은 돈을 기부하는 것은 아깝고 미리 자녀들 주자니 대우를 못 받을 것 같다. 그러니 뭉칫돈을 가지고 있다가 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고독사 문제도 나름대로 사회 안전망이 잘 되어있다는 일본이 그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더 열악할 것이다. 전기나 가스, 수도 사용량으로 점검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완전하지 않다. 필자가 한 때 장애인 아파트에 살 때, 관리실에서 겨울철인데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점검을 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편함에 꽂혀 있는 다른 집 고지서를 보니 거의 제로에 가까운 집들이 많았다. 엄동설한에 난방, 온수를 전혀 쓰지 않는 집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것도 안전망 구실을 못한다. 필자도 해외여행이나 부득이한 일로 스마트 폰 연락이 안 되면 혹시나 무슨 사고 가 있지 않나 걱정하게 된단다. 그래서 해외여행 등의 사유가 생길 때는 미리 밴드나 카톡으로 연락을 해둔다. 필자는 월간지도 여러 개 보고 있고 일간 신문도 두 가지나 보고 있어 집 앞에 잡지, 신문이 쌓이면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래서 해외여행 갈 때는 일정 기간 동안 신문을 넣지 말고 돌아오는 날 몰아서 넣어달라는 휴독 신청을 해둔다.
- 2017-09-19 09:05
-
-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저절로 고장 난다
- 좋은 옷을 아낀다고 장롱 속에 오래 넣어두면 체형의 변화로 몸에 맞지 않거나 유행이 변해 입을 수 없게 된다. 엔젠가는 옛날의 체형으로 돌아오겠지 또는 유행은 돌고 돈다니까 언젠가는 입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돌아온다. 적당하게 맞을 사람이 있거나 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는 것이 상책이다. 3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이라면 버려야 한다고 정리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옷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산품인 가전제품도 오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면 쓸 수 없다. 비디오테이프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그렇고 전축이나 라디오는 물론 TV까지 그렇다. 시골에 가면 몇 십 년 된 전기밥솥이나 라디오를 아직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일 애지중지하며 분신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아끼고 있다. 무엇보다 계속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용하면 쓸 수 있지만 처박아두면 녹슬고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된다. 집도 그렇다. 시골에 번듯하던 집들이 사람이 살 때는 윤이 나서 반짝이지만 주인이 떠나고 빈집이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불을 때지 않는 빈집에 쥐들이 구멍을 내고 새들이 집을 짓고 온갖 해충들이 덤벼든다. 이들을 잡아먹으려는 뱀이나 너구리들도 들락거린다. 지붕이나 마당에도 잡초가 용트림을 한다. 흉물스럽게 곧 쓰러져가는 집도 한때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운동화 같은 신발도 아낀다고 신발장에 몇 년을 묵혀두면 본드로 붙인 곳이 들떠서 못 신게 된다. 겉이 멀쩡해서 신고 다니다보면 발가락이 쑥 나오는 황당한 경험을 해 본다. 신발을 계속 신으면 신발 바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신을 수 있다. ‘아끼다가 DONG(?)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고장 난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독사(孤獨死)가 많다고 한다. 고령사회인 일본에서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기업 ‘키퍼스(Keepers)'가 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인 요시다 타이치는 그의 저서 에서 ‘고독사의 현장에 가보면 집 안에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있는 전자제품이 너무나도 많다’ 라고 말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서 소중하게 쓰는 사람이었다면 인간관계를 포함해 생활스타일도 많이 달랐을 것이고 고독사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고장 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일본의 저명 정신과의사인 호사카 다카시는 말했다. 고독사 당하지 않고 건전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인간관계도 연락하고 챙겨야 한다. 오랜 기간 무심코 찾지 않으면 친했던 사람사이도 영영 남남이 된다. 먼 훗날 그때 가서 연락하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살아있어도 예전의 정감을 느낄 수가 없다. 적어도 1년에 한번 씩이라도 전화번호부를 펼쳐놓고 잊을 사람은 지우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을 취해야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로 오래 지나면 기억이 희미하게 되어있다. ‘누구시더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참으로 쑥스럽다. 영원히 풀어지지 않을 것처럼 꽉 맨 운동화 끈도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풀어진다. 수시로 다시 고쳐 매야 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일 년에 한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기 보다는 짧은 대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다. 세상만사 모두가 오래사용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고장 나게 돼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감당 못해 쩔쩔매지 말고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야 정신건강에도 좋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은 물건에게도 잘하고 사람에게도 잘하라는 말이다.
- 2017-07-18 20:18
-
- ’나방생활사 전문가 허운홍’ 낭만주부 나방 엄마로 허물 벗고 빛을 보다
- 나방을 고운 시선으로 본 적 있던가? 여름밤, 밝은 조명 주위로 크고 작은 나방이 몰려들면 무서웠다. 누군가는 살충제를 들고 나와 연신 뿌려대기도 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의 사오정 입에서 나오는 나방은 그저 웃음거리. 더럽고 지저분하고 방해되는 날개 달린 벌레. 인간사 속 ‘나방’이란 정체의 위치가 그러했다. 허운홍(許沄弘·64)씨가 나방의 생활사에 대해 관찰하고 알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차갑던 시선에 조금씩 꽃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부 허운홍, 나방에 빠지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만 ‘나비’가 아닌 ‘나방’을 연구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니! 대학 교수라면 이해가 갈 것 같다. 자연계열과는 거리가 멀던 주부가 ‘나방생활사 전문가’로 불린다. 바로 허운홍씨 얘기다. 우선 허운홍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10여 년 동안 직접 채집해 길러낸 나방이 2000여 마리 900여 종에 이른다. 이렇게 채집한 나방은 손수 표본으로 만들었고 올해 초 광릉수목원에 기증했다. 나방뿐만 아니라 파리와 벌들의 표본도 함께 기증해 시민에게 내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 출신, 곤충과는 멀던 삶. 나이 오십 넘어 그 작고 날라 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볼 것 많은 주부생활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자식도 남편도 아닌 나방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녀는 왜! 수많은 곤충들 중 나방에 빠지게 된 걸까? “전업주부로만 살아왔어요. 대학 졸업하고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과 곧바로 결혼했거든요. 뭐든 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잘 안 풀렸어요. 그런데 뭘 하고 살 것인가는 늘 고민했죠. 그러다 1997년에 남편이 교환교수 자격으로 영국에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생태학과 만났어요.” 영국에서 생태학에 눈뜨다 가족과 함께 간 영국 케임브리지. 그곳이 나방 연구에 힘을 실어주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케임브리지는 지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는 대학교와 도서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배울 것이 널려 있었다. 학업에 대한 갈증과 궁금증이 많았던 허운홍씨는 케임브리지 개방대학에서 관심 있는 것이 있으면 뭐든 찾아서 수강신청을 했다. 천문학에 미술사, 영국사 강의도 들었다. 그중에 생태학도 있었다. “생소했어요. 식물에 관한 걸 배울 수 있다기에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때까지 에콜로지(Ecology·생태학)란 단어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학교였지만 수준은 남달랐다. 생물학, 곤충학, 천문학 전문가가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숙제도 내주었다. 무엇보다 허운홍씨가 놀란 것은 학문을 대하는 영국인의 자세였다. “천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은하계를 볼 수 있는 필름과 슬라이드 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옷은 정말 허름하고 냄새가 날 정도였는데 슬라이드는 다들 가지고 있더군요(웃음). 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분과 영국의 유명한 습지에 간 적이 있는데 차 트렁크에 장화며 쌍안경, 돋보기 등 없는 게 없더라고요. 저는 운동화 신고 뒤따라갔거든요. 문화수준인 거 같았어요. 그게 제가 느낀 차이였어요.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지식이 넘쳐나는 영국에서 소녀처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잠시였다. 1998년 한국에 IMF 위기가 와서 1년도 채 못 되어 돌아와야만 했다. 조금 더 영국에 빨리 가서 공부를 시작했거나 더 오래 있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늘 아쉬움이 남는다. 벌 대신 나방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1999년에 길동생태공원이 문을 열었어요. 2008년까지 생태안내 자원봉사를 하면서 곤충 생태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영국에 있을 때 교수님이 소개해준 책도 해석해서 보고 말이죠. 사실 벌을 더 연구하고 싶었어요. 벌이 선구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사람들이 배워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자은행의 시초였을 것 같은 여왕벌의 저정낭, 말벌의 독특한 아파트 생활 등 벌들의 사회생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꿀벌과 말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벌이 나무줄기 속, 집 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생활을 해 포기했다. “그래서 나방으로 돌아섰습니다. 처음에는 이쪽 분야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다 연구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연구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도감 대부분이 일본 책을 베낀 거였어요. 영국에 있을 때도 생태학 교수가 일본 책만 소개시켜줬죠. 그때까지 한국 책은 없다고 했어요.” 2007년부터 중부지방을 기점으로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방 애벌레를 채집하고 인공으로 키워냈다. 수백 회 반복한 끝에 2012년과 2016년에 1권과 2권을 발표했다. 나방의 탄생과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도감이다. 새로운 나방 찾아 순천으로 남하(南下)하다 현재 허운홍씨는 남편과 순천에서 살고 있다. 서울 생활을 접은 이유는 나방 때문이다. “중부지역 쪽에서만 주로 채집했어요. 친정이 밀양이라 그곳에서도 좀 했고요. 그렇게 900종을 채집했으니 새로운 곳에서 채집을 해보려고 순천에 왔어요. 이곳에 친척 한 명 없는데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남쪽은 사는 식물이 달라요. 그래서 나방도 다른 종이 나와요. 예덕나무, 푸조나무 이런 것들은 서울에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살아볼까 생각했는데 여기랑 식물이 비슷하고 섬이라 한계가 좀 있죠. 이곳에 훨씬 생물이 더 다양하게 있어요. 지리산도 가깝고. 내려와서 70~80여 종을 찾았습니다. 백운산, 제석산, 조계산, 봉화산 등 순천 쪽 산은 거의 다 다니고 있어요.” 지금도 매일 주위 산을 오르고 반가운 마음에 애벌레를 채집하고 관찰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대학 박사, 교수 같은 명함은 없지만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수 몇 분이 와서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공부를 하면 채집을 못하지 않냐 물으니까 채집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채집하러 나가면 새벽 6시에 나가서 왕복 6시간, 6시간 채집해서 한두 종 추가해요. 어떻게 공부하면서 할 수 있겠어요? 안 해본 사람들 생각이죠. 벌레들이 생각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아요.” 허운홍씨는 78세까지 2000종의 애벌레를 채집해 나방 성충으로 키워낼 꿈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를 가지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 “채집 생활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나방을 생활사별로 정리하고 싶어요. DNA 검사를 비롯해서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싶은데 눈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시력이 너무 떨어져서 의사에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원시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지만 하는 일들을 멈출 수 없단다. “제가 78세까지 2000종을 채집하겠다고 허풍을 쳐놔서요(웃음).” 경조사는 못 다녀요 나방 애벌레 채집에 집중하는 기간은 4월 말부터 9월 말까지. 10월에도 밖을 나선다. 비가 오는 날은 사진을 정리하고 그 외 모든 시간은 산 이곳저곳을 다닌다. 나방 엄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히 표본작업을 할 때는 강의나 다른 일들은 하지 않아요. 6월에도 성남에서 토크쇼에 와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요. 일단 채집이 시작되면 사람도 안 만나요. 친인척 결혼식도 안 가요. 장례식에는 꼭 가죠. 그 외에는 아무 곳도 안 가요.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집중이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은 올해 채집을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되지 않느냐고묻는다. 애벌레를 집으로 들여와 길러보니 매년 나는 종들이 다른 것을 알게 됐다. 한 해 거르면 영원히 못 보는 개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여름 여행도 포기했다. 이런 허운홍씨.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가족은 서로 관여 안 해요. 예전에 아들들은 ‘엄마 나방이 날라 다녀요,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봐요’ 그러기도 했어요. 손자들은 벌레들에게 너무 관심이 많죠. 친구들은, 제가 경기여고를 나와서 수준이 있거든요(웃음). 동기 모임도 미술관,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니까 제 생활을 이해해요. 가끔은 제 남편 대단하다고 해요. 벌레 키우는 여자랑 이혼 안 해주고 산다고요.” 그래도 주부로서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새벽에 나갔다 저녁이 돼서 집에 오면 남편 먹을 반찬은 꼭 만들어놓는단다. 남편이 반찬투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자연을 만나다 채집할 때 가방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열어봤다. “물, 카메라, 우산, 비닐, 샬레(실험도구인 납작한 원통형 용기), 가위는 3개 정도 꼭 넣고 다녀요. 작업하다 가위를 떨어뜨려서 찾으려고 보면 뱀이 있다거나 보이지 않은 곳에 떨어져 못찾을 때가 있거든요.” 가위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은 ‘식물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잎사귀나 가지를 깨끗하게 잘라주지 않으면 병이 들 수도 있고 끝이 갈라져 보기에도 좋지 않다.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은 가위를 이용해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란다. “사람 좋을 대로 하면 안 됩니다. 식물 입장도 생각해봐야죠.” 올해 허운홍씨의 나이는 64세. 적지 않은 나이에 매일 새벽 나방이 될 애벌레 채집을 위해 길을 나선다. 집안일하다 생긴 손가락 관절염에 점점 나빠지는 눈, 매일 걸어 다녀 굳은살 박인 발은 물론이고 어깨 통증도 달고 산 지 오래다. ‘가지에 손만 닿으면 되지’ 싶어 병원에는 가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 사명감일까. “여섯 시간을 찾아 헤매야 한두 종을 찾는다고 했잖아요? 10년을 이렇게 찾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나방생활사 연구를 한다면 제가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잖아요. 누가 하겠어요. 제가 할 수밖에 없죠. 결과물에 비해 시간이 너무 많이 요구됩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다면 가르쳐주고 싶지만 돈도 안 되는 것을 누가 하겠어요.” 보물찾기, 퍼즐게임 그리고 컬렉션(?) 요즘도 매일 나방 애벌레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허운홍씨는 이를 두고 ‘보물찾기’라고 표현한다. 숲속을 헤매다 눈앞에 새로운 종의 애벌레가 보이면 날아갈 듯 좋단다. 그 시기가 지나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재미, ‘퍼즐게임’에 돌입한다. “겨울에는 동정(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을 해요. 표본한 것을 쫙 펼쳐놓고 종류를 구분해요. 애벌레 사진 찍어놓은 것과 성충 표본을 보면서 일본 책을 가지고 이름을 찾아요. 밖에 나가는 건 보물찾기, 동정은 퍼즐게임 그리고 모으면 컬렉션이에요. 재밌는 일이 아주 많은 저만의 취미입니다.” 78세가 되면 소속된 학교도 단체도 없지만 나방 아줌마의 멋진 퇴임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말에 “2000종 채우면요!” 한마디 외치며 산속으로 걸어갔다.
- 2017-07-05 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