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나 역사소설에 종종 나오는 역병(疫病, plague)은 어떤 병일까? 어떤 소설에는 조선시대 한 산골마을에 역병이 돌아 삼분의 일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얘기도 나오고, 다른 소설에서는 호환마마를 ‘역병’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병을 마을에서 몰아내기 위해 병자의 시신을 불태우고, 굿을 하기도 하였다.
황석영의 장편대하소설 에도 이
“실제 치아와 똑같이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치를 제대로 알고 흉내 내는 법밖에는 없습니다.”
연세대학교 치과병원에서 치과기공물을 책임지고 있는 우창우 기공실장은 진짜 같은 보철물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밝은 곳에서 치아가 환하게 빛나는 것은 치아의 형광성 때문이고, 오팔같이 빛이 비춰지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성들을 정확
1946년 양력으로 11월 3일에 태어났다. 경주 외곽에 있는 나원, 외갓집에서였다. 아버지는 나의 출생이 당신의 호르몬 작용의 산물이라 했고, 엄마는 운명이라고 했다. 1947년에 서울로 갔고 1950년 한국전쟁이 나서 다시 나원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아궁이에 검은색 토탄 가루를 뿌려가며 밥을 짓던 것과 고무줄 장사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어떤 병에 대해서 민간 속설이 많기도 하다. 비뇨기과에서 대표적인 예는 소변발(소변 줄기의 세기)과 정력에 관한 속설인데, ‘뭐, 나는 젊었을 땐 저기 5미터 앞에 있는 자갈돌도 맞혀서 튕겨냈지…. 그러니 밤일은 말할 것도 없지 뭐야. 허허.’ ‘술이 좀 취하면 친구들이랑 전봇대 맞히기 놀이를 했는데, 내가 쏴댔더니 거기 금이 가더라고.’ 등등. 소변 줄기
“나의 실그림은 예술 혹은 창조 자체를 실행에 옮기는 나의 삶이자 나의 우주다.” 여기 자신의 혼을 온전히 실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예술가가 있다. 예순 중반의 나이에 자수를 통한 ‘실그림’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손인숙(孫仁淑·64) 예원 실그림 문화재단 관장을 만났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
글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
1950년대 부산 피난 시절, 넉넉하지 않던 방 한쪽 벽면에 서양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지평선 너머 해 저무는 석양에 부부 한 쌍이 하루의 고된 농사를 끝내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묘사한 평화롭기 그지없는 그림이었다. 그림 속 멀리 있는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몇 년 후 그 그림이 바로 밀레의 ‘만종’이라
추석은 가족이 모여 수확의 풍족함에 대해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가족이 모이면 으레 가족 대소사가 화젯거리가 된다. 그중 묘지도 단골 주제다.
묘지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조상과 후손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그 사회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전승시켜 사회의 지속성과 사회적 통합, 연대를 담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묘지는 우리 가족제도를 구성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는 장래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어머니나 담임선생님도 같이 소망했다. 그리고 그 장래 목표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 생활기록부란을 쓰시는 선생님은 편했을 것이다. 위칸 하나만 쓰면 나머지는 점 두 개로 같다는 표시를 하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데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김운용(金雲龍·85) 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정치인과 관료, 경제인이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거쳐 갔지만 유치 준비부터 폐막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이는 김 전 부위원장이 유일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을 광복 이후 ‘6·25전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
“선생님, 물어보기 좀 거시기하지만… 뭐 하나 물어봐도 돼유?”
“저는 거시기한 부분만 보니까 물어보셔도 돼요.”
“그러니까… 제가 포경수술을 안 했는디, 요즘에 자꾸 껍데기가 헐어서 안 좋네요. 무슨 큰 병은 아닐까요?”
진찰을 해보니 음경의 귀두를 둘러싸고 있는 포피가 헐어서 전체적으로 돌아가면서 세로로 터져 있는 모양이었다. 염증이 심하지는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