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하나면 거의 모든 게 다 해결이 되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등산갈 때에도 스마트폰 등산용 앱을 깔아 쉽게 길을 찾아갈 수 있고, 자전거나 차량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소중한 필수품이 됐다. 하물며 심심할 때에는 게임을 다운받아 시간 보내기 좋고 맛집이 필요한 때에도 어김없이 근처의
밤새 내리던 비가 개었다.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하늘은 맑고 해가 중천에 떠 있다. 부모님은 일찍부터 들에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책 보자기를 들고 학교로 냅다. 동 뛰었다. 동네 입구를 막 빠져나가는데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범아! 어디 가니?” 논에서 줄을 지어 모내기하던 사람 중에 아버지와 어머
이창식 번역가( 저자)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요즘 들어 내 인생을 자주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 만년에 이르러서야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 소박해서 성공적인 삶이라 주장하긴 낯간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1) 나보다 나은 삶을 사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
2)손주들과 즐겁게 노는 것
3)
1980년대, 이윤택(李潤澤·64·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칼을 갈 듯 날카로운 기운으로 연극계 안을 찢고 등장했다. 부산에서 극단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연극을 시작한 이윤택. 맹렬한 전투력으로 1990년대 서울 연극 중심에 깃발을 깊숙이 꽂더니 ‘이윤택’ 아니면 볼 연극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판세를 뒤엎었다. 무대와 객석을 호랑이처럼 맨발로 뛰어다
사주나 점을 믿지는 않지만, 매번 '무난’, ‘평탄’ 같은 단어가 튀어 나온다. 전반적으로 필자 삶을 돌아 볼 때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 전반의 삶
인생의 여러 중대사가 결정되는 1970년대가 필자 20대 나이였다. 그 시기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갔다 오고 취직해서 결혼했으니 말이다. 아들딸까지 낳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필자는 1944년 2월 16일 태어났다. 당시는 각박한 삶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명이 바로 문밖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일제가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민간의 식량이 부족할 대로 부족했기 때문에 산모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애를 낳았는데 자라지 못하여 큰 쥐만 하더라”는 말을 곧잘 했다. 좋은 점이라면 출산
나름대로 큰 사업을 했던 남편은 다행히도 낯선 이민생활에 잘 적응을 해 나갔다. 그러나 빈손으로 무작정 시도한 모험이었기에 헤쳐나가야 할 과정은 험난하고 어두운 터널의 연속이었다.
한 달에 통틀어 1350달러 수입으로는 집세 900달러 내고 나면 생활하기가 빠듯하다며 잡(일거리)하나를 더 해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흐트러져 남은 일들 수습하기도 바쁜 덕
‘도랑 치고 가재 잡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하다 보면 곁들여 또 다른 좋은 일이 겹쳐진다는 의미다. 늦깎이로 시작한 사진 취미가 바로 그런 예가 되었다. 60세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사진취미가 바탕이 되어서 KBS 1TV ‘아침마당’ 출연을 비롯한 방송활동, 강사, 기자, 저자로 인생이 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서다.
레코드판에는 욕심이 많았으나 오디오 기기에는 욕심을 부릴 형편이 못 되어 결혼 후 얼마간은 야외휴대용 전축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당시 국산 중에서는 가장 낫다는 ‘별표 전축’을 구입했다. 이것을 들여놓은 날은 마치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필자가 이 별표 전축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뉴욕대학교 폴리테크닉대(Polytechnic Institute of New
도사 되는 법?
무림의 비급은 인연 있는 자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 없어 비급이라 했던가
어언 나이 70을 넘었다
고령사회에서 평균연령 100세 이상을 산다고 하는데 우리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계속해서, 새롭게 변하는 IT 세상에서 알파고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앞장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뒤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