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년 전 일이다. 그해에 작은 딸이 마침내 취업을 했는데 그동안 애쓴 엄마에게 보답을 한다며 함께 홍콩 여행을 가자고 했다. 필자도 내심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직장에 얽매어 있던 터라 오붓하게 모녀간의 여행을 즐기라며 응원했다. 걱정하는 아내에게는 자신만만하게 "괜찮아, 염려 말고 잘 다녀와"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여행을 떠난 날 당장 저녁밥
"멀리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못 와?"
“네, 늘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방구 어르신은 술 즐기실 만큼만 드시구요.
쌕쌕이 어르신 우리 경로당 위해 공원청소 건강 위해서라도 계속해주시구요.
녱녱이 할머니 우는 소리 그만하시고 그동안 맛있는 점심 고마웠어요.
욕쟁이 할머니 언제 다시 와도 그 욕 들려주셔야 해요.
타짜 할머니 고스톱 바닥 쓸어가
우리 부부는 말다툼이 잦다. 다툼의 주제는 나라경제도 아니고, 집안경제도 아니고, 자식교육도 아니다. 항상 좀스럽고 하찮은 일로 다투는데 그 이유는 딱 두 가지, 남편이 입는 옷과 남편이 먹는 음식 때문이다.
음식은 자기를 위해서 먹고, 옷은 상대방을 위해서 입는 것이 예의라고들 하는데, 옷 꼴이 말이 아닐 때 보다 못한 필자가 몇 벌 사온다. 입으면 디자
하루는 남편이 필자를 조용한 찻집으로 불러냈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해서 석연찮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만에 오는 찻집인가. 그래서일까 전혀 모르는 사람과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 향을 맡으며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남편은 다짜고짜 “나 집을 나가볼까 해, 며칠만이라도 나가서 살아볼래” 하고 말했다. 막상 그런 말을 듣고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랫동안 교육 책임을 맡아오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 20대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에게 학교 성적이나 공부에 열중하는 것보다는, 너희들이 50세쯤 되었을 때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모습의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문제의식과 삶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권고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더 소중한 과제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문제를 갖고 인생의 목표가 확실했던 학생들은 대
만 65세 생일이 다가 오자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편지로 기초연금 신청을 하라며 서류를 보내왔다. 신청구비서류로는 필수제출 서류인 사회보장급여 신청서, 소득 재산신고서, 금융정보 등 제공동의서, 신분증, 통장 사본 등이었다. 다음에 스마트 폰 문자로 부부합산 재산 소득에 따라 최대 20만원부터 최소 2만원까지 기초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으니
그해 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10시, 목동 파리공원에서 우리들은 작은 모임을 가졌다. 연령도 20대에서 60대요, 직업도 틀리지만 쇠귀 신영복(牛耳 申榮福, 1941~2016) 선생의 책과 신문 칼럼 이야기를 듣고,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기탄없는 자유토론의 시간이 즐거웠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토론이 격해지면 인근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여기가 수원인가? 어디니?”
“엄마, 이천이야.”
휠체어에 앉아 바람과 소통하고 계시던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으로 모셔가라는 서울 S병원의 통보를 받고, 막내는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어머니를 이천 D병원으로 모셔갔다. 밖에서 마지막 식사로 평소 좋아하시던 우리밀국수를 드셨다. 엄마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렇게 급속한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수명연장의 측면도 있지만 출산율 감소도 그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고령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나라가 침체의 늪으로 빠르게 빠져
지난 10년간 치킨 집을 운영해오던 친구가 문을 닫는다며 친구들을 초대했다. 한창때 건설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하고 나서 실업자로 6년을 놀았다. 부인이 그 사이에 치킨 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댔다. 그러다 부인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치킨 집을 인수해 부부가 같이 10년을 운영해온 것이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치킨 집들이 다 문을 닫았는데 굳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