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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살아난 남한강의 명물 단양쑥부쟁이!
- 10월 하늘은 맑고 높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짙푸릅니다. 하늘과 강 어느 편이 더 파란지 내기라도 하듯 날로 그 푸름이 짙어가는 가을날, 강변에는 연보랏빛 꽃들이 가득 피어나 단연 지나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순 저 멀리서 모터보트 한 대가 정적을 깨고 달려와 하늘과 강, 연보랏빛 꽃 무더기 사이를 무심히 지나쳐갑니다. 작은 배에는 고기잡이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사내와 아낙이 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더없이 한가롭고 평화로운 강촌 마을의 전형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림 같은 풍경의 정점을 찍은 것은 다름 아닌 단양쑥부쟁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생지가 파괴돼 자칫 ‘야생 절멸’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시끌벅적한 ‘뉴스의 꽃’이 되었던 단양쑥부쟁이. 그 단양쑥부쟁이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한가롭고 목가적인 강마을 풍경의 주인공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중장비 소리 사라진 강변에 이파리가 솔잎처럼 가느다란 단양쑥부쟁이가 가득 피어난 것을 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납니다. 물론 예전의 자생지는 당시의 지적과 우려대로 상당수 파괴되고 사라져, 지금 우리가 보고 만나는 단양쑥부쟁이는 대체지에 옮겨 심거나, 증식한 씨를 인위적으로 뿌려서 키워낸 것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전, 복원된 단양쑥부쟁이가 몇 년간의 ‘이사 몸살’을 이겨내고 다시 야생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니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특산 식물로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단양쑥부쟁이. 충북 단양에서 처음 발견돼 ‘단양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으나, 1980년대 충주댐이 건설될 때 단양과 충주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그곳의 자생지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2005년 남한강 여주 일대에서 자생지 몇 곳이 발견돼 큰 환영을 받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최대 자생지가 또다시 사라질 위기를 맞게 됐다고 야단법석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래와 자갈이 적당히 섞인 강변에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첫해는 줄기가 15cm까지 크고, 이듬해 꽃대가 계속 자라 높이 30~50cm까지 이릅니다. 키나 꽃은 다른 쑥부쟁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지만, 잎은 한탄강 바위틈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나 높은 산 바위 절벽에서 자라는 가는잎향유 등과 마찬가지로 솔잎처럼 가늘어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9월에서 10월까지 지름 4cm 크기의 머리 모양 꽃이 꽃대마다 여러 개씩 달립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한국(경기도 여주시, 충청북도 단양군과 제천시)에 분포한다고 돼 있다. 즉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데, 여주는 물론 단양과 제천에서도 자란다는 뜻이다. 일본인 우치야마가 1902년 수안보에서 처음 발견해 채집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안보, 단양, 제천에서 단양쑥부쟁이의 자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한강이 흐르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일대가 단양쑥부쟁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생육지다. 강천섬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연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가진 단양쑥부쟁이가 가을 인사를 한다.
- 2019-10-0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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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 절벽에 박힌 보랏빛 보석, 변산향유
- 켜켜이 쌓인 해안 절벽이 오후 햇살이 들어오자 보랏빛으로 반짝입니다. 늘 서쪽 바다를 향해 있는 탓에 제아무리 찬란한 일출이라도 남의 떡 보듯 아예 거들떠보지 않지만, 해가 중천을 지나 뉘엿뉘엿 서편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그 누구보다 활짝 가슴을 열고 해바라기에 열중하는 변산반도 바닷가의 층층(層層) 단애(斷崖). 깎아지른 절벽에 보랏빛이 번지는 걸 보고 처음엔 석양빛에 붉은 물이 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곰곰 살펴보니 오랜 세월 강한 바람과 바닷물에 깎이고 깎여 형성된 퇴적암에 번지는 색이 석양빛과는 다릅니다. 노루 꼬리만큼 짧은 오후 햇살이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을 붉게 달구는 건 맞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수직 절벽 곳곳에 촘촘히 박힌 자주색 꽃송이가 눈부신 석양빛을 온몸으로 받아 찬란한 빛을 발하며 해안 전체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했던 2018년 한 해도 이제 저물어갑니다. 12월이면 많은 사람이 장엄하게 지는 해를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면서 서녘 바다를 찾습니다. 서해 3대 낙조 명소의 하나라는 솔섬 등이 있는 변산반도도 제법 찾는 이가 많습니다.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로 시작하는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이란 시가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문득 변산반도를 찾는 발걸음도 생겨났습니다. 시인은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 밥 먹다가 석삼년 만에 제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라며 꼬드깁니다. 그러면서 변산해수욕장이나 모두가 꼽는 변산반도의 최고 비경인 채석강에는 잠시만 머무르라고 짐짓 어깃장을 놓습니다.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그런데 수직 단애가 수천 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것 같다는 채석강(彩石江)과 붉은색 암반 및 절벽으로 유명한 적벽강(赤壁江) 등의 변산반도 해안 절벽은 지질학적 명승지일 뿐 아니라, 특산식물인 변산향유의 유일한 자생지여서 ‘한 해 야생화 탐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꽃쟁이’들도 불러 모읍니다. 변산향유는 2012년 꽃향유와 가는잎향유, 애기향유, 좀향유 등 기존의 향유속 유사종과는 구별되는 신종으로 발표되었으나, 아직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오르지 않은 종입니다. 꽃향유(香油)는 줄기는 물론 가지 끝에 칫솔처럼 한쪽으로 뭉쳐서 피는 꽃이 아름답고 식물체 전체에 향기로운 정유(精油)가 함유되어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는데, 변산향유는 꽃향유를 닮았지만 분자생물학적 분석 결과 몇몇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먼저 몸집이 꽃향유에 비해 작을 뿐 아니라, 줄기가 녹색의 꽃향유와 달리 자주색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넓은 달걀형 또는 타원형으로 마주나는 잎도 가죽처럼 두껍고 윤기가 나는 혁질(革質)이어서 초질(草質)인 꽃향유와 비교가 됩니다. 높이 30cm 안팎의 줄기나 잎자루 등에 털이 전혀 없이 밋밋한 것도 큰 차이입니다. 자생지도 크게 다릅니다. 꽃향유는 전국 어디서나 숲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변산향유는 변산반도 해안 절벽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향유속 다른 유사종들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꽃이 피지만, 늦가을인 11월까지도 꽃을 볼 수 있어 앞서 언급했듯 ‘한해 마지막 꽃 탐사 대상’으로 꽃쟁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Where is it? 변산에서 처음 발견된 꽃향유의 일종이라는 이름답게, 변산반도가 자생지다. 학명 중 종소명 byeonsanensis는 자생지가 바로 전북 변산임을 말해준다. 신종 발표 이후 추가 연구 조사 결과가 없어 변산반도 이외 자생지는 알려진 바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큰 자생지는 변산반도 안에서도 격포항 인근 해안 절벽이다. 10~11월 격포항 방파제 내 수직 절벽에 자생하는 변산향유는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그 외 지역은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시각에 맞춰 찾아가야 한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 2018-11-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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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스산한 가을 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꽃 ‘가는잎향유’!
- 자연에 다가갈수록 오감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만추의 계절 무르익은 오곡백과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합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은 회색의 건물들에 가로막힌 시각을 되살려 줍니다.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TV와 컴퓨터 등 각종 전자 음향에 지친 청각에 청량한 활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침저녁 피부를 스치는 선선한 가을바람은 여름 무더위에 무뎌진 촉각을 곤두서게 합니다. 그리고 저 높은 바위 절벽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피어난 ‘가는잎향유’는 그 어떤 허브 식물에 못지않은 강한 자연의 향으로 인공의 냄새에 지치고 둔화한 우리의 후각을 다시 일으켜 줍니다. 가을의 스산함을 포개고 또 포개서 농축한 듯 강하디강한 자연의 허브 향을 풍기는 꽃, 계절의 변화를 후각으로 느끼게 하는 꽃, 바로 가는잎향유입니다. 가을이 깊어 감을 절감하는 ‘시월의 어느 날’, 바로 그 어느 날을 닮은 가장 가을다운 꽃이 가는잎향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 길 낭떠러지 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온갖 세파에서 벗어난 듯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은 한여름 남덕유산 정상에서 만났던 솔나리와 참으로 많이 닮았습니다. 툭하면 생태계를 해하려 드는 인간의 범접을 꺼리는 듯, 절벽 끝에 달라붙어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줄기를 내려다보는 가는잎향유 군락은 누구든 한 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가을의 향 또한 짙어집니다. 해서 사진을 담는 내내 눈이 즐겁고 코가 호강을 하게 만드는 꽃이 바로 가는잎향유이기도 합니다. 폐부까지 파고들 듯 강렬한 천연의 향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산자락에 쌓이는 낙엽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가는잎향유의 젓가락처럼 가는 잎도 연두색에서 홍갈색으로 변하며 손을 대기만 해도 부서질 듯 바싹 말라 가지만, 꽃과 잎 등 높이 50cm 정도의 전초에선 박하 향보다도 진한 천연의 향이 우러나와 가슴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런데 가는잎향유의 깊고 강한 허브 향에 취하고 즐기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는잎향유 자생지에는 늘 숱한 벌과 나비들이 몰려들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황홀한 만추의 성찬을 즐깁니다. 그러는 사이 야생화 애호가들은 가는잎향유의 자줏빛 꽃에 취해서, 꽃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벌·나비들의 바쁜 날갯짓에 반해서 넋을 잃고 연신 셔터를 눌러 댑니다. 꽃은 물론 깻잎 같은 잎과 줄기가 기름을 머금은 듯 반질반질 윤기가 돌 뿐 아니라 전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서 꽃향유(香)라 부르는 꿀풀과 향유속 식물의 하나입니다. 마주나는 이파리가 젓가락처럼 길고 가늘다고 해서 가는잎향유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직은 멸종 위기 식물이 아니지만, 서식지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어 각별히 신경 써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우리의 토종 식물 자산입니다. Where is it? 조령산·월악산·속리산 등 충청북도 보은군과 제천시, 경상북도 문경시를 지나는 산악 지대에 자생한다. 특히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주로 자리 잡고 있어, 멀찌감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간 위험한 게 아니어서 야생화 사진 작업에 익숙한 전문가들도 아주 조심하며 다가서는 꽃의 하나다. 문경 새재로 유명한 조령산 절벽 곳곳에 자생하는 가는잎향유가 전망 좋고 꽃 무더기도 풍성해 인기다. 몇 해 전 문경 새재 길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내기 전에는 큰길을 따라 연이어 무더기로 자랐는데, 지금도 새재 길 절개지 일부에서만 만날 수 있다. >>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 (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푸른 행복) 저자.
- 2016-09-29 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