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전 수요가 높아지는 설 명절을 앞두고 금융범죄 등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금융범죄로는 불법사금융, 명절 선물 배송·교통 범칙금 납부·경조사 알림 등을 사칭한 스미싱, 메신저피싱 범죄 등이 꼽힌다.
이에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금융범죄 피해 예방 요령을 다음과 같이 안내했다. 만약 위 사례에 해당하는 문자나 전화를 받았다면, 다음 내용들을 살펴보고 범죄 피해를 예방해보자.
★불법사금융 금융 범죄 예방법
△ 등록대부업체 맞는지 확인해야
금감원은 평소보다 자금 수요가 많아지는 명절을 앞두고 “당일”, “비대면” “신속대출” 등 신속성을 강조한 불법사금융 광고가 성행하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조급한 마음에 등록대부업자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법정 최고 금리(연 20%)를 초과하는 높은 금리에 대출을 받게 되거나, 지인에게 사채 이용 사실을 알리는 불법추심행위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우선 대부 계약을 하게 된다면, 해당 대부업체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곳이 맞는지 확인해야한다. 금융감독원의 ‘파인’(find.fss.or.kr) 홈페이지에서 금융회사 정보→ 등록대부업체 통합관리 사이트로 들어가면 전국 대부업체 상호명, 전화번호 등을 조회할 수 있다. 사이트에서 조회되지 않는 곳이라면 불법사금융업자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자.
또한 SNS나 오픈채팅 등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없는 수단으로 연락하게 되면 상대를 특정하기 어렵고 조회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수단으로 연락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 대부 중개 명목으로 수수료 요구하면 불법
금감원은 최근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내용 중 불법중개수수료 수취에 대한 상담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불법중개수수료 수취 상담 건수는 2022년 1월~9월까지 140건이었던 것이 2023년 같은 기간 376건으로 약 2.7배 증가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소비자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실제로 적발되고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신용점수가 낮아 대출이 불가능하지만 수수료를 내면 가능하다고 하거나, 햇살론 등 정책자금대출을 중개해줄테니 착수금을 요구하거나,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에서 대출 상담을 해줄테니 거마비를 달라는 식이다.
금융위는 소비자에게 어떤 이유로든 대부 중개에 대한 대가를 받는 행위는 「대부업법」 제11조의2 제2항에 따라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채무자대리인 무료 지원 사업 적극 활용
금융 범죄 피해를 입었다면, 채무자대리인 무료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자. 해당 사업은 금융위가 운영하는 불법채권추심피해(우려)자와 법정 최고 금리(연 20%)를 초과해 대출을 받은자를 대상으로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가 채무자를 대신해 추심전화를 받는 등 채권자의 추심과정을 일체 대리하고(채무자대리), 반환청구·손해배상·채무부존재확인 소송 등을 대리(소송대리)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신청할 필요가 있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피해 예방법
△문자메시지 속 웹 주소나 전화번호 누르지 않기
금융위는 설 명절 전후로 교통 범칙금 납부 고지 등의 공공기관 사칭, 명절 안부인사나 경조사 알림을 위장한 지인 사칭, 설 선물 배송을 위장한 택배 사칭 등 스미싱 문자메시지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금융 사기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먼저 이런 스미싱 문자의 경우 메시지에 있는 웹 주소(URL)는 절대 누르지 말아야 한다. 주소를 클릭하면 휴대전화 원격조종 앱, 개인정보 탈취 프로그램 등 악성 앱이 설치돼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스미싱으로 의심되는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 대화를 받았다면, 아무것도 누르지 말고 메시지를 삭제하도록 하자.
△문자나 메신저 등을 통한 개인정보 또는 금융 정보 요구 주의
가족, 지인 등을 사칭하며 문자 메시지로 긴급한 상황이니 금전을 보내달라거나, 상품권을 구매해달라거나, 금융거래정보 등을 요구하는 것은 메신저 피싱이다.
휴대폰 분실이나 수리비, 신용카드 도난·분실, 교통사고 합의금, 상품권 대리 구매 등의 사례가 있었다.
특히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상대방이 애플리케이션 설치를 하라거나 계좌 비밀번호를 요구한다면 심각한 재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상대 요구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설 연휴 기간 중 스미싱·메신저피싱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면 24시간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통합신고·대응센터(☏112)나 피해금이 입금된 금융회사 콜센터에 연락해 지급정지 신청 등 피해구제 상담을 적극 이용하자.
또한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면 ①개인정보 노출 등록, ②계좌정보 통합관리서비스, ③휴대폰 명의도용 방지서비스 등을 적극 활용해 본인도 모르는 신규 계좌개설 및 대출, 신용카드 발급 등 추가적인 명의도용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명절 해외여행 후 남은 외화 개인간 직거래시 보이스피싱 사기 연루 주의
설 연휴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남은 소액 외화 현찰을 온라인 플랫폼이나 직거래를 통해 개인 간에 사고 파는 경우가 있다.
이때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외화를 사는 사람으로 위장해 보이스피싱으로 편취한 자금을 계좌이체 등으로 지급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에 연루될 수 있다.
이 경우 외화 판매대금을 받은 계좌가 지급정지 되고, 외화판매자(계좌명의인)는 일정 기간 모든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되기 때문에 계좌이체, 신용카드 대금납부 등 금융거래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이에 금융위는 소액이더라도 외화를 환전하는 것은 시중은행과 같은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당부했다.
자장면 한 그릇 2만 원, 꽤 비싸다고 판단할 금액이다. 그렇다면 OTT 서비스 월 구독료 2만 원은 어떤가? 대답이 쉽지 않다. 또 타인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는 건 잘 알 테다. 반면 디지털상에서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하고 공유하는 일은 빈번하다. 이러한 사례가 마치 내 일 같다면, 올해는 디지털 문해력 향상에 힘써볼 때다.
자장면 한 그릇 가격 정도는 파악해야 세상 물정을 알듯, 이제는 디지털 세상 물정까지 알아야 힘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스마트 기기나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것만으로 디지털 문해력이 높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가령 요즘 중장년은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고 공유할 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까지 해낸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규범과 윤리를 잘 준수하고 개인 계정이나 금융 정보 등도 잘 보호해야 소위 ‘디지털 웰빙’이 가능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디지털 범죄자 된다?
이종구 디지털콘텐츠그룹·SNS소통연구소 대표는 “요즘 중장년은 온라인에 글을 올리거나 영상 제작 등 디지털 창작 활동도 활발히 한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타인의 저작권・초상권을 침해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유포해 문제가 되곤 한다”며 “최근 시니어 대상 디지털 교육에서는 기본적인 활용법 이외에 저작권, 사이버 범죄 등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범죄에 악용하지 않더라도, 알고 보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유료 글꼴을 무료로 이용했거나, 그 글꼴이 사용된 사진이나 동영상을 공유하는 것도 저작권 위반에 해당된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상 또는 글을 친구・가족에게 보내거나 이를 이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저작권 위반이 될 수 있다. 직접 찍은 사진에 다른 사람이 나온 경우, 당사자 동의 없이 사진을 공유하거나 인터넷에 올리면 초상권 침해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려면 가짜 뉴스와 허위 내용을 구별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확실하지 않은 자료라면 주변에 공유하지 말 아야 한다. 타인을 비방하거나 폄하하는 내용이라면 더욱 조심하자. 허위 또는 명예훼손 여지가 있는 경우, 작성뿐만 아니라 타인의 콘텐츠를 유포하는 것 역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실제 한 70대 남성이 유명인에 대한 악성 가짜 뉴스를 공유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벌금형에 처해진 사건도 있다. ‘디지털 발자국’이라는 말처럼, 디지털에 남긴 흔적은 쉽게 지우기 어려우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편리한 디지털 라이프, 독이 되지 않으려면?
이종구 대표는 “디지털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 중장년에게도 익숙하다. 다만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자칫 편향된 정보만 습득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며 “특히 중장년이 애용하는 ‘유튜브’의 경우 즐겨 보던 영상을 기준으로 알고리즘이 형성돼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노출시킨다. 문제는 그러면서 확증편향(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성향)이 생긴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 등 올바르지 않은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되기도 한다. 이는 정보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사고의 불균형을 초래해 타인과의 소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Tip] 유튜브 애용하는 중장년 ‘시크릿 모드’ 설정하기
확증편향을 예방하고 싶다면 ‘시크릿 모드’를 사용해보자. 마치 유튜브 계정에 로그인하지 않은 것처럼 앱이 작동하는 설정이다. 로그인 상태에서도 구독 또는 시청 기록이 알고리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움말 이종구 디지털콘텐츠그룹·SNS소통연구소 대표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52.4%인 1227만 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늘어나는 반면,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층간 소음으로 범죄까지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첫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로서, 입주민 약 1500명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의 이웃이다. 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직접 아파트 시설을 설계·운영한다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고자 위스테이 별내를 찾아가 봤다.
입주민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시설
202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는 위스테이 별내는 지하 2층부터 지상 22층의 7개 동, 총 491세대(60㎡, 74㎡, 84㎡ 3가지 주택형) 규모다. 약 1500명의 입주민은 모두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아파트는 크게 전유부(거주하는 집), 공유부, 부대·복리 시설(커뮤니티 시설)로 나뉜다. 이 가운데 위스테이는 부대·복리 시설을 입주민이 직접 설계했다. 위스테이에서는 이를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명칭 했으며, 입주 전부터 거의 1년간 논의의 시간을 거쳤다. 그 결과로 법정 기준의 2.5배에 달하는 2777㎡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이 내실을 갖춰 조성됐다.
위스테이 단지 중앙에는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커뮤니티 시설이 존재한다. 교류의 장인 동네카페를 비롯해 동네책방, 동네체육관이 있다. 작게는 빨래방, 공유주방도 형성됐다. 취미를 공유하는 공간인 동네창작소와 통네텃밭도 만날 수 있다. 아파트 외곽에는 협동상회도 존재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입주민이다. 공동체 시설에 잘 어울리는 ‘동네’라는 이름 또한 투표로 결정됐다.
위스테이 별내 입주민들은 월세 10만 원을 내는데, 그중 5만 원은 커뮤니티 시설 이용료다. 입주 초기에는 ‘나는 잘 이용하지 않을 것인데 왜 5만원이나 내야 하냐’면서 볼 멘 소리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각자의 사연으로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들 만족을 표한다. 위스테이에서 커뮤니티 시설은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스테이에 사는 사람들
위스테이 별내는 남양주 일대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났다. 전 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며 교류할 수 있고, 관련 시설도 마련돼 있어서다. 단지 내에는 산새꽃어린이집을 비롯해 미취학 아동 및 방과 후 학생을 위한 돌봄 센터가 있다. 외출 시 이웃에게 자녀를 맡기거나, 학부모끼리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어르신을 위한 공간은 없을까. 위스테이의 60세 이상 어르신은 30·40대 입주민의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내에 있는 ‘60+센터’가 그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로당이라고 하는 곳이다. 단순히 소통과 취미·여가를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도 힘쓴다.
“이웃은 나의 친구…여행보다 집이 좋아”
수요일 정오 무렵 ‘60+센터’에서는 맛있게 밥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오후 요가 수업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함께 밥 먹는 날이라고 했다. 가족을 표현하는 ‘식구’란 ‘끼니를 같이 먹는 사람’을 뜻하는데, 가족 같은 끈끈함이 느껴진다.
‘60+센터’ 어르신 가운데 김연진(76), 김석순(70) 씨와 얘기를 나눠봤다. 김연진 씨는 ‘비공식 요가 강사’이다. 시니어들의 요가 수업은 온라인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40년 넘게 요가 운동을 해온 그는 선배이자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석순 씨는 시니어 동아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전에는 공동체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로 걱정이 많았지만, 현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김연진 씨는 “최근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힘들기만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우리 아파트가,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다”면서 “집이 제일 좋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다.
공동체 삶의 장점을 묻자 김연진 씨는 “여기에서 요가도 하고, 라인댄스도 배우면서 사람들하고 정답게 살다 보니 건강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이웃들과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러깅 활동을 한다는 김석순 씨 역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맞장구를 쳤다. 또한 그는 “꽁날(공동체의 날)에 우리 시니어들이 공유주방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팔았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계속 먹고 싶다고 해서 뿌듯했다. 또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할 때 앞장서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게 된 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위스테이에는 홀로 사는 80대 할머니가 있다. 김연진 씨는 언니인 그분이 마음에 쓰여 일부러 종종 찾아가 말도 걸고 같이 산책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이제는 언니가 동생을 먼저 찾는가 하면, ‘60+센터’에도 자주 나오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단다.
‘60+센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니어는 30명 정도다. 이제 그들은 돈독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김연진 씨와 김석순 씨는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같이 늙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하며 웃음 지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돼. 오죽하면 나중에 우리끼리 같이 살까라는 말도 했다니깐.”
부동산 문제 해결하는 주거 모델
대규모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주거 안정을 꾀하는 대안적 주거 모델로 꼽힌다. 1호 별내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2호 지축은 경기도 고양시에 각각 있다. 위스테이 사업을 주관하는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째 되어간다. 초반에 정부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과연 가능할까’라면서 의구심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니 입주민의 만족도도 높고, 관리도 잘 되고 있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 된다”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더함의 창립 멤버들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었다. 김종빈 부대표는 아름다운가게․한솔교육희망재단 등 비영리 단체 출신이다. 양동수 대표는 공익 활동에 치중해 온 변호사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뭉친 이유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였고, 자연스럽게 주요 대상층은 30․40세대가 됐다.
“소득을 기준으로 국민을 10분위로 나눠봤을 때, 우리는 중위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집중했습니다. 그중 8, 9, 10분위는 집이 있고, 1, 2분위는 공공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죠. 저희는 3분위부터 7분위 정도가 저희들의 타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이 결국 30․40세대인 거죠. ‘전세 난민’, ‘하우스 푸어’, ‘영끌족’ 등 모두 30․40세대에서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입주민을 모집할 때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는 30·40세대 중에서 공동체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자’로 아예 표적을 설정했어요.”
더함은 2016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시범사업인 ‘협동조합형 뉴스테이’의 사업자로 선정됐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뉴스테이’ 사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2015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모든 이익을 건설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에 국토부는 공공성을 보완하고자 협동조합형 뉴스테이 공모 사업을 진행했고, 더함이 선정되면서 위스테이라는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뉴스테이 사업은 건설사가 자금을 대지만, 위스테이는 입주민이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출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건설사는 단순 도급 형태로만 참여했다. 이를 통해 임대료를 주변 시세 대비 20% 저렴하게 제공하게 됐다. 별내는 보증금이 2억 5000만 원, 지축은 2억 9000만 원이다. 그중 4000만 원은 협동조합원으로 내는 출자금(임대차 계약 해지 시 환급)이다.
“위스테이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의무 임대 기간을 8년으로 정했고, 2년마다 재계약을 진행합니다. 별내는 이미 한 차례 재계약을 했는데, 보증금은 동결이었으며 임대료는 단 1% 상승했어요. 법의 기준은 1년에 5%씩 상승 가능해서 최대 10%까지 올릴 수 있죠. 그러니까 위스테이는 비용적인 측면만 봐도 좋은 부동산 주택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8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우리 사업 구조가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법 개정 요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죠.”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는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중·저 소득자를 위한 저렴 주택’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 주택’이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는 “어포더블 하우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장기간 거주가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 합리적 주택 비용을 지불하는 정도 수준이어야 한다. 세 번째, 그 안에 좋은 커뮤니티가 존재해야 한다. 위스테이는 그 세 가지의 기본 개념을 충족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생활 주거 늘어나야
위스테이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는 모델을 그렸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평생학습 모델인 ‘100개 마을 학교’와 ‘100개 마을 일자리’를 목표로 세웠다.
“100개 마을 학교는 이미 다 채웠어요. 악기 연주, 스포츠, 목공 등의 만들기 등, 현재 동아리를 보면 마을 학교에서 이어진 경우가 많죠. 그러나 일자리 제공은 50여 개밖에 되지 않았어요. 세입이 창출돼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을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는 아니에요. 바리스타, 경비, 청소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정주부나 시니어가 하기 적합한 파트 타임 일자리가 많은 편이죠. 좀 더 양질의 일자리로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함의 직원 10여 명은 실제로 위스테이에 거주하는 입주민인데, 김종빈 부대표는 지축에 산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활동 참여도 하고 있다. 목공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아들과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는 모임에 참석한다. 직접 거주하며 느낀 공동체 생활의장점을 묻자 그는 객관적인 시선을 위해 아내의 얘기를 전했다.
“사실 제 아내가 좀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위스테이로 이사 올 때 썩 내켜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위스테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동네에서 좀 알려지게 될 것 같고, 민원도 받을 것 같고 조금 부담스러웠나 봐요. 그런데 이 공간이 주는 힘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해서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부모들끼리 엄청 친해졌더라고요.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요. 또 단지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사람들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분명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가족끼리도 싸우는데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더함은 이를 예상했고, 조합원들이 입주 전 갈등 조정 교육을 60 시간 이상 이수하도록 했다. 또한 위스테이는 갈등 조정 위원회도 두고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공동 주택인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3대 분쟁은 주차·층간 소음·반려동물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펫팸(Pet+Family)족’이 늘고 있는데, 위스테이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별내에서는 입주 초기에 반려동물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과 함께 ‘별나개(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워크숍을 했었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을 상대로는 에티켓에 대해 얘기했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가족에게는 예상되는 불편함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죠. 그리고 세 번째로 같이 모여서 약속했어요. ‘목줄 잘 채워줘’, ‘배변 잘 치워줘’ 등의 약속이 오갔죠. 별내에서는 2년 전 조사 결과지만, 30~40% 정도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요. 1인 가구 거주율이 높은 지축은 50% 가까운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축에서는 목공 동아리에서 반려동물의 배변을 치울 수 있는 간이 부스를 만들었고, 운영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동아리가 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종빈 부대표는 물론 입주민은 위스테이와 같은 좋은 주거 모델이 지속해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꼭 위스테이 3호가 아니더라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의 주거 모델’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근혜, 문재인, 현재의 윤석열 정부까지.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기간이었는데, 정부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모는 딱 한 번 이뤄졌어요. 위스테이와 같은 주거 유형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2100만 가구가 사는데, 딱 1000세대만 독특한 모델인 위스테이에 살고 있는 거죠. 앞으로 정부의 노력도 이뤄져서 그 숫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 사회는 과학 기술과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속에서 현대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으며 변수도 늘었다. 끊임없는 갈등과 지나친 경쟁, 소통 단절로 생겨나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저마다의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사납게 일렁이는 사회의 굴곡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온 몇 가지 증후군을 소개한다.
기침 한 번에 불안해하는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은 자신의 실제 몸 상태보다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강박장애다. 사소한 증상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의사의 진단도 믿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몇 년간의 팬데믹을 거치며 TV나 신문, 책, 유튜브 등 의학 정보를 다루는 채널이 늘고,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의학 정보가 난무해 나타난 결과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에 따르면, 건강염려증의 원인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신체적 불편에 대한 인내심이 낮아 감각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당면해 환자 역할을 함으로써 책임과 의무를 피하려고 하는 경우, 상실이나 배신으로 인한 분노와 죄책감 등의 방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다른 정신질환의 변종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건강염려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공통적으로 병원을 돌아다니며 CT, MRI 등 각종 검사를 반복하는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한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며 질병이 없다고 진단한 병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름의 치료를 진행하며 건강식품 섭취나 민간요법에 심취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오히려 건강 정보를 지나치게 접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평소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일상의 모든 것이 걱정 램프증후군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듯 근심이나 걱정을 불러내 스스로 괴롭히는 현상이다. 과잉 근심이라고도 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접한 범죄, 사건 사고, 재난 소식뿐 아니라 뉴스에 보도되지도 않은 추측성 글이나 루머에서도 대리 외상을 겪는다. 더 나아가 실제보다 과장해 받아들이고 막연한 공포감을 느낀다.
다수의 광고에서는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다년간의 흡연으로 폐암이 발생한 사람의 인터뷰를 공익광고로 활용하고, 특정 제품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주입한다. 금융·보험 업계에서도 가난한 노인의 모습을 제시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하며 상품을 권유한다.
우리는 핵가족화·고령화로 인해 독거노인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개개인이 가족이나 공동체의 보호 속에 있지 못하고, 충격과 불안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따라서 과한 걱정이나 불안 때문에 장기간 학업, 대인관계, 직업 생활 등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사람이 하는 걱정의 4% 정도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96%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니 96%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일상의 평화를 되찾아보자.
순간의 소비와 쾌락 좇는 도파민중독
현대로 올수록 세상은 결핍에서 풍요의 공간이 됐다. 손가락 움직임 몇 번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답이 나타나고, 필요한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혹은 다음 날 바로 받아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더불어 SNS, 게임, 유튜브·OTT 시청, 음식 섭취 등 중독적인 행동을 반복해 뇌의 도파민 생성을 자극하고,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여졌다.
도파민은 뇌의 시상하부에 의해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주로 행복감이나 만족감,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애나 렘키(Anna Lembke) 스탠퍼드 의과대학 중독의학 교수는 적절한 도파민 분비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폭발적으로 분비될 경우 신경회로가 손상돼 정상적인 작동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한다. 뇌는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시소와 같은 성질이 있다. 쾌락을 느끼는 순간 해당 행위를 다시 하고 싶은 욕구, 즉 고통으로 이어진다. 특히 현대인은 순간적인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대가를 더 많이 치르게 된 것이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쾌락과 고통의 균형을 맞추고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기 위해 자극을 찾게 된 셈이다.
그는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헐적 단식, 찬물 샤워, 운동, 학문적 노력, 창의력을 발휘할 만한 일 등 ‘미리 수고하기’를 제안한다. 일부러 어려운 일을 먼저 함으로써 도파민 수치를 건강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중독된 것이 무엇이든 4주간 완전히 끊어보는 구속을 통해 뇌의 항상성이 회복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4주가 지난 후에는 각자에게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면 된다.
정신질환 초기에는 환자가 스스로 상태를 파악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가족·친구·지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징후를 발견하고 치료를 독려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이 잘못된 생각으로 치료를 말리거나, 민간요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신질환을 겪는 당사자의 회복을 넘어, 가족 구성원이 서로 건강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고, 시민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더불어 서울시 정신 건강 브랜드 ‘블루터치’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에게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의 마음 건강을 위한 방법에 대해 물었다.
Q. 내가 주변인이라면, 정신질환 당사자에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A. 친구·가족·친척·지인 등 주변인을 통해 당사자의 사회 연결망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의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 게 핵심이거든요. 대화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 일상을 교류하면서 마음을 돌보는 거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지해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기도 하고요. 다만 정신질환에 대한 개인적인 편견이나 인식을 당사자에게 전달하는 행동은 조심해야 합니다.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더 나아가 “그 증상은 네가 예민해서 그러는 거야”,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어” 등 비당사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건 ‘건강한 주변인’의 역할이 아닙니다.
Q. 갑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면요?
A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등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도록 도와야겠죠. 자녀나 부모님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 마음의 문제가 의심되지만, 막상 병원에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둑이 무너져서 강물이 넘치는 것을 정신증이라고 생각해볼게요. 넘칠까 말까 아슬아슬한 상태일 때 빨리 물길을 돌려 압력을 줄이고, 둑을 더 높이 쌓거나 지지대를 설치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Q. 만약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우선 당사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데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자신이 정신질환자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거나, 혹은 병원에 가지 않고 증상을 해결해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치료받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일 수도 있겠죠. 혹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겁이 날 수도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유도해야 합니다. 걱정하는 부분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거나, 비슷한 사례를 들어 설득하는 방법을 써보는 거죠. 차근차근 접근하면서 당사자에게 신뢰를 줘야 해요. “너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고, 내가 이야기하는 게 맞아”라고 강요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순순히 인정하고 따르는 건 아니거든요. 치료를 위한 태도와 방법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좋지 않습니다.
Q. 가족의 오해나 편견 탓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A. 지금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어르신들은 정신질환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해서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정신 건강이라는 주제를 편안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얼마 전이잖아요. 부모나 자녀에게 탕약을 먹이거나, 종교적 의식을 치르는 사례도 있어요. 결국 가족이 나의 인권을 무시한다고 여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중증이나 만성질환이 될 가능성이 작지 않죠. 물론 당뇨나 치매, 암과 같은 신체 질환처럼 정신 건강과 관련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정신적 증상은 가족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증상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중요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각 자치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 혹은 의료기관에 문의하거나, 그곳에서 제공하는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권합니다. 사실 전문가들이 당사자 가족의 적절한 대응과 태도에 대해 홍보하고 전달하는 게 맞죠.
Q. 실제로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꾸준히 변화하고 있고요. TV를 봐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ADHD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방송인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이분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신질환도 당뇨나 고혈압처럼 건강 문제 중 하나이고, 개인이 잘못해서 발병하는 것이 아닙니다.
Q.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사회적으로 위축되거나 생활에 지장을 받는 사례도 종종 보이는데요.
A. 임상 현장이나 센터에서 상담할 때 주로 듣는 이야기인데요. 가족들은 보통 자녀 혹은 부모가 정신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꺼려해요. ‘엄마가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그러냐’는 말을 들을까 무섭고, 내가 잘못해서 딸이 이렇게 됐다며 자책하기도 하고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좋지만, 힘들더라도 가족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주변에 나눴으면 합니다. 상실감이나 불안감, 우울감을 품고 지내기보다 가족지원활동가나 관련 기관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거죠. 더불어 보호자로서의 역할만큼이나 비당사자인 본인의 행복도 중요해요. 걱정되고 옆에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짧게라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생각을 전환할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Q.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이 있을까요?
A. 초고령화 시대 진입을 앞둔 데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라,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점점 사라질 겁니다. 대신 친구나 지인, 정신 건강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종사자들이 당사자의 주변 사람이 되겠죠. 나라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통합 지원책을 선보여야겠고요. 기업은 정신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나 그 가족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면 배려할 만한 사규를 정해도 괜찮겠습니다. 언론에서도 정신질환과 범죄의 인과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성급히 보도하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불안·혐오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하지 않아야 해요. 지역사회와 기업, 의료기관, 정부가 잘 연결돼 정신 건강에 대한 기반이 마련되고 사회적 분위기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당사자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
◎당사자 가족지원가 양성 교육
당사자 가족지원가는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를 둔 가족이 다른 가족을 지지하고 심리적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한다. 정신 건강 증진 및 관련 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의 가족 중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10명을 선발하고, 가족지원가로 양성한다. 교육 내용은 가족 활동의 이해, 정신질환과 가족의 상황, 가족 상담의 이해와 실제, 회복과 가족의 역할, 지역사회 활동 이해, 가족지원 활동기관 현장 방문, 가족지원 서비스 제공 과정 및 활동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습득으로 이어진다. (23년 교육 진행 완료)
◎당사자 가족대표단(리더) 모임 및 역량 강화
가족은 당사자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생계를 꾸리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당사자 가족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서적으로 환기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격월 1회 가족대표 모임을 진행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보호자로서 힘든 역할과 고충을 서로 토로하고 위안받는 시간이다. 더불어 가족들이 희망하는 주제로 연 2회 교육을 실시해 역량 강화를 돕는다. 자세한 사항은 각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문의해 확인할 수 있다.
“아들이 납치되었어요. 빨리 돈을 찾아야 해요.” 지난 2월 대전시에서 한 70대 여성은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우체국에서 현금 2400만 원을 찾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우체국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제지한 덕분에 여성은 금융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고령자들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고령자들은 정보기기 사용 미숙, 낮은 정보 접근성 등으로 인해 금융 사기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높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고령자 보호에 미흡한 실정이다.
고령자 보이스피싱 범죄 급증
지난해 금융감독원의 ‘60세 이상 고령층 대상 보이스피싱 현황’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은 감소 추세에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2018년 70251건에서 2021년 12107건으로, 피해 금액은 2018년 4440억 원에서 2021년 612억 원으로 각각 줄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고령층 대상 범죄 건수와 피해 금액의 비중은 늘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 중 고령층 피해 비중은 2018년 16.2%에서 2022년 상반기 56.8%로 3.5배 증가했다. 피해 금액 중 고령층 피해 비중도 2018년 22.2%에서 2022년 상반기 48.8%로 2배 이상 뛰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고령층에 집중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최근 나타난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문자메시지, 카톡 등으로 가족·지인을 사칭하며 개인정보 및 금전 이체 등을 요구하는 △메신저피싱, 검찰·경찰 등을 사칭하는 △기관 사칭, 저리 대출 대환 등으로 자금 이체를 유도하는 △대출 빙자 유형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채널 이용 증가로 메신저피싱 금융 사기가 급증했다.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 중 메신저피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5.1%에서 2020년 15.9%, 2021년 58.9%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로 가족, 지인을 사칭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휴대폰 파손, 신용카드 분실 등 불가피한 상황을 알리며 악성 링크에 연결을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법안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고령자 금융 피해는 가해자와 가해 경로에 따라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 △금융 착취, △금융 사기로 구분된다. 먼저 금융 상품 불완전 판매는 금융기관이 금융 상품을 부적합하게 판매한 경우를 말하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금융 착취는 상황에 따라 적용 법이 달라진다. ‘금융기관에 의한 금융 거래상 금융 착취’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적용 대상이다. 금융기관과의 금융 거래가 아닌 ‘친족・부양자 등에 의한 금융 착취’는 ‘노인복지법’이 적용된다. 노인 학대 방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해당 법에서는 ‘경제적 착취’를 노인 학대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는 잘 모르는 타인이나 전문적인 사기 집단에 의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보이스피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사기에는 ‘전기통신·금융 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 적용된다.
즉 우리나라에는 고령자 금융 피해 유형 별 관련 법이 있을 뿐 고령자 금융 피해 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법이나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소비자보호법과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연령과 상관없이 적용되는 법이고, 노인복지법은 구체적인 내용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찍이 고령자 금융 사기 관심 가진 해외 사례
이처럼 고령자 금융 피해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2020년 정부는 ‘고령 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근본적 종합적 대책을 마련했다.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 마련 △고령층 전용 대면 거래 상품 출시 △고령자 전용 비교 공시 시스템 구축 △고령층 금융 착취 의심 거래 감시 시스템 구축 등의 내용을 약속했는데, 큰 진전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과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을 제정한다고 예고했다. 해당 방안의 주요 내용은 금융기관이 고령자 착취 의심 사건 발견 시 금융감독원・경찰 등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실효성 확보를 위해 금융기관 직원의 면책 조항을 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령자에 대한 불완전 판매 방지, 차별 금지 등에 관한 사항을 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금융기관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이 금융 착취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민사상・형사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 직원의 업무 수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를 법에 의무화하기보다는 각 금융권별 상황에 맞게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현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일찍이 고령층의 금융 사기에 관심을 갖고 정책 마련 등 대응에 나섰다. 덕분에 고령층 금융 사기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주요국의 고령층 금융사기 피해 방지 노력’ 보고서를 통해 해외 주요국들의 정책을 담았다.
먼저, 미국은 지난 2018년 ‘고령자안전법’(Senior Safe Act)을 제정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착취가 의심될 때, 금융기관 및 직원 등이 고령자 동의 없이 금융 당국에 의심 사례를 보고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노인금융피해방지법’을 제정할 때 해당 법을 참고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신종 금융사기로부터 고령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기 및 스캠 방지법안’(Fraud and Scam Reduction Act)이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 재무부, 법무부 등 관계 부처장과 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고령층 사기 방지 자문 그룹을 구성하고, 고령층 보호 정책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2014년 ‘소비자안전법’을 일부 개정해 고령자를 배려가 필요한 소비자로 규정하고, 필요한 대응을 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고령층의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금융기관, 지자체가 연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수사기 예방 정책을 강화했다. 정부의 규제 노력으로 2021년 피해 규모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고령자 등 학대로부터 취약한 성인을 보호하기 위한 성인 보호 정책이 시작됐으며, 2014년 ‘돌봄법’(Care Act)을 제정해 관련 법 및 규정을 일원화했다. 더불어 금융회사에 의한 고령층의 금융 착취 및 금융 사기 피해 근절을 위해 당국이 불법적, 사기적 영업 행위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방송인 박수홍의 친형 박진홍 씨가 10월 7일 구속 기소됐다. 출연료와 수익금 등 연예 활동과 관련된 자금을 횡령한 혐의다. 박 씨의 부친은 “횡령한 재산을 내가 관리했다”며 주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박 씨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죄를 뒤집어쓰면 큰아들 박진홍 씨를 방어할 수 있고, 친족 간 재산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처벌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친족 간 도둑질에 관한 특례’다. 형법 제328조에 따르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배우자 간에 발생한 재산범죄(절도죄·사기죄·공갈죄·횡령죄·배임죄·장물죄·권리행사방해죄 등)에 대해 그 형이 면제된다. 그 외의 친족이라면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배우자의 혈족, 즉 사돈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사돈을 친족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사돈은 친족의 일종인 인척에서 제외돼 법적으로 친족이 아니다.
박수홍 가족 사건으로 주목
박진홍 씨는 2011년부터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며 10년간 박수홍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했다. 인건비 허위 계상 등의 방법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렸을 뿐 아니라 박수홍의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공인인증서를 비롯해 통장 4개를 관리하며 약 29억 원을 무단 인출했다는 것이 박수홍 측의 주장이다. 검찰 조사 결과 박진홍 씨의 횡령 혐의 대부분은 연예기획사인 ‘법인’을 상대로 저질렀기 때문에 친족상도례와는 관련이 없다. 박수홍 개인을 상대로 한 일부 범죄에 대해서도 형이 박수홍과 동거하고 있지 않아 친족상도례 적용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계혈족이기 때문에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박 씨 아버지가 횡령 주범을 자신으로 지목해 친족상도례 악용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박수홍 씨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인터넷 OTP와 공인인증서를 활용해 법인과 개인 통장을 모두 관리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박수홍 씨의 계좌 비밀번호조차 모른다”며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불붙은 존폐 논란
친족상도례 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했다. 가족 구성원 간 재산 범죄에 대해선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 당시의 입법 취지였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족 공동체주의 사회인 데다, 가정 내에서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친족 사이의 유대가 옅어지면서 가족을 대상으로 한 재산 범죄가 증가했다.
박수홍 사례 외에도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친족 범죄에 더욱 취약한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2021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 학대 중 92.6%는 가정에서 발생했다. 치매 환자의 친족이 도장을 훔쳐 부동산 명의를 바꿔두거나, 부모의 노령연금을 자식이 가져가는 경우다. 때문에 친족상도례가 현재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의 개정 검토’에 따르면, 한 설문조사에서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 3만 2458명 중 85%(2만 7702명)에 달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0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형법은 유사 규정을 둔 외국에 비해 친족상도례 범위가 넓은 데다 형 면제가 포함돼 가해자에게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본은 1947년 형법 개정으로 친족상도례 조항에서 ‘동거가족’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절도·부동산침탈죄 등 적용되는 범죄 범위도 한국보다 좁다. 미국과 영국은 친족상도례 규정이 없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민들의 변화한 인식과 친족상도례에 대해 높아진 관심을 고려할 때, 현시점이 관련 조항 개정 검토의 적기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계산법
한동안 모 가수를 둘러싼 부모와 형제 사이 분쟁이 전 국민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언론을 연일 장식하더니 최근에 또 다른 모 방송인과 부모, 형과 형수 사이 고소고발이 텔레비전은 물론 인터넷,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가족 면면 사생활과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부모와 자식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부부가 소송과 맞소송을 벌이는 건 계산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는 100인데 상대가 갚은 것은 10도 안 된다거나, 오히려 부모, 자식, 배우자 등골을 빼먹은 마이너스라고 여기는 데서 갈등이 촉발됩니다. 급기야 봉합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말 그대로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되물으며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난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나는 것이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원수가 되며 은혜가 될 수 있는가.” 성철 스님 생전 법문을 좀 더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나를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아는 아내, 남편, 자식, 형제, 친구, 선후배가 은혜도 되고 원수도 되기 쉽습니다. 같은 부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큰동서와 작은동서가 둘도 없이 각별한 사이가 되는가 하면, 그 각별함이 도리어 화근으로 작용해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나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나를 위해 이롭게 행동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생면부지 남보다 더 헐뜯고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베푼 은혜가 거꾸로 원수가 되는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살펴볼까요.
‘가족끼리 왜 이래’ 속 불효 소송
“그저 잘 되라 잘 되라만 가르쳤지 인생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해서 이 못난 애비가 뒤늦게나마 뉘우치고 자식들한테 회초리를 들까 하는데 자식들의 머리는 너무 굵었고 저는 초라하여 손에 힘이 없습니다, 판사님. 그러니 법으로 그 회초리에 힘을 좀 실어주십시오. 제 인생의 마지막 회초리입니다. 이 회초리가 우리 자식들 인생에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2014년 방영된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KBS-2TV)에서 주인공 차순봉(유동근 분)이 삼남매에게 불효 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의 입장을 판사에게 호소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된 부모와 자식. 합의할 때까지 조정을 계속하겠다는 판사. 마침내 세 남매 월급 가압류 해지와 소송 취하 약속에 대한 선행 조건을 내걸고 합의에 도달합니다. ‘아버지의 소원판’이란 제목으로 적은 합의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엔 암 선고를 받아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긴 합니다.
① 애들(삼남매)이랑 밥 같이 먹기
② 애들이랑 하루에 한 번씩 전화 통화로 안부 묻기
③ 우리 딸 짝 찾아주기
④ 우리 큰아들 내외랑 3개월 동안함께 살아보기
⑤ 우리 막내아들한테 한 달에 백만 원씩 용돈 받기
⑥ 고고장 가기
⑦ 가족 노래자랑
소송을 제기한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유동근은 그해 연말 KBS에서 연기 대상을 받았습니다.
“저를 뒤돌아보는 여정이 되었습니다. 극 중에서 두 아들이 젊은 날의 저였습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이제라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게 돼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게 너무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너무 죄송합니다. 지난날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 아이들이 잘 되게끔 지켜봐 주십시오.”
은혜는 빨리, 원수는 아주 느리게
고마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도로 옅어지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뭐 그까짓 것쯤이야 하고 가벼이 생각하거나, 그만큼은 당연한 거 아니냐며 처음 마음을 눙치기도 합니다. 변명할 구실을 찾느니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물질이 여의치 않으면 말로라도 반드시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에 원수는 최대한 천천히,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그 당시엔 분하고 화가 치밀지만 3초 심호흡, 3분 명상, 30분 산책, 이렇게 3시간, 3일 원수 갚을 일을 늦춥니다. 그러다 보면 태산만큼 억울했던 가슴 아픔도, 밤새 바늘로 찌르던 두통도 어느덧 잦아들고 큰 문제가 사소한 일로 줄어들기도 합니다.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피 묻은 칼을 피로 씻어내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피는 맑은 물로 씻어야 깨끗해지듯 원수 갚으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사라지도록, 원수가 누구였는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나를 정화해야 합니다.
품기가 쉬울까 버리기가 쉬울까 : 후한 광무제의 도량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무찌른 뒤 왕망이 살던 궁에서 편지 한 뭉텅이를 발견했습니다. 각 군현의 관원과 지방 유지들이 왕망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왕망을 칭송하고 유수를 헐뜯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로 살생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유수는 관원과 호족들을 불러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편지를 불살랐습니다. 이를 ‘분소밀신’(焚燒密信)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를 묻는 막료에게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불살랐다고 답했습니다. 광무제의 도량은 앞으로 적이 될 수도 있었던 이들을 감복시킬 만큼 넓었나 봅니다. ‘채근담’(菜根譚) 전집 136장에도 “은혜와 원수는 지나치게 밝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어 배반하게 된다”(恩仇不可太明 明則人起携貳之志)는 말로 일침을 가합니다.
은혜와 원수는 한 끗 차이
같은 책 108장에는 원수와 은혜의 본질과 대처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원망은 덕으로 인하여 나타나니
남들이 나에게 덕이 있다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덕과 원망 모두 잊게 하느니만
못하고,
원수는 은혜로부터 생겨나니
남들이 나의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는
은혜와 원수를 모두 없게
하느니만 못하다.”
(怨因德彰 故使人德我
不若德怨之兩忘
仇因恩立 故使人知恩
不若恩仇之俱泯
-‘채근담’(菜根譚) 前集 108장
은혜와 원수는 마주 댄 양 손바닥처럼 딱 붙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한테 은혜와 덕을 베푸는데, 내가 베푼 덕이나 은혜를 못 알아보고 몰라줄 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억울함이나 원망이 생겨서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오히려 원수가 되고 척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불효 소송을 하는 것도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베푼 은혜와 덕에 값을 쳐서 돌려받으려는 셈법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원수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줬다는 것조차 잊고 다정하게 지내시렵니까.
‘명심보감’ 계선편(繼善篇)에 “사람들에게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사람들과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난다면 회피하기 어렵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주변에 둘지, 나를 해치고 망하게 하려는 사람을 곁에 둘지 참 답은 쉬운데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 못 하는 게 더 큰 어리석음이지 싶습니다.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시 한 편 함께 나누면서 마음 미장공 열한 번째 이야기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늘 셈법
삶은
가까이 보면
공정하지 않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투성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빈틈없이 공정합니다.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봄이 가고 겨울이 온 적이 있던가요.
가을이 가고 여름이 온 적이
있던가요.
더하기 빼기는
짧은 순간엔 맞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밑졌으니
더 받아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방정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보다 더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게
얼마나 축복과 호사인 줄 모릅니다.
하늘 같은 가호로
보살핌을 받았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저지른 큰 잘못이
아주 조그만 손해로 청구되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준 상처가
당신이 준 상처보다
훨씬 크고 깊었음을
너무 뒤늦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 ‘혼자 술 마시는 여자’ 182~184쪽
불효자 방지법 : 은혜와 원수를 대하는 자세
부모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외면한 때 은혜를 저버리는 망은(忘恩) 행위에 대해 증여한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지만 몇 년째 국회 발의에 머무른 채 논란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앞선 드라마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부양료 청구 소송(불효 소송)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을 제기한 부모가 거의 패소한다는 게 현실입니다. 2020년 98세 아버지가 셋째 아들을 상대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20년 전 증여한 선산을 돌려받으려고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처럼, 불효자 방지법은 자식이 부모 재산을 받고 효도나 부양을 하지 않은 채 ‘먹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데 입법이 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편 지난해 법무부가 사전 상속재산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과 가능성, 여파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 국가들은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독일 민법 제530조는 ‘증여자에게 중대한 배은 행위를 저질러 비난을 받을 경우 증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 민법 제953조도 ‘증여를 받은 자가 학대·모욕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양을 거절하는 경우 증여 철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령소비자 금융피해 방지를 위한 전략과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시니어금융소비자보호 포럼”이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고령 금융 소비자의 금융 피해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과 대응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와 금융과행복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윤영덕ㆍ민병덕 국회의원실이 주최했다.
지난 9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18%에 달한다. 2025년에는 고령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사회의 고령화로 인해 금융을 이용하는 고령층의 비중이 자연히 늘고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금융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의 금융 피해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21년 60대 이상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약 612억 원, 피해 건수는 1만 2천 건에 달한다. 이는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의 약 41%에 해당한다. 2022년 상반기 피해 건수도 8600여 건을 넘어가며 전체의 약 57%를 차지하고 있다.
윤덕홍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회장은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기 전 노인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노인 금융 피해와 관련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직도 구체적인 자료와 정책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아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번 포럼이 선진국형 노인 금융 피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은경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금융 사기뿐 아니라 고령층에 대한 경제적 학대, 금융 착취,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등 다양한 유형의 금융 피해 위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고령층을 보호하는 제도를 구축하고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는 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고령층 보호제도 현황 실태조사와 법령 개정 방향에 관한 업계 의견 수렴, 고령자 친화적 모바일 금융 앱 구성 지침 마련, 고령층 맞춤형 교재 동영상 콘텐츠 제작 및 현장 교육 등으로 고령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전적 예방 가장 중요한 ‘금융 착취’
금융 착취가 일어나는 이유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노인 부양 부담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인지 능력이 저하되고, 금융 자산 비중은 늘지만 스스로 자산을 관리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디지털 정보 격차가 커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이 많아지면서 노인 학대가 늘어나고 있다.
노인의 경제적 착취나 학대 피해가 일어날 경우 사회적 추가 지출은 연간 약 6750억 원(영국의 연구 결과)에 달한다. 게다가 금융착취는 회복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으므로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따라서 금융 착취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국가별로 다르다. 부모의 역할에 대한 사회 관점, 부모 재산에 대한 자녀 권리 인식 등이 문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금융 착취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 아직 금융 착취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자신이 금융 착취를 당하고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포럼에서 “고령자 금융 착취 예방 전략과 실행 방안” 주제 발표를 맡은 정운영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의장은 금융 착취 예방을 강조하며 시스템 구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노인의 경제적 학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을 때, 이 내용을 바탕으로 금융권에 어떤 지침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노인 피해의 상당 부분을 막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 착취 자체에 대한 실태 조사는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금융 착취의 범위와 개념을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잘 정의해서 법과 행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착취는 간호인이나 시설 관계자 등에 의해 많이 발생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는 7~80%가 배우자나 자녀에 의해 발생한다.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이나 연금을 대신 관리해준다며 통장과 도장을 가져가 동의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주택을 자산으로써 활용할 수 없도록 제지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부모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다는 인식, 부모의 재산이 곧 자녀의 재산이라는 생각이 강해 실질적 신고는 많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실제 금융 착취에 관한 조사나 통계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령자 금융 착취를 민형사상의 문제로 취급하며, 별도의 규제를 만들었다. 자율적이긴 하지만 금융 관계자에게 적용되는 강제적 신고 의무 등을 제안하는 가이드라인도 있다.
정 의장은 “경제적 학대, 금융 착취는 앞으로 우리 삶을 얼마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와 연결되는 부분”이라며 “금융 착취를 당하면 절망감과 우울감에 빠져 일상으로의 회복이 몹시 어렵고, 이를 돌보기 위한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예방이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기관에서의 적극적인 신고 의무 등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률 간의 연계가 잘 돼야 금융 착취 대응 체계가 잘 이뤄진다”면서 “무엇보다 현황을 파악하고 연구하는 지원 강화, 금융 착취 예방을 위한 상담이나 교육 센터 마련 등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고제와 같은 방법으로는 금융 착취의 조기 발견이 어려운 만큼, 적극적으로 금융 당국에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고 협력하며, 고령자 스스로도 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국가들의 공통 과제 '고령자 금융 피해 예방'
우리나라는 2020년 금융 당국이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외에도 ‘고령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금융소비자 보호법(이하 금소법) 개정안’ 등 여러 법안이 진행중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령 금융 소비자의 피해에 관한 현황이나 실태 조사 등이 이뤄지고 있지 않아 법을 만드는데 있어 기준이나 범위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고령화를 겪고 있는 글로벌 국가의 공통적인 과제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나라도 고령 소비자의 금융 피해에 관련해 법이나 가이드라인 등의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은 2011년부터 금융 관련 범죄 중 고령층에 대한 금융 착취 의심 활동을 보고하도록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꽤 오랜 시간 관련 제도를 순차적으로 수립해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금융 사기의 경우는 대응에 관한 명확한 제도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금융 사기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한 고령 친화 서비스 제공, 이에 대한 임직원 교육, 의심 거래 발생 시 관련 당국으로의 보고 권고 등의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영국의 경우 고령자 금융 착취 관련 금융 기관의 신고 의무는 없다. 나이로 구분하기보다는 인지 능력, 건강 상태 등의 취약성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고령층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 학대와 금융 지급 수단을 이용한 금융 억제를 예방하기 위해 대형 금융사 중심으로 자율 규제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포럼에서 “고령자 금융피해 유형 및 피해방지를 위한 쟁점과 대응방안” 발표를 맡은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여러 국가에서 마련되고 있는 제도의 핵심 쟁점을 여섯 가지로 꼽았다.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심 금융 거래를 보고하도록 할 것인가 ▲보고를 넘어 관련 기관에 신고하도록 할 것인가 ▲당사자나 관련인에게 이 내용을 통지하도록 할 것인가 ▲국민의 동의가 없더라도 자산 보호 조치를 위하기 위한 이체 지연 등의 권한을 줄 것인가 ▲이런 일을 해야 할 금융기관 직원에게 면책권을 줄 것인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관에 과태료 등의 제재 수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 착취에 대한 인식이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아직까지는 금융기관이 이를 통제할 권한을 가질 경우 분쟁의 소지가 많다”면서 “고령 피해자의 경우 대면 거래에서 파악되는 경우가 중요하기 때문에 금융기관 직원에게 부여될 면책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며, 면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기관이나 피해자에게 이뤄지는 통지, 이체 지연이라는 권한, 직원 면책 부분이 하나의 패키지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다만 이를 자유 형식으로 할 것인지, 강제적으로 진행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가족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신고 의무를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측면일 수 있다”면서도 우리나라는 아직 피해 고령층을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살펴볼 만큼의 연구가 되어있지 않아 법제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법으로 보호할 영역이 금융회사를 통한 거래만을 포함할 것인지, 금융 피해에 금융 학대나 금융 사기까지도 포함할 것인지, 법을 개별적으로 만들 것인지 금소법 개정안에 포함할 것인지 등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고 당부했다.
영국의 경우 금융 학대와 금융 사기를 구분해서 접근하고 있으며, 미국은 금융 사기에 대해서는 보호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 연구위원은 “피해 사례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피해 현황을 식별하는 작업을 우선할지, 광범위한 기준으로 법제화를 먼저 한 뒤 자료를 모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면서 “다양한 내용을 다각도로 고민해 고령층의 금융 피해를 효율적으로 억제해나갈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이후 가족을 위한 사회정책적 지원 주제로 2022 한-영 연구교류 국제 학술대회가 중앙대학교에서 28일 개최됐다.
영국 더비대학교,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단계 BK교육연구팀이 공동주최했다.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일과 돌봄 노동', '웰빙, 예술&테크놀로지', '아동과 복지', '범죄 중단' 4가지 세부 주제로 마련됐다.
첫날 행사에서는 고령층 관련 주제도 다뤄졌다. 박상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과 돌봄 노동' 주제 중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가족 돌봄 분야에 대해 발표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일정기준(장기요양 등급 보유, 지역적 한계 등) 부합 대상에게 가족요양비를 지급하고 그 수급자를 가족이 돌보거나, 가족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요양서비스노동에 대한 급여를 정산 받는 경우 둘로 나뉜다.
박 연구위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돌봄 사회화의 초석이나 가족의 직접 돌봄에 대한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며 "가족요양비는 높은 기준과 낮은 급여 수준, 가족요양보호사는 서비스 질에 관한 부족한 관리 감독 탓에 형평성 제고와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장기요양보험 내 비공식 돌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족요양보호사들의 처우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며 "결국 가족요양비와 가족요양보호사 제도를 통합한 서비스 제공 방식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수완 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사회 거주 노인을 위한 지방 정부의 기술 기반 돌봄서비스: 현황, 쟁점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코로나19 이후 정신 건강의 저해, 고독사, 1인 가구의 증가 등의 원인으로 돌봄 서비스는 더욱 주목받았다. 정부의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필두로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응급안전 안심 서비스는 최신 ICT(정보통신기술)를 적용한 장비를 홀로 사는 노인·장애인 가정에 설치해 화재, 가스, 활동량 등을 확인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돕기 위한 시스템이다.
다만 기기의 낙후, 정서 지원 및 건강서비스와 같은 기능의 제한, 센서에 의존한 단편적인 기술, 정부와 지자체 서비스의 중복 등 여러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김 교수는 "지역 사회의 돌봄이 중요해지면서 그 대상이 더 이상 취약계층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며 "여생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분석을 통한 복합 서비스 구축,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질 개선, 민관의 협력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스마트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2022 한-영 국제연구교류 국제학술대회는 '아동과 복지', '범죄 중단 주제'로 29일 10시부터 4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