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에 절인 간고등어는 발효되면서 감칠맛이 더 살아난다. 겨울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꼬막은 쫀득한 식감이 매력이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입을 녹여줄 담백한 간고등어찜과 고소한 꼬막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간고등어찜(4인 기준)
재료 간고등어 1마리, 소주 적당량, 양파·홍고추·청양고추 1개씩, 육수 1컵, 고춧가루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대파 1쪽
1. 고등어를 씻고 소주에 5분 담가둔다. 고등어를 반으로 자르고 등에 칼집을 낸다.
2. 양파를 가로로 3등분해서 뚝배기 바닥에 깔고 고등어를 얹는다.
3. 육수를 붓고 고춧가루, 다진 마늘, 대파, 홍고추, 청양고추를 넣는다.
4. 뚜껑을 닫아 센 불에 5분 정도 끓인 뒤 약불로 찜을 찌듯 10분 정도 끓여주면 완성.
◇꼬막전(4인 기준)
재료 꼬막 500g, 미나리·부추 30g씩, 채 썬 당근 약간, 홍고추·청양고추·달걀노른자 1개씩, 부침가루 1컵, 육수 1큰술, 식용유 적당량
1. 냄비에 찬물을 붓고 깨끗이 씻은 꼬막을 넣는다.
2. 불을 켜고 천천히 저어주다가 꼬막 1~2개가 입을 열면 불을 끈다.
3. 꼬막을 건져낸 후 식힌 다음 껍데기를 까서 흐르는 물에 씻는다.
4. 미나리·부추는 3cm 길이로 자르고, 당근·홍고추·청양고추는 채 썰어 부침가루·댤걀노른자·육수와 함께 비빈다. 부침가루는 재료를 붙여주는 풀의 역할을 할 정도면 충분하다.
5.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면 완성.
◇간고등어찜과 꼬막전에 어울리는 반찬 봄동무침
요리 및 레시피 제공 이준구 오너셰프
미국 LA 유학 시절 요리를 시작했고, 알래스카에서 일본인 스승을 만나 스시에 눈을 떴다. 귀국 후 한식에 빠져 '연남동 이파리'와 '규자카야 모토'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은 뒤 '마곡동 이파리'를 운영 중이다.
울진 금강 소나무 숲길은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숲길 1호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준비할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아서 숲에 들려면 삼림보호법에 의해 철저하게 예약제다. 누구나 마음대로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트레킹 가능 인원은 숲해설가를 동반한 하루 80명만 탐방할 수 있다.
숲은 조용했다. 걷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와 간간히 이어지는 해설가의 설명이 소리의 전부다. 물론 새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자연의 소리는 당연히 배경음이다. 숲해설사가 자기를 앞지르지 말고 탐방로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멧돼지가 나오기도 한단다.
금강 소나무 숲길은 다섯 구간이 있다. 12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십이령바지게 길이란 이름도 있다. 울진과 봉화로 꼬불꼬불 열두 고개의 먼 길을 오가던 바지게꾼들이 오가며 장사를 하던 길이다. 소금과 미역, 간고등어, 그리고 피륙과 곡물을 등에 진 보부상들의 애환이 깃든 길이고 김주영의 소설 '객주'도 이런 이야기들이 바탕이 된 곳이다. 발걸음마다 스토리가 있는 길을 따라 걷는 맛이 쏠쏠하다.
숲에 드니 기분이 상쾌하다. 울진 금강송 숲길은 다른 곳보다 피톤치드가 5배라고 하는데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가다가 멈춰서 듣는 숲 이야기와 소나무에 얽힌 내력을 배우며 비로소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 소나무의 성장이나 수난을, 꽃과 나무 그리고 그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금강송은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숲해설사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들으며 숲에 드는 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시킨다. 손에 들고 있던 장대로 멀리 가리키며 못난이 소나무라고, 미남송이라고 알려준다. 암벽에 뿌리내리고 긴 시간 굳건히 자라온 잘난 나무다. 대체로 평이하고 짧은 코스인데도 마지막 오르막은 만만찮다.
미인송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 독야청청 굳세게 그 자리를 지키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잘 생긴 소나무. 우람하고 지조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두 팔 벌려 미인송을 안아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귀하신 몸을 영접하고 땀을 식히니 하늘에서 쨍하고 늦가을 볕이 비춘다.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소나무 숲이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 자연이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더니 이렇게 다가가 만나보는 귀한 가치를 느껴본다.
내려오며 비로소 막바지 가을 단풍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올 때 보지 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네 하듯이 숲엔 단풍이 절정이다. 걷느라 수고했다 쓰다듬듯 그 길을 걷는 머리 위에서 자연은 최상의 색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탐방 코스:산림수련관 집결→500년 송→못난이송→미인송→제2탐방로→산림수련관(5.3km/3시간 소요)
▶장소/시간: 울진군 금강송면 대광천길 83/오전 10시
▶운영 예정일: 2019. 4.20 ~11.30(매주 화요일 휴무)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추어탕 마니아’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 늘 물어본다. “진짜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이 맛있나요?” 대부분 맛있다고 대답한다. 어떤 맛이냐고 다시 묻는다. 대부분 우물쭈물한다. 자꾸 캐물으면 그제야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어릴 적 먹었던 맛, 적당히 흙냄새가 나는 맛, 민물생선의 비린 맛, 미꾸라지의 고소한 맛.
민물생선의 비린내나 흙냄새는 이해가 된다. 글쎄, 고소한 맛은 모르겠다. 대부분 생선, 고기는 오래 씹으면 고운 입자로 변해 단맛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가열처리하거나 삶거나 구운 것이 그렇다. 날것은 고소한 맛을 느끼기 힘들다. 끓인 것이라지만, 미꾸라지의 고소한 맛? 이건 알 수 없다.
어릴 적 먹었던 추억 속의 맛은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맛은 그저 추억의 맛일 뿐이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닭죽, 된장찌개, 그리고 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가 사준 자장면. 대략 이런 음식들이 추억의 맛이다. 비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중국산 미꾸라지 사용에 대해 늘 논란이 있다. 이유가 있다. 살아 있는 모습을 비교해도 일반인들이 그 차이를 알기 힘들다. 하물며 싹 갈아서 이른바 ‘갈추(추어를 갈아 요리한 추어탕)’로 만들면 더 구별하기 어렵다. 더하여 산초가루까지 넣으면 사실상 구별이 불가능하다. 산초는 매운맛까지 덮을 정도로 강한 맛이다. 추어탕은 끓여놓으면 국산이든 중국산이든 맛과 모양이 비슷하다. 중국산, 국산을 두고 늘 추어탕 논란이 생기는 이유다. 알아차리기 힘드니까 중국산으로 끓이고 국산이라고 내놓는 가게들이 있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고등어 추어탕’도 마찬가지다. 고등어 살을 갈아 넣으면 맛은 더 좋아진다. 아무려면 민물고기인 미꾸라지가 등 푸른 바다생선 고등어의 맛을 따를 수 있을까? ‘맛’으로 따지자면 고등어 추어탕을 비난할 수는 없다. 고등어를 갈아 넣고 미꾸라지라고 우기고, 속이는 주인의 ‘도덕성’이 문제 있을 뿐이다. 원재료를 속이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자, 다시 묻는다. 추어탕을 두고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을 구분할 자신이 있는가? ‘없다’가 정답이다.
미꾸라지는 서민들의 음식이었다
우리는 미꾸라지를 오랫동안 먹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우리가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책의 발간은 1123년, 고려시대다.
고려 풍속에 (중략)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鰒], 조개[蚌], 진주조개[珠母], 왕새우[蝦王], 문합(文蛤), 붉은게[紫蟹], 굴[蠣房], 거북이다리[龜脚], 해조(海藻), 다시마[昆布]는 귀천 없이 잘 먹는데, 구미는 돋워주나 냄새가 나고 비리고 맛이 짜 오래 먹으면 싫어진다.
‘鰌(추, 미꾸라지)’는 ‘鰍(추, 미꾸라지)’다. 고려·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둘을 혼용했다. 서긍이, 왜 ‘鰌’로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대부분 ‘鰍’로 표기한다. ‘미꾸라지는 가을 물고기’라고 설명한다.
이 무렵부터 미꾸라지를 먹은 건 아니다. 그 이전, 더 오래전부터 먹었다. 그물, 선박, 항해기술 등 어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다. 배는 이른바 무동력선.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작은 배에 낡고 비루한 그물을 싣고 물고기를 잡았다. 조선시대에는 바닷가에 사람이 사는 것을 금했다. 왜구들의 노략질 때문이다.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 바닷가에 살지 못했으므로 바다생선을 잡는 기회도 드물었다. 무동력선으로는 가까운 바다가 고작이다. 일반 서민들이 바다생선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미꾸라지는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서민들의 단백질이었다. 바닷물고기가 훨씬 크고 맛있지만 가난한 서민들은 가까운 바다의 새우, 거북손, 조개 등을 구하는 게 한계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꾸라지는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 맛이 있어서 먹었던 식재료가 아니었다. ‘먹고 싶어’가 아니라 ‘이거라도 먹고’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땅히 취할 생선, 단백질이 없었던 세민(細民, 서민)들 음식이다. 별다른 레시피가 있을 리 없다. 가장 편한 방법으로, 비린내와 흙냄새를 감추면서 먹었던 식재료일 뿐이다.
오래전부터 미꾸라지를 먹었지만, 추어탕을 파는 집은 1920~30년대에 처음 나타난다. 지금도 남아 있는 ‘형제추어탕’이나 ‘용금옥’, 사라진 ‘희망의집’이나 ‘곰보추탕’ 등이다.
서울식과 시골식 추어탕의 차이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미꾸라지가 기록된 시기와 추어탕 파는 식당의 등장은 약 800년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 추어탕을 정확하게 언급한 책은 두 종류가 있다.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와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다.
풍석의 ‘난호어목지’는 1820년쯤 발간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도 19세기 중반 정도에 펴낸 거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다. 미꾸라지 먹는 방법을 보면 두 사람은 다른 곳의, 다른 미꾸라지탕을 보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지만 세부 내용은 전혀 다르다. 풍석은 시골식, 오주는 서울식이다.
‘난호어목지’의 ‘밋구리탕’은 시골, 농촌의 미꾸라지탕, 추어탕이다. 이름도 한글로 ‘밋구리’라 했다. 내용도 상당히 정확하다. “(밋구리, 미꾸라지는)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은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죽을 끓이는데 별미”라고 이야기한다.
미꾸라지가 음식으로 표현된다. 다만 탕이 아니라 죽이다. 미꾸라지와 함께 여러 가지 채소, 양념 등을 넣고 흥건하게 끓인 게 죽이다. 오늘날 추어탕에 밥을 말면, 풍석 서유구가 말한 ‘밋구리죽’이 될 것이다. 풍석의 밋구리죽은 오늘날 시골식 미꾸라지탕, 즉 영남의 추어탕이다.
영남의 추어탕은 ‘갈추’다. 미꾸라지를 삶아서 으깬다. 고운 체로 거르면 살이 아래로 떨어진다. 거친 뼈나 대가리 등은 제거하고, 부스러진 살과 부드러운 채소 등을 넣고 끓인다.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국물은 간장 혹은 된장 푼 물이다.
오주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장황하게 추두부탕(鰍豆腐湯)을 설명한다. 오늘날 추어탕과는 거리가 있다. 두부를 사용한 추어탕이다.
추두부탕(鰍豆腐湯). (전략) 솥에 물을 붓고 크게 썬 두부 몇 덩어리를 넣는다. (중략) 솥 아래에 불을 때면 솥은 점점 뜨거워진다. 미꾸라지 무리는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계속 불을 때면 솥이 끓으면서 미꾸라지도 익는다. 끄집어내서 썬다. 미꾸라지는 개개의 두부 속에 콕 박혀 있다. 참기름으로 지진다. 두부 전을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를 섞는다. 달걀 전(지단)을 얹는다. 이렇게 탕을 끓인다. 기름기가 넉넉하고 맛이 좋다. (후략)
서울식 추어탕은 풍석 서유구의 밋구리탕과는 다르다. 쇠고기 내장이나 살코기, 버섯, 달걀 등 화려한 고명이 들어간다. 오주가 말한 추두부탕은 정확한 서울식 추어탕과는 거리가 있다. ‘화려한 고명’은 닮았다.
요즘 서울 추어탕의 특징은, 붉고 매운 국물 맛이다. 아마도 산초를 널리 사용하지 않으면서 붉은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더했을 것이다. 원형 서울 추어탕은 산초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주의 추두부탕도 산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풍석 서유구의 추어탕도 산초를 언급하지 않지만, 오늘날 농촌의 추어탕들은 대부분 산초를 사용한다. ‘곱게 간 미꾸라지 살+얼갈이배추나 청방배추, 배추속대+간장 혹은 된장 국물’에 산초가루를 조금 더한다. 국물에 산초가루를 더해서 내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 추어탕의 매운맛은 결국 산초를 대신한 맛이다.
모든 게 뒤섞이면서 뒤죽박죽이긴 하다. 매운 서울식 추어탕을 내놓으면서 산초가루를 별도로 내오기도 한다. 시골식 추어탕에는 산초가루, 마늘 다진 것, 매운 풋고추 다진 것이 함께 나온다.
그까짓 미꾸라지탕이라며 천대할 일은 없다. 서민들의 음식이며 식재료 부족한 시절에 귀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추어탕의 계절이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아, 이 추어탕은 서울식이네, 시골식이네” 하며 한 번쯤 되새겨보자고 이 글을 쓴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적어도 내가 먹는 게 어떤 음식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엄홍길(嚴弘吉·59) 대장은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정복이 그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꿈을 위해 목숨까지 건 남자,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해발 8000m 이상의 봉우리 중 독립된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는 총 14개. 히말라야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이 14개 봉우리를 통틀어 ‘8000m 14좌’ 또는 ‘히말라야 14좌’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이 뒷동산 올라가듯 히말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히말라야도 그저 그런, 높고 추운 산에 불과했겠지만, 순순히 정상을 내어주지 않는 히말라야는 실패를 마약으로 삼는 자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엄홍길 대장은 14좌를 오르는 대가로 동상에 걸린 엄지발가락 한 마디를 잘라냈다. 또 등반 중 사고로 부러진 발목은 뼈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구부러지지 않는다. 죽음의 경계도 수없이 넘나들었지만 그는 등반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말렸어요. 근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기분이었죠. 우리가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처럼 저도 산이 그곳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매년 히말라야를 정복하기 위해 수백, 수천 명의 산악인이 산 4000~5000m 부근에 설치된 등산기지, 베이스캠프에 모여든다.
“베이스캠프에선 닭볶음탕, 김치찌개, 냉면 등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해먹을 수 있어요. 주방장도 있는걸요. 다만 산속이다 보니 수산물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짐을 꾸릴 때 간고등어, 홍어, 조기 같은 생선을 챙겨가죠. 양이 한정적이다 보니 생선 먹는 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에요. 아껴먹어야 하죠.(웃음)”
비 오는 날엔 막걸리에 전, 스키장 정상에선 따끈한 라면 국물, 운동 후엔 시원한 맥주가 당긴다면 영하 20~30℃를 웃도는 베이스캠프에서는 어떤 음식이 가장 꿀맛일까. ‘그’ 음식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엄홍길 대장의 얼굴이 미소로 번졌다.
“홍어찜! 홍어 냄새가 코를 찌르잖아요. 근데 그 산속에서 먹는 홍어찜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어요.(웃음) 홍어찜 한 젓가락 입에 딱 넣으면 햐…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도는데 아주 황홀한 맛이죠.”
먹는 이야기까지 들어보면 히말라야도 참 살 만한 동네(?)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리얼’ 히말라야 등반은 베이스캠프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엄 대장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마치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눈사태,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크레바스, 어디서 떨어질지 모르는 낙빙 등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상을 오르는 내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장 두려웠다.
“눈사태에 휩쓸려서 눈에 파묻히면 운 좋으면 사는 거고 나쁘면 죽는 거예요. 얕으면 파내면 되지만 큰 얼음덩어리에 갇히면 파낼 수도 없거든요. 히든 크레바스는 눈이 살짝 덮여 있어서 잘 안 보여요. 거기에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이를 알 수 없는 틈 사이로 추락할 수도 있어요. 이 중 어느 하나도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아요. 마치 죽음과 줄다리기를 하는 기분이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한 산
높이 8092m의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 이름은 ‘수확의 여신’이라는 뜻이지만 온화한 느낌과는 다르게 예측 불허의 기상과 난코스로 악명이 높다. 엄 대장도 이곳에서 네 번의 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시도는 기상악화로 실패. 이듬해 봄, 그는 다시 장비를 꾸렸다. 세 번째 도전이었다.
“고개를 들었는데 앞에 있어야 할 셰르파가 사라진 거예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히든 크레바스를 보지 못하고 빠진 거죠. 깊지는 않았는데 V자 모양이라 떨어질 때 턱을 찧었나봐요. 숨을 희미하게 내쉬고 있었는데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어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동료의 죽음은 언제 겪어도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일 년을 다시 기다려 네 번째 등반길에 올랐다. 그의 간절한 마음이 산에도 와 닿은 걸까, 7600m까지는 순조롭게 오를 수 있었다. 정상까지 400여 m를 남겨둔 상황, 마치 손만 뻗으면 정상에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그때 앞서가던 대원이 실수로 경사면에서 미끄러져버렸다.
“그 친구한테 묶여 있던 로프가 제 옆으로 후루루루룩 지나가는 거예요.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로프를 낚아챘죠. 가속도가 붙으니깐 두꺼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타들어 가. 놓자니 놓을 수 없고 잡자니 잡히지 않고. 근데 어느 순간 몸이 붕 뜨는 거예요. 로프 끝자락이 제 오른발 발목을 낚아챈 거죠. 정신을 차려보니깐 눈에 제가 처박혀 있더라고요. 발목이 180도 돌아가서 뒤꿈치가 앞에 있는 상태로.”
목숨은 건졌지만 달랑거리는 발목을 끌고 4500m까지 내려가야 구조용 헬기를 탈 수 있었다. 빙벽에서는 줄과 한 발에만 의지한 채, 그리고 평지에서는 기어기어 내려가는데 꼬박 2박 3일이 걸렸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발목을 현지에서는 수술할 수 없어 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발목에 쇠 핀 두 개를 박아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의사가 앞으로 등반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죠. 5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하고 삼각산 백운봉에 올라갔어요. 그때 든 생각이 ‘이젠 포기해야겠다’가 아니라 ‘조금만 열심히 치료하면 곧 산을 탈 수 있겠다’였어요. 그리고 10개월 만에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아갔죠. 다들 저보고 정신 나갔다고 했어요.(웃음)”
멀쩡한 몸으로도 네 번이나 실패한 안나푸르나를 쇠 핀을 박은 채로 올랐다. 발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뼛속을 타고 전해졌지만 죽은 동료의 목표까지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8092m,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착했다.
“엉엉 울었어요. 행복해서가 아니라 너무 서러워서. 하늘로 가버린 동료 생각, 지난날들의 여정. 막 소리 질렀어요. ‘결국 이렇게 받아주실 거면서 왜 그런 고통을 주시고 동료까지 데려가시고,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하면서요.”
엄 대장과 안나푸르나의 지독했던 인연은 이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뒤따라오던 여성 대원 지현옥 씨와 셰르파 한 명이 하산 도중 실종된 것이다. 밤새도록 무전을 기다려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안나푸르나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렇게 그 둘은 안나푸르나 꼭대기에서 영영 내려오지 못했다.
엄 대장은 14좌를 모두 오르고 위성봉인 얄룽캉(8505m)에 이어 로체샤르(8400m)까지 올라 2007년 16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열여덟 번의 실패가 있었고 열 명의 동료를 잃었다.
제2의 16좌를 향하여
“저는 살아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얼음산 속 어딘가에 냉동인간으로 잠들어 있어야 정상이죠. 산꼭대기만 보고 살았던 제가 어느 순간 산 아래가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아이가 보이더라고요. ‘아, 산이 나를 살려 보낸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 산이 나에게 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라는 뜻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8년 그는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고 히말라야 아이들을 위해 학교 짓는 일을 시작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엄홍길휴먼재단에서 현재까지 완공한 학교는 총 14개, 2018년 11월엔 15번째 학교가 완공될 예정이다.
“제가 16좌에 올랐기 때문에 16개 학교를 짓는 게 목표예요. 16번째 학교는 하나의 학교가 아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체육관이 있는 종합 교육 타운으로 만들고 싶어요. 여력이 된다면 대학교까지.(웃음) 제 인생을 8000m 산이라고 하면 지금 7000m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이제 가장 힘든 구간이 남아 있는 거죠. 16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비로소 하산할 수 있지 않을까요.”
8살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할머니 이번 설에는 요! 세뱃돈 주지 말고 선물을 사서 주세요.”라고. 손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세뱃돈을 받기는 손녀가 받아도 손녀가 갖고 있으면 잃어버린다고 그 돈은 다시 며느리 수중으로 들어가는 메카니즘에 대한 손녀의 반발로 보인다. 손녀에게 “그럼 무슨 선물을 사 줄까?”라고 물었다. 이런 되물음에 미리 준비가 없었는지 손녀는 얼른 대답을 못하더란다. 물론 손녀가 받은 세뱃돈의 몇 배의 돈을 손녀를 위해 며느리가 썼겠지만 손녀의 눈에는 자기가 받은 돈을 직접 되돌려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요즘 아이들은 생각한다. 옛날 우리 때는 일가친척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해도 세뱃돈이 없었다, 농촌 자체에 돈이라고 씨가 말랐으니 줄 수가 없었다. 아주 귀하게 서울에 사는 친척어른이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하러 왔을 때 우리도 친척 어른에게 세배를 올리면 지금 돈의 가치로 천 원 정도를 줄때가 있었다. 당시로서 세뱃돈을 받는 다는 것은 하늘로 날아갈듯이 기쁜 사건이다. 물론 부모님들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 세뱃돈을 낚아채지도 않았다. 그 돈으로 연필도 사고 과자도 사먹었다. 내년에도 꼭 세뱃돈을 주는 친척어른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던 추억이 있다.
자식들을 키울 때는 세뱃돈을 주고는 이놈들이 어떻게 사용하나 눈여겨봤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많이 받으려고 보통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삼촌은 얼마를 줄 것이며 외가 집에 가면 누가 세뱃돈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주판알 굴리듯 복잡한 계산을 한다. 세뱃돈을 다 모으면 얼마가 될 것이며 그 돈의 사용처까지 생각해 본다. 그런 희망을 알고부터는 결산해서 희망금액에 부족한 금액만큼은 선심성으로 아버지인 필자가 채워 주기도 했다. 부모로서 자식이 희망한 금액에 미달되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나 중, 고등학생의 경우 용돈의 쓰임새가 다르다. 합리적으로 차등해서 세뱃돈을 주었다. 적게 받는 동생이 울상이 되며 부당하다고 따지기도 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똑 같이 주고 큰놈은 나중에 따로 불러 별도로 봉투를 준적도 있다. 금액의 고하간에 별도로 자신만 배려 받아 특별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번은 형님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를 갔는데 형님이 우리아이들한테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면서 당신의 손자에게는 십만 원 정도를 줬다. 자기 손자 더 주는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배하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차별적으로 더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형님이 하는 일이라 못 본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차별대접을 받았다고 입이 한발이나 나왔다. 집에 와서 십 만원을 채워주고 친아버지와 큰아버지이 차이라고 이해 시켰다. 다음해부터 큰집인 형님 댁에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토라져있어서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던 추억도 있다.
세뱃돈의 크기도 우리나라 경제력에 따라 많이 커졌다. 천원 오천 원을 세뱃돈으로 주면 단박에 얼굴빛이 변하고 실망한다. 만원이 거의 최하액수의 마지노선이다. 보통 2~3장은 줘야 아이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한다. 세뱃돈 많이 받기 경쟁을 하고 어떤 집 아이는 그 나이또래로서는 만져보기 어려운 거금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세배(歲拜)는 어른에게 ‘지난 세월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른들에게 지난한해 보살펴주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직접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리는 풍습이었다. 가난해도 동네 어른 댁에 소고기 한 근이나 고등어 한손 정도는 선물을 했다. 집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선물꾸러미가 제법 쏠쏠했다. 아이들의 세뱃돈을 말하기보다 이웃의 노인들에게 세배를 어떻게 하고 무슨 덕담을 올릴 것인가를 걱정해야할 나이가 되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맛집 순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행들은 이미 여러 번 제주에 다녀온 사람들이므로 관광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먹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간 다녀오면서 맛이 좋았던 음식점을 추천하고 아들딸에게 전화해서 맛집을 검색해달라고 했다. 식사 때마다 서로 자기가 추천한 집에 가자고 다투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제주도 음식값은 서울보다 비싸다. 관광지로 성장하다 보니 손님은 많고 자리는 모자라니 값이 계속해서 오른 것 같다. 도착한 날 점심 메뉴는 생선구이였다. 삼치와 고등어구이였는데 가격이 1만2000원이었다. 그러나 맛은 서울의 7000원대 음식점과 비슷했다.
저녁식사는 흑돼지로 했다. 건물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형 음식점이었다. 전세 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서울에도 웬만한 돼지고기집이 다 들어와 있으므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값만 일인당 2만 원 꼴로 서울보다 일인당 5000원 정도 더 비쌌다. 단체 손님 받느라고 북새통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다음 날 점심은 생선조림으로 했다. 갈치조림과 고등어조림이었다. 유명한 남대문시장 생선조림과 비슷한 수준인데 값이 1인당 1만5000원으로 역시 배 이상 비쌌다. 생선이 제주산이라는데 우리 입맛에는 살집 풍부한 세네갈 갈치나 노르웨이 고등어가 더 나아 보였다.
저녁식사는 동문시장에서 광어, 방어, 도다리를 섞은 모둠 생선회로 했다. 시장인데도 4명 한 상에 5만 원을 불렀다. 현지인이 잘 아는 집이라 그나마 싸게 먹은 것이란다.
다음 날 점심은 전복 물회로 했다. 유명한 집이라서 찾아갔는데 비수기인데도 자리가 없었다. 번호표를 들고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1인당 1만5000원인데 전복, 소라, 해삼까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물 반, 전복 반이었다. 그나마 제주도에서 가장 알찬 메뉴였다.
저녁식사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 김밥으로 했다. 유명한 김밥집이라는데 단일 건물에 포장으로만 팔고 있었다. 전복 내장과 기름으로 비벼 만든 김밥인데 가운데 계란말이가 들어 있었다. 일인당 4500원인데 밥을 다져서 만들었기 때문에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단무지가 안 들어 있어 그냥 먹기에는 느끼했다.
제주에 있는 동안 이틀간의 아침 식사는 호텔식으로 했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을 받아야 하니 식사 메뉴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가격은 1인당 1만2000원이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때 휩쓸고 가서인지 중국집 간판도 많이 보였다. 우리가 가본 맛집들이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을 리 없다. 어지간한 유명 음식점들은 서울에 체인점이 다 있다. 그리고 서울은 먹거리에 관한 한 완전 경쟁시장에 가까워서 가격도 고만고만하다. 음식 값은 서울이 가장 싸다.
호로록!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차갑게 얼어 있던 몸을 녹여준다. 면을 힘껏 빨아올리자 국물이 얼굴을 때린다. 조금 튄 국물이 대수인가. 통통한 면발을 한입 오물거리다가 삼키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쫄깃하고 깔끔한 우동을 맛보고 싶다면 ‘카덴’을 추천한다.
‘카덴’은 JTBC 에서 얼굴을 알린 정호영 셰프가 운영하는 우동 가게다. 일본 유학 시절 관심을 갖게 된 우동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 서교동 본점에 이어 연희동에 2호점이 생길 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레스토랑 가이드북 ,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 안내서인 에 등록된 맛집으로 맛은 이미 보장된다고 할 수 있겠다. 가격은 6500원~1만2000원 사이로 부담스럽지 않다.
정성이 담긴 우동 한 그릇
일본 우동은 지역에 따라 육수를 내는 방법과 면의 종류가 다양하다. 가가와의 사누키 우동, 아키타의 이나니와 우동, 군마의 미즈사와 우동이 일본의 3대 우동으로 꼽힌다. ‘카덴’은 오사카 쪽으로 오면서 발달한 관서지방식 우동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사누키 우동과 비슷하지만 좀 더 부드러우면서 떡처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면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물, 소금으로 반죽한 뒤 4시간 정도 1차 숙성을 거친다. 이후 발로 치대면서 반죽을 하는데 이때 체중이 실린 발이 반죽 속 공기를 최소화시켜 탄성을 높여준다. 이 반죽을 다시 여러 개의 덩어리로 나눠 12시간 숙성시키면 진정한 ‘카덴’의 면발로 탄생한다. 여름에는 10분, 겨울에는 13분 정도 삶아내는 과정을 통해 면발의 식감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우동은 국물의 맛 또한 중요하다. 카덴은 멸치, 고등어, 가다랑어를 우려낸 육수를 사용한다. 여기에 완도산 다시마와 말린 밴댕이 디포리를 사용해 진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우스구치(국간장)를 사용해 간을 맞춘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가키아게 우동(7000원)을 주문하면 우동과 가키아게가 따로 나온다. 정호영 셰프는 “튀김을 국물에 넣어두면 눅눅해지기 때문에 따로 내놓는다. 튀김을 어느 정도 먹다가 국물에 넣어 먹으면 튀김의 맛과 기름이 섞여 농후한 우동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색다른 맛의 매력, 자루우동
자루우동(7000원)은 고이구치(진간장)와 육수를 섞어 만든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우동으로 따뜻한 국물에 담겨 나오는 우동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실파, 생강, 간 무를 입맛에 맞게 소스에 넣고 면을 살짝 담갔다 먹으면 된다. 얼음물에 헹궈낸 쫄깃한 면발에 짭짤한 소스와 건더기가 달라붙어 감칠맛을 낸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73
예약 및 문의 02-337-6360
운영시간 평일 11:30~22:00 (15:30~17:30 브레이크타임) 토요일 11:30~21:30 일요일 휴무
현대사회는 눈으로 살아가는 사회다. TV, 컴퓨터, 스마트폰, 네온사인 광고 등 자연광이 아닌 빛으로 인해 우리의 눈은 매일매일 혹사당한다. 그래서 눈 질환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하게 걸리는 질병이 되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불안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형상의학에서는 눈을 정기(精氣)의 메모리(memory)라고 말한다. 오장육부, 척추, 뇌의 상태가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눈이다. 머리가 좋은 것을 총명(聰明)하다고 표현한다. 뇌의 상태가 좋으면 눈과 귀가 밝다는 의미다.
조개를 보면 껍데기는 뼈처럼 단단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미끌미끌하다. 인간의 몸속에도 단단한 껍데기 속에 미끌미끌한 속살로 이루어진 부위가 있다. 바로 뇌와 눈이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뇌수를 숨겨두고 있다. 눈은 단단한 뼈 속에 미끌미끌한 안구를 보호하고 있다. 비슷한 구조는 비슷한 구조에 작용하는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물류(物類)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조개류는 눈과 뇌에 좋은 음식이다. 에도 조개류가 시력 보호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이 아프고 열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라. 어지럽기는 해도 열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안구는 어느 방향으로든 입체 회전을 해도 마찰열이 크게 생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과 뇌에 문제가 생기면 뻑뻑해지면서 붓는다. 눈이 안 좋을 때는 눈동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눈알이 빠질 듯 아프다. 건강한 눈과 뇌는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부드럽고 미끌미끌해야 한다. 눈과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타우린(taurine)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주면 도움이 된다.
조개의 속살은 정말 미끌미끌하다. 이는 타우린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이 눈의 망막을 발달시키고 시력을 회복시킨다. 또 뇌세포를 보호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타우린 성분은 조개류는 물론 새우, 게, 문어, 낙지, 오징어, 지렁이, 미꾸라지, 뱀장어, 달팽이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또 열에 강하므로 조개탕, 연포탕처럼 끓여서 먹어도 된다.
조개 중에서는 전복이 특히 눈에 좋은데 껍데기와 속살 모두 좋다. 눈에 좋은 전복 껍데기는 한약명조차 석결명(石決明)이다. 눈을 밝게 해주는 딱딱한 조개껍데기라는 의미다. 천리광(千里光)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눈을 좋게 해서 멀리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또 껍데기에 구멍이 7~9개 난 것이 좋다는 의미로 구공라(九孔螺)라는 이름도 있다. 구멍이 10개 이상인 전복은 효능이 떨어진다.
우리 몸의 정혈(精血)이 농축된 곳은 뇌와 안구다. 심해어류인 등푸른 생선은 우리 몸을 농축시켜주는 벡터(vector)를 갖고 있다. 안구 특히 망막세포는 DHA를 고농도로 함유하고 있고, 뇌세포도 일반 세포보다 5배나 많은 DHA를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DHA를 복용하면 시력이 좋아지고 뇌세포가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등푸른 생선인 고등어, 꽁치, 참치는 DHA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눈은 오장육부 중에서 간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눈이 안 좋을 때 돼지 간, 소 간, 산양 간, 토끼 간을 먹는다. 그렇다면 토끼의 간을 원했던 용왕님은 혹시 눈병이 있었던 것일까? 길짐승은 네 발로 달리기 때문에 근육과 간이 발달해 있고 눈이 밝다. 의 외형편 눈[目]에는 눈이 안 좋을 때 길짐승의 간을 먹고 길짐승의 담즙을 눈에 점안하라는 기록이 있다. 또 “화가 없으면 눈은 병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눈으로 열이 올라와 눈 질환이 생긴다는 말이다. 따라서 눈병이 나면 눈 주위를 차갑게 해줘야 한다.
인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해 있는 눈은 가벼운 꽃이나 가벼운 씨앗을 약재로 많이 이용한다. 무처럼 무거운 뿌리는 음식을 아래로 내려 보내 소화시키고, 가벼운 꽃이나 씨앗은 눈으로 올라와 약효를 보인다. 가벼운 꽃 약재로는 감국화나 금은화, 꿀풀이 있는데, 눈에 몰린 열을 꽃향기로 흩어준다. 가벼운 씨앗 약재로는 결명자, 복분자, 냉이씨, 블루베리, 빌베리가 있는데, 역시 눈에 몰린 열을 아래로 내려준다.
9회 구운 죽염을 물과 1 대 10 비율로 섞어 거름종이로 거른 후 외용제로 사용해도 좋다. 황련(黃連) 우린 물도 좋다. 건조한 눈, 충혈된 눈, 침침한 눈 등에 좋다. 은 생활습관도 시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책을 덜 보고, 생각을 줄이고, 명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바깥 풍경을 덜 보고,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눈은 자주 감고 있는 것이 좋다. 눈을 감은 후 눈동자를 시계 방향으로 81번, 반시계 방향으로 81번 돌려주거나, 손바닥을 비벼 뜨거워지면 눈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는 것도 눈 운동에 좋다. 안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눈을 감싸고 있는 근육을 최대한 풀어주는 것이다. 위쪽을 쳐다보며 5초간, 아래쪽을 쳐다보며 5초간, 왼쪽을 쳐다보며 5초간, 오른쪽을 쳐다보며 5초간 유지하면서 근육을 풀어주고 안구를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준다.
주색과 스트레스는 눈에 가장 안 좋다. 닭고기, 술, 밀가루 음식, 찹쌀, 짠 음식, 신 음식, 뜨거운 음식,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음식들은 눈에 열을 올려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현대사회는 눈으로 살아가는 사회다. TV, 컴퓨터, 스마트폰, 네온사인 광고 등 자연광이 아닌 빛으로 인해 우리의 눈은 매일매일 혹사당한다. 그래서 눈 질환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하게 걸리는 질병이 되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불안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형상의학에서는 눈을 정기(精氣)의 메모리(memory)라고 말한다. 오장육부, 척추, 뇌의 상태가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눈이다. 머리가 좋은 것을 총명(聰明)하다고 표현한다. 뇌의 상태가 좋으면 눈과 귀가 밝다는 의미다.
조개를 보면 껍데기는 뼈처럼 단단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미끌미끌하다. 인간의 몸속에도 단단한 껍데기 속에 미끌미끌한 속살로 이루어진 부위가 있다. 바로 뇌와 눈이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뇌수를 숨겨두고 있다. 눈은 단단한 뼈 속에 미끌미끌한 안구를 보호하고 있다. 비슷한 구조는 비슷한 구조에 작용하는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물류(物類)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조개류는 눈과 뇌에 좋은 음식이다. 에도 조개류가 시력 보호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이 아프고 열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라. 어지럽기는 해도 열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안구는 어느 방향으로든 입체 회전을 해도 마찰열이 크게 생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과 뇌에 문제가 생기면 뻑뻑해지면서 붓는다. 눈이 안 좋을 때는 눈동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눈알이 빠질 듯 아프다. 건강한 눈과 뇌는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부드럽고 미끌미끌해야 한다. 눈과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타우린(taurine)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주면 도움이 된다.
조개의 속살은 정말 미끌미끌하다. 이는 타우린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이 눈의 망막을 발달시키고 시력을 회복시킨다. 또 뇌세포를 보호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타우린 성분은 조개류는 물론 새우, 게, 문어, 낙지, 오징어, 지렁이, 미꾸라지, 뱀장어, 달팽이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또 열에 강하므로 조개탕, 연포탕처럼 끓여서 먹어도 된다.
조개 중에서는 전복이 특히 눈에 좋은데 껍데기와 속살 모두 좋다. 눈에 좋은 전복 껍데기는 한약명조차 석결명(石決明)이다. 눈을 밝게 해주는 딱딱한 조개껍데기라는 의미다. 천리광(千里光)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눈을 좋게 해서 멀리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또 껍데기에 구멍이 7~9개 난 것이 좋다는 의미로 구공라(九孔螺)라는 이름도 있다. 구멍이 10개 이상인 전복은 효능이 떨어진다.
우리 몸의 정혈(精血)이 농축된 곳은 뇌와 안구다. 심해어류인 등푸른 생선은 우리 몸을 농축시켜주는 벡터(vector)를 갖고 있다. 안구 특히 망막세포는 DHA를 고농도로 함유하고 있고, 뇌세포도 일반 세포보다 5배나 많은 DHA를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DHA를 복용하면 시력이 좋아지고 뇌세포가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등푸른 생선인 고등어, 꽁치, 참치는 DHA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눈은 오장육부 중에서 간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눈이 안 좋을 때 돼지 간, 소 간, 산양 간, 토끼 간을 먹는다. 그렇다면 토끼의 간을 원했던 용왕님은 혹시 눈병이 있었던 것일까? 길짐승은 네 발로 달리기 때문에 근육과 간이 발달해 있고 눈이 밝다. 의 외형편 눈[目]에는 눈이 안 좋을 때 길짐승의 간을 먹고 길짐승의 담즙을 눈에 점안하라는 기록이 있다. 또 “화가 없으면 눈은 병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눈으로 열이 올라와 눈 질환이 생긴다는 말이다. 따라서 눈병이 나면 눈 주위를 차갑게 해줘야 한다.
인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해 있는 눈은 가벼운 꽃이나 가벼운 씨앗을 약재로 많이 이용한다. 무처럼 무거운 뿌리는 음식을 아래로 내려 보내 소화시키고, 가벼운 꽃이나 씨앗은 눈으로 올라와 약효를 보인다. 가벼운 꽃 약재로는 감국화나 금은화, 꿀풀이 있는데, 눈에 몰린 열을 꽃향기로 흩어준다. 가벼운 씨앗 약재로는 결명자, 복분자, 냉이씨, 블루베리, 빌베리가 있는데, 역시 눈에 몰린 열을 아래로 내려준다.
9회 구운 죽염을 물과 1 대 10 비율로 섞어 거름종이로 거른 후 외용제로 사용해도 좋다. 황련 우린 물도 좋다. 건조한 눈, 충혈된 눈, 침침한 눈 등에 좋다. 은 생활습관도 시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책을 덜 보고, 생각을 줄이고, 명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바깥 풍경을 덜 보고,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눈은 자주 감고 있는 것이 좋다. 눈을 감은 후 눈동자를 시계 방향으로 81번, 반시계 방향으로 81번 돌려주거나, 손바닥을 비벼 뜨거워지면 눈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는 것도 눈 운동에 좋다. 안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눈을 감싸고 있는 근육을 최대한 풀어주는 것이다. 위쪽을 쳐다보며 5초간, 아래쪽을 쳐다보며 5초간, 왼쪽을 쳐다보며 5초간, 오른쪽을 쳐다보며 5초간 유지하면서 근육을 풀어주고 안구를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준다.
주색과 스트레스는 눈에 가장 안 좋다. 닭고기, 술, 밀가루 음식, 찹쌀, 짠 음식, 신 음식, 뜨거운 음식,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음식들은 눈에 열을 올려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