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역시 다사다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국민MC 송해도 세상을 떠났다. 10월 29일에는 비극적인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연말을 맞아 중장년 관련 2022년 10대 뉴스를 꼽아봤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공식 취임했다. 1960년생인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썼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와 대통령실 이전 논란, 이태원 참사 등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4개 여론조사기관 공동 NBS(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잘하고 있다’(매우+잘함)라는 긍정적 평가는 34%를 차지했다. ‘잘못하고 있다’(매우+못함)라는 부정적 평가는 56%였다. 특히 60대(52% 대 44%), 70대 이상(61% 대 26%)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중장년층의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확인케 했다.
◇노인 일자리 축소 논란
정부는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시행, 만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8월 2023년도 예산안이 공개됐는데, 노인 일자리 수는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은 82만 2000개였다.
그중에서도 정부는 공공형 일자리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로 대폭 축소했다. 공공형 일자리 참여자는 기초연금을 받는 저소득층 노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노인빈곤율 심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공공형 일자리는 줄였지만,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는 3만 8000개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송해 별세
“전국노래자랑!” 일요일 아침마다 들리던 송해의 힘찬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국민 MC’ 송해가 지난 6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백세 인생의 아이콘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 송해의 사망은 대한민국에 슬픔을 안겼다.
송해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국내 최장수 MC를 넘어 지난 4월 ‘최고령 TV 음악 경연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송해의 후임으로 김신영이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슬픈 소식이 많았다. KBS ‘가족오락관’을 25년간 진행한 또 다른 ‘국민 MC’ 허참과 ‘원조 월드 스타’ 배우 강수연도 세상을 떠났다. 해외의 유명인들도 세상을 떠나 별이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9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피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동산 시장 급락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등하던 부동산이 꺾였다. 올해 들어서만 부동산 가격이 10% 이상 급락했다. 과거 부동산 침체기와 달리 매매·전세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마저 줄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전세 가격 10% 하락 시 4만 가구가, 40% 급락 시 13만 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부동산 규제 정책을 마련했다. 8·12%로 설정된 다주택자 대상 취득세 중과세율은 4·6%로 완화한다. 내년 5월까지 한시 유예 중인 양도소득세 중과배제 조치는 일단 1년 연장한 후 근본적인 개편 방안을 찾기로 했다.
◇고독사 증가
한국의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고독사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더욱이 고독사 10명 중 5명은 50· 60대의 중년 남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 보건복지부는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고독사 사망자는 지난해 3378명으로 2017년 2412명보다 40.0% 증가했다.
노년층보다 50·60대 중장년층 남성의 고독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0대가 1001명(29.6%)으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981건(29.0%)으로 뒤를 이었다. 50·60대 중장년층이 60% 가까이(58.6%) 차지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사망자는 고연령층일수록 많지만 고독사는 50대~6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50대 남성은 건강관리와 가사노동에 익숙지 못하며 실직·이혼 등으로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희망퇴직 시작
금리 인상으로 올해 큰 실적을 거둔 시중 은행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적극적인 감원에 나섰다. 최대 5억 원에 달하는 퇴직금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내년 초까지 약 2000명의 은행원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은행은 한 번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닌다는 이른바 ‘철밥통’ 직장으로 여겨졌다. 디지털 전환 바람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앱 비대면 서비스 이용객이 늘면서 인력 효율화를 노려야 하는 은행의 상황과 핀테크 기업 등 인터넷 은행으로 이직하고 싶어하는 은행원들의 바람이 맞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은 은행권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2023년에는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오징어 게임’, 에미상 수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 감독), 남우주연상(이정재)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작품이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도 상을 받은 것도 모두 최초였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우리의 전통 놀이문화가 외국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K-컬처의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 이태원 10·29 참사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악몽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 핼러윈을 즐기기 위한 엄청난 인파가 몰렸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 총 158명이 사망했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2~30대 젊은이들로, 어린 자녀를 둔 중장년들을 더욱 비통케 만들었다.
10·29 참사는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대응 태도를 보이면서, 영정 없는 분향소, 뒤집힌 근조 리본, 희생자 표현 사용 금지, 마약 부검 등 다양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희생자의 이름과 영정이 공개된 합동 분향소는 참사 후 한 달이 넘은 지난 14일에야 차려졌다. 현재는 분향소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 항의의 대상이 되면서 조롱과 멸시가 도를 넘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누리호 발사 성공
올해 우리나라는 7대 우주 강국으로 우뚝섰다. 지난 6월 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도 8월 5일 발사에 성공, 달 궤도에 안착했다.
누리호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시작돼 2022년 6월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장장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총예산 1조 9572억 원이 투입됐다. 누리호의 성공 뒤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 250명의 피, 땀, 눈물이 서린 노력이 있었다.
성공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기주 항우연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은 “2002년 나로호 사업을 시작으로 항공우주연구원이 되었고, 벌써 20년이 지났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체 개발을 하면서 연구·개발하는 모든 것이 우리나라 우주 개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자긍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것 같다”면서 감격의 소감을 본지에 전한 바 있다.
◇월드컵 16강 진출
‘2022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국민을 위로해줬다. 이번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려 경기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진행됐지만 많은 국민은 경기를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번 월드컵에 대한 열기는 2002년 월드컵에 비교할만하다. 그때의 추억을 안은 중장년층은 특히 열광했다.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한국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축구 강국을 이기고 얻은 성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입증했다.
‘신한은행과 함께하는 브라보(BRAVO)! 2022 헬스콘서트’(이하 ‘헬스콘서트’)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포스코타워 역삼 이벤트홀에서 열렸다.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발행하는 이투데이피엔씨와 신한은행이 함께 진행한 행사인 ‘헬스콘서트’는 건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중장년 세대에게 올바른 건강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후원했다.
7회를 맞은 이번 ‘헬스콘서트’는 ‘스마트 에이징, 몸과 마음의 나이 듦을 늦추는 비밀’을 주제로 진행됐다. 명사와 명의의 알찬 강연과 성악 공연에 약 200명의 관객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번 ‘헬스콘서트’는 관객 모집이 조기 마감되고 대기자가 넘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김덕헌 이투데이 미디어그룹 대표는 “지난 6월에도 헬스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저 역시 공감할 수 있는 세대라서 더욱 경청했고 많은 도움을 얻었다”라면서 “앞으로도 독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유익한 행사들을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의식 신한은행 퇴직연금사업부장은 “100세 시대가 된 만큼 고객님들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는데 이번 행사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은퇴 세대로 많은 고민을 안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한은행이 은퇴 준비를 도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이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행사의 진행은 변선정 아나운서가 맡았으며, 1부에서는 ‘50+세대의 노화 극복하고 활력 찾기’를 주제로 강연이 펼쳐졌다. 첫 번째 강연을 맡은 이관석 신한은행 은퇴솔루션 컨설턴트는 ‘100세 시대 5대 장수리스크를 이겨라’를 주제로 중장년 관객에게 조언을 전했다. 이관석 컨설턴트는 고령화사회의 리스크 중 ‘무전장수’를 언급하며, 노후 준비가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또한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투자 방법도 공개했다.
이어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50+ 세대를 위한 노화를 늦추는 방법’으로 강연을 펼쳤다. 정희원 교수는 가속노화를 막기 위해서는 운동‧숙면‧식습관 등의 생활습관 교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노화를 가속시키는 인자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노후의 삶이 달라진다”며 “자신의 건강상태에 맞는 영양의 섭취, 운동법에 대해 알아야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휴정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0+세대의 갱년기와 우울증 극복 방법‘에 대해 전문의로서 얘기했고 많은 관객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었다. 세 명의 강연자들은 각 강연을 마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 관객들의 궁금증 해소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2부는 ‘코로나 극복! 활력 콘서트’로 팝페라 성악그룹 레이디스타즈(김경희(리더), 강수연, 김정현, 문부희, 이은진, 정지민)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다. 레이디스타즈는 5명의 소프라노와 1명의 메조소프라노로 구성된 국내 최초 팝페라 걸그룹이다.
레이디스타즈는 뮤지컬 ‘마이페어레이디’의 ‘I could have dancend’,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Habanera)’, 뮤지컬 ‘맘마미아’의 ‘댄싱퀸’ 등을 부르며 천상의 하모니를 자랑했다.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앙코르 곡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불러 감동을 더했다.
노래를 잘하는 이들이 그룹을 이루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합창단이 있다. 하지만 구성원이 여성 성악가, 그것도 소프라노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레이디스타즈는 특별하다. 성악계의 스타들이 모여 창단한 그룹이기 때문이다.
소프라노는 이탈리아어로 ‘높은’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에서 온 단어다. 말 그대로 성악에서 높은 음역을 담당하는 여성 성악가를 말한다. 단지 높은 영역의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다. 흔히 프리마돈나라고 말하는 오페라의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오페라가 이것을 전제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모인 여섯 명은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스포트라이트를 당연히 독차지했던 인물들이다. 모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주인공들이다 보니, 어떤 면에선 어느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머니들이 만든 성악의 길
리더인 김경희도 “소프라노들이 그룹을 이루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성 성악 그룹은 조금씩 생기는 편인데, 그에 비해 여성 그룹은 거의 없어요. 그것도 여섯 명이나 모인 경우는 거의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저희는 대부분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에서 수학한 해외파로만 구성되었으니 더욱 신기한 일이죠.(웃음)”
레이디스타즈는 한국예술문화재단이 중심이 돼 지난 3월 창단했다. 6월 17일에는 첫 번째 창단콘서트도 가졌다. 남성 테너 10명이 모인 ‘더 텐테너스’ 역시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탄생했다. 일종의 남매 그룹인 셈이다.
콧대 높은 소프라노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모습은 예상과 다르다. 부르는 노래도 오페라 아리아뿐만 아니라 팝페라, 팝송, 가곡 등 다양하다. 여러 장르를 소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지난 창단콘서트 때는 ‘넬라 판타지아’나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도 선보였다.
연습 과정은 어땠을까? 빛나던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보니 일종의 기싸움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합이 잘 맞아 자매처럼 지낸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의 결속력의 배경에는 다양한 이력과 유사한 성장 과정도 한몫했다. 같은 소프라노지만 김정현은 메조소프라노 출신으로 다른 역할 분담이 가능하고, 정지민은 뮤지컬을 전공한 이력의 소유자다. 현재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성악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유사하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가 있다.
김경희는 트로트 가수 출신의 어머니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닮아 끼가 있을 거라며 민요를 가르치기도 하셨죠. 그러다 중학교 때 성악을 해보았는데 적성에 맞아 시작하게 됐어요. 성악을 만나면서 성격도 바뀌고, 제게 물려받은 것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죠.”
김정현도 비슷한 경우다. 피아니스트 출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많아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오래 했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 성악을 만나면서 진짜 맞는 것을 찾게 됐죠. 악기를 연주할 땐 그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기분이었다면, 노래는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으니까요.”
김정현은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 알아주는 오디션에 합격해 활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길에 올랐다. 솔리스트를 위해 합창을 하던 어느 날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 남 뒤에서 합창만 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다”고 설명했다.
막내인 강수연은 본인이 원했다가 어머니의 후원을 받은 케이스다. “내성적이었는데도 초등학교 때 교회 성가대에서 솔로를 뽑는다길래 바로 손을 들었죠. 너무 하고 싶었어요. 무대를 보신 선생님이 성악을 권해주셔서 발을 내딛게 됐어요. 변성기를 겪으면서 포기하려 했는데, 어머니 생일에 선물 대신 참가를 강요하셨던 오디션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성악을 다시 시작하게 됐죠.”
이은진의 출발에도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었다고. 체육부터 컴퓨터까지 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했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남은 것이 합창단이었다.
“하지만 정작 성악을 한다니까 반대하셨어요. 집안에 성악을 접해본 사람이 없으니 덜컥 겁이 나셨던 거죠. 그러다 나중에 음악 선생님도 될 수 있다며 허락해주신 것 같아요.(웃음).”
코로나가 만든 고난
하지만 이들이 가족의 응원을 등에 업고 탄탄대로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리더 김경희와 함께 수험 생활을 하기도 했던 ‘단짝’ 정지민은 “오랜 솔로 생활을 마치고 합류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빠른 비트의 음악에 끌려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죠. 하지만 뮤지컬계 나름의 구조가 있기 때문에 주역을 맡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솔로 팝페라 가수로 활동하기도 하고 행사도 다녔는데, 쉽지 않았어요. 혼자 성악곡도 하고, 뮤지컬곡도 하고, 공연 외적인 부분도 모두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방송국에서 로고송 가수 생활도 했고요. 앨범도 하나 발매했어요. 처음에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땐 성악을 공부하긴 했지만 벗어난 곳에서 오래 활동한 터라 좀 망설여지기도 했는데요, 그룹 내에 친구도 있고, 함께하는 활동이 재미있고 기대돼요.”
이은진은 유학 과정에서 방황을 겪었다. 독일에서 계속된 입시 실패에 당황해하던 때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난 선생님의 추천으로 프랑스로 나라를 옮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입국신고서에 국적이 북한으로 되었을 정도였는데도 무작정 떠났죠. 이후 죽어라 연습하면서 30대 가까이 되어서야 노래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야 ‘목소리 개발이 안 됐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문부희는 성악을 접하는 과정까지는 일사천리였다. 음악 시간만 되면 문부희의 독무대가 열렸고, 선생님들은 당연하다는 듯 성악을 추천했다.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달라져도 선생님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악을 전공했다. 학비 걱정에 시립대를 선택해야 했지만 고난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약혼을 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어요. 예상과 다르게 유학 기간이 길어지던 와중에 첫째를 낳았죠. 학업과 객원 합창단 생활, 육아를 병행한 셈인데 쉽지 않았어요. 밤 11시에나 주변 친구들이 봐주던 아이에게 돌아온 날도 많았고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서로 돕고 살던 시절이죠.”
이어 졸업 직전에 둘째가 생겼고, 한국으로 돌아와 셋째를 낳았다. 큰애는 벌써 아홉 살이다.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볼까 생각하던 시점에 코로나가 터져버렸어요. 일이 자연스럽게 정리되면서, 이참에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마음먹었죠. 신기하게 막내 돌이 가까워지니까 다시 노래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레이디스타즈를 만났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강수연 역시 코로나 여파를 겪었다. 유학 이후 자리 잡았던 미국에서 팜비치 오페라단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던 와중에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 초기 뉴욕에서 동양인은 지하철도 제대로 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인종차별이 심해지면서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도 잠시 한국에 가 있으라는 조언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중 작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소극장 오페라 축제에 참가했다가 리더를 알게 돼 레이디스타즈에 참여하게 됐어요.”
함께라서 더 설레
평생 클래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활동한 이들이기에 다른 분야의 음악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을까 궁금했다. 김경희는 “시대가 변했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멤버 모두 오페라나 클래식 무대에서 개인적인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 그룹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장르의 음악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저도 유학 시절에는 클래식이 아닌 다른 무대는 쳐다보지 않을 정도로 무지했어요. 하지만 많은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형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많은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이은진은 레이디스타즈 활동이 모두에게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새로운 곳과 통하는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기분이에요. 문을 열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이후에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제게 달려 있으니까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긴장보다는 설렘이 더 커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으니까요.”
영화배우 강수연과 시인 김지하가 세상을 떠났다. 잇단 문화계의 비보에 대중은 큰 슬픔에 빠졌다.
강수연은 지난 7일 향년 55세로 별세했다. 지난 5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강수연의 영결식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임권택·배창호·임상수·정지영 감독, 안성기·김지미·박정자·손숙·박중훈 배우 등이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4세 때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강수연은 영화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1987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 타이틀을 최초로 거머쥐었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는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누렸고, 그해 강수연은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고인은 ‘써클’(2003), ‘한반도’(2006), ‘주리’(2013) 등 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이’는 고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빈소는 연세대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씨(작가)와 차남 세희 씨(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학관 관장)가 있다.
1941년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꼽혔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으며,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을 발표하며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외에도 고인의 대표 저서로 ‘생명’, ‘애린’, ‘황토’, ‘대설(大設)’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시인을 추모했다.
1980~1990년대 한국영화를 풍미한 영화배우 강수연(55)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영화계 동료들과 영화 팬들은 놀라움 속에 한마음으로 그의 쾌유를 바라고 있다.
지난 5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40분께 강수연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통증을 호소한다는 가족들의 신고가 접수됐다. 구급대원이 자택에 도착했을 당시 강수연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재 강수연은 뇌내출혈(ICH)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의식이 없는 위중한 상태로 전해진다. 더불어 수술을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로 가족들은 수술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 일부 영화인들은 지난 5일 병원을 찾아 쾌유를 빈 것으로 알려졌다. 강수연의 출연작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과. 최근 ‘정이’를 함께한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의 소식에 크게 놀라며 건강 회복을 기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 강수연과 함께 출연했던 원로배우 한지일은 SNS에 “하루 빨리 쾌차하여 팬 곁으로 돌아오길 기도해달라”고 메시지를 게재했다. 방송인 하리수 역시 SNS에 “강수연 선배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강수연은 4세 나이에 아역 배우로 데뷔했고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를 통해 하이틴스타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 그는 1987년 영화 ‘씨받이’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원조 한류스타’로 통한다.
이외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년), ‘경마장 가는 길’(1991년), ‘그대안의 블루’(1993년) 등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송어’(2000년)로는 도쿄 국제 영화제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강수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SBS 대하드라마 ‘여인천하’(2001~2002년 방영)다. 강수연은 주인공 정난정 역을 연기했다.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고, 강수연은 전인화와 함께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그는 ‘써클’(2003년), ‘한반도’(2006), ‘주리’(2013) 등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올해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신작 ‘정이’로 약 9년 만에 영화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10월 12일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과 함께 레드카펫 행사가 진행됐다. 부산 해운대의 최첨단 도시숲에서 펼쳐진 레드카펫 행사에서 국내외 영화인들의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신인 영화인 등장에서부터 세련되고 고운 자태를 뽐내는 중견 영화인까지 해운대를 별들의 공간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1년을 기다려온 별들을 만나다
매년 가을이 되면 부산에서 날아오는 부산국제영화제 소식에 가슴이 뛴다. 이번 레드카펫 행사 당일에는 5500여 석의 자리를 메운 관객들이 영화제에 참석한 스타를 맞이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의 올리버 스톤 감독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았다. 1986년 베트남전을 그린 영화 으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거머쥐면서 세계에서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대표작으로는 , 등이 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핫이슈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배우 신성일이었다.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레드카펫을 밟은 여성에 대한 궁금증 때문. 신성일 측이 수양 손녀라는 공식입장을 내놓아 소란은 잦아들었지만 영화제 초반 내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시대는 변해도 신성일은 여전히 핫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꽃중년 이주실과 김해숙,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아역에서 성인 배우로 들어선 서신애의 드레스가 대중에게 주목받았다면 기자는 배우 이주실의 한복에 눈이 갔다. 영화 (감독 김성호)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이주실은 어머니 미소를 머금고 배우 이종혁과 함께 레드카펫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복의 단아한 모습이 영화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감독 곽경택)의 여주인공 김해숙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를 빛낸 꽃중년 스타다. 흰 드레스를 입고 배우 김래원, 곽경택 감독과 함께 레드카펫 위에 올랐다. 이번 작품에서 아들로 등장한 김래원은 벌써 김해숙과 세 번째 호흡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임권택 감독은 거동이 불편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등장했다. 올해의 한국영화 회고전 에서는 그가 만든 영화 이 상영됐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인 안성기,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배우 권해효도 팬들의 환호 속에 레드카펫을 밟았다.
레드카펫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홍콩 누아르의 전설 오우삼도 새 영화 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도 레드카펫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정치적 문제로 침체일로를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다시 한 번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올해 22번째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매스컴이나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별들의 잔치에 직접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
항상 보았듯이 빨간 카펫이 길게 깔리고 멋진 남녀 배우가 그 위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한다.
부산은 매우 역동적이고 활발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필자가 좋아하는 생선회에 대한 문화도 발달한 곳이어서 항상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이전에 몇 번 관광차 왔을 때도 자갈치시장 등 부산은 시끌벅적하고 사람 부대끼며 사는 맛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이곳은 떠나고 만나는 인생의 애틋함이 느껴지는 항구도시이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정책기자단에서 20여 명의 기자가 함께 부산 국제영화제 취재차 여행을 시작했다.
하필 비가 내려서 걱정이었지만 하얀색 비닐 우비로 온몸을 칭칭 싸고는 내리는 빗방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막식장을 찾았다.
비 오는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영화제를 보기 위해 모였다.
외국인도 많았고 바로 옆자리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축제인 듯 즐기는 모습이었다.
개막식 전 축하공연으로 김용걸 댄스팀이 웅장한 볼레로 음악에 맞춰 멋진 군무를 보여주었다.
드디어 조각 미남 장동건 씨와 소녀시대 윤아 양의 사회로 개막식의 닻이 올랐다.
집행위원인 강수연 씨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미국의 올리버 스톤과 중국의 리샤오펑,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등 많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전했다.
특별한 시상식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창설부터 20여 년을 함께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기리며 ‘지석 상’을 신설했는데 아시아영화의 발굴과 격려를 위함이라고 한다.
올해로 22년째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었다.새로운 작가를 발굴 지원함으로써 아시아 영화의 비전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1996년 시작되어 한국과 아시아 영화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부산 국제영화제이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을 상영한 이후 혼란을 이어오던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역시 강수연 씨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니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이날 개막식에 모인 영화애호가들을 보니 우리 영화계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큰 화면으로 무대 앞자리의 유명 영화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성기도 보이고 손예진, 문근영의 모습도 보였다.
개막식이 끝난 후 상영한 개막작은 오랜만에 영화계에 돌아온 문근영의 이라는 작품이다.
초록 식물의 화면이 아름답게 펼쳐진 신비하고 독특한 소재로 문근영의 촉촉하고 서늘한 눈 연기에 흠뻑 빠진 좋은 영화다.
먼 항구도시 부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을 보았으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기억은 필자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행복한 추억으로의 여행을 마쳤다.
연예인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연기와 노래라는 창작 영역의 특성과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다. 연예인은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미디어가 구축한 이미지와 실제 삶의 괴리 속에서 살아간다. 연예인은 작품 흥행 성공 여부에 따라 몸값이 달라지므로 인기를 유지하고 스타가 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연예인은 자신의 예술적 한계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 자신의 예술적 지향과 연예 기획사의 이윤추구 간의 대립으로 촉발된 갈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중의 비난과 대중매체의 부정적 보도에 대한 심적 부담감도 크다.
일부 연예인은 이러한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운동이나 술로 풀기도 하고 마약에 빠져 몰락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중견 연기자 최불암은 “연예인의 직업적 특수성에서 초래되는 어려움을 한잔 술로 해결하는 사람이 많다. 캐릭터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작업인 배우에게 술이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스타와 연예인 중에는 술을 잘하는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전설적 주당이 있는가 하면 술을 전혀 못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시인 조지훈은 수필 에서 술 먹는 사람의 단계를 18단계로 구분했다. 연예인과 스타들은 술을 먹지 못하지는 않으나 안 먹는 1단계 부주(不酒)에서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는 18단계 폐주(廢酒)까지 18단계의 다양한 음주 양태를 보인다.
주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두주불사의 첫손에 꼽히는 연예인으로는 중견 연기자 백일섭을 필두로 조형기, 김건모, 김민종, 윤다훈, 안재욱, 성시경, 신동엽, 강호동, 지상렬 등이 있다. 이들은 소주를 한두 병이 아닌 한 궤짝(30병)으로 먹은 적이 있는 전설(?)의 기록을 갖고 있다.
백일섭은 보통 드라마나 영화의 음주 장면에서 주류 대용으로 등장하는 음료수를 거부(?)하고 실제 술을 마시며 연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앉은자리에서 소주 10병을 마시고도 전혀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 젊은 주당으로 명성이 자자한 성시경은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내 주량을 아직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김건모는 SBS 에서 소주로 가득 찬 소주 전용 냉장고와 대형 생수통을 소주로 채운 정수기, 소주를 얼린 빙수 등 충격적 장면과 집 안에서 포장마차 분위기로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파라솔과 간이 테이블을 설치해 지인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 “역시 주당”이라는 반응을 끌어냈다.
놀랄 만한 주량의 여자 스타도 적지 않다. 토하고 마시고 토한다는 의미의 ‘토마토’라는 별명을 가진 스타 김희선은 폭탄주 30~50잔을 마시는 놀랄 만한 주량을 자랑하는 애주가다. 김희선 못지않은 주량을 보이는 스타가 바로 강수연이다. 2002년 방송된 SBS 종영 파티에서 만난 강수연이 폭탄주 마시는 잔을 세다가 20잔이 넘어가면서 포기한 적이 있다. 김남주, 이정현, 보아, 문근영 등도 남자 연예인을 압도하는 주량으로 널리 알려졌다.
백일섭은 “연예인은 공동 작업을 해야 하고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직업이어서 힘든 점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동료와 술 한잔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연기에도 좋다”라고 말했다.
술을 정말 사랑하고 즐기며 음주를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진정한 애주가가 바로 김창완이다. 연기자로, 뮤지션으로, 방송 진행자로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김창완은 시인 조지훈이 음주의 최고 단계로 명명한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는 18단계 폐주(廢酒)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전혀 술을 못하거나 음주를 하지 않는 연예인도 적지 않다. 강석우, 유재석, 송윤아 등 일부 스타들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대표적 연예인이다. 송윤아는 술 한 잔만 들어가도 맥을 못 추는 스타일이고 유재석은 술을 마시지 못해 동료와 만나는 자리에서조차 음료수를 마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강석우는 아예 술을 못 먹는 스타다. 그가 드라마 출연할 때 술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작진이 하도 권유해 보리 음료를 마시는 대신 맥주 두 잔을 마시는 만용(?)을 부리다 정신을 잃어 촬영이 두 시간 늦어진 적도 있다.
술을 마실 줄 알지만 특별한 이유로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스타도 있다. 차인표는 “내가 내민 손길 하나로 아이의 미래가 달라지고 사회가 달라지는 것을 본다. 매우 행복한 일이다. 2006년 이후 유흥업소에 안 간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쓰는 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술집에서 쓸 돈을 쓰레기 더미 안에 사는 아이를 돕는 소중한 일에 쓰면 아이들의 미래와 사회가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연예인의 주사 역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술을 많이 먹으면 전화를 계속하는 차태현, 잠이 드는 김국진 등 일반적 주사부터 음주하면 가발을 벗는 이덕화 등 엽기적 주사까지 연예인의 주사도 매우 다양하다.
술은 잘 먹으면 약주(藥酒)요, 못 먹으면 망주(亡酒)라는 말이 있다. 연예인들 역시 술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술을 먹고 음주운전한 연예인이다. 아이돌 그룹 클릭비 멤버로 인기가 높았던 김상혁은 2005년 음주운전을 하다 추돌사고를 낸 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고 말해 대중의 엄청난 비난과 대중매체의 집중적 비판을 받고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하지 못했다. 또한 가수 호란, 길, 배우 윤제문 등은 한 번도 아닌 두세 번에 걸쳐 음주운전이 적발돼 대중의 비판을 받아 연예활동을 중단했다.
연기자 최철호는 만취한 상태에서 여성을 폭행해 세간의 비난을 받았고 슈퍼주니어의 강인은 연이은 음주운전, 음주폭행 등으로 대중의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
중국 한류 팬이 물었다. 한국 드라마에는 편부와 편모 가정이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도 그러냐고.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가 하소연했다. 스타 한 사람이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1억~2억 원 넘게 요구하고 저작권 수익 20퍼센트를 보장해달라고 하니 어떻게 드라마를 만드느냐고. 한 네티즌이 질문했다. 한류스타들이 출연하는 중국 영화 출연료가 10억원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사실이냐고. 30년 연기자로서 살아온 50대 중견 연기자가 강조한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소속된 4000여명의 연기자 중 70퍼센트가 연 소득(2014년 기준)이 1020만원 미만이고 방송에 단 한 번도 출연하지 못해 출연료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도 30퍼센트라고. 스타와 연기자들의 몸값 일면을 보여주는 언급들이다.
‘장근석, 이병헌, 이영애 등 드라마 회당 출연료 1억원 이상 스타 속출’ ‘한류스타 비, 중국 드라마 회당 출연료 1억5000만원, 드라마 한 편 출연료로 60억원 챙겨…’ 신문, 방송, 인터넷매체 등 대중매체는 하루가 멀다고 월급쟁이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스타의 엄청난 몸값에 대해 시시콜콜 보도한다. 수많은 사람이 스타의 몸값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과연 스타들의 드라마와 영화 출연료 실태는 어떨까. 스타의 드라마 출연료는 방송사가 탤런트를 공채로 선발해 전속제(탤런트가 소속 방송사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시스템)를 운영하던 1991년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전속제가 시행되던 시기에는 연기자의 연기경력, 드라마 종류(일일극, 주말극, 미니시리즈), 주·조연 등 드라마 비중, 방송사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부여하는 등급제에 의해 출연료가 지급됐다. 1991년 SBS의 등장으로 전속제가 속속 폐지되면서 스타들은 등급제 적용을 받지 않고 방송사 혹은 제작사와 스타 소속 연예기획사 간의 협의로 출연료를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했다.
물론 스타가 아닌 일반 연기자나 단역 연기자의 경우는 현재도 등급제에 근거해 출연료를 받고 있다. 이러한 출연료를 산정하는 시스템의 변화가 있던 1991년 이후로 스타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1990년대 후반, 한류가 일면서 출연료는 수직상승했다.
연기자의 등급제에 의해 드라마 출연료가 지급되던 1977년, 한국 텔레비전 방송연기자협회의 ‘출연료 현실화 자료’에 따르면 이 당시 최고 스타의 40~50분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3만5000원 선이었다. 최불암, 김혜자, 강부자, 이순재 등 스타급들이 이 금액을 받았다.
최불암은 “연기자들의 출연료 등 수입이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과 비교해 높았지만, 지금처럼 엄청나지는 않았다. 등급제에 의해 출연료가 지급되던 시기에는 단순히 인기가 높다고 해서 젊은 연기자가 경력이 많은 연기자보다 출연료를 더 많이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매년 PD 등이 참여하는 등급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된 연기자의 등급에 따라 출연료가 결정되는데 연기경력이 등급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 경력이 많은 중견 연기자들이 출연료가 대체로 높았다”고 말했다.
1991년 SBS의 등장으로 탤런트 전속제 폐지와 함께 일부 스타에 대해 등급제가 아닌 스타와 방송사 간 협상으로 출연료가 결정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인기가 높은 스타들의 몸값은 치솟기 시작했다.
1997년 들어서는 탤런트 드라마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드라마 제작에 어려움이 생기자 KBS, MBC, SBS 방송 3사 사장들이 긴급회동을 해 스타들의 몸값 상승을 자제하자는 결의를 했을 정도다. 이때 방송 3사 사장들은 스타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의 상한선을 200만원으로 한정하자고 합의했다. 이 당시 회당 200만원을 받은 스타는 최진실을 비롯한 극소수 톱스타였다.
최진실은 생전 인터뷰에서 “제가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줄 몰랐어요.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지요. 제 출연료에 대한 언론 보도로 인해 스타 출연료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항상 제 이름이 언급돼요. 한동안 최진실 하면 연기자 몸값 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지요”라고 말했다. 톱스타 최진실이 회당 최고 출연료 200만원을 받고 드라마에 출연한 지 올해로 20년째에 접어들었다. 지난 20년 동안 스타의 드라마 출연료는 어떻게 변했을까. 1995년 케이블TV가 등장하고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등 외국에서의 한류가 거세지고 체계적인 연예기획사가 등장하면서 스타들의 몸값은 폭등했다.
지난 20년 동안 스타의 드라마 최고 출연료 기록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최고 몸값 신기록이 수립될 정도다. 2001년 SBS 대하사극 여자 주연을 맡은 강수연은 회당 600만원을 받으며 2000년대 드라마 최고 출연료 기록을 수립했다. 이 기록은 1년도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2002년 전도연이 SBS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625만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록 역시 불과 1개월 만에 깨졌다. 김혜수가 2003년 방송된 KBS드라마 에 출연하면서 회당 700만원을 받았다. 김희선은 2003년 3월 SBS 드라마 출연계약을 체결하며 회당 1000만원을 받으며 드라마 회당 출연료 1000만원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한국 방송사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바로 2007년 방송된 사극 에 주연으로 나선 배용준이 회당 출연료로 2억5000만원을 받은 것이다. 한국 스타로서는 처음으로 회당 1억원을 돌파하는 동시에 드라마 한 편 출연으로 60억원의 출연료를 챙겨 대중문화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승수 전 MBC 드라마국장은 “배용준의 회당 출연료 2억5000만원은 한국 방송계에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일부 스타들이 배용준을 계기로 한국 방송시장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스타의 출연료가 치솟을수록 드라마 제작비는 한정돼 있어 제작 상황이 열악해졌고 스태프의 인건비가 삭감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배용준의 출연료는 다른 스타들의 출연료 협상 시 기준이 되면서 스타의 막대한 몸값 지출로 한국 드라마 제작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게 됐다. 오죽했으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지난 2009년 회당 1500만원을 넘지 못하게 하는 드라마 출연료 상한제 시행를 주장했을까.
하지만 드라마제작사협회의 출연료 상한제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배용준의 회당 출연료 2억5000만원 이후 스타들의 드라마 출연료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최근 웬만한 이름 있는 스타들은 5000만~1억5000만원 정도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를 받는다. 이영애, 전지현 등이 회당 1억원 이상의 드라마 출연료를 받고 최지우, 고현정, 하지원, 송혜교, 김태희 등은 회당 5000만~1억원 정도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남자 한류스타의 경우 드라마 회당 1억~2억원의 출연료를 받는다.
그렇다면 중견 연기자들은 얼마나 받고 조연 연기자들과 단역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얼마나 될까. 이순재, 최불암, 김혜자, 고두심 등 인기 중견 스타들도 이제는 드라마 회당 출연료로 1000만~3000만원 정도를 받는다. 반면 조연 연기자나 단연 연기자들은 등급제 적용에 따른 출연료를 받는데 연기경력이 20년~30년 된 조연 배우들은 회당 100만원 미만, 단역 배우는 회당 20만원 선을 받는다. 스타와 일반 연기자의 몸값은 천양지차다.
영화는 어떨까. 영화 스타의 출연료도 급상승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오르던 영화 스타들의 몸값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강우석 감독과 영화제작자협회는 2005년 6월 스타의 출연료 상승과 연예기획사의 터무니없는 영화 지분요구 등을 지적하며 스타 권력화의 문제를 제기해 연예계에 큰 논란이 일었다. 2006년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30억~40억원 할 때 한 스타의 출연료가 제작비의 10퍼센트인 4억원에 육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2012년 개봉한 의 주연 이병헌은 출연료는 미니멈 개런티 6억원에 흥행보너스를 추가로 받기로 계약했는데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출연료로 이병헌이 챙긴 수입은 10억원이 넘었다.
영화 스타들의 출연료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영화 남자 스타 출연료는 편당 6억~8억원 대다. 이 액수의 출연료를 받는 영화 스타는 하정우, 김윤석, 송강호, 장동건, 원빈, 이병헌, 황정민 등이다. 이들은 이러한 기본 출연료 외에 러닝 개런티까지 챙기는 경우도 있다. 여자 스타의 경우는 남자 스타보다 낮은 편이다. 3억~6억원 선으로 전지현, 손예진, 김혜수, 하지원, 전도연 등이 이 같은 몸값을 받는다.
우리 스타들의 해외 드라마 출연료는 국내 출연료보다 더 많다. 정지훈(가수 비)이 지난해 출연한 중국 드라마 의 회당 출연료로 1억5000만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박해진, 권상우, 송승헌, 이종석 등 남자 스타의 경우 7000만~2억원 선이고 장나라, 김태희, 추자현, 장서희 등 여자 스타의 경우는 5000만~1억원 선이다.
한류스타의 중국 영화 출연료 역시 한국 영화 출연료의 2배~3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 남자 한류스타의 경우 15억원 안팎을, 여자 한류 스타의 경우 10억원 내외의 영화 출연료를 받고 있다. 송혜교, 송승헌 등이 10억원이 넘는 출연료를 받고 중국 영화에 출연했다.
중국 광고대행사 YC스페이스 오혜령 대표는 의 이민호나 의 김수현은 중국에서 드라마, 영화 출연료는 정해진 것이 없다. 부르는 것이 값이다”라고 말한다.
스타들의 몸값은 왜 이처럼 치솟는 것일까. 스타는 희소자원이자 빨리 만들어질 수 없는 대체불가재다. 이 때문에 스타의 수요가 증가할수록 스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한류 상승과 제작사 급증, 작품 증가로 스타의 수요는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급자인 스타가 가격(몸값)을 결정하는 공급자 중심시장이 형성되면서 스타의 몸값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흥행성적, 인기도, 제작비 상황, 스타 파워, 연기경력, 작품의 비중 등을 분석해 작성한 출연료 산정 기준의 부재와 방송사와 투자사의 스타 출연 여부만을 보고 편성과 투자를 결정하는 관행 등도 스타 몸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와 제작사, 드라마 PD와 영화감독들은 한국 스타의 드라마, 영화 출연료가 대중문화 시장규모보다 매우 높은 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의 대중문화시장 규모의 10배에 달하는 일본의 드라마 주연 스타 출연료를 한국 스타들이 이미 추월했다. 일본 최고 스타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는 회당 5000만~1억원 선이다. 우리 스타들의 드라마 회당 출연료가 1억원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고 2억원을 받는 스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스타의 몸값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작품 완성도 하락부터 스태프 인건비 삭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가 스타의 높은 몸값으로 야기된다. 우선 한정된 제작비에서 스타 몸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드라마나 영화 완성도를 위해 쓸 수 있는 제작비가 감소한다. 작품의 완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배역, 의상, 세트, 컴퓨터그래픽 제작비를 줄여야 하고 이로 인해 작품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 드라마나 영화에 부모가 나와야 하는데도 스타 몸값이 너무 많아 제작비 압박을 받아 부모 배역을 다 쓰지 못하고 편모 혹은 편부만 출연하는 웃지 못할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또한, 스타들의 몸값은 조명, 오디오, 촬영, 분장 등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의 인건비 삭감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는 망해도 스타만 흥하고, 스태프와 일반 연기자를 비롯한 방송영화계 종사자들은 박봉과 열악한 제작환경에 시달리지만, 스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타 독식 구조가 견고하게 구축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