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갓진 시골에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다. 귀농한 부부가 운영한다. 아내는 낙천적이고 남편은 신중한 성향의 소유자다. 이상적인 조합이다. 대략 큰 그림을 그려놓고 꿈을 좆아 달리려는 아내의 과속을 남편이 적절히 견제해 균형을 잡아가니까. 매사 협의 과정엔 충돌이 잦지만 결국은 중간 지점을 찾아 절충한단다. 귀농 가부 문제에서부터 부부의 주장이 엇갈렸다. 귀농 이후에도 의견이 상충하는 때가 많았다. 폐가에 가까웠던 농가 주택을 근사한 카페로 재생하면서도 자주 옥신각신했다. 아무려나 카페는 잘 돌아간다. 딱히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입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곳은 아닌 데다, 카페의 담백한 외관과 내부의 소박한 디테일이 어우러져 손님들의 호감을 산다.
부부가 귀농한 지 올해로 6년째. 전에 살던 곳은 인천. 남편 이태호(46, 카페 ‘홍담’ 대표)는 IT 업계를 거쳐 다년간 자영업을 하다가 이곳 충남 홍성군 구성면 시골로 귀농했다. 귀농을 먼저 제안한 건 아내 우연희(41)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살맛나게 살아보자는 아내의 느닷없는 제안에 이태호는 아마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것 같다. 부부 공히 시골 생활 경험이 없는 데다 귀농이 자칫 가시밭길을 걷는 고행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니, 시골 생활을 장난으로 아나?’ 아내의 귀농 제안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그랬다.(웃음)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고 소탈하게, 마음 편하게 살아보자는 게 아내의 목적이었다. 그건 여러모로 무모한 도전에 불과했다.”
아내의 생각을 꺾어놓을 필요성을 느꼈다는 얘기인가? 무모한 도전이 없는 인생은 따분할 수 있다.(웃음)
“여러 날을 숙고했다. 내가 싫다고 아내의 뜻을 묵살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 차분하게 생각해봤는데 시골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TV에 나오는 ‘자연인’처럼 남자들에겐 수렵 생활에 대한 로망이라는 게 다들 있지 않나? 결국 아내의 뜻을 따르게 됐다.”
사전 귀농 준비는 했나?
“이 대목에서도 아내와 이견이 있었다. 매사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아내는 ‘일단 그냥 내려가자, 내려가서 적응하면 된다, 귀농이 어렵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우리만큼은 다를 거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했다. 착각에 빠져 있었다.(웃음) 이런 아내의 주장까지 동의할 수 없었던 나는 양재동에 있는 aT센터를 드나들며 관련 정보부터 수집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를 통해 귀농교육도 받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곳곳을 돌며 귀농 투어를 하기도 했다. 농업시설업자들을 통해 유용한 팁도 얻었다.”
충실한 사전 준비를 한 셈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을 테고.
“기본적인 방향 하나를 미리 확정할 수 있었다. 흔히 농토는 빌려 쓰고 대신 시설 설비에 자금을 투입하라는 얘기를 하지만, 이건 위험한 방법이라는 걸 현장 답사를 통해 알았다. 만약 농사에 실패할 경우 시설비를 몽땅 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 자금은 전적으로 토지 구입에 쓰고 시설은 지원금을 받아 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귀농지 선정에 나섰다.”
홍성군을 귀농지로 선택한 이유는?
“경상도나 전라도는 너무 멀어 일단 배제했다. 1년의 절반은 추운 겨울인 강원도도 제외했다. 경기도도 뺐다. 땅값이 너무 비싸니까. 결국 충청도로 가기로 했는데, 우리가 귀농할 당시 충북권은 예산 부족으로 귀농지원금이 적다고 해 충남권이 적합하다고 봤다. 해서 충남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농교육을 받는 한편 토지를 물색, 마침내 이곳 홍성에 터를 잡게 됐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는 데는 아내도 동의했나?
“동의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실랑이를 피할 길이 없었다.(웃음)”
나이 든 남편들은 흔히 말한다. 아내의 뜻을 따르는 게 신상에 좋다고. 살아보니 아내의 머리가 더 현명한 걸 알겠더라, 그리 판단하는 거다.(웃음)
“난 아내를 존중한다. 하지만 삶터 문제는 워낙 중요한 대목이라 양보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마을 한가운데 나온 매물을 사자고 했는데, 가격이 저렴하다는 매력이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13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의 복판에 거주할 경우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자신이 없어 반대했다. 본의 아니게 마을에 민폐를 끼칠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결국 아내가 양보해서 마을과 떨어진 이곳의 매물을 사게 되었다.”
뜻밖에 찾아온 많은 손님
부부가 구입한 터의 면적은 밭 600평을 포함해 약 800평. 60년 전에 지어져 낡다 못해 쓰러져가는 빈집 한 채가 딸린 터였다. 땅을 결정한 뒤 이태호는 일주일 만에 이사해 귀농 생활에 돌입했다. 가까이 있는 홍성읍내에 셋집을 얻어 임시 거처로 삼고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귀농 열차에 몸을 싣고 일단 질주하고 싶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신속하게, 거침없이 움직였다. 이사하자마자 즉각 집수리에 나서는 한편 농사에 뛰어들었다는 게 아닌가. 다분히 충실했던 사전 준비에서 나온 추진력이었으리라.
농사 작목은 어떤 걸 선택했나?
“30여 종의 작물을 심었다. 600평에 불과한 작은 밭에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던 거다. 귀농 전 막연하게 생각한 건 고구마 농사였다. 소규모라도 고구마 한 가지를 잘 키워 생산하면 부부가 먹고살 만한 정도의 수익은 나오지 않을까, 대충 그런 구상을 했는데 귀농교육과 현장 답사를 통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그렇다면 고구마보다 유능한 작물을 찾아내야 했다. 과연 우리 밭의 토질에서 어떤 작물이 잘 자랄지 알아내기 위해 30여 종을 시험 재배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 블루베리가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 블루베리 400주를 기르고 있다.”
집수리는 부부가 손수 했다지?
“비용도 줄이고, 우리의 취향에 맞는 집을 만들고 싶어 거의 모든 공정을 직접 처리했다. 워낙 낡은 집이라 기둥, 서까래, 흙벽 정도만 남기고 털어낸 뒤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옛날 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고치고 다듬었다.”
수리 과정에서 부부간 의견 충돌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많이 다퉜다.(웃음) 아내는 감성적 스타일로 개성을 살린 구조를 추구했다. 반면 난 실용성과 기능성 중심의 단순하고 깔끔한 공간을 원했다. 결국 절충점을 찾아갔지만 이견 조율하느라 우왕좌왕이 잦았다. 보수를 완료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처음부터 카페로 개조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진행했나?
“아니다. 카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작지만 편안한 살림집을 만들되 부부 둘이 차를 마시며 기분 좋게 쉴 수 있는 공간도 꾸미자는 정도의 계획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도중에 바뀌었다. 집 고치기를 지켜보던 마을 이장님이 카페를 하면 괜찮을 거라는 조언을 해준 게 계기가 됐다. 시골 카페라도 운치를 돋운 분위기에 착한 서비스를 할 경우 가능성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카페를 통해 부진한 농업소득을 보완할 수 있을 거라 봤다.”
결과적으로 카페를 차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나?
“그렇다. 2019년에 오픈하자마자 뜻밖에도 손님이 많이 찾아왔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대형 카페들은 손실이 컸지만 우리는 무난했다.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공간이라 강아지를 안고 오는 이들도 많다. 카페가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 과도한 인테리어는 자제했다.”
시골 생활 만족도 80%
카페의 분위기는 뭐랄까, 영업집이라기보다 정겹게 꾸민 이웃집 사랑방처럼 편안하다. 천장에 노출된 서까래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옛이야기들을 두런거린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다가온다. 카페 외벽은 온통 하얀 칠을 입혀 정갈하다. 귀농을 선창했던 이태호의 아내는 하얀 집의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즐기는 식의 낭만적인 시골 생활을 갈망했다지. 그 바람이 얼추 이루어졌다. 특히 안도할 만한 건 카페 수익을 통해 원만하게 가계를 꾸려나가게 됐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기본 서사는 부를 축적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지어 부를 확장하긴 어렵다. 이태호 역시 농업소득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는데, 용케 카페 사업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는 더 달리고 싶다. 카페는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긴다.
“농사로, 특히 소농으로 돈을 벌기는 실로 어렵다. 우리는 카페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었지만 사실 시골 카페의 태생적인 성장 한계는 명확하다. 확장성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라 보나?
“일의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남의 농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이들 대상의 방과 후 학습교사를 맡고 있다. 한편 지역의 청년 귀농인들을 모아 농업회사법인을 설립, 다양한 형태의 소득 창출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건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를 중점 사업으로 삼아 키워나가고자 한다.”
귀농 6년 차에 이르렀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나? 원했던 삶을 살고 있나?
“흠, 만족도 80%쯤? 도시에서보다 한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 부부는 가족 중심의 삶, 가족이 모태가 되는 삶을 목표로 삼았다. 그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귀농 이후 아이 둘을 얻었다. 4인 가족이 된 거다. 농사의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소박한 살림을 꾸려나가며 가족과 함께 따뜻하게 살 수 있는 현 상황에 순간순간 기쁨을 느낀다.”
모두가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세상이다. 돈에 관해선 어떤 생각을 하지?
“돈이 많아야 행복도 가능하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밥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한다. 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부부애, 가족애에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언사는 수굿하지만 생각엔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다. 온유한 품성이 느껴지지만 매사 치고 나가는 성향? 지난 귀농의 날들을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다. “난 치열하게 살았다!”
이태호가 주는 귀농 Tip
•귀농 실패 사례가 드물지 않다. 섣불리 뛰어드는 건 무모하다. 심사숙고하되 일단 귀농을 결정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라. 보수적인 접근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들에서 주관하는 ‘6개월 미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기초를 다지자.
•귀촌과 귀농이 융합된 형태의 시골살이를 모색하자. 소규모 농토를 통해 농업인 자격증을 획득하고 혜택을 받되, 라이프스타일은 귀촌의 방식을 취할 경우 한결 만족도가 높아진다.
•농사 하나에만 의존하지 말자. 과도한 노동에 몸이 망가질 수 있다. 찾아보면 농외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가 많다.
•남편만의 단독 귀농은 필패의 지름길이다. 술과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반면 아내가 귀농을 주도해 함께 내려온 경우엔 99%가 정착에 성공하더라.
•부부가 함께 일하는 데 의미를 둘 경우 시골 카페도 권장할 만하다. 단 주변의 시장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결정하라.
“시골로 내려가겠다고? 그건 좀 미친 짓 아닌가?” 김화자(59, ‘꽃피는 산골농원’ 대표)는 이런 핀잔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귀에 담지 않았다. 시골살이의 고독과 농사의 고난을 헤쳐나가느라 몸은 물론 마음마저 상할 수 있으니 충분히 숙고하라는 충고쯤으로 여기고 시골행에 시동을 걸었다. 시골살이는 김화자 부부에게 오래 묵은 로망이었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부부 단둘이 시골에서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꿈에 무슨 결함이 있으랴. 김화자에게 귀농은 자연스러운 이행(移行)이었던 같다. 상류의 물이 하류로 흘러가는 것과도 같은 순행. 올해로 그는 귀농 11년 차를 맞이했다. 애초 귀농을 만류했던 이들의 말이 이젠 사뭇 달라졌단다. “어라, 이 사람들 성공했네!”
김화자의 집은 무주군의 명산 적상산 아래에 있다. 한갓진 외딴집이다. 집 앞엔 개활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인상적인 건 이 집에서 바라보이는 산 풍경이다. 뒤편으로는 적상산이 떡 버티어 집을 보듬었고, 앞쪽에선 대호산이 뭔가 서기를 풍겨 생동감을 부여한다. 저 멀리 아스라이 덕유산도 보인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그 산의 정상부는 아예 설산인데,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를 편집해 붙인 듯 신비감이 감돈다. 여기나 저기나, 앉으나 서나, 밤이나 낮이나 산들의 동향을 관찰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이다. 산경(山景)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 적격인 삶터다. 김화자는 마땅한 시골을 물색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인터넷에 매물로 나온 이곳을 둘러보고 곧바로 부지를 사들였단다. 첫눈에 호감이 가서.
“이왕이면 산세 좋은 곳에 터를 마련하고 싶어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지역 곳곳을 답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곳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강원도의 산세를 닮은 분위기에 보자마자 반했으니까. 깊은 맛을 풍기는 산세에다 탁 트인 경관까지 보기 좋게 어우러져 즉시 매입했다. 철탑이나 축사가 인근에 없는지, 가격은 합리적인지, 갖가지 꼼꼼한 점검부터 하는 게 매입 수칙이라지만 그런 걸 다 생략하고 샀다. 한참 뒤에 알고 보니 시세보다 훨씬 비싼 땅값을 치렀더라.(웃음) 하지만 억울하진 않았다. 취향에 맞는 터를 구입했다는 기쁨이 더 컸으니까. 터를 정하고 나자 지인들이 ‘미쳤다’는 소리를 또 끄집어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무주에서 무슨 재주로 살 거냐면서.(웃음)”
초기 5년은 혹한기
터 일대의 자연환경 하나에 꽂혀 일을 저지른 셈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날 이때까지 대체로 순탄한 시골살이를 해왔으니까 말이다. 터에 서린 무슨 지령(地靈)의 선한 감독을 받았을 리 없겠지만, 첫눈에 반한 땅이 주는 만족감을 정서적 기반으로 삼아 순항을 해왔으니 김화자에겐 영락없는 명당이다. 귀농 전에 그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살았다. 남편과 함께 문구점을 18년간 운영하다가 접고 시골로 들어온 것.
“자영업이 대부분 그렇듯 자유시간이 없다. 스트레스도 많고 갑갑증이 난다. 더구나 우리는 휴일 없이 일에 매달려 살았다. 덕분에 문구점 규모를 키울 수 있었지만 언젠가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일찍부터 아이들을 다 키운 뒤엔 시골에 가서 마음 편하게 살 작정을 했는데, 마침내 적당한 시점에 이르러 가게를 청산하고 2013년에 이곳으로 내려왔다.”
도시에도 장점과 매력 요소가 많다. 시골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돈을 벌기엔 도시가 한결 유리하겠지만 만족할 만한 좋은 삶을 꾸리는 데엔 시골이 더 낫다고 봤다. 그리고 그 좋은 삶이란 시골의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꾸는 식의 여유로운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고 평온하게 살고 싶어 오랫동안 시골을 꿈꾸었던 거다. 어휴, 도시는 참 싫다. 스트레스와 부자유는 물론 교통체증과 매연에 질렸다.”
농사는 어떤 작물을 하나?
“농원의 전체 부지 1800평 중 1500평에다 사과와 블루베리 농사를 한다. 처음엔 사과 농사만 하다 나중에 블루베리를 추가했다. 애초 우리는 귀촌 형태의 시골살이를 구상했다. 호미자루 한 번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본격적인 농사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냥 한가하게 살고자 했다. 인근에 구천동 관광지구가 있으니 상황을 봐서 나중에 민박집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정작 들어오고 나서는 귀농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겠지?
“원래 이 터 일부에 사과 과수원이 있었던 데다 마을 주민들이 사과 농사를 하라 권유를 해 입문했다. 무주는 사과 특산지구다.”
농사 초심자가 과수원에 뛰어들었다. 막막한 게 많지 않았을까?
“처음 1년은 너무도 힘들었다. 호미로 풀을 메다가 집어던지고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다. 문제는 농사에 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덤벼들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무주농업대나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열심히 배웠다. 여러 해에 걸쳐 농업교육을 이수하면서 농촌체험학습지도사, 농식품가공기능사, 팜파티플래너 1급 지도사, 다육아트지도사 등 다수의 자격증을 땄다.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도 받았고.”
당초 귀농에 뜻을 두지 않고 내려왔지만 어차피 본격 농사에 승차했으니 제대로 한번 달려보자! 아마도 그런 결기가 작동했던 게 아닐까? 김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민감하게 움직이는 걸로 귀농 생활을 개척해나갔다. 그러자 매사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농사일이 즐거워졌다. 비록 고달픈 노동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나날이지만 도시에서와 달리 마음은 편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농사로 얻는 수익은 쉬 오르지 않더란다. 초기 5년은 혹한기였다는 것.
“월 300만 원, 즉 연간 3500만 원 정도의 순소득을 목표로 삼았다. 그쯤이면 부부 둘이 먹고살기에 충분할 거라 봤다. 하지만 손에 쥘 게 거의 없었던 초기 5년간은 많은 고심을 하며 지냈다. 다시 말하자면 자리 잡는 데 5년이 걸린 셈이다.”
그마저 괜찮은 성적이지 않나? 10여 년이 지나서야 궤도에 오르는 귀농인도 많다.
“우리는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와 블루베리를 생산한다. 따라서 품질이 좋다.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 자체는 쉽지 않다. 특히 자연재해엔 속수무책이다. 농부가 최선을 다해도 물과 햇빛이 도와주지 않으면 망칠 수 있다.”
일찍이 현자가 말했더라. 하늘은 때로 사람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논다고. 어떤 식의 자연재해를 경험했나?
“태풍이 몰아쳐 사과나무들을 쓰러뜨렸다. 낙과 발생이 극심해 팔 만한 게 없었다. 밤낮없이 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하며 울었다.(웃음) 봄철에 느닷없이 쏟아지는 우박, 긴 장마, 겨울 가뭄 등 수시로 악재와 부닥친다. 자연 앞에서 사람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실감하며 산다. 그러나 행복감을 맛보는 때가 아주 많다.”
어떤 때에?
“창밖이 밝아오는 아침에 눈을 뜰 때, 가만히 피어나는 들꽃을 바라볼 때 참 좋다. 밭에서 힘겹게 일하면서도 내가 지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자각을 할 때도 행복하다. 이건 도시에서 가게를 할 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다.”
괜히 시골에 들어왔다는 후회는 없었는지?
“한번은 사다리를 타고 사과나무를 돌보다가 떨어져 발목뼈 세 군데가 부러졌다. 게다가 수술마저 잘못돼 무려 2년간 심한 고생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다. ‘아이고, 내가 왜 시골에 와서 이 고생을 하지?’(웃음) 하지만 잠깐 스쳐가는 후회에 불과했다.”
이미 얻을 건 다 얻었다
그의 농원은 정갈하고 쾌적하다. 2층으로 지은 살림집과 정원 공간, 체험장과 가공공장, 사과와 블루베리 밭, 또는 이리저리 이어지는 통로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돼 조화로운 한편 기능성을 극대화했다. 부부가 쏟아부은 비지땀과 능력과 시간의 산물이다. 농장의 핵심 공간은 체험장이다. 이곳은 급조한 비닐하우스지만 내부 치장이 꽤 흥미롭다. 벽면에 걸린 수예품과 그림들, 선반에 올라앉은 공예품들,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서 재잘거리는 수백 점의 다육식물들. 이것들은 모두 김화자가 손수 만들거나 가꾼 것이라는 점에서 가히 독창적이다. 그는 이곳에서 방문객들을 상대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 농원은 무주군 1호 치유농장이다. 과수 농사만 하다가 치유체험농장으로 전환한 이후 나름의 성장을 해왔다. 체험장에 있는 모든 사물이 치유 프로그램 소재로 쓰인다. 이건 실로 만족스런 대목이다. 나의 취미와 취향을 즐길 수 있는 수단을 프로그램화해 남들과 공유하고 소득까지 올리고 있으니까.”
일과 취미를 접목한 셈인가?
“시골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게 기본 목표였는데 그게 이루어졌다. 처음엔 농사만 했지만 노동만 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취미 역시 제대로 즐겨 삶의 질을 높이고 싶었는데 그게 이루어졌다.”
흔히 원주민이나 귀농인이나 농사에 매몰돼 취미 내지는 문화 활동과 무관한 일상을 산다. 당신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내가 경험한 시골 인심은 정겹고 순박하다. 그러나 평생 호미를 쥐고 사는 할머니들을 보면 안타깝다. 때로 그들을 농원에 모셔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러면 무표정하던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 귀농인들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난 읍내 합창단에 가입해 노래를 즐기기도 하는데, 문화 동아리도 많고 싼값에 볼 수 있는 공연이나 이벤트도 풍성한 게 요즘의 지방이다.”
성공한 귀농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지? 이제 농원에 무엇을 더 보탤 계획인가?
“2023년 매출이 약 9000만 원이다. 이쯤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차후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지을까 생각 중이지만 사실 얻을 건 이미 다 얻었다. 부부가 노후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자식들이 놀러 와 맘껏 놀다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니까. 무엇보다 그토록 바랐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고 있어 기쁘다.”
원했던 곳에서 원했던 삶을 발굴해 지속한다는 건 아마도 인생의 최고봉이다. 섣부른 귀농으로 인생이 외려 꼬이는 수도 있지만 과욕 없는 열렬한 행보라면? 김화자의 방식엔 은근히 개성과 패기가 박혀 있다.
김화자가 주는 귀농 Tip
•마음을 비우고 귀농하자. 꽉 채워진 마음엔 새로운 게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향이나 기질이 농촌 생활과 어울릴지 면밀히 점검하고 귀농 여부를 결정하자.
•귀농 초기의 고생은 통과의례로 여기고 귀농하자. 5년 차까진 수련기로 작정하는 게 현명하다.
•처음엔 집을 빌려 쓰라고들 하지만 아예 내 소유 집부터 짓는 게 좋을 수 있다. 초기의 어려움에 질려 너무 쉽게 역귀농하는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집을 지어놨을 경우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인내하며 활로를 찾아가기도 한다.
•작목은 가급적 지역 특산물을 선택하자. 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생산물 유통의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남자만의 귀농은 금물이다. 부부가 함께 귀농하자.
‘이게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몸 안에 심각한 병이 들이닥쳐 횡포를 부리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정규원(54, 백민구절초연구소 대표)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갖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조만간 죽음이 방문할 듯 몸의 통증이 자심했는데도 말이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과 궁리를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이라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로 한 거다. 시골의 자연환경이 괴로운 육체는 물론 덩달아 저하된 정신까지 끌어올려 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규원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한 건 2010년, 41세의 한창 나이 때였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시즌이었으니 정리가 쉬웠으랴. 만족스럽던 직업(의류 관련 액세서리 사업)을 일거에 접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게다가 그의 곁엔 살뜰한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자식 둘이 있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었다. 과연 아내가 귀농에 동의할지,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하고 귀농할 경우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다. 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혼자 외진 산속에 들어가 쑥이나 고사리처럼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며 병부터 다스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만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귀농을 선창할 경우 일단 반기를 든다. 매우 영민한 종족인 아내들은 날이면 날마다 풀을 뽑다가 뱀을 만나 까무러칠 가능성이 농후한 귀농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원의 아내는 시골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마도 아내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민만큼이나 어려운 역경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귀농이다. 하물며 남편만의 단독 귀농이라면? 이는 가정의 불안정을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경우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정규원의 아내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해 전향적인 판단을 했을 테다. 아내의 대범한 태도에 힘을 얻은 정규원은 마침내 귀농 거사를 착수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를 대동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귀농한 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이다. 이왕이면 아주 낯선 객지보다 연고가 좀 있는 곳이 정착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점찍은 곳이다. 거처는 농촌 마을이 아닌 면 소재지에 마련했다. 초등생 아이들의 등하교 편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귀농 초기엔 건강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텃밭 농사를 통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었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명상센터에 나가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농사에 대한 구상도 많이 했다. 논을 사 벼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쌀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먹자는 아내의 의견에 공감해서였다.”
귀농 전에 미리 받아둔 귀농교육이나 농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나?
“서울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한 귀농교육에 관심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 의왕에 텃밭을 마련해 작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경험치에 불과했다. 사실 계획 없이 막연한 귀농을 한 셈이었다. 건강 문제가 화급해 사전 준비를 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농업만큼 만만치 않은 직업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섣불리 농사에 뛰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농사로 가족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농업에 매력을 느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줄기 동경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농부로서 긍정적인 풍모를 지녔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귀농교육은 귀농 이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를테면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친환경 농업을 기본 방향으로 정한 바 있어 관련 공부를 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등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를 느껴 E-비즈니스 교육도 받아두었다.”
일련의 농업교육을 이수한 뒤 비로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나? 아니면 몸 치유에 치중한 시간이 더 많았나?
“치유와 농사를 병행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도 서서히 좋아졌고, 좋아지는 건강 상태에 따라 농사에 대한 의욕도 상승했으니까. 2013년엔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멧돼지들이 농장을 초토화하기도
정규원이 선택한 주 작목은 구절초다. 구절초를 재배,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그는 산속에 있는 4000평 규모의 구절초 농장을 운영한다. 바야흐로 유능한 구절초 농부로 부상하고 있다. 출발은 미미하고 미묘했다. 할머니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구절초 꽃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200평 남짓한 작은 땅에 구절초를 심은 게 구절초와 인연을 맺은 계기라는 게 아닌가. 일종의 감성적 충동으로 시험 재배 삼아 구절초를 심어봤을 뿐인데 이게 향후의 길을 환하게 열어줬다.
“남에게 빌린 200평짜리 작은 밭에서 거둔 구절초로 조청을 만들어봤는데 50인분 밥솥 하나 분량의 조청이 나왔다. 판매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조청 품질이 좋다며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홍보도 해주었고.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판매 효과까지 거둔 뒤엔 서서히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자연스럽게 구절초 농사에 본격 입문한 셈이다.”
조청만 생산하는 건 아니겠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구절초꽃차, 모종, 체험 상품인 에코화분, 그리고 구절초블랙이라 이름 붙인 농축액 등을 생산한다. 주력 상품은 구절초블랙이다. 이건 유기농 구절초 함량 97%에 달하는 제품으로 나름 야심을 가지고 개발했다. 현재 상표출원 절차를 밟고 있다. 소비자의 80% 이상은 구절초 제품을 약용 목적으로 구입한다. 구절초블랙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구절초 농사 전체 과정 가운데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구절초 역시 제초 작업부터 뭐 하나 손쉬운 게 없다. 재배 기술 습득은 비교적 용이하다. 문제는 날씨 변동이다. 예상하지 못한 폭우와 긴 장마엔 구절초가 맥을 못 춘다. 과도한 습기에 약한 작물이니까. 배수시설을 완비하고 밭에 경사도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도 필요하다.”
흔히 병충해 방제는 농약에 의존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유기농업은 농약 없는 농사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생태환경 유지에 공을 들인다. 난 구절초 농장 복판에 억새섬이라 부르는 작은 숲을 조성해 자연생태와 평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 작은 숲은 병충해의 기습을 완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마귀 알집도 활용한다. 미리 채집한 사마귀 알집을 봄철에 방사하는 것인데, 부화된 사마귀들이 해충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사마귀들이 농장을 지켜준다. 그런데 난해한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멧돼지가 구절초도 먹나?
“구절초를 먹는 건 아니고 땅속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먹기 위해 밭을 아예 농부처럼 갈아엎는다. 한번은 멧돼지 군단이 몰려와 농장을 투철하게 초토화했다. 징을 쳐대고, 포수를 불렀지만 아무 소용없더라. 포수들이 야간 매복을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공격은 한 달간 이어졌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구절초 향수를 개발하고 싶어
농사로 긍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안락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죽하면 귀농을 고행에 견주랴. 정규원은 비지땀 이상의 피땀을 쏟았다. 덕분에 순항을 거듭했다.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알려진 판로 문제도 길을 잘 찾아 해결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관계를 맺어 상품을 납품, 꾸준히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 세상에서 익힌 처신과 경험을 슬기롭게 제련해 귀농 생활의 재료로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 안정적인 행보의 거름이 됐다. 그의 언사는 나직하고 다소 어눌하다. 반면 내부엔 뭔가 강철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기심은 줄이고 이타적 선의를 키워 나아가는 게 삶의 정수를 맛보는 길이라는 신념을 육화한 인간 유형이랄까. 그는 사실상 신념을 밀어붙이며 당찬 귀농 생활을 해왔다. 2013년에 결성한 문화적 농업 공동체인 유기농협동조합에 이어, 2017년엔 경제 공동체인 마을기업 ‘백민구절초연구소’를 만들어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문제는? 여전히 아픈 몸을 고독하게 끌어안고 농장에서 뛰나?
“실로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몸 하나 살려보자고 귀농을 했겠는가? 몸이 추락하자 온갖 회의가 몰려들기도 했다. 이 지경으로 몸을 망쳐놓다니, 난 패배자야! 그런 넋두리가 잦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2017년에 이르러선 병의 늪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된 걸 알았다. 따라서 마을기업 결성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랐다지? 뒷바라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계 형편은 어떤가?
“서울에 있던 집을 판 자금의 절반쯤은 귀농 초기에 다 까먹었다.(웃음) 농업으로 소득을 거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꾸준히 소득이 늘고 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인은 당신의 농사에 어떤 식으로 조력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일이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내이고.”
만약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귀농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잠깐 생각하다가) 일을 좀 줄여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농 방식을 모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내겐 아직 꿈이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과욕과 과속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농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확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구절초 가공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싶고, 구절초의 아찔한 향을 재료로 한 향수 개발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 매너리즘 없는 정신이 그의 돛을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정규원이 주는 귀농 Tip
•집과 농지를 서둘러 구입할 것 없다. 평생의 삶터로 삼을 경우엔 더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남의 농지를 빌려 활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를 크게 설정하는 건 금물이다. 내 농사는 작게, 그리고 남의 일도 도와주면서 농사 물정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농업 교육기관에서 만난 귀농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결국은 귀농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농사만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을 살린 일거리를 만들어 수입을 보완하자.
•구절초 농사에 뜻이 있을 경우 5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판로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필수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로를 모색하자.
산업화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0년대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이용자 13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퇴 후 희망하는 주거 공간 형태는 ‘단독, 다가구, 전원주택, 타운하우스’가 3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아파트’(35.4%), ‘한옥 등 전통가옥’(10.8%)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60대 이상은 10명 중 약 5명이 ‘아파트(44.8)’를 선택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엘리베이터와 같은 이동에 편리한 시설이 있고, 관리 부담이 적은 주거형태를 선호한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적으로 잘 알려진 아파트나 전원주택 외에도 주목할 만한 주거 형태가 몇몇 있다. 실버타운, 시니어타운은 식사ㆍ가사ㆍ의료 서비스 제공은 물론 일상에 필요한 생활 및 여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노후를 보낼 대비책 중 하나로 꼽힌다. 지리적 위치와 생활 환경에 따라 도심형, 도시근교형, 전원형 등으로 나뉘며 가격과 보증금, 입주 조건도 시설별로 상이하다. 최근 서울시 마곡지구 마이스 복합단지 내에 들어설 ‘VL르웨스트’는 좋지 않은 부동산 시장 상황에도 지난 3월 진행한 청약에서 최고 20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공유주택, 집합주택, 컬렉티브 하우스로도 불리는 코리빙 하우스는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한 코하우징(co-housing)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일본과 영국, 독일, 북유럽에서는 이미 주거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집의 모든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셰어하우스와 달리 침실과 같이 개인 공간은 보장받으며 거실, 주방 등을 나눠 쓰는 식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시니어 공동체 주택 여백은 각자의 취향에 맞춘 주거 공간을 갖고 있으며, 공동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입주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관람한다. 여백에 거주하고 있는 김수동 터무늬제작소 소장은 공동체 주택이 이웃 있는 삶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막을 수 있어 노후 주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을 단위의 ‘은퇴촌’도 속속 형성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는 ‘천년 건축 시범마을 조성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에 맞춰 주거, 문화, 사업, 교육 인프라를 마을 단위에 밀집할 계획이다. 시는 10만여㎡ 면적에 100가구 규모 주거시설과 의료, 휴양, 복지시설 등 인근 배후지역의 노인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복합용도 고령친화 시설을 겸비한 휴양형 은퇴촌을 조성한다. 부지에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탄소 마이너스 제로 에너지 주택 △장수의학 클리닉 및 건강검진서비스 등의 고령 친화 시설 △다목적광장 및 스포츠시설을 비롯한 커뮤니티센터 등이 들어선다.
전라북도 순창군도 전북개발공사와 ‘순창형 전원마을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해당 사업은 농촌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도시민과 귀농·귀촌인, 은퇴자 등이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전북개발공사는 사업대상 후보지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후 대상지를 확정하고, 지역주민 의견수렴을 통해 전원주택단지 조성을 본격적으로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육군에서 30년간 복무한 뒤 중령으로 전역한 김준한(63)이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신 귀농한 데엔 그럴 만한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건강을 회복하자!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신념이 그의 푯대였던 것. 인간만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생명체가 드물다. 그러나 육신의 구슬픈 비명 앞에선? 비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자구책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김준한은 귀농을 치유 방편으로 삼았다. 농사에 쏟는 정당한 근로와 산골의 자연환경에 잠재한 갖가지 치료제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보았다. 그가 내심 비상 사이렌을 켜고 찾아든 귀농지는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 산골. 올해로 귀농 12년 차다.
김준한의 거처는 거듭 휘어지는 농로의 끝, 살짝 외진 산기슭에 있다. 머리카락 보일라 장독 뒤에 숨듯이, 야트막한 야산의 품에 폭신하게 안긴 터전이다. 다소 은밀하면서 매우 아늑하다. 이른바 명당이란다. 그는 지관을 대동하고 예천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이곳을 찾아냈다. 처음엔 경기도 양평 지역에서 터를 물색했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지. 그래 고향인 예천에서 정착지를 찾았으며, 용케도 이곳을 발견하고 환호작약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좋은 터와 인연이 되다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는 사람의 기운을 돋우는 땅이 따로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이곳에 살면서 건강을 완연하게 되살렸다. 다시 말해 그에게 풍수는 아리송한 신비주의가 아니다.
여하튼 대뜸 편안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푸른 소나무 즐비한 야산이 두 팔을 벌려 집과 마당을 포옹하고 있으니 산이 보호자 역할을 하는 형국이다. 자연과 교류하며 은연중에 받을 수 있는 ‘인생 레슨’도 많을 환경이다. 이렇게 썩 이상적인 곳에서 김준한은 고독한 ‘나 홀로 귀농’의 막을 올렸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숙식하며 고추, 감자, 옥수수, 고구마, 메밀 등을 심는 것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이후 자두 농사로 전환했다. 사전 준비는 충실했다. 전역 3년 전부터 귀농이라는 거사를 위해 차근차근 대비했다. 중도에 퇴장하는 불상사만큼은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귀농을 하면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하는 전통공예건축학교에 등록했다. 2년간 대목장 신응수 선생의 강의와 실습에 참여해 집짓기의 기본을 배웠다. 전역 직전에 ‘제대 군인을 위한 귀농 교육’도 받았다. 이곳에 내려와서는 예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많은 걸 배웠다. 그 외에도 다종다양한 농업 교육을 받았다. 귀농 교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초심자가 믿을 만한 매우 유력한 기회라 본다. 수년간 열성껏 교육을 받자 마인드 자체가 달라지더라.”
자신감이 붙던가?
“자신감은 물론 성격마저 바뀌는 걸 경험했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쪽으로 변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안도했다.”
흔히들 재배 작목 선정에 귀농 성패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본다. 자두를 주 작목으로 정한 이유가 있겠지?
“처음엔 채소류를 소소하게 길렀으나 포기하고 자두 농사 하나에 집중했다. 집 앞의 밭 450평을 자두 과수원으로 꾸린 게 출발점이었다. 애초 블루베리 농사를 구상했었다. 그런데 예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류했다. 가격변동이 심해 안전하지 않은 작목이라는 얘기였지. 그러면서 권장한 게 자두였다. 이건 예천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라서 유리한 요소가 많다는 설명에 이끌려 자두 농사에 뛰어들었다.”
귀농 이후 10여 년째 자두 농사만 하고 있다. 좋은 선택이었나? 아무리 작목 선정을 잘하더라도 이상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게 농사인데.
“주변을 보면 귀농에 실패하고 역귀농을 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그 원인 중에 가장 큰 건 영농 실패이며, 이는 주로 작목 선택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난 매우 좋은 선택을 한 셈이다. 자두의 전망이 좋아 농장을 2300여 평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혼자 능히 운영할 만한 이상적인 규모라 생각한다.”
소득은 어느 정도 올리나?
“연매출 평균이 3500만 원 내지 4000만 원이다. 이 중 순소득은 70% 정도다. 물론 날씨에 따른 기복은 있다. 어느 해엔 너무 이르게 내린 서리 피해로 매출 제로를 경험하기도 했다. 자두나무 하나에 온전히 남아난 자두가 겨우 두어 개에 불과했다. 난 흙의 진리를, 땀 흘린 만큼 대가가 돌아올 거라는 진실을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자두 농사는 여느 작물에 비해 장점이 많아, 심지어 고행에 가깝다는 귀농 생활을 무난하게 이끌어왔다.”
스트레스 사라지자 건강도 좋아져
김준한의 귀농 이력은 어언 12년 차. 10년이 지나고서도 수렁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는 귀농인들이 숱하지만 그의 자두 농사는 일찌감치 궤도에 올라섰다. 온갖 교육을 섭렵하면서 얻은 식견, 날이면 날마다 농장으로 달려가는 근면성, 그리고 자두나무의 비위를 맞출 줄 아는 머리와 감성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대단한 매출은 아니지만 혼자 생활하기엔 섭섭할 게 없는 수입이라, 이쯤이면 자리가 잡힌 거라고 그는 자족한다. 무엇보다 귀농 목적을 이미 완수했다는 점이 그는 기쁘다. 농업 수익보다 건강 회복을 목표로 한 귀농이었는데 서서히 건강이 좋아지더라는 게 아닌가.
마음은 물론 몸이 아플 때 삶이 비로소 소중하게 다가온다. 따라서 아픔이, 고통이 지름길로 데려다준다는 소식이 고래(古來)로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쏟아진다. 불굴의 의지로 병든 몸을 추슬러 농사는 물론 건강까지 부양한 김준한의 행장은 고통을 차라리 견인차로 삼아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삶의 묘미를 웅변한다. 그는 중증 당뇨병으로 고초를 겪었으나, 어라, 농사에 병약한 육신을 투입하자 바뀌었다.
“오죽 암담했으면 아내의 격렬한 반대를 외면하고 달아나듯이 홀로 귀농을 했겠는가. 당수치가 600까지 올라가면서 시력이 나빠져 실명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도수 높은 안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서서히 당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안경을 벗었다. 당뇨병은 물론 전반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건강 상태가 현저하게 좋아졌다.”
귀농의 무엇이 치유 효과를 가져왔다고 보나?
“내 병은 군대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누적에서 온 것이었다. 지시가 주어지면 임무 기간 안에 종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매우 컸다. 이건 고질적인 것이었으나, 정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조용한 산골로 귀농하면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됐다. 깨끗이 벗어났다. 과도한 노동이 필요하지 않은 소규모 농사라서 즐거운 기분으로 일했던 점도 몸을 정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좋은 공기와 물, 산야에 흔한 약초와 나물들을 섭취한 것도 득이 된 것 같다.”
일취월장일까? 이젠 예천 관내에서 알아주는 농가로 부상했다지?
“자두 농사에 관한 한 달인 소리를 들을 때가 됐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오는 농부들도 많다. 자두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배 시설인 ‘Y자 다주지 방식’을 공부하러 오는 이들이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Y자 다주지 방식’은 Y자 파이프 프레임에 자두 가지들을 가지런히 펼쳐 재배하는 기술로, 자두 생산량이 최대 5배에 달하는 등 이점이 많다. 그는 이미 안전한 수준에 올라선 탄력으로 머잖아 매출이 더욱 늘 거라 예측한다. 귀농 이후 드센 파도를 겪는 일 없이 행진해왔으며, 향후 탕탕 질주할 가능성이 열렸다고 상황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과욕을 경계한다. 돈 버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스스로 분수를 가늠해 매사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을 꾸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게 귀농의 목적 중 한 가지이기도 했다. 그리 살자고 집도 자그맣게 지었다. 흙과 나무로 지은 15평짜리 한옥이다.
“자금 사정도 고려했지만 소탈하게 사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간소하게 지었다. 내가 도연명을 좋아한다. 그의 ‘귀거래사’를 보면 소박한 생활 정경이 나오더라. 작은 초가를 짓고, 작은 텃밭을 만들고, 뜰엔 복숭아와 자두나무를 심어 자족하는 옛사람의 모습에서 감흥을 느꼈다. 감히 위인을 흉내 낼 수야 없지만, 나 역시 소소한 것에서 만족을 누리는 삶을 맛보고 싶었다.”
손수 집을 지었다지? 한옥 건축엔 까다로운 공정이 많은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게다가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미장이나 조적 등 난해한 부분은 기술자를 불러 썼다. 하지만 설계 초안을 비롯해 많은 부분을 직접 처리했다. 원목 껍질을 벗기고 대패질을 해 서까래 164개를 손수 만드는 식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업자에게 맡기면 두 달 안짝에 완공하겠지만 난 2년 반 만에 완료했다. 실로 고달팠다. 그런데 집을 완성하자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일이?
“아내가 비로소 나의 귀농에 동의를 표했다. 애초 귀농의 ‘귀’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던 사람인데 집 지은 걸 보고 생각이 바뀐 것이지. 내가 귀농한 후 이곳에 아예 오질 않았던 아내였으나, ‘이젠 주말마다 내려오겠다!’고 하더라고.(웃음) 비로소 어둡고 추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그의 아내는 안양시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한다. 남편의 도발적인 귀농에 오만정이 떨어졌었나? 빗장을 건 마음을 풀어놓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 셈이다.
애당초 한결 매력적인 설득과 회유로 부인과 동행하는 귀농을 할 수는 없었을까? 인생의 가을에 부부가 유유상종하며 흘러가는 모습처럼 진실한 드라마가 드문데.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낄 따름이다. 병을 안은 채 농사와 집짓기를 함께 했던 초기 2, 3년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내가 자청한 지옥이다. 그런데 아내가 건져준 게 아닌가. 머잖아 아내는 퇴직한다. 이후엔 이곳에 내려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아진 나이다. 귀농 12년 세월을 낭비라 느낀 적은 없었나?
“시간을 아껴 쓰며 살았다. 덕분에 건강을 되살렸고, 아내의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겠나? 이 정도에 만족한다. 더도 덜도 필요 없다는 거.”
더도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인생을 통째 긍정하는 짧은 언설이 바윗장처럼 묵직하다.
김준한이 주는 귀농 Tip
•귀농으로 낭만적인 전원생활이 가능할 거라는 환상을 버리자. 이상향의 크기를 줄이라는 얘기다.
•기술집약적이고 소득 수준이 높은 작물을 찾아내자. 그러자면 갖가지 귀농 교육을 충실히 받아 물정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귀농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기 자본 투자에 무리하지 말자. 길게 보고 서서히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스컴이 떠드는 귀농 성공 사례를 그대로 믿지 마라.
•혼자 하는 과수 농사의 경우 2000평 규모가 적당하다.
•농업 장비들은 가급적 임대해 사용하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다.
•잦은 음주는 금물이다. 무질서와 방황의 첩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을 꿈꾸지만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특히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 귀농·귀촌 인구 증진에 힘쓰고 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 지정 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귀농, 귀산촌, 귀어로 세분화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정부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인구가 농가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이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농지와 농가주택 마련 방법, 작물 재배 방법, 판매와 홍보 방법 등을 배운다. 귀농·귀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귀농과 귀촌, 뭐가 달라?
귀농 농어촌으로 이주해 농·어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것.
귀촌 농·어업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전원생활 등을 이유로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것.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채우기
농림축산식품부(농정원 포함), 농촌진흥청, 산림청 및 지자체가 주관 또는 위탁하는 귀농·영농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하면 된다. 단,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주관하는 농업교육포털(www.agriedu.net)에 등록된 교육 이수와 수료증만 인정받을 수 있다.
때문에 귀농·귀촌을 희망한다면 농업교육포털 가입과 이용은 필수다. 온·오프라인 교육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온라인 교육은 참여 시간의 50% 범위만 인정해주며, 최대 40시간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즉 온라인 교육으로 최대 40시간을 인정받으려면 80시간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프라인 교육을 60시간 이상 들어야 100시간을 채울 수 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각 지자체에서는 1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했는지, 농지원부·농업경영체에 등록된 주 경작자인지, 생산물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췄는지, 경작 규모가 기준 이상인지 등의 조건을 충족한 경우 자금을 지급한다.
대표적인 혜택은 농업 창업자금과 주택 구입자금 지원이다. 농업 창업자금은 대출 한도 3억 원 이내에서, 주택 구입자금은 7500만 원 이내에서 가능하다. 대출 금리는 연 2% 고정 또는 변동금리이며, 대출 기간은 15년 만기다.
농업 창업자금은 농지 구입, 온실·하우스·저장 시설 설치 및 구입, 농기계 구입, 농식품 가공시설 설치, 축사 구입 등을 지원한다. 주택 구입자금은 주거 전용면적 150㎡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지자체마다 귀농·귀촌지원센터, 아카데미 등이 있을 정도로 귀농과 관련된 교육 과정은 많고 다양하다. 그중에서 시니어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교육 과정을 꼽아봤다.
귀농·귀촌 맞춤형 교육
전직 창업농 교육은 40·50세대를 대상으로 하며, 농업인으로서 삶과 변화 관리, 농산물 유통 전략, 농촌에서의 가족 생활 등에 대해 배운다. 은퇴 창업농은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농촌에서의 보건의료, 자산관리와 재테크 등을 배울 수 있다.
농업 일자리 체험 교육
농업·농촌 이론 교육 5일, 농작업 실습 교육 5일로 구성되며, 총 80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지자체마다 교육이 진행 중이다. 교육비는 국비 100%로 무료다.
지자체 귀농학교
봉화비나리귀농학교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교다. 봉화의 주요 농산물인 사과, 고추, 수박 등에 대한 농사 기술과 현장실습 위주로 교육이 진행된다. 5박 6일 과정이며, 60시간 인정된다. 현재 8월, 9월, 10월 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창녕생태귀농학교 매년 200명의 수강생이 거쳐가는 곳이다. 8월 26일부터 10월 28일까지 9주 동안 100시간의 교육이 진행된다. 귀농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농장 견학과 체험을 할 수 있다.
임업(林業) 관련 일을 하는 귀산촌은 귀농 안에 속하고, 농업교육포털에도 교육 과정이 등록돼 있다. 다만 귀농은 농업진흥청이, 귀산촌은 산림청이 주무 관청이자 지원기관이다.
귀산촌은 행정적으로 산림기본법상 산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산림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산림 관련 커뮤니티 활동이나 생활·생업을 위해 산촌으로 이주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전원생활, 나무·열매·버섯류·산나물류·약초류 등의 임산물 재배, 산촌 유학, 체험농장 운영, 농·임산물 유통 등의 일을 한다.
임업후계자 교육
임업후계자 교육은 예비 귀산촌인을 위한 대표적인 교육이다. 임업후계자란 임업의 계승·발전을 위해 임업을 영위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산림청 소속 기관인 산림교육원과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청과 함께 귀산촌 교육을 기획·운영하는 곳으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귀산촌 아카데미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무료 공개 강좌로 귀산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더불어 산양삼과 산나물 재배기술 과정도 진행한다.
경남귀산촌학교 퇴직 후 제2의 삶을 찾는 사람,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귀산촌 정착에 관련한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농장디자인 과정, 산림경영 과정 비대면 교육도 있으며, 6월에는 야생화 소득증대 과정 교육이 열린다.
귀어업인은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어업인이 되기 위해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을 의미한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어촌어항공단이 귀어귀촌종합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마다 귀어귀촌지원센터가 있다.
어촌에서 어업, 양식업을 희망하는 이들은 3단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먼저 이론 교육을 받고, 이어 단기 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업, 양식업 분야 현장견학 및 체험 위주의 단기 기술 교육으로 창업 업종을 선택하기 전 다양한 어업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그 다음에는 장기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촌에 임시로 거주하며 어업, 양식업 기술 등을 배우는 교육이다. 귀어학교를 통해 교육받을 수 있다.
귀어학교
이론부터 실습, 어업 소득 기반 실현을 위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는 장기 실습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귀어학교는 경상남도 귀어학교로, 2018년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천시에서 8번째 귀어학교가 개교한다.
인천시 귀어학교 2023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으로, 연간 80여 명의 수산 전문 인력을 배출할 계획이다. 어업과 양식업을 포함해 어촌 관광·서비스업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어촌체험휴양마을
본격적으로 귀어업인이 되고자 마음먹기 전, 어촌체험휴양마을을 찾는다면 어촌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어촌체험휴양마을은 어업 체험을 중심으로 어촌 자연환경과 생활문화 등을 연계해 관광 기반시설을 조성한 곳이다. 현재 전국 121곳의 어촌마을이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남해 문항어촌체험마을 우럭조개잡이, 쏙잡이, 개막이 체험, 자연산 돌굴까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울산 주전어촌체험마을 육지에서 유일하게 30년 이상의 베테랑 해녀 선생님들로부터 물질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해녀 밥상 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스킨스쿠버, 투명카누도 즐길 수 있다.
홍현섭(65) 씨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40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5년 전 연천으로 귀촌했다. ‘은퇴 후 시골살이’라는 꿈을 이룬 홍현섭 씨는 자연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다.
홍 씨는 연천 통일교육원에서 조경기능사 교육을 진행한다는 정보를 듣고, 귀촌 생활에 도움을 얻고자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간 수업이 진행됐고, 홍현섭 씨와 같은 50·60대들이 모여 열정을 불태웠다.
홍 씨는 조경기능사 자격증 취득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필기시험 공부를 하면서 두뇌 회전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그는 “나이 먹어서 공부하는 게 참 힘들더라. 공부는 때가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라고 말했다.
“책도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시험 문제들이 쉽지가 않아요. 나무 종류는 물론 열매 색깔, 꽃 색깔 등을 다 외워야 해요. 문제는 열심히 공부해도 다음 날이 되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죠. 필기시험 합격률이 40%대라고 하던데, 60대는 30%도 안 될 것 같아요.”
실기시험도 60대인 그에게는 쉽지 않았다. 1차 시험은 설계 도면 그리기인데, 홍현섭 씨는 “눈이 잘 안 보여서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2차는 수목 감별, 3차는 작업형 시험이다. “3차 시험은 나무 식재, 수관 주사 놓기, 벽돌 포장 등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농사지으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쉬웠다”고 그는 덧붙였다.
홍현섭 씨는 조경기능사 공부를 하면서 배운 바가 많다고 했다. 특히 귀촌인으로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그는 “마당에 여러 나무를 심어놨는데,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병든 가지, 파고드는 가지마다 전정(가지 잘라주는 일) 방법이 다 다르더라. 비료 주는 것도 다 때가 있고 요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는 체계적으로 나무 관리를 해야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홍현섭 씨는 연천에 국립연천현충원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0만 평 규모라고 하는데, 조경 쪽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꽤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자신에게 맞는 일이 있다면 일을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조경기사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홍현섭 씨는 자신처럼 귀농·귀촌을 하고 싶은 50·60대에게 조경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귀농·귀촌해서 전원주택 짓고 살고 싶은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는 모든 것의 마무리는 조경이라고 생각해요. 잔디와 나무를 잘 가꿔놓으면 집이 더욱 멋있어 보이죠. 그래서 저는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경기능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더라도 자격증을 따놓으면 쓰일 곳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니어 잡]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직업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경기능사는 중장년층의 유망 직업으로 떠올랐다. 특히 ‘2020년 국가기술자격 통계연보’에 따르면, 조경기능사는 60대가 가장 많이 취득한 국가자격증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전문가들은 조경기능사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현재 1위인 지게차기능사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경기능사는 단순하게 나무를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각보다 조경은 폭이 넓은 개념이고, 예술성과 과학성을 동반하는 일이다. 조경은 사전적으로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로 정의되어 있다.
조경기능사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할까. 조경설계 도면 작성과 함께 조경공사 시공에 따라서 지반 고르기, 나무 심기, 시설물 설치 등의 실무적인 업무를 주로 한다. 또한 조경 수목과 조경 시설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조경기능사의 진로와 전망은 무궁무진하다. 조경 식재 및 조경 시설물 설치공사업체, 공원·학교·아파트 단지 내부의 관리부서, 재배업체 등 다양한 곳으로 취업할 수 있다. 정원사로 활동도 가능하다. 정원사는 특별한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지만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하면 경쟁력을 갖게 된다.
중장년 취업, 빛과 그림자
조경기능사 자격은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환경 파괴로 환경 복원과 주거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입됐다. 자연 파괴, 대기·수질오염 및 소음 등 각종 문제는 점점 심해지고 있어 조경기능사에 대한 인력 수요는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도 한 해 조경기능사 자격증 취득자는 5000~6000명에 이른다. 특히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새롭게 갖고자 하는 5060세대가 자격증을 많이 취득하는 추세다. 5060세대가 조경기능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년이 없고, 기술을 배워두면 계속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경기능사 자격증 취득자가 워낙 많이 배출되고 있어 변별력이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고, 임금도 최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단 관리 일을 맡게 됐다고 하면, 화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설계는 조경기사나 조경산업기사가 한다. 결국 조경기능사는 나무나 꽃을 관리하는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실무 경력을 쌓아 기사나 산업기사가 될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업무와 보수 모두 안정적이다.
한편 중장년층은 꼭 조경 일을 원해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다른 일로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나 시설관리 쪽 일을 원하는데 조경기능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우대 조건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은퇴 후 베란다 혹은 텃밭의 농식물 관리를 제대로 해보려는 사람들이나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도 자격증을 많이 취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경에 대해 이해하고 농업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자격증 취득 과정
조경기능사는 국가기술자격증으로 1년에 4번 응시가 가능하다. 응시 자격에는 제한이 없다. 연령, 학력, 경력, 성별, 지역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필기와 실기시험이 진행되며, 둘 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아야 합격한다.
흥미로운 점은 필기와 실기시험의 합격률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조경기능사의 필기시험 합격률은 2018년 42%, 2019년 40.7%, 2020년 46.4%다. 반면 실기시험 합격률은 2018년 90%를 넘어섰다. 2020년 합격률도 90.8%였다.
이는 필기시험이 까다롭다는 의미다.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반드시 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 특히 중장년층이 시험에 많이 응시하는데, 암기해야 할 것이 많아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필기시험은 조경설계, 조경시공, 조경관리 총 3과목을 본다. 올해 시험 과목이 변경됐기 때문에 수험생은 달라진 점을 파악하고 정리해두는 것이 좋겠다. 객관식 사지선다형, 총 60문제가 나온다. 시험 시간은 1시간이다.
실기시험은 조경설계 도면 그리기(50점), 수목 감별(10점), 작업형 2종류(40점)로 구성된다. 1일 차에는 조경설계 도면 그리기와 수목 감별을 3시간 동안 해야 하며, 2일 차에는 작업형 10종 중 2가지를 임의로 선별해 실기시험을 치른다.
50·60대 교육의 장 활짝
지자체에서 조경기능사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 수요를 반영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연천군 통일평생교육원은 매년 조경기능사 국가자격증 과정을 진행한다. 교육 대상자는 50·60대 20명이다. 체계적인 교육으로 수강생들의 자격증 취득을 돕는다.
경상남도 함안군은 50대의 제2인생 설계를 위한 조경기능사 자격 과정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 대상을 50대(1961~1972년생)로만 한정해 눈길을 끈다. 충청남도 보령시는 도시농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조경기능사 자격 대비반을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조경 관련 과정평가형 국가기술자격 교육·훈련이 가능한 곳으로 총 513개 기관, 1522개 과정을 선정했다. 이 중에서 조경기능사는 20개 기관 38개 과정이 선정됐다.
‘과정평가형 국가기술자격’은 실무 중심 교육·훈련 과정 이수 후 평가를 거쳐 합격 기준을 충족한 사람에게 국가기술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조경기능사 자격은 400시간의 교육·훈련을 이수한 후 1차 객관식 및 주관식 필기시험(배점 40%), 2차 작업형 실기시험(배점 60%) 평가를 받고 취득할 수 있다.
지난 5월 고령농업인의 노후보장을 위한 농지연금이 가입 2만 건을 돌파했다. 특히 올해 2월부터는 가입 연령이 기존 65세에서 60세로 낮아지며 가입률이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농지연금은 비슷한 구조의 다른 금융 상품에 비해서도 매력적인 노후 준비 수단”이며 “가입 연령과 담보 가치가 동일할 때 농지연금이 주택연금보다 더 많은 월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귀촌을 계획하는 중장년이라면 꼭 염두에 둘 농지연금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보자.
‘농지연금’은 만 60세 이상 고령농업인인 소유한 농지를 담보로 일정 생활자금을 매월 연금처럼 지급하는 제도다(농림축산식품부). 가입자가 사망 시 담보 농지를 처분해 연금으로 지급됐던 채무를 상환하는 방식이다. 농업인의 노후 생활안정 지원과 농촌사회안전망 확충 및 유지를 위해 2011년부터 시행돼, 꾸준히 가입자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제도의 이점을 살려 노후를 준비하려는 귀농 은퇴자가 증가하며 그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농지연금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9%가 해당 제도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2018). 그 이유로는 ‘노후생활이 여유로워져서’(30.5%), ‘연금을 받으면서 농지도 활용할 수 있어서’(25.6%) 등을 꼽았다. 실제 농지연금 2만 번째 가입자는 경기도 가평군에 사는 60대 김광식 씨로 ‘전후후박형 상품’에 가입해 향후 초기 10년간 월 234만 원을, 이후로는 월 164만 원을 받게 된다. 김 씨의 경우 연금 수령과 함께 해당 농지를 직접 경작할 수도 있지만 임대를 통해 추가 소득을 올리기로 했다. 이처럼 연금을 받으면서 담보 농지를 계속 경작하거나 임대하여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밖에 장점들도 쏠쏠하다. 정부예산을 재원으로 정부에서 직접 시행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농지연금지키미통장’에 가입하면 월 185만 원까지 압류위험으로부터 연금을 보호받는다. 만약 농지연금을 받던 농업인이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승계하면, 배우자의 사망 시까지 계속해서 농지연금을 받을 수 있다(단, 신청 당시 배우자가 60세 이상이고 연금승계를 택한 경우에 한함). 또, 연금 채무 상환 시 담보 농지 처분으로 상환하고 남은 금액이 있다면 상속인에게 돌려주고, 부족하더라도 더 이상 청구하지 않는다. 아울러 6억 원 이하 농지는 재산세가 전액 감면, 6억 원 초과 농지는 6억 원까지 감면받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가입 조건 및 연금 지급 방법
농지연금에 가입하려면 농지은행 또는 농지연금 포털(인터넷)에서 접수 신청을 하고, 이후 공사 직원의 연락을 받아 절차를 따르면 된다. 가입 조건으로는 크게 가입자의 연령, 영농 경력, 농지 상태 등을 본다. 가입 연령은 신청연도 말일 기준으로 농지 소유자 본인이 만 60세 이상(2022년 기준 1962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이라야 가능하다. 기간형 상품의 경우 지급방식에 따라 일정 연령 이상 시 신청할 수 있다. 영농 경력 조건은 신청인의 영농 경력이 5년 이상이며, 이는 신청일 직전 계속 연속적일 필요는 없으며 전체 기간 중 합산 경력이 5년 이상이라면 만족한다. 이는 국민연금보험료 경감대상농업인 확인 서류 등으로 알 수 있다.
끝으로 대상 농지의 경우 다음의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농지법 상의 농지 중 공부상 지목이 전·답·과수원으로써 사업대상자가 소유하고 있고 실제 영농에 이용되는 농지 △사업대상자가 2년 이상 보유한 농지 △사업대상자의 주소지를 담보농지가 소재하는 시·군·구 및 그와 인접한 시·군·구 내에 두거나 주소지와 담보농지까지의 직선 거리가 30km 이내의 지역에 위치하는 농지 △저당권 등 제한 물권이 설정되지 않은 농지(단, 선순위 채권 최고액이 담보농지 가격의 15% 미만인 농지는 가입 가능) △압류·가압류·가처분 등의 목적물이 아닌 농지.
연금 지급 방법은 크게 종신형과 기간형으로 나뉜다. 종신형은 사망까지 연금을 수령하는 것이며, 기간형은 설정 기간 동안 연금을 수령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종신정액형(가입자 또는 배우자 사망시까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 △전후후박형(가입초기 10년 동안은 정액형보다 더 많이, 11년째부터는 더 적게 받는 유형) △수시인출형(총 지급 가능액의 30%이내에서 필요한 금액을 수시로 인출할 수 있는 유형) △기간정액형(가입자가 선택한 일정기간 동안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받는 유형, 5년·10년·15년) △경영이양형(지급기간 종료 시 공사에 소유권 이전을 전제로 더 많은 연금을 받는 유형) 등이다.
김은혜 NH WM마스터즈 전문위원(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은 “농지연금 가입 초기 자금 수요가 많거나 보다 여유롭게 노후를 시작하고 싶다면 ‘전후후박형’을, 병원비나 자녀 결혼비용, 부채상환 등 긴급 자금 용도로 목돈이 필요하다면 ‘일시인출형’을, 농사를 접고 은퇴를 고려하는 농업인이라면 ‘경영이양형’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추천했다. 이어 “농지연금 가입 후 농지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가입 시 정해진 금액을 평생(또는 일정기간) 지급 받기 때문에, 농지 가격이 높을 때 가입하는 것이 좋다. 혹여 담보 농지 처분 금액이 채무상환금액보다 부족하더라도 따로 청구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채무를 상환하면 농지연금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담보 농지 가격이 크게 올라도 문제없다”고 조언했다.
내가 받을 농지 연금은 얼마일까?
농지연금 월지급금은 가입 연령이 높을수록, 담보농지 평가 가격이 높을수록, 연금 지급 기간이 짧을수록 더 많이 받게 된다. 만약 가입자보다 배우자가 연령이 적다면, 배우자의 연령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담보농지 평가 가격은 개별공시지가 100% 또는 감정평가 90% 가운데 선택 가능하다. 단, 농지연금 월 지급금은 최대 300만 원까지며, 담보 농지 평가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면 전체가 아닌 일부 필지에 대해 담보를 설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년퇴직 후 다시 일하고 싶은데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고 받아주는 곳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고양시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죠. 면접 본 곳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60대 여성 구직자)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꽃전시장에서 ‘Bravo! 2022 고양시 중장년일자리박람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경기 고양시와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규모 중장년일자리박람회로서, 이날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중장년의 시민 대부분이 박람회 현장을 찾은 이유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는 온·오프라인 동시에 개최됐다. 앞서 고양시는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박람회 홈페이지에 마련된 ‘온라인 채용관’을 통해 이력서 사전 접수를 진행했다. 미처 접수하지 못한 이들은 현장에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중장년층은 온라인에 취약한 세대이기 때문에 사전접수 인원보다 현장접수 인원이 두 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관계자는 “사전 접수를 하신 분들은 미리 회사에 대해 파악하고 면접 준비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준비된 느낌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접수를 한 시민들은 “마트에 가다가 안내문을 보고 오게 됐다”, “평소처럼 산책하던 길에 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우연히 들르게 됐다. 구직 활동도 하고 다양한 체험도 하게 되어서 좋다” 등 다양한 사연을 전했다.
이날 현장면접 기업은 총 29개사, 이력서 접수대행 기업은 5개사였다. LG이노텍, 쿠팡, 맥도날드 등 대기업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현장면접은 구인기업 인사담당자와 구직자의 1:1 면접으로 진행됐다. 중장년층이 대상인 박람회인 만큼 채용 직종은 생산직, 물류직이 대부분이었다.
인사담당자는 채용과 관련해 “아무래도 경력이 있거나 관련 기술을 보유한 분을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라면서 ”지원자분들의 역량이 우수해 선발에 있어 고민이 많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장면접관에서는 특정 기업들에 지원자들이 몰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중장년층의 기업 선호 경향과 관련해서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원자분들은 급여가 높은 업무를 선호하신다. 스케줄 근무는 주말에도 일할 가능성이 있어서 여성분들이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식품 생산직 근로자를 뽑는 ‘더채움’, ‘뜨레봄’은 지원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무역사무원을 채용하는 주식회사 ‘씨에어허브’의 인기도 뜨거웠다. 한 관계자는 “씨에어허브는 올해 처음 함께한 기업인데, 사무직을 뽑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세 회사 모두 2명을 채용한다고 했는데, 지원자는 몇 십 배에 해당했다.
반면 마을버스 운전원, 지게차 운전원 등 해당 분야의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기업은 지원자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었다. 안내문에는 경력 무관으로 적시 되어 있지만 실무 경력이 없거나 적성이 맞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 취업클리닉관에서는 일자리 상담은 물론 이력서 작성 및 면접 기술 등에 관한 컨설팅이 시행됐다. 잡(JOB)학다식관에서는 일자리유관기관에서 진로설정을 위한 직업훈련과 기업지원정책, 생애설계 등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가 하면, 이번 중장년일자리박람회의 차별점은 현장 면접 50%, 진로 상담 50%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은퇴 후 제2의 직업을 갖고자 하므로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기를 원하는 중장년층을 위해 이 같이 구성됐다.
특히 4차산업의 도래에 따라 미래유망일자리관이 마련됐다. 드론교육지도사, 도시농업관리사, 유튜브 크리에이터, 병원동행매니저 현직자가 참석해 시민들에게 멘토링을 해줬다.
드론교육지도사 현직자로는 위즈윙의 곽승계 대표가 참석했다. 그는 50+센터 등 드론교육지도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중장년층도 채용 수요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관리사는 베란다, 텃밭 등에 농작물을 심는 것도 포함되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직업이다. 9종의 국가기술자격증 중 하나를 취득하거나 도시농업전문과정을 이수하면 도시농업관리사로 인정받게 된다. 자격을 갖추는 것도 쉽고, 취미를 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에 중장년층에게 특히 추천된다.
또한 귀농귀촌귀어관과 창업관에서는 상담과 지원제도에 대해 알려주고 성공 멘토도 이야기를 전했다. 아울러 고양시통합일자리센터의 신중장년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한 강사스쿨 1기생들의 발표회와 일자리와 관련된 메타버스 체험 등 부대 행사도 참가자의 흥미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