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그만둔 사람은 20세든 80세든 늙은 것이다. 계속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남긴 말이다. 반갑게도 우리가 배움을 통해 젊어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지역마다, 기관마다 중장년 대상 교육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배움의 달 3월,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참여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다시 가는 학교 ‘캠퍼스형 교육’
과거 중장년 대상 교육기관이 적었을 때는 지역 동사무소나 노인복지센터 등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는 캠퍼스 형태의 교육기관들이 생겨나면서 더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캠퍼스’라는 명칭이 주는 낭만과 로망은 덤이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민대학’에서는 3월 초부터 수강생을 모집해 4월부터 1학기를 시작한다. 3월에 1학기를 시작하는 일반 대학이나 평생교육원의 수강신청을 놓친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서울시민대학은 중부권 캠퍼스(종로구), 동남권 캠퍼스(강동구), 모두의학교 캠퍼스(금천구) 등 세 곳을 운영한다. 체계적이고 폭 넓은 교육 콘텐츠를 통해 서울시민의 미래 역량 개발과 평생학습을 지원하며 지난 한 해 동안 1만6693명의 참여자가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했다. 2023년 서울시민대학 정규강좌 학습자 중 대다수(92%)가 40대 이상 중장년·노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인 학습자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94% 이상)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개발된 ‘인생디자인학교’ 모델을 바탕으로 ‘라이프스킬 살롱’과 ‘프로젝트 실험실’ 과정에 참여할 중장년을 모집한다. 생애 맞춤형 경제 진단 및 핵심 경제역량 개발을 위한 ‘중장년 맞춤형 경제교실’도 선보일 계획이다. 공원·궁궐·박물관·미술관 등을 활용한 중장년 맞춤 문화‧여가 교육 프로그램도 상시로 제공한다.
교육을 통해 일자리 탐색 및 재취업 기회를 노린다면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경력설계 및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자.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은평구), 중부캠퍼스(마포구), 남부캠퍼스(구로구), 북부캠퍼스(도봉구)에서 매월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신중년 채용 트렌드 이해와 구직 서류 작성법, 유망 직종 자격증 활용 가이드, 스마트폰을 활용한 구직 방법 등 재취업에 도움 되는 알찬 강좌들이 마련돼 있다. 아울러 올해 3월 4일부터는 ‘디지털 직무역량개발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교육은 4월 또는 5월에 진행되며, 수강료는 2만~3만 원대로 부담 없는 가격이다. 선착순으로 모집을 마감하니 배우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모집 일정을 잘 기억해두고 서둘러 신청하자.
시공간 제약 없는 ‘온라인 교육’
코로나 팬데믹 사태 이후 교육 현장의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 교육 활성화다. 주로 오프라인 강좌에 머물던 중장년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단시간에 이뤄진 것이다. 이에 발맞춰 중장년들도 빠르게 비대면 교육 프로세스에 적응해나갔다. 학위 취득을 위해 온라인 교육 기반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나 사이버대학에 입학하기도 하지만, 유튜브나 온라인 지식 채널 등을 통한 학습도 활발해진 편이다.
온라인 강좌 서비스 플랫폼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케이무크’(K-MOOC, Korea Massive Open Online Course)다.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어디서나, 원하는 국내 유수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서비스다.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기존의 온라인 교육과 달리 교수자와 학습자, 또는 학습자 간 질의응답, 토론, 과제 제출 등 양방향 학습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수강인원 제한이 없고, 모든 강좌가 무료라는 장점도 있다. 인문·사회·예체능 강좌를 비롯해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매치업’(Match業)과 취업역량 강화 강좌, 해외 강좌 등 수백 개의 콘텐츠가 제공된다. 평가인정 학습 과정으로 승인받은 일부 강좌는 이수 후 학점은행제로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국가평생학습포털 ‘늘배움’에서도 온라인 학습이 가능하다. 공공·유관기관 및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개발한 동영상 평생학습 콘텐츠로, 사이트에 올라온 강좌 수만 3000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학습목적별(취업·창업, 외국어, 자격증, 인문·교양, 건강·의료 등), 학습분류별(학력보완, 직업능력, 문화예술, 시민참여 등) 검색을 통해 원하는 교육을 찾아보면 된다. 늘배움 온라인 교육에 대한 학습 결과를 평생학습계좌제와 연계해 체계적으로 학습 이력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고용 정보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서울시평생학습포털’을 찾아도 좋다.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서울시민대학 프로그램 신청도 가능하다. 프로그램 수료 후에는 서울 시장명의의 수료증도 발급된다. ‘e학습여행’ 메뉴에서는 외국어, 자격증, 창업 등의 강좌를 들을 수 있다. 일자리에 관심 있다면, 중장년 특화 온라인 과정을 눈여겨볼 만하다.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서울런 4050’의 일환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고품질의 인기 온라인 강좌를 매우 저렴하게 임차하여 제공한다. 일단 할인된 가격으로 강좌를 결제한 후 강좌를 수료하면(진도율 70% 이상) 자부담 금액을 100% 환급받을 수 있다. 중장년 특화 온라인 과정은 올해 2월 19일 시작해, 연말인 12월 15일까지 수강 신청이 가능하다. 창업, IT 개발, 영상 제작, 마케팅 기법 등 직업전환 및 역량강화 교육부터 유튜버·쇼핑몰 등을 통한 부가수익 창출 강의까지 다채롭게 마련돼 있다.
2023년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 치매 환자도 함께 늘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치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인지훈련을 통한 예방이 중요한 이유다. ‘기억산책’은 기관 종사자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어르신의 인지훈련을 도울 수 있도록 통합 관리 솔루션을 제시한다.
기억산책은 씨투몬스터(C2MONSTER)에서 제작한 통합형 인지훈련 프로그램 관리 솔루션이다. 씨투몬스터는 디지털콘텐츠 제작분야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다.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에서 왜 치매 예방을 위한 인지훈련 콘텐츠를 만들었을까?
이야기가 있는 인지훈련
“암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규명되어 치료법도 있는데, 치매는 다양하고 원인 규명이 어려운 데다 한번 발병하면 죽을 때까지 회복이 안 되잖아요. 치매 예방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공공성이 매우 높은 일이더군요.” 최진성 기억산책 공동대표는 9년 전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치매 예방 인지훈련 콘텐츠 개발을 처음 제안받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이때만 해도 선진국에서 들여온 치매 진단 프로그램이 많이 사용됐는데,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가 있는 게임처럼 음악과 미술적 요소를 더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억산책의 인지훈련 콘텐츠는 여러 의료기관과 함께 연구를 통해 탄생했다.
기억산책의 대표적인 인지훈련 콘텐츠는 메타360, 청춘만세, 행복한일주일이다. 콘텐츠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데이터 용량을 줄이고자 세 가지 콘텐츠를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나누었다. 훈련을 한 번 할 때마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정도의 데이터만 사용한다. 젊은이들과 달리 사용 가능한 데이터 용량이 많지 않은 어르신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개발한 것이다. 씨투몬스터에서 시작한 기억산책은 2023년 2월 독립 법인으로 새로이 설립됐다.
체계적이고 꾸준한 인지훈련
시중에 나와 있는 인지훈련 콘텐츠는 다양하다. 그런데 콘텐츠가 디지털 기기에 접목됐을 때 어르신들의 훈련 유지가 쉽지 않다. 기억산책은 종합병원, 치매안심센터, 노인종합복지관, 요양병원 등 기관 종사자들이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어르신들의 인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통합 관리 시스템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개별 사용자의 인지훈련 결과, 분석 결과 등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별도의 기기를 구매할 필요 없이, 기관 혹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디지털 기기로 사용할 수 있다.
박종호 씨투몬스터 차장은 “기억산책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사용자별로 관리자가 문제 유형과 회차를 지정할 수 있고, 같은 유형의 문제를 푼다면 유형은 같지만 개인이 푸는 문제는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수업 프로세스를 관리자가 직접 설정할 수 있다는 게 기억산책의 차별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개인별 훈련 결과도 데이터로 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얼마나 자주 훈련을 했는지, 현재 훈련 진행도는 몇 %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정답률, 문제 풀이 수, 문제 푸는 시간 등이 기록되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관리도 가능하다. 만약 진행률이 미진한 어르신이 있다면 연락해 훈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다. 기억산책은 10월부터 ‘콘텐츠 라이브러리’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SK텔레콤의 음성 AI 스피커 ‘누구 네모2’에도 기억산책이 적용돼 더 많은 어르신과 만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고립이 문제가 되면서 다양한 기술이 해결 방안으로 쓰이고 있다. 그중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대화형 스피커나 로봇 등이 등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어떤 기술이 중년의 고립에 도움을 주는지 알아본다.
1 메타버스로 마음 챙기기(뉴클)
뉴클은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를 도입해 학습 센터나 심리 치료 공간을 만들었다. 주요 사업 중 하나인 ‘마음 스페이스’는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전문 상담사와 개인 혹은 그룹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대면으로 상담하기 부담스럽다면 가상 공간에서 더욱 편리하게 상담받을 수 있다. 뉴클은 올해 한 기업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케어 마음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마음 챙김에 힘썼다. ‘마음 스페이스’의 심리상담은 음악, 미술, 색채, 독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상담뿐만 아니라 명상 공간, 사계절이 보이는 길 등을 만들어 마음을 치유하고 내면의 평화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설했다.
2 부착하여 안전 확보(디엔엑스)
디엔엑스는 데이터 기반 AI 서비스와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을 갖췄다. 어르신의 건강한 생활 습관에 도움을 주고 위급 상황 시 대처할 방안으로 ‘터치태그·터치워치’, ‘AI 순이’를 만들었다. 어르신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잡게 되는 사물에 ‘터치태그’를 부착해 사용량을 수집하고 ‘터치워치’로 걸음 속도와 폭을 측정한다. 각 기기들은 모두 ‘터치케어’ 앱과 연동되며, 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AI순이’가 건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시간 앱 모니터링을 통해 보호자는 어르신의 행동반경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는 상황인식 기반에 따라 먼저 말을 걸어주는 ‘AI순이’와 소통하며 우울감을 줄이고 위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3 인공지능 말동무(미스터마인드)
미스터마인드는 인공지능 돌봄로봇인 ‘초롱이’로 어르신과의 대화를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콘텐츠와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어르신의 치매, 고독사, 우울증 등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지자체에서는 미스터마인드의 돌봄로봇을 입양했다. ‘초롱이’는 대화할 기회가 비교적 적은 어르신들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건네며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
4 전력량으로 위험 감지(에이나인)
지역별 소외된 1인 가구를 관리하는 공공복지 서비스가 있다. 서비스는 에어나인이 개발한 돌봄플러그를 통해 이뤄진다. 1인 가구의 전력량과 조도 변화를 24시간 관리하여 고립 위험을 막는다. 지역별로 담당자를 세분화해서 1명의 담당 관리사가 평균 4~6명을 관리하는 체계가 구축된다. 대상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일반군, 위험군, 고위험군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일정 시간 동안 전력 사용에 변화가 없으면 위기 알람이 전송되고, 방문 관리사가 대상자에게 전화하거나 집을 방문한다. 위험 상황에는 119를 연계해준다.
5 든든한 인공지능 돌봄(SKT)
SK텔레콤은 행복커넥트와 손잡고 ‘행복커뮤니티 AI돌봄’을 공동 추진했다. AI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여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인공지능 스피커로 건강을 증진하고 움직임을 감지하는 IoT센서, 심리상담 및 부정 발화어를 분석하는 ICT케어센터를 통해 안전을 강화한다. 어르신의 일상에 활력을 넣어줄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긴급 SOS 서비스로 안전도 책임진다.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에게 ‘살려줘’라고 말하면 119 호출을 할 수 있고, 각종 알림과 치매 예방, 감성 대화 등을 제공받는다.
6 똑똑한 생활 돌봄이(로보케어)
로보케어는 로봇으로 두뇌 향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어르신의 신체와 정서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보미2’는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분석하여 감정 케어를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심장건강도 등을 측정해 생체 정보도 제공한다. 사용자는 움직임을 인식하는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또 버튼이나 음성인식을 활용해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시스템도 탑재했다.
늘 그곳에 있지만 보여주는 모습은 늘 다르다. 갈 때마다 바닷빛은 새롭고 숲은 바람결의 맛이 또 다르다. 섬 전체가 여행길이고 단 한 군데도 빠뜨릴 수 없는 천혜의 경관이다. 섬 속에 딸린 자그마한 섬들이 또한 볼거리이고, 유구한 세월이 담긴 생태 숲과 치유와 명상의 숲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소소한 힐링 코스와 제주의 자연을 간 김에 모두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히 게으른 여행이 제맛이므로.
제주는 서부권과 동부권으로 나뉜다. 동서남북으로 빙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우왕좌왕할 수도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여유롭게 힐링하려면 동선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걷기 좋은 길을 다 욕심낼 일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없다. 에너지를 막 쓸 나이도 아니고, 2~3일 정도 제주의 바람결 따라 몸을 옮긴다. 이번엔 제주 서쪽이다.
은빛 일렁임, 새별오름
제주 애월의 평화로를 달리다 보면 봉긋하게 삼각형으로 솟은 동산이 눈에 들어온다. ‘와~ 제주구나’ 이런 생각이 확 드는 순간이다. 얼핏 거대한 고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서 제주는 바다를 먼저 떠올릴 수 있으나, 이제는 이렇게 억새가 반짝이는 오름이나 둘레길이 제주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제주 서부 중산간 오름 지대의 저녁 하늘에 샛별처럼 외롭게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도 예쁜 새별오름이다. 해발 519.3m라고는 하나 경사를 겁낼 정도는 아니다. 굳이 정상까지 꼭 가야 할 일도 아니고. 오름길에 억새의 숲을 마음껏 누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산 위로 오르면 분화구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여럿임을 비로소 보게 된다. 멀리 한라산과 비양도도 볼 수 있으며 상쾌함의 절정이다. 탁 트인 새별오름의 전망과 바람결에 은빛 털북숭이처럼 일렁이는 억새 물결의 군무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오름에 올랐으니 잠깐 머무르면서 실컷 바람을 맞아야 제맛이다.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풀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이곳 새별오름이다. 여행 기간이라면 꼭 경험해볼 만한 축제다.
제주의 건축 기행,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
여행 중에 찾아가는 전시장은 유난히 행복감을 준다. 이런 여유로움이라니… 하면서 말이다. 그뿐 아니라 다니다 보면 비가 오거나 악천후를 만날 때가 없으란 법 없다.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이럴 때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 실내와 실외가 각기 다른 공간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건축 예술의 멋을 보게 된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지어진 신비로운 건축물이다. 물 위로 교회가 떠 있고 노을이 담기기도 하는 시각적인 묘미를 보여준다. 이런 독특한 풍경으로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실내를 들여다보면 개인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조용하고 신성한 시간 속의 여행이다. 교회 옆으로 수(水)·풍(風)·석(石) 뮤지엄, 포도호텔도 들러볼 만하다.
중문 위 중산간에 위치한 본래의 형태를 뜻하는 본태박물관, 건축의 철학자라 일컫는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건축이다. 제1전시관 한국 전통 수공예품, 제2전시관 현대 예술 작품 등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 공간들이 얽힌 듯 미로 속을 걷는 듯하다. 잠깐씩 길을 잃을 뻔했다. 파격적인 느낌의 공간과 복잡하게 연결된 길에서 알 수 없는 느낌에 빠져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 기왕이면 조금 공부하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으로 제주 동쪽 섭지코지의 글라스하우스와 유민미술관도 특별하다.
자연 친화적 건축 속에서 명상의 시간을 가질 만하다. 저지리의 현대미술관과 공공수장고, 승효상 건축가의 추사관이나 미스터밀크, 정기용 건축가의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조민석 건축가의 오설록 티 뮤지엄 다도 체험관, 박현모 건축가가 지은 애월의 빵집 ‘버터 모닝’ 등. 제주 섬의 자연과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다양한 건축물 덕분에 제주의 건축 기행이 따로 있을 정도다.
길에서 만난 평화 순례자의 교회, 명월국민학교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라는 순례자의 교회는 올레길 13코스에 위치한다. 덥거나 추울 때, 마음이 외로울 때 한경면 외딴집처럼 저편에 예쁜 교회가 보일 것이다. 신앙인이 아니라 해도 고개 숙여 좁은 문을 통과해 한 번쯤 쉬어갈 수 있도록 제주의 벌판에서 기다리는 듯하다. 여행 중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 3평 남짓의 작은 기도처에서 조용히 묵상에 잠겨 평안히 머물다 나올 수 있다.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잠시 기도하고 차분히 비워내고, 작음이 주는 커다란 느낌도 담아올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명된 지 오래지만 여기는 명월국민학교다. 이미 폐교한 지 30년이라고 했다. 명월리 마을회가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여행자들에게 그 옛날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장소로 만들어냈다. 삐걱대는 낡은 복도 바닥을 밟으며 걸어 들어간 교실은 아기자기한 소품 갤러리가 되었고, 색다른 분위기의 카페가 되었다. 너른 운동장에는 앞마당에서 뛰어놀듯 아이들은 자유롭고 어른들은 추억을 더듬는다. 이곳의 운영 수익은 마을에 환원되어 마을 발전 기금으로 쓰인다.
낙천 아홉굿마을의 의자공원
여러 가지 의자들로 공원을 이룬 곳, 예쁘고 신기하고 다양한 의자들이 무수하다. 앉아보거나 쉬기도 하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새 오래 머물게 된다. 올레길 13코스 중간 지점의 의자공원은 아홉 개의 샘이 있다 하여 아홉굿마을로 불리는 곳에 자리한다. 천 개가 넘는 의자에 앉아 바쁘거나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 시간이다.
이윽고 한낮의 햇살이 옅어지며 뉘엿뉘엿 하루가 저물 때. 협재해수욕장을 옆으로 끼고 차귀도를 향해 달린다. 옛날 송나라 호종단이라는 사람이 제주 땅의 지맥을 끊기 시작했는데, 차귀도의 지맥과 수맥을 끊어놓고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 날쌘 독수리가 이들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섬이다.
저무는 해안도로를 달리는데 이날따라 조금 이르게 해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조금 더 가야 하는데 3, 4분 정도 늦게 차귀도 해안에 들어선 까닭이다. 도중에 어디든 무조건 내려서 바닷가로 뛰어 내려갔더니 이미 중간쯤 해가 떨어지고 있다. 밤낚시에 몰두한 강태공은 낚싯줄을 던지고, 잔잔한 바다 위로 고깃배가 지나가는 풍경이다. 멈춰 서서 넋을 잃을 수밖에.
적당히 드리운 구름과 고요함 속으로 일몰이 진행되는 중이다. 하늘과 바다가 순간순간 달라진다.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바다에 닿을락 말락 한다.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숨죽여 보다가 오메가 현상을 이루는 경이로운 찰나를 맞는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제주의 차귀도에선 이런 벅찬 순간을 기대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이냐, 서울 마포냐, 단원 김홍도의 고향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고증이 없어 미지수다. 그런데 단원이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단서가 있다. 안산은 18세기 조선 예원(藝苑)의 총수였던 표암 강세황이 30여 년을 머문 고장이다. 표암의 시문집 ‘표암유고’에 단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가령 ‘단원은 젖니를 갈 때부터 나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다. 일찍이 맺어진 표암과 단원의 사제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단원을 ‘금세(今世)의 신필(神筆)’이라 일컬은 이도 표암이었다. 정황이 이러니 안산 사람들은 뿌듯하다. 안산의 풍토와 풍정이 표암의 가르침과 함께 단원을 거목으로 길러냈다고 보기에. 안산시가 김홍도미술관을 만든 연유가 완연하다.
김홍도미술관은 안산시 외곽 노적봉 기슭에 있다. 야산 치맛자락을 거머쥔 형국이다. 노적봉 산책과 미술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입지다. 건물은 모두 네 동. 현대미술전이 펼쳐지는 1•2관, 단원콘텐츠관인 3관, 그리고 아동들을 위한 상상미술공장으로 구성했다. 너른 뜰엔 조각 작품도 많다. 전체적으로 독특할 것 없는 구색이지만 미술 작품으로 얼마든지 활갯짓할 수 있는 공간이라 훤칠하다. 뒷산의 수목들은 제법 울창해 조연으로 손색없다. 산기(山氣)를 싣고 스쳐가는 청명한 바람과, 연달아 착륙하는 햇살의 대열도 도회를 벗어난 관람객에겐 반가운 작품이다. 미술관 입구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단원콘텐츠관으로 들어간다. 이렇다 할 꾸밈과 치레 없이 간결한 전시관이다. 김홍도미술관의 핵심 공간이다. 단원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기획한 콘텐츠 전시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년 김홍도, 노적봉에서 세상을 담다’전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안산에 있었던 단원이라는 이름의 숲과 서호(西湖) 바다를 모티브로 한 전람회로, 단원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산의 옛 풍경을 상상해보게 하는 전시회다. 어물 장수나 고기잡이 풍속을 그린 단원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단원이 교유한 표암, 심사정, 최북의 작품도 있다. 단원의 예술 정신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낸 애니메이션과 미디어아트도 등장해 볼거리를 확대했다. 안산의 고지도를 전시한 건 관객을 과거의 안산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일 테다.
흥미롭기론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다. 아집도? 아집은 아회(雅會)와 같은 말로 묵객들이 모여 시와 술을 나누며 노니는 야유회다. 그걸 그린 게 아집도다. 즉 ‘균와’라는 산골짝에 화가 여럿이 모여 소풍을 즐기는 광경을 그린 게 ‘균와아집도’다. 때는 1763년 4월. 봇물처럼 터진 춘색이 영롱해 어지러웠으리라. 봄꽃 필 때 묵객은 유난한 ‘심쿵’으로 설렌다. 산야에서 작당해 꽃과 더불어 한잔 아니 마실 수 없다. 모인 이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그림 상단 오른편에 쓰인 발문에 다 나온다. 보자.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 강세황이다. 그 곁엔 어린 김덕형이 있다. 담뱃대를 물고 앉은 이는 현재 심사정이다. 차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이는 호생관 최북이며, 퉁소를 부는 사람은 단원 김홍도다.’
등장인물 모두 안산과 연이 깊었더란다. 다들 일세를 풍미한 거장이다. ‘균와아집도’는 조선 후기 묵객들의 놀이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원이 퉁소를 불고, 강세황이 거문고를 탔으니 고급스러운 피크닉이다. 일행이 한자리에 모여 그린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이채로워 우뚝하다. 학자이자 서화가인 허필이 쓴 발문의 귀띔에 따르면 그림의 전체 구도를 잡은 건 표암이다. 능란한 필치로 휘늘어진 솔과 옹골찬 바위를 그려 담황색을 입힌 건 심사정과 최북이다. 당시 19세였던 단원은 가는 붓을 날렵한 속필로 휘저어 인물들을 묘사했다. 10대 청년이던 단원이 대가들과 어울려 붓을 적셨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단원의 예술적 기량이 일찍부터 수승한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전시장에 나온 작품 전부가 영인본이라는 점이다. 애초 단원의 진본 작품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으나 빗나갔다. 단원의 현존하는 그림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파악하기 어려운 개인 소장 작품을 빼더라도 300점이 넘는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이 다수를 소장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신선의 무리를 그린 ‘군선도 병풍’(群仙圖 屛風, 국보 제139호)을 소장했다. 안산시도 7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김홍도미술관이 2년마다 펼치는 진본 기획전을 통해 공개된다. 2021년엔 ‘표암과 단원’전을 열어 진본들을 전시했다. 진본 가운데 ‘공원춘효도’는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풍속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료(史料)로 평가된다.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려
단원 김홍도는 조선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이름을 들날린 화가다. 그의 돛을 밀어준 건 표암이었다. 인생의 눈을 트이게 하고 예술의 길을 열어준 이가 표암이었다. 단원을 궁중 화가로 천거한 이도 표암인데 단원은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표암이 괜한 선심을 베풀었으랴. 그는 일찌감치 단원의 됨됨이와 천재성을 발견했다. 단원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용을 보았다. 표암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써 단원을 극찬했다.
‘단원의 화풍은 새로워 개벽을 이룰 정도다. 그의 그림을 본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저마다 부르짖었다. 그림을 구하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단원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모자라 단원에 대해 아는 게 드물다. 그럼에도 김홍도미술관을 관람하며 그의 아우라가 허공에 감도는 것 같은 환(幻)을 느낀다. 전시작이 많지 않아 단원이 항해한 예술의 바다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을 맛보긴 어렵다. 다만 단원의 옷깃에 살랑대는 실바람 한 오라기를 움켜쥔 느낌이다. 생각나는 건 언젠가 화첩에서 본 단원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가 불러일으킨 쓸쓸한 정취다.
주상관매라, 배 위에서 매화를 보다! 단원은 매화 마니아였다. 매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매화를 가슴에 담았으니 생애엔 매향이 난분분? 단원은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주상관매도’의 매화는 어이 아득한 허공에 떠 우련한가. 백일몽처럼, 신기루처럼 미묘한 매화를 그렸다. 천길 벼랑에 걸린 매화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엔 강물이 있지만, 뿌연 안개처럼 경계 없이 흐릿하게 그려 천하가 아득하다. 강기슭에 멈춘 조각배에 비스듬히 앉아 매화를 지켜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엔 우수가 실려 있다. 초연하다기보다 쓸쓸한 기색이 여실하다. 노경이란 외로워 매화마저 무상감을 돋운다는 걸까? 이 그림은 단원의 노년기 작품이다. 이상을 좇는 열정보다 허무의 성분이 커진 시절에 그렸다.
말년의 단원은 곤궁했다. 정조가 붕어하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됐다. 가세가 기울어 고달프게 살았다. 단원의 종신(終身)은 미스터리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 전해오는 게 없다. 작품이야 불멸! 그가 그림 안에 가둔 자연과 인간사의 총량은 장강(長江)과 맞먹는다.
대중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 창시자 피카소. 둘은 사제지간이었다. 마티스는 일찍이 피카소의 천재성을 읽어 지지와 조언을 했고, 피카소는 마티스를 평생 따랐다.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 이 조선의 커플 역시 사제지간으로, 예술적 동지로, 지음(知音)으로 평생 교유했다. 정미영 김홍도미술관 문화예술교육사의 얘기는 이렇다.
“복 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 하는데, 단원이 표암 강세황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으니까. 작품 하나를 완성하면 단원은 흔히 표암에게 먼저 보여줬고, 표암은 강평을 해주었다.”
단원이 표암으로부터 화풍의 영향도 받았나?
“단원이 그 누군가에게 화풍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흔적은 없는 걸로 알려졌다. 표암은 정신적 스승으로서 단원을 북돋았던 셈이다. 단원은 천재였다. 게다가 못 말릴 노력파였다. 부단한 노력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거다.”
단원은 풍속화가로 알려졌다. 그의 풍속화에 나타난 사회의식도 호감을 산다.
“안산시가 소장한 단원의 진본 7점 중 하나인 ‘공원춘효도’에도 사회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제도에 만연한 부정행위를 풍자한 그림이니까. 단원의 풍속화는 30대 초반에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 그러나 단원의 작품 스펙트럼은 훨씬 드넓다.”
표암과 더불어 정조 임금 역시 막강한 스폰서 역할을 함으로써 단원의 순항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단원이 표암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됐다고 보더라. 그런데 단원의 출중한 재능을 알아본 정조가 대단한 후원을 했다.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단원이 주장하도록 하라’고 할 정도였다. 궁중 화가로서 단원은 일종의 공공그림을 그렸으나 퇴근 뒤엔 자기 그림을 그렸다. 단원의 집 문간엔 그림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루었다고 한다.”
단원의 성향을 알 만한 일화가 있다면?
“풍류에도 일가견 있는 단원이었다. 특히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언젠가 한번은 단원의 그림을 원하는 이가 찾아와 작품값으로 3000전을 내놓고 갔다. 단원은 그중 2000전으로 매화를 사고, 800전으로는 술을 사 친구들과 매화를 즐기며 대작했다. ‘매화음’(梅花飮)이라는 이름의 술자리였다. 결국 남은 돈은 200전뿐이었는데, 이걸로 쌀과 장작을 사 집에 들였으나 하루 땟거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 계급) 출신인 단원의 신분 상승 욕구도 정진의 발판이었던 것 같은데.
“선비가 되고 싶은 마음, 선비정신의 정상에 선 삶을 갈망하며 끝없이 노력했다. 말년에 그린 ‘포의풍류도’에 이와 같은 지향이 드러난다. 문방사우와 악기 등 갖가지 기물과 선비의 모습 등을 그린 작품이다.”
‘포의풍류도’에는 이런 화제를 붙였다.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집에 살지만,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고 시가나 읊조리며 살고자 한다.’ 단원의 유토피아가 구현된 그림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말년은 고단했다.
“정조가 별세하면서 단원의 고난이 시작됐다. 아들의 월사금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니까. 그러나 선비다운 태도는 끝까지 지니고 살았다. 이게 단원의 빛나는 정신이지 않을까?”
인파와 소음이 들끓는 서울에서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편리와 매력도 많지만, 불편과 불안도 많은 게 도회다. 충분히 감정 이입할 만한 여가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점에 앉아 소주병을 쓰러뜨리는 걸로 위안을 삼는 게 고작이다. 대도시에 산다는 건 사실 부담스럽다. 뭐 좀 재미있는 곳이 없을까? 기대어 쉴 만한 언덕이 없을까? 이런 자문을 할 때 떠오르는 게 미술관이다. 수족관에 갇혀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붕어처럼 따분한 일상에 재미와 생기를 부여하는 게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 중계동 중계근린공원에 있다. 공원 안에 있어 초록을 입은 미술관이다. 초록의 향연까진 아니지만 공원 녹지에서 흘러나온 초록 물이 밴 양, 외관 곳곳이 풀빛으로 청신하다. 이 미술관은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반면 문화 인프라가 빈약한 서울 동북권의 건조한 공기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예술을 만나라고, 미술과 교제하라고, 그렇게 해서 지루한 일상에 고소한 양념 같은 별미를 가미하라고 개관했다.
미술관 건립 때엔 숙고가 많았다. 공원 한편에 정해진 부지에다 어떤 형태의 건축물을 지어 공원과 좋은 관계를 맺을지 고민했던 것. 수목들 늘어선 공원 풍경과 겉도는 형상의 미술관 건립만큼은 삼가야 했다. 그러잖아도 작은 공원의 면적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불러들일 수 있어서였다. 주민들의 쉼터인 기존 공원의 가치를 해치지 않을 아이디어 고안이 필요했다. 즉 독립된 개체가 아닌 공원의 일부로 녹아드는 건축이 요구됐던 거다. 이렇게 해서 동산 형태의 독특한 미술관 건물이 출현했다.
사실 북서울미술관은 특이한 생김새로 일단 한몫을 한다. 보고 또 보고. 시선이 저절로 간다. 무심코 지나치기 힘든 형상이다. 원래 여기에 있었던 언덕을 파고 들어간 묘한 건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애초 평지였던 지형에 상자를 중첩한 형태의 건물을 짓는 한편, 인위적으로 언덕을 만들어 외벽을 빙 둘렀다. 무감동한 수직 벽과 창이 있을 자리에 솜씨 좋게 언덕을 구현했다. 언덕엔 잔디를 심어 녹지대를 연출했다. 계단을 설치한 여러 갈래의 동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언덕길은 자연스럽게 공원 산책로와 이어진다. 딱히 미술관에 볼 일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술관을 공원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공원은 미술관을 통해, 미술관은 공원을 통해 상호 증식한다.
서울시는 2013년 ‘건축상 대상’을 북서울미술관에 주었다. 수준 높은 디자인과 시공 완성도를 인정해서였다. 설계자는 건축가 한종률. 그는 ‘과거의 흔적과 미래가 공존하는 건물을, 자연 친화적 건축을 설계해 왠지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건축을 기술적 영역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얘기도 했다. 창의력과 사회에 대한 윤리를 갖춘 장인정신의 산물로 보라 했다. 말하자면 공공성을 지닌 예술 장르의 하나로 건축을 보는 눈을 주문한 셈이다.
미술 작품은 빤한 생각과 진부한 감상으로는 나올 수 없다. 뛰어난 작가의 세계관과 상상력은 중력을 거슬러 하늘까지 솟아오른다. 보이지 않는 걸 보여주고, 넘어설 수 없는 걸 넘어서는 게 미술이다. 창작으로 세상의 허구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게 작가다. 그들의 작품은 그래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한다. 또는 한계를 초월해 비상하는 우주선처럼 전위적이다. 그렇다면 미술 작품을 모아둔 미술관 건물은 어딘가 좀 다르면 다를수록 구색이 맞는다. 세상의 배후에 관한 뉴스를 탑재하고 지상에 착륙한 소행성. 또는 감각의 제국. 미술관을 이렇게 읽으면 과한 공상일까. 아무려나, 미술관 건물은 밋밋하지 않을수록 미덕이다. 북서울미술관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을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하려면
미술관 로비로 들어선다. 널찍한 공간이라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다소 휑하지만 조도를 낮춘 조명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일부 벽면의 창과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들이친다. 하얀 칠을 입힌 벽과 층계 등 구조물들이 지닌 면과 선이 다양하게 교차하면서 발생하는 기하학적 디자인 효과엔 방점을 찍을 만하다. 전시실은 1, 2층과 지하에 있다.
걸음을 옮겨 지하 1층에 있는 어린이갤러리로 내려간다. 이곳은 3개 층을 수직으로 개방해 천장 높이가 무려 17m다. 북서울미술관은 아이들을 중시한다. 아이들의 본성과 눈높이에 맞으면서 품격마저 구비한 기획전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인 아동들에게 미술 체험 기회를 부여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봐서다. 이번 가을, 어린이갤러리에선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열렸다. 백남준, 이우환에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서도호는 두 딸과 함께 점토로 만든 ‘아트랜드’를 선보였다. 관람객으로 온 아이들은 이 ‘아트랜드’를 기반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아트랜드를 집단 창작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신비하고 복잡한 생태계를 저마다의 솜씨를 발휘해 하나하나 조형했다. 전시 기간이 끝날 쯤엔 귀엽고 아름다운 대형 설치 작품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신바람 났으리라. 관람객이자 공동 창작자로서 설치 작업에 나서는 일이 흔할까 보냐. 점토를 조몰락거려 미술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오는 꽃처럼 활짝 피어난 건 상상력이었을 테다. 빙의와도 같은 도취의 순간도 경유했겠지. 어린이 특유의 선입견 없는 자유분방으로 즉흥과 충동과 날것의 감정을 표출하며 즐겼을 것이다. 이 아이들 속에서 훗날 피카소가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은 어쩌면 태어날 때 이미 예술가다. 성장하면서, 속세의 일원으로 각질을 두르면서 예술을 잃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미술 체험이 필요하다. 자유의지와 상상력의 보유 기간을 늘려 삶을 조금이나마 덜 낡은 쪽으로 운행할 수 있어서다.
미술관에서 누리는 휴식은 즐겁다. 싱겁고 머쓱한 일상에 의미와 재미를 붙여준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점을 비트는, 가령 전복과 파격을 담은 콘텐츠에 관객은 흥미와 동요를 느낀다. 미술관들은 이를 고려해 전시기획에 나선다.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특별한 전람회가 많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한 ‘유휴공간 프로젝트’ 역시 인상적이다. 전시장에 작품을 설치하는 관습을 깨는 프로젝트다. 지하주차장 외진 벽면, 물품보관함 작은 창문, 카페 주방 등 뜻밖의 장소에 작품을 숨기듯 슬쩍 갖다놓았다. 무대와 배경을 뒤바꿨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걷어냈다. 삶에 도입해볼 만한 역설적 상황에 흥미가 동한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획전으로 전진
백기영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북서울미술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주민들에게 보다 풍성한 향유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미술을 낯설어하는 이들에겐?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제시해 포용한다. 이를테면 미술관에 큰 관심 없는 시니어들을 유도하기 위해 ‘청춘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영화를 상영한 것. 영화 관람 후 자연스럽게 미술 전람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백기영 운영부장의 얘기는 이렇다.
“‘청춘극장’의 인기가 꽤 높았다. 한 해에 1만 명 이상이 영화를 관람했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영화 관람과 미술 전시회 감상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다.”
젊은 층 관람에는 어떤 경향이 있나?
“과거보다 진지하게 관람하며 미술을 즐길 줄 아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미술관 체류 시간이 길어졌고, 미리 전시 작가 정보를 찾아 사전지식을 지닌 채 작품과 만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매우 긍정적인 추세 변화라 본다.”
그간 북서울미술관이 펼친 주요 전시회를 꼽는다면?
“2019년에 열린 ‘한국 근현대 명화전’을 꼽을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 3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해 성황을 이루었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도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심혈을 기울인 전시회였다. 최고의 예산을 투입했으며, 3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을 갖기도 했다. 세계적인 명화 관람에 대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 전시회였다.”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에 딸린 미술관 중 하나로 2013년에 개관했다. 아직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람객이 크게 늘었다. 클로드 모네, 윌리엄 터너, 제임스 터렐 등 거장 43인의 작품 다수를 보여준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의 성황은 물론, 양질의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 거둔 성과다.
어린이들이 공동 창작자로 참여한 ‘서도호와 아이들 : 아트랜드’전이 인상적이다. 어린이 미술 교육 콘텐츠를 가동하는 미술관은 많다. 그런데 ‘아트랜드’전은 새롭다.
“기존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분히 소비적이고 획일적이다. ‘아트랜드’전은 아이들에게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부여했다. 미술관은 화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곳이라고만 알았던 아이들에겐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스펙터클과 기괴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전체를 상상하며 코끼리를 만들어내는 식의 조형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발현된 창의성과 상상력이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지속되길 바란다.”
서도호 작가에게도 이런 유형의 이벤트는 처음이라지?
“새로운 시도였고 성과는 커서 서도호 작가에게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미술관으로서도 어린이 프로그램 기획의 전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더 있다. 해외 미술관에서 ‘아트랜드’전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아마도 이게 확산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설치 작품은 이제 어떻게 되나? 수장고로 들어가나?
“우리 미술관에 영구 소장하면 좋겠지. 그러나 영구적인 재료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고민 중이다. 안전한 소장이 가능한 특정 장소를 모색하고 있다.”
2021년 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 수집한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국립기관과 지자체 미술관에 기증했다. 지정 문화재를 비롯한 고미술품과 세계적인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의 근대미술 작품이 총집합한 ‘이건희 컬렉션’은 공개와 동시에 미술 애호가는 물론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으로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백자 청화 매죽문 항아리’(국보 제219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등 지정 문화재만 60건이다. 파블로 피카소, 클라우드 모네,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해외 유명 예술가들의 역작도 포함돼 있다. 가히 세계적인 수준의 ‘이건희 컬렉션’ 기증 후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술품 물납제도는 미술품이나 문화재로 상속세, 재산세를 현금 대신 납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술품 물납 2023년부터 시행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2020년 전성우 전 간송미술관 이사장이 세상을 뜬 후, 유족은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내놓았다. 문화재 보존에 따른 누적 적자와 막대한 상속세 부담이 이유였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문화재 보존에 애썼던 전형필 선생이 설립한 한국 최초 사립박물관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오랜 논의 끝에 상속세법 개편을 통해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 납부하는 물납 특례가 마련됐다. 2023년 1월 1일 상속세 개시분부터 적용 시행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현금으로 상속세 납부가 어려운 상황이 인정되면 예외적으로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물납제도를 뒀다. 앞으로는 상속받은 미술품 또는 문화재의 가치에 해당하는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할 수 있다. 물납 신청은 상속받은 미술품의 상속세액이 2000만 원을 넘어야 한다. 또한 역사적·학술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미술품에 한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여야 한다. 가치가 부족하다고 판단돼 국고 손실이 우려되는 작품은 제외될 수 있다.
다만 아직 걸음마 단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미술협회·한국박물관협회 등 문화계 단체와 인사들은 숙원 사업을 청산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술품 물납제도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경매를 통해 해외로 유출되는 비극을 방지하고, 공공 자산화로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하는 데 큰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술품 물납제도는 해외에 비해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문화재나 미술품 상속으로 인해 부과된 상속세 외의 다른 재산(금융, 부동산) 상속에 대한 세금은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없다. 미술품 상속에 의해 발생한 상속세로만 미술품 물납을 한정했다는 의미다. 문화재나 미술품을 향후 물납에 충당할 수 있는 재산의 범위에 포함시킬지는 결정된 바가 없다.
지난해 8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세금으로 받는 물납의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미술품에 대한 객관적 가치 평가가 어렵고, 명확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거래 성사가 불확실해 현금화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은 문화재 및 미술품 물납 대상 여부 및 가치 평가 등을 전문적·중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물납심의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두도록 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편 1968년부터 미술품 물납제도를 시행한 프랑스는 물납의 적용 범위를 보다 넓게 허용한다. 상속세뿐 아니라 증여세와 재산세를 예술 작품, 역사적 수집품, 주요 문서 등으로 납부할 수 있게 했다.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유족은 상속세를 돈이 아닌 그의 작품으로 대신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파리에 피카소 박물관을 열고 해당 작품들을 공개한 바 있다.
이건희 소장품 살짝 엿보기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마을 만드는 디렉터형 관계인구
1. 루치아의 뜰
석미경 대표는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11년을 일하다가, 남편이 공주에 있는 대학 교수가 되면서 1995년 공주로 귀촌했다. 차에 관심이 많았던 석 대표는 차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2012년 버려진 한옥을 발견하고 뼈대를 살려 지금의 ‘루치아의 뜰’을 열었다. 공주에 살며 동네 산책을 하다 보니 골목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에는 주민참여 프로젝트로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이라는 도시재생 활동을 제안해 선정됐다.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 운영위원, 공주문화도시 정책위원 활동도 하면서 청년들의 공주 정착을 돕고 있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공주로 와 무언가를 도전할 때, 묵묵히 지켜보며 그의 시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2. 사회문화예술연구소 오늘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이나 문화기획 일을 하던 임재일 소장은 유독 공주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다. 10년 가까이 공주에서 공공미술을 하던 그는 2018년 자연스레 공주로 귀촌했다. 30년 동안 하숙집으로 사용되다 버려진 3층짜리 폐가를 사들여 연구소를 옮겼다.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공주 사람과 이웃 사람을 잇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 ‘대안카페 잇다’도 열었다. 그는 공주 근대문화거리, 하숙테마거리, 제일감리교회 기독교박물관 조성, 국고개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 등 공주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을 기획·실행했다. “주민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내용으로 ‘하숙집의 세 딸’이라는 연극도 기획하고, 문화의 날도 만들었어요. 연구소 내에 ‘공주 정보 자료관’을 만들어 도시재생 과정에서 기록하고 모은 공주의 모든 자료를 전시하고 있죠. 공주로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공주에 대해 알기 위해 조사차 우리 연구실을 한 번은 들러요. 저는 그들에게 공주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죠.” 문화를 통해 공주의 관계인구로 지내다 귀촌한 그는 이제 다른 관계인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ㆍ임재일 소장과의 인터뷰
Q 공주에 유독 귀촌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A 충청남도에서 대학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 공주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이 있다 보니 선생님이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 교직에 있었거나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은퇴를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그저 공주가 살기 좋아 오는 사람도 있고. 공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꽤 다양하다.
Q 고향은 세종시(구 연기군)인데, 공주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
A 거리를 조성하거나 환경을 개선하는 공공미술 일을 오래 했다. 특히 지역의 역사 문화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자원이 많은 공주에 우연히 초대를 많이 받았다. 공주대학교에서 9~10년 정도 겸임교수 생활도 했고. 지역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하면 건축, 인문학, 미술, 행정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다. 자연스럽게 문화 기획을 하게 됐는데,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드니까 마지막으로 정착할 곳을 찾게 됐다. 연기군이 고향이긴 하지만 학창시절을 공주에서 보냈기에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다.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지금은 문화 소프트웨어,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젊은 친구들과 공주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Q 공주에 이주하려는 이라면 이곳 연구소를 한 번은 꼭 들른다는 데, 그들을 돕는 이유가 있나?
A 재미있으니까.(웃음) 그동안 공주에서 했던 모든 작업물들을 이곳에 모아두었다. 공주 문화 투어를 하면 가이드가 가장 마지막으로 연구소에 들른다. 그럼 나는 작업 기록집들을 펼쳐 공주의 지난 시간을 보여준다. 이주를 하려면 집이 가장 중요한데, 빈집 조사도 했어서 어디에 가면 빈집이 많은지도 알려준다.(웃음) 하던 일이 그렇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많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게 됐다. 나도 공주가 발전되어가는 걸 기대하고 지켜본 것처럼,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그들의 기대만큼 성취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Q 기록을 통해 공주와 사람들이 이어지는 듯 하다.
A 과거를 상기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 당시의 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은 거다. 지금은 현재만 남아있으니 과거 그 자리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 않나. 노인 한 사람이 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이야기를 가지고 산다. 공주는 백제시대 수도였다 보니 그만큼 이야기가 더 많은 셈이고. 일종의 오픈 뮤지엄처럼.
3. 이미정갤러리
이미정 관장은 공주 토박이다. 귀촌을 한 건 아니지만, 그를 통해 공주와 관계 맺는 사람이 늘었다. 이 관장은 2016년 3월, 그림이 팔리기는커녕 그림 보러 오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여겨지던 공주 원도심에 갤러리를 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지역을 떠나 있던 작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윤상원, 정영진 등 원로 작가들이 이미정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그림이 팔리면서 작가로 입지를 다졌다. 정영진 작가는 U턴 했고, 윤상원 작가는 이주를 준비 중이다. 이 관장은 이들을 ‘1986년도 공주의 미래였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월전 귀향’이라는 주제로 공주가 직장이거나, 공주가 고향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모았다. “공주의 인구는 줄고 있지만, 공주로 유입되는 인구는 늘고 있어요. 화가일 수도, 감상자일 수도, 소장자일 수도 있겠죠. 열 명이 오면 여덟 명은 공주를 돌아보고 가요. 공주와의 관계가 생기는 거죠. 이전에는 공주 출신 작가들하고만 교감했다면, 이제는 공주에서 일하거나 공주에서 유학하거나 고향이 공주지만 다른 지역에 살거나 공주에 인접한 지역에 있는 작가들까지 연결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나가는 작가들조차 공주에 반드시 작업실을 두고 두 지역을 오가고자 노력한다. 이미정갤러리를 통해 공주에 살든 살지 않든 생활권을 공주에 두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셈이다.
ㆍ이미정 관장과의 인터뷰
Q 갤러리를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갤러리를 여는 건 로망이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30여 년 미술 학원을 운영하고, 대학 강의도 나갔다. 일을 그만 두면서, 전업 화가로 살 것인가 전업 주부로 살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둘 다 어렵더라.(웃음) 갤러리가 수익 사업은 아니지만, 작업실의 연장으로 해볼까 싶었다. 7년째 자리를 지키다 보니 작가들도 모이고, 이 주변으로 작년에 두 개, 올해 두 개 갤러리가 개관하기도 했다.
Q 갤러리 운영뿐 아니라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만든다고 들었다.
A 한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갤러리스트는 대중과 예술가의 중간 역할자다." 원로 작가들이 공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획전을 열거나,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만들고 있다. 이 감영길을 '공주의 인사동'으로 만들어 보자고 행정기관에 제안했다. 작가 한 명에게 행정기관이 지원하는 금액을, 그림을 사는 사람에게 지원금 형태로 주자고 했다.
그래서 공주문화재단에서 '그림 상점로'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 갤러리로 참여했다. 그림 상점로는 그림 구매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예술가 약 7명을 단순 지원할 금액으로, 1억 4000만 원의 예술품 거래를 만들어냈다. 7~80명 화가의 작품들이 팔린 거다. 올해는 참여 작가도, 작품 수도 더 늘었고 상반기에만 지난해만큼의 거래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공주를 오고가는 사람들은 이 주변을 둘러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게 된다.
Q 젊은 작가들과 활발하게 소통한다고 하던데..
A 각자의 이유로 언젠가는 공주를 떠날 수도 있지만, 공주와의 관계성을 잃지 않도록 젊은 작가들과 자주 소통한다. '영영 아티스트'라는 20대 화가들의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작가들이 공주에서 개인전을 안 한다. 대전이나 서울처럼 큰 곳으로 간다. 공주를 떠나고 싶어 그런 게 아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림을 놓치지 않도록 도움을 주다 보니, 젊은 작가들이 학업이나 생계로 어쩔 수 없이 공주를 떠나더라도 작업실만큼은 공주에 두려고 하게 되더라. 이곳 감영길에서 누군가 그림을 전시하고, 누군가는 감상하고, 누군가는 소장한다. 그렇다면 예술 생태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Q 이미정갤러리를 중심으로 작가, 관객, 공주가 모두 연결되는 느낌이다.
A 어린 학생들이 갤러리를 자주 온다. 한 학생이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을 하려면 공주로 와야겠네요”라고 했는데, 무척 기특했다. 아이한테 그림을 보여주고 싶다며 아이 손잡고 오는 엄마도 있다. 공주에 갤러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꽤 있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그림을 즐기고, 여러 이유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던 작가들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중간 역할자인 갤러리스트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다. 앞으로는 공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 공주에서 태어난 사람, 공주에서 일하는 사람 등 공주와 관계 있는 작가들도 연결하려 한다.
◆지역 오가는 더블로컬형 관계인구
1. 퍼즐랩
권오상 대표는 경기관광공사에서 15년 동안 해외 마케팅 일을 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공주에 매력을 느꼈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귀촌했다. 그는 근교인 세종시에 거주하면서 공주 원도심을 살리는 일을 한다. ‘봉황재’를 찾는 사람들에게 원도심의 맛집과 볼거리를 안내하다 보니 ‘마을스테이’를 꿈꾸게 됐고, 2019년 퍼즐랩을 창업했다. 2021년도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이어 올해도 청년들의 지역 탐구와 정착을 지원하는 ‘자유도’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한 청년들이 다음 기수에서는 프로그램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결국 공주로 귀촌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정부 사업을 하기 전에도, 사업이 끝난 후에도 그는 공주를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이어갈 계획이다.
2. 다이얼팩토리
이병성 대표는 서울에서 권오상 대표와 독서 모임을 하던 사이로, ‘봉황재’에 놀러 왔다가 공주에 매료됐다. 그는 12년 동안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교육’을 주제로 독서 모임을 했다.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 ‘공동체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공주 원도심은 그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공주에 코러닝스페이스 ‘와플학당’을 만들고, 청년마을 ‘자유도’를 통해 여러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기획했다. 커뮤니티가 마음에 든 청년들이 공주를 찾아 머무르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올해 와플학당을 운영하는 기업 ‘에듀커넥트’를 다이얼팩토리로 리브랜딩하고, 커뮤니티 디자인과 대화 워크숍을 더욱 구체화했다.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군!”
흔히 그런 말을 했단다. 손화순 관장이 부군 김민석(작고) 선생과 삼탄아트마인 설립에 나섰을 때의 얘기다. 지금은 문화재생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성행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달랐다. 용도를 잃고 스러진 폐탄광을 뮤지엄으로 재생한다? 반신반의도 무리는 아니었겠다. 그러나 손 관장 부부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쌓은 문화예술에 관한 경륜과 식견을 믿어서였다. 2013년에 개관한 삼탄아트마인은 결국 손 관장 부부의 지향대로 질주했다. 독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뮤지엄을 만들어냈다.
“부부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문화기획 일을 수십 년간 해왔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간 축적한 경험을 뭐 하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싶어지더라. 그러던 중 우연히 정선에 왔다가 폐탄광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광을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의 가치를 또렷이 인식해서였다.”
롤모델로 삼은 뮤지엄이 있었나?
“재생 공간의 세계적 사례인 독일의 졸페라인에서 느끼고 배운 게 많았다. 폐광에서 복합문화단지로 변신한 졸페라인에 몰려드는 관광객이 연간 200여만 명이나 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걸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벤치마킹했다.”
삼탄아트마인의 스케일이 대단하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아니라 개인이 주관하는 공간이라는 게 놀랍다.
“부지 면적이 1만 3000평이나 된다. 버거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기간에 뮤지엄을 완성할 욕심은 가당치도 않았다. 최소 10년, 20년, 길게 보고 가자는 기본계획을 가지고 매달렸다. 전략적으로, 단계적으로 일을 완수하자는 방침을 세웠던 거다.”
아직 미완성 상태라는 얘기?
“개관 이후 지난 10년간 주로 하드웨어를 채웠다. 현재의 완성도는 약 70%에 불과하다. 향후 소프트웨어 부문의 콘텐츠를 보강할 참이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은 셈이다.”
위치상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관람객이 많을 것 같다. 이색적인 뮤지엄이니까. 게다가 주변 자연경관도 아름답다.
“여행자들과 관광객들의 관람이 잦다. 이 오지를 찾아오는 관람객이 한 해에 10만 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운영이 쉽지 않더라. 특히 불행했던 세월호 사고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뮤지엄 내부의 문제는 보완하면 되지만, 사회적 환경에서 오는 악재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게 뮤지엄 일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인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많았지만 ‘희망’을 중심에 두자 늘 빛이 보였다. 바라는 건 하나다. 삼탄아트마인이 대중의 ‘예술놀이터’로 쓰이기를 원한다는 것. 남편 생시에 공감하며 자주 나눈 얘기가 있다. 문화예술공간을 비즈니스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보시 차원의 대승적 행보를 해야 한다…. 이 다짐들을 힘으로 삼고 있다.”
부부가 함께 나누었던 짐을 이제 혼자 지고 간다. 무거운 게 한둘이랴. 그러나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질주가 답일 뿐이다. 이런 그가 말하는 남편 김민석은 ‘늘 한 걸음 앞서갔던 사람’이다.
안양시는 ‘공공예술의 도시’를 표방하며 개성과 위상을 돋우고 있다.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로 가꾼다는 의도를 가지고 지역 곳곳에 예술을 흩뿌렸다. 안양예술공원은 그 센터이자 견고한 플랫폼이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할 만한 이 산속의 예술공원은 사실상 국내 초유의 야외 공공미술 실험장으로 등장해 선구적인 성취를 거두었다. 마음을 훌훌 털어놓기에 적당한 숲길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명소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김연수 공공예술부장에게 작품 소개와 관람 방법을 들어봤다.
“가장 중요한 작품은 관람 출발점인 알바루 시자의 ‘안양파빌리온’이다. 시자 특유의 미니멀리즘 건축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이 건축물은 직선이 거의 없는 유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 채광 효과에 의한 빛과 음영의 변화, 곡선으로 처리한 내부 벽면이 야기하는 안락하고 부드러운 느낌 등에서도 시자 작품의 디테일과 문맥을 읽을 수 있다.”
공원에 산재한 미술품을 구경하다가 작품 ‘전망대’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여 시원하더라.
“네덜란드 작가 MVRDV의 설치 작품이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기반으로 산의 구체적인 형태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예술에 자연을 극적으로 접목한 설치 작품이다.”
플라스틱 상자를 첩첩이 쌓아 만든 ‘안양 상자 집’은 어떤 의도로 만든 작품일까? 평범한 오브제로 독특한 대형 설치 작품을 조형했다는 점에선 기발했다.
“불교적 상상력으로 만든 작품이다. 사원(寺院)을 형상화했다고 보면 되겠다. 겹쳐진 플라스틱 박스들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의 효과를 통해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절묘하게 표출했다. 밤에는 내부에 밝힌 불빛이 밖으로 흘러나가 신성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독일 작가의 작품인데, 대량의 재활용 음료수 박스를 독일에서 직접 가져왔다. 한국의 박스는 빛의 투과율이 좋지 않아서다.”
순전한 예술로서의 작품 외에 실용성과 현장의 기능성을 추구한 작품들도 있어 이채롭다. 가령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용도의 작품들이 그렇다. 이런 경향을 공공미술의 특징으로 보면 되나?
“그렇다. 공공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공익성을 구현한 작품이 많다. 시민들이 산책하는 장소에 필요한 요소를 문제의식을 갖고 찾아내 보완하듯이 설치 작품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대형 작품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역시 마찬가지 계열의 작품이다. 예술 작품이자 시민들의 통행로로 쓰이는 공간이니까.”
프랑스 작가의 작품 ‘발견’은 나무로 된 작고 허름한 원두막 형상이다. 이 작품은 시간 속에서 스러져 결국은 소멸할 것을 예감하고 만들었을까?
“냇가 흙 속에 묻혀 있던 쉼터 용도의 원두막을 발굴, 약간의 구조 보강을 해 복원했다. 유원지였던 과거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이며, 이런 경향 역시 공공미술의 특징이다. 공원의 작품들은 지속적으로 보수해 관리한다.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건 어쩔 수 없고.”
한결 효율적인 관람 방법이 있다면?
“현재 코로나 상황이라 잠정 중단됐지만, 우리는 도슨트를 통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 감상의 재미와 즐거움이 커지니까.”
도슨트의 해설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라는 얘기다. 그러나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까지 만끽할 수 있는 산속 야외 미술관이니 혼자라도 충분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