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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속 세상을 내 방으로, ‘아쿠아 스케이프’
- 물의 흐름을 따라 일렁이는 형형색색의 수초들, 그리고 그 사이로 유영하는 물고기. 일상의 많은 자극을 잠시 멀리하고 수족관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취향대로 돌과 유목, 다양한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여행도 운동도 즐거움이 잠시뿐이라면, 실내에서 꾸준히 즐길 취미로 ‘아쿠아스케이핑’은 어떨까? 수경 예술, 아쿠아스케이프는 Aqua(수중)와 Landscape(풍경)의 합성어로 이를 제작하는 행위를 아쿠아스케이핑(Aquascaping)이라 부른다. 다소 비주류적인 취미였지만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멍’(물을 멍하니 바라본다는 뜻의 신조어)으로 마음의 안정을 노리거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실내에서 즐길 취미를 찾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도 올해 수산 양식, 수산업 경영 분야 등 아쿠아스케이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실무 능력을 익힐 수 있는 내용의 교과서를 개발할 정도다. AGA, IAPLC, KIAC 등 아쿠아스케이프 수조를 예술적 조형물로 심사하는 국제 대회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대회에서는 수조를 촬영한 사진을 출품하면 심사위원들이 기술력, 독창성, 분위기, 장기 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해 심사한다. 스무 해 동안의 ‘덕질’ 수경 예술의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원하는 크기의 수조를 준비하고, 이물질을 제거한 후 바닥재를 깔고 각종 장식을 배치한다. 그 후 나무에 수초를 끈으로 엮는다. 여과기 및 기타 장비를 설치하고 물을 넣은 후 2주 정도 지나 수초가 자리 잡으면 물고기를 투입한다. 일반적인 수족관의 경우 어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했다면, 수경 예술은 수초가 중심이 된다. 수중 식물의 ‘서식 환경’이 더 강조된 형태다. 다양한 자연 소재를 통한 조형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어류가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독특한 작업이다. 박기민 작가는 수초, 돌, 유목 등을 활용해 수조의 환경을 아름답게 제작하는 사람, 아쿠아스케이퍼다. 2018년 KAC(한국아쿠아스케이핑 콘테스트, 현 KIAC) 특별상, 2019년 KAC 2위와 KAPS(한국관상어산업박람회) 수초 디스플레이 부문 은상을 거머쥐었다. 수경 예술 쪽에서는 꽤 알려진 전문가다. 이 분야에서 굵직한 이력을 가진 그도 처음엔 물고기 몇 마리 키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전주에서 식당을 하셨어요. 3m짜리 어항이 두 개 있었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레 물고기에 관심이 갔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물고기를 키웠죠. 물고기만 있으니 텅 빈 어항이 허전해 보여서 어떻게 꾸밀까 찾아보다 아쿠아스케이프라는 걸 알게 됐어요. 벌써 20년 정도 됐네요.” 관상어에 대한 관심이 그 주변으로 퍼져 수조의 구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 작가가 ‘물생활’(물고기를 키우는 취미를 뜻하는 신조어)을 시작할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아쿠아스케이프 교육 과정이 없었다. 대신 수경 예술의 기반이 마련된 일본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그는 일본에 출장 갈 때마다 틈틈이 수족관이나 수족관용품 숍을 찾아다니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일본에는 수족관용품 브랜드 ADA(아쿠아 디자인 아마노)가 있었어요. 창립자는 다카시 아마노인데, 자연 풍경 사진작가였죠. 사진을 위해 우연히 물속에 카메라를 넣었던 게 ‘물생활’의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물속 풍경을 조금 더 아름답게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ADA가 수초와 물고기가 최적의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조명, 흙, 비료, 여과 시스템 등 다양한 재료를 개발했고, 각종 대회도 개최하면서 기반을 많이 닦아뒀어요.” 박 작가가 꼽는 수경 예술의 매력은 무수히 많다. 편한 시간 일부만 투자해도 아름다운 수조를 유지할 수 있고, 어떤 자연환경을 조성할지 고민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예쁜 관상어까지. 이들이 번식하면 얻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배설물이나 알레르기, 소음, 산책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삶의 원동력이 된 물생활 이 때문인지 박 작가의 물 사랑은 취미를 넘어 더욱 짙어졌다. 결국 마흔네 살이 되던 해,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수족관용품과 관상어를 취급하는 ‘아쿠아리스모’를 창업했다. “40대 중반인 데다 원래 직업과는 다른 분야라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졌어요.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죠. 한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치열하게 임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된 후, 그는 소재의 구도와 배치에 대한 기본기를 다시 닦기 위해 건축학도 시절 전공 책을 펼쳤다. 관상어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회 출품을 위해 사진 공부도 했다. 생물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전문가라도 모든 종류를 골고루 잘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마다 좋아하는 수질이 다르고 남들과 같은 제품으로 세팅하더라도 지역마다 수질에 차이가 있으므로 미생물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수초가 만족할 수 있는 신비의 비료는 없으므로 수초들을 하나씩 관찰하면서 특정 영양분 결핍에 따른 증세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쿠아스케이핑이 취미라면 키우고 싶은 물고기의 특성만 알아두면 되지만, 직업으로 하다 보니 연구할 게 많아요. 다양한 수초와 물고기를 한 번에 관리하다 보니 종류에 따라 맞춰야 할 물의 온도나 수질이 조금씩 달라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물고기들이 아프면 어떤 원인으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수산 생명 질병학도 공부했어요.” 반지하에서 시작한 ‘아쿠아리스모’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어느새 번듯한 2층짜리 건물에 입주했다. 박 작가는 현재 전국 각지 물생활 입문자들의 지표가 돼주고 있다. “관상어를 키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수경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순간이 오죠. 20년 전 저처럼요.” 이 작업에 적응하고 나면 한 단계씩, 막연히 품어왔던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면 된다. 이때 필요한 건 기다림과 인내다. 2주 정도 지나야 수초가 자리 잡고, 물속 생태계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수경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기다림 또한 취미를 향유하는 과정일 터. 기다림의 미학을 진정으로 느낄 순간이다. 초보 아쿠아스케이퍼를 위한 Tip 1 수조 조경을 시작할 때 소일바닥재,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 여과기가 필요하다. 영양분이 함유된 소일바닥재와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는 수초의 성장을 돕는다. 여과기는 물의 흐름을 만들어 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한다. 2 사육할 물고기의 종류와 원하는 수조의 스타일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다. 생물의 유형에 따라 수조의 크기, 수조 내의 수질 상태, 필요한 장비와 식물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3 수조를 세팅한 후 수초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2주 정도 기다리는 것이 좋다. 물고기를 성급하게 넣으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분진이 떠오른다. 수조 속 생태 환경이 천천히 안정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4 초보자라면 구피나 네온테트라를 추천한다. 구피는 단색과 줄무늬 등 종류도 다양하고 수질에도 크게 민감하지 않다. 네온테트라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과 잘 어울려 살기 때문에 여러 종을 함께 키우고 싶을 때 적합하다. 5 물고기가 예쁘다고 먹이를 여러 번 주는 경우가 있는데, 남은 사료가 물속에서 부패하면 암모니아가 과도하게 발생해 물고기가 죽을 수 있다. 6 관상어는 환절기 온도 변화에 따라 외부 기생충이 달라붙는 백점병을 흔히 겪는다. 물 온도를 28℃ 정도로 올려주고, 메틸렌블루 성분의 약품을 사용해 개선할 수 있다. 7 환수는 필수다. 육안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을 2분의 1 정도 남기는 부분 환수를 추천한다. pH와 물속 박테리아를 조절하며 건강한 수조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2022-05-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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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피가 그리는 그리운 얼굴들
- 어쩌다 인연 근무가 끝나면 아무도 없는 숙소로 돌아가기를 싫어한 일본인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달래줄 애완동물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외로움만 있던 방에 새 식구가 생겼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아 개나 고양이는 기를 수 없었던 그녀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를 길렀다. 작은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거피가 싱크로나이즈 선수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아가씨는 우리 아들과 국제결혼을 했다. 며느리는 한국에서 의무 복무기간이 끝났고 아들은 도쿄 나리타공항에 취업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다 싣고 문을 닫는데 며느리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거피가 담긴 어항을 컨테이너에 실을 수도 없고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항은 아버지가 기르시든지 다른 사람 주세요.”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이라지만 뜻하지 않는 이별이었다. 아들의 마지막 말에 어려운 시절을 거피와 함께했던 며느리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잘 돌볼게.” 내 말에 며느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항의 물을 최소한만 남기고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 거피는 이제 나와 인연이 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거피가 게으른 주인을 만나 굶주리며 더러운 물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 안 들으려고 깔끔하게 손질해 놨다. 얼마 후 아들 내외가 전화를 했다. 이사를 무사히 잘했다는 안부 전화였다. 그런데 한참을 통화했는데도 며느리는 전화를 안 끊었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거피의 안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깨끗이 손질된 어항에서 거피들이 잘 놀고 있는 모습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줬다. 정이 많고 심성이 착한 며느리는 거피가 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특별한 아침 “철퍼덕 철퍼덕.” ‘이게 무슨 소리지? 어항이 깨졌나?’ 거피가 이사 온 첫날, 자다 말고 일어나서 어항을 살펴봤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창문 밖은 여명으로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거피들이 아침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였다. “그래 알았어, 이 녀석들아. 밥 줄게.”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꼬끼오~” 하며 닭 울음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나는 요즘 거피들이 지느러미로 수면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 아침도 거피가 지느러미로 노크한 수면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그 동그라미 속으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들 얼굴, 며느리 얼굴, 그리고 예쁜 손녀 얼굴.
- 2019-03-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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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어항 이야기
- 이사한 아들네 집에 가보니 전에 살던 집에서는 못 보았던 어항이 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귀여운 손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필자를 어항 앞으로 이끌며 “할머니, 아빠가 물고기 사왔어요, 예쁘죠?” 하며 자랑이다. 하긴 우리 아들은 늘 강아지나 금붕어 등을 키워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혼 전에는 필자가 반대했고 결혼 후에는 마누라가 싫다고 해서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나 아들이나 마누라의 입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평소 며느리가 큰 집으로 옮기면 물고기를 길러도 좋다고 했단다. 이번에 집을 늘려나간 아들은 ‘이때다’ 하며 갖고 싶었던 어항을 설치한 것이다. 크기는 작아도 산소 공급기와 물 순환 기구, 온도계 등 설치 비용이 꽤 들었다고 한다. 아들이 어릴 때 어항을 한번 설치한 적이 있어 그 비용이 얼마쯤 될지 짐작이 됐다. 필자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저렇게 깨끗하고 맑은 물에 초록 수초가 살랑거리고 자그마한 색색의 물고기가 유영하므로 보기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항 유리벽에 이끼가 생기고 물이 탁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녀에게 예쁜 어항을 보게 해줘야 할 텐데 걱정스럽다. 무엇이든 생물을 기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어항도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그러니 아들이 앞으로 어항을 잘 관리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잘 보살피겠다며 물고기를 기른 적 있다. 내키지 않았지만 너무나 갖고 싶어 해 허락을 했다. 물고기를 기르면서 신기한 모습도 봤다. 필자는 그때까지 물고기는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구피’라는 색이 고운 작은 물고기는 새끼를 낳았다. 어느 날 보니 어항 안에 아주 조그만 새끼 물고기들이 잔뜩 생겼다. 너무 신기하다며 즐겁게 들여다봤는데 다음 날 보니 새끼들이 온데간데없이 거의 다 사라지고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아들은 어미가 먹이로 착각하고 잡아먹은 거라며 새끼 보호통을 어항 위쪽에 설치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어미와 새끼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아들 말대로 새끼 보호통에서 어린 구피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신기했다. 어느 정도 컸을 때 통에서 풀어놓았더니 어미와 새끼 물고기가 잘 어울려 지냈다. 작은 물고기였지만 집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건 가슴 뛰고 신선한 일이었다. 구피는 번식력이 왕성해 새끼를 자주 낳았고 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린 새끼를 분양해주기도 했다. 어떤 아저씨는 구피 새끼들을 분양받으려고 우리 동네까지 오렌지 주스를 사 들고 오기도 했다. 인터넷의 물고기 동호회에 들어가면 각종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한다. 서로 물고기를 교환하기도 하고 정보도 나눈다는데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한동안 어항 청소 등 관리를 열심히 하던 아들은 그 뒤 입시에 매달리게 되면서 물고기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졌다. 작은 어항이지만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니었고 청소를 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물갈이를 자주 해주지 않으니 유리벽에 녹조가 생겼고 물도 탁해져 더는 예쁜 장식품이 되지 못했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인지 물고기도 다 죽어버렸다. 그때 필자는 다시는 생명이 있는 걸 기르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아들네 집에 들여놓은 어항은 참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다. 어항이 가습기 역할도 한다니 관리만 잘하면 좋은 실내 장식품이 될 것이다. 이제는 물고기를 보며 즐거워하는 귀여운 손녀 손자를 위해서라도 항상 깨끗한 어항으로 관리되기를 바란다.
- 2017-08-07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