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가 ‘추체험(追體驗)’이란 단어와 처음 마주했다. 추체험이란 과거에 체험했던 걸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의미로,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끼는 것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당시 그들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경험해보는 게 추체험이다. 신영복 선생은 이런 추체험이 “과거를 새로이 발굴하고 지난 것의 의미를 바꿔놓음으로써, 단순히 옛것을 익히는 온고(溫古)의 의미를 넘어 자유와 해방의 의미마저 띤다”고 말한다.

1982년 여동생과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 지리를 몰라 어쩔 수 없이 강남고속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고작 다리 하나 건넜는데 ‘메타요금’이 엄청 올라갔다. 지금의 이태원 부근에서 차를 세우고 택시 기사에게 따졌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누굴 바보로 알아요? 멀쩡한 사람 코도 베어 간다더니, 어떻게 다리 하나 건넜는데 돈이 이렇게 많이 나와요?”
고등학교 1학년 여동생이 지켜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서울로 전학하는 걸 무서워한 동생 보란 듯, ‘오빠만 믿으라’는 기세로 택시 기사를 몰아붙였다. 반포대교를 건너면 응당 나오는 요금에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택시 기사는 어이없어했다. 그러다 이불 보따리 하나 달랑 짊어지고 올라온 오누이를 보며 옛날 생각이 났는지 기사분은 그냥 가라고 했다. 당시 나는 의기양양하게 동생에게 “거봐. 저 사람이 우릴 속인 거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44년이 지났다. 그사이 나는 서울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 생활하며 살아왔다. 9월에는 손주도 생긴다. 여동생도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 교수 남편과 인천에서 잘 살고 있다.
우리 세대는 쉬지 않고 달려 자산도 쌓고, 직위도 얻었으며, 자식도 키웠다.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는 세상 이치를 좀 알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우리에게 ‘이제 당신들의 경험은 유효하지 않다’며 등을 떠민다. 한 시대를 몸으로 견디며 얻은 교훈이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 일쑤고, 지난 시대의 잔재로 힐난받는다.
풍부한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험의 역설’이다. 이 당혹스러운 갈림길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내 삶의 궤적을 유통기한 지난 추억으로 박제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로 부활시킬 것인가. 어른의 공부는 바로 이 지점, 나의 시간을 인류의 지혜와 연결하는 작업, 그러니까 각자의 추체험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결핍과 부족에서 과잉으로 급변하는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마지막 세대다.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동시에 경험했고, 아직 인생이 절반쯤 남아 있다. 이런 위치에서 ‘옛것’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지혜로 재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나온 50~60년 세월이 갖는 무게를 깨닫는 순간, 그것은 비로소 자산이 된다. 우리가 선택하는 답이, 우리의 남은 삶뿐 아니라 후대의 길까지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옛것인가
먼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옛것에서 배운다는 말이 ‘옛날이 좋았지’라는 향수 섞인 타령은 아니라는 점이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의료, 통신, 교통, 그리고 민주주의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보했다. 하지만 문명의 화려한 외피 뒤에 숨은 인간의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신뢰와 배신, 책임과 회피, 야망과 겸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등 인간이 직면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공자 시대에도, 조선 시대에도, 지금도 본질적으로 같다. 단지 시대의 배경만 다를 뿐이다. 권력의 부패는 물론, 명분을 내세운 자기기만, 약자를 외면할 때 스미는 죄책감도 여전하다.
역사는 직선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사실 일정한 리듬을 타며 순환한다. 분열 뒤의 통합, 번영 뒤의 위기, 억압 뒤의 개혁이라는 사이클은 인류사의 거대한 호흡이다. 이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은 눈앞의 혼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유독 불행한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늘 겪어온 어떤 국면을 통과하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古典)은 그 장엄한 리듬을 기록한 인류의 악보와 같다.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정도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온(溫)’자를 살펴보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가 아니다. 식어버린 음식을 데우듯, 혹은 아랫목을 온기로 채우듯 옛 지혜를 내 가슴속에서 다시 끓여낸다는 의미다. 내 삶의 경험이라는 땔감을 넣어 옛 성현의 문장을 뜨겁게 달구는 과정, 그것이 어른의 공부다. 20대의 우리는 활자로 세상을 배웠지만, 50~60대의 우리는 인생의 구체적 장면들로 그 말씀을 되읽는다. 숱한 실패의 경험, 관계의 소중함,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깨닫는 진리가 바로 그 땔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훈고(訓詁)’, 즉 옛글을 한 자 한 자 풀이하는 일은 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젊은 시절엔 박제된 글자처럼 스쳐 지나쳤던 단어들이 이제는 묵직한 돌덩이가 돼 가슴에 걸린다. ‘책임’이라는 단어에 대해 젊을 때는 그저 맡은 일을 완수하는 정도로 생각했으나, 이제 우리는 그 일의 결과가 타인의 삶에 미칠 파장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뒷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신뢰’도 역시 젊을 땐 한 번의 약속을 이행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겼지만, 그 약속이 쌓여 관계를 만드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은 말을 내뱉는 것에서 단어 하나에 더 깊은 밀도를 담는 과정이다. 말의 뿌리를 묻는 일은 곧 내 생각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우리가 쓰는 말들이 얄팍해질 때 삶도 가벼워진다. 옛것을 통해 단어의 무게를 회복하는 것, 단어의 깊이가 곧 삶의 깊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중년의 언어 품격을 결정하는 진정한 배움의 의미다.
이러한 배움은 나를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타인과 연결된다.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이 강조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은 다음 세대와 소통할 때 반드시 쥐어야 할 열쇠다. 옛것을 본받되(法古) 변화를 읽고 새것을 만듦(創新). 내 삶의 경험이라는 땔감으로 옛 지혜를 뜨겁게 데워내는 ‘온고’의 태도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신’의 마음이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자녀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세대 갈등은 대개 정신이 아니라 형식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 내에서의 부부관계나 부모 자식 간 예의를 생각해보자. 전통이 소중히 여겼던 핵심 정신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가부장적 질서라는 형식을 통해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는 가정을 돌보는 구조 안에서 구현됐다. 당시 경제구조와 사회적 토양은 그런 역할 분담을 요구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 틀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구조나 성 역할에 대한 인식 등 그 형식을 지탱하던 토양은 완전히 바뀌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형식은 수명을 다했지만 그 안에 담긴 ‘존중과 책임’이라는 정신까지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해버리거나, 반대로 정신을 지키기 위해 이미 낡아버린 형식을 고집할 때 갈등은 폭발한다.
과거의 가부장적 질서는 당시의 경제구조 안에서 ‘존중과 책임’이라는 정신을 담아내던 하나의 그릇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그릇이 깨졌다면, 우리는 그릇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어떻게 새로운 형식에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조선의 선비들도 예법(禮法)의 원칙은 지켰으나, 시대의 형편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하며 실천했다. 흉년이 들면 연회를 생략했고, 처지에 맞게 의복을 갖췄다. ‘지금 이 상황에 맞는가?’를 묻지 않는 지혜는 죽은 지혜이기 때문이다. 직장 문화, 가족관계, 친구 사이의 의리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옛 가치를 지킨다는 것은 과거의 형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현하는 ‘법고창신’의 실천이다.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런 재해석은 과거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용기로 이어진다. 우리 세대는 경제성장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을 때 비합리적인 위계와 개인의 희생을 ‘사람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인내하며 살아왔다. 그 시대에는 그것을 ‘미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폭력이다.
참된 어른의 공부는 내가 따랐던 관례 하나하나 햇볕 아래 꺼내 말리는 작업이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정말 본질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관습의 틀이나 나의 불안을 투영한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실수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받았던 상처를 그대로 후대에 전해주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례를 깨는 용기는 결국 세대 간의 신뢰를 지키기 위함이다. 정성을 다해 구운 도자기에 금이 갔을 때 망설임 없이 깨뜨리고 다시 흙을 빚어 불 속에 넣듯, 우리도 현재의 삶을 살리는 방향으로 과거의 경험을 재배치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혜의 사용법이다.
당신의 남은 인생을 위해
옛것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인간의 조건을 담은 거울이다. 내가 겪은 실패, 내가 지켜온 관계, 내가 선택한 그 모든 길은 이미 역사의 어느 페이지와 맞닿아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더 큰 책임감도 갖게 된다.
어른의 공부란 결국 살아온 시간을 지혜로 환전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기억을 다시 읽고, 그것을 현재에 맞게 고치며, 말과 생각을 가볍게 쓰지 않는 훈련이다. 옛것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가 만날 때, 옛것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공부가 된다.
옛것 속에 미래의 답이 있다. 가장 오래된 지혜가 가장 젊은 오늘의 나에게 가장 명쾌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며, 내가 경험한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삶은 깊고 단단한 향기를 내뿜게 될 것이다.
옛 지혜를 삶에 녹이는 법➊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자. 상대가 실수했을 때 ‘너는 어떤 의도로 그런 선택을 했니?’라는 물음표를 던지자. 내 경험(옛것)을 잣대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처한 조건(새것)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게 돕는 것, 그것이 멋진 선배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할 때 상대는 지시가 아닌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➋ 말의 무게를 회복하자. 내가 내뱉은 약속과 사소한 다짐을 끝까지 지켜내는 태도가 곧 신뢰라는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고, 낮은 이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네’라고 시인하는 것이 백 마디 훈계보다 강력한 리더십이 된다.
➌ 사람을 살리는가를 기준으로 삼자. 아무리 훌륭한 원칙이라도 지금 눈앞의 사람을 위축시키고 억압한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껍데기다. 진정한 어른은 상대를 높여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뜻이고, 그들의 인생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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