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쌀쌀하다. 외투를 챙겨 입는 계절이 돌아오면 으레 주머니에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챙겨 다니게 된다. 구수한 군고구마나 따끈한 어묵꼬치와 국물, 바삭한 호떡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길거리에 무작위로 등장하는 천 원의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길거리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주는 요깃거리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친 일상 속 작은 피난처였고, 때로는 삶의 애환이 담기기도 했으며,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는 존재였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입맛 돋우는 세계 각지의 길거리 음식을 담은 다큐멘터리 시리즈 두 편을 소개한다. 두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듯 비슷한 음식 이야기, ‘길 위의 셰프들’
여러 나라의 시장과 골목의 상인들을 찾아가 길거리 음식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때로는 행복을 선사하고, 때로는 위로가 되어주는 음식의 재료와 요리 과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거기에 평범하지만 진솔한 길거리 셰프들의 삶을 함께 조명해 특별함을 더했다.
다큐멘터리는 시즌 2개를 합쳐 총 15화로 구성돼 있다. 한 화 당 30분 내외로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각 화별로 태국 방콕과 일본 오사카, 인도 델리,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대만 자이와 싱가포르, 필리핀 세부 등 아시아 각국의 사람 냄새 나는 음식 문화를 담아냈다. 아시아 편이 인기를 끈 덕분에 후속 시리즈 ‘길 위의 셰프들: 라틴아메리카’도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브라질 사우바도르, 멕시코 오악사카, 콜롬비아 보고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페루 리마, 볼리비아 라파스 등 총 여섯 도시를 돌며 라틴아메리카의 색다른 길거리 음식들을 조명했다.
비슷한 듯 다른 아시아, 다른 듯 비슷한 라틴아메리카의 길거리 음식이 궁금하다면 30분만 투자해보자. 도시 한 곳에 30분이라면 수지 맞는 일이 아닌가. 세계를 여행하듯 1화부터 차근차근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간에 등장하는 종로 광장시장의 빈대떡과 칼국수 집을 다룬 에피소드가 해외여행 중 발견한 한식집처럼 반가울지도 모른다.
재밌는 세계 먹방쇼, ‘필이 좋은 여행, 한 입만!’
에피소드마다 군침 도는 ‘먹방’의 향연이다. 아르헨티나의 광활한 초원, 팜파스의 절경과 말을 타며 소를 방목하는 모습, 남미의 정열이 느껴지는 탱고는 이목을 집중시킨다. 거기에 넉살 좋은 진행자의 존재가 재미까지 더한다. 다큐멘터리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은 미국 유명 프로듀서이자 식도락 여행가인 필 로즌솔의 먹방 여행기다. ‘배고파서 행복하다, 더 먹을 수 있으니까!’를 외치며 멕시코, 태국, 베트남 등 세계 각지를 누비는 필을 쫓다 보면 어느새 허기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세계 곳곳의 현지 식문화를 소개하는 푸드 다큐멘터리지만 예능급 재미도 빠지지 않는다. 개그맨 수준의 입담을 자랑하는 진행자 필 덕분이다. 그는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터울 없이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생활도 스스럼없이 터놓는다. 게다가 방문한 나라만의 특색 있는 문화를 담아낸 장면들이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런 갖가지 매력이 후속 시리즈 제작에 깐깐한 넷플릭스에서 시즌4까지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총 4개 시즌, 22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은 에미상 최우수 리얼리티 프로그램 부문 후보에도 오를 만큼 탄탄한 작품성도 인정받았으니, 믿고 봐도 좋겠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원래대로라면 계절이 주는 싱그러움에 어딘가로 떠났을 테지만, 길어지는 장마에 선택의 여지 없이 ‘집콕’을 하게 생겼다. 그토록 기다리던 휴가가 눅눅한 습기와 함께 수증기처럼 사라진다니 믿을 수 없다. 집에서라도 휴가 분위기를 내고 싶은 마음에 침대에서 급하게 일어나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무엇을 보면 좋을까?
이번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에서도 여행지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세 편을 추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길 위의 셰프들 (Street Food)
여행지에 왔으면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이 인지상정. 언택트 휴가 첫 번째 코스는 음식이다.
‘길 위의 셰프들’은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유명 길거리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음식 문화와 전통, 역사까지 조명하는 시즌제 다큐멘터리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편이 있으며 라틴 아메리카 편은 총 6개국, 아시아 편은 총 9개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한다. 태국의 똠얌,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인도 시크 케밥 등 이름만 들어도 이국적인 향이 물씬 풍기는 음식들은 보는 이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식도락과 함께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셰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프로그램의 재미 중 하나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86년간 전통 요리 '구덕'을 만들어 온 100세 장인의 사연을 들을 땐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보기 좋게 갖춰진 호텔 뷔페도 좋지만, 여행의 참맛을 원한다면 날 것의 매력이 느껴지는 ‘길 위’로 떠나보자. 간접적으로나마 외국의 공기와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편에서는 반가운 서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2. 우리의 지구 (Our Planet)
두 눈으로 배불리 먹었으니, 열심히 돌아다닐 차례.
‘우리의 지구’는 대자연의 광활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모두 담아낸, 그야말로 과학사전 같은 다큐멘터리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평원부터 빙하로 둘러싸인 북극,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는 열대우림, 미지의 세계인 바다까지 전 세계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상기시킨다. 여기에 더해 압도적인 영상미는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환상적인 착시를 자아낸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단순히 지구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면에 있는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등에 주목하며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구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고,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직접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도 자연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다면, ‘우리의 지구’를 추천한다. 다 보고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우리의 지구: 끝나지 않은 여정’을 이어 시청하는 것도 좋다. 다양한 생명체를 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촬영장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다.
3.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집 (The World's Most Extraordinary Homes)
휴가의 피날레는 뭐니 뭐니 해도 숙박.
여행지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며 단잠에 빠져드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집’은 말 그대로 경이로운 집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로, 모두 최고급 호텔을 능가하는 뷰와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건축가 피어스 테일러와 배우 겸 부동산 개발업자인 캐럴라인 쿠엔틴이 진행자로 출연한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집은 대부분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작들이다. 보잉 747 항공기의 날개로 건축한 ‘747 윙 하우스’, 경사각 42도의 절벽에 지어진 스페인 ‘클리프 하우스’, 알프스산맥이 한눈에 보이는 스위스 ‘딴스 빌라’ 등 보고 있으면 입이 절로 벌어지는 집이 연이어 등장한다.
프로그램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줄뿐 아니라 건축가가 직접 건축 과정을 설명하고 그 의미를 부여해 공간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인다. 건축에 흥미가 있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콘텐츠일 것이고,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