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마주친 오철근(77세) 어르신은 오로지 집 주위에서만 맴돌다가 10년의 세월을 속절없이 보내버리고 말았다. 뇌경색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대인기피증에 시달렸고 삶에 대한 의미는 퇴색되어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면서 10년 만에 외출을 했다.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는 시간들을 다시 찾게 해준 외출이었다.
운동 잘하고 공부도 잘했던 핸섬 보이
청소년 시절의 어르신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핸섬 보이였다. 그의 부친은 지방의 기초의회의원이었다. 어르신은 어린 시절 스케이트를 아주 잘 탔는데, 당시 지방에서 스케이트를 탈 정도면 주위의 부러움을 살 만한 집안이었다. 그 시절 농촌은 몇몇 집을 빼고는 다 고만고만한 살림이었다. 겨울철, 꽁꽁 언 논배미에서 썰매는 타는 아이는 많았지만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특별히 선택된 아이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고 외모까지 출중했으니 여학생들에겐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르신에게 청소년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당시 부친은 장남의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셨는지, 아니면 유난히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들의 소질을 파악했는지 스케이트를 선뜻 사주셨다. 은빛 스케이트 날을 번쩍이면서 얼음을 가르던 그는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 경기도 대표로 출전해 입상을 했고, 상을 탈 때마다 운동장 조회 때, 전교생 앞에서 교장선생님의 칭찬을 듣곤 했다.
군 생활도 운 좋게 카투사로 했다. 당시 카투사에게는 일반 군대와는 다른 환경을 제공했다. 어르신은 미군들과 복무하면서 오로지 영어에 매진했다. 통역을 할 정도의 실력은 제대 후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전국체전이 열리면 경기도에서 보낸 협조 공문으로 도 대표 선수로 출전하곤 했다. 하계체전 때는 육상선수로, 동계체전 때는 도 대표 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했다. 스케이트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주 즐기는 운동이었다. 칠십에 가까운 나이에도 태릉은 물론 잠실 롯데월드 빙상장으로 스케이트를 타러 다녔다.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도 그의 스케이트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스케이트만 신으면 펄펄 날았다. 어르신은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술 먹다가 술자리에서 죽거나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쓰러져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술과 스케이트를 사랑했다.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결혼
지병이 있던 아버지의 병치레로 장남인 그는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이웃 마을에 살던 세 살 아래 소녀와 결혼을 했다. 어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른 결혼 후 아내는 곧바로 임신을 했고, 그 사실도 모른 채 그는 군대에 입대하고 말았다. 제대 후 집에 돌아오니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며 엉금엉금 다가오면 어른들 눈치가 보며 슬며시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 시절에는 자식 한번 제대로 예뻐해주지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한 채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지난 시절을 돌이킬 때마다 그는 자식들에게 사랑 표현 못하고 산 걸 제일 안타까워했다.
잃어버린 10년
60대 중반이 막 지나던 어느 날, 머리에 열이 오르고 뜨거웠다. 그게 뇌경색의 전조증상인지도 모른 채 방치하다가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갔다. 중증의 뇌경색이었다. 좌측 팔과 다리가 마비됐고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게 어려운 삼킴 장애까지 발생했다. 어르신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먹는 것’인데, 제대로 삼키지 못했으니 잘 먹지도 못했다. 당연히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여기에 심리적 상실감까지 더해져 우울증이 생기면서 삶의 의지를 잃어갔다.
지독한 뇌경색은 어르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매일매일 빨리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 자살을 생각하던 하루는 실행에 옮겼다. 안방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고 침대에서 뛰어내렸는데 지지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돌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쿵! 소리에 놀라 달려온 둘째 아들에게 발견되어 119구급차로 병원으로 실려 갔다. 미수에 그쳤지만 이후에도 자살 충동이 시시각각 그를 엄습했다.
몸무게 51㎏의 다소 왜소한 체구는 병마로 참혹했다. 한때 펄펄 날던 몸이 한순간에 편마비가 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버렸으니 그 실망이 오죽했을까. 대인기피증으로 만나는 사람도 없이 하루를 버티다가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다시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수없이 기도했다. 이렇듯 삶이 지난(至難)했으니 식구들에게, 특히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다. 아내는 명일역 근처에서 혼자 노점상을 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장사를 마치고 고단한 몸으로 들어온 아내는 온종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보낸 남편의 스트레스를 다 받아줘야 했다. 어르신이 막걸리라도 한잔 마신 날에는 늦은 밤까지 아내를 앞에 앉혀놓고 술주정을 했다. 가부장적인 사고와 직설적인 표현은 자녀들도 힘들게 했다. 2남 1녀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어 일찌감치 독립해 나갔다. 관계는 점점 더 소원해졌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외로움은 점점 깊어졌다.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다
2020년 초에 오철근 어르신을 만났다. 편마비의 불편한 몸과 피폐해진 정신으로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채,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어르신에게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마음도 삭막하게 닫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심으로 위로를 건네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더니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역사에 대한 식견도 높아 한국의 고대사를 포함해 근현대사에 해박했다. 나와 대화가 통해서인지 어르신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잊고 살았던 스케이팅에 대한 추억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어르신은 잠실의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건설되었다는 걸 뉴스로만 봤다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르신의 흔쾌히 그 요청을 들어드리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에 지하철을 이용해 롯데월드타워에 도착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다는 안내를 들어야 했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냥 귀가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기왕 나온 김에 화려한 벚꽃과 연산홍이 화사하게 핀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어르신은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미소를 감출 줄 몰랐다. 연산홍과 어우러져 더욱 홍조를 띠었다. 푸르게 변해가는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유유히 호수를 헤엄치는 백조들의 자유로움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렇게 한동안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찾아갔다.
며칠 후에는 함께 종로로 향했다. 장애인 리프트와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종로에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거리를 걸었다. 휠체어를 밀면서 힘들었지만, 어르신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냈다. 종묘를 찾았다. 종묘는 조선 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받들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번지에 있으며,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휠체어를 타고 종묘를 탐방하면서 어르신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 해박한 식견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들이 좋았는지 어르신은 내친김에 명동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명동 거리로 나갔다. 명동을 거쳐 종로 송해거리의 한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도 한 잔 곁들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인사동 거리를 탐방했다. 그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과 함께 해동하듯 어르신의 마음도 서서히 봄빛으로 물들어갔다.
꽃은 어김없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을 알리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삶의 질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이 어수선한 와중에 아차산에서 시화전 및 시낭송회가 열렸다.
주눅 들었던 날들을 잠시 잊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년 아차산 자락에서는 시화전 및 시낭송회가 열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소 늦춰 5월 23일에 개최됐다. 봄가을마다 열리는 아차산 시화전 및 시낭송회는 벌써 85회째다.
한국국보문학 그룹 산하 국보 낭송협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전국의 시인 및 수필가 등 100여 명의 문인과 지인들이 참석해 시화를 전시하고 낭송을 하는 문화 잔치다.
5월 23일 오전 10시 서울 아차산 등산로 입구에 전시된 100여 점의 시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모처럼 화창한 5월의 주말이라 많은 등산객이 눈에 띄었다. 모두들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시를 감상하며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시를 읊조리며 시향에 흠뻑 취한 등산객들을 보면서 마음이 흡족했다. 아름다운 글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코로나19로 한동안 위축되고 침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모두들 밝은 모습으로 행사를 즐겼다.
임수홍(한국문학신문 및 국보 문인협회 회장)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다소 늦었지만 이곳에서 해마다 봄가을 시낭송회와 시화전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특히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전설을 머금은 아차산에 시화를 걸면서 화사하게 웃고 떠드는 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의 어둠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5월의 수려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시인들의 작품과 낭송은 조용한 숲속에서 은은한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고훈식(조엽문학회 회장·국보문학 심사위원) 회장은 감동이 넘치는 시 낭송을 위한 특강을 했다.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입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통찰이 중요합니다. 희로애락의 상황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 중 대미(大尾)를 장식한 보물찾기는 흥미로움과 더불어 동심의 세계로 푹 빠져들게 했다. 뜻있는 회원들의 정성 어린 찬조로 준비한 보물찾기 상품 중 으뜸상은 임수홍 이사장이 내놓은 70만 원 상당의 도금 다기 세트였다. 문인들은 저마다의 보물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뒤지면서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지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디지털 실버,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이 자주 귀에 들려오는 요즘이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시니어들의 삶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가 청파 윤도균 님을 만난 건 순수문학 수필작가회에서다. 팔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아직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인천 N방송 시민기자로도 활동한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그 열정은 디지털 실버, 액티브 시니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인생 선배로서 닮고 싶은 분. 요즘은 주 3회 근처 초등학교에 나가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단다.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에게 시니어의 삶이란 뭘까.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은퇴 전에는 어떤 일을 하였는지?
처음에는 종로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 판매사업을 했다. 그런데 일할 때 양심을 속일 때가 있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 판매사업 일에 회의가 들던 차에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일이 연결되어 학원 사업으로 전환을 하게 됐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교육과 관련된 일이 싫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학원 사업을 하며 20여 년간 독서실 운영도 했다. 하루에 100여 명 이상의 학생들을 통솔하며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했다. 그 일도 판매 사업 못지않게 힘들었다. 하지만 해맑은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생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조언도 해주고 예뻐하니까 아이들도 나를 따랐다.
교육 사업은 7년 전에 접었다. 시대의 큰 흐름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정성들여 운영해오던 사업을 접을 때는 마음에 다소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퇴 결정 과정은 어떠했는지?
20여 년간 일궈온 사업을 접을 때의 감정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초조함도 있었고 욕심 같아서는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업자는 전망 흐름을 보고 빨리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마음을 내려놨고 한편으로는 편했다. 제2의 인생, 은퇴 후의 꿈을 설계하며 접었다.
이모작 인생은 계획한 대로 잘 이루어졌는지?
하던 일(직업)이 없어졌으니 당연히 처음엔 헛헛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내가 만약 어느 날 갑자기 퇴직했을 때’라는 가상 시나리오를 마음속에 써두고 적응 훈련을 했다. 대안도 미리 생각해놔서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사업할 때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내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살았다. 퇴직과 함께 잡념을 없애기 위해 먼저 운동(등산, 헬스)을 시작했다. 사실, 직장에서의 퇴직이 아니라 내 일을 하다가 일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일반 은퇴자들보다 나는 나이가 많았다. 어느새 70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건강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평소 내 성격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간에 ‘있으나 마나 한 인간’으로 취급되는 걸 가장 싫어한다. 취미로 시작한 운동이지만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해 땀 흘려 운동했다. 그러자 사업할 때와 비교해 건강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스스로 느낄 정도였고 마치 회춘하는 것 같았다. 자랑이 아니다. 몸이 달라지는 걸 실질적으로 체험했다. 건강하니까 매사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도 긍정적이고 의욕적이었다.
은퇴 전과 후의 생활은 어떤 차이가 있나?
금전적인 면에서 보면 은퇴 후의 생활이 많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퇴직 후 줄어든 수입으로 인해 생활이 척박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 한도 끝도 없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달라진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세월 따라 사람이든 자연이든 영원하지 못할 것이기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깨달으려고 했다. 작은 욕심조차 내려놓으면 편했다. 그렇게 즐거운 나의 ‘인생 이모작’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퇴직 전에는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꿈, 소망’ 같은 것을 생각하다가도 돈 생각으로 이어지면 애써 잊으며 살게 되더라. 그런데 이제 은퇴자가 되니 청년 시절 꿈꿔왔던 글쓰기, 사진, 컴퓨터, 운동, 여행, 친목모임, 봉사활동, 취재, 기타 등을 마음껏 하고 배울 수 있어 좋다.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선발되어 13년에 걸쳐 약 300여 편의 기사도 썼다. 인천 N방송 시민기자로 영상뉴스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또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통해 수필작가로 정식 등단도 했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지금의 삶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내 나이 일흔일곱이다. 더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그래도 십몇 년째 계속해온 새벽운동은 빼먹지 않는다. 아침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동네 단골 헬스장으로 향한다.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한 시간에 걸친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으로 2시간을 보내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렇게 하루를 열고 집으로 돌아와 개인 블로그 ‘청파의 사람 사는 이야기’에 새 글을 쓰고 댓글도 읽고 답장을 쓴다(그는 블로그 운영을 17년째 하고 있다. 요즘도 하루에 800~1000여 명이 다녀간다. 블로그 활동은 손자인 도영이를 돌보면서 시작했는데, 도영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은퇴를 앞둔 시니어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신지?
조언이랄 것은 못 되고, 은퇴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람마다 환경, 조건이 다르지만 인생 이모작 시대를 새로 개척해 살아야 하는 은퇴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첫째 : 자신의 현실에 맞는 소박한 은퇴 설계를 하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은퇴 설계에 포함하라.
둘째 : 가족과 시간을 많이 가져라. 지금까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가족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삶을 살아라(가사분담 등).
셋째 : 꾸준히 운동하고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하라(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은퇴는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으로만 간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여운이 남았다. 아울러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떠올랐다.
그는 칠순 때, 북한산 인수봉 암벽등반을 하고 그 후 2년에 한 번씩 암벽등반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팔순에는 북한 암벽등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니어에게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굉장히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집에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노인들 곁을 24시간 지켜주는 곳이 있다. 바로 요양원. 지난 3월 오픈한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를 방문해 시니어로서 노후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면서 꼼꼼히 살펴봤다.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도심형 요양원이다. 지난 3월 8일 오픈한 이 요양원은 최신식 건물에 총 130개의 침상을 갖추고 있다. 오픈한 지 이제 불과 1개월 정도밖에 안 지난 시점에 벌써 60여 명이 입소해 있으며 꾸준하게 입소가 진행중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의 목표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안심과 신뢰와 희망을 주는 데 있다. 요양원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통유리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실내 공간이 밝고 넓고 쾌적해 보여 좋았다. 특히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새집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건축 자재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고 실내 공기질 관리까지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지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 신뢰가 갔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 곽혜련 원장의 안내에 따라 유닛을 돌아봤다. 입소자 어르신들은 민요강사의 프로그램 진행으로 간단한 부채 율동과 창을 따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유닛을 살펴볼 때 입소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오밀조밀하게 잘 갖춰진 최신식 시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곽혜련 원장은 제일 먼저 인간 중심 케어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인간 중심 케어 모델이란 첫째, 어르신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답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함은 물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고 둘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구성해 ‘전문적인 케어’ 서비스를 하고 셋째, 입소자 한 분 한 분을 위한 ‘맞춤 케어’ 서비스를 하며 넷째, 최고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안전하고, 편안하고, 깨끗한 환경을 항상 유지하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각자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지만 시설에 입소하면 그곳에서 짜놓은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KB골든라이프케어는 요양원 시스템에 맞춰 어르신들을 케어하는 게 아니라 입소자 한 분 한 분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입소자가 늦은 아침시간까지 더 자고 싶을 때는 더 잘 수 있고,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대로 누워 있어도 된다. 또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꾀해 어르신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케어를 실천하고 있다.
내 집 같은 편안한 환경
시설 배치의 콘셉트는 내 집 같은 분위기다. 실내로 들어가자 거실이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엔 침실이 보였다. 130개의 침상을 8개의 유닛으로 나눈 방에는 희망채, 행복채, 소망채 등 친근감이 드는 이름을 붙였다. 요양보호사는 근무지 변경 없이 유닛별 전담제로 일한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요양원은 복도형 침실배치로 병원형 구조로 운영을 하고 있으나 이곳은 소규모 유닛을 만들어 유닛이 집의 개념이 되는 집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고 베리어프리 설계를 도입했으며, 유니버셜디자인의 가구를 배치했다. 특히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공조시스템을 설치해 실내 공기의 질을 관리하는 것은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간호 및 의료 서비스의 질도 강화해, 간호 인력이 365일 24시간 대기하면서 케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는 3명의 전문가가 어르신의 기능회복 및 유지를 위한 재활치료를 제공하면서 입소자를 돌보고 있으며, 취미 활동 및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 운영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구성을 가능한 한 다양하게 짜고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외부 강사를 초빙한다. KB골든라이프케어 빌리지에서는 입소자를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유닛 별 운영을 함으로써 입소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식단도 어르신의 상태와 식성에 맞춰 짠다. 소위 맞춤형 식사를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입소해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이 같은 식단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특히 유닛 내에서 직접 밥을 지어 제공함으로써 마치 내 집에서 밥을 해서 먹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입소자들과의 대화
생활채를 돌아보던 중,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어르신,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떠신지요?”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도 정갈해 입맛에 맞는 것은 물론 잠자리도 편해요.”
“혹시 외롭지는 않으세요?”
“솔직히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까운 곳에 딸이 살고 있어 거의 매일 찾아오니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도 읽을 수 있고 신문도 읽을 수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것 아닌가요?”
외롭거나 불편한 점이 그래도 한두 가지 있겠지 해서 여쭤봤는데 어르신은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당신 자서전에 사인까지 해서 기어코 한 권을 선물로 내어줘서 감사함을 느끼며 자리를 떴다.
다른 유닛에서는 아내와 함께 입소한 87세의 어르신을 만났다. 시설에서의 생활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또 여쭤봤다. 시설은 좋은데, 입소자들끼리 소통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어르신은 입소한 지 이제 1개월밖에 안 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각 유닛 거실에 마련된 케어 스테이션에는 어르신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요양보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한 요양보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황선복(59세) 요양보호사는 요양원의 방침대로 맞춤형 1대 1 케어를 목표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분들의 근무 여건은 어떠신지요?”
“업무가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근무 환경은 좋은 편이에요. KB골든라이프케어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타 요양원에 비해 근무 환경이 한결 좋습니다.”
지역 주민 위한 커뮤니티센터 운영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준공 과정에서 일어난 주민들과의 마찰을 풀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좀 더 활용도 높은 복지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주민들의 욕구와 충돌한 것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지역 사회와 상생하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했고, 그 결과로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 1층에 지역 사회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센터를 마련했다. 넓고 채광이 좋은 커뮤니티센터는 앞으로 지역 사회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모임, 프로그램 활동, 강의, 행사 공간 등 다양한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커뮤니티센터 옆으로는 데이케어센터가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데이케어센터는 4월 30일 개소를 한다는 소식이다. 데이케어센터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야간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심하고 가족을 맡길 수 있는 곳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는다. 가족이 돌볼 상황이 안 되면 결국 시설로 들어가야 한다. KB 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도심형 요양시설이다. 요양원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딴곳에 위치해 있으면, 가뜩이나 가족과 떨어져야 있어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 하는 입소자들이 더 고립감이 들 수밖에 없다. 도심형 요양시설의 장점은 입소자들이 마치 마을회관으로 마실 가듯 가까운 곳에서 지낼 수 있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고, 가족들도 입소자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한걸음에 달려와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넓은 통유리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행복해하는 입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자도 요양원으로 들어갈 시기를 짐작해봤다.
꽃가루가 날리고 위험 수준을 초과하는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날들이다. 햇볕도 강
해지고 있다. 이럴 때 우리 몸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바로 눈이다. 몸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눈은 매우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나이가 들면 시력이 점점 나빠진다. 대체로 40대 중반부터 가까이 있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 떨어지는데 이를 노안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이런 증세를 경험했고 그 뒤로 시력이 점점 떨어져 이젠 안경 없이는 일상이 불편할 정도다. 안과 검진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늘 해왔지만 어쩐지 두렵기도 해서 쉽게 나서질 못하다가 용기를 냈다.
서울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비앤빛 강남밝은세상안과를 찾던 날은 봄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는 눈이 좋은 편이어서 지금까지 안과를 가본 적이 거의 없다. 나이가 들어 찾게 되니 어색하기도 하고 살짝 겁도 났다. “어쩌자고 여길 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 입구로 들어서니 현대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마치 카페에 온 듯 소파에 앉아 잡지와 신문을 보거나 차를 마셨다. 카페 분위기가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보호자도 볼 수 있는 수술 현황
안전한 시술, 세심한 케어를 위해 15단계의 60가지 정밀검사가 이루어진다 하니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외 1대 1 상담, DNA 유전자 검사, 수술 전 토탈아이케어, 수술 후 건조케어 등 의료시설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신뢰가 갔다. 그러고 보니, 스마일라식·라섹, 엑스트라 라식·라섹, 옵티라식·라섹 등 수술에 있어 의료진의 숙련도가 높은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최첨단의 검사 장비들을 둘러보니조금씩 기대감도 생겼다. 검안실은 개방형이라 궁금하면 언제든 들여다볼 수도 있다. 누구든지 병원 내부 답사가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구축해둔 것이다. 특히 보호자도 수술 현황을 볼 수 있고 수술 후에는 진료센터에서 집중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영화관처럼 어두운 공간이 있어 들어가 보니 시신경과 망막을 검사하는 곳이었다. 별도로 마련된, 어린이들을 위한 드림렌즈는 키즈카페처럼 밝고 동화 같은 분위기였다.
치료를 시작할 때 충분한 상담 후 결정할 수 있도록 상담실도 여유 있게 준비되어 있는 등 환자를 최대한 배려한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시작된 진료는 안내에 따라 진행됐다(동행한 두 분의 동년기자와 함께). 나는 일단 기본검사만 하기로 했다. 시력검사, 망막검사, 그리고 눈 안쪽을 검사했다. 눈에 바람을 쏘는 안압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데 필요한 눈 속의 압력을 측정한 후 검은 포를 머리 위에 쓰고 선과 색깔을 보며 눈동자 검사도 했다. 백내장 진단도 했다.
안내에 따라서 하면 되는 시스템이어서 검사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검사 결과를 듣는 시간. 의사는 내 눈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관리 방법까지 알려줬다. 나를 포함해 함께 검사를 받은 동년기자들 모두 약간의 백내장 증세가 있어 앞으로 정기적인 검안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외엔 다행히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의 시력 손상이나 시력 저하를 막기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검안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요즘 사람들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신체의 일부처럼 가까이하며 살고 있다. 눈 질환의 원인이 되는 청색광에 하루 종일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눈 관련 질병이 발생하는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안과적 문제는 더 이상 노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신체기관 중 가장 빨리 늙는 부위는 눈이라고 한다. 40대 중반부터 노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노안은 질병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노쇠 현상이다. 안과 질환은 초기에 자각 증세가 없어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눈 질환에 조심해야 하는 시니어는 안과와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듯 눈도 정기적으로 정밀검사를 해서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한다. 시력은 한 번 잃으면 되찾기 어렵다.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건강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눈 건강은 필수다.
입버릇처럼 ‘세월이 빠르다’라는 말을 자주 되뇌다 보니 2018년 무술년(戊戌年)도 역사 속으로 휭하니 사라져버리고 황금돼지해인 기해년(己亥年)을 맞았다. 이쯤해서 동년기자로서 1년여의 시간을 정리해 보려한다.
우선 재작년 동년기자 송년모임에서 나는 ‘독자가 뽑아준 감동상’을 수상했다. 더 좋은 글을 쓰라는 뜻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2018년도에는 한 해를 시작했으나 좋은 글이 잘 써지지가 않았다.
열심히 쓴답시고 장고(長考)를 거듭 하다보면 하품이 나오다 목까지 올라오는 게으름 탓에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 더구나 작년 여름은 전례 없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릴라 치면 금세 쏟아지는 땀방울로 정신까지 혼미해져 그만두어버리곤 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에는 손 놓고 쉬는 것도 한 방편이라 생각하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와중에 백두산 천지에 여행 계획이 잡혔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세 번째 순서인 백두산 천지와 압록강 두만강을 보러 6월 중순에 출발했다. 동년기자 3명과 함께 동행을 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여곡절 끝에 백두산 천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또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늘연못 천지. 천지의 말간 얼굴을 보기 위해서 그리도 많은 시간을 기다렸는데, 막상 드러난 고운 얼굴에는 평화가 한가득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감동의 여운이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 브라보마이라이프에서 동영상 콘테스트 작품을 공모했다. 백두산 천지의 생생하고 그 평화로운 모습과 압록강 두만강을 아우르는 동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려상을 받았는데 나로서는 최우수상을 받은 것보다도 더욱 기쁘고 의미가 깊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시니어 인생 2막을 응원하는 행사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가 11월 7일 오후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됐다. 이 행사에 참석하여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글과 함께 동영상을 편집하여 제출했다. 물론 촬영과 편집과정에서 드러나는 기술적인 문제는 늘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동년기자로서 ‘브라보마이라이프’와 함께했던 나에게 많은 자성(自省)과 함께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나도 할 수 있어. 하면 돼” 한 해를 보내면서 움츠러들지 않고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어 감사하다. 그래서 ‘브라보마이라이프’와 함께 했던 2018년 한 해는 나에겐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작품과 마주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손글씨를 전문으로 하는 캘리그라퍼가 새로운 직업으로 탄생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새로운 취미활동으로도 인기라는 캘리그라피를 김수영(66), 김종억(66)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협조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서예와 비슷한 듯 다른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그리스어 kallos(아름다움)와 graphy(쓰기)의 합성어로 ‘글이 가지고 있는 뜻에 맞게 아름답게 쓰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예쁘게 쓴 손글씨’라고 이해하면 된다. 간혹 캘리그라피를 서예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서예와 켈리그라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서예는 점과 선,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조형미를 통해 완성되고 집필법, 완법 등의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캘리그라피는 기본 원리는 서예와 같지만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글씨에 감정과 생각, 기분 등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유현덕 회장은 “‘풍선껌’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뾰족뾰족한 글씨체보다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어울리듯 단어 분위기에 맞는 개성 있는 글씨체로 생동감을 살려 글씨를 표현하는 게 캘리그라피”라고 설명했다.
김수영 동년기자
처음엔 느낌을 담아서 글씨를 쓰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땐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낸 뒤 써보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따라 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글씨에 강, 약을 표현했을 때 그 느낌이 달라진다는 점이 신기했다.
김종억 동년기자
솔직히 캘리그라피란 용어가 있는지 잘 몰랐다. 단순히 ‘예쁜 글씨네’, ‘잘 썼네’라고만 생각했던 글씨체들이 캘리그라피였다니! 글씨를 쓴다는 점에서는 서예와 다르지 않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캘리그라피의 다양한 활용
개성과 핸드메이드를 선호하는 현시대에 캘리그라피는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활용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기업의 로고, 영화 포스터, 간판 등 폭넓은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소주 ‘처음처럼’의 상표가 있다. 이처럼 캘리그라피의 사용이 대중화하면서 캘리그라퍼, 캘리그라피 자격증, 학원 등이 생겨났다. 유 회장은 “기본부터 다양한 선을 그리는 방법까지 꾸준한 연습이 중요하다”며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세 시간 이상 투자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캘리그라피를 배웠다면 단순히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엽서, 부채, 머그잔 등 일상 소품에 써넣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보는 것도 좋겠다.
김수영 동년기자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 교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캘리그라피를 검색하면 수많은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으니 시니어도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특히 한 번 배우면 집에서도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김종억 동년기자시니어들이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취득하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재능기부뿐만 아니라 손주들에게도 멋진 캘리그라피 솜씨를 한껏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창작활동도 함께하면 약간의 수익 창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는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도전할 만하다. 물론 악필이어도 상관없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처음 시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붓 또는 붓펜, 먹, 머루, 종이만 준비하면 끝. 고가 제품의 붓은 필요없다. 초보자에게는 1만 원짜리 정도면 적당하다. 유 회장은 “고가 제품의 붓은 필요 없다. 초보자에게는 선의 질감 등 다양한 표현을 담을 수 있다”며 “캘리그라피를 심도 있게 배우고 싶다면 붓펜보다는 붓으로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캘리그라피는 붓의 종류, 잡는 방법, 종이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다른 작품을 따라 쓰는 것보다는 선 긋기, 원 그리기 등의 반복 훈련을 통해 기본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이 끝나면 인사말, 계절과 관련한 문구, 명언 등을 따라 써보자. 보다 즐겁게 연습을 마무리할 수 있다.
김수영 동년기자
처음엔 재미있다기보다는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평소에 붓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붓을 먹에 적시는 것부터가 어색했다. 긴장해서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붓을 든 손이 바르르 떨리기도 했다. 천천히 써야 하는데 자꾸 마음이 앞서 선생님으로부터 ‘침착하게 쓰라’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성격이 급한 시니어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마음을 다스려봐도 좋겠다.
김종억 동년기자
2시간의 체험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에는 서예를 배운 경험이 있어 아주 쉬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각적인 요소를 고민하다 보니 마음처럼 예쁘게 써지지 않았다. 그다음엔 선생님이 쓴 글씨를 따라 써봤는데 웬걸… 더 이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나만의 느낌을 담은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모양을 잡아가더니 마지막엔 꽤 괜찮게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배워보고 싶다.
대체로 사람들은 국민연금공단(이사장 김성주, 이하 ‘공단’)을 국민연금만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60이 되고부터 연금을 받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가 215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연금수급자 431만 명, 기금도 601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종합복지서비스 기관이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표는 ‘노후의 행복한 삶’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노후준비 서비스는 어쩌면 공단의 당연한 업무. 공단은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연금을 중심으로 신중장년과 시니어를 위한 노후준비서비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의 각 지역본부에서는 국민연금 관리에 덧붙여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한 “NPS 아카데미”를 2017년부터 개설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작년 7월 한 달여 간 ‘작가탄생프로젝트’ 진행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신중년 글쓰기 마라톤’, ‘1인 크리에이터 과정’,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은퇴자의 구미를 잡아끌었다. 적당한 놀이터가 없는 신중년들에게 문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즐겁고 보람과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중년을 위한 문화 플랫폼 특화 서비스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백수현 본부장(이하 북부본부)은 ‘노후준비 서비스가 공단의 소명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 사업의 기본은 연금관리입니다. 더 큰 틀에서 봤을 때 국민들의 안정된 미래 노후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부본부에서 ‘신중년 특화서비스’를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하는 참신한 노후준비 롤모델로 발전함에 미래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중단 없는 핵심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백 본부장은 덧붙였다. 공단 업무의 블루오션으로 나아가 글로벌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관리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광의의 사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체적 목적은 첫째, 역량 있는 시니어가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 기획으로 자발적 노후 준비 서비스 희망 고객을 발굴하여 사업 추진 효과를 높인다. 셋째, 국정과제의 하나인 ‘신중년 일자리 보장 및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신중년 노후준비 교육 특화 사업으로 일자리 및 커뮤니티 활동 지원 서비스를 연계 추진한다. 지금까지 ‘작가탄생프로젝트’와 ‘글쓰기 마라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쓰게 하는 작가탄생프로젝트
첫 번째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바로 작년 여름내 진행된 ‘작가탄생프로젝트’였다. 방법과 내용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의아해하거나 불가한 일로 단정 짓거나 반신반의했다. 일주일에 2회 강좌와 글쓰기 지도를 통하여 한 달 동안에 참석자 모두가 각자 1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 40명 중 37명이 그 기간 안에 집필을 마치고 37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달 안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로 신중년의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됐다. 그러한 성과를 안고 뒤이어 2018년도에 2기 작가탄생프로젝트를 출범시켜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43명이 참가하였고 그중 36명이 총 6,352페이지의 책 38권을 만들었다. 수강생 김도영 씨의 “은퇴 그리고 아름다운 삶”, 곽정숙 씨의 ”나를 위한 여행” 황선호 씨의 “황 첨지의 독일 유랑기” 등이 있다. 수강생들의 참가 소회에서 프로그램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강정석 씨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만난 “작가탄생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로 표현했다. 신영균 씨는 이렇게 소회의 글을 남겼다. “이 변화의 와중에 덤으로 성찰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이다.
다양한 신중년 문화 플랫폼 성공리에 안착
이러한 여세를 몰아 공단의 북부본부는 지난 5월 5일 일정으로 책 한 권을 쓰는 “글쓰기 마라톤 과정”을 새로 열었다. 2018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마라톤 거리와 같은 총 42.25시간에 걸쳐 글을 온종일 집중적으로 쓰게 했다. 33명이 참가하여 23권의 책을 완성됐다. 권수연 씨의 ‘마르지 않은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화수분’, 장의영 씨의 ‘더 곱게 살즈아’, 조왕래 씨의 ‘브라보마이라이프’, 김종억 씨의 ‘별 하나 꿈 하나’ 등이다. 시니어에 불가능은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북부본부는 여행을 콘텐츠로 하는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를 2017년 11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해 여행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보 여행가 황안나 씨가 함께해 ‘여행하고 일하며 나이 들기’가 주요 과제다. 매달 한 번 국내외 도보와 여행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동영상 시대에 발맞춰 1인 크리에이터을 위한 과정을 열기도 했다. 2018년 2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총 30시간 일정으로 23명이 참가하여 인기리에 진행됐다. 유튜브 채널 기획, 촬영, 편집 과정이었다. 동영상을 통한 새로운 후반생 활기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퇴자 1000만 명 시대다. 변화무쌍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에게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창출해갈 수 있는 신중년 문화 플랫폼 구축은 크게 기대되는 사업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희망의 빛으로 다가옴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소일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시니어에 적당한 놀이터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보람 있는 후반생을 꿈꾸는 시니어가 함께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저마다 고치고 싶은 습관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오랜 습관은 고치기 힘들고 개선 의욕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사는 현재, 나쁜 습관이 있다면 여든에라도 고쳐야 남은 20년이 더욱 즐거울 것이다. 브라보 동년기자단이 꼽은 시니어의 7가지 나쁜 습관들에 대해 최명기 연구소장에게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물었다.
도움말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겸 최명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걱정도 습관이다’, ‘게으름도 습관이다’의 저자)
[사례1] 건강 맹신에 대한 자기 과신 김종억(65) 동년기자
당뇨 환자에게 과도한 운동은 활성산소를 유발해 당뇨 수치를 올린다는 교육을 받았으나 신뢰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했다. 빠르게 걷기 2만 보, 8시간 이상 자전거 타기 등을 했다. 어느 날 저녁식사 전 격렬한 운동을 한 뒤 확인해보니 당뇨 수치가 오히려 상승했음을 알게 됐다. 직접 실험적 수치로 확인한 뒤에야 믿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과도한 운동 습관을 고치고 건강을 자신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Solution 약을 먹고 건강하든, 먹지 않고 건강하든, 건강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면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처방약 대신 식사 조절, 운동 등으로 건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면 검증받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결국 병이 악화하면 나중에는 약은 약대로 먹고 후유증까지 남습니다. 자기 과신보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례2] 바둑 중독(게임 중독) 이두백(68) 동년기자
인터넷 바둑을 즐긴다. 한 번 시작하면 몇 시간을 지속하게 되고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다. 더러는 한두 끼니를 거르며 몰입하기도 한다. 아내의 불평이 커짐은 물론 다음 날 잠이 부족해 나른해지고 허리도 아프고 눈도 따가워지며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맑고 차분한 심적 상태가 고갈되어 가는 것이다. 바둑의 마력과 유혹 그리고 단절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Solution 인간에겐 자존감을 유지할 수단이 필요합니다. 바둑은 그 수단이지요. 또 재미가 없으면 사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는 책도, 영화도, 산책도 재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종일 바둑 둘 시간이 없었겠지요. 최근 바둑에 중독된 것은 예전의 활동들이 재미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게임 중독이라는 생각이 들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 활동을 늘려나가면, 자연스럽게 게임 중독에서 풀려날 겁니다.
[사례3] 난폭운전 습관 김미나(54) 동년기자
여성스러운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운전할 때다. 바쁠 때 과속이나 무리한 차선변경을 하던 게 습관이 돼 이제는 급한 일이 없어도 난폭운전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대학 시절 진한 짝사랑의 상처를 주었던 선배가 내 차를 타게 됐다. 선배는 “너 운전 원래 이렇게 해? 운전 좀 살살 하고 다녀”라며 메마른 말을 던졌다. 이후 숙련된 난폭운전 습관이 스르르 떠나갔다.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한 방의 힘 아니었을까.
Solution 난폭운전의 경우 법적인 문제나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가령 부모님을 모실 때는 난폭운전을 삼가하겠지만 운전 습관을 고치려면 누가 옆에 있건 안전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화날 일이 덜 생기고, 자연히 나를 방해하는 차도 줄어듭니다. 짜증이 나면 물을 마시거나 잠깐 차를 멈춰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태우지 말고 때때로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사례4] 습관과의 GO-STOP 실천 가재산(64) 동년기자
습관과의 고스톱을 통해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나쁜 습관은 아무도 스톱시킬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습관과의 고스톱에서 이겨야 한다. 좋은 습관은 계속 고(go)해서 내 습관으로 만들고, 나쁜 습관은 스톱(stop)해서 버려야 한다. 나는 20년 동안 해마다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습관과의 고스톱 판을 만들어 휴대폰에 저장하고 자주 이것을 꺼내 보면서 하나씩 실천해나가고 있다.
Solution 자신과의 승부는 나쁘지 않습니다. 나와 내기를 해서 좋은 습관을 이어가거나 나쁜 습관이 없어지면 스스로 상을 주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또는 주위 친구들과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서로 감시하고 위로하면서 나쁜 습관을 없애고 좋은 습관을 이어가게 됩니다. 실제 알코올 단절 모임도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합니다. 좋은 습관을 들이려면 좋은 습관을 지닌 이들을 가까이, 나쁜 습관이 있는 이들을 멀리해야 도움이 됩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엔 홍대에 위치한 커플이 함께 데이트하기 좋은 양궁카페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양궁카페 ‘애로우팩토리’는 한국 스포츠의 강세 종목인 양궁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이색 카페다.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10개의 사선으로 꾸며져 있고 카페처럼 앉아서 음료와 스낵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도 놓여있다.
실내로 들어서자 약간은 어둠침침한 조명 아래 파란 인조잔디와 표적지가 눈에 띈다. 한눈에 실내 양궁장임을 알 수가 있다. 검은색의 벽면에는 각종 양궁 장비 세트가 가지런히 걸려있다. 비록 10m의 미니 양궁장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넉넉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트를 하듯 양궁을 할 수 있는 이곳은 양궁선수 출신 대표와 직원이 상주하며 활 쏘는 방법을 알려준다. 양궁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도 손쉽게 체험을 할 수 있다. 양궁을 체험하려면 고가의 장비를 구매해야 하고 양궁장까지 멀리 이동해야 하지만 이곳은 시내 한복판인 도심에서도 양궁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또 실내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양궁을 체험할 수 있다.
카페 이용 가격은 화살 30발에 1만 원, 1시간 지유 이용에 1만5000원이다. 온종일 양궁을 하고 싶다면 평일 기준 3만5000원을 지불하면 된다. ‘애로우팩토리’는 연중무휴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우 사장은 “시작과 끝나는 시간은 사장 마음대로”라며 웃으며 말한다.
사장님이 먼저 안전이 중요함을 인식시킨 후, 직원이 직접 안전장비를 꼼꼼하게 채워준다. 그리고 활을 넣는 화살집은 허리에 채우고 손가락에는 가죽으로 된 보호대를 착용한다. 활의 무게는 생각한 만큼 꽤 무거웠다. 그냥 드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목표물을 겨냥하기 위해 계속 들고 버텨야 할 때는 팔에 경련이 일어나는 듯 떨렸다.
화살을 먼저 다 쐈다고 해서 표적지에 박혀있는 화살을 가지러 갈 수는 없다. 5개 사로가 모두 끝나고 활을 제자리에 안전하게 놓아둔 후 동시에 사선으로 걸어 나가 화살을 회수해야 한다.
약간의 연습 후 본격적으로 대결을 펼쳤다. 12발 사격의 경험을 생각하니 자신감이 붙었다. 한 발 한 발, 혼신의 노력을 하면서 활시위를 당겼다. 이게 웬일인가? 처음 사격할 때보다 훨씬 더 명중률이 높지 않았다.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역효과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상단과 하단을 오가며 들쑥날쑥 맞는 화살. 약간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잘 쏘겠다는 욕심이 화를 부른 결과가 된 셈이다. 잘 쏘겠다는 조바심이 스스로 사격을 망치고 말았다. 역시 심리적으로 흔들리면 화살은 미세한 영향을 받아 오히려 명중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새삼 깨다는 순간이었다.
양궁선수 출신인 이동우 사장은 “그냥 놀고 싶어서 양궁카페를 차렸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차츰 찾는 사람이 늘어 전국 도심지에 7개의 지점이 생겨났다고 한다. 6월 중에는 서울 영등포지점이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양궁카페는 색다르고 재미도 있어 도심 속 이색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단순한 양궁체험이 아닌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시니어 기자로서 이런 이색 체험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런 체험장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찾았던 ‘애로우팩토리’는 깜짝 문화충격을 안겨 주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색 실내양궁카페 ‘애로우팩토리’, 멋진 놀이문화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면서 체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