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발레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버지 사업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꿈을 접었어요. 부산의 한 클럽에서 파티플래너로 잠시 일할 때 외국인이 훌라춤 추는 것을 봤어요. 훌라춤 하면 이미지가 코코넛 브라에 뭔가 촌스러웠지만 그 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가르쳐주는 곳 어디 없나 찾다가 서울에 있는 훌라댄스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고. 그런데 궁금했다. 하와이도 한 번 다녀오지 않은 강사가 어떻게 하와이 전통춤을 가르치고 있는지 말이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하와이 사람이 추는 훌라댄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예술이지! 궁금해서 2009년도에 하와이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먼저 2주 정도 일정을 잡고 갔어요. 알아보려고요.”
그때 지금까지 한국에서 배웠던 훌라춤이 왜곡이 심하다는 알았고 결국 제대로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배울 채비를 하고 하와이로 떠났다.
“3개월 과정으로 훌라댄스 명장에게 배우려고 갔습니다. 일반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어떤 분이 ‘한국인은 유명한 사람들이랑 사진만 찍고 가더라? 우리는 그런 거 딱 싫어해’라고 하시더군요. 우리 문화를 어떻게 지켜왔는지 아냐고 하면서요.”
김주영협회장이 하와이로 가기 전 궁금했던 것처럼 하와이 현지에서 훌라 명장에게 직접 사사한 정식 이수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 협회장은 10년 동안 하와이와 한국을 오가며 노력했고 2011년 훌라 명장 이수자 자격을 취득했다. 2015년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호놀룰루시립밴드의 초청을 받아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 앞에서 공연을 했다. 올해 메리 모나크 축제 무대에서는 하와이에서 제대로 배워 익힌 훌라춤은 물론이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전파했다.
“한국에서 훌라댄스를 가르치는 몇몇 분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하와이에서 유명한 선생에게 배웠다며 이름을 여러 명 써놓았더라고요. 그런데 하와이에서는 선생을 한 분 이상 두지 못하거든요. 선생들끼리 다 공개해요. 남의 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그걸 모르시는 거죠.”
절실한 마음을 담아 소중하게 배운 춤인데 어떤 이들은 가벼이 바라보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경계만 안 하신다면 우리나라에서 훌라댄스 가르치는 분들 많이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와이로 함께 가서 배우고도 싶어요. 실제로 워크숍도 한번 했어요. 무대 경험을만들어드리기도 했고요. 제가 하와이에서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것을 한국에서 훌라댄스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나눌 생각입니다.”
춤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이윽고 눈을 감는다. 감은 눈앞에 펼쳐지는 건 에메랄드빛 바다, 미소 담긴 맑은 얼굴, 하늘하늘 치마 끝자락, 사랑과 고귀함을 담은 손끝. 훌라댄스의 매력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동경의 세계로 빠져들기 쉽다는 점이다. 하늘과 땅, 대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전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고층빌딩이 길게 늘어선 강남의 대로변을 지나 한적한 골목에 다다르니 하와이예술문화협회의 코랄빛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쿨렐레와 파도소리가 시원하게 들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훌라댄스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 하와이 섬의 전통춤으로 그곳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에 의해 계승되어오고 있다. 춤의 모든 동작이 수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와이 전통음악인 멜레 선율에 맞춰 춘다. 하와이의 해변 곳곳에서 이 춤을 추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어서인지 여행을 마치고 훌라 춤을 배우러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김주영 하와이예술문화협회장은 말한다.
“시니어 여성분들 중에 하와이 여행에서 훌라춤을 보고 난 뒤 잊지 못해 오셨던 분들이 꽤 계셨어요. 그곳에서 진짜 하와이 훌라댄스를 보고 용기를 내시더라고요. 춤을 추면서 우아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말이죠.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잖아요.”
2011년에 정식 창단한 하와이예술문화협회는 서울과 부산을 비롯해 광주, 대구, 대전 등에서 훌라 교실을 열고 있다. 등록 인원은 100명 정도. 30대에서 40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50대에서 70대까지도 훌라댄스로 세대가 공감하며 어울린다. 훌라춤의 가장 큰 장점은 추는 동안 행복에 빠진다는 것. 노래가사에는 자연과 사랑이 가득할 뿐만 아니라 이별을 노래할 때도 쓰라린 마음의 상처 대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라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담는다고 한다.
“훌라춤을 추는 시간만큼은 스트레스를 잊는 겁니다. 노래에 따라서 내 몸에 긍정 에너지가 생겨나요. 그리고 하와이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대부분 야생의 꽃과 식물이잖아요. 그것을 다 수화로 표현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된 노랫말과 손동작을 외워야 율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약간의 두뇌 회전이 필요하다. 그래서 치매 예방에도 좋다고들 한다고. 훌라춤은 하체 근육은 물론 몸 전체 근력을 향상시켜주어 시니어에게 특히 권할 만하다. 골반을 흔드는 동작이 많아 자궁 건강에도 좋단다.
“훌라춤을 출 때 발레 슈즈를 신는 분이 계신데 잘못된 거예요. 발을 구속하면 안 됩니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서 에너지를 받고 손을 펴서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 전파하는 거죠. 자연과의 교합을 추구하는 춤이 훌라댄스예요.”
엄마와 딸이 정답게 훌라 선율을 따라가다
하와이예술문화협회에서 훌라댄스를 처음 춰봤다는 유병란(61), 이보라(29) 모녀를 만났다. 김주영 협회장의 구령에 맞춰 춤을 익히고 있었는데 처음치고는 둘 다 곧잘 따라해 초보 훌라 댄서(?)인지 모를 정도였다. 훌라춤을 배우러 온 계기에 대해 이보라 씨에게 물으니 배우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어머니 유병란 씨 때문이었다고.
“봉사하러 갔다가 훌라댄스 공연을 봤어요. 연배가 있는 분들이 무대에 서셨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막 흉내도 냈어요. 집에 와서 우리 애한테 얘기해주고는 혹시 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자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처음이니까 어색하기도 한데 아주 재미있네요.”
웃음이 절로 나는 바다의 춤
이날 청일점이었던 손정식(52) 씨는 주말을 맞아 서울로 올라온 부산 사나이였다. 구릿빛 피부가 훌라춤과 너무 잘 어울렸다. 하와이에서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 그는 하와이예술문화협회에서 이사직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돕는 한편 8월 말에 있을 해운대 하와이안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해운대구 재송2동장이기도 한 손정식 씨는 하와이안 페스티벌 규모를 늘려 해운대를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다.
“6년 전 하와이안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담당자인 제가 훌라춤을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추기 시작했는데 너무 마음이 좋더라고요. 하와이 전통음악을 멜레라고 하는데 훌라춤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멜레만 들어요. 다른 노래는 안 듣게 되더라고요. 춤출 때만큼은 항상 웃게 됩니다. 정서에 제일 좋습니다.”
한국 무용수, 훌라걸스 선언하다
홍예담(54) 씨는 11년간 경남 창원에 살면서 한국무용을 가르쳐왔다. 그리고 3년 전 남편이 직장을 서울로 옮겨 이사온 후 고민에 빠졌다.
“이곳에 와서 ‘한국무용으로 내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있으니까 그냥 ‘운동을 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처음 훌라춤을 접했습니다. 그때가 서울 온 지 만 2년 정도 됐을 무렵이에요. 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에 딱 적합했던 것 같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출 수 있는 춤이었어요. 처음부터 정말 버릇없게 선생님께 말했어요. 나는 ‘가르칠 목적으로 배운다’고요. 작년 11월에 들어와 2개월 배우고 1월부터 지도자 과정을 밟게 됐습니다.”
창원에 있을 때만 해도 모셔가기 바쁜 무용 선생님이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찾아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 가르친 경험이 있잖아요.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지도를 하면 더 많이 늘어요. 안 보였던 것들이 세밀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가 오히려 배우고 있더라고요.”
사실 올해는 하와이예술문화협회가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할 것이다. 훌라춤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2019 메리 모나크 축제’ 전야제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뿐만 아니다. 훌라 팀과 함께 우리의 전통예술 공연을 하와이 관중 앞에서 선을 보여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제는 한국에 사는 이들에게 훌라춤이 주는 힐링의 세계를 선사할 시간이라고 했다. 올여름 사랑을 노래하고 순박한 미소가 담긴 훌라댄스의 리듬에 꼭 한 번 빠져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