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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내려 북적이는 부산역 역사를 빠져나온다. 역 광장을 가득 채운 건 가을 햇살이다. 그것은 체로 거른 듯 맑아 상큼하다. 발길에 절로 탄력이 붙는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동 골목엔 ‘이바구길’이 있다. 부산 동구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옛날 동네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동네의 근현대 문화와 풍속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초입엔 ‘구 백제병원’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근대건조물’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서양식 건물이다. 그런데 외관이 범상치 않아 도드라진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지은 건물이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멀쩡한 외모를 유지한 게 아닌가. 100년 풍상에 시달린 건축이라면 보통 낡은 기미를 풍기게 마련이다. 시들고 삭은 기색으로 시간의 횡포를 웅변하거나 고색창연한 운치를 돋우기 십상이다. 그러나 애초 워낙에 잘 지은 덕분일까, 이 4층짜리 적벽돌집 외형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당대의 첨단 건축 기법을 통해 등장한 건물인 걸 직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는? 아쉽게도 원형을 많이 잃었다. 1972년에 발생한 화재로 많은 것이 잿더미로 스러졌다. 외부와 달리 목재를 주재료로 사용한 탓에 피해가 컸다. 이후의 보수 작업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건물주는 원형을 복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벽면과 바닥의 형태는 물론 천장을 도배한 그을음까지 그대로 놔두었다. 기본이 원체 튼실해 뼈대까지 손볼 필요는 없었다. 이를테면 벽체 거죽이 얼마나 단단한지 콘크리트못 하나 박아 넣을 수 없었다니 말 다했다. 현재 이 빈티지한 건물 1층엔 카페가 있다. 묵은 세월이 새겨 넣은 신비감까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생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투박함과 묵직함에 예술적 디테일, 나아가 건물 역사의 스케일까지 가세해 민감한 이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2층엔 창비출판사가 차린 복합문화공간 ‘창비 부산’이 있다.
저 옛날의 백제병원은 외과의사 최용해가 지은 대형 사립병원이었다. 그런데 건물의 용도 변화 여정이 다채로워 흥미롭다. 개업 5년이 지난 1932년, 최용해는 기묘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일본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그러면서 건물은 동양척식회사로 넘어갔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이름의 청요릿집이 들어섰다. 중일전쟁이 터지면서는 일본군 장교 숙소로 쓰였다. 해방 직후엔 부산 치안사령부 건물로, 1950년엔 중국 임시대사관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엔 개인에게 불하되면서 예식장으로 바뀌었다. 이후의 양상은 생략하더라도 어지러울 지경으로 변동이 잦았던 걸 알 만하다. 말하자면 ‘구 백제병원’은 부산의 사회사와 풍속사가 압축파일처럼 내장된 건물이다. 따라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 모든 게 변한다는 걸, 흘러가고 지나간다는 걸, 세상에서 나그네 아닌 게 없다는 걸 일깨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승도 추락도, 기쁨도 슬픔도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련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바라보는 착시와 오해를 교정하라 묵시하는 곳일 수도 있다.
아슬아슬한 ‘168계단’이 품은 사연
이바구길을 따라 이제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을 움켜쥐고 빼곡히 들어앉은 집들이 보인다. 간혹 새집도 섞여 있지만, 주로 자그맣고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간신히 숨을 쉬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곳은 삶의 변방이었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천신만고한 생활이 펼쳐졌던 곳이다. 의지가지없던 피란민들은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피란민뿐이랴. 부두 노동자, 자갈치시장 일꾼, 공장 근로자, 영세상인 등 중심부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초량동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간절한 삶을 꾸렸다. 이바구길은 이렇게 유적처럼 남은 과거사의 명암과 요철을 이바구하는 길이다. 동네에 고인 문화적 요소를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가시적으로 재구성한 문화재생 테마길이다.
볼거리는 충분히 많다. 발목 잡힌 듯 딱 멈추게 되는 건 ‘168계단’ 앞에서다. 좁고 길고 가파르기 짝이 없다. 허공에 펼친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한 계단이다. 산동네 사람들은 이 험악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면제받지 못한 채 생활을 도모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 아래 있었던 우물물을 퍼 나른 루트였으며, 노동의 피로를 한잔 술로 달래고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의 발길에 닳고 닳은 계단길이었다. 희망을 품고 고역을 감수했던 주민들의 일상이 계단에 비쳐 먹먹하다.
‘168계단’ 옆에는 ‘김민부 전망대’가 있다. 부산에서 출생해 31세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의 시는 빼어났으나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거의 잊힌 시인이 됐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자로 알려진 게 고작이다. 일찍이 김민부 시의 천재성을 증언한 논자들이 다수였지만 정작 그는 궁핍에 시달렸다. 시는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높이 날았으나 종단엔 실존의 비애로 무너졌다. ‘김민부 전망대’에 오르거든 그의 이름을 가슴으로 한번 호명해볼 일이다. 참으로 반가운 건 부산에서 ‘김민부 문학제’가 연례행사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속세란 더러 경박하지만 야박한 것만도 아니다. ‘168계단’을 거쳐 언덕 중턱에 이르면 ‘유치환의 우체통’을 만날 수 있다. 부산 동구에서 살다 타계한 유치환 시인을 추모하며 만들었다. 마음에 둔 이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과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여도 좋겠다.
발길은 이제 ‘문화공감 수정’에 닿는다. 일제가 조선 침탈의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엔 일본식 가옥이 여럿 있다. ‘문화공감 수정’은 개중 번듯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전통 목조주택이다. 창호 문양 같은 세부 장식의 다양성,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급변하는 실내 공간 구성이 특징적이다. 한옥과 달리 복도 공간을 정교하면서 활달하게 구사한 대목 역시 일식의 전형이다. 이모저모 본때 있게 지은 집이다. 관리 상태도 최상이다. 전국에 적산가옥(敵産家屋, 자기 나라나 점령지 안에 있는 적국 소유의 집)이 남아 있지만 이곳처럼 잘 보존된 집이 드물다고 한다.
1943년에 지어진 이 집은 해방 뒤 한국 사람에게 불하된 뒤 ‘정란각’이라는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 2007년에 이르러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적산가옥을 쳐다보기조차 싫어했다. 부끄러운 역사의 잔재로 인식해 철거나 개조를 능사로 삼았다. 그러나 적산가옥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면? 그럼 일본 정부가 반색하지 않을까? 침략의 증거물이 사라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사가 겹으로 엉겨 있는 ‘문화공감 수정’은 캄캄했던 전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이곳 내부는 기능성과 미학으로 빼어나다. 온통 유리창을 낸 전면으로 들이치는 정원 풍경도 수려하다. 한때 이곳은 카페 공간으로 소비되었다. ‘인스타 핫플’로 유명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상징성이 흐려졌는데,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역사 전시공간으로 전환했다. 옳은 결정이다.
정정숙 부산동구문화원 원장대행
“부산 동구는 부산 문화의 본산지다”
‘부산 동구를 알면 부산 전체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지역사와 문화 측면에서 동구에 유형・무형의 많은 자산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동구엔 인적・물적 유입은 물론 문화 교류의 통로인 부산역과 부산항이 있다. 정정숙 문화원장대행은 이와 같은 정황을 근거로 ‘동구가 부산의 뿌리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동구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래 명실상부한 부산의 관문으로 기능했다. 부산역 역시 문화자산을 축적하는 문물의 유입 경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과 더불어 동구의 문화가 성장했으며, 여기에서 나온 에너지는 부산 전역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확산됐다. 동구의 문화는 한마디로 부산 문화의 본산이자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이라는 지명 자체가 동구에 있는 증산에서 유래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동구의 문화 파워를 대표하는 공간을 꼽는다면?
“동구의 히스토리를 고스란히 담은 문화재생 테마 골목길인 ‘이바구길’이다. 이 길은 부산시가 2011년부터 추진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탄생했는데, 매우 재미있고 매력적인 곳이다. 꼬불꼬불 연달아 이어지는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만날 수 있는 풍경과 명소마다 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다. 길을 걸으며 과거를 만나고, 그러다 문득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바구길 인근에 있는 차이나타운과 연계해 답사하면 한층 즐겁다.”
31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기리는 ‘김민부 문학제’가 부산에서 운영되고 있어 반가웠다.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다시피 한 이름이라서.
“김민부 시인은 우리 동구의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혼을 기리기 위해 이바구길에 ‘김민부 전망대’를 조성했지만 미흡하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공간 확장이나 시인을 재조명하는 문학 행사 활성화 대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부산동구문화원이 추진하는 역점 사업을 소개해달라.
“우리는 25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민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다. 특히 ‘노래교실’이 인기다. 무려 5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노래를 즐긴다. 옛 추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역시 반응이 좋다.”
예술 프로젝트 ‘꿈의 오케스트라 부산’을 운영하는 목적과 성과도 궁금하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문체부가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국가 사업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동구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한국형 모델이다. 음악의 힘으로 사회에 희망을 부여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단원은 오디션을 통해 뽑은 초2부터 고2까지 60명, 음악감독 1명, 강사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성과는 매우 크다. 정기 연주회와 작은 연주회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음악을 즐기며 밝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라 다행스럽다. 이 아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나올 수도 있을 테고.”
끝내 용서하지 못한 사람
1955년에 태어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이 사람은 시리아계 미국인으로 대학에서 철학과를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른 불교 신자이며,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바로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남다른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암에 걸려 끝내 일어서지 못한 그는 자신을 버린 생부(生父)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친아버지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평생에 걸쳐 품고 있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 한순간도 용서하지 않았던 그 돌덩이 같은 모진 마음이 병으로 발현되지 않았을까요.
암세포보다 위험한 것
가수 윤도현은 최근 3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면역세포인 림프구가 악성으로 바뀌어 종양이 생긴 ‘위말트림프종’이란 희귀암에 걸린 뒤 치료와 회복에 전념해온 그는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힘든 투병 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고립 대신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말자고 환자들을 응원했습니다.
가장 취약한 곳에 파고드는 그분
필자는 지난 한 달 용서, 사과, 화해 이런 말에 몰입해서 내가 얼마만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이맘때 일기를 꺼내 보았네요.
요즘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아 그런지 말도 삐딱하고 가시 돋친 듯 날카롭고 하더니 결국 몸에서 사달이 났다.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틈을 바이러스나 병균이 침투한다더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나한테는 바로 방광염이다. 얼마나 아프던지 밤새 앓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원인을 찾으려 병원 가서 검사해봤더니 듣도 보도 못한 균들이 내 몸을 장악했다고 한다. 의사는 항생제와 주사 처방 뒤에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면역력은 떨어진다. 이제라도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얼른 멈추고 말과 마음을 회복해야 몸도 잘 회복되겠지. 잘 될까?
용서(容恕)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용서를 구해보거나, 용서를 구하는 상대를 용서한 적이 있습니까? 이 ‘용서’란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용서가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요, 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요, 용서하면 무슨 이득이 생길까요.
‘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
사전 뜻풀이만으로는 용서의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용서(容恕)에서 핵심 단어는 용서할 서(恕)로,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남의 처지에 동정하는 어진 마음을 ‘서’라고 합니다. 내 마음과 상대 마음을 같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용서입니다.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로 내 그릇, 얼굴(容)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두 마음을 같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 입장에, 그 위치에, 그 상황에 똑같이 처해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이게 바로 용서하는 마음, 용서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용서에 도달하는 다섯 단계(REACH)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용서 분야 학자인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 박사. 정작 자신은 1955년 어머니가 강도 살인을 당했을 때 정신적 고통과 살인자를 향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피해자이자 연구자로서 그는 오래도록 살인자를 용서해야 할지를 놓고 씨름하면서 ‘용서와 화해’(Forgiving and Reconciling)라는 책을 저술했고, 다섯 단계를 거치는 용서의 기술을 전했습니다.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용서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1단계(R:Recall the Heart, 상기하기) : 상처를 부인하거나 억지로 잊거나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2단계(E:Empathize, 공감하기) :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봅니다.
▶3단계(A:Altruistic, 이타심 갖기) : 상대를 축복하고 잘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내면의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4단계(C:Commit, 약속하기) : 상대를 용서하기로 자신과 약속하고 실행합니다.
▶5단계(H:Hold on, 견디기) : 용서라는 결정에 회의가 들더라도 그 마음을 견디고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살인자 구명운동에 나선 두 아버지
1987년 서울예고 성악과 2학년 재학 중 점심시간에 선배들한테 끌려가 폭행당해 죽은 고(故) 이대웅 군의 아버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해외 출장길에 아들 소식을 들은 그는 학교를 다 부숴버리리라 했을 만큼 격분했던 마음을 간신히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난동을 부리면 아버지가 저리 모질어 아들이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굳게 마음먹고 감옥에 갇혀 있던 가해 학생을 풀어달라고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 이름으로 장학회를 만들어 30년 남짓 3만 명이 넘는 학생을 도왔습니다. 더욱이 아들 죽인 원수의 학교인 서울예고와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해 재정난을 해결해주고, 지난 5월에는 200억이 넘는 사재를 기부해 대형 문화공간 서울아트센터를 완공했습니다.
1958년 미국 필라델피아 해밀턴가에서 무차별 폭행으로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11명이나 되는 흑인 청소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1달러도 안 되는 댄스파티 입장료를 구하려고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오기병 씨는 미성년인 범죄자들을 용서하고 무죄로 석방해달라는 탄원서와 함께, 가난한 수감자들의 직업교육과 사회적응에 쓰라고 당시로는 큰돈인 500달러를 재판장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아버지는 그렇게 두 아들을 영원히 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서 안 하면 마음의 병만 커져
‘용서’라는 행위는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우리가 하지 않을 때 도리어 손해 나는 일로 자주 밝혀지곤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상태는 내 안에 증오와 복수라는 불을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결국 내 속을 태워 아프고 병들게 합니다.
인간의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Telomere)라는 조직은 세포 노화 및 질병과 밀접한데,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면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텔로미어 연구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교수팀은 ‘자애(慈愛) 명상’을 통해 남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커질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더 이상 짧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길어지는 경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상 훈련을 한 집단이 분노와 증오 같은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에 비해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결과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하버드 T. H. 챈 보건대학원 연구팀에서 ‘용서 워크북’을 작성한 사람은 우울감과 불안감이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용서를 하면 과거를 곱씹는 빈도가 줄어들어 부정적인 감정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와 적대감으로 광포해진 현대 사회에서 용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평생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마음 치유의 첫걸음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때 그 사건으로 항상 자신을 갖다놓곤 합니다. 뒷걸음질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영어로 ‘forgiveness’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앞으로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용서함으로써 뒤로 향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복수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용서입니다. 말처럼 쉽다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노력한다고, 안다고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용서해야 내가 살고, 내 병이 낫고, 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다니 마음 깊숙한 곳에 뒤돌아 있던 자신에게 용서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아봅시다.
이해인 수녀님의 ‘용서의 계절’을 함께 나누며 마음 반창고 9화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시간을
알뜰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쓸데없이 허비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로 삼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듣는 일에 소홀하며 건성으로 지나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내가 어쩌다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남의 흉을 보고
때로는 부풀려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나의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교묘하게 되풀이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소한 일로 한숨 쉬며, 실망하며
밝은 웃음보다는 우울을 전염시킨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 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새 인생을 펼치고 있는 중장년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디지털이 아닌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했다. 캘리그래피 손글씨 카드를 만드는 이유다. 주변에서는 “요즘 누가 손편지를 쓰느냐”고 했지만, 6년째 캘리엠 카드를 찾는 이들은 줄지 않았다. 박서영 대표는 ‘진심’이 담긴 감성 디자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믿는다.
오랫동안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동한 박서영 대표는 2016년 ‘캘리엠’을 창업했다. ‘캘리그래피 모놀로그’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개인 블로그에서 이름을 따왔다. 박 대표는 캘리그래피 작가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문구가 적힌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 사업이 들이는 품에 비해 수익은 크지 않아요. 재고 관리도 어렵고요. 처음 창업했을 때 주변에서 조금 하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요즘 누가 종이를 쓰느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이 아닌 것들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드 한 장으로 사람들이 소통하는 거잖아요. 읽고 버릴 순 있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진심을 읽는 거니까요. 그래서 취미생활처럼 묵묵히 꾸준히 했어요. 신기하게도 수요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자 오히려 카드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디지털이 아닌 것들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박 대표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어떤 메시지를 카드로 전할까 매번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토끼해, 호랑이해처럼 시기에 맞는 문구를 매년 새로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버이날 문구다.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우리 엄마여서 고마워요’, ‘우리 아빠여서 고마워요’로 나누었는데 정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전히 캘리엠의 베스트셀러 카드이기도 하다.
공공디자인에 눈을 뜨다
박 대표는 2018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여름편 캘리그래피’ 작가로 선정돼 처음 공공 글판 작업을 했고, 이를 계기로 공공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저 도시에 문구 하나가 걸렸을 뿐인데 지나가던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그 글을 보러 일부러 누군가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고친 게 아니라 늘 지나가던 길에 문구 하나 더 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도시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더라고요. 오래됐다는 이유로 뭐든지 갈아엎는 건 재건축에 가깝겠죠? 제가 하고 싶은 도시재생은 오래된 것에 감성을 입혀서 활성화하는 일이에요. 약간은 손봐야 하겠지만, 사람이 모이도록 해서 그 지역 안에서 자부심을 갖고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이랄까요? 도시재생의 중심이 ‘사람’이 되는 거죠.”
공공디자인이 갖는 힘을 경험한 박 대표는 2019년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실시하는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신청했다. 항상 지나다니던 일산시장에 글판처럼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간판에 가게 이름만 적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메시지로 전달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순댓국 한 그릇으로 오늘 하루가 따뜻하기를’이라는 문구로 감성도 의미도 전달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간판 사업은 지자체, 협의체, 상인, 주민 등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야 했다. 또 도시계획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움직여야 할 일이라 개인이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간판이 아니라 제품 패키징에 그 가치를 담아보기로 했다. 지역에서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가게의 상품에 브랜드 가치를 녹여 예쁜 패키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군의 로컬 상품들을 패키징하는 일을 했다. 앞으로도 로컬 상품에 담긴 이야기를 패키징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 목표다.
감성 우체국 ‘엽서가게’
박 대표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은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러오는 일이다. 예를 들면 동네 책방이지만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뜨개질도 하고 대화도 하는, 책을 판매하는 서점 역할뿐 아니라 사랑방 역할도 하는 것. 그래서 ‘점프업5060 재도약 과정’을 통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엽서가게’를 열었다.
“감성 우체국이에요. 저희 캘리엠 문구 카드가 있고요. 지역 작가님들이 그린 그림으로 카드를 만들었어요. 지역에 판로가 없는 디자이너들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동네에 그림 잘 그리시는 분이 오시면 저희가 엽서로 만들어드리고 판매 수수료를 드릴 수 있겠죠. 엽서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이곳에서 엽서를 사서 편지를 쓸 수 있고요. 카드를 우체통에 넣으면 저희가 보내드리는 서비스를 하려고 해요. 또 해외 작가의 카드들도 가져와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엽서들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이제 막 문을 열었기에 어떻게 소문을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무엇이라도 되리라 생각한다. 동네 책방과의 협업도 생각하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디딤돌 만들어 올라서기
점프업5060과 같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좋은 점은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더 좋은 점은 같은 프로그램에 지원한 대표들과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것. 도시재생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며 소통이 중요한 만큼,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대표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무척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은퇴 이후의 삶은 무능력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현재 트렌드도 잘 못 따라갈 것 같죠. 어쩌면 그간의 경험이 현재 바뀌는 시류를 따라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마음으로 열정을 낼 수 있어요. 그럼 더 애착이 가요. 저는 은퇴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제 친구들에게도 늘 말해요. ‘그냥 창업해!’라고요.(웃음)”
박 대표는 2016년 캘리엠 창업, 2019년 주식회사 캘리엠 법인 전환, 2021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등을 밟으며 성과를 냈다. 그 배경에는 정부 지원사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초를 닦았다면 이제 스스로 디딤돌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원사업에 신청하고 선정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지원을 받았으니 결과보고서를 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 숙제하듯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기초를 닦았다면, 지원사업을 벗어나 자신의 것을 해보는 용기를 꼭 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수상이라는 기쁨을 얻었다. 다시 힘을 내 도전하라는 따뜻한 격려로 받아들인다. 계속 글을 쓰며 시니어 문학의 한 장을 채워나가겠다.”
27일 열린 고품격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신한은행과 함께 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시상식에 참가한 시니어 수상자들은 공통적으로 이와 비슷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미니자서전 부문에 ‘대륙에서 길을 묻다’를 출품한 김영식 씨는 시니어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식 씨는 “인생 이모작에 새롭게 도전하며 살아가겠다”며 “글쓰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보태라는 숙제를 늘 정직하고 공감과 위로를 주는 가치있는 글로 보답하겠다”고 동영상으로 수상소감을 밝혔다.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은 만 50세 이상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4월 15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 반 동안 ‘인생 이모작’, ‘앞으로 꿈꾸는 나의 모습’, ‘나를 30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들’, ‘퇴직 후 1년의 생활’, ‘마침내 무한변신’ 등 5가지로 주제로 진행됐다.
김주영 작가, 윤정모 소설가를 비롯해 장석주 시인, 안도현 시인, 부희령 작가, 신아연 작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6명은 공모 작품을 공정하고 엄격하게 심사했다.
윤정모 소설가는 “대체로 형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사색의 깊이와 수사와 문장에서 갈고닦은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며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륙에 길을 묻다’가 이후를 잘 마무리하길 바라며 대상으로 결정했다”고 심사평을 제시했다.
7월 15일 당선작 발표에 이은 8월 27일 시상식에서는 영광의 수상자들이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번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에 따라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대상과 최우수상, 쏠드상, 우수상 등 일부 수상자만 참석해 소규모로 진행됐다.
이날 자리를 빛낸 김상철 이투데이 대표는 “소설과 수필, 시 같은 작품이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감동을 준다. 시니어 여러분들이 좋은 글을 써주셔서 수상작이 모두 훌륭하다. 수상을 축하드린다”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수상자들을 독려했다
최우수상과 쏠드상 수상자 시상에 나선 이병철 신한은행 부행장은 “코로나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에 희망을 갖고 이렇게 좋은 활동을 보여준 시니어들이 놀랍다”며 “신한은행이 이번에 처음 참여했는데, 계속 지원해 시니어들이 행복한 노후, 성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돕겠다”고 시니어들의 인생2막을 응원했다
단편소설 부문에서 ‘부적 쓰는 여자’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도열 씨는 “코로나19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제게 최고의 선물”이라며 “욕심을 부려본다면 달나라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처럼 아무도 밟지 못한 미지의 땅에 소설가로서 첫발자국을 남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 부문에서 ‘부록’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귀순 씨는 “유통기한 지난 식품처럼 비켜선 지 오래, 하마터면 주저앉았을 일상의 무기력한 안주. 어떤 경우든 포기했다면 얼마나 큰 낭비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한 수상”이라며 시니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화 부문에서 ‘마음우체통’으로 쏠드상을 수상한 박상미 씨는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만 말고 꾸준히 하자고 오늘도 나 자신을 독려한다”며 “그러다 보면 나의 뮤즈를 만날 수 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올해 수상자들에게 큰 기쁨을 준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은 내년에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신한은행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공동 주최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심사는 6개 부문으로 나뉘어 공모된 작품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장인 김주영 작가를 중심으로 윤정모 소설가, 장석주 시인, 안도현 시인, 부희령 작가, 신아연 작가 등 6명이 심사위원을 맡았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분야에는 장르가 아주 많습니다. 시, 소설, 동화, 희곡, 평론, 수필, 수기 등. 그 밖에 보고문학, 기록문학 등도 있습니다. 이 다양한 장르는 각기 구성 형식이 다릅니다. 콩트는 결말을 뒤집어야 하는가 하면, 시는 압축의 정수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글로 표현되는 모든 구조의 바탕 원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삶과 인생의 관조입니다.
이번 ‘50+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출품된 글들도 대체로 형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사색의 깊이와 수사와 문장에서 갈고닦은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시 ‘부록’입니다. 이 작품은 인생 관조의 절창이었습니다.
다음 동화 ‘마음우체통’입니다. 우선 동화적 골격이 단단했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소중한 낡은 청바지를 실수로 버린 새엄마가 그 청바지를 기어이 되찾아주는 노력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한 것이 참신했습니다.
단편소설 ‘부적 쓰는 여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전철 방화로 잃었고, 나중에 남편을 죽게 한 방화범의 부인이 찾아와 죽은 방화범을 위한 부적을 써준다는 줄거리입니다. 남편으로부터 맘껏 사랑을 받았던 자신과, 평생 애만 먹이다 죽은 방화범 아내의 사연을 씨줄 날줄로 엮었습니다. 도입부의 팽팽한 긴장은 대단한 흡인력이 있었고 얘기를 엮어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단편이라는 형식의 틀이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새 남자를 얻었다는 것은 그렇게라도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의지임은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그에게 차를 사주었던 것, 아이들이 싫어해서 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서술이 필요했다면 이건 중편 형식을 취했어야 마땅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편소설은 한 가지 주제, 그것조차 압축이 필수입니다. 육성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고도의 객관화를 요구하는 것이 단편소설의 특성입니다. 새로운 남자의 등장 대신 남편의 빈자리와 삶의 함수관계,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관찰하고 보완해줄 방법을 찾았다면, 방화범의 아내, 아이를 잃어버린 그 불행한 여인의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좀 더 덜어냈다면 최고의 수작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대륙에 길을 묻다’는 미니 자서전입니다.
유럽 어느 철학자가 그랬던가요? 인생에는 난이도가 있고 성공한 사람은 난(難), 그러니까 어려움을 잘 극복한 사람이고 그 기간과 결과는 대체로 10, 20, 30년으로 본다던가요. 대륙에서 길을 물은 서술자는 한 번에 세 가지를 다 잃고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타향에서 10년을 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곧장 새 일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냅니다. 한 사람이 10년 동안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경탄에 이어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저도 중국과 단동 취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상황의 진실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밝힌 전망도 망상이 아닌 실제적 이론에 기반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북한의 경제 개방 문제입니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해도 경제적 개방은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세계 여러 학자들도 이미 진단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남북이 정치적 통일까지 하게 되면 경제 대국을 향해 빠르게 독주할 것이다, 가능한 한 통일까지는 막아야 할 것이라는 농담 같은 기사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서전 서술자의 관심사는 개인 영달이 아닌 국가와 민족입니다. 그가 펼쳐둔 일들, 진행 중인 일들을 잘 마무리하라는 뜻에서 대상을 결정했습니다.
부문별 우수상을 받은 6개의 작품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여정의 찬란함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김영창 씨의 산문 ‘생각의 관성’은 은퇴로 인해 관성적인 일상이 멈춘 자리에서 방향을 전환, 생각의 관성을 달리하는 여유와 도전 정신이 돋보였습니다. 단편소설 부문 박상희 씨 ‘그녀의 이름은 김순자입니다’는 영화 장면과 상상이 오버랩되는 설정을 통해 노년의 사랑을 경쾌하고 따스하게 묘사한 점이 빛났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주저 없이 선택한 미니 자서전 부문 은정남 씨의 ‘마침내 무한 변신’은 퇴직 후 전방위적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후반 인생의 정체성을 새롭게 써내려가는 작품입니다.
배홍숙 씨의 동화 ‘왕릉의 전설’은 역사 속 인물에 호기심과 긴장으로 다가가는 쌍둥이 남매와 비밀의 열쇠를 쥔 할머니의 반전 묘미가 독특했기에 호평을 받았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인생의 여정을 바다의 거친 풍랑에 맞서 싸우는 항해사에 비유해 심도 있게 표현한 이석재 씨의 시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는 시적 언어의 능력과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김석철 씨의 동영상 ‘인생 2막에서 날아 오른 팔색조’는 8개의 직업을 갖기까지 인생 2막을 설계하는데 마중물이 된 요소를 짜임새 있게 구성한 기획과 영상 편집이 탁월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응모자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아울러 이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에 읽을거리를 선사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지난주에 작은 우체통 하나가 놀이터에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은지가 좋아하는 노란색이었고 작은 집 모양의 우체통이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나는 마음 우체통이에요.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말을 편지로 써서 보내주세요. 비밀도 보장해주고 답장도 해드려요.’ 라는 설명이 우체통 아래에 붙어 있었습니다. 안내문을 슬쩍 읽고 난 은지는 며칠 째 낯선 우체통 앞을 그냥 지나쳐 집으로 갔습니다.
은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은지 왔구나. 학교 수업 잘 했어?”
은지는 무심한 듯 “네.”라고 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엄마는 실망했지만 다시 목소리를 높여서 은지의 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은지 좋아하는 피자해 놨는데 먹을래?”
은지는 이번에도 짧게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한 숨을 쉬며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하다가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볕이 참 좋네.’ 엄마는 두 팔을 벌리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난 후, 멀리 보이는 놀이터의 우체통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빨랫줄의 빨래가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엄마는 은지의 바지와 원피스와 티셔츠를 걷어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소파에 빨래를 놓고 맨 위에 있던 청바지부터 개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낡아서 입지 못하겠네.’ 엄마는 실밥이 터지고 무릎 부위가 두 주먹만큼 뚫린 바지를 옆으로 치웠습니다. 새 바지를 사 주면 은지가 좋아할 거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새엄마라서 헌 옷만 입힌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나머지 옷들도 차례대로 개키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은지가 마음을 열까, 어떻게 해야 은지의 말수가 늘까.’
은지 엄마는 삼 년 전에 교통사고로 은지 곁을 떠났습니다. 그 충격으로 다섯 살이었던 은지는 말을 잃었고, 다행히 작년부터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빠의 노력이 컸습니다. 아빠는 일주일에 두 번씩 회사에 조퇴를 하고 은지를 심리상담 센터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은지는 아빠랑 함께 미술치료를 받았습니다. 상담 선생님이 소풍가는 사진을 그리라고 하면 은지는 자신과 아빠 사이에 엄마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림 속의 엄마는 아빠나 은지보다 두 배로 컸습니다.
“은지, 이건 뭐야?”
“엄마소예요.”
“이건?”
“엄마나무예요.”
동물을 그리건, 식물을 그리건, 늘 은지의 도화지엔 엄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두 시간씩 은지와 놀아주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서 오기까지 세 시간 동안은 은지를 위해 돌봄이 선생님이 와주셨습니다. 은지가 유치원에서 끝나면 돌봄이 선생님이 데리러 가서 같이 손을 잡고 집으로 왔습니다. 돌봄이 선생님은 은지가 종이접기를 했고, 사과를 두 쪽 먹었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등 그날그날의 일을 은지 아빠에게 상세히 전달했습니다. 은지 아빠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은지도 돌봄이 선생님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을 지낸 은지는 돌봄이 선생님과 친해졌습니다. 은지의 아빠도 선생님과 친해졌습니다. 주말에 세 사람이 함께 놀이동산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은지 아빠와 돌봄이 선생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은지야, 선생님과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건 어때?”라고 아빠가 물었을 때 은지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은지는 결혼식 날, 꽃분홍 드레스를 입고 빨간 융단위에 꽃을 뿌리는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하지만 새엄마와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은지와 놀아주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아빠는 밀렸던 회사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빠 대신 엄마가 동화책도 더 읽어주고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은지, 잘 자. 자다가 무서운 꿈꾸면 언제든지 안방으로 와.”
엄마가 은지의 잠자리를 봐주고 떠날 때 하는 말이었습니다. 엄마가 방의 불을 끄고 나가면 은지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나란히 누워 있을 아빠와 엄마를 생각하면 아빠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엄마가 아빠한테 잘 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고 아빠가 엄마한테 잘 할 때는 골이 났습니다. 선생님으로서 하루에 세 시간씩 돌봐줄 때와 엄마로서 매일 함께 지낼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엄마가 된 선생님은 집이 지저분하다며 이것저것 버리자고 했습니다.
“아빠가 바빠서 대청소할 시간이 없었나봐.”
은지는 싫었습니다. 친엄마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은지 마음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알 지 못했습니다.
“싫어, 싫어.”
떼를 쓰는 은지에게 아빠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은지가 고집이 심하네. 너무 오래 되고 망가져서 쓸 수가 없다고.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은지는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은지는 점점 아빠와 엄마가 섭섭했습니다. 은지가 말을 잘 하지 않아서 답답한 아빠와 엄마는 잠들기 전에 은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음날, 엄마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재료를 이용하여 우체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삼 일 후에 예쁜 우체통이 식구들 모르게 만들어졌습니다. 엄마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우체통을 놀이터에 있는 큰 나뭇가지에 얹어놓았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노란 우체통으로 놀이터가 환해졌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표현을 하지 않아서 은지의 마음을 알 수 없던 엄마가 슬쩍 물었습니다.
“놀이터에 이상한 물건 있는 거 봤어?”
“네.”
“예쁘지?”
“네.”
그뿐이었습니다. 엄마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은지가 학교에 간 사이에 한 번씩 놀이터로 가서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편지가 한 통, 두 통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편지마다 정성들여 답장을 썼습니다. 편지 내용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동생이나 친구 흉보는 편지도 있었고 욕을 써 넣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중 엄마에 대한 불만의 편지가 제일 많다는 점에 은지 엄마는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엄마는 가족 중에 잔소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마음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엄마는 편지가 늘어날수록 답장을 써야할 시간도 늘었지만 막상 기다리던 은지의 편지는 없었습니다.
우체통 앞을 지나치던 은지가 이번엔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았습니다. 우체통을 한참 쳐다보다가 가방을 열어서 노란 편지봉투를 꺼냈습니다. 두 손으로 우체통에 밀어 넣었습니다.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루던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그때부터 은지는 답장이 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거짓말처럼 하늘나라 엄마의 답장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지런히 걸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거실 창으로 엄마가 지켜보고 있단 사실을 은지는 몰랐습니다.
“은지,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엄마가 은지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이번에도 은지는 “네.”라고만 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새엄마가 좋으면서도 싫어요. 친구들이 새엄마 생겼다고 소곤거리는 것도 싫고, 새엄마와 종일 뭐하고 지냈냐고 아빠가 묻는 것도 싫고, 새엄마가 친엄마의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것도 싫어요. 점점 싫은 게 많아져서 싫어요.’
엄마는 은지가 학교에 간 사이에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은지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고민하다가 답장을 썼습니다. 며칠 후 편지는 우편배달부를 통해 은지 집에 도착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지를 은지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편지를 발견한 은지는 기뻤습니다. 은지는 노란 편지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내서 읽었습니다.
‘은지, 편지 잘 받았어요.
나도 은지처럼 어려서 싫은 것 투성이었어요.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고, 친구도 싫고, 학교 가기도 싫고. 우리 통하네요. 그런데 싫은 걸 표현 안하고 참고 있으면 상대방이 몰라요. 내가 화가 나서 엄마한테 참았던 말을 쏟아 부었어요. 엄마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어! 듣고 난 엄마가 놀라면서 말했어요. 진작 말하지, 맘을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은지도 싫은 것들에 대해서 엄마한테 말해보면 어때요? 예를 들어, 은지가 물건을 버리기 싫은 이유를 설명하면 엄마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말로 하기 힘들면 편지를 남기는 건 어떨까요?’
편지 끝에 세 잎 클로버가 그려있었습니다. 전에 엄마가 세 잎 클로버의 의미를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네 잎 클로버는 귀해서 ‘행운’의 뜻이 있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의 의미가 있으니, 네 잎 클로버 하나보다 세 잎 클로버가 많을수록 좋다고.
은지는 세 잎 클로버를 보니 행복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고, ‘마음 우체통으로부터’라고만 적혀있었습니다. 누가 보내준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은지는 답장을 쓴 사람이 하늘에 있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만한 나이였습니다. 은지는 편지를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답장에 있는 대로 하진 않더라도, 남의 흉을 본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은지는 또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마치 은밀한 비밀 모의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친 은지가 낡은 청바지를 찾았습니다.
“너무 낡아서 며칠 전에 버렸는데......"
은지가 엄마를 노려보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미워, 미워. 내가 제일 아끼는 바진데......”
“미안해, 은지야,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상태야.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은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마음 우체통의 답장처럼 엄마한테 청바지를 아끼는 이유를 말하지 않은 게 은지는 후회되었습니다.
엄마는 겨우 은지를 달래서 학교로 보내고 주민센터로 급히 전화를 걸었습니다. 헌옷 가져가는 트럭이 은지 동네 옷을 조금 전에 가져갔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엄마는 차키를 들고 달려 나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 발목을 삐끗했습니다. 절룩거리면서 차로 가서 올라탔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민센터에서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급한 사정이 생겼으니 차 좀 멈춰주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제발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엄마는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서럽게 울던 은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그리워서 은지가 물건들을 못 버리게 한 거구나.’ 뒤늦게 은지의 마음을 알게 된 엄마는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는 힘들게 헌옷을 수거해 간 차를 발견하고 무사히 은지의 낡은 청바지를 찾아왔습니다. 곱게 접어서 편지를 쓰던 서재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바지를 찾아오느라 오전을 다 소비해버렸기 때문에 답장은 밤에 잠을 줄이고 써야 했습니다. 당장은 밀린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부지런히 청소를 마친 엄마는 은지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은지가 현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가 서재에서 바지를 뒤에 감추고 나왔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은지는 신발을 함부로 벗어던졌습니다. 인사는커녕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엄마가 낡은 바지를 내밀었습니다. 은지는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그렇게 좋아? 맛있는 간식 만들어 줄게.”
엄마가 돌아서다말고 신음 소리를 내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아까 옷을 찾으러 가다가 삐끗한 발목이 아팠습니다. 그때 서재에 있던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울상이 된 엄마가 말했습니다.
“은지야, 휴대폰 좀 갖다 줄래?”
은지는 얼른 서재로 달려갔습니다. 책상위에서 벨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집으려는데 책상위에 쌓여있는 온통 노란색의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보였습니다. 익숙한 글씨체였습니다. 편지 끝에 세 잎 클로버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은지는 놀랐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은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못 찾았니?”,
“가요.”
은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엄마에게 주었습니다. 벨소리가 멈췄습니다. 엄마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고 나서 은지에게 물었습니다.
“청바지가 너무 찢어졌는데 입을 수 있겠어?”
은지가 밝은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저도 입을 수 없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갖고 있을래요.”
“그 바지를 은지 방의 벽에 멋지게 걸어 두는 건 어떨까? TV에 나오는 언니, 오빠 방을 보면 연예인 사진이나 천 조각을 붙여두는 것처럼.”
“너무 멋진 생각이에요.”
은지는 손뼉을 치며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며칠 후에 엄마는 은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감사해요. 제가 엄마의 비밀을 알아버렸거든요. 이제 아빠 몰래 엄마랑 저만 비밀을 나누는 거예요. 앞으로 잘 할게요. 친엄마도 내 엄마고, 새엄마도 내 엄마에요. 저는 엄마가 둘이라서 두 배로 행복해요.’
편지 끝에는 세 잎 클로버가 빼곡히 그려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마음 우체통은 거기에 있었고, 여전히 은지는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낡은 청바지가 벽에 걸려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ㆍ수상소감 - 쏠드상 동화 박상미
“성인이 돼 읽은 동화, 신선하면서도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 줘”
기쁘면서도 어리둥절합니다.
몇 년 전에 서랍 정리를 하면서 어쩌다 한 번씩 써 놓은 이십여 년 전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읽다보니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내 맘조차도 상세히 적어 내려가지 못한 어설픈 문장들,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의 나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한정적 어휘나 표현 방식. 일기장을 덮고 나니 글에 시멘트가 발린 느낌이었어요.
내 몸에 음식을 잘 넘어가게 하는 기관인 식도가 있듯이, 내 감정을 체하지 않고 잘 넘어가게 하는 방법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지요. 글쓰기 강의를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직장 근무시간을 피해서 들을 수 있던 장르는 소설밖에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단편 소설을 읽고 쓰기 시작했지요. 처음엔 소설을 쓴다는 행위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불편했지만, 쓰고 보니 유치하면서도 신기했어요. (초등학교 때 아이들 모아놓고 꾸며낸 얘기를 해줄 때는 거짓말 한다는 의식이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책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소설 한 권, 한 권이 나올 때마다 작가가 얼마나 진통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술도, 음악도 마찬가지겠지만 글쓰기도 ‘주기’가 있어서 어떤 느낌이 오면 글이 술술 나오는 듯하다가, 한 줄도 못 쓰고 몇 주를 흘려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글 쓰는 실력이 후퇴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1년에 4편의 단편을 쓴 적도 있지만, 작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과 두 번에 걸친 수술로 인해 다리가 아프니까 근력도 빠지면서 몸 전체가 병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둔 터라 시간은 많은데 글이 써지기는커녕 오히려 머리에 박스를 뒤집어쓴 기분이었습니다. 소설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만 가진 채 애꿎은 텔레비전 리모컨만 눌러댔지요. 그러다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우체통’ 이란 모티프를 건지게 되었고, 동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동화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던 터에, 이만교 작가 수업을 들으면서 몇 편의 동화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이만교 작가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성인이 되어 읽은 동화는 신선하면서도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어요. 동화 속에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있고 불가능이 없는데, 동화를 읽고 자란 어른이 된 나는 왜 상상력이 줄어들고 있을까. 줄어든 상상력 자리에 편견과 선입견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필명을 ‘상상’이라고 지었는데.
가장 인상에 남은 동화는 미셀 누드슨의「도서관에 간 사자」였습니다.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어요. 편견을 허물고 융통성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규칙을 만들 때 예외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 읽고 나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읽을 수 있는 동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이 연장되다 보니 한 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써놓은 작품과 이번에 응모할 작품을 초등학교 3학년 조카한테 읽어보라고 했지요. 응모작인 ‘마음 우체통’은 재미있고 주인공의 마음이 잘 전달되는데, 전에 써놓은 작품은 덜 감각적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감각적이란 게 무슨 말인지 설명해줄래?”라고 물었더니 조카가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소리는 귀에 대고 듣는 것처럼, 묘사는 진짜 보는 것처럼 써야 한대요.” 입이 벌어졌지요. 내가 조카 나이 때 그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소설 수업에서 과제물로 썼던 동화는 슬그머니 서랍 안에 넣어두고, 조카의 칭찬을 받은 최근 작품으로 응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카는 수상 소식을 듣고 신기해했어요. 고모가 유명한 동화작가라도 된 듯.
이제 조카는 나의 1호 평론가가 되었답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동화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같이 소설 공부하는 문우가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공고를 보고 ‘여기에 당선되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말았지요. 잊고 지내다가 응모 기간 일주일을 남겨두고 느닷없이 동화 소재거리가 생각났고, 몇 시간 만에 써 내려갔습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힘들게 만든 곡보다,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서 몇 분 만에 쓴 곡이 의외로 인기가 더 많은 경우가 있다는 작곡가의 말이 떠올랐어요. 문제를 아무리 해결하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예상과 반대로 빨리 풀리기도 하는 삶의 과정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포기하지만 말고 꾸준히 하자고 오늘도 나 자신을 독려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뮤즈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시니어 문학이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장(場)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덥고 습한 공기 대신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이 잠을 깨우는 계절. 얇고 까슬까슬한 리넨 소재 셔츠가 아닌 포근하고 부드러운 카디건에 손이 가는 계절. 가을이 왔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도 한층 두툼하게 챙겨 입었지만, 특유의 스산한 기운에 이유 모를 쓸쓸함과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인지 가을만 되면 적적한 마음을 달래줄 진한 멜로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가을 타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감성 가득한 한국 멜로영화 세 편을 준비했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내 머리 속의 지우개 (A Moment To Remember, 2004)
유달리 건망증이 심한 '수진'(손예진)은 어느 날도 어김없이 지갑과 편의점에서 산 콜라를 카운터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간다. 그때 편의점 앞에서 콜라를 들고 있는 '철수'(정우성)를 발견한다. 철수가 자신의 콜라를 훔쳤으리라 생각한 수진은 그의 손에 들린 콜라를 뺏어 들이킨다. 강렬한 첫 만남 이후 수진의 회사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려 마침내 결혼까지 골인한다. 하지만 행복한 신혼 생활도 잠시 수진의 깜빡하는 증상은 더욱 심해져 가고, 철수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조기 치매를 앓고 있는 수진과 가난한 목수 철수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손예진과 정우성의 애틋한 감정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정우성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따르며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랜 시간 지난 지금까지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2. 시월애 (A Love Story, 2000)
1999년, '은주'(전지현)는 자신이 살던 집 '일마레'를 떠나며 새로 들어올 집주인에게 바뀐 주소로 우편물을 보내 달라는 편지를 남긴다. 한편 1997년, 일마레에 이사 온 '성현'(이정재)은 짐 정리를 하다 우편함에서 이상한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1999년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이 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 반신반의하던 성현은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편지는 2년을 뛰어넘어 은주에게 도착한다.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은 우체통을 매개체로 소통하고,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서서히 가까워져 간다.
영화 ‘시월애’는 엇갈린 시간을 소재로 한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다. 작품의 중심 배경이 되는 일마레는 일몰 명소로 유명한 강화 석모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주인공 두 남녀의 애절한 연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3.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소리 채집자 '상우'(유지태)는 어느 겨울 지방 방송국 라디오PD '은수'(이영애)를 만난다. 마침 자연의 소리를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나고, 자연스레 눈이 맞은 두 사람은 여름이 올 때까지 뜨겁게 사랑한다. 하지만 두 계절이 지나고,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껴 서서히 상우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결국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변하면서 상우는 예상치 못한 실연을 맞이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이별을 계절에 빗대 그린 작품이다. 흔들리는 보리밭과 대나무숲, 고요한 사찰 등 청아한 풍경이 작품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영화에서 이영애는 "라면 먹고 갈래요?",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휴일 오전, 전철 1호선을 타고 종착역인 인천역으로 간다. 한산한 전철 안에서 시간여행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인천역 앞에 있는 화려한 패루를 통과하면, 1800년대 말 인천 개항 시절의 풍경이 펼쳐지는 상상 말이다. 실제로 패루 너머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곳에 새겨진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간을 되짚어보면, 나도 모르게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걷기 코스
전철 1호선 인천역▶ 제1패루▶ 차이나타운▶ 선린문(제3패루)▶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인천 중구청(옛 일본영사관)▶ 중구생활사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옛 인천일본제1은행)▶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옛 인천일본18은행지점)▶ 신포시장▶ 답동성당▶ 애관극장▶ 싸리재 카페▶ 전철 1호선 동인천역
인천 개항과 함께 형성된 화교 마을
1883년 인천 개항 후 청국인, 일본인, 러시아인, 독일인, 영국인들이 앞다퉈 제물포(지금의 인천항)로 몰려왔다. 항구 일대에는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공원, 극장, 학교, 호텔, 은행과 같은 서양식 근대건축물도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철도, 시외전화, 화폐, 구두, 등대, 담배 성냥, 축구, 야구 등 해외 문물도 물밀듯 들어왔다. 이 시절의 흔적이 제물포와 가까웠던 지금의 인천시 중구에 오롯이 남았다. 그 자취를 찾으며 질풍노도 같았던 인천의 근대사를 돌아본다.
출발지인 인천역부터 특별하다. 인천역은 1899년에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시·종착역이었다. 인천역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우마차나 수로로는 반나절 이상 걸릴 길을 열차로 한 시간 만에 갔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겠다.
인천역 광장 맞은편에는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시에서 기증한 패루가 화려한 단청을 뽐내며 서 있다. 패루 사이로 차이나타운의 ‘T’자형 대로가 보인다. 차이나타운 골목마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대규모 중식당과 중국 간식 상점, 기념품점이 즐비하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개항 후 중국 산둥성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살기 시작한 곳이다. 이때 정착한 화교들이 중국요리점을 열고, 한국인 입맛에 맞는 자장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자장면의 대명사로 불렸던 ‘공화춘’의 우희광 씨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83년에 문을 닫은 공화춘은 30년 뒤인 2012년에 ‘짜장면박물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옛날 공화춘의 인기는 신승반점, 만다복, 연경, 중화원 등이 잇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요리 외에 화덕 호떡인 옹기병과 월병, 홍두병, 공갈빵 같은 중국 전통 간식도 재미 삼아 먹어볼 만하다.
뜨거운 옹기병을 뜯어 먹으며, 차이나타운 중간 지점에 있는 선린문(제3패루)으로 향한다. 3개의 계단을 지나 마지막 계단 위에 우뚝 세워진 선린문은 차이나타운 최고의 포토존이다. 선린문을 통과해 다시 계단을 조금 오르면 자유공원 입구와 만난다. 왼쪽 길에 초한지 벽화 골목이 있고, 오른쪽 길은 자유공원 산책로와 연결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인천 근대사 이야기
자유공원은 1888년 응봉산에 건립된 국내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공원 초입에 있는 석정루에 올라 인천 앞바다와 월미도를 조망하고, 한미수교 100주년(1982년)을 기리는 기념탑과 한국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둘러본 뒤, 제물포구락부로 이동한다. 제물포구락부는 자유공원과 이어진 계단 중간에 있다. 이곳은 개항 당시 제물포에 거주했던 독일, 미국, 러시아, 일본인들의 사교장이었다. 하얗게 회칠한 외벽과 고풍스러운 홀이 인상적이다. 제물포구락부와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도 거리가 가깝다. 이 계단은 일본과 청나라가 각각 조계지를 설정하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계단을 경계로 북성동 쪽은 청나라의 차이나타운이, 신포동 쪽은 일본 건축물이 들어섰다. 계단 양쪽에 세운 석등조차 중국식과 일본식으로 구별돼 있다. 계단 상단의 공자상도 중국 쪽으로 약간 치우쳐 세워졌다. 외국인들이 조선 땅을 땅따먹기하듯 갈라놓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현장이다.
청일조계지 계단을 내려와 왼쪽, 중구청(옛 일본영사관)으로 가다 보면, 일본 적산가옥과 일본제1은행, 구 일본18은행과 같은 근대건축물이 모여 있는 개항장 거리를 만난다. 차이나타운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다. 거리 입구에 있는 중구생활사전시관은 1888년에 개업한 국내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외관을 되살려 지은 건물이다. 귀부인이 머물렀을 법한 객실과 1960~70년대 인천 중구의 의식주 생활공간을 실감나게 재현했다. 나무 전봇대가 세워진 골목길과 문방구, 백항아리집(선술집), 극장, 다방, 의상실, 이발소 등 추억을 부르는 풍경이 마냥 반갑다.
전시관 옆 개항박물관은 옛 일본제1은행을 개조한 것이다. 1883년에 건축한 르네상스풍의 석조 건물로서 일본영사관의 금고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우표와 우편물, 우체통, 전보와 전화기, 경인선 기관차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같은 라인에 있는 근대건축전시관은 일본제18은행 건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나가사키 상인들이 상해에서 수입한 영국 면직물을 한국에 수출해 큰 이익을 얻자, 인천에 은행 지점을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개항장 일대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과 소실된 건축물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인천과 서울을 연결했던 싸리재 고갯길
개항장 거리를 지나 먹거리 성지인 신포국제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포시장은 인천 개항 이후 형성된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이다. 19세기 말 화교 농민들이 산둥성에서 채소 씨앗을 가져와 키워 시장에 내다 판 것이 신포국제시장의 시초라고 한다. 역사가 깊은 만큼 먹거리도 풍성하다.
쫄면의 탄생지도 신포시장이며, 신포순대, 신포만두의 고향도 이곳이다. 주먹으로 깨 먹는, 단단한 공갈빵과 매콤한 맛을 강조한 신포 닭강정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닭강정을 사려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골목 안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다.
시장 골목 끝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국내 성당 중 가장 오래된 답동성당과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을 만날 수 있다.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을 지닌 애관극장은 1895년에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20년대부터 애관극장으로 불리며, 복합상영관이 주름 잡는 이 시대에도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시설은 여느 극장과 비슷하고, 상영작도 같다.
흐뭇한 마음으로 애관극장을 구경하고, 동인천역으로 내려가는 고갯길, 싸리재를 걷는다. 옛날에 이 길에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낙후한 거리가 되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만 해도 병원, 한약방, 약국, 양화점, 포목점 등이 즐비했던 곳이다. 서울 명동 못지않은 상권을 자랑했다고. 옛날 양복점과 병원 건물과 기록 사진만이 싸리재의 옛 영화를 증명한다.
최근,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싸리재의 아날로그 정취가 돋보인다. 그 중심에 ‘싸리재’ 카페가 있다. 지은 지 90년 된 목조 카페에서 노부부가 커피를 내린다. 카페 안쪽에는 노부부의 100년 된 한옥 살림집이 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부는 수집한 축음기로 레코드판 음악을 들려준다. 마침 퀸의 ‘보헤미안랩소디’가 흘러나와 한껏 흥에 젖는다. 바리스타인 박차영 대표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하니 자신이 개발한 ‘커피봉봉’과 ‘싸리재’를 권한다. 모든 커피를 모카포트로 내려준다. 쌉싸래한 에스프레소와 달콤한 연유, 촉촉한 생크림의 조화가 감미롭다. 싸리재의 빈티지한 분위기와 포근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노부부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싸리재 카페에서 동인천역은 멀지 않다. 전철을 타기 전에 송현동 순대 골목이나 화평동 냉면 거리, 동인천 삼치 거리에서 요기를 해도 좋겠다.
주변 명소 & 맛집
신승반점과 명월옥
공화춘은 1983년에 폐업했으나 우희광 씨의 자손들이 공화춘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우희광 씨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신승반점이 그곳. 신승반점의 인기 메뉴는 돼지고기와 채소를 갈아 춘장과 볶은 유니자장면이다. 달지 않으면서 감칠맛 나는 자장 소스와 부들부들한 면발이 입맛을 당긴다. 흰 자장면이 궁금하다면 만다복(032-773-3838)을, 맛있는 짬뽕을 먹고 싶다면 복림원(032-773-8778)을 추천한다. 한식은 신포시장 가는 길목에 있는 백반식당, 명월집이 잘한다. 1966년에 개업한 식당이다. 7000원짜리 백반에 밑반찬만 열 가지. 여기에 곤로 위에서 푹 끓인 돼지김치찌개와 누룽지도 양껏 먹을 수 있다.
신승반점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31-3, 매일 11:00~21:00
명월옥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41, 07:30~19:30(일요일 휴무)
송월동 동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은 차이나타운과 이어져 있다. 2013년 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세계명작동화를 주제로 마을을 예쁘게 꾸몄다. 입구의 아치문을 통과하면, 알록달록한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골목마다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전래동화길 등 테마가 있다. 동화 캐릭터 입체 조형물이 많아 곳곳이 포토존이다. 이 마을이 개항기 때 독일, 일본, 프랑스인들이 살았던 부촌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인천 중구 자유공원서로37번길 22(연중무휴)
짜장면박물관
1908년 차이나타운에 개업한 중식당, 공화춘의 내부를 개조해 2012년에 개관했다. 전시물을 통해 화교와 자장면의 탄생기, 전성기, 자장라면의 역사 등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공화춘 접객실,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다. 졸업식이나 운동회 날에 부모님과 자장면을 먹으러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공화춘 건물은 중국 산둥 지방의 장인이 참여해 중국식으로 지었으며, 2006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09:00~18:00(월요일 휴관)
걷기 Tip
❶ 차이나타운은 골목이 많으므로 인천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센터에서 지도를 받아, 갈 곳을 미리 표시해두는 게 좋다. 송월동 동화마을을 코스에 넣는다면, 맨 먼저 들르자.
❷ 신포시장까지만 걷는다면, 수인선 신포역에서 전철을 타면 된다.
❸ 개항박물관, 짜장면박물관, 중부생활사전시관, 근대건축전시관, 한중기념관 등 5개 전시관 통합관람권을 구매하면 입장료를 아낄 수 있다. 통합관람권 어른 3400원.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는 입장료 무료.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 옛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 남선창고 터 ▶ 동구 인물사 담장 (초량초등학교) ▶ 이바구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과 168모노레일 ▶ 전망대 ▶ 이바구놀이터와 6·25막걸리 ▶ 이바구충전소 ▶ 당산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더나눔센터 ▶ 스카이웨이전망대 ▶ 유치환의 우체통
부산의 산동네와 산복도로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었다.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전쟁 전 40여 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부산은 폭증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땅이 부족했다.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에서 가까운 산동네로 몰려들었다.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고 부두 노동자로, 자갈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동네가 지금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영도 흰여울마을,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등이다.
부산에 산동네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산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생겼다. 실핏줄처럼 산동네를 연결하며 부산의 상징이 되었다. 부산 동구에서 산복도로가 처음 개통된 초량동에 부산의 근대 역사를 담은 ‘초량이바구길’을 조성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까꼬막이 천지삐까리’ 초량이바구길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짧은 코스이지만, 부산말로 “까꼬막(오르막길)이 천지삐까리다(아주 많다).” 급경사 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있으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산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첫 목적지인 옛 백제병원에 도착한다. 백제병원은 192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폐원된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1층에 카페 브라운핸즈백제가 입점했다. 근대 건축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에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부산 동구의 근현대사와 인물을 소개한 초량초등학교(1937년 개교) 담장을 지나면, 이내 이바구정거장이 나타난다. 이바구정거장은 초량이바구길의 안내소로서 캐리어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바구정거장 옆에 있는 바람개비로 장식한 계단에서 본격적인 까꼬막 여행이 시작된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 168모노레일
바람개비계단 끝에서 분식집처럼 생긴 168도시락국 식당이 반긴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양철 도시락과 진한 멸치 육수 맛이 일품인 시래깃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을 들이마시다시피 하니, 주방을 지키던 할머니가 빈 국그릇을 가득 채워준다. 배불리 먹은 밥값은 단돈 5000원.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168도시락국 식당을 비롯해, 이바구놀이터(영진어묵&공감카페),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 커뮤니티 센터인 이바구공작소 등에는 동구 지역 시니어가 근무한다.
168도시락국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사 45˚의 168계단이 기다린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도 2016년,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 운행거리는 약 60m. 모노레일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168계단을 가리키더니 “이 계단이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라. 계단 밑에 있는 우물도 봤지요? 할매들이 이 계단으로 물 뜨러 다녔는데, 한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고생이 말도 몬했다꼬. 모노레일이 생겨서 얼매나 좋은지 몰라요. 여름에도 시원코. 저짝 아래 함 보소. 갱치가 울매나 좋은지”라며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바구길 최고 전망은 이곳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로 이어진다. 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초량동 주택가와 멀리로는 황령산,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승강장 옆에 있는 이바구놀이터도 전망대만큼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이곳은 야경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다. 통통하고 쫄깃한 부산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을 먹으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인정 넘치는 시니어 직원들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음식이 식을세라 살뜰히 살피기도 한다. 이바구놀이터 맞은편 6·25막걸리에서는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 대신 계단을 추천한다. 걸어 내려가면서 빵집, 아트숍, 카페, 갤러리, 추억의 물건을 파는 다락방장난감BOX, 김민부 전망대에 들를 수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이가 바로 시인 김민부다. 전망대와 마주보고 있는 이바구충전소를 지나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복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만 가능한 산복도로 투어
산복도로 턱밑에 자리한 이바구공작소는 방문객 안내센터 겸 주민커뮤니티센터다. 이곳에 근무하는 시니어 문화해설사에게 초량의 근현대사를 들을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려더나눔센터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일생을 헌신한 의사이며, 의료보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장기려더나눔센터에서 유치환의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산복도로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띈다. 도로 폭이 좁아 건물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한쪽 차바퀴를 들어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가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층 시인의 방에서 엽서를 써 3층 전망대에 설치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초량차이나타운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설치된 뒤, 중국 상인들이 점포를 겸한 주택가를 형성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3년 중국 상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해 상해문을 건립하는 등 상해 거리를 조성했다. 고기만둣집인 신발원이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일부 구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텍사스 거리가 있다. 두 곳이 한길로 이어져 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동구 중앙대로 196번길 8.
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에 여행 와서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밀면과 본전돼지국밥이 소문난 식당이다. 밀면은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원조 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대체할 음식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인 것이 시초라 한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싼 재료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든 피란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량밀면 동구 중앙대로 225, 본전돼지국밥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돼지갈비와 돼지불백거리
초량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직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초량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초량 육거리 부산고등학교 앞에 돼지불고기백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정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매콤한 돼지불고기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초량돼지갈비골목 은하갈비 동구 초량중로 86, 초량불백거리 원조불백 동구 초량로 36.
초량1941
초량1941은 초량동 산복도로 위에 자리한 우유 전문 카페다. 1941년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와 말차우유, 홍차우유, 커피바닐라우유, 동백우유 등 다양한 병우유를 판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쫀쫀한 생크림 속에 과일을 콕콕 박아 만든 과일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동구 망양로.
여행 정보
➊ 찾아가는 길 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또는 ‘이바구길모노레일’ 방면으로 이동
➋ 이바구자전거 시니어 도슨트(문화재 해설사)가 운전하는 전동 자전거에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도슨트가 이바구길의 명소 소개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서 출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출발. 예약 070-8224-0122/요금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7000원(미취학 아동 무료) 우천 시 운행하지 않음
➌ 이바구버스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는 이바구버스 투어 상품도 있다. 요금 어른 1만6000원, 초등학생 9000원
지구 끝이라니 생각만 해도 멀고 먼 땅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상 가보면 그리 멀기만 한 곳도 아니다. 남극 바로위 남아메리카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친 일부지역을 칭하는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등산복 브랜드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남반구에 위치하여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인 이곳은 연중 기온이 낮아 11월에서 3월이 여행적기이며, 이때 간다 하더라도 사람을 지구 밖으로 날려버릴 기세로 불어대는 토레스 델파이네의 바람을 피할 방법은 없다. 자연은 냉혹하여 불평을 허락하지 않는다던가? 절대적 힘 앞에서 작은 불평 따위는 내동댕이쳐버리게 되는 곳이 파타고니아가 주는 힐링의 힘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라면 바람을 피하기보다는 바람을 기꺼이 마주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 쪽이 낫다. 사람은 40m/s를 넘으면 날아갈 수도 있다는데, 이곳은 최대 풍속이 60m/s를 넘는 일도 많아서 영국 탐험가 에릭 시프턴(Eric Shipton)은 '폭풍우의 대지'라 불렀다는 곳. 그렇다면 우린 왜 이렇게 혹독한 곳에 가려하는 것일까?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결행
1989년 1월, 48세로 요절한 브루스 채트윈은 의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93세의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녀가 그린 파타고니아 지도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아일란은 자신은 이미 늙어 갈 수 없다며 브루스 채트윈이 대신 그곳에 가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후 브루스는 다니던 신문사에 ‘파타고니아로 떠남’이라는 짤막한 한 을 남긴 채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쓴 책 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였다.
“제가 늘 저지르겠다고 협박했던 일을 드디어 결행했습니다. 오늘밤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납니다. 거기에 살면서 저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문명의 이기는 거리감각을 바꿔놓았다
우린 이제 단 두 시간에 비행기로 목적지에 갈수도 있고, 수 십 시간을 버스를 달려 육로를 통해 목적지에 닿을 수도 있다. 효율성과 비효율성사이에서. 속도와 비속도 사이에서.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우린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행기로 단 두시간만에 갈 수 있는 길을 버스로 온종일 달려서 간다. 느린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30시간의 버스여행이 쉽지 않다. 그래도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로지르는 파타고니아 땅만은 꼭 육로로 달려보고 싶었다.
그래야 지도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이 땅덩어리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 30시간을 달려도 피곤함보다는 오랜 상상이 실현되는 기쁨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창밖의 변화를 지켜본다. 그 길이만큼이나 버라이어티한 땅덩어리. 사막에서 툰드라로, 와이너리가 펼쳐진 녹색의 땅으로, 그리고 바다와 산맥, 파타고니아 빙하에 이르기까지.
이름 모를 도시에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내리고 또 타고 손님을 끝없이 바꾸며 TUR 버스는 달려간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 직진으로 난 길. 고속도로 휴게소엔 먹을게 별로 없고, 떡복이와 오뎅, 우동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저 커피한잔과 웨하스 과자로 허기를 달랜다. 간간이 노점상이 차에 오르기도 하는데 먹을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파타고니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다섯배 크기. 우리나라 북쪽끝에서 남쪽 끝까지 달려봐야 고작 5시간인 곳에 살던 나는 그저 한도시에서 옆 도시로 가는데 30시간이 걸리는 이 나라에 와서야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얼마나 작은지를 실감한다.
파타고니아의 비경을 잇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루트 40!
이곳에 오면 마음을 방해하거나 어지럽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땅.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을 명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같은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왜곡되지 않은 정직한 선.
가다가 얽히거나 꼬임이 없이 그저 올곧게 이어지는 선을 보며 굽혀진 마음을 조금은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없어 무엇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내지만 땅보다 더 큰 면적으로 다가오는 광활한 하늘은 늘 빌딩에 가려져 그 모양을 알 수 없었던 구름의 존재를 각인시켜준다.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과 페리토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곳을 꼽는다면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과 아르헨티나의 페리토모레노를 비롯한 약 50개의 빙하국립공원이다. 3개의 화강암 봉우리를 비롯해 해발 2천5백미터의 설봉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토레스델파이네는 남미 최고의 풍광으로 눈이 닿는 곳마다 광고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봉우리를 지나 길고긴 잿빛 모래를 한참을 걸어가서야 만난 그레이 빙하(Grey glacier)는 이름처럼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 거대한 빙하를 마주보며 다가가는 길, 어디선가 우루루쾅쾅 땅이 갈라지는 듯한 들리더니 바로 눈앞에서 거대한 빙하 한조각이 떨어져 내린다. 지구의 한끝이 닳아 없어지는 듯 가슴속이 철렁해져 온다.
아르헨티나 빙하 국립공원의 북쪽 입구라 할 수 있는 엘찰텐에서는 모든 등반가들의 꿈이라 일컬어지는 피츠로이산(3,405미터)을 등반할 수도 있다. 모레노빙하의 관문이라할 수 있는 엘칼라파테 마을은 가장 번화한 곳으로 오랜만에 쇼핑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아르헨티나산 말벡 와인한잔에 스테이크의 호사를 누리며 쌓인 피로를 씻어보는 것도 좋다. 30킬로미터 길이에 5킬로미터의 폭, 60미터 높이의 얼음덩어리 펠리토모레노 빙하는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빙하 중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힌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수천년된 빙하위에서 빙하조각을 넣은 위스키한잔을 마셔보자!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빙하를 보는 또 다른 방법중 하나는 배를 타고 돌아보는 것으로 웁살라(Upsala)빙하크루즈는 세계최대의 빙하와 수많은 빙산을 크루즈로 돌아볼 수 있다. 빙하라고 하면 무척 추울 것 같지만 맑은 날씨엔 후드티 하나만으로 충분할만큼 그곳 여름의 날씨는 그리 춥진 않다.
파타고니아엔 크고 작은 빙하가 50개 이상이 있으며, 남극과 그랜란드 다음으로 양이 많다. 안데스 산맥에 내리는 많은 비가 빙하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난빙하에 속하는 이 지역의 빙하는 빠르게 순환하는 것이 특징인데, 여름과 겨울의 이동 속도는 다르지만, 연간 평균 100m에서 200m 사이의 속도로 움직여서 육안으로도 빙하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빙하크루즈나 트레킹 중에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빙하붕괴현상을 목도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있다.
지구 최남단마을, 우수아이아(Ushuaia)
파타고니아 여행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몇 번씩 오가는 여행이다. 아르헨티나의 엘찰텐, 엘칼라파테, 모레노빙하를 만나고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을 왔다가 다시 아르헨티나의 땅끝 마을을 향해 달려간다. 12시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고, 마젤란 해협을 웅장한 크기의 배, 파타고니아호를 타고 건넜다. 심한 바람엔 장사 없는 듯 그 큰 배도 휘청대고 약간의 배 멀미도 났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건너서 도착한 우수아이아. 우수에 찬 듯 보이던 그 곳. 사람들이 왜 이곳을 지구의 끝. 핀 델 문도(FIN DEL MUNDO)라 했는지 몸으로 와 닿는다. 남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모여 사는 최남단 마을인 우수아이아는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아래쪽에 설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항구마을이다. 먼옛날 대항해시대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많은 배들이 대자연의 재앙 앞에 침몰했다고 전해지는 곳.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며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1년 내내 세상의 끝을 느끼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남극으로부터 불과 1000km 떨어진 곳. 핀델문도(땅끝)박물관에는 찰스다윈이 비글 해협을 항해할 때의 항해일지와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까지 온 수고로움을 치하해주듯 여권에 스탬프도 찍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엽서를 보낼 수 있는 파란 우체통도 마련되어 있다. 장거리버스와 배 멀미로 지쳐있던 나는 한글로 주소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버리고 말았는데,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엽서를 친구가 받았단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문자가 왔다. 정말 대한민국 만세다.
Travel tip
◆가는 법: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방법은 항공으로 편하게 가는 방법(란항공(http://www.lan.com)과 버스를 타고 육로나 배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고자 한다면 항공이 좋겠지만 남미의 어마어마한 대지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2층침대 버스가 의외로 편리하므로 육로이동도 고려해볼만 하다.
◆꼭 방문해야할 주요도시 및 장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엘칼라파데. 엘찰텐, 피츠로이, 페리토모레노빙하, 마젤란해협. 우수아이아, 핀델문도박물관. 칠레 산티아고,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
◆여행적기 및 기온: 파타고니아는 우리와 정반대로 우리가 겨울일때가 그곳의 여름이다. 2월에 방문하면 그곳의 여름에 해당하지만 빙하라고 해서 생각한만큼 춥진 않고 18도 정도의 기온이지만 바람이 부는 토레스델파이네는 파카가 필요할만큼 춥기 때문에 사계절 옷이 다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