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애순(90) 씨. 1인가구상담헬퍼 사업을 비롯해 사회의 여러 도움 덕분에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지만, 좁은 방을 가득 채우는 따스한 미소가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마땅치 않은 환경에서도 무기력함을 떨치려는 그에게 되레 희망이 비쳤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동. 촘촘히 들어선 빌라와 상점들 사이 자칫 지나치기 십상인 고옥. 시멘트를 덕지덕지 덧바른 계단을 오르면 낡은 나무 현관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살짝 열린 세 번째 문 사이, 활짝 웃고 있는 이애순 씨가 보였다.
“어서 와요! 반가워. 오늘은 손님이 많이 왔네. 혼자 살고 있어 적적한데,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아.”
이 씨는 30년 넘도록 혼자 지냈다. 30대 초반에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자식 넷을 키워냈다. 청소노동자로 일하면서 치열하게 버텼다. 명절 때나 자녀들과 연락이 닿긴 하지만 서로 형편이 여의찮아 막내딸을 제외하곤 자주 만나지 못한다.
“남편이 하늘나라 갔을 때가 우리 막내 아장아장 걸을 즈음이었지. 애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만 보는데 어떡하겠어요. 열심히 돈 벌어야지.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청소 일로 평생을 먹고살았어. 가끔 껌 팔러 다니고. 이제 옛날 일은 다 잊어버리려고 해요.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거든. 자꾸 떠올리며 가슴 아파봐야 소용없기도 하고.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자세히 말도 못 해요. 오죽했으면 한쪽 귀가 먹어버렸을까요.”
맞춤형 서비스로 개선된 생활
이애순 씨는 적적할 때면 근처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사람 구경을 한다. 그러나 오래 걷지는 못한다. 일하며 상한 무릎은 몇 년 전 수술을 받았다. 짧은 산책이 끝나면 TV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듣는다. 특히 가수 임영웅의 애틋한 노랫말은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줬다. 노래 제목이나 정확한 가사는 잘 모르지만 마음을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이 씨처럼 혼자 사는 노인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홀몸 노인 비율은 20.8%로 1년 전보다 0.2%포인트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무렵 상황은 더 심각했다. 관련 기관과 커뮤니티 센터가 문을 닫은 탓에 홀몸 노인을 포함한 1인 가구가 사회 안전망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생겼다. 서울시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좀 더 면밀히 보호하기 위해 1인가구상담헬퍼 사업을 진행했다.
1인가구상담헬퍼 사업은 참여자로 선정된 1인가구상담헬퍼가 주거 환경이나 경제 상황이 열악하거나 정서적으로 고립되는 등 다인 가구에 비해 열악한 중장년 1인 가구를 발굴하고, 주기적으로 전화·방문해 안부를 확인한다. 사회와 단절된 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정서를 살피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게 돕는다.
잊고, 나아가기
이 씨는 해당 사업으로 조금 더 나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를 살피는 1인가구상담헬퍼 참여자에 따르면, 그는 수혜자 중 비교적 몸과 마음이 건강한 편이라고 했다. 거동이 불가하거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고립 상태가 더욱 심화되고 삶의 의지가 떨어져 식사, 취미, 인간관계에 관한 욕구가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단다.
계절이 지나도, 명절에도 그의 일상은 여전하다. 가족과 만나 멀리 나들이를 가거나 명절 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속상하거나 서운한 기색은 없다. 욕심을 부리기보다 주어진 삶에 집중하며 평탄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이애순 씨다.
“혼자 사는 집에 매번 찾아주어 고맙지.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낯설지도 않아요. 와서 뭐가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힘든지 다 물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갖다주더라고. 전기장판이 고장 났었는데 새 걸로 바꿔줬어. 그저 내 다리가 걱정이지.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야. 지금은 모르는 게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요 앞 상가 아가씨한테 물어보기도 하는데, 몸 상태가 나빠지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음에 감사해. 친절한 분들 덕에 긴 하루 중에 즐거운 시간이 늘 있네.”
만남을 뒤로하고 낡은 문을 나서려는 찰나에도 이 씨는 그를 찾은 사람들의 손을 꼭 잡아주거나 끌어안았다. 특유의 밝은 미소와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이라면, 충분히 현재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
- 찰리 채플린(1889~1977)
우하하하하하하하!
한 번 더!
우하하하하하하하!
독자 여러분, 일단 웃고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웃을 일이 없다고요?
속 편한 소리 하지 말라고요?
걱정이 태산인데 웃음이 나오냐고요?
그러니까 웃어야 합니다.
그럴수록 웃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웃어야 합니다.
웃지 않으면 병이 옵니다.
웃음에는 삶의 통찰과 지혜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예요.”
허리가 꺾어질 만큼 웃었던 게 언제인지 떠올려봅시다. 흉도 허물도 없이 마냥 좋은 친구, 내 사정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저만치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구부정한 어깨에 팔자걸음 딛는 사람을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보고 실실 웃기 시작합니다. 시간은 훌쩍 열아홉 나이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그러다 도로 앞까지 마중 나가 얼굴 마주하자마자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웃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보기만 해도 웃깁니다. 웃는 나를 보고 친구는 더 크게 웃습니다.
사랑하면 예뻐지는 이유
카페에서 혹은 거리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한눈에 티가 납니다. 옆에서 듣기에 말 같지도 않은 말에도 활짝 웃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깔깔거리고, 별것 아닌 걸 보면서도 키득키득합니다. 두 눈을 반짝이며 상대가 하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답지 않은 얘기에 손뼉을 치며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엔 정말 세상 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잘생겨 보이기까지 합니다. ‘좋을 때다’ 이러고 지나가는 독자 여러분, 당신도 그렇게 예쁘고 멋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웃고 다시 아름다워집시다.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소가 웃을 일이다.’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소는 웃지 못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동물도 감정을 느끼고 밖으로 드러내지만 기쁨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필자도 ‘벼리’라는 반려견과 16년째 같이 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동물은 사람과 달리 안면 근육이 웃을 수 있게 발달되지 않은 데다 생존에 웃음이 필수적이지도 않습니다. 웃음은 인간이 지닌 심리적 반응이며, 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웃음 속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웃음, 코웃음, 너털웃음, 헛웃음, 비웃음, 박장대소, 파안대소, 포복절도, 요절복통 등 갖가지 웃음으로 우리 마음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는 완벽한 약국이 있다.
우리는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강력한 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웃음이다.”
– 노먼 커즌스(1915~1990)
만병통치 명약이 공짜
컬럼비아대학교 졸업 후 ‘뉴욕 이브닝 포스트’ 기자로 활동하다 ‘새터데이 리뷰’로 옮긴 뒤 30년을 편집장 겸 발행인으로 활동한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는 50대 초반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침대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근처 호텔에 방을 잡고 코미디 비디오를 빌려 보며 실컷 웃었습니다. 한참을 웃고 나니 극심한 고통이 사라지고 염증 수치가 줄어들었으며, 어느새 진통제 없이도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웃음 치료 효과를 몸으로 입증한 그는 6개월 만에 다시 걷게 되었고, 두 해 뒤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노먼 커즌스는 한 발 나아가 의과대학과 병원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웃음이 가진 의학적 효과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75세 되던 해 ‘웃음의 치유력’(원제 Anatomy of an Illness)이라는 책을 펴냅니다.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얻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는 유효기간이 없어 부패하지도 않는 최고의 명약이 바로 웃음이며, 만병을 막아주는 방탄조끼가 웃음이라고 역설합니다. 게다가 웃음은 공짜입니다.
웃음이 주는 백만 가지 효능
‘웃음학’을 개척한 노먼 커즌스의 ‘웃음의 치유력’을 비롯해 리 버크와 스탠리 탠 의대 교수가 발표한 논문 ‘웃음과 면역체계’, 40년 가까이 웃음을 연구해온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프라이 박사 등의 연구를 종합해 대표적인 웃음 효능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매일 아침 큰 소리로 읽어보고 한바탕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면 건강과 행복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웃음으로 불치병을 이겨낸 노먼 커즌스는 웃음이야말로 참으로 놀랍고 긍정적인 최고의 약이자,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 고백했습니다.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증명해냈으니까요.
▶웃으면 통증을 줄이는 호르몬이 200~300배 많이 나옵니다.
▶웃다 보면 면역력이 증가하고 감기를 예방합니다.
▶웃음은 천연 혈액순환 개선제입니다.
▶웃으면 화난 사람이 아니라 환한 사람이 됩니다.
▶웃을 때 제일 예쁘고 가장 멋있습니다.
▶웃으면 어려 보입니다.
▶웃음은 조직의 유대감을 높여주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면 관계상 이하 생략합니다.
가장 빨리 웃는 방법 : 까꿍 인사
숨 막히는 긴장 상황에서 누군가 터뜨린 웃음이 관계를 탁 풀어줄 때가 있습니다. 막힘을 뚫어주고 관계를 되살려주는 웃음이란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아이 같은 마음, 동심을 회복하는 것이 웃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억지로 웃기도 힘든 당신께 가장 쉽고 빨리 웃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까꿍 인사입니다. 필자가 강의 초반에 객석을 돌아다니며 나누는 절차입니다. 까꿍 하면서 화내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저와 같이 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먼저 오른손으로 악수하며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이번에는 악수한 오른손 위로 왼손을 마주 잡고 악수하며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악수로 교차한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상대와 눈을 맞춘 채 ‘까꿍’ 하고 인사합니다. 백이면 백 반드시 웃음이 터집니다. 꼭 해보셔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게 까꿍 인사입니다. 20대 젊은이부터 70~80대 어른까지 직접 같이 해보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누구와도, 어떤 자리에서도, 공적이든 사적인 모임이든 관계없이 ‘까꿍 인사’를 하는 순간 웃음이 빵 터집니다. 아이를 보듯 마음이 무장해제되면서 한순간에 활짝 열립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지름길이 맞으니 꼭 자주 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장 남편, 아내와 해보시면 압니다.
공자 맹자 노자 대신 웃자 살자 놀자
어떨 때는 웃음이 백 마디 말보다 훨씬 효과가 크고 반응도 즉각적입니다. 나라마다 언어, 문자는 달라도 웃음은 만국 공용어로 만인 소통 수단이 됩니다. 특히 함께 웃을 때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같은 생각이라는 맞장구, 같은 편이라는 신호를 나타내는 관계의 척도가 바로 웃음입니다. 미국의 뇌과학자이자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프로바인은 연구를 통해 인간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30배 더 많이 웃는다고 밝혔습니다.
웃음이라는 신이 주신 선물을 마다해서야 되겠습니까. 얼른 받아서 잘 써먹어야 합니다. 공자도 맹자도 노자도 좋지만 성인 말씀 그대로 실천하기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웃으며 살고 재밌게 노는 건 우리가 해볼 만합니다. 웃자, 살자, 놀자, 그리고 지화자! 웃으면 복이 와요.(笑門萬福來)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어지니까요.(一笑一少 一怒一老) 우하하하!
시니어에게 글쓰기가 그렇게 좋다던데, 정말일까. 글쓰기 강사, 출간 작가, 출판 전문가 이야기까지 듣고도 글쓰기 교실의 생생한 목소리가 궁금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서울 양천구 개울건강도서관의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 일일 수강생으로 함께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살면서 있었던 일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 인생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단단해지는 느낌? 사방에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진 채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정돈되는 것 같아요.” - 성영옥 씨
“한풀이가 되더라고요. 내 마음에서 다 끄집어 내놓으니까 병이 낫는 거죠. 정말이에요. 그동안 꽤 아팠어요. 그게 다 ‘내가 소심해서 오해하고 곡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먼저 손을 내밀게 되더라고요. 몇 년간 껄끄러운 관계였던 지인과 최근 다시 가까워졌어요.” - 이정임 씨
“이런 게 마음 치유구나 싶어요. 이젠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넘어갔어요. 마음의 옷을 하나하나 벗다가 발가벗게 될 것 같아서요.(웃음)” - 김용희 씨
간증이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고백이다. “어 맞아, 맞아. 그런 게 있어!” 중간중간 수차례의 맞장구가 오간 열띤 증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찾은 곳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개울건강도서관 2층 어울림실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필기구를 챙겨 든 시니어들이 빼곡한 책 사이를 가로질러 도서관 내 아담한 교실에 모이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독서 문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는 고령 이용자가 많은 개울건강도서관이 마련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이다. 노년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인문학으로 ‘서울형 독서문화 프로그램’ 우수 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던 개울건강도서관은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올해 개설한 프로그램은 ‘마음 건강’을 키워드로 한 글쓰기 교실이다. 박혜옥 도서관운영팀 주임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니어층의 독서문화 프로그램 수요는 꾸준히 있었어요. 강의실 규모 때문에 10분만 모집하기로 했는데, 초과 접수됐습니다. 현재 11분이 해나가고 있고요. 이따 보세요. 출석률이 되게 높아요.”
맨 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숨을 고르자 자리가 속속 채워지기 시작했다. 박 주임이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8회 차 수업 역시 출석률 100%로 막이 올랐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이미지 카드를 가지고 왔어요. 본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를 골라보시겠어요? 나와서 한 장씩 가져가세요. 고른 이유도 말씀해주시고요.” 박경숙 강사의 안내에 수강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학자가 꿈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못 갔는데, 책이 쌓여 있는 이미지를 보니 그때 생각이 딱 났습니다.”
“제 인생에 장기 해외여행은 2~3번 남았을까요? 손녀딸, 며느리와 이탈리아 여행 가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비용을 다 지불하더라도 여자들끼리만 한번 가보고 싶어요.”
글쓰기는 돌아가며 발표를 마친 뒤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씩 이어졌다. 박경숙 강사의 교수법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말하듯이 쓰라’는 거예요. 다들 말은 재밌게 잘하는데 막상 글로 쓰면 그렇지 않거든요. 특히 시니어들은 어렵고 고급스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다들 조금씩 있어요. 어려운 어휘나 고사성어를 넣으려고 하죠. 저는 그걸 빼는 쪽으로 피드백해요.”
나쁜 습관 덜어내기를 한 지 어느덧 두어 달.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며 눈을 밝혔다. 수업 내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 ‘열혈 수강생’ 성영옥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블로그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생각나는 대로 써서 올렸는데, 이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구상하고 써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짝꿍 김용희 씨도 얼른 말을 보탰다. “저도 수백 번 글을 썼지만, 다 내 맘대로 쓴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가이드라인이 생겼어요. 내 글을 피드백 받아보는 경험도 했고요. 배운 점을 유의해서 쓰니까 사실 글쓰기는 더 어려운데(웃음) 참 유익한 것 같아요.”
며느리의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한 이정임 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자서전 쓰기를 버킷리스트에 넣었어요. 한동안 어딜 가든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드니까 괜히 위축됐는데 여기 와서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글쓰기는 정년이 없잖아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연장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 외에 마음 처방전을 각자 하나씩 챙겨 들고 어울림실을 나섰다. 10월, 그 손에는 4개월 동안 써낸 글을 모은 문집까지 쥐어질 예정이다.
오랜 기간 자신만의 공간 속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점차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형됐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부모까지 대상을 확대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청년층에 한정된 실태조사와 지원사업만 진행 중이다. 일본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한국어로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는 기간이 최소 3개월 이상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학업이나 취업 등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며 △방 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더불어 우울증, 대인공포, 조현병 등 정신장애는 은둔 생활이 길어지면서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일 뿐, 원인이 아니어야 한다.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숨게 만드는 사회
이들은 왜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야만 했을까? 원인을 단숨에 짚기란 쉽지 않다. 은둔의 시작 시기와 계기를 비롯해 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과 회복 가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가 한데 얽혀 유형화하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화돼 진학 실패, 가족과의 갈등, 지속되는 취업난, 경직된 대인관계 등이 맞물린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를 단순히 ‘개인 사정’으로 치부해왔다. 가족, 학교,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그사이 흘러버린 27년의 세월 동안 은둔형 외톨이는 더욱 많아졌고, 장기적으로 은둔 생활을 지속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중장년이 됐다. 최근에는 ‘8050 문제’(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까지 우려되면서 노년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원래는 ‘7040 문제’라고 불렀지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진화한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은둔 자녀와 동반 자살을 감행하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폭행해서 숨져도 연금 수급을 위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명확히 마주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할 만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발굴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대응책이 없다 보니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세심한 지원을 하기도 어렵다. 동굴 속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가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상담을 시도해도 의지가 약해서, 철이 없어서 등의 비난을 받고 되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본의 지원책을 참고하면서도 한국만의 고유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 때문이다.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삶의 방식이 변했다”며 “생산을 강요하고,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는 편견은 접어둬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또 “이혼, 사별, 은퇴 등으로 40대 이후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은둔과 관련한 지원을 점차 전 세대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와 상담할 때는 다각화된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관련 상담 전문가를 육성하고, 관련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간혹 폭발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주먹을 휘둘러요. 조급한 마음에 문을 없애버리거나 방 밖으로 끌어내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돼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망가졌던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가 돕는 게 가장 좋죠. ‘나랑 대화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해볼래?’ 하면서 전문기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자신을 살리고 싶어서라도 연락하더라고요.”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 ▶
“한 명의 은둔 생활로 다른 가족도 함께 위축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계속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면을 치유하도록 북돋아줘야 해요. 그들도 더 힘들지 않기 위해 덜 힘든 방법을 택한 거니까요. 병을 치료하듯 은둔의 그늘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아요. 다시 어떤 계기로 은둔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차츰차츰 나아질 겁니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가족 모두가 성장하는 시기가 올 겁니다.”
끝내 용서하지 못한 사람
1955년에 태어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이 사람은 시리아계 미국인으로 대학에서 철학과를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른 불교 신자이며,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바로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남다른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암에 걸려 끝내 일어서지 못한 그는 자신을 버린 생부(生父)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친아버지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평생에 걸쳐 품고 있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 한순간도 용서하지 않았던 그 돌덩이 같은 모진 마음이 병으로 발현되지 않았을까요.
암세포보다 위험한 것
가수 윤도현은 최근 3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면역세포인 림프구가 악성으로 바뀌어 종양이 생긴 ‘위말트림프종’이란 희귀암에 걸린 뒤 치료와 회복에 전념해온 그는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힘든 투병 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고립 대신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말자고 환자들을 응원했습니다.
가장 취약한 곳에 파고드는 그분
필자는 지난 한 달 용서, 사과, 화해 이런 말에 몰입해서 내가 얼마만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이맘때 일기를 꺼내 보았네요.
요즘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아 그런지 말도 삐딱하고 가시 돋친 듯 날카롭고 하더니 결국 몸에서 사달이 났다.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틈을 바이러스나 병균이 침투한다더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나한테는 바로 방광염이다. 얼마나 아프던지 밤새 앓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원인을 찾으려 병원 가서 검사해봤더니 듣도 보도 못한 균들이 내 몸을 장악했다고 한다. 의사는 항생제와 주사 처방 뒤에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면역력은 떨어진다. 이제라도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얼른 멈추고 말과 마음을 회복해야 몸도 잘 회복되겠지. 잘 될까?
용서(容恕)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용서를 구해보거나, 용서를 구하는 상대를 용서한 적이 있습니까? 이 ‘용서’란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용서가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요, 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요, 용서하면 무슨 이득이 생길까요.
‘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
사전 뜻풀이만으로는 용서의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용서(容恕)에서 핵심 단어는 용서할 서(恕)로,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남의 처지에 동정하는 어진 마음을 ‘서’라고 합니다. 내 마음과 상대 마음을 같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용서입니다.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로 내 그릇, 얼굴(容)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두 마음을 같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 입장에, 그 위치에, 그 상황에 똑같이 처해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이게 바로 용서하는 마음, 용서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용서에 도달하는 다섯 단계(REACH)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용서 분야 학자인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 박사. 정작 자신은 1955년 어머니가 강도 살인을 당했을 때 정신적 고통과 살인자를 향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피해자이자 연구자로서 그는 오래도록 살인자를 용서해야 할지를 놓고 씨름하면서 ‘용서와 화해’(Forgiving and Reconciling)라는 책을 저술했고, 다섯 단계를 거치는 용서의 기술을 전했습니다.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용서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1단계(R:Recall the Heart, 상기하기) : 상처를 부인하거나 억지로 잊거나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2단계(E:Empathize, 공감하기) :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봅니다.
▶3단계(A:Altruistic, 이타심 갖기) : 상대를 축복하고 잘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내면의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4단계(C:Commit, 약속하기) : 상대를 용서하기로 자신과 약속하고 실행합니다.
▶5단계(H:Hold on, 견디기) : 용서라는 결정에 회의가 들더라도 그 마음을 견디고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살인자 구명운동에 나선 두 아버지
1987년 서울예고 성악과 2학년 재학 중 점심시간에 선배들한테 끌려가 폭행당해 죽은 고(故) 이대웅 군의 아버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해외 출장길에 아들 소식을 들은 그는 학교를 다 부숴버리리라 했을 만큼 격분했던 마음을 간신히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난동을 부리면 아버지가 저리 모질어 아들이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굳게 마음먹고 감옥에 갇혀 있던 가해 학생을 풀어달라고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 이름으로 장학회를 만들어 30년 남짓 3만 명이 넘는 학생을 도왔습니다. 더욱이 아들 죽인 원수의 학교인 서울예고와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해 재정난을 해결해주고, 지난 5월에는 200억이 넘는 사재를 기부해 대형 문화공간 서울아트센터를 완공했습니다.
1958년 미국 필라델피아 해밀턴가에서 무차별 폭행으로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11명이나 되는 흑인 청소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1달러도 안 되는 댄스파티 입장료를 구하려고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오기병 씨는 미성년인 범죄자들을 용서하고 무죄로 석방해달라는 탄원서와 함께, 가난한 수감자들의 직업교육과 사회적응에 쓰라고 당시로는 큰돈인 500달러를 재판장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아버지는 그렇게 두 아들을 영원히 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서 안 하면 마음의 병만 커져
‘용서’라는 행위는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우리가 하지 않을 때 도리어 손해 나는 일로 자주 밝혀지곤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상태는 내 안에 증오와 복수라는 불을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결국 내 속을 태워 아프고 병들게 합니다.
인간의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Telomere)라는 조직은 세포 노화 및 질병과 밀접한데,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면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텔로미어 연구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교수팀은 ‘자애(慈愛) 명상’을 통해 남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커질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더 이상 짧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길어지는 경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상 훈련을 한 집단이 분노와 증오 같은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에 비해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결과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하버드 T. H. 챈 보건대학원 연구팀에서 ‘용서 워크북’을 작성한 사람은 우울감과 불안감이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용서를 하면 과거를 곱씹는 빈도가 줄어들어 부정적인 감정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와 적대감으로 광포해진 현대 사회에서 용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평생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마음 치유의 첫걸음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때 그 사건으로 항상 자신을 갖다놓곤 합니다. 뒷걸음질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영어로 ‘forgiveness’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앞으로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용서함으로써 뒤로 향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복수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용서입니다. 말처럼 쉽다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노력한다고, 안다고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용서해야 내가 살고, 내 병이 낫고, 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다니 마음 깊숙한 곳에 뒤돌아 있던 자신에게 용서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아봅시다.
이해인 수녀님의 ‘용서의 계절’을 함께 나누며 마음 반창고 9화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시간을
알뜰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쓸데없이 허비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로 삼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듣는 일에 소홀하며 건성으로 지나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내가 어쩌다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남의 흉을 보고
때로는 부풀려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나의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교묘하게 되풀이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소한 일로 한숨 쉬며, 실망하며
밝은 웃음보다는 우울을 전염시킨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중장년기에 겪는 주요 증후군은 ‘상실(감)’이라고 한다.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관계 상실로 많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각 대표 증상과 솔루션을 알아본다.
사회적 역할 상실 ‘슈퍼노인증후군’
은퇴 이후에도 현업에 있을 때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증상.
【솔루션】
1. 무리한 스케줄은 줄이고, 자신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하기.
2. 병원이나 센터를 찾는다면 배우자와 동반하기
가정에서의 역할 상실 ‘빈둥지증후군’
자녀가 취직·결혼 등으로 출가·독립하며 상실감과 외로움 등을 느끼는 증상
【솔루션】
1. 가정이 아닌 사회와 연결되는 역할을 찾자.
2. 갱년기와 맞물려 있다면 미리 관련 교육이나 상담을 받자
배우자와의 사별 ‘애도증후군’
사랑했던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증상
【솔루션】
1. 잘 운영되는 자조모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자
2. 배우자와 추후 찾아올 부재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자
◇상실에 대처하는 중장년의 자세◇
상실 아닌 역할 변화로 인지하기
생애주기에 따라 예견되는 상실의 시점을 인지하고, 이에 따라 준비하자.
일·가정·개인 역할의 균형 맞추기
가정에서의 역할, 오롯이 개인의 역할 등을 일상에서 점검해보고 균형을 맞추자.
나는 누구인가? ‘자신’ 잃지 않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을 갖자.
“노인들이 달라지고 있어요. 과거의 인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센터장은 노인의 정신 건강과 복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과거의 노년 세대를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지칭하듯,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생애주기 확대와 함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는 말 그대로 전국의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하고 생활관리사를 파견해 생활을 돕는 기관이다. 2011년 처음 기관이 설립되었을 때는 독거노인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2020년부터는 노인 부부 세대까지 아우르는 중앙노인돌봄지원기관으로 발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기관의 역할이 재평가되는 계기였죠. 전염병 공포에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어르신들이 저희 생활지도사들만은 환영했으니까요. 단지 마스크나 생필품을 전달해서가 아니라,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저희가 유일한 사회와의 소통 창구였죠.”
마음의 병, 우울증이 대표적
특히 노인 세대의 정신 건강 관리에 한몫했다. 독거노인들은 여러 가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고 김 센터장은 지적한다.
“우울증이 가장 흔하죠. 아무래도 노년 세대의 상당수는 독거노인이고, 홀로 지내다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기 마련이에요. 특히 코로나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어요.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은둔형 질환자도 많아요. 이 밖에도 최근에는 감정기복이 심한 조현병이나 저장강박증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센터가 참여하고 있는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는 일반적인 직접 서비스 외에 우울형과 은둔형 노인을 대상으로 한 특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기관에서도 이들을 가볍지 않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우울감을 가진 분들은 일단 우울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죠. 자존감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본인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요. 그래야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력이 생기니까요.”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매일 안부를 확인하며 우울감을 줄이고, 집단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유도한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게 하고, 식사를 함께 만드는 등의 방식이다. 우울감이 심하면 의료기관과 연계해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도록 한다. 우울감 해소를 위해 기업들과 협력해 첨단기기를 보급한 것도 센터의 성과다. 센터는 SKT와 업무협약을 맺고 인공지능 기반인 NUGU 비즈콜을 보급해 고령자와 기저질환자의 안부를 확인했다.
우울증은 이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인식도 과거에 비해 나아져, 노인이 자신의 병을 인정하거나 치료에 협조적인 편이라고 김 센터장은 설명한다. 문제는 은둔형 어르신이다.
찾기도, 대하기도 어려운 은둔형
“은둔형 어르신은 남성이 많아요. 황혼 이혼을 했거나 비혼인 상태에서 퇴직 후 사회와 단절된 경우죠.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하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요. 전입 절차를 밟지 않은 무연고인 경우엔 더더욱 그렇죠.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장기 투숙하거나 고시촌 같은 곳에 머물러 외부와의 접점을 찾기도 힘들고요. 문제는 이런 분들이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어려워하고, 위생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으며 자살률도 높다는 점이에요.”
이런 은둔형 노인들은 생활보호사들도 대하기 어려워한다고 설명한다. 라포(신뢰관계)가 형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문전박대는 기본이고 협박이나 욕설은 예사이기 때문이다. 또 돌봄 인력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성범죄 대상이 될 수 있어,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수고까지 발생한다.
최근에는 저장강박증과 관련한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말 그대로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물건의 가치판단이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많은 물건을 집 안에 쌓아두는 증상이다.
“원주에서 저장강박 어르신을 직접 뵌 적이 있어요. 인지장애까지 앓고 계셨죠. 물이 끊겨 위생도 엉망이었는데, 고장 난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계셨어요. 벌레 꼬인 고기를 봤을 땐 경악할 수밖에 없었죠. 저장강박증은 위생적으로 문제를 야기해 본인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문제가 돼요. 그분의 경우엔 지자체와 함께 수도 공사도 다시 하고, 냉장고도 고치고, 물건도 치워드렸어요. 이런 저장강박증은 물리적으로 물건을 치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재발하지 않아요.”
조현병이나 치매도 노인의 ‘마음의 병’에 자주 등장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이런 병의 경우 본인이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발이 엄청나게 심해요. 우울증은 순순히 인정하시는데, 치매나 조현병은 흥분하면서 화를 내고 대화를 단절해버려요. 심지어 이미 진단을 받았음에도 저희에게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생활지원사들이 의심스러운 소견을 발견하면 지역 의료기관과 연계해 전문적인 진단과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심하면 노인 범죄로 발전
이러한 정신 건강 악화는 단순히 노인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노인 범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경찰청이나 보험연구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중장년층의 범죄는 계속 증가세에 있다. 50대는 강력범죄 증가가 눈에 띄고, 65세 이상의 경우 폭력과 절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증가율은 남성을 웃돌기도 한다.
“힘없고 노쇠한 노인만 생각하면 안 돼요. 이제 체력적으로 중년 못지않은 노인들도 많아요. 성욕이 유지되면서 성범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범죄 이력이 있는 분들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주변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죠.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문제로 부각되고 있어요. 때문에 기관에서도 생활보호사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이런 문제들이 쌓이면 결국 돌봄 인력 부족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질환이 아니어도 생활보호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노인들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거나 생활보호사를 가정부 정도로 여기는 경우다.
“소통을 좋아하시는 분은 생활보호사와 금방 친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딸보다 더 가깝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적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정신적으로 가까워지면 물질적인 것을 요구하는 경우예요. 금전 거래는 절대 안 된다고 교육하지만, 소액의 무언가를 사다달라고 한다든가 소액을 요구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집안일을 시키기도 하죠.”
때문에 센터에서는 돌봄 인력의 이런 정신적 ‘소진’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관련 교육은 물론이고, 1일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해 스트레스 해소를 돕는다. 상담이 필요할 경우 일부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 있어도 고립 사례 발생
김 센터장은 노인 맞춤돌봄 서비스 대상자가 아니지만, 사회와 단절되고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노인들도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죠. 자녀가 부동산을 부모 명의로 돌려놓고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재산이나 소득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예외 대상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쌀 등을 긴급 지원하기도 합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경제적 여력은 되지만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범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정부는 노인들의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2021년 고독사예방법을 시행하고, 지난 5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전체 사망자 100명당 1.06명꼴인 고독사 발생을 20% 줄여 2027년까지 0.85명 정도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물론 그 중심에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도 있다.
마지막으로 김 센터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 문제에 이웃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마음의 병은 다각도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이제 노인들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생활 형태까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요. 정부의 복지 체계가 꼼꼼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이웃이 함께 돌봐주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청년과 노년 사이 ‘낀 세대’로 불리는 중년. 신체적·사회적 변화로 ‘제2의 사춘기’를 보내는 이들 대부분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인해 정신의학과 병원 또는 센터 찾기를 두려워한다. 그런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고, 치유할 수 있다고.
지난 4월,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에서 부부 사이인 50대 남성 A씨와 40대 여성 B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기초수급생활비로 월 120만 원가량 받아온 부부는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120세 시대에 젊은 나이에 속하는 중년 부부의 선택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울증, 마음의 병을 앓는 중년의 증가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5년(2017~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 모두 40~6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중장년은 불안장애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2017년에는 50대 환자가 전체의 20.7%(13만 5525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1년에는 60대 환자가 전체의 18.5%(15만 9845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기는 생애주기의 전환점을 맞는 시기로, 생물학적·사회심리적 변화로 인해 우울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내포할 가능성이 크다. 여성의 갱년기를 포함한 건강 문제, 사회적 역할의 한계 등 이전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하면서 많은 심리적 압박감을 갖게 된다. 중년기 마음의 병에 관해 권순재 당신의건강의학과 원장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중년의 심리적 고민
중년기의 아픔을 설명하기에 앞서 권순재 원장은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언급했다. 에릭슨은 ‘인간은 평생 사회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8단계의 발달 단계를 거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권 원장은 이 가운데 40대 이후 중년은 ‘Middle-age Adult’에 속한다고 봤다. 이 단계의 인간은 ‘생산성 vs 침체성’의 과정을 겪는다.
“보통 20~30대에는 취업·결혼 등 비슷한 목표로 열심히 달리는데, 40대가 되면 ‘생산성’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배됩니다. 사회에서 출세하겠다는 목표로 계속해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겠다는 사람도 생긴다는 거죠. 또 육아를 담당하며 살아온 여성은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을 수도 있겠고요. 반면에 ‘침체성’은 그냥 늙고 쇠약해져가는 과정이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40대는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중년에게서 가장 많이 보이는 심리적 고민은 무엇일까. 권순재 원장은 ‘부적응’을 꼽았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는 권위주의적 성향, 20·30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그 사이에 ‘낀 세대’인 중년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다음으로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가 많은 편이다. 지방이나 시골에 거주하는 중장년은 알코올 중독 문제를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도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 심리상담 및 치료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권순재 원장은 “정신 건강을 정상과 정신병자로 나누는 것은 예전의 잘못된 이분법적 생각”이라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보는 현대인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도시로 갈수록,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고학력일수록, 화이트칼라일수록 건강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요. 요즘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이란 병이 없는 게 아니죠. 정신 건강에 대한 중요성이 강화됐는데, 체중이나 피부처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시에 살고 있는 서울 사람들은 마흔이 됐다고 해서 도전이 끝나지 않아요. 20대만큼 계속해서 도전을 강요받고, 발전하려고 하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고,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정신상담, 두려움 없애야
정신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회 구조상 현대인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으며,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권순재 원장 역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생존이 중요한 원시인은 포식자가 숨어 있다는 예감이 들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 시간이 10초도 안 걸리죠. 그런데 현대인은 내 인생에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면, 그게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린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스트레스 상태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게 된 거죠. 이는 건강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감염에 취약해지고, 심장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도 발생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인식이 좋아진 것과 같이 약물치료에 대한 대중의 저항감도 매우 줄었다고 한다. 권순재 원장은 “요즘 가장 널리 쓰이는 정신질환 약은 항우울제다. 많은 연구가 지속되면서 항우울제 장기 복용에 대한 결점이 없어졌다”면서 “오히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을 그대로 놔뒀을 경우 문제가 생긴다. 노년기에 치매에 걸릴 가능성도 훨씬 커진다”고 말했다.
“우리의 생각이란 좌뇌와 우뇌의 정보 교환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특히 고민이 생기면 뇌에서는 세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조절합니다. 첫 번째, 자기중심적인 추상적 생각을 반복 하지 않게 만들어요. 두 번째, 눈앞에 있는 감각적인 경험에 집중하게 합니다. 세 번째,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나를 설득합니다. 이걸 긍정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망가진 것이 우울증입니다. 약물치료가 좋은 이유는 뇌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위의 작용을 낮추는 거예요. 우울증 약을 먹었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죠.”
약물치료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치료 방법이 있다.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다. 병원이 심리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부담스럽다면, 지자체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권순재 원장은 “우울한 생각이나 고민을 해결하는 세 가지 방법, 그게 주로 좌뇌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좌뇌에는 언어중추가 있다. 쉽게 얘기하면 자기 안의 고민을 말로 엮어서 눈앞에 있는 사람한테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정신 건강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리치료 대부분이 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존재 이유를 얘기했다.
“현대에 와서 정신 건강은 매우 중요해졌어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서 삶의 질이 행복한지 아닌지로 건강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내과에서는 신체에 문제가 없으면 정상이라고 하죠.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신체에 아무 문제가 없어도 행복하지 않으면 병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는 걸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얘기 나눠봐요.”
정신질환 정확히 알기
우울증 : 우울장애가 정식 명칭.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태.
TIP |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PHQ-9’(Patient Health Questionnaire-9)을 검색하면 우울증 자가진단을 할 수 있다. 특히 1번(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과 2번(평소 하던 일에 흥미가 없어지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이 중요한 문항이다.
불안장애 :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킨다. 불안한 느낌이 지나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다양한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공황장애 :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공황발작은 신체 증상이 동반되며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
부적응 : 개인이 주위 환경이나 사회의 요구를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이나 불안의 상태를 말한다.
누구나 마음속 응어리를 갖고 있다. 그 응어리들이 뭉쳐 불안, 우울, 무기력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이 ‘의지가 약해서’ 혹은 ‘마음이 여려서’ 찾아온다고 여긴다. 이명수 원장은 우울증·공황장애·ADHD 등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개선하고, 증상을 겪는 이들을 담담하지만 따뜻하게 감싼다. 신간 ‘우울해방일지’에는 가려진 내면의 안개를 걷어낼 수 있도록, 증상에 맞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명수 원장은 24년간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관점을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해왔다. 보건복지부, 서울시, 경기도와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 및 자살 예방을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정신보건이사 및 기획홍보이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경기도 자살예방센터장, 사단법인 자살예방행동포럼 ‘라이프’ 대표,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의대에 진학해보니 문득 ‘나는 문과 체질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인문학적 요소가 있는 정신과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은 매우 강력하게 우리를 압도하는데, 무심코 한 생각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에 공황장애라는 개념을 도입하신, 존경하는 선생님을 따라 레지던트도 하게 됐죠. 지역사회의 정신 보건을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을 했지만, 늘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환자를 입원시켜놓고 회진을 가지 않으면서 마음 불편해하는 꿈을 지속적으로 꿀 정도로요. 지금은 임상 의사로서의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이 원장은 삶의 여러 가지 상황에 지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이들의 증상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의사와의 사이에 내려놓는 것, 더 나아가 의사에게 던져버리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원인’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환자들에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당신과 내가 마주 앉아 있지만, 사실 우리는 같은 방향에 나란히 앉아 당신의 문제를 앞에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라며 한 발짝 떨어져서 보도록 유도한다.
“찔리면 아프고 눌리면 답답한 기분은 누구나 느낍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흘러가지 못한 채 억눌리거나 고이면 분노, 공포, 우울 등 과도한 반응을 유발하게 돼요. 대부분 증상을 겪고 있어도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하죠. 병원에 간다 해도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상담과 약물 치료를 통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라는 허상을 붙들고 부정적인 생각을 고착시킨다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하니까요. 부정적인 감정, 비관적인 생각도 물론 다뤄야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불편한 감각을 안정화해 자신의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우울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각자 성장 배경과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중장년이 되면 보통 ‘중간 항로’의 시기를 겪는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개념이다. 중간 항로를 거치면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네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부모가 나에게 어떤 태도이든 그들이 주는 심리적 울타리로부터 벗어나는 것, 배우자가 나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녀 역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 스스로 일터에서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네 개의 산을 모두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과도하게 벗어나려다 노이로제에 걸리기도 한다. 벌어진 상황과 갖고 있는 기질이 부딪혔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이 저마다 다르고, 다양한 증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결과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건강한 일반인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는 이유는 ‘얼마나 건강한지’를 평가하기보다 ‘질환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함이에요. 나와 주변의 상태를 미리 들여다보고 인지할 수 있다면 좋겠죠. 책 ‘우울해방일지’는 심리적 불균형을 겪는 사람들이 관점의 지평을 넓히고 실천의 동력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표지 일러스트부터 속지 디자인, 내용 하나하나까지 이 원장의 의견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딱딱한 이론보다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으며,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문장과 단어를 골라내 적절한 조언을 담았다. 고유의 행동 패턴이나 습관이 아닌 증상일 수 있음에도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에, 최대한 세심하게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가치를 실천하며 사는 게 가장 평화롭게,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가령 내가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이제껏 중요하다고 여겼던 일 중에 제칠 만한 항목과, 새롭게 부각되는 항목이 무엇일까요? 후자가 진정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겠죠. 저도 여전히 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했어요. 그걸 보물찾기 하듯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모호하지만 하나씩 찾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방향을 설정해보면 어떨까요. 부디 여러분도 목표가 아닌, 가치를 향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서이숙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얼마나 바쁜가 하면, 동시에 네 작품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정도다. 많은 작품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이숙은 아직 목마르다고 말한다. 전성기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언제, 어떤 작품을 통해 서이숙(56)이라는 배우를 알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JTBC ‘부부의 세계’ 속 최 회장의 아내로, 누군가는 tvN ‘호텔 델루나’의 마고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서이숙이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를 펼친 지는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가 아니다. 그가 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중에 무명 연극배우로 지내며 빛을 보지 못한 시간이 20년이다.
서이숙은 긴 어둠의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시간의 공력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시간의 공력이란 시간을 들인 만큼 값진 결과가 언젠가는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이숙은 시간의 공력 끝에 행복의 경지가 있고,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는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도대체 전성기는 뭘까 하는 질문이 생기죠. 제 연기에 대한 만족감이 10점 만점에 5점을 넘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직 전성기가 안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언젠가는 올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시간의 공력을 믿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이 없답니다.”
갑상선암, TV 출연으로 전화위복
서이숙은 배우로서 행복을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해서는 아니었다.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정동환 선생님과 함께한 ‘고곤의 선물’과 ‘오이디푸스’ 무대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면서 “내 연기에 관객들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행복을 느끼기까지 서이숙은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스무 살에 우연히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서이숙은 수원예술극장 단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궁핍한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989년에 극단 미추에 입단했지만, 15년간 코러스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러다가 2003년, 마침내 보상의 시간이 찾아왔다. ‘허삼관 매혈기’로 첫 주연을 맡은 서이숙은 동아연극상 연기상,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등을 휩쓸었다. 동시에 연극계에 서이숙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까지 거의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삼관 매혈기’ 때 연기가 정말 재밌었어요. 대본이 좋으면 연기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20년 만에 주연을 맡은 것인데, 시간의 공력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상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인생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드라마는 아직 인생작을 못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인생의 빛을 보려던 때인 2011년, 서이숙은 갑상선암을 선고받았다. 그는 “진짜 이건 뭐지 싶었다. 열심히 20년 넘게 연기한 것밖에 없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갑상선암 치료와 수술로 무대에 서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서이숙은 이때부터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2010년 홍창욱 감독의 SBS 드라마 ‘제중원’을 통해 드라마에 발을 내딛은 상황이었다.
“제가 활동하는 산악회 모임에 홍창욱 감독님도 계셨죠. 감독님께서 ‘제중원’을 준비 중이셨어요. 명성황후 역할이 있는데 신선한 얼굴을 캐스팅하고 싶으셨나 봐요. 저한테 출연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중원’에 출연했고, 시청자분들이 ‘저 배우 누구야, 목소리 좋다’ 하면서 관심을 보이셨죠. 그 이후 계속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때를 생각하면 인생이 마냥 코너로 몰리지는 않는구나, 힘든 일도 결국은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껴요.”
이후 서이숙은 MBC ‘짝패’, ‘기황후’,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tvN ‘호텔 델루나’, JTBC ‘부부의 세계’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최근작은 tvN ‘슈룹’이다. 폐비 윤 씨 역을 맡은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서이숙을 향한 시청자의 연기 호평은 나날이 쌓여가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드라마를 처음 찍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연극배우로서는 베테랑일지 모르지만 방송국에서는 초보잖아요. 매일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하는 후회만 남는 거죠. 지금 1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이 매일 후회해요. 제가 성향상 한번 연기한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든요. 드라마는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어야 하는데, 저는 매번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 거죠. 드라마 위주로 활동한 배우들은 그 감정 배분을 잘하더라고요.”
촬영 때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에 100%의 감정을 쏟기 때문에 촬영이 지속되면 그 강도의 에너지가 계속 나오긴 어렵다는 뜻이다. 연극할 때의 연기가 몸에 밴 그는 상대방이 연기할 때도 100%의 감정을 실어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이다. 서이숙은 이 부분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장점으로 본다.
현재 ‘여배우가 찾는 여배우 1순위’로 통할 만큼 이러한 연기 방식은 방송가에 입소문이 났다.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은 그때의 감동을 기억하며 서이숙을 또 찾는다. 같이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들도 소문을 듣고 러브콜을 보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서이숙이 가장 호흡이 좋았다고 느낀 배우는 누구일까. 단번에 ‘부부의 세계’에서 만난 김희애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이숙과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 첫 신을 찍을 때 주고받은 에너지는 압도적이었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서이숙과 김희애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 메이커’로 재회했다. 올 상반기 방영 예정으로 두 사람이 보여줄 시너지가 기대를 모은다.
건강하게 잘 늙어가기
서이숙은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도 결국 사람이고, 그가 살아온 인생이 연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다. 그는 연극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고(故) 장민호의 연기를 보고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장민호 선생님은 ‘3월의 눈’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명장면을 남기셨어요. 어떤 특별한 장면이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걸어가다가 의자에 앉는 장면이에요. 선생님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살아온 삶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연기구나, 살아온 삶이 연기구나라고 그때 깨우쳤죠. 그게 연기의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아직 답이 안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저의 답은 죽을 때 나올 것 같아요.”
연기는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서이숙. 그래서 그의 목표는 ‘잘 늙어가기’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잘 늙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느낀다고. 서이숙은 최근 갱년기를 겪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내 나이쯤 되면 흔히 겪는 병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보통 병이 아니더라”는 토로가 이어졌다.
갱년기는 어느 날 불쑥,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서이숙은 신체적인 변화보다 정신적인 변화가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에 재밌는 일도, 맛있는 것도 없어졌다. 젊었을 때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이 재밌었는데 이제는 뭘 해도 재미없다”면서 “그래서 시니어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잘 늙어가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서이숙은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동료들이 많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인간관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반려견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생인 반려견 ‘노을이’와 ‘준이’를 키우고 있다.
서이숙에게 반려견들은 가족 그 이상의 존재다. 이를 두고 “사람하고 살아야지 왜 개하고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이숙이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싶다”면서도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 될 것 같다”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결혼할 때를 놓친 것 같아요. 20대 때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밥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어머니도 일찍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연극을 할 때라 돈이 없기도 했죠. 딸이 결혼해서 고생만 할까 봐 어머니가 더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해요.”
서이숙은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중학생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다. 서이숙은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이제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머니 생각을 하던 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어머니는 1938년에 태어나셨어요. 전쟁을 겪은 보릿고개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저를 홀로 키우시면서 정말 힘든 삶을 사셨죠. 돈이 없어서 집에 냉·난방기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한 여인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요. 잘해드리고 싶어서 용돈을 드려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잘 안 쓰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또 안타까워서 저도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오게 되고…. 참 속상합니다.”
서이숙은 어머니에게 잔소리하는 자신을 보면서 ‘말실수를 줄이자’는 새해 다짐을 했다. 또 다른 목표는 ‘후회 좀 하지 말자’, ‘내 건강에 신경 쓰자’다. 그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이다. 그래야 잘 늙어가고, 좋은 연기도 나오는 법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질 서이숙의 연기가 기대된다.
“누군가에게 인사할 때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너무 잘 알죠. 잘 늙으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는 것 같아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욕망과 미움도 사라지죠. 시니어 독자 여러분, 올 한 해 더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