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철학자의 강의실은 병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몸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도 얻습니다.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상담센터와 정신병원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의 병은 자신의 삶에 대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의 부조리와 미래의 불안에 대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떠안고 있다 보니 생기기도 합니다.
-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 10p
눈부시게 발전한 만큼 또 다른 그늘이 드리워진 현대 사회. 그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적어도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그와 동시에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도 굉장히 중요할 터.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신간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는 다양한 윤리적 관점을 찬찬히 짚어주고, 현명하게 더불어 살 방법을 제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팍팍해지기만 하는 현실에 점점 비관적이고 이기적인 태도가 자연스러워지는 시기가 있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뜻밖의 상처를 주거나, 마찰을 빚는다. 이렇게는 안 되지 싶다가도 ‘나 하나 살기에 벅찬데 남을 어떻게 신경 써’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이들과 공존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절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나와 관계없는 것은 없다. 인륜, 도덕의 문제도 나의 일이며, 진리와 자유와 인도와 정의의 문제를 추궁함도 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철학과 윤리학은 분노와 갈등에 휩싸인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올바른 기준으로 자신을 지키며 어울려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그리고 여기서 제안하는 가장 현명한 삶의 태도는 바로 ‘다정한 개인주의’다.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는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문제들을 철학과 윤리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와 타인의 신념, 가치관을 모두 존중할 여유와 힘이 생길지 모른다. 세대 갈등, 장애인 혐오, 기후 위기 등 요즘 시대의 화두를 다양한 관점으로 살피고 유연한 기준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다정한 사람이어야 하나
세상은 더 시끄러워진다. 각종 뉴스에서 살벌하고 황당하며 참담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으로 쪼개며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내 마음이라도 평화로워지려면 이것저것에 관심을 끊는 편이 나아 보이는데, 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 노력해야 할까?
여러 분야 학자들은 ‘인간이란 혼자인 상태를 추구하면서도 서로를 아쉬워하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유를 빼앗기고 프라이버시가 없어진 상태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느끼지만, 고립의 고통 또한 견디기 어려워한다. 타인에게서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정체성을 발견하고, 존재 가치를 실감한단다. 그렇기에 함규진 교수는 결국 각각이 ‘다정한 개인주의자’가 돼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며, 철학과 윤리의식이 그 밑거름이 될 거라고 말한다.
“다정한 개인주의는 우리가 현실에서 따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태도입니다. 각자 의무를 지키고 해를 입히지 말자는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갖추되, 때로는 양보하고 격려하며 지내자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과 윤리의식이 필요합니다. 전자는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푸는 방식이고, 후자는 그런 옳음을 모두의 좋음으로 이어가는 방법이에요.”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 머리가 뛰어난 사람,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그러면 상대적으로 나는 어떻게든 약자에 속할 수 있지요.
심지어 일론 머스크 같은 세계적인 대부호라 해도, 나이라는 점에서 보면 젊은이들보다 약자입니다.
장애, 노령, 저학력, 소수자 집단 소속 등의 약점을 배려하지 않고 억압 또는 혐오하는 게 사회의 규칙이고
상식이 되어버리면 나 또한 언젠가는 그런 규칙과 상식에 따라 배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토록 다정한 개인주의자’ 222p
차이를 알면 화합할 수 있다
여자가 차를 타고 어딘가 가려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연인 사이인 남자에게 전화해 ‘당장 차가 필요한데 큰일이다’, ‘여태껏 문제없었는데 왜 하필 오늘일까’라며 푸념한다. 남자는 ‘배터리가 고장일 수 있으니 라이트부터 켜’란다. 여자는 ‘지금 차가 중요하냐’고 되묻는다.
‘남자와 여자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온라인에서 회자되는 글이다. 한쪽은 넋두리를, 다른 한쪽은 문제 해결에 대한 조언을 반복한다. ‘기술적 조언이 필요하면 전문가를 불렀겠지. 그냥 공감해줄 수 있지 않나?’라는 마음과, ‘자동차가 말을 안 들어서 문제이니 같이 해결해보자는데, 왜 딴소리만 하지?’라는 생각이 충돌한 셈이다.
‘남성은 관계보다 목표를, 여성은 목표보다 관계를 중시한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었던 적이 있다. 존 그레이라는 심리치료사가 1990년대 말 펴낸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비롯됐다. 이 도서는 당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는 듯했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남녀 차이를 과장하고 차별을 부추긴다며 공격을 받았다. 2010년대에 이뤄진 뇌 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뇌가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두 성별의 특성을 겸비한 뇌가 많다고 한다.
“그레이의 주장이 아주 틀리진 않아요. 호르몬 분비와 사회문화적 학습으로 가치관과 행동 방식이 형성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아무쪼록 우리는 남과의 갈등 상황에서 너는 남자라, 여자라 그렇다며 유형의 차이로 결론짓지 말아야 합니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상대에게 동감하면서 마음에 ‘공평한 관찰자’를 두라고 조언해요. 중년 부부 같은 오랜 관계는 서로 성향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둘에게 모두 책임이 있거든요. 남편이나 아내에게 ‘더 이상 참아주기 힘들다’며 내 입장만 고집하기보다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어느 편에 기울지 않은 채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해야 하죠.”
‘나만 맞다’며 강요는 금물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태양이 수천만 번, 수억만 번 떠올랐다 하더라도 내일 또 떠오른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함 교수는 흄의 조언을 예로 들며, 나이 들수록 경험적 지식을 지나치게 믿게 돼 새 가치관을 받아들여 자기를 다듬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연한 사고를 지녔다가도 점점 ‘라떼 이야기’를 하게 되는 까닭이다.
“확실한 인과관계라는 건 없기 때문에 거듭된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라고 해서 타인에게 반드시 따르라고 강요해선 안 돼요. 상대에게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라며 하는 무조건적인 충고는 어쩌면 내가 더 우월하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수단일지도 몰라요. 믿어오던 것이 틀릴 수도 있다, 사회는 격변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꽤 많은 사람이 인생을 배울 만큼 배웠고, 대부분 안다고 착각하는데요. 여전히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아요. 나이 들수록 다양한 관점을 흡수하고 그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관록을 쌓아야 합니다. 여러 철학가, 사상가들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적용해보면 도움이 돼요. 차근차근 여생의 방향을 공고히 할 계기를 만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