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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택 감독 “테니스 열풍, 지속되려면 또 다른 전설 필요”
- 지금의 대한민국 테니스 열풍 뒤에는 이형택이 있다. 묵묵히 불모지를 개척해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운 인물이다. 올림픽 4회 출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 한국인 최초 ATP 투어 대회 우승, US오픈 16강 진출, 세계 랭킹 36위 등. 테니스 선수로 그가 이룬 기록은 기적에 가깝다. 선수 생활을 은퇴한 그는 현재 주니어 선수 감독으로 테니스와 함께하고 있다. 아홉 살 때 테니스를 시작하던 마음을 기억하며, 명맥을 이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테니스 열풍 뒤 고민 테니스 코트를 배경으로 화보 촬영한 소감이 어떠셨나요? 코트 색감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괜히 아이돌 된 기분도 들고, 좋았습니다. 하하. 요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난해 12월 무릎 수술을 해서 재활 훈련을 하면서 주니어 선수 육성에 매진하고 있죠. 그런데 이렇게 테니스 외적으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 기분도 환기되고 재밌었습니다. 요즘 테니스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데 실감하시나요? 동호인, 그러니까 생활체육 쪽에서 테니스가 인기를 끌고 있죠. SNS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쁘고 멋진 옷을 입고 테니스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SNS에 사진을 게재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건강에 좋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요. 시니어분들에게도 테니스 운동을 추천합니다. 전신 운동, 유산소 운동이 되고 테니스를 하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체력이 안 따라준다거나 부상당할까 봐 너무 겁내지 마시고 한번 배워보세요. 이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까요? 지금이 참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기를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저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더욱 발전하려면 결국 엘리트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포츠 업계에서는 테니스가 10년 전 골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얘기해요. 박세리 선수 이후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오고 세계대회에서 이름을 알렸기에 발전할 수 있었죠. 지금 국내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이 100만 명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300만 명 이상으로 커지려면 정현, 권순우 같은 선수가 4~5명 정도 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현, 권순우 선수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두 선수 모두 본인의 의지로 해외 경기에 도전했고 멋진 성적을 냈죠. 정현 선수는 그랜드슬램 4강을 달성했어요. 지금은 부상으로 인해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권순우 선수는 최근 메이저 대회(프랑스오픈)에서 승리하며 활약을 보여줬죠. 선배로서 두 선수 모두 몸 관리 잘하고, 부상 없이 투어 생활을 오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너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그러지 못했기에 선수 생활이 끝나고 좀 아쉽더라고요. 해외에 가서 맛집도 못 가보고 주변 관광도 못 즐기고 그랬죠. 빛나던 영광의 순간들 테니스 불모지에서 어떻게 선수가 되셨나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강원도 횡성군 오천면에서 자랐어요. 어느 날 저희 초등학교로 발령받아 오신 선생님이 테니스부를 창단하신 거예요. 멤버를 모집하기 위해 축구 테스트를 하셨어요. 축구를 잘하면 모든 스포츠를 잘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당시 선생님이 제 축구 실력을 좋게 봐주셔서 테니스부에 들어갔고, 그게 시작이 된 거죠. 그때는 정말 테니스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아홉 살짜리 아이였어요. 선수 생활 기록 중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많은 분들이 ‘타이브레이크의 기적’이라면서 2005년 국제남자챌린저테니스 경기를 얘기하시죠. 6대0에서 역전승을 거둔 스토리가 포인트 같아요. 당시 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마음이 통했던 걸까요? 그리고 199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은 저에게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회사가 IMF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제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선수 생활이 그때 끝났을 수도 있어요. 금메달을 따면서 본격적으로 해외 투어를 시작했고 2000년 US 16강 진출도 가능했죠. 경기 때 특별한 징크스가 있었나요? 징크스는 아니지만 저는 식당에 가면 항상 앉았던 자리에 앉으려고 했어요. 경기하는 날이 아닐 때도요. 식당에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 앉지 못하면 괜히 아쉬운 기분이 들곤 해요. 생각해보니 징크스가 하나 있었네요. 어머니께서 관람하러 오시는 날에는 한 번도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오시지 말라고 했는데, 아마 서운하셨을 거예요. 그 징크스를 깨보려고도 했지만 결국 끝날 때까지 깨지 못했죠. 테니스 경기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건 결국 무엇일까요? 테니스는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스포츠예요. 그렇기 때문에 멘털 관리가 중요하죠. 경기하면서 조급해지는 순간이 와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덤덤해지려고 노력해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최선을 다하자, 긴장하지 말자고 계속 저 자신과 대화를 하죠. 지금도 테니스 황제 선수 시절과 비교해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끼시나요? 아무래도 근력의 질이 많이 다르죠. 힘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평소에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려 하고 러닝도 하면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죠. 테니스장에 있다고 운동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선수가 아니고 지도자잖아요. 여러 명의 학생을 신경 쓰느라 바쁘죠. 요즘에도 축구를 즐기시나요? 축구는 체력 훈련 삼아 하고 있어요. 전에는 축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데, ‘뭉쳐야 찬다’(JTBC 예능)를 하면서 정식으로 레슨을 받고 기술을 익혔죠. 축구장을 뛰면서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또 요즘은 골프를 취미로 즐기고 있어요. 사실 골프 프로 투어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여러 여건상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 무릎이 좋아지면 야구, 마라톤 등 새로운 운동에 도전해보려고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니까요. 유튜브 채널 ‘머드Lee-이형택TV’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머드Lee’는 제 별명이고, 한마디로 말하면 테니스를 주제로 하는 채널이에요. 정보영 선수와 대결을 펼치는 영상(조회 수 200만 회 돌파)이 가장 인기가 많아요. 시청자들이 제가 경기하는 영상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테니스 치는 분들한테만 재밌는 영상이라는 거죠. 그래서 다른 스포츠 즐기는 모습, 먹방, 일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다루려고 합니다. 테니스의 의미,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테니스는 제게 동반자예요. 죽을 때까지 계속 같이 가야죠. 끝이라는 게 없는 스포츠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고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제가 올림픽을 4회, 16년 동안 출전했어요. 그런데 메달이라는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다고 할 수도 있고, 그래도 잘 견뎠다고 위로받을 수도 있겠죠. 지금 저는 주니어 선수 육성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후배들이 좋은 길로 가는 것을 보면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죠. Bravo Question -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테니스에 대한 열정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테니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가 잘되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테니스라는 스포츠 자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야 좋은 선수들도 많아지고 선순환 발전이 이뤄지는 거죠.
- 2024-07-0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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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국가대표가 된 73세 할머니
- 1950년,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사회는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했다. 꿈은 아득히 먼 단어였다. 대학 졸업장이 거의 결혼 자격증 같았다. 그렇게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외국을 많이 다니는 직업을 가졌다. 국제부인회에 갔더니 해외 나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있다고 했다. ‘마인드 스포츠’ 브리지*였다. 1982년, 그렇게 브리지를 알게 됐다. *브리지: 4명이 2인 1조가 되어 겨우는 카드 게임. 130여 개 국가, 4000만 명 정도가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일한 취미는 브리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대사 부인이 한 마디를 건넸다. “저랑 파트너 하실래요?” 나는 얼떨결에 ‘선수’가 됐다. 그렇게 나선 경기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누구보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그 관심이 즐거워 브리지를 파고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고, 틈만 나면 브리지를 생각했다. 두 딸이 결혼하고 남편까지 은퇴한 뒤 브리지에 더 몰입했다. 국제 대회 경험도 쌓았다. 그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브리지가 채택됐다. 하지만 줄곧 나서던 시니어 카테고리는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여성부 경선에 임했다. 2주 동안 경기를 치러 승률이 높은 팀을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2주 후 이변이 발생했다. 아시안게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 생동감! 꿈과 열정 가득한 국가대표 선수들과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았다. 국내 SNS에서 최고령 국가대표로 화제를 모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언젠가는 좋은 성적으로 다시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때까지 계속 브리지를 즐기려고 한다. 열아홉 손자와 짝을 맞춰 경기에 나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꿈을 꾼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리지 국가대표 임현입니다. 일흔셋에 첫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의 깜짝 선물 같은 일이 벌어져요.” 에디터 조형애 디자인 유영현
- 2024-06-1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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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 최고령 국가대표’ 임현, 은퇴 계획은 없다
- 1950년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사회는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했다. 꿈은 아득히 먼 단어였다. 안온한 가정 속, 소소한 재미를 ‘마인드 스포츠’ 브리지에서 찾았다. 매일 52장의 카드를 들여다보며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은근한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렇게 4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임현(73) 씨에게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다. “선생님, 예쁘게 하고 오셔야 해요. 아셨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단식을 앞두고 임현 씨는 대내외적인 주목을 받았다. 브리지라는 이색 종목에 출전하는 최고령 선수여서다. 최연소로 승선한 김사랑(11) 양과는 62세 차. 일생일대의 선물은 꽤나 요란했다. 종목별 경기단체 임원, 지도자, 선수단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결단식에서 고령의 도전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하도 예쁘게 하고 오라고 하기에 의식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주목받을 줄은 몰랐어요.(웃음) 가장 어린 선수와 둘이 카메라 인터뷰를 하기도 했어요. 국제 대회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확실히 아시안게임이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폐막 후 2개월여. 임현 씨가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회 내내 최연장자로 화제였지만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그러다 긴 휴가를 앞두고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만났다. “사실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쓸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만 브리지가 더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하니까… 내 이야기 한번 들어주겠어요?” 공부하는 엄마, 노는 엄마 한국에서 브리지는 생소하게 여겨지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지적 카드 게임인 브리지는 130여 개 국가에서 4000만 명 정도가 즐기고 있다. 중국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 영국 작가 서머싯 몸 등이 대표적인 애호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파트너를 이뤄 2007 북미 브리지 챔피언십에 출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임현 씨도 해외 적응을 위해 브리지에 입문한 케이스다. “남편이 외국을 많이 다니는 직업이었어요. 브리지를 알고 있으면 해외 나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길래 국제부인회에서 배웠어요. 그게 1982년이에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 정확한 연도나 기록은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 있다. 엄마의 취미를 편견 없이 바라봐 준 두 딸의 응원이다. “미국에 1984년 건너갔어요. 거기서 맞는 첫 생일에 브리지 매거진 1년 구독권을 선물로 받았어요. 딸들이 중학생 정도 됐을 거예요. 둘이 자꾸 속닥거리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생일에 맞춰서 첫 번째 매거진이 도착하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해요.(웃음) 그때부터 브리지 관련 책을 접하게 됐어요.” 임현 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전히 재미였다. ‘선수’가 된 계기는 영국 대사 부인이 건넨 한마디였다. “브리지는 두 사람이 짝(페어)을 맞춰 다른 두 사람과 겨루는 게임이에요. 그렇게 잘하지 않았을 때인데 영국 대사 부인이 파트너를 제안하더라고요. 그렇게 나선 경기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신문에 우승 소식도 실렸어요.” 누구보다 좋아한 건 아이들이었다. 그 후로 브리지를 하고 온 날이면 “몇 등 했어요?”, “잘했어요?” 하며 종알댔다. 임현 씨는 그 관심이 즐거워 더 브리지를 파고들었다. 브리지 매거진과 관련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틈만 나면 브리지를 생각했다.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선 집안일을 더 살뜰히 돌볼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불편했고, 그 모습을 두 딸이 공부하는 것으로 여겨 어쩐지 죄스러웠다. 복잡한 마음과 함께 임현 씨의 브리지 사랑은 깊어갔다. “요즘엔 이런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시절엔 대학 졸업장이 거의 결혼 자격증 같았어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사회 분위기가 그랬어요. 결혼하고서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는 것이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니 브리지 책 보는 것도 마음에 걸릴 수밖에요. 브리지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어요. ‘이렇게 시간을 많이 쓰는 게 맞나?’ 하고요. 그렇게 해왔어요.” 내조의 여왕에서 브리지 국가대표로 두 딸의 결혼 그리고 남편의 은퇴. ‘제 할 일’ 다한 임현 씨는 브리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8 제1회 월드 마인드 스포츠 게임, 2014 제14회 레드불 월드 브리지 시리즈 등 굵직한 국제 대회 경험도 쌓았다. 40페어 넘게 출전한 레드불 월드 브리지 시리즈에서는 전체 2위라는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동안 줄곧 시니어 카테고리에 출전했는데, 아시안게임은 남성부, 여성부, 혼합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큰 기대 없이 참여한 경선에서 임현 씨는 이변을 썼다. 경선이 당초 예상보다 일찍 종료될 정도로 그 기세는 대단했다. “아시안게임 출전이 확정되고서 축제 분위기였어요. 어휴, 내가 선발될 줄 몰랐지요. ‘연령에 따른 기타 카테고리가 없으니 여성부로 한번 해보자’ 한 것뿐이에요. 경선은 2주 정도 치렀어요. 많이 해서 승률 높은 팀을 선발하자는 거였죠. 굉장히 피곤했어요. 대회보다 경선이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요.(웃음) 성적은 아주 좋았어요. 마지막에는 ‘더 이상 할 필요 없겠다’ 할 정도로요. 남은 경기를 다 지더라도 우리 점수가 더 나은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임현 씨는 태극기가 수놓이고 TEAM KOREA (팀 코리아)가 적힌 선수단 물품을 꺼내 보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최고령 국가대표에게선 한동안 소녀 같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릎을 삐끗해 의료진을 찾았다가 선수들만 오는 곳이라고 제지받은 ‘웃픈’ 사연부터 교통경찰이 콜택시를 불러주고 요금도 슬쩍 내준 깜짝 에피소드까지, 임현 씨는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웃게 한 건 젊은 국가대표 선수들의 꿈과 열정을 가까이서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아시안게임은 상상 이상이었어요. 막연히 ‘조금 큰 국제 대회겠거니’ 생각했는데 대회 치르는 동안 정말 감격한 게 많아요. 처음엔 브리지 선수단끼리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였는데, 나중엔 아주 전우가 됐어요. 시간이 더 지나니까 선수촌 안에서 만나는 한국 선수들 다 그렇게 보이더라고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내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선수들 다 대견하고 예뻐 보여요. 그 생동감! 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았어요. 대회도 대회지만 그 경험은 말로 표현 못 해요. 정말 좋았어요.” 두뇌 게임 하기 딱 좋은 나이 현실로 돌아온 임현 씨는 대한브리지협회에서 오프라인으로 주 1회가량 브리지를 즐기고 있다. 온라인으로는 전 세계 브리지 애호가를 더 자주 만난다. 여전히 저녁거리보다 브리지 관련 생각에 시간을 들이고 있다. 고령에도 두뇌 게임을 하고 여전히 선수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는 건 그 스스로도 오랜 세월 천착해온 주제. 임현 씨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브리지를 즐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다른 두뇌 게임도 여럿 해봤는데 브리지를 단연 추천해요. 브리지는 암기력, 순발력, 사고력, 판단력, 집중력, 문제해결 능력, 유추 능력 등 요구되는 능력이 정말 다양하거든요.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브리지를 잘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암기력과 순발력이 노화에 따라 떨어진다 해도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서 올라가는 능력이 있어요. 평균 점수로 보면 뒤처지지 않는 거죠. 나이 든 사람에게 정말 좋은 스포츠예요. 어린 학생들에게도 추천해요. 브리지를 통해 소통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도전 정신도요. 브리지에는 130억 개의 경우의 수가 있어요. 룰이 있지만 언제나 룰이 정답은 아니에요. 승부를 걸어야 할 때도 있죠.” 오랜 시간 브리지와 한시도 떨어진 적 없다는 임현 씨는 당분간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미국에 건너가 든든한 지원군인 딸과 함께 ‘방학’을 즐기려 한다. 브리지 금단현상이 걱정되지만 잠시 머리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방학 뒤엔 다시 브리지와 함께할 생각이다. 언젠가는 최고령 선수가 아닌 성적 우수 선수로 다시 대중 앞에 서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맞은편 파트너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라면 더할 나위 없다. “시간이 지나니 보이는 것 같아요. 엄마에게 열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도 좋았다는 것을요. 언젠가 아이들 짐을 정리하는데 신문 스크립트부터 상장까지 다 모아뒀더라고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을 그때 느꼈어요. 이제 브리지를 더 즐기고 싶어요. 지금도 브리지 매거진을 보고 있는데요. 얼마 전 104세 할아버지가 나오더라고요. 그분처럼 팔팔하게 브리지를 하고 싶어요. 손자가 열아홉 살인데, 함께 페어도 하고 싶어요. 농담 아니에요. 진짜로요!”
- 2024-01-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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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사이클은 명상과 같아…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다
- 최근 신중년의 로망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다. 육중한 배기량의 고성능 엔진에서 나오는 무게감과 힘을 갖춘 바이크로 국도를 달리며 산하를 감상하는 경험은 남다른 중독성을 갖게 해 많은 이들을 모터사이클의 신세계로 뛰어들게 하고 있다. 윤수녕 강원모터사이클연맹(KMF) 회장 겸 모토쿼드 대표는 척박한 국내 모터스포츠계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며, 선진문화의 도입과 안전교육을 추구하는 모터스포츠 전문가 1.3세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토피스타’ 강원도 인제 행사를 앞둔 그를 만나 꾸준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는 국내 모터사이클 세계를 슬라이딩해봤다. 최근 국내 모터사이클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강원도 인제군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이곳에 모터스포츠 경주장인 인제스피디움이 있기 때문이다. 모토쿼드는 모터사이클과 스포츠카로 가능한 레저와 스포츠 활동 사업을 하는 회사로, 윤수녕 대표는 이곳 인제스피디움에서 이륜차 마니아를 위한 기초 리그인 로드레이스 모토피스타와 강원 인제 모토스피드페스타라는 이륜 라이더 축제 등 다양한 경기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크를 탄 지 어언 30년째라는 그에게 바이크의 매력에 대해 묻자 단숨에 ‘도심 탈출’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인의 일상은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카테고리가 정해진 반복된 삶이죠. 그런 삶에서 빠져나와 일탈이라든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안전한 경로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현대인의 일탈이라고 하면 음주나 유흥이나 레저 등을 떠올리겠지만 그에 비해 훨씬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게 모터사이클이에요. 자신이 있는 위치를 이동시켜주니까요.” 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모터사이클은 확실하게 배우고 안전을 확보해 취미로 제대로 접하면 그 어느 것보다 빠른 도심 탈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두세 시간이면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파묻힐 수 있는 게 사실이니, 그의 말이 머릿속으로 훅 들어왔다. 모터사이클은 종합예술과 같다 윤 대표가 말하는 모터사이클의 또 하나의 강점은 개방감이다. 달리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탈 때는 사각의 틀 안에 갇히지만 모터사이클은 바람을 맞는 맛이 있어요. 온몸이 그걸 인지하죠.”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가 흔히 모터사이클을 봤을 때 떠올리는 피지컬적인 면보다는 멘탈적인 면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그 또한 국내 모터사이클 문화를 선도하면서 수많은 선수를 발굴했는데, 그 과정에서 체력 단련을 통한 피지컬의 증량보다는, 이 무생물과 교감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잘 해서 사고 없이 경기를 헤쳐 나가는 게 더 중요 포인트라고 강조한다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정신교육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안전이다. 모터사이클의 특성상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단번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유치원, 고등학생이 아니라 40대 전후 어른들이 주로 배우러 오시죠. 그 정도 나이의 사회적 포지션이면 남의 말 듣기가 쉽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은 정말 배워야 하는 스포츠예요. 컨트롤하고 정비하고 좋은 컨디션 유지하게끔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성도 들여야 하고 비용도 드는 복합적인 스포츠죠. 예술로 치면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종합적인 스포츠예요. ‘야 빠르다’ 하는 건 일반적인 시선이고 들여다보면 혼연일체적인 게 있고, 정식 경기장에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기를 올려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입니다.” 인제스피디움을 발판으로 모터스포츠 문화 정착 추구 윤 대표가 말하는 정식 경기장이란 당연히 인제스피디움이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이벤트는 ‘모토피스타’. 국내 아마추어 선수가 로드레이스에 입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로 피스타는 이탈리어로 질주, 경주란 뜻이다. 시즌 포인트로 연간 챔피언을 뽑으며 강원모터사이클연맹 산하의 모토피스타는 매년 4라운드가 진행된다. 윤 대표가 인제스피디움을 배경으로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 중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경기장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이지만 쉽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이 균형 감각이에요. 피지컬은 서양 사람만 못해도 훨씬 더 균형 감각이 있어 모터스포츠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굉장히 희박하다가 이걸 스포츠로 받아들이고 아카데미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한국적 절차를 밟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10년 전이었습니다.” 사실 다수의 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대로 인제스피디움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과 단체들 사이의 갈등으로 몇 년간 잡음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일종의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외부인사로서 인제스피디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되었고, 당사자들 간의 교섭을 이끌며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모터스포츠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 착공 “사실 우리나라는 모터스포츠 문화의 단계로 보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경기장이 먼저 우뚝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거죠. 그래서 중간에 허브가 될 수 있는 아카데미나 R&D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일본만 봐도 큰 경기장들 중에 60년 된 곳이 있는데 그 경기장 하나만으로도 인제군만 한 도시가 먹고살 정도로 다양한 유관시설들과 인프라가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인제군을 모터스포츠 특화지역으로 만들자는 거예요.” 윤 대표는 인제스피디움을 중심으로 한 모터스포츠의 멀티플렉스화 계획을 들려줬다. 그 첫 발걸음이 내년에 착공되는, 라이더들의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다.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스포츠 분야는 제대로 크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교육도 그렇고 스포츠와의 접목을 추구하기 위해 내년에는 교육 사업 분야에 집중하고자 해요. 교육받은 라이더들이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게 경기죠. 그래서 인제 하면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하고 싶어요.” 라이더들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 레저용으로 쓰는 바이크는 250cc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250cc 이상 되는 바이크의 등록 대수를 보면 10년 전만 해도 3만 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5만 대 이상이 등록되어 있다. 통계만 봐도 레저로 바이크를 즐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레저용 바이크는 고가의 상품이라 사회적 포지션이 높고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죠. 흔히 크고 시끄럽고 손 가는 게 많다고 생각해 배우기를 망설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용기를 내시라, 도전하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확실하게 배우면 안 다치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가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을 보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통 예민한 사람들이 바이크를 타고 오면 “시원하다”고 말한다는 거다. 그런데 온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모터스포츠다.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사고라도 날까봐 온갖 신경을 다 쓰는데 그러면서도 뭔가가 해소된다는 거죠. 집중이 집중을 치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와서 스트레스를 푸시고 갑니다. CEO나 교수, 의사, 디자이너, 연구원, IT 분야 종사자들이 많아요.” 바람처럼 바이크를 타며 인생을 향유하다 바이크 타는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타다가 라이더가 된 윤 대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의외의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하고 전제를 깔았다. “지극히 개인적 얘기지만 명상 쪽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명상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매인 삶이 모터사이클로 탈출하는 것과 비슷하죠.” 과연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생각했다. 일찍이 미국의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로버트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과 선 체험 간의 교차점을 탐구한 소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집필해 명작의 반열에 올린 바 있다. 윤 대표는 모터사이클을 “보이는 바람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정신적인 자유가 거기에 있고 그 사람의 정신세계 또한 거기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한 바이크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빠르고 강하게 타는 게 아니라 고독한 바람같이 타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바람이 산들바람일 수 있고 강풍일 수도 있는데 자연과 동화된다는 의미죠. 뭔가 지나갔는데 아무렇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것처럼.” 대형 바이크를 타고 1·2차선을 넘나들며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문화를 알면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제는 강원도 인제 전역의 아름다운 곳, 산하 등 그런 곳들을 이동하는 도구로서의 바이크가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고 봐요.” 부자(父子)가 함께하는 모터사이클 투어 꿈꾼다 사실 윤 대표의 아버지도 아들처럼 모터사이클 마니아다. 스위스 알프스부터 터키, 스페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라이딩을 하는 아버지를 둔 그가 모터스포츠 세계에 입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버지 건강이 허락되면 서울에서 출발해서 실크로드를 달리고 유럽까지 가는 대장정을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못 가지만…. 9월에 강원도 전역에서 하는 평화 모터사이클 랠리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도 이제 50대에 이른 만큼 나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벌판 같은 경기장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드를 향한 그의 의지와 사명감은 쉬이 꺼질 것 같지 않다. “필드 플레이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긴 하죠. 하지만 건강관리를 하면서 되도록 오래할 생각이에요. 아버지도 내일모레 여든이신데 현역이신걸요.(웃음)”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깨달을 때쯤 사내 윤수녕 대표가 멋진 라이더로 서 있었다.
- 2020-08-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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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근력 키우는 즐거움, 마음 근력도 는다
- 춥다고 가만히 있으면 제일 걱정되는 것. 바로 불어나는 몸무게다.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것도 겨울을 건강하게 이겨내는 방법. 가족들과 함께 시니어가 즐길 만한 이색 실내 스포츠를 찾아봤다. 1. 하늘을 나는 체험 ‘실내 스카이다이빙’ 하늘 높이 올라가서 뛰어내려야만 할 수 있었던 스카이다이빙 체험 시설이 지난 1월 용인시에서 개장했다. 플라이스테이션에서는 시속 360km의 바람이 부는 10m 높이의 윈드터널 안에서 장비 없이도 시원하게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개인의 체형과 몸무게 등을 고려해 바람을 조절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안전한 무중력 비행이 가능하다. 바람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전신 스트레칭은 물론 유연성도 높여줘 건강 증진에 좋은 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유럽이나 미주 지역에서는 새로운 레저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익스트림 스포츠로서의 인기 또한 높아지고 있는 중. 2015년부터는 국제항공연맹에서 주최하는 세계대회도 인기다. 2030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곳에는 플라잉 체험, 플라이 스쿨, 프로 플라이어로 코스가 나뉘어 있는데 처음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플라잉 체험 코스를 이용한다. 시설 이용 전 인터넷에서 예약을 하고 가면 좋다. 이용해본 고객들은, 사전 예약을 해도 절차를 위해 현장에서 많이 기다리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여유 있게 갈 것을 권했다. 예약 확인, 장비 대여와 착용, 자세와 안전교육을 받는 시간도 꽤 걸린다고 한다. 체험은 전문 코치와 함께 한다. 이때 코치의 화려한 시범을 감상할 수 있다고. 혼자서도 해보고 전문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플라잉 스쿨 등록 후 기본자세를 배워야 한다.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실현해도 좋을 것 같다. 이외에 어린이 놀이공간인 트램펄린도 있고, 실내 암벽 시설도 갖추고 있다. 내부 출입이 쉬워 굳이 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특별 장면을 볼 수 있다. 반려동물은 출입이 제한되고 건물 안에서는 절대 금연이다. 체험은 전문 코치와 함께 한다. 이때 코치의 화려한 시범을 감상할 수 있다고. 혼자서도 해보고 전문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플라잉 스쿨 등록 후 기본자세를 배워야 한다.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실현해도 좋을 것 같다 2. 쏘는 맛이 있다 ‘사격·양궁’ 유원지나 지역 축제에 가면 빠지지 않는 것이 사격장이었다. 과녁이 아닌 인형을 맞춰 넘어뜨리면 상품으로 그 인형을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스포츠와 오락기능이 더해져 다시 생겨났다. ‘리얼샷 사격양궁장’은 사격과 양궁을 합쳐놓은 곳으로 전 세대가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지금까지는 사격장과 양궁장이 따로따로 운영돼왔는데, 최근에는 복합놀이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와 홍대, 한양대, 직장인이 많은 종로 등지에 총 일곱 곳이 문을 열었다. 사격양궁장이 생겨나는 지역은 대부분 도심이라 젊은이들의 방문이 많지만 어린아이부터 시니어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체격에 맞는 총과 활을 구비해놓았다. 양궁은 리커브 보우와 컴파운드 보우 두 가지 종류다. 리커브 보우는 스포츠에서 흔히 보는 활이고, 컴파운드 보우는 활시위를 쉽게 당기는 조준장치를 해놔 초보자도 쏘기 편하다. 양궁장의 과녁 거리는 기존 양궁장보다 짧다는 것이 특징. 일반 오락형 양궁장이 과녁까지의 거리가 10m라면 이곳은 7m밖에 안 된다. 양궁 선수처럼 먼 거리의 과녁을 향해 힘들게 활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과녁을 확인하며 부담 없이 활을 쏠 수 있다. 과녁과의 거리가 멀면 화살이 중간에 떨어질 수 있어 흥미를 잃게 된다. 리얼샷 사격양궁장은 거리도 짧고 활도 다양해 팔에 힘이 없는 여성과 아이, 시니어도 즐길 수 있다. 양궁장은 다른 곳보다 과격 거리가 짧지만 사격장은 꽤 멀다. 거리가 좀 있어야 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소총뿐만 아니라 권총, 저격용 총, 연사 총도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다. 사격 4종류에 양궁 2종류 도전이 이용객 호응도가 높다. 이용료는 권총(24발) 3500원, 소총(32발) 4500원, 저격총(24발) 5500원, 연사(100발) 5000원, 양궁 리커브 보우 6500원, 컴파운드 보우 8000원이다. 이용시간이 20~30분 내외이기 때문에 회식이나 가족모임 후 간단히 하기에 좋은 놀이다. 두 종목 모두 간단한 교육을 따로 받고 시작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좋은 점수를 내면서 즐길 수 있다. 3. 중력을 이겨내며 오른다 ‘실내 클라이밍’ 실내 스카이다이빙이 중력의 힘을 받지 않는 스포츠라면 클라이밍은 중력을 이겨내면서 한 발 한 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암벽 위를 오르내리는 운동이다. 고난도로 보이지만 전문가에게 교육을 받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다. 실제로 동호회에서 클라이밍을 하는 이들을 보면 초등학생부터 50세 이상 시니어 등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70세 이상 장년층도 여럿 있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실내 암벽등반은 가능하지만 안전을 위해 기초교육을 받는 게 좋다. 한 번만 교육을 받아도 클라이밍을 할 수 있도록 체험교육이 암장마다 준비돼 있다. 기초교육을 통해 중심 잡는 법, 손과 발 쓰는 법, 몸의 중심 이동법 등을 배울 수 있다. 교육을 받은 후에는 자유롭게 시작하면 된다. 1일 체험비는 성인 2만~2만5000원대, 청소년 1만5000~2만 원대다. 실내 암장의 높이는 3m에서 5m 정도. 높이에 따라 대략 20cm, 높은 곳은 50cm 정도 되는 두께의 쿠션을 바닥에 깔아놓아 부상 위험을 줄였다. 물론 모든 운동이 부상에서 100% 해방될 수 없기 때문에 안전 규칙을 따르는 게 철칙이다. 최근 클라이밍은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클라이밍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신을 쓰면서 오르는 역동적인 운동이나 다른 운동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이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특화된 근육이 없어도 걷는 데 이상이 없고 자기 몸을 견딜 힘만 있다면 누구든 시작할 수 있다. 클라이밍에 필요한 근육은 클라이밍을 통해 기르면 된다. 기초 체력을 걱정해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모든 운동이 그러한 면이 있지만 암벽 운동의 장점은 긍정적 마인드를 배가시키는 데 있다고 스마트 클라이밍 안대운 센터장은 말했다. “암벽을 타면서 동작을 제대로 못하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정신으로 벽에 매달린다”며 이를 통해 “생활도 활력 있게 바뀌는 사례를 많이 봤다”고 했다. 아울러 “특정 부위가 발달하기보다는 다리와 코어, 상체 근력 등 몸이 전체적으로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사전 지식이 없어도 실내 암벽등반은 가능하지만 안전을 위해 기초교육을 받는 게 좋다.
- 2019-12-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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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ES 2019 전시회 참관기 ‘미래를 만나다’
- 제35회 국내 최대 의료기기 전시회가 3월 14일부터 3월 17일까지 코엑스 전시장에서 개최됐다. ‘Meet the Future’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박람회는 695개사의 국내 제조업체를 비롯해 미국 129개사, 중국 185개사, 독일 84개사, 일본 53개사, 대만 59개사, 이탈리아 23개사, 스위스 20개사, 영국 17개사, 프랑스 14개사 등 36개국 1403개사의 업체가 참가해 첨단의료기기, 헬스케어 및 재활기기, 의료 관련 용품 등 3만여 점을 선보였다. 대표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삼성메디슨, LG전자, DK메디칼시스템 등의 국내 기업과 GE Healthcare, PHILIPS 등의 세계적 기업이 참가했다. 이번 의료기기박람회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웅대한 행사였다. 경제가 어려워 힘든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나라인지 잘 보여준 전시회여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랑스러웠다.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대체의학 분야까지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의료기기의 발전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주요 전시 분야 중 내 관심을 끈 분야는 레이저 치료기기, 재활의학 및 물리치료기 등 새로 소개된 제품들이었다. 다양하고 성능 좋은 제품이 많아 전시장을 3일간 방문하며 취재를 했다. 그중 의료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람객 기억에 남을 제품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화의료기의 무중력 척추 감압치료기인 ‘Spine MT K-1’을 10분 정도 체험해보니 바로 느낌이 왔다. 미국 스파인트로닉스의 3D 감압 장비인 ‘Robotic-ATT’ 못지않은 제품이었다. 두 번째로 체험한 장비는 옴니핏 마인드케어 퍼스널이었다. 기기에 손을 대고 눈을 감은 채 있으면 신체나이와 두뇌건강 점수가 바로 나온다. 나는 두뇌건강 점수도 좋았고 신체나이도 66세로, 실제보다 3세나 젊게 나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일반 관람객의 인기를 끈 또 하나의 제품은 아트원스포츠의 무빙체어 조이라이더였다. 전시장에서 피곤한 사람들에게 편히 앉아서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 샤워와 수영이 가능한 개방형 깁스 ‘OPENCAST’도 인상적이었다. 깁스를 하면 대부분 꼼짝 못하고 누워 있거나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 제품은 많은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품이었다. DA Korea에서 나온 골반 교정 운동기는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자동으로 골반을 교정해주는 제품이었다. 건강의 필수조건 중 하나가 신체의 균형인데 아주 과학적인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건강관리를 위한 제품도 많았다. 물리치료를 위한 전기근육자극기, 자동발목펌프, 족욕과 붕어운동기기, 저주파 발 반사기, 온열치료기 등을 체험해봤다. 3일간 취재를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하루는 점심까지 거르고 취재를 했다. 휴대용 수소수 제조기를 비롯해 경기산업에서 나온 양면 칫솔기도 아주 좋은 제품이었다. 칫솔모 재료가 실리콘인데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이를 완벽하게 닦아줬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 제품은 전시회 중이라 염가로 판매되었다. 인상적인 제품은 중국산 마사지 기기였다. 국내에서는 1000만 원이나 하는 제품들에 비하면 디자인이나 기능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약 60만 원 정도로 가격이 너무 쌌다. 실제 체험해보니 성능도 괜찮은 편이었다. 중국의 마케팅 파워는 우리가 앞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주요 과제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타이완 홈케어가 제작해 국내 기업 코인스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시니어용 첨단 지팡이도 눈길을 끌었다. 불빛 기능, 경고음 기능을 포함해 다양한 첨단 기능이 가미된 제품이다. 이번 박람회를 3일간 돌아보며 대한민국 의료기술의 발전된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다. 전문 의사, 의료기기 업체가 아니더라도 일반 시민들도 참여해 체험하고 느끼면 좋을 전시회였다. 특히 전시회 기간 중 유통마진 없이 생활건강에 필요한 기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 2019-03-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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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스타 박찬숙 “그 시절, 제가 좀 잘나갔죠?”
- 농구스타 박찬숙은 필자보다 한 학년 아래였기 때문에 그녀의 성장기를 통째로 외우고 있다. 박찬숙은 고1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스타였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전무후무한 은메달을 획득했을 때의 쾌거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당시 천하무적 미국이 상대 팀이었기 때문에 결승전에 오르는 순간 이미 금메달을 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 농구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간신히 세계 무대에 나간다고 해도 거의 꼴찌 수준이다. 박찬숙을 필두로 한 당시 한국 여자농구를 세계 언론들은 “예술이다”라고 극찬했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의 키는 대부분 2m에 가깝거나 그보다 훌쩍 넘는 선수가 많았기에 키 작은 한국 대표팀의 빠르고 조직적인 예술 농구에 세계가 반한 것이다. 박찬숙의 키는 188cm로 한국 선수 중에서는 큰 키였지만 서구 센터들과 비교하면 한 뼘 정도 작았다. 그러나 언제나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 팀을 무력화해버렸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외모 덕분에 당시 남학생들에게 배우 임예진과 쌍벽을 이루는 스타였다고 한량 이봉규가 치켜세우자 숭의여고 동창인 탤런트 김미숙도 있었다고 말을 거든다. 숭의여고는 예나 지금이나 농구의 명문이다. 지금도 우승을 한다며 모교 자랑도 잊지 않는다. 박찬숙은 필자 여동생과 행당여중 6개월 동창이었기 때문에 더욱 잘 기억하고 있다. 여동생은 중학교 입학 때 “박찬숙이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후 박찬숙은 농구를 위해 숭의여고로 전학했다. 축구에 차범근, 복싱에 홍수환, 프로레슬링에 김일 선수와 비견되는 역대급 농구스타가 박찬숙이다. 큰 키 때문에 외출을 싫어했다 비슷한 나이로 함께 이 시대를 살아온 이봉규가 슈퍼스타를 만나기 위해 WKBL Korea 3대3 국제농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고양 스타필드를 찾았다. 3대3 농구는 한국에선 이제 시작이지만 서구에선 인기종목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길거리 농구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박찬숙을 인터뷰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찾아갔지만, 3대3 농구 경기에 홀려버려 한참을 구경하느라 박찬숙과의 인터뷰는 나중이었다. 공격과 수비가 쉴 틈 없이 바뀌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쳤고, 남자 농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하다는 편견이 깨져버릴 만큼 격렬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아차!” 하고는 박찬숙을 찾기 시작했다. 본부석에서 하얀색 운동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큰 키도 큰 키이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배어나오는 포즈로 앉아 있는 박찬숙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그런데 현역 시절에는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요즘 한창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장훈이 방송에서 “큰 키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 그 시선이 괴로워 외출도 꺼렸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박찬숙을 마주해보니 서장훈 말이 실감이 났다. 174cm인 이봉규가 188cm의 박찬숙의 옆에 서니까 느티나무에 매미가 붙어 있는 느낌이어서 몹시 위축되었다. 그녀에게 잽싸게 의자에 앉기를 권하고는 내가 먼저 주저앉아버렸다. 앉아 있으니까 조금 안정이 되었다. 큰 키로 압도하는 분위기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명랑하고 예쁜 꽃중년 여성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위축된 나를 배려해서 편안하고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너스레까지 떨어주었다. 알고 보면 프리티 우먼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의 여인이었다. “현역 시절에는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찾아왔는데 이제는 팬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에는 야구나 축구에 비해 여자 농구는 인기가 없다. 평생 농구인으로 살아왔기에 예전의 농구에 대한 팬들의 인기를 되찾는 데 본인이 할 일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계획이라는 것. “농구가 이렇다!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길거리 농구가 활성화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박찬숙은 엘리트 선수로 발탁되어 자신은 좋든 말든 죽기 살기로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농구를 좋아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3대3 길거리 농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좋아서 취미로 하는 것이 생활체육이라는 얘기다. 예전에는 엘리트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키우고 ‘죽기 살기’식으로 훈련을 시켜 경기장에 내보냈지만, 지금은 즐기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는 것. 생활체육에 대한 그녀의 사명감이 커 보였다. 그러면서 엘리트 선수인 박지수 선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한다. 예전의 박찬숙처럼 박지수 선수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이자 10년을 이끌어갈 재목이란 찬사를 받아왔다. 198cm의 장신이면서 몸놀림도 좋아서 2018년 미국 프로농구 WNBA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찬숙은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너무 받아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분한 대접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박지수가 예전의 저나 남자 선수들처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자들 볼 때마다 얘기한다”면서 내게도 거듭 당부를 한다. 농구 발전에 대한 생각뿐이다. 당시 박찬숙은 세계적인 미녀 스타로 인기 절정이었다. 농구선수 중에서 제일 미녀를 뽑는 미스월드바스켓(7회 세계선수권대회)에 뽑힐 정도였다. 얼굴도 예쁘고 농구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더욱 혼련에 집중했다는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눈물로 일기를 썼던 그 시절을 잠깐 회상한다. 눈물이 하도 흘러내려 일기를 쓸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고 한다. 재혼은 싫지만 남자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급히 화제를 돌렸다. “피부가 곱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면서 몸매와 미모 관리에 관해 물었더니, 숨쉬기운동 하는 것 외에 별로 하는 것이 없다고 재치 있게 받아친다. 그 틈에 어느새 동행한 내 아내와 살빼기와 피부 관리에 관해 수다를 늘어놓는다. 박찬숙은 운동할 때보다 5kg 이상 쪘다고 불만이지만, 은퇴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 선수 버금가는 몸매와 열 살 이상 어려 보이는 피부를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아들과 딸에 관해 물었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키 크고 운동 잘하는 남자 만나서 다섯 명쯤 낳았으면 그중에 최소한 두 명 정도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며 농담한다. “당시 인기가 너무 많아서 데이트 신청이나 프러포즈를 많이 받았을 텐데?”라고 떠봤더니 “운동선수 중매도 많이 들어왔다”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어떤 선수? 누구냐?”고 집요하게 물어봤지만, “그건 비밀!”이라고 한다. 아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듯싶다. 궁금했지만 그녀만의 추억을 훼방하고 싶지 않아 넘어갔다. 남편과 사별하고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하길래, 대뜸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줄 테니까 재혼 생각이 있나?” 하고 물었더니 “재혼은 하기 싫고 그냥 남자 친구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주위에 편안한 아저씨는 많은데 전혀 느낌이 없다면서 소개를 하려면 본인보다 키가 크면 절대 안 되고 편안하고 대화하기 좋은 남자로 해달라고 한다. 그러고는 연하도 괜찮다는 말을 슬쩍 끼워넣는다. 자신이 키가 커서 어지간한 한국 남자들은 주눅이 든다고 말하기에 “외국 사람은 어때?” 하고 도발했더니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박찬숙은 큰 키만큼 시원시원했다. 한량 이봉규와 왠지 느낌이 통하고 코드가 맞아 보여 조만간 술자리를 갖기로 의기투합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고민이 깊어진다. 박찬숙과 어울리는 남자가 누구일까? 예쁘고 순진하고 명랑한 박찬숙. 60세에도 멋진 남자 친구를 만나 제3의 인생 행복하게 살 자격이 충분하다.
- 2018-11-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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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회원들의 인생 2막을 책임지겠다는 삼성노블카운티 고준호 원장
-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 문화센터, 스포츠센터에 어린이집, 뇌 건강센터까지. 경기도 용인에서 만난 삼성노블카운티는 스포츠와 문화 서비스와 함께 지역 주민과의 공존, 가족적 연대까지 추구하고 있는 하나의 마을공동체였다. 또한 자연과 도시의 장점을 혼합하여 이상적인 융합형 시니어타운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의 시니어타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모종의 해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곳이었다. 고준호(高準浩·59) 삼성노블카운티 원장이 직접 말하는 노블카운티의 특별한 강점을 확인해 봤다. 고준호 원장은 출근하면 항상 확인하는 일이 있다. 호숫가에 산책 나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어머님, 잘 주무셨나요?”, “아버님,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아드님은 잘 다녀가셨나요?” ,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오늘은 패셔니스타 같아요” 살갑게 건네곤 한다. 매일 회원들을 살피고 이것저것 살뜰히 챙겨 주는 것이 몸에 배었다. 가끔씩 나누는 일상의 안부는 회원들에게 힐링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가족들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됐다. 회원들은 남 보다 못한 자식들보다 고 원장이 때로는 든든한 안식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회원들이 더 활기차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누릴 수 있도록 일조하고 있는 고 원장은 세상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시니어타운은 부자들만 간다’는 말은 좀 과장된 거죠. 부유한 어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열심히 벌어 안정적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정도면 부부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다양한 동호회가 잘 조직돼 있어 회원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요. 그래서 이 안에서는 교우관계가 왕성해요. 여기서는 어머님들의 활동이 활발하고요. 합창단, 당구, 사진, 탁구도 새로 배우시고, 회원들끼리 인생의 선후배로서의 교우관계로 행복한 시간을 채워 나가고 계십니다. 노블카운티 정원에서 서로 부축해 가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회원부부를 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더 편하게 해드려야지 싶어집니다.”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분이라면 큰 걱정 없이 비교적 품위 있게 노후를 보낼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며 취미와 사교활동으로 행복을 누리면서 노후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존엄이 아닐는지. 이러한 삼성노블카운티는 2001년 5월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시니어타운이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시니어가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일반세대(타워A, B동)와 일상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시니어를 위한 프리미엄 세대로 구분되는 노블카운티에는 총 553세대가 입주해 있다. 지상 20층, 지하 3층 규모의 건물 2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실의 면적은 30평형대, 40평형대, 50평형대, 70평형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타운 내 시설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되어 함께 이용하는 장소로 운영되는 등 도심형 시니어타운의 이점도 있는, 세대 간 소통으로 대표적인 시니어타운이다. 도심과 자연의 만남, 세계적으로 이런 시설은 드물다 “15년이 넘은 곳이라 여기는 외국 분들이 자주 방문합니다. 우선 외국 분들은 조경을 보며 아름답다며 놀랍니다. 그리고 지역민과 함께 쓸 수 있는 센터들이 같이 운영된다는 것에도 놀라죠. 일본도 도심형 시니어타운이 있는데 아주 도심에 있지 않으면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지역 주민과 어울리는 곳은 거의 없어요. 노블카운티는 도심과 자연의 장점을 갖춘 시설이죠. 설립할 때부터 이런 취지로 개발한 시설은 드물어요.” 삼성노블카운티의 원장으로 취임한 지 1년 6개월이 되는 고준호 원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시니어타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노블카운티에 대해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시설은 드물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노블카운티를 국제적으로 키우겠다든지 하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노블카운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고 더 만족하며 살 수 있게끔 해야겠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와서 보니 실버타운의 경영자는 반은 호텔 지배인이고 반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더군요. 호텔 지배인은 뭐랄까, 고급스런 고객을 모시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이죠. 아파트 관리소장은 서민들이 사는 문제, 예를 들어 수도 흙탕물이 나온다, 왜 쓰레기 제때 안 치우냐, 관리비 왜 비싸냐 등등 소소한 불편 사항을 해소해 주는 역할입니다. 저는 그 롤들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고 원장은 회원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것처럼 특유의 소박한 분위기가 있어 보였다. 회원들 생활의 작은 것부터 다듬어 주자는 생각은 겸손함도 있지만 보다 회원들의 주거만족도를 높여 주자는 현실적인 차원도 있었다.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문제점들이 흔히 지적되는데 그런 것에 관심 갖는 것보다 왔다 갔다 하다가 마주치는 한 분 한 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거죠. 대부분의 회원님들이 ‘여기가 천국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게 여기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받는다가 아니라 그런 시스템에 만족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나이 들면 모여서 살아야 한다 고 원장은 자신이 와서 새롭게 한 건 하나도 없고, 이미 구축된 시스템이 훌륭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철 회장님은 노블카운티를 어떻게 지으라고 말씀은 안 하셨고 복지의 사각지대인 의료, 육아, 여성, 노인 문제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걸 하라고 공익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도적으로 만들어진 게 삼성의료재단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집이었으며 다음이 노블카운티였죠. 노블카운티를 지을 때는 이건희 회장님이 선대 회장님의 마인드를 갖고 노인 복지 사업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블카운티를 지으면서 이건희 회장님이 지시한 게 하루 종일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 원장은 노블카운티에 오기 전에는 시니어 주거시설에 대해 호감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시설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블카운티와 함께 시니어타운을 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나이 들면 모여서 살아야겠구나 싶어요. 안전에 관한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의료적인 안전도 있고 생활 안전, 보안 등의 문제도 있어요. 시니어들 집은 방범에 다소 허술하기 때문에 범죄 등에 취약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전철역까지 가는 게 다 건강 면에서 리스크가 돼요. 한마디로 안전 리스크에 항상 노출돼 있는 게 시니어입니다. 특히 낙상이 문제죠. 넘어져서 다치면 그로부터 노환이 시작돼요. 삶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비 지출 커지고 운동을 못 하니 건강도 나빠지고…. 특히 80세가 넘어가면 그런 리스크가 항상 있게 됩니다. 아파트에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있나요? 그런데 여긴 식사할 때 다 같이 모여요. 산책할 때도 모이고. 그리고 직원들이 항상 보고 있고. 그래서 혼자 살 때 발생하는 리스크가 없어요. 단체 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모여 사는 게 유리할 수 있는 겁니다.” 노후인구 급증, 이들의 주거를 충족시킬 방안 조성해야 노블카운티의 입주회원들 나이 평균은 83.5세. 부부는 35%정도고 65%가 싱글이다. 남녀 비율은 7:3으로 7이 여자다. “당뇨병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이분들 식단은 별도로 차려 드립니다. 그 외에는 집 밥처럼 만들고 있어요. 건강식만 챙기는 게 아니라. 제일 인기 있는 메뉴는 냉면이죠. 그 외에도 다양한 메뉴를 제공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가 아니라 영양사, 주방장 등을 직접 고용하여 자체적으로 만드는 음식들입니다.” 노블카운티에서 일하는 스태프는 총 450여 명에 달한다. 이 많은 숫자는 노블카운티에 다른 시니어타운과는 다르게 지역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스포츠센터 등의 시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설 관리 감독 및 프로그램 제공과 강사 등을 위한 다양한 인력들이 노블카운티에서 일하고 있다. “시니어타운을 경험해 보니 어른들에게 권할 만한 시설이 전국에 얼마 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국에 수없이 많은 요양시설들이 있는데, 시니어타운 같은 양로시설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요양시설은 정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간부문도 계속 활성화되어서 시니어들이 믿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블카운티는 비싸니까(웃음). 그런데 그 숫자가 너무 적어요. 양로시설은 신뢰도가 확실한 곳이 20곳도 채 안 될 거예요. 양로시설은 요양시설과 달리 초기 투자가 필요한데 정부를 탓할 건 아니지만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게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기업들은 안 그러면 안 해요. 특히 요즘 기업주들은 젊어져서 이런 데 신경을 잘 안 쓰거든요.” 고 원장은 사회공헌도 좋지만 그보다는 기업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분은 창대하되 운영은 기업답게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사회공헌이라고 하면 할 기업들이 없어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되고 기업 활동으로 하게 해 주면서 경영 이념을 공익사업으로 하면서 운영하게 해 줘야지 공익사업이라고 하면 누가 합니까. 정부에서도 지원해 주고, 운영이 정상화되면 그 다음부터는 민간 사업자들도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고 해야죠. 공익사업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게 개인들도, 기업들도 이윤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움직이거든요. 과거 기업 1세대들은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서 더 그렇습니다.” 공부와 함께 인생 2막 설계해요 고 원장은 삼성생명에서 전무로 은퇴한 후, 삼성생명에서 운영하는 재단으로 다시 와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일종의 재취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제2의 취업에 성공한 셈이죠. 솔직히 인생 2막이라고는 생각은 안 하고 1막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시작한 직업이 과거에 비해 다른 점이 있을까? “일은 현업에 있을 때보다 적죠. 다른 부서랑 협업하고 경쟁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선 업무강도는 높지 않은데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입주자들의 불편이 늘어나고 시설은 노후화됩니다. 그런 면에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인생 2막을 보다 청년다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는 고 원장은 나이 듦에 대하여 ‘좋다’라고 표현했다. “청춘예찬이란 말도 있지만 20대, 30대 시절의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아닌 거 같아요. 투쟁적이고 경쟁적이라서 힘든 시기죠.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피해의식도 많고. 다시 돌아가면 절대 그때로 가고 싶진 않다는 말이 맞는다니까. 피곤한 시대였으니까요.”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고 원장의 생각에는 시니어타운의 관리자를 호텔 지배인이자 아파트 관리소장이라고 칭한 그 특유의 담대함이 있었다. “나이 들면 성공에 대한 부담, 자녀교육에 대한 부담, 가장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 의욕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세상을 다 알고 달관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좋아요. 말하자면 나이 들었다는 건 진짜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예요. 학교 다닐 때는 쓸데없이 뭘 배운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대부분의 지식은 사회에 나와서 배우게 되잖아요. 정작 학생일 때는 정말 필요한 공부를 못 했던 거죠. 나이 든다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아요. 앞으로 나이 듦으로써 겪는 또 다른 낯선 경험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소중한 삶을 위한 새로운 시도가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고 원장의 그 기다림은 더욱 뜻 깊은 것이리라. >>삼성노블카운티 삼성노블카운티는 약 22만4000㎡(6만8000여평) 부지 위에 독립생활이 가능한 타워 동(2개동 553세대, 30~72평)과 치매·중풍 등의 노인성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24시간 간호와 간병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요양센터인 너싱홈(178 베드, 1, 2, 4인실)을 운영하고 있다. 입주에 필요한 비용은 입주 거실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타워 동 36평(전용 18평)에 입주하는 경우 보증금은 3.5억~4.8억원, 월 생활비는 독신 210만원, 부부 340만원 정도이다. 보증금은 퇴소 시 전액 반환되며, 생활비는 회원 전용 식당에서 맛과 영양, 건강을 고려한 식사, 청소 및 침구류 세탁, 부대시설 이용, 세대 관리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 2016-10-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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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달
-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광하게 했던 리우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많은 선수가 그동안 피땀 흘려 노력했던 결과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메달을 따고 못 따고, 메달의 색깔을 떠나 그동안 수고했던 모든 선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스포츠는 국경과 사상이나 이념 그리고 종교를 떠나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순수한 경기다. 말 그대로 지구촌의 축제다. 메달의 색깔에 따라 환희가 오가지만, 아쉽게 4위에 그쳐 메달을 놓친 경우도 있다. 우리의 국민요정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가 그렇고 여자골프 양희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 모든 국민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동안은 참 행복했다. 누구에겐가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을 참 보람된 일이다. 아니 누구 때문에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교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교훈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었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막판 대역전극으로 에페 개인전에서 헝가리 선수 게라 임레 선수에게 14대 10의 패배위기를 막판에 뒤집으며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감동이었다. 패색이 짙어가는 그 위기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자신에게 외우며 뛰어나가는 그 정신은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용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격에 진종오 선수 또한 집념의 승리였다.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9번째 탄환이 만점 10.9에서 6.6을 기록한 것, 이렇게 점수가 나와 버리면 가망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사격선수여서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타킷의 검은 중심을 벗어나 버리면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때부터는 불안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그다음 점수도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진종오 선수는 역시 특등 사수다웠다. 그 실수를 탁월한 집중력으로 극복하고 드디어 금메달을 확보한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공기소총 충청북도 대표 선수로 태릉 선수촌에서 전국대회를 위해 보름 동안 합숙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았는데 그 교훈이 지금도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언제든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에 집착하다 보면 더 큰 어려움에 휩쓸려 버릴 수가 있다. 그때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배운 그 한마디다 ‘이미 날라가버린 탄환은 잊어버려라’ 이말 한마디는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고 이번 진종오 선수에게서도 바로 입증이 되었다. 결국, 진종오 선수는 그 충격적 실수를 이겨내고 금메달을 따 사격 3연패를 달성했다. 실수를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는 힘!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정표가 된다. 그 교훈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보았듯 바로 는 그 말과 연결된다. 올림픽이 주는 크고 작은 감동 속에는 이러한 교훈이 있어 어떠한 드라마 보다도 짜릿한 맛이 있지 않나 싶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잊어버려라.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 미국사회 한 번 믿어보자 안 믿고 살려니 안전불안증 생기겠다 ” 마음먹으니 사회란 한 구석에서는 늘 사건사고가 있는 거로 이해가 되었다, 그 후로는 격주로 전화하면서도 서로 걱정하는 일은 없어졌다.
- 2016-08-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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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도전하는 힘!
-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광하게 했던 리우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많은 선수가 그동안 피땀 흘려 노력했던 결과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메달을 따고 못 따고, 메달의 색깔을 떠나 그동안 수고했던 모든 선수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스포츠는 국경과 사상이나 이념 그리고 종교를 떠나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순수한 경기다. 말 그대로 지구촌의 축제다. 메달의 색깔에 따라 환희가 오가지만, 아쉽게 4위에 그쳐 메달을 놓친 경우도 있다. 우리의 국민요정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가 그렇고 여자골프 양희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의 도전은 아름답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 모든 국민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동안은 참 행복했다. 누구에겐가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을 참 보람된 일이다. 아니 누구 때문에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많은 교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교훈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었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가 막판 대역전극으로 에페 개인전에서 헝가리 선수 게라 임레 선수에게 14대 10의 패배위기를 막판에 뒤집으며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감동이었다. 패색이 짙어가는 그 위기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자신에게 외우며 뛰어나가는 그 정신은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용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사격에 진종오 선수 또한 집념의 승리였다. 남자 50M 권총 결선에서 9번째 탄환이 만점 10.9에서 6.6을 기록한 것, 이렇게 점수가 나와 버리면 가망이 거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필자도 고등학교 때 사격선수여서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타킷의 검은 중심을 벗어나 버리면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때부터는 불안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그다음 점수도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진종오 선수는 역시 특등 사수다웠다. 그 실수를 탁월한 집중력으로 극복하고 드디어 금메달을 확보한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공기소총 충청북도 대표 선수로 태릉 선수촌에서 전국대회를 위해 보름 동안 합숙한 적이 있었다. 그때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지도를 받았는데 그 교훈이 지금도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언제든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에 집착하다 보면 더 큰 어려움에 휩쓸려 버릴 수가 있다. 그때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배운 그 한마디다 ‘이미 날라가버린 탄환은 잊어버려라’ 이말 한마디는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고 이번 진종오 선수에게서도 바로 입증이 되었다. 결국, 진종오 선수는 그 충격적 실수를 이겨내고 금메달을 따 사격 3연패를 달성했다. 실수를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는 힘!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정표가 된다. 그 교훈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보았듯 바로 는 그 말과 연결된다. 올림픽이 주는 크고 작은 감동 속에는 이러한 교훈이 있어 어떠한 드라마 보다도 짜릿한 맛이 있지 않나 싶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잊어버려라.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 2016-08-22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