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 지역 전통음식으로 알려진 동래파전은 길쭉한 쪽파에 달걀을 풀어 촉촉한 데다, 듬뿍 올라간 해산물 덕에 초고추장이나 새콤달콤 비빔당면과도 궁합이 좋다. 부산 장터의 활기를 담은 요리를 소개한다.
◇동래파전(4인 기준)
재료 쪽파 200g, 홍합·오징어·새우 70g씩, 홍고추·청양고추· 달걀 1개씩 반죽물 부침가루·튀김가루·밀가루40g씩, 물 120g, 고추장 20g, 후추·소금 약간씩
1.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쪽파를 일렬로 놓은 뒤 반죽물을 골고루 뿌려준다.
2. 각종 해산물과 고추를 올린 뒤 중앙에 달걀 푼 것과 반죽물을 바르듯이 얇게 두른다.
3. 파전을 뒤집어 뒤집개로 골고루 펴준다. 다 익을 때까지 그대로 두어야 모양이 예쁘다.
4. 약불에서 5분 정도 익힌 뒤 접시에 담는다.
◇비빔당면(1인 기준)
재료 당근·부추·채 썬 단무지 20g씩, 어묵 2장, 당면 120g, 참기름·통깨 약간씩 념장 고추장 1큰술, 달걀노른자 1개, 간장·물엿·다진 마늘·고춧가루 1/2큰술씩
1. 당근과 어묵을 5cm 길이로 채썬다. 부추도 길이를 맞춰 썰고 재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 물에 불린 당면을 삶은 뒤 찬물에 헹군다.
3. 그릇에 당면을 넣고 면이 굳지 않도록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다.
4. 당근, 부추, 어묵을 고명으로 얹고 단무지와 양념장을 올린 뒤 통깨로 마무리한다.
◇동래파전·비빔당면과 어울리는 반찬: 참나물무침과 두부구이
요리 및 레시피 제공 이준구 오너셰프
미국 LA 유학 시절 요리를 시작했고, 알래스카에서 일본인 스승을 만나 스시에 눈을 떴다. 귀국 후 한식에 빠져 '연남동 이파리'와 '규자카야 모토'를 성공가도에 올려놓은 뒤 '마곡동 이파리'를 운영 중이다.
부산 동래 지역 전통음식으로 알려진 동래파전은 동래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던 음식이다. 길쭉한 쪽파에 계란을 풀어 촉촉한데다, 듬뿍 올라간 해산물 덕에 초고추장이나 새콤달콤 비빔당면과도 궁합이 좋다. 부산 장터의 활기를 담은 요리를 소개한다.
동래파전(4인 기준)
【재료】 쪽파 200g, 홍합·오징어·새우 70g씩, 홍고추·청양고추· 달걀 1개씩
반죽물 부침가루·튀김가루·밀가루40g씩, 물 120g, 고추장 20g, 후추·소금 약간씩
1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쪽파를 일렬로 놓은 뒤 반죽물을 골고루 뿌려준다.
2 각종 해산물과 고추를 올린 뒤 중앙에 달걀 푼 것과 반죽물을 바르듯이 얇게 두른다.
3 파전을 뒤집어 뒤집개로 골고루 펴준다. 다 익을 때까지 그대로 두어야 모양이 예쁘다.
4 약불에서 5분 정도 익힌 뒤 접시에 담는다.
비빔당면(1인 기준)
【재료】 당근·부추·채 썬 단무지 20g씩, 어묵 2장, 당면 120g, 참기름·통깨 약간씩
양념장 고추장 1큰술, 달걀노른자 1개, 간장·물엿·다진 마늘·고춧가루 1/2큰술씩
1 당근과 어묵을 5cm 길이로 채썬다.부추도 길이를 맞춰 썰고 재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 물에 불린 당면을 삶은 뒤 찬물에 헹군다.
3 그릇에 당면을 넣고 면이 굳지 않도록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다.
4 당근, 부추, 어묵을 고명으로 얹고 단무지와 양념장을 올린 뒤 통깨로 마무리한다.
동래파전·비빔당면과 어울리는 반찬
참나물무침과 두부구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일상이 자리 잡으면서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그러나 투명성과 공정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수수료와 AI 알고리즘 문제로 입점 업체와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G마켓, 쿠팡,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플랫폼은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열려 있다. 소비자와 소규모 판매 업체 등이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물품을 거래한다. 이들은 플랫폼을 제공한 대가로 물품을 등록한 판매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직거래 장터이기 때문에 매매 과정이 신속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대형 온라인 플랫폼들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지만 소상공인, 즉 입점 업체 간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과도한 수수료와 AI 알고리즘 불평등
격차 심화는 대부분 과도한 수수료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불평등이 원인이다. 실제로 소상공인들은 온라인 매출을 늘리기 위해 오픈마켓, 배달 앱 등에 입점하지만 판매 수수료와 광고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온라인 플랫폼(오픈마켓·배달 앱)에 가입한 1000개 입점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플랫폼 입점 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오픈마켓 입점 업체 69%가 상품 노출 기회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판매 수수료와 광고비에 대해선 만족한다는 응답률이 각각 36.8%, 35.6%에 그쳤다. 배달 앱 입점 업체도 중개 수수료·광고비 수준이 ‘과도하다’는 응답이 63.2%였다. ‘적정하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고, ‘보통’이 34%였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입점 업체에 대한 온라인 플랫폼의 실질 수수료율은 10.7%다. 전년도 9%에서 1년 사이 1.7%포인트 증가했다. 실질 수수료율은 판매 가격 중 입점 업체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비율을 뜻한다. 판매 촉진비(판촉비), 배송비, 서버 이용비 등을 포함해 계산한다. 브랜드별로 비교하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쿠팡의 수수료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쿠팡의 실질 수수료율은 31.2%에 달한다. 카카오 선물하기(14%), SSG(9.6%), GS SHOP(9.2%) 등이 뒤를 이었다. 쿠팡 입점업체는 다른 경쟁 쇼핑몰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는 꼴이다. 쿠팡은 전년도와 비교해도 수수료율 증가세가 가팔랐다. 2019년 쿠팡의 실질 수수료율은 18.3%였다. 공정위는 “온라인 쇼핑몰이 중요 유통 경로로 부상하고, 판매 촉진비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부담을 납품 업체에 지우고 있어 부당한 비용 전가가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법 집행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고객의 이용 패턴이나 구매 내역,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검색 및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랫폼은 검색 광고를 별도로 운영하기 때문에 상품을 검색 결과 상단에 올려 판매량을 높이려는 판매자들의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국내 배달 앱 시장 점유율 1위인 배달의민족은 이른바 ‘깃발 꽂기’라 불리는 울트라콜을 통해 배민 내 상호를 노출하는 정액제 광고를 운영하고 있다. 깃발 하나 가격은 부가가치세 포함 8만 8000원. 깃발 하나를 사서 꽂으면 주변 2km 반경 소비자에게 상호가 노출된다. 깃발의 개수가 많을수록 상위에 노출될 수 있어 입점 업체 간에 더 많은 깃발을 꽂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울트라콜을 사용하는 입점 업체는 평균 3~4개 정도의 깃발을 사용한다. 월 26만 4000~35만 2000원의 광고료를 내는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조작한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입점 업체나 고객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배열되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쿠팡뿐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 유력 업체들이 모두 비슷한 의심을 받고 있다. 공정위는 2020년 네이버가 쇼핑 검색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사 제휴 상품 등을 최상단에 노출하고 경쟁사의 검색 결과를 하단으로 내린 혐의로 과징금 267억 원을 부과했다. 2021년 6월에는 쿠팡이 대상이 됐다. 해당 업체들은 알고리즘 조작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네이버 측은 “고객의 다양한 취향에 맞춰 최적의 검색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특정 사업자를 배제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입점 업체에 대한 플랫폼의 갑질 행위를 금지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관련 법안(이하 ‘온플법’)들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에 대해 특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기존의 공정거래법 등으로 규율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대립 중이다. 규제하더라도 플랫폼 산업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소한의 규제에 그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한 법안 제정은 요원
서희석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1월 열린 ‘바람직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방향에 대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현재 입법 예정인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은 유럽연합(EU)과 일본에서 발의된 법안을 참고한 것”이라며 “해외 국가와 동일한 법률을 그대로 국내 환경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법학 연구자로서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입점 업체의 보호라는 목적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관리 비용의 증가를 통한 경영 악화에 직면할 수 있고, 입점 업체들은 이용료 상승에 따른 판매 가격 인상의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면서 “플랫폼 이용료 상승과 판매 가격의 상승은 궁극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온플법은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 부과나 부당한 차별 등에서 소상공인을 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지난 12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를 비롯한 5개 시민단체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조작, 부당한 광고비·수수료 부과, 일방적인 정책 변경, 자사 상품 우대, 타 플랫폼 입점 방해 등과 같은 다종다양한 불공정 거래 행위가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다른 이용 사업자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직접 판매도 하는 이른바 ‘선수와 심판’을 겸하며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재홍 전국유통상인협회 본부장은 “플랫폼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기존 유통 시장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피해는 중소상인 자영업자의 몫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흥모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집행위원도 “자영업자들은 플랫폼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끌려가고 있다”며 “플랫폼들이 공존이 아닌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 법 제정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소비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플랫폼의 힘이 더욱 커졌다. 이에 입점 업체와 소비자의 플랫폼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부 플랫폼은 입맛대로 수수료를 인상해 소상공인을 내몰고 있다. 서희석 교수는 “법안이 면밀한 검토 없이 신속하게 추진되는 것에 반해 이 법안이 산업과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다고 본다. 입법 목적에 충실한 좋은 법안이라 해도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야 할 것”이라면서 “관련 당국과 국회는 이 문제에 관한 전문가들의 우려를 귀담아듣고 관련 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괴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는 작업실에 갈 때면 정장 차림에 단장까지 들고 안방을 나섰다. 그 작업실이라는 게 몇 발짝이면 도착하는 집 안의 주방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사람을 웃기는 이색 소극(笑劇)이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짓다가 버린 찜질방을 고쳐 만든 미술관이다. 이 역시 주방 화실만큼이나 이색이라 흥미롭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폐건물에 생명을 주입했으니 태생부터가 예술적? 스러지는 사물에, 무의미한 존재에 숨을 불어넣는 게 예술이지 않은가.
영국 런던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인 테이트모던(Tate Modern)은 공해 문제로 가동을 멈춘 화력발전소를 고스란히 살린 뮤지엄이다. 해마다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든다. 부산 망미동의 F1963은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던 폐공장을 재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며, 청주의 골치 아픈 초대형 흉물이었던 구 연초제조창은 ‘청주공예비엔날레’를 펼치는 공예 클러스터이자 시민 예술촌으로 부활했다. 이 특별한 공간들은 모두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의해 되살아났다. 소다미술관의 발생 역시 ‘재생’을 키워드의 하나로 삼은 요즘의 건축적 사조에서 추동되었다.
소다미술관은 사립 미술관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 장동선 씨가 관장을 맡았으며, 그의 남편 권순엽(건축가, ‘SOAP 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씨가 조력자로 움직인다. 이 부부는 어느 날, 찜질방을 짓다가 혼란에 빠진 어느 건축주의 컨설팅 의뢰를 받았더란다. 당시 건축주는 1층 철근 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까지 마무리한 과정에서 건축을 중단, 이후 4년여를 방치한 상황. 입지의 열악한 조건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준공을 해도 사업성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서였다.
‘재생’의 취지를 살린 별난 미술관
짓다가 포기한 찜질방 풍경은 슬럼화로 스산했다. 쓰레기와 풀들이 부지를 뒤덮은 채 뼈대만으로 멈춰선 건물의 내부로까지 틈입하고 있었다. 장동선 씨 부부는 숙고 끝에 지역사회에 유용할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공감한 건축주는 완공 후의 운영 책임까지 장동선 씨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2015년 소다미술관이 개관됐다.
리모델링은 최소한에 그쳤다. 건축주는 적극적인 구조 변경도 무방하다, 싹 부숴도 좋다 했지만 ‘재생’의 취지를 고수, 거의 건드린 곳이 없다시피 은근슬쩍 손질을 했을 뿐이다. 빛과 구름이 풍경을 연출하는 허공의 동향을 조사할 수 있도록 건물 일부의 천장만 도려냈으니까. 애초 부실한 공사라 바닥의 높낮이도 불균형했으나 그대로 놔뒀다. 휑하게 늘어선 콘크리트 벽면엔 약간의 그래픽 아트를 입혀 이곳이 예술 공간임을 나타냈다. 마당과 옥상엔 화물용 컨테이너 박스들을 조형적으로 배치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통째 건축 폐기물로 버려질 뻔한 쓸쓸한 건조물이 독특한 형태의 미술관으로 순식간에 진화했다. 정밀한 의도, 파격적인 실험, 대담한 근성이 발현된 공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설 미술관의 안정적 운행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다.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운영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풍랑이 몰아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에 미술관을 띄우다니. 응분의 항해술과 순항에 관한 확신이 선행했을 테다. 미술관 측의 얘긴 이렇다.
“(소다미술관은) 기존의 고답적인 미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미술관으로서, 문화 불모지인 인근 지역에 도시재생의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버려진 것들이 디자인 순환(Redesign)을 통해 재발견-재해석-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철학으로, 창작자들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체험적 문화 소통의 공간적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소다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줄여 해석하면, 값진 항해를 하겠다는 뜻. 개관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소다미술관은 쿵쿵 뛰는 심장으로 생동한다. 초기의 고전(苦戰)은 살풍경이었겠으나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즐비하게 입장하는 요즘의 풍경은 자못 윤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술관은 형상부터 편안한 느낌을 줘 다가가기 쉽다. 콘크리트 벽체에 으슴푸레 서린 잿빛. 이는 한때 퇴기처럼 버림받았던 건물이 지닌 상처의 잔영? 오래 낡은 사물이 아니면서도 미묘하게 허름하다. 그래 만만해 보이며, 그 내부에선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하게한다. 여느 화려한 대형 미술관들이 지닌 딱딱한 위압이 없다. 빈티지 풍색이면서도 세련된 모더니티는 또 어떻고?
와우, 별난 미술관이네! 단박에 호기심과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외양은 어쩌면 이 미술관이 보유한 최상의 자산이 아닐까. 곁을 오가던 지역 주민들은 심심하던 차에 출현한 예술 공간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은 곰곰 생각해봤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었을 것이다. 소다미술관은 이처럼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한 본능적인 문화 욕구를 수면 위로 쓰윽 끌어올렸다.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미술관의 힘과 개성을 돋우었다.
다양한 콘셉트로 보여주는 예술의 맛
소다미술관은 미술작품전은 물론,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기획전도 주기적으로 펼친다. 음악공연, 아트장터, 플리마켓, 크리스마스 파티, 할로윈 파티 같은 이벤트도 잦다. 아이들 대상의 스카이샤워, 액션페인팅, 무빙아트 등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예술과 놀이, 문화와 소비에 관한 엄밀한 분석으로 도출했을 이 다양한 콘셉트는 용케 먹혀들고 있다. 입장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적 토양과 시설이 유난히 취약한 지역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지.
국내엔 엄마와 함께 찾아와 뜰에서, 전시장에서, 팔랑팔랑 뛰노는 아이들을 작품처럼 유심히 관찰하기 좋은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소다미술관이다. 어린아이란 천진난만한 요정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존재. 이 미술관은, 알고 보면 저마다 맛이 약간 간 어른들(아닌가? 나만?)과 다른 종(種)인 아이들에게 예술의 맛을 살짝 보여주는 일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 같다. 그게 미술관의 역할이라 믿어 담장을 팍 낮췄을 게다. 이 미술관의 종사자들은 국가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들과 동네의 평화쯤은 구현하는 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얘기를 들어볼까.
“우리의 의도는 문화예술을 친숙하게 소개하는 데 있다.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콘셉트를 마련했다.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 등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미술만 아니라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김모란 큐레이터)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하다
소다미술관의 창의적인 전시 기획력도 돋보인다. 개관하던 해엔 세계 3대 디자인상에 속하는 ‘레드 닷 디자인상(2015 Red Dot Design Award)’의 디자인 분야 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건축가들의 지어지지 않은 꿈’이라는 타이틀의 건축 전(展)에 주어진 상이었다. 이 미술관은 그간 건축가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다양한 공간설치전을 펼쳐왔다. 현재 천장 없는 전시 동(棟)에서 ‘모으고 잇다: gather together’ 전이 진행 중이다.
실내 전시장에선 인간의 우울한 감정을 테마로 한 ‘COMPLEX SOCIETY: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이 펼쳐진다. 코로나19와 맞붙은 국면이라는 시의성에 착안한 전시회다. 감상자들에게 위안과 관조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기획했다. 앙리 마티스는 말했다. “예술은 진통제이거나 피로를 푸는 안락의자”라고. 그렇다면 예술가는 치료사? 감염병의 발호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감정은 자주 억압돼 감옥살이를 한다. 화가는 그 억압을 유심히 관찰한다. 관찰을 통해 그가 발견한 감정의 본질을 표현해 억압으로 아픈 자신과 남들을 위로한다.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단서를 찾게 한다. 날뛰던 마음이 미술관에서 잠시나마 얌전하게 가라앉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소다미술관은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한 전시 디테일로 감상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전시실 한편에 정갈하게 진열한 마음 관련 책자들. 무료 벤딩머신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위안의 글귀들. ‘잘 지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탁자에 올라앉아 은은한 향을 풍기는 디퓨저. 미술관도 이쯤이면 미련퉁이 애인보다 낫다.
세 개의 강이 만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삼랑진(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이다. 어린 시절 인근 지역에서 자랐어도 별생각 없이 다녔는데 삼랑진이라는 이름에 이런 아름다운 뜻이 있는 줄 몰랐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부산 구포역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갈 때마다 삼랑진역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행정구역상 밀양 내에 있는 읍이지만 당시는 밀양역보다 더 크고 번성했던 곳이 삼랑진이었다.
삼랑진 옛이야기
일제강점기부터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삼랑진은 매우 화려하고 번성한 곳이었다. 낙동강을 통해 일본 상선이 삼랑진 포구까지 왔다.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하다 보니, 삼랑진 지역 중심엔 일본인들 관사가 많이 지어져 현재에도 제법 남아 있다. 문화재보존정책 때문에 개·보수를 하지 못해 지금은 아주 초라하고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언젠가는 이 지역의 근대화 문물들은 보수·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삼랑진장에 가자!
삼랑진장은 4일과 9일에 들어선다. 삼랑진이 쇠퇴하면서 시장의 규모도 작아지고 사람 수도 줄었다. 최근엔 마트까지 생기면서 시골 장날의 분위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삼랑진장은 인근의 김해시 생림면 사람들과 삼랑진 지역의 연세 많으신 분들이 주로 이용한다. 어릴 적부터 발길이 닿은 곳이라 마트를 이용하는 것보다 편해 장을 이용한단다. 어르신들은 마트의 물건보다 찬거리 등을 푼돈으로 흥정하며 살 수 있는 삼랑진장을 좋아한다.
가는 날이 장날
날씨가 매우 추웠다. 삼랑진에는 강바람과 산바람이 아주 매섭게 몰아친다. 도시처럼 바람을 막아줄 건물들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차에서 내려 삼랑진 장터를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장날의 분위기를 느껴봤다. 큰 카메라를 들고 외지인이 이리저리 다니니, 상인들 모두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오방떡을 구우시는 할머니가 “오늘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왔능교?”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반갑고 기뻐서 “네~”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더 붙였다. 잡지에 넣을 사진 촬영을 한다고 설명하며 할머니 모습을 찍었다. “찍지 마!” 하면서도 포즈를 잘 잡아주셨다.
추운 날 꽁꽁 얼은 생선을 파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찍으려 하니 할머니가 욕을 하신다. 그래도 상부상조하는 의미에서 4마리에 1만 원 하는 고등어를 사니까, 덤으로 작은 놈 한 마리를 끼워주신다. 고등어를 팔아주니 사진을 찍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장터에서 파는 생선들은 냉장 시설이 없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냉동 생선을 녹여 손질해 판다. 이 추운 날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손질을 하신다. “할머니 장갑 좀 끼시죠?” 하니 “장갑 끼면 잘 안 된다” 하신다. 조용한 시골 장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음악 테이프와 CD를 판매하는 트럭이다. 하루 종일 상인들과 손님들에게 최신 트로트를 들려준다. 시대가 변하면서 트로트 노래들도 USB용으로 나온다. 뭔가 하고 둘러보는 사람은 있지만 구입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보니, 물건 파는 사람도 차 안에 들어가 있다. 날씨도 춥고 사람들도 많이 안 다니니 일찌감치 포기한 모양이다.
장터 사람들
삼랑진장에서 파는 물건들은 젊은 사람에게는 좀 생소한 것들이다. 주로 뜨거운 물에 우려먹는 뿌리 식품이나 보신용 식품이 많다. 우엉과 말린 연근, 둥굴레, 돼지감자 같은 뿌리 식품이 많다. 장날의 자리에는 권리금과 자릿세도 있다 한다. 보통 가게 앞에서 장사를 할 경우엔 상권의 성향과 위치에 따라 자릿세 차이가 있다. 삼랑진장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해온 한 분은 자릿세를 내기 싫어 장터 가장 끝 쪽에 자리를 펴고 물건을 판다. 추운 날이라 구멍 난 깡통 장작불에 손을 녹이며 요기를 하기 위해 고구마 몇 개를 넣어 굽고 있다. 그분에게 연근이랑 우엉, 돼지감자를 1만 원어치씩 구입하고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날씨도 춥고 심심했는데 20분 동안 말동무도 되어주셨다.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오늘 펼친 물건들 재고가 많이 쌓였는지 상인들은 팔지 못한 물건들이 서로에게 필요하면 물물교환을 한다. 불과 몇십 분 전에 1만2000원에 팔던 김천촌닭을 5000원에 사가라고 한다. 삼랑진은 시내보다 더 빨리 어두워진다. 하루 동안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 사람들의 흔적이 아직도 잔영(殘影)첨럼 남아 있다.
이재준(아호 송유재)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시조시인과의 인연은 19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처녀시집인 을 구하기가 어려워 혹여 선생께선 몇 부 갖고 계실 듯해서 어렵게 전화로 여쭈니, 당신께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복사한 것만 갖고 있다며, 꼭 구했으면 하셨다.
1947년 ‘수향서헌’에서 10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 이 책은 한지 바탕에 편집, 문선, 조판, 장정, 인쇄, 제본까지 저자 혼자 손수 한 출판 역사상 유일한 책이라 그 가치는 상당하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봉선화’ ‘청자부’ ‘백자부’ 같은 빼어난 시조들은 그 가치를 더욱 높인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서점가를 발로 뛰어 다니며 수소문하였다. 몇 달 후 진주와 대전의 고서점에서 과 동시집 을 구해 우편으로 보내 드렸다. 선생의 시조를 읽으며 어휘와 음률에 대해 전화로 여쭈면 늘 반가워하시며 작품의 제작 동기와 발표 과정 등을 자상히 알려 주는, 길고 긴 시조강의(?)를 듣곤 하였다.
옥수동에서 압구정동, 그리고 이태원동으로 주소를 옮기셔도 통화는 이어졌고, 아내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라고 하셨으나 왠지 문인으로 등단한 후에나 뵙는다는 치기로, 그리하지 못했다. 2001년에야 이태원동 청화아파트로 찾아뵈었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 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한낮부터 설핏 가을 해가 기울 때까지 문학, 고서화에서 시작된 말씀은 조선백자 예찬으로 장강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서재 곳곳에 놓인 문방사우며 책들도 일일이 꺼내어 살펴보게 하셨다. 탁자에 놓인 벼루에 먹을 갈아 드리니, 준비해 가져간 책에 붓으로 서명을 하고 관지까지 해 주셨다. 선생이 지으신 책 중에 두 권을 빼고는 다 수집해서 소장하게 되었다. 그 후로 세 번 정도 찾아뵈었는데, “바쁠 터인데 이리 자주 오지 마라.” 단호하셔서 어렵기도 하고 문하(門下)가 아니라서 그리하시나 야속하기도 하였다. 그 어름에 합죽선(合竹扇)에 ‘성덕대왕 신종 명(銘)’을 전서(篆書)체로 써주셨고 구작(舊作)인 ‘벽도도(碧桃圖)’의 합죽선도 함께 주셨다.
千年碧桃如大斗 천 년 만에 열린다는 푸른 복숭아 큰 말같이 커서
仙人摘之以釀酒 신선이 이를 갖고 술을 빚어
一食可得千萬壽 한 번 마시면 천 년 만 년 산다네
庚戌春夜 於洌上 白瓷丹硏之室主人 艸丁 塗人掃毫 경술년(1970) 봄 밤, 한강 상류 ‘백자와 단계벼루가 있는 집’ 초정 그리는 사람이 붓을 쓸다.
중국의 시를 빌려 그림을 그리고 화제(畵題)를 썼다. 신선이 먹는다는 벽도 세 개와 무성한 푸른 잎사귀를 그리되 화제가 합죽선 끝을 따라 전서와 행서(行書)로 어우러져 가히 문인화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부채고리에는 은으로 된 팔각의 선추(扇錘)가 끈에 매달려 있었는데, 펴서 부칠 때 바람 따라 흔들리는 그 운치가 그만이었다.
이 인연이 합죽선을 수집하는 계기가 되어 한때는 여러 문사(文士)나 서화가의 글, 그림을 합죽선에 받아 100여 점을 갖고 있었으나, 은사님이나 선·후배 동호인에게 선물하고 30여 점만 남았다. 선추는 옥이나 은, 호박, 나무로 깎은 장신구들을 사북이라 부르는 합죽선 손잡이 고리에 매다는 것인데 침통이나 나침반 향갑 등 다양하지만 희귀해서 구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기록들에 의하면 쥘부채라고도 부르는 합죽선은 고려 때부터 실용되어 중국인들이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일본이나 중국도 합죽선을 만들기는 했지만 대나무의 부챗살이 40~50개나 되게 만든 180도로 펼쳐지는 합죽선은 우리나라 고유의 산물이다. 조선조에는 전주와 안동에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扇子廳)’을 설치, 부채를 진상하게 하였다. 그곳에서 좋은 대나무와 질기고 우수한 한지의 생산에 근거했을 것이다.
합죽선을 만드는 스물네 공정은 까다롭고 세심해서 수백 번 장인의 손길이 공력을 들여 보름이 걸려야 한 자루가 완성된다. 단오 때가 되면 임금이 합죽선에 경구(警句)를 써서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백옥 같은 백선에 좋은 글귀나 그림을 그려, 손에 들고 다니며 수시로 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마음의 뜻을 전하는 격조 높은 선물이었다.
국악의 소리꾼들은 꼭 합죽선을 들고 창을 한다. 격정적인 장면에선 접은 부채를 손에 탁탁 치기도 하고 부채를 180도 확 펴기도 한다. 이 소도구 하나만으로 아취가 있다. 한량(閑良)들의 춤사위는 이 합죽선이 더해져 완성도를 높인다. 반원의 합죽선이 허공을 가르며 추파를 일으킨다.
녹음 짙푸른 한여름, 정자에 앉아 선추 흔들며 시조 한가락 유장하게 뽑으면 가히 선인의 정취가 아니겠는가.
명실공히 현대 수채화의 제일인자라 칭하는 강연균(1940~ ) 화백의 그림들은 늘 사실적인 것에 기저를 둔다. 멀리 있는 것, 허구적인 것, 환상적인 것은 그의 그림에는 없다. 태어나서 자란 남도의 가난한 이웃들의 고단한 삶과 스산하고 보잘것없는 자연 풍광을 탁월한 스케치로 표현했다.
그가 수채화에 전념하게 된 것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 비싼 유화 물감을 살 수 없는 아픔에 연유 되었다. ‘그가 겪어온 슬픔과 번민과 분노가 맑은 빛깔로 응결되어 있다. 그리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아픔, 근원적인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파악하려 한다.’고 1981년 봄호에서 평하기도 하였다.
1982년 누드 수채화만의 전시 작품이 모두 판매되는 등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의 수채화에 스며든 진실성을 모두가 아끼고 사랑한다. 백자 제기에 놓인 석류나, 눈 내린 좁은 비탈길, 광주리를 이고 초라한 굴뚝 옆을 지나는 아낙, 소녀의 비감어린 눈빛 등의 수채화를 수집하고 있던 중 인사동 경매에서 이 합죽선에 그린 ‘우시장(牛市場)’을 낙찰 받았다.
팔러 나온 소 서너 마리가 서거나 앉거나 한 사이로 함지박을 인 아낙이 지나고 촌로들이 소 값을 흥정하고 있으나 긴장감은 없다. 참외 수레 옆에는 팔려는 촌부나 강아지 두 마리도 졸고 있는 한가로운 여름, 시골 장터 한 모퉁이가 부챗살 따라 펼쳐져 있다. 전주의 부채 장인이 만든 이 큰 합죽선에 쌍어문(雙魚紋)의 대추나무 선추를 매달아 보았다.
향리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였다. 이미 그 세월도 50년이 넘었다. 몇 해 전 이러구러 소원하였던 옛 친구에게 ‘심월상조(心月相照)’라 서예가가 써 준 합죽선을 보냈다. 작은 은방울 선추를 매달아서...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속엔 서로 달이 비춘다는 고승(高僧)의 고상한 경지를 빌려보고 싶어서였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가수 이애란(예명·53)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작년 말, 전국을 ‘전해라’
열풍에 빠트린 죄(?)를 물어 방송사와 광고계가 그에게 잇단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떴다’하는 순간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 휴먼다큐멘터리,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까지 접수했다. 25년 무명생활을 한방에 날려버린 ‘백세인생’ 이애란의 2016년 소망을 브라보가 만난 사람이 들어봤다.
“요즘 들어서 인기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어요.”
‘백세인생’ 가수 이애란씨의 하루는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무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이제는 어딜 가나 말 그대로 스타급 대우다. SBS 아침방송 고정 리포터는 물론 인기 아이돌만 모신다는 MBC 설날 특집 ‘2016 아이돌스타 육상·풋살·양궁 선수권대회’에 초대돼 노래도 불렀다. 길거리, 식당 어디에서도 ‘어머, 이애란이야!’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는다. 인기를 얻기 전부터 존재했던 인터넷 팬카페는 매일 꾸준히 회원이 늘고 있다. 회원 수는 1월 현재 1428명이다. 그전에는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많이 늘었어요. 한 분, 한 분 저와 노래를 알게 되고 좋아하시는 분들이 가입하세요. 요즘은 자주 들어가 보지 못해서 팬들에게 미안하죠.”
오로지 노래만 생각한 25년 세월
어렸을 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왔던 이애란. 20대가 되면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1990년, KBS 일일드라마 주제가 공개 오디션이 있었어요. 거기서 저 포함해서 3명이 마지막 오디션을 봤는데 제가 낙점된 거죠. 그런데 어떤 상황인지 가수가 부른 노래는 나가지 않고 곡만 드라마에 사용하더군요. 정작 제 목소리는 전파를 타지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실망할 법도 한데 지금까지 노래를 부르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소한 아르바이트도 노래가 아니면 안 했다.
“그래도 노래할 곳은 꽤 있었어요. 풍물 장터 야시장이라고 겨울만 빼놓고 동네마다 많았어요. 서울에도 있었고요. 야시장에서 초대해주시면 가서 노래를 불렀죠.”
당시 야시장마다 기본적으로 노래 반주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수를 초대하면 그 사람 음정에 맞춰 연주해줬다. 뭐든지 생음악으로 불렀던 때다.
길고 긴 ‘백세인생’과의 인연
이애란이 노래 ‘백세인생’ 가락을 처음 접한 것은 1995년 한 국악학원에서다. 그때 녹음을 했지만 상업적인 목적은 아니었고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정도였다.
“장구가 배우고 싶어서 국악학원에 갔었어요. 그때 선생님이 장구랑 민요도 같이 가르치던 분이신데 선생님이 그 노래(지금의 백세인생)를 민요로 부르는 것을 귀동냥했어요. 저도 장구 치면서 흥얼거리곤 했어요. 한 달 넘도록 장구채 잡는 방법만 가르쳐서 그만뒀는데 노랫가락 하나는 익히고 나온 거죠.”
이애란은 이렇게 알게 된 노래를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무대에서 관객들의 박수에 맞춰 불렀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그 모습을 보고 부산 시장거리에서 활동하던 품바 가수 명월이 알려달라기에 노래를 가르쳐줬다고.
“그런데 품바라 그런지 왜곡이 많이 되더라고요.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상황에 맞게 다 개사를 해버리잖아요. 2012년에 김종완 작곡가님을 만나 악보를 보고 알았죠. 우리가 왜곡해서 부르고 있었구나. 그 이후 가사 수정도 많이 하고 다시 처음부터 배운 거죠.”
힘든 시절 장구를 치면서 익혔던 노래가 인생을 바꿔주는 열쇠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2012년 사촌 오빠의 소개로 첫인사를 나눴던 작곡가 김종완씨와의 인연도 기막히다. 알고 보니 그가 흥얼거렸던 ‘백세인생’의 원작자이자 데뷔곡이 될 뻔한 드라마 주제가 작사가였다. 현실은 영화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작곡가와 새롭게 노래 녹음을 하기 위해 5, 6개월여 피나는 연습을 했다. 새벽 2시건, 3시건 될 때까지 말이다.
“2013년 드디어 노래 녹음을 했어요. 1995년 장구를 배울 때만 해도 ‘백세인생’의 원제목이 ‘저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답하리’ 였는데 2013년에는 ‘저세상이 부르면’으로 바꿨죠. 작년 2월 말 발표 때는 원래 100세까지만 있던 가사를 150세까지 늘려 다시 썼어요.”
제목도 ‘백세인생’으로 완전히 갈아 끼웠다. 고령화 사회, 장수사회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백세인생’이란 말이 저승에서 오라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노래 가사와 잘 어울렸다. “제목 안에 가사 내용이 다 담겨 있는 거 같아요. ‘백세인생’에는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감정이 있습니다. 나 대신 네가 좀 내 마음을 좀 전해줄래? 하는 것도 있고, 또 덩실덩실 리듬도 있고, 우리가 노래 가사처럼 정말로 150세까지 살 수 있다면 하는 욕심도 담긴 노래입니다.”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아버지
인기몰이가 시작되고 하루하루가 바빠질수록 먼저 떠나신 부모님 생각이 부쩍 많이 난다. 다른 매체에도 소개됐지만, 작년에 이애란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애란의 영원한 팬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목소리가 애잔하게 깔린다.
“아버지는 이 노래를 처음부터 좋아하셨어요. 작년 2월에 음반이 ‘백세인생’으로 나왔다고 하니 제목이 좋다고도 하셨어요. 좋아하시기만 했지 제가 방송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늘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빨리 못 보여드린 게 가슴에 한이 남았다고 할까요? 맺혔다고 할까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가끔 아버지 팔을 베고 누워서 ‘백세인생’의 한 구절을 불러드리기도 했다.
“90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재촉말라 전해라.”
달리 아픈 곳이 없어서 100세까지는 사실 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운명하셨다. 지방행사 때문에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못내 죄스럽다.
노래하는 이애란에게 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도전이 아름다운 거지 후퇴는 하지 마라. 그리고 네가 후회할 일은 절대로 하지 마라” 라며 항상 응원을 해주던 한 사람이다.
젊은이들의 유희 ‘전해라~ 짤방’, 인생역전 견인차
이애란의 인기는 젊은이의 기발함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짤방이란 ‘잘림방지’의 준말로 내용에 상관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2014년 11월 말에 ‘백세인생’ 노래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조회 수가 빠르게 올라가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눈여겨봤던 최준원씨가 소속사에 얘기한 거죠. 제 영상으로 짤방이라는 걸 만들고 싶은데 만들어도 되느냐고요.”
최씨는 한국방송예술진흥원 학생이면서 이애란과 같은 소속사의 트로트 음악 작·편곡을 겸하고 있는 전문 작곡가다. 지금은 이애란씨와 이모, 조카 하는 사이라지만 짤방을 만들 당시에는 안면만 있는 정도였다고. 소속사에서도 최씨의 얘기를 들으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 생각해 흔쾌히 승낙했다.
작년 7월, 인터넷에 첫 번째로 유포된 짤방은 ‘간다고 전해라, 못 간다고 전해라’였다. 이애란의 감정 실린 표정과 ‘전해라’라는 궁서체 자막은 묘하게 어울리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것에 관심 두는 젊은이들, 신선한 것을 찾아다니는 방송 작가, 기자들의 눈에 띄면서 마침내 세상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전해라~ ‘백세인생’이 됐다.
이애란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
결혼에 관해서 물어보려 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애란씨. 살아생전 아버지도 묻지 않던 질문이다. 노래하다 보니까 결혼을 해야겠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노래를 벗 삼아 버텨온 삶이다. 그래도 이상형은 있다. 자상하고 정말 착한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사람은 다 착하지만, 자신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2016년을 맞이하는 각오도 함께 물어봤다.
“제 욕심이겠지만 트로트를 발판으로 한류 스타가 되고 싶어요. 바람이고 욕심이죠. 작년은 여러분들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2016년도에는 보답을 하는 한 해를 만들어야죠.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드라마에 노래교실이 나올 때도 있는데 초대해주시면 좋겠어요(웃음).”
한류스타를 예약해두고 있는 인기가수답게 이애란씨와의 인터뷰는 사실 쉽지 않았다. 그녀의 일정대로라면 아직도 만날 수 없는 상황.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식당에서, 걸어가면서 틈틈이 이애란씨와 인터뷰했다. 방송 촬영 모습도 지켜봤다. 힘들만도 한데 사진을 찍겠다고 길게 줄을 선 팬들 하나하나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악수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도 한 말씀 부탁했다.
“무조건 힘내시고 파이팅하라 전해라~!”
100세 인생은 60세부터 시작이기 때문에 꽃중년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60세는 너무 어리다는 것. 이애란의 인생도 이제부터 시작이니 모두 젊은 마음으로 100세 인생 살아가기 바란다고 전했다.
봄맞이 남도 여행을 떠난다면 열차 여행은 어떨까. 장시간 운전의 피곤함 없이 열차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남도의 봄의 즐기는 색다른 방법일 것이다.
코레일은 이번 달부터 특별관광열차와 남도해양열차 등 봄맞이 기차 여행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3일 밝혔다.
# 열차여행 패키지
남쪽으로 봄꽃을 맞으러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남도의 축제에 맞춰 운행하는 기차여행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이다.
코레일은 3월에만 지리산 산수유, 광양 매화마을 등으로 15편의 특별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정기열차를 이용한 관광프로그램도 전국 주요역 여행센터와 기차여행 전문여행사에서 마련하고 있다.
서울, 용산, 의정부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 부전, 경북 김천 등 전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다. 또 현지 이동 수단도 연계돼 이동이 편리하다.
코레일은 광양매화축제에 28, 30일 2차례 팔도장터관광열차를 운행한다. 서울에서 출발해 광양매화축제, 광한루, 남원공설시장 등을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프로그램 구성에 따라 1인당 5~7만원 선.
문의는 코레일 홈페이지(http://www.korail.com)이나 코레일 관광 개발(1544-7755)에 하면 된다.
# 남도해양열차(S-train)
정해진 일정의 단체 여행이 싫다면 남도해양열차(S-train)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남도해양열차는 남원, 구례, 순천, 보성, 진주, 하동, 광양 등 남도의 주요 관광지를 매일 운행하기 때문에 봄꽃여행을 떠나기에 안성맞춤이다.
순천시는 3월부터 남도해양열차와 용산발 KTX 도착시간에 맞춰 ‘순처난 에코힐링투어’ 버스를 매일 운행한다. KTX나 남도해양열차를 타고 순천역에 내리면 선암사~낙안읍성~순천만 등 순천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고 다시 열차 시간에 맞춰 역까지 데려다 준다.
남도해양열차를 이용해 남원, 오동도, 벌교, 보성, 순천만 등 남도의 주요 관광지를 연계한 프로그램은 서울역, 용산역, 대전역 등 수도권 주요역 여행 상담센터에서 안내하고 있다.
문의는 서울역(02-3149-3333), 용산역(02-792-7789), 대전역(042-253-7960), 순천역(061-745-7785), 부산역(051-440-2513)으로 하면 된다.
# 열차 + 카 셰어링
열차로 현지까지 이동해서 역에서 카셰어링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진주, 하동, 순천, 여수, 보성, 나주, 전주 등 남도해양열차의 주요 정차역에서 저렴하게 차를 빌릴 수 있어 가족단위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코레일 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유카(http://www.youcar.co.kr) 회원에 가입한 뒤 이용하면 저렴하다. 경차 기준으로 평일 1시간 빌리는데 4090원(유류대 별도)이다. 유카 이용 문의는 코레일 네트웍스(1644-0520)에 하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