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가 추천하는 '진정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도서'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저)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했다. 저자가 경험한 공포와 불안을 통해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묘사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당한 주민들의 아픔을 10여 년에 걸쳐 진행한 100여 명의 방대한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피해자들의 삶과 죽음, 비극을 적나라하게 담으며 미래 세대를 향한 고민을 드러낸다.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객관화된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한 여자를 통해 이별과 외로움을 겪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저)
강원도 시골 마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쓴 일기 중 151편을 엮었다. 100세를 살아온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과 생명, 소소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최현숙(崔賢淑·62).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었다. 가출을 반복하던 끝에 출가(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십 년간의 숱한 방황과 기행(奇行). 환갑을 지나 구술생애사 작가로 사는 요즘, 그녀는 이제야 제법 그 쓸모를 알 것만 같다.
진보와 정치의 교착 속 중년기를 보낸 최현숙은 10년 전 요양 노동을 선택했다.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서 노인돌봄에 몸담았고, 그들을 만나면서 구술생애사 작업을 진행했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할배의 탄생’ 등을 펴내며 구술생애사 집필에 몰두해온 그는 최근 에세이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를 출간했다. 한동안 타인의 삶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하는 ‘똑바로 마주하는 삶’은 어떤 의미일까.
“대개 우리는 즐겁고 좋은 일은 가까이하려 하지만, 어렵고 불편한 일은 회피하죠. 삶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긍정적인 것들보다는 부정적이고 기울어진 것들을 자기 시선을 통해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에요. 사회 전반의 불공정한 현상들을 주류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안 돼요. 정답이 아니어도 나름의 시선을 만들어야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길러져요. 마찬가지로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까지 직시해야 나를 제대로 알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상처나 미움도 잘 다스리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거든요.”
우리는 사적인 존재가 아니다
‘최현숙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라는 부제 속 단어들이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최현숙의 화려한 이력(?)을 보면 ‘그럴 만하다’ 싶었다.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누구의 삶이든 사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공존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주의 진영에서 자주 쓰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해요. 나의 몸, 나이, 심리적 경제적 상태는 모두 정치적인 겁니다. 가령 여성의 몸을 통해 무엇이 아름답다고 평가하는 잣대나 낙태 문제 등도 정치적인 부분이죠. 가족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가정이든 들여다보면 남성과 여성, 돈 버는 사람과 안 버는 사람, 노인과 아이 등 그 안에 첨예한 권력 관계가 존재해요. 그것이 확장되면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와도 맞닿게 되죠. 그러나 대개 나와 가족의 일은 프라이버시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감추려 해요. 가정폭력만 해도 사적인 가정사로 여기지만, 그렇게 은폐하는 것들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고 봐요.”
최현숙은 연명의료를 거부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칼럼을 썼다가 가족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존엄한 죽음, 웰다잉이 화두로 떠오르며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는 이야기였지만, ‘사적인 것을 왜 공개하느냐’라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그녀의 소신을 따랐던 행동들은 종종 가족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러한 갈등이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라고 털어놨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사회운동을 했어요. 사회활동을 하는 기혼 여성이라면 다 겪는 고충이지만, 제 경우엔 돈벌이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식들 안 챙기고 남 좋은 일 한다고 욕 많이 먹었죠.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나 형제에게 ‘모성애가 없느냐’, ‘영웅심에서 그러느냐’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여자인가?’, ‘정말 영웅심에 찌든 인간인가?’라는 의심과 자책을 했어요. 양쪽을 다 돌볼 수 없는 현실이 늘 괴로웠죠. 그때의 상처가 여전히 자괴와 자책으로 남아 있어요. 물론 그것들 역시 내가 인정하고 성찰해야 할 과제이죠.”
강박 없는 성실이 가능해진 삶
이해받지 못할 일들을 해나가며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고, 수많은 사람을 대면했다. 덕분에 소외된 이들의 아픔과 그늘을 잘 이해한다는 그녀. 구술생애사 작가로서는 적격의 삶을 살아온 셈이다.
“자기 가치관이나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방황과 뻘짓(?)을 한 세월 덕분에 나처럼 헤매는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역지사지가 잘 되는 거죠. 인간에게 선(善)과 악(惡)은 없다고 봐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떠한 처지와 맥락이 있었을 뿐이죠.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다 보면 이해 못할 상황도 없고,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어요.”
타인의 인생을 듣는 것에 익숙할 그녀에게 혹시 다른 이에게 자신의 생애를 구술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뢰가 없지는 않았지만 작가에게 사정이 생겨 중단했단다. 대신 오래전부터 직접 지난 삶을 기록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정말 나라는 사람이 이해 안 됐어요. 내 삶의 처지와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글이라는 점에서 회고록보다는 ‘해명’이라는 제목이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물론 지금도 여전히 내가 완벽히 이해되지는 않아요. 그러나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에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이해는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에게는 더 많은 상처가 있겠지만, 부유하고 잘 배운 사람이라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 그게 사회에서의 나의 쓸모라고 생각해요.”
자녀들이 독립한 뒤, 혈(血)로 엮인 의무와 자책은 어느 정도 덜어냈단다. 60대를 사는 현재 ‘강박 없는 성실’이 가능해진 것에 만족스럽다는 그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바람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단 돈이나 건강은 아닌 것 같아요. 돈은 행복의 외양은 만들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겉은 건강해도 속이 부글부글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들을 찾고, 진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나를 사랑하면 그뿐이죠. 나를 사랑한다고 자기애에 빠진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나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소외된 이웃까지 사랑해야죠. 앞으로 하려는 일들이 내 욕망에서 출발하되 사회적 욕망과 연결되는 일일 수만 있다면, 여생은 그걸로 족합니다.”
제목만 말해도 그 시대의 풍경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등등 발표될 때마다 가요 차트를 점령하며 시대의 유행가로 자리매김한 그 노래들. 특유의 여린 목소리로 그 시절의 애절한 감성을 노래했던 양수경(52)이 무려 27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긴 세월을 넘어 그대로 도착한 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녀는 여전히 꿈을 꾸는 소녀와 삶의 부침을 겪고 거듭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철두철미한 가수였다. 그녀가 인생 2막을 열면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가수 양수경의 귀환은 요즘 한창 일어나고 있는 ‘8090’ 가수들의 복귀 붐 속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작년부터 여러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 무대를 가진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단독 콘서트를 27년 만에 연 것이다.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음이 짐작된다.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일, 답은 노래였다
“준비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몇 번이나 들었어요. 추억 속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지만 아이들 엄마이기에 나만 생각할 수는 없었어요. 사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내가 잘하는 일이 뭘까’, ‘눈감는 날까지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무지 많이 고민했죠. 답은 노래였어요.”
양수경은 공연을 앞두고 2014년 일기를 봤다. 공연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써놓은 자신의 글이었다. 그 막연했던 희망이 3년 정도 지나 이제야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막상 그런 무대가 찾아오니 갈등과 두려움이 올라왔다.
‘이번만 하고 다시는 못하는 것 아닌가, 무대에 섰는데 노래가 잘못 나오지 않을까, 차라리 안 보여주면 망신이라도 안 당할 텐데….’
공연 끝나고 다음 날 아침까지 잠 못 자
“요즘 공연 시장도 안 좋지, 음반업계도 안 좋지. 내 나이에 뭔가 시작한다는 것도 두려웠고. 공연 날 표가 백몇 석이 비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대를 올라갔어요. 그런데 막상 올라가 보니, 객석이 꽉 차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어요. 그리고 노래를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했는데… 모르겠어. 시작했는데 끝나 있었어요.”
성공이었다. 공연 직전까지 떠올렸던 모든 어둠과 고통을 날려버릴 정도의 성공. 공연 전날 불안감에 잠을 못 잤던 양수경은 공연이 끝나고 정반대의 이유로 그다음 날 아침 여덟 시까지 잠을 못 잤다. 공연을 본 사람들에게서 들은 “다시 또 오고 싶어요”라는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울고 웃는 게 상상을 초월했죠. 우리 밴드는 최고의 세션이에요. 최고의 가수들과 해외 공연을 다 해본 사람들이라서 무대에서 설렐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나처럼 잠이 안 온다면서 전화를 했어요. ‘누나, 이상해. 아직도 안 가셔. 모르겠어. 어떤 힘인지 모르겠는데 아직은 설레’라고.”
세상의 무수한 따스함과 마주하다
양수경은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을 무수히 만났다. 그 만남들은 그녀로 하여금 지난 시간을 후회하게 만드는 계기도 됐다.
“옛날에는 제가 말을 잘 안 했어요. 그게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좀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말하고 사귀면 그게 추억으로 남는 건데 그걸 못한 거죠. 어렸을 때는 너무 가난해서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을 너무 포장했어요. 지금은 내가 풀어놓으니까, 많은 걸 내려놓고 나니까 세상이 따뜻해요. 전보다 가진 것도 없고, 모든 걸 다 잃은 줄 알았는데 여기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 계셨어요.”
그녀가 세상의 따뜻함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슬픔과 인고의 세월이기도 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 인간 양수경은 내비게이션 아니면 어디에도 갈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자꾸 ‘수호천사’들이 나타나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뜻밖에 누군가가 나타나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거라곤 생각 못해봤어요. 단절된 삶, 이슬에 젖어 산 세월이 참 길었지. 해 뜨는 것도 싫고 해 지는 것도 싫었던 때가. 너무나 많은 배신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사람을 볼 때 눈을 본다고 말했다. 눈은 숨길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신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녀는 힘든 시간에 ‘제 마음에 분한 게 없게 해주세요, 내 눈에 사악한 게 없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그 소원 덕분일까, 그녀의 눈은 30여 년 전처럼 여전히 해맑았다.
“아직도 아픈데, 그 아픔이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날 보고 울고 웃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어요.”
내년 데뷔 30주년 공연도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서 고통을 보지 않고 힘을 얻으면 좋겠다는 말은 철저한 대중가수로서의 양수경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제2의 인생 또한 첫 번째 인생처럼 가수로서 다시 문을 연 셈이다. 컴백 공연 전에는 조관우의 ‘늪’, 김범수의 ‘약속’을 만든 베테랑 작곡가 하광훈과 손잡고 신곡 ‘애련’을 발표했다. 그것은 과거에만 함몰되지 않는 ‘현역’ 가수로서의 양수경을 증명해주는 의지처럼 보였다.
“지금 리메이크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참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웃음). 과거에는 음반을 내면 많은 수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음반이 안 나가요. 그래도 우리 또래 사람들은 CD를 가끔씩 사는데 젊은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죠. 우리의 낭만은 산업에 묻혔어요. 음반이나 예술 하시는 분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시대를 따라가다 보니까 앨범 한 장을 만들면서 생기는 추억이나 낭만이란 게 묻혀서 없어졌어요. 그래도 난 앨범을 만들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양수경이 소화한 장르는 굉장히 넓다. 트로트, 발라드, 댄스, 탱고 등등. 자연스럽게 그녀가 어떤 가수가 되길 원하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대중가수예요. 그럼 대중이 좋아할 쉽고 편한 노래를 부르면 되죠. 노래는 안 되면 언제든지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내가 노력이라는 걸 잊지 않는 가수면 좋겠고 확실한 내 색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 분명 이선희, 현미 언니와도 다르니까요.”
비굴하게 살지 말자는 다짐
인터뷰를 하면서 양수경은 그 소녀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직업적으로 완고하고 고집이 센, 흡사 장인에 가까운 의식이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타고난 성정일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굴곡진 삶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들었던 힘일지도 모른다.
“가수를 딴따라라고 부르는 게 싫었어요. 그런 시선들이 좋지 않았고, 나라도 똑바로 살아야겠다 싶었죠. 연예인은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는 직업이에요. 그럼 많은 걸 포기해야 해요. 외로운 것도 받아들여야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연예계에 몸을 담아야 했기에 체득해야 했던 그 완고함을 도와줬던 것은 책이었다.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었죠. 맨 연애소설만 읽었지(웃음). 특히 시드니 셀던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사람들은 그 소설에서 연애를 읽지만 잘 읽어보면 가난한 여자가 상류사회로 진출하면서 변화되는 모습이 나와요. 전 그 여자의 성공 과정에 대한 내용을 계속 읽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인문학 서적만 찾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드니 셀던 소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발견했고, 과학, 경제,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도 읽었어요.”
소설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신선한 관점. 그렇다면 그녀가 삶을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굴하게는 살지 말자. 누군가 내 눈동자를 봤을 때 무엇을 감추려 하거나 비굴하게 보이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나이 아름다움은 눈빛에서 나오는 것
양수경은 화가 날 때면 하늘을 보며 웃는다고 말했다. ‘예쁘게 살기도 힘든데’라는 말이 그녀의 반문이었다. 예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은 그녀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그녀는 여자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예쁘게 사는 것 또한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삶의 일부였다.
“우리 나이의 아름다움은 눈빛에서 나와요. 그러니 잘 때도 웃으면서 자야 해요. 그건 돈으로도 할 수 없고 시술로도 안 되는 부분이죠.”
그녀는 여성의 삶에서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딱 잘라 대답했다.
“아, 그건 없어. 내가 신데렐라가 돼야 해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만큼 되어야 하는 거예요. 연애? 예전에는 연예인이라서 다 막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지금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내 스스로 일어나고 싶은 거죠.”
그녀가 여유가 없다고 말한 이유, 바로 내년이 데뷔 3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생각들보다 다음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더 급해 보였다.
“이번 콘서트가 끝나고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본 뒤에 ‘난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다. 다음 공연을 어떻게 할지 그걸 짜야 한다’ 했어요. 3년 전에 생각한 걸 이제야 한 거잖아요. 그래서 공연 다음 날 바로 다음 공연 기획을 짰어요. 물론 아무리 계획을 세워봤자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없죠. 꿈과 희망을 가질 수는 있는데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진 않아요. 그래서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세상이 예뻤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양수경은 예능 프로그램인 에 출연했다. 방송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답은 지극히 ‘가수 양수경’다웠다.
“방송? 불러줘야 나가죠. 그런데 방송 욕심보다는 공연 욕심이 더 커요. 그렇다고 방송국에서 절 안 부르는 건 아니에요(웃음). 부르긴 불러요. 하지만 난 대중가수예요. 대중들을 위해 쇼를 하는 가수이고 싶어요.”
가수로서의 삶 외에도 양수경에게는 또 다른 삶에 대한 꿈이 있다.
“혼자 사는 여자들, 싱글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여유가 생긴다면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거죠.”
양수경 본인은 몰랐을지라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항상 있었다. 그들에게는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이 고마운 선물 같았을 것이다. 힘겹게 먼 길을 돌아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도착한 그녀는 그 시절 그때처럼 여전히 꿈꾸는 소녀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꾸면서 살고 싶었어요. 지금도 꿈을 꿔요. 밝고 맑은 세상에서 그렇게 예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