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즐길 취미, 더 잘해야 할 것 같아 지레 포기하게 되는가?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생산적인 취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면? 색다른 취미가 호기심에 은근히 불을 댕겨도 ‘저건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지’ 하며 멀찍이 내려두게 되는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주저하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사진 각 사 제공
STEP 1 워밍업
심호흡 크게 하고,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편한 자세로 누워보자. 손에 책을 들지, 리모컨을 쥘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소중한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받을지도 모른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에, 도전할 용기가 저절로 솟구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풀어줄 수만 있다면.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Sink or Swim, 2019)
2년 차 백수인 중년 남성 베르트랑이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 남성들과 수중발레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베르트랑은 수중발레단 모집 광고를 보고 수영장을 방문했다가 연습에 열중하는 이들을 발견한다. 베르트랑과 예민 까칠한 로랑, 파산 직전의 사장 마퀴스, 히트곡이 전무한 로커 시몽이 한 팀을 결성해 남자 수중발레 세계선수권 대회에 도전장을 내민다.
스웨덴 싱크로나이즈드 남자팀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중년 남성들이 물속에서 첨벙대고, 엄한 코치를 만나 두 시간 동안 사우나에 갇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이 무모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보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한 해 앞서 동일한 소재로 ‘스위밍 위드 맨’(Swimming With Men, 2018)이라는 영화가 제작됐다.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겠다.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시청 가능.
KBS1 다큐ON ‘래퍼와 시인’(2023)
70대 노인 두 명이 래퍼와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1945년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이른바 해방둥이 세대인 77세 임원철 씨, 일흔이 가까워 한글 공부를 시작한 74세 조남예 씨의 도전기.
임원철 씨는 자식에 손주까지 키워낸 일흔의 나이가 되어서야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대학 입학으로 인생 처음으로 공부의 꿈을 펼치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는 한 번 더 용기를 내 ‘실력 있는 래퍼’가 되어보고자 도전한다.
조남예 씨 역시 평생의 소원이던 글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를 쓰기로 결심했다. 이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래퍼 마이노스, 시인 김승일이 멘토로 나섰다. 라임을 배운 뒤 그의 인생을 가사에 담은 곡 ‘해방둥이’를 비트에 맞춰 녹음하고, 20여 편의 시를 엮어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옛말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유튜브,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넷플릭스 ‘파티셰를 잡아라!’(Nailed it!, 2018~)
흉측한 케이크를 탄생시키는 미국의 베이킹 경연 프로그램이다. 엉망진창 능력의 아마추어 제빵사들은 도전 과제로 프로 제빵사의 케이크를 따라 만들어야 한다. ‘걸작’을 구워내면 상금 1만 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펼쳐지는 난장판. 망친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제목처럼 실력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해냈다’(Nailed it)는 점이 중요하니까.
2년 연속 에미상 최우수 경쟁 프로그램 후보에 올랐고, 니콜 바이어는 최우수 진행자 부문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큰 인기를 얻으며 프랑스, 독일, 멕시코 등 각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영화 ‘치어리딩 클럽’(Poms, 2019)
웰다잉을 위해 실버타운 ‘선 스프링스’로 입주한 마사.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친화력 좋은 이웃 셰릴의 등장으로 실버타운 역사상 처음으로 치어리딩 클럽을 결성하게 된다. 나이는 많아도 열정만은 청춘인 8명의 예비 치어리더들은 전국 치어리딩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하지만, 방해물이 만만치 않다.
영국 BBC ‘100인의 여성’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Poms)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출연하는 중년 배우들 역시 실제로 치어리딩을 해본 적 없음에도, 훈련을 통해 모든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죽음을 앞둔 상황일지라도 도전에 한계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시청 가능.
STEP 2 자신감 만땅, 이제 뭘 도전해볼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가득한데, 무슨 취미가 있는지 몰라 브레이크가 걸렸다면? 흔한 취미는 싫거나, 남들은 취미를 어떻게 즐기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책을 참고해보기를 권한다.
책 ‘사계절 취미 잡화점, 호비클럽으로 오세요’
황지혜 작가는 ‘취미 수집가’다.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취미로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모은다. 혼자 도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비클럽’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한다. 화분에 씨앗을 심고, 막걸리를 만들어 나눠 마시거나, 필름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는 등 계절별로 멤버들을 모아 취미를 함께 즐기고 서로의 취향을 나눈다. 황 작가가 말하는 취미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잘하는지와 상관없이,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모든 것’이다. 도전해보고 싶은데 망설여질 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을 때, 잡화점처럼 온갖 취미를 모아둔 이 책을 펼쳐보자.
책 ‘오늘부터 그림’
‘대충 그럴싸하게 그린다’가 콘셉트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지 않고, 쉽고 즐겁게 그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획·제작된 책이다.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느끼거나, 그리기가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 취미는 취미일 뿐, 전문가와 경쟁하거나, 생계 수단으로 삼거나, 세상을 놀라게 할 대작을 만들 것도 아니니까. 못생겨도 매력 있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 이 책과 함께 도전해보자.
[TIP] 마음먹은 취미, 여기서 시작하세요
1 오뉴 새로운 여가 활동을 찾고 삶을 새롭고 액티브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여가 플랫폼. 스마트폰에서 오뉴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 중이다. 1층은 카페, 2층에선 여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별도의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으니 한 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2 위드플 5670세대 시니어 전용 여행 플랫폼. 당일, 반나절, 숙박으로 이뤄진 여행 상품 ‘새로울지도’와 2~3시간 관심사를 향유할 수 있는 소그룹 커뮤니티 프로그램 ‘원데이클래스’가 있다. 위드플의 프로그램에는 테마가 있고, 여행의 경우 가이드가 아니라 실제 전문가가 함께한다. 숲해설 클래스의 경우 숲해설가가 남산 트레킹 코스를 함께 걸으며 숲 냄새를 맡아보고, 솔방울을 만져보게 하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숲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3 서울시50플러스재단 캠퍼스 및 센터 서울시에 거주하는 중장년을 위해 통합지원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이다. 캠퍼스는 서부·중부·남부·북부 4곳, 센터는 도심권·동작·영등포·노원·서대문·성북·금천·강서·서초·강동·양천·성동·강북 등 13곳이다. 캠퍼스와 센터마다 여가·취미·일·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서울시50플러스포털 홈페이지의 ‘직업교육+’ 메뉴 중 ‘교육신청’을 선택하면 각 캠퍼스 및 센터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취미나 여가 관련 강좌와 신청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4 클래스101 온라인 강의 플랫폼으로, 개인의 능력을 거래하는 ‘거래마켓’의 대표주자. 다양한 취미 활동을 배우기에는 제격이다. 공예, 부업, 주식, 일러스트, 코딩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강의가 마련돼 있다. 또한 강의 프로그램별 맞춤 준비물이 모두 포함돼 있어, 뜨개질 강의를 신청하면 코바늘과 실을 받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상품에 가입해 4000개 이상의 온라인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는 1년 구독 서비스가 출시됐다.
전국 각지에서 2022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참여자 모집이 한창이다. 특히 올해 82만 개에서 내년에는 84만5000개로 일자리가 확대 추진되면서, 다양한 일자리 사업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이색적인 일자리도 많아 이목을 사로잡는다.
이제는 노인 일자리를 통해 피자 가게에서도 일할 수 있다. 서울 구로시니어클럽에서는 지난 7월 구로 항동에 '피자스쿨'을 오픈했다. 그동안 시니어 전문 카페, 반찬 가게는 꽤 있었지만, 피자집은 최초다.
이 매장의 근무자는 모두 60살 이상의 고령이다. 주민 18명이 교대 근무를 한다. 주 2~3회 하루 4시간씩 일하고 월 32만 원 정도를 벌어간다. 매장 내 식사와 배달 서비스는 불가능하다.
대면 업무나 활동성이 많은 일을 꺼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도 있다. 가리봉동 '윙윙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작업장 '드림나눔 사업단'을 운영한다. 60세 이상 어르신 20여 명이 주 2회 4~5시간씩 종이가방을 만든다. 구로시니어클럽에서는 서울 시내 2곳에 편의점도 운영 중이다.
구로시니어클럽 관계자는 "2022년 노인일자리 모집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다. 기존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집이 가까우신 분들도 많이 신청해주시고 계신다"고 말했다.
또한 노인일자리의 장점에 대해 그는 "소득 보존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고, 일이나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짚었다.
이어 "노인일자리에 생계를 의지하기 보다는 용돈 정도를 원하시는 참여자가 대부분이고, 활동 과정에서 인간관계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이 과정에서 열정적, 긍정적으로 변해, 삶의 에너지를 얻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관악구에는 '길고양이 급식소 및 화장실 관리도우미 사업' 일자리가 있어 눈길을 끈다. 관악구는 관내 길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고양이급식소와 전용화장실 설치를 지난 2017년 시작했다. 그러나 관리가 소홀해 주민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이에 관악구청은 노인일자리로 문제를 해결했다. 일자리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관내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및 화장실 주변 정리 일을 맡는다. 하루 3시간 씩 주 2~3회, 월 30시간 이상 일한다. 월 27만원을 벌 수 있다. 그 결과 어르신들의 꼼꼼한 관리로 인해 길고양이들도 보다 건강해졌고,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 됐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서대문 시니어클럽에서는 이동식 스팀세차 '취익취익' 사업을 진행하며, 구직자를 모집하고 있다. '취익취익'은 전문교육을 이수한 어르신들이 스팀기, 연막 소독기, 청소기 등이 장착된 차량을 이용해 출장 스팀세차를 실시한다.
찾아가는 서비스로 살균세척도 가능하고, 본인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세차를 받을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입소문을 타고 이용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정기세차를 이용하는 손님도 많다는 후문이다.
인천시 부평구에는 이색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불법촬영 실버지킴이단'이 있다. 50명의 어르신들은 지하철 역사나 공공기관, 공공 화장실 등을 돌며, 전파탐지형·램프탐지형 첨단장비를 활용해 몰래카메라가 있는지를 점검한다.
몰래카메라 범죄가 잇따르며 마련된 노인일자리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부평구 측은 범죄 예방과 노인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반응이다.
“언니, 거기에 간장 좀 더 넣어야겠다.” “언니, 일단 양파 먼저 넣고 볶아.” ‘동생’의 지시에 ‘언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다른 주방의 모습과는 뭔가 달라 보인다. 주방 경력이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지만 중심에 선 조리장의 한마디 지시에 모두 집중한다. 만들어내는 것은 간단한 반찬이지만, 이들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 주방에 서 있다. 서대문시니어클럽 반찬배달 서비스 ‘야미야미’의 조리장 이재경(李載敬·63) 씨는 “만들수록 신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야미야미’는 서대문구 노인일자리 지원기관인 서대문시니어클럽이 지난해 10월 서울시의 ‘어르신 일자리 시범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신규 시장형 일자리 사업’이다. 쉽게 설명하면 중장년이 중심이 되어 반찬을 만들고 배달하는 서비스다. 서울시의 예산이 사업 시작을 위한 마중물이 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은 중장년을 위한 일자리를 유지, 확대하는 데 사용된다.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은 ‘야미야미’ 외에도 또 있다. 이동식스팀세차 서비스인 ‘취익취익’과 시니어빨래방 ‘뽀송뽀송’이다. 모두 집 앞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야미야미’의 반찬 판매는 올해 1월부터 시작됐는데 반응이 좋다. ‘서대문시니어클럽’의 카카오플러스친구를 통해 한 달 단위로 주문을 받고 있으며, 주문하는 가정이 200곳 가까이 돼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정도. 판매 가격은 반찬 두 가지가 들어간 한 세트가 5000원이다. 일반인 대상 판매뿐만 아니라 지역 민관 복지협력 조직 등의 기금을 받아 저소득 어르신이나 장애인 가정에도 반찬을 전달하고 있다.
이 반찬들은 서대문종합사회복지관 내에 꾸며진 조리실에서 만드는데, 조리장 이재경 씨와 5명씩 교대로 출근하는 조리원 11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몰래 양념 넣는 언니들 고집에 당황
좋은 뜻으로 신나게 시작한 일. 출발도 기분 좋았을 것 같은데, 이 조리장은 의외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한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그냥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어요. 모두 주부라서 주방 경력은 많지만 식당 경험은 없다 보니 서툰 부분이 많았어요. 맛만큼이나 눈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한데 재료를 다듬는 방식이나 크기가 다들 제각각이어서 힘들었죠. 다들 본인 방식대로 조리를 하려는 고집도 강했고요. 심지어는 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몰래 양념을 넣는 일도 있었어요.(웃음) 처음 6개월 정도는 소리를 하도 질러서 목이 늘 쉬어 있었죠.”
게다가 현재 근무자 중 이 씨의 나이가 가장 어리다. 초창기에 겪었을 어려움이 짐작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절 인정해주고 믿어줘서 업무의 틀이 잡혀나가고 있어요. 서로 많이 친해졌고 제 요청대로 잘 따라줘요. 언니들도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며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이 씨가 조리장으로 선발된 것은 요리 경력 때문. 백화점 일식당에서 상자형 일식 도시락에 들어가는 한식 반찬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한 것이 참작되었다.
“원래 요리를 좋아했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안 했죠. 어릴 때부터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집안 대소사에 필요한 음식을 도맡아 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집들이 때 남편 직장 동료를 대접하거나 지인들을 초대하는 정도였죠. 음식 장사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젊을 때는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2000년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심심풀이 삼아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는데, 한 번에 덜컥 합격하면서 제대로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후 입사한 식당에서 강산이 한 번 바뀔 세월만큼 일했다. 요리를 즐기는 성격이 빛을 발한 셈이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일을 그만두었을 때 이제 다시는 식당하고의 인연은 없을 줄 알았어요. 60세까지만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다 보니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여행도 다니고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즐겁지 않았어요. 결국 누워서 TV만 보게 되고, 점점 무기력해지더군요. 어느 날 박차고 일어나 집을 나섰는데 그때 알게 된 곳이 서대문시니어클럽이었어요. 말 그대로 죽지 않으려고 나왔죠.(웃음) 지금은 ‘야미야미’에서의 생활이 삶의 윤활유가 됐어요. 업무도 자리 잡히고 주변 평도 좋으니 즐거울 수밖에 없죠.”
이 씨를 포함한 이들이 받는 시급은 서울시 생활 임금을 기준으로 한 1만148원이다. 예전 식당에서 일할 때 임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 씨는 설명한다.
‘노후의 일’ 나를 위해서 필요해
“매일 반찬 두 가지가 들어가는 작은 상자를 300개씩 만들어요. 조리하는 반찬은 모두 6가지이고요. 12시에 출근해서 배송 나가시는 분들이 오는 4시까지 다 만들어내려면 쉴 틈이 없어요. 월요일에 해야 할 일 생각에 일요일 밤에는 잠을 설치곤 했죠. 재료는 빠짐없이 준비했는지, 조리 순서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구상이 끝나야 안심이 되니까요.”
메뉴는 서대문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가 정하면 이 씨의 의견을 더해 조정하는 방식이다. 고객 중 상당수가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이 인기가 높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찬은 배송원들이 차량이나 오토바이, 도보 등의 방식으로 가정에 배달한다.
“가끔 함께 일하시는 분들을 통해 맛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거나 레시피를 알고 싶어 할 때 가장 즐거워요. 집에서 혼자 음식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잖아요. 특히 일하는 여성들은 더욱 그렇고. 야미야미가 그런 분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씨는 나이가 들었다고 집에서만 있겠다는 중장년의 생각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움직여야 살아요. 활동량이 있어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야미야미’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일석이조예요. 많은 돈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도움도 되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야미야미 사업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밝혔다. 사업이 커지면 중장년이 일할 기회도 그만큼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신명이 나네요. 제가 만든 반찬에 흡족해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도 도울 수 있으니까요. 야미야미는 이제 막 시작한 사업이지만 열심히 하면 2호점, 3호점도 탄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미야미가 늘어난다면 중장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자리도 더 생겨날 테고요.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쓰는 말로 표현하면 ‘성공한 덕후(마니아)’ 같다고. 다른 분야가 아닌 ‘불교 덕후’. 그러자 웃으며 그가 화답했다. “맞아요. 덕후는 나쁜 표현이 아니에요. 결국 한 분야에 능통하고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미래를 주도하며 세상을 바꿀 거예요.” 이렇게 스스로를 덕후라 말하고 있는 그는 바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이자 치과의사이기도 한 김성철(金星喆·58) 교수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들었어? 남일이가 죽었대. 숙명여고 애들이랑 대성리에 갔잖아. 물에서 못 나왔대.”
서울고등학교 1학년 학생 김성철은 친구의 죽음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남일이와 같은 미술반이었던 그 역시 그곳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학교 클럽과의 비공식적인 교류는 학교에서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저 혼나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에. 처음엔 무덤덤했다. 그저 교실에 빈자리 하나만 눈에 띌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 사고로 인해 그해 여름방학에 떠난 학교 해양훈련은 엄격해졌다. 선생님들은 안전사고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엄하게 감시를 했다. 아이들은 수군거렸다. 모처럼 신나고 재미있어야 할 행사가 힘들기만 한 것이 죽은 남일이 때문은 아니냐고. 그런 일들을 겪으며 어린 김성철은 조금씩 죽음이라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고.
김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의 병’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그렇게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무작정 책을 보기 시작했어요. 사춘기 소년이었으니까. 알베르 카뮈의 이나 장 폴 사르트르의 와 같은 실존주의 문학 작품들이었죠. 또 엠마누엘 칸트의 같은 철학책들도 있었어요. 뜻도 잘 모르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
사실 미술반에 들어갔던 것은 화가가 되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화가를 꿈꾸는 모든 소년,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가족에게 그 꿈을 털어 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치열한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놀고먹는’ 예술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좋은 학교에 어려운 시험을 거쳐 들어간 우등생이었기에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고3이 된 김성철 학생은 이과인 전공에 미술이라는 취미를 덧대려면 건축학과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건축이라면 그림에 소질 있는 손재주도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손재주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생각은 좀 달랐다. 선생님이 추천한 것은 ‘치과대학’이었다.
그 추천에 반감이나 저항은 없었다. 무엇보다 치과의사가 되면 근무시간이 짧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치과를 하는 친구는 늦게 출근해서 오후 일찍 퇴근한데, 그리고 골프 치러 간다더라”라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실컷 그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큰 고민 없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치과대에 입학해서도 그림 그리기는 멈추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그림에 관심 있었던 친구들과 함께 아틀리에를 차렸어요. 대학 입학 후 우리가 다니던 화실에 매달 내는 돈만 모아도 월세 정도는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2년을 열심히 그렸어요. 학교가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해서, 전공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서대문구 북아현동까지 4번을 옮겨 다녔어요.”
마음의 병에 해답을 얻다
김 교수는 그 와중에서 가슴 한편에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바로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이다. 밀교사상과 선종 사상을 설한 대승경전으로, 그는 이 경전을 읽다 죽음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고.
“책에서 변치 않고 죽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는 파사익(波斯匿)왕의질문에 부처는 이렇게 대답해요. 저 흐르는 강의 모습이 어릴 때와 지금이나 차이가 없듯, 그대 역시 외모는 바뀌었지만 보는 성품은 그대로라고. 원래의 나는 멸(滅)함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 하나의 깨달음과 함께 불교 교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허겁지겁 불교에 관한 책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그의 ‘덕후’적인 기질이 발휘된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 출판된 불교 관련 책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다 읽고 나니 불교에 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 단 한 곳뿐이었다. 불교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동국대학교 도서관. 그 도서관을 편하게 들락날락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은 동국대학교 학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불교연구원을 설립한 이기영(李箕永) 교수의 강의를 청강까지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교수가 있었던 인도철학과였다.
“치대에서 만난 아내는 처음에 이해를 못했어요. 책 때문에 대학원에 가다니. 그것도 치과의사가 인도철학과에 말이죠. 그래도 2년만 기다리면, 그 이후에는 마음껏 도서관을 다닐 수 있으니 참아 달라고 부탁했죠. 처음엔 학부 출신 학생들에 비해 많이 모자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별 차이가 나진 않았어요. 알고 보니 제가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 불교학과 학부생들의 교과서였어요.”
그렇게 대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불교라는 학문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내는 이번에는 선선히 응해줬다.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당시엔 이미 치과를 차려 개원한 상태였기 때문에, 치과의사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유지하게 됐다.
번역서 통해 불교학계에서 ‘주목’받다
그가 불교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번역해 1993년에 발표한 이라는 책 덕분이었다. 은 나가르주나(중국에서는 용수(龍樹)라 불림)라는 1800년 전에 활동한 인도의 고승이 쓴 책으로, 나가르주나가 쓴 책들은 대승불교의 뿌리가 된다. 은 인도철학, 불교철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그동안 이 책은 제대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었다. 그가 번역하기 전까지.
“일반 불교학과는 일본어 정도만 할 줄 알면 됐지만, 인도철학과는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까지 할 줄 알아야 했어요. 영어는 기본이고.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언어를 익히는 것을 잘해서, 그간 번역이 안 된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불교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진 원전을 직접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다른 학자들이 원전과 비교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해놓았죠.”
어쩌면 이 선택도 가장 ‘덕후’다운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동안 국내의 많은 불교학자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을 현직 치과의사가 이뤘다는 점에서 불교계는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5년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을 체계화한 개론서인 을 번역해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인도의 불교학자 무르띠(Murti)가 영어로 저술한 책이다.
그리고 내놓은 세 번째 책 으로 학계의 찬사를 받게 된다. 은 중론을 쓴 나가르주나가 에 대한 비판을 반박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티베트역본, 한역본이 남아 있는데, 김 교수는 이 3가지 언어를 각각 우리말로 번역해 정확한 뜻과 번역의 배경을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후학을 위한 문법적 해설도 잊지 않았다.
3가지 책에 대한 번역이 끝나 있을 때, 그는 이미 불교학계에서 ‘불교에 관심 있는 치과의사’가 아닌 ‘불교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치과 폐업하고 대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그가 준비한 것은, 치과를 쉬고 인도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불교 발상지에 가서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은 학문적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불교학에 대한 욕심’을 멈추게 만든 것은 가족도 치과도 아니었다. 바로 동국대학교였다.
“제가 전공한 공(空)사상 분야의 전공교수님이 건강이 나빠져 퇴직하셨다면서, 그 강의를 맡아 달라고 제안이 왔어요. 사실 그 분야는 논리학과 수학이 바탕이 되어야 해서, 일반 불교학자들 중에도 능통한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인연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물론 치과는 그만뒀고. 단지 강의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치과의사로, 그리고 서울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주저함은 없었어요.”
공사상은 의 ‘색즉시공’을 떠올리면 쉽다.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이나 의식이 이와 같다는 뜻이다. 흔히 공(空)을 무(無)와 혼동하기 쉬운데, 공(空)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흔히 우리가 살면서 큰방, 작은방 이런 표현을 하죠. 하지만 어떤 방을 보고 큰방이라고 부를 땐 이미 우리 기준엔 비교할 수 있는 방이 들어서 있는 거예요. 그런 이분법적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죠. 게다가 요즘의 승자가 독식하는 신자유주의는 이것을 더욱 부추겨 우리 삶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늘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삶 말이에요. 이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경제 원리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행정과 교육, 문화에까지 도입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나 같은 프로그램을 보세요. 예술을 도구로 경쟁하고 있잖아요. 그 프로그램을 통한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죠. 결국 크게 소리 지르며, 성량이 큰 사람이 이기는 구도로 변질되잖아요. 노래라는 예술이 큰소리를 내는 시합이 아닌데, 경쟁을 통하다 보니 결국 획일화되는 것이죠.”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가장 외면 받고 있는 세대 중 하나가 바로 시니어들이다. 육체적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성과주의로 인해 설 곳을 잃고 사회적 수명은 짧아졌다. 그들에게 김 교수는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까?
죽음에 대한 공포도 나름의 노력과 수행이 더해진다면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타적인 삶을 사세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종족을 보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데,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일종의 종족 보전 본능이에요. 나라는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동족을 보존하면서 그 욕구가 충족되는 셈이죠. 거기에 수행을 통해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제2의 삶을 살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을 머리로 깨닫고, 수행을 통해 마음에서 욕심, 분노, 교만과 같은 번뇌를 지울 수 있다면 가벼워진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빈자리 채워가며 기여하고파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국 불교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번역서들을 내놓으면서 기여했던 것처럼.
그가 2014년에 내놓은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진화생물학, 일반적으로 종교와 대립각을 세운다고 여겨지는 ‘진화론’을 불교적 관점에서 해석했다. 최근 각광받는 뇌과학도 불교적 관점에 분석해냈다.
“뇌과학에서 밝혀내지 못한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마음’이에요. 뇌파나 뇌의 기능에 대해서 뇌과학자들은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과학적 연구 결과를 모두 포용하면서 마음이나 윤회(輪廻)까지 설명할 수 있어요. 그게 불교학의 힘이죠.”
한여름 피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물이다. 물속에 온몸을 담그면 더위 따위는 쉽게 잊을 수 있다. 여기에 더위를 피하며 건강까지 되찾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는 방법이 바로 수중 운동이다. 수중 운동이라고 해서 수영만 떠올린다면 곤란하다. 태생이 맥주병 체질이라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양한 운동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의사들이 꼽는 시니어들에 가장 좋은 음식은 없다. 늘 한결같이, 재미없는 대답만 돌아온다. 바로 균형있는 식사와 적절한 운동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어떨까? 음식과 달리 정답이 있다. 많은 의사가 시니어에게 좋은 운동으로 수영을 권한다. 특히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수영을 가장 이상적인 운동이라고 추천한다.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정형외과의 신성일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체중은 특히 무릎과 같은 관절에 악영향을 주고, 그 관절의 이상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지면 체중은 더욱 불어나고, 그 불어난 체중은 관절에 다시 더 나쁜 영향을 줍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니어들은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를 ‘비체중부하운동’이라고 불러요. 즉 체중에 부담을 주지 않는 운동, 전신운동이 되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영이 제일 좋습니다.”
실제로 각 수영 교실에선 네 가지 영법, 즉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을 가르치는 과정 이외에도 시니어들 대상의 재활운동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서 수영을 교육하고 있는 문여송 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장에 있으면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적잖이 오시는데, 그중에는 어깨나 허리, 무릎에 이상이 있거나,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하시는 분도 꽤 있습니다. 이렇게 오는 분들은 상담을 통해 수준에 맞는 수영 교실에 배치하기도 하고, 아쿠아로빅과 같은 재활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권하기도 합니다.”
현장에 있다 보니, 수영의 효험을 본 극적인 사례들도 적지 않다. 체중 감량을 통해 예전의 몸매를 되찾거나, 아픈 관절이 낫는 것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분은 허리 수술을 하고 온 분이었어요. 처음에는 발차기하는 것도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의사들이 주의시키는 접영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됐죠. 물론 무턱대고 하는 건 아니고 부상 부위에 맞게 맞춤 지도가 따라야 합니다. 체중 감량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식사 조절이 동반되어야 하고요.”
아쿠아로빅은 전통적인 수영 이외에 시니어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수중 운동이다. 물속에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에어로빅으로 보면 되는데, 특성상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영을 못 해도 할 수 있는 수중운동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예 재활전문의 프로그램을 도입한 수영장들도 있다. KBS 스포츠월드가 대표적인 곳 중 하나. 이곳은 수중 전용 운동기구를 도입해서,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있는 ‘아쿠아테크’ 교실을 운영 중이다.
부력 장비를 이용해 깊은 수심을 활용한 운동을 하거나, 덤벨이나 밸런스 링을 활용해 무리를 주지 않는 근력운동을 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최근 프랑스 등 유럽이나 일본,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에서는 ‘아쿠아바이크’도 인기를 끌고 있다. 말 그대로 물속에 운동용 자전거를 가져다 놓고 페달을 밟으면서 상체를 움직이는 운동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선 일부 클럽을 통해 소개가 시작된 상태다.
아무래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교육받는 공립 수영장이 부담스럽다면 사설 수영장을 선택하면 된다. 현재 강남 스포월드에서 회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심민 전 아테네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수석코치는 “사설 수영장이 아무래도 편의시설이나 수질관리 같은 면에서 공립 수영장보다 유리한 게 사실이죠. 시에서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수질검사 결과를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운동 후 몸을 풀어줄 수 있는 스파시설도 시니어들이 선호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는 몸 상태에 따라서는 개별 교육이 중요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영법이라도 근육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담을 줄 수도, 질환이 개선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자유형이라고 해도 어깨 회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절에 주는 부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속도를 내기 위한 수영과 재활을 위한 수영은 달라야 해요. 그래서 본인의 몸 상태에 맞는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현장의 관계자들은 수영은 절대 어려운 운동이 아니며, 상담을 통해 불필요한 공포나 불안요소를 날려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올여름 몇 시간의 투자를 통해, 건강 회복과 함께 새로운 취미 하나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