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매장에 시계가 없다. 모순 같은 이 말은 롤렉스 매장의 현재 상황이다. 롤렉스는 극심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만성적으로 지속된 현상이나, 롤렉스가 2018년에 ‘웨이팅 제도’를 폐지하면서 더 심해졌다. 대기는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만 구매가 가능해졌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재고를 확인하거나, 직접 갔을 때 물건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이에 따라 오픈 시간 무렵 롤렉스 매장 앞에는 수십 명이 줄을 선다. 진열대는 시계 하나 없이 텅 비어 있기 일쑤. 인기 모델은 진열과 동시에 팔려 구경조차 어렵다. 시계를 시착해 보며 구입한다는 것은 롤렉스 매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몇 년 새 수요 폭증, 롤렉스 매출액 급등
품귀 현상의 원인은 분명하다. 사고자 하는 이들은 많은데 공급량이 이를 못 따라간다.
롤렉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 년 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롤렉스의 국내 매출액 추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롤렉스는 본사가 한국 시장에 직접 판매한다. 2002년 설립된 롤렉스의 한국 법인 ‘한국로렉스’는 롤렉스만을 취급하는 유통 업체로, 스위스의 ‘로렉스홀딩스’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로렉스의 2019년 매출액은 2,904억 원이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58억 원, 437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19.2%였다. 2014년까지만 해도 롤렉스의 매출액은 1천억 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매출액이 폭증하여 매년 3천억 원 전후의 연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단기간에 롤렉스 수요가 크게 늘었음을 의미한다.
타 명품 시계 유통 업체 매출액과 비교하면 롤렉스의 매출액이 더욱 두드러진다. 오메가, 브레게, 블랑팡 등 12개 브랜드 시계를 판매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의 2019년 매출액은 4,373억 원이었다. 파텍필립, 브라이틀링, 태그호이어, 위블로 등 9개 브랜드 시계를 판매하는 명보아이엔씨의 2019년 매출액은 1,667억 원이었다. 이들 기업이 취급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인기 브랜드다. 반면 한국로렉스는 롤렉스 단 하나만을 판매하여 3천억 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회원 수가 약 12만 7천 명인 대형 시계 동호회 ‘와치홀릭’에서는 롤렉스가 그야말로 선망의 시계다. 매일 주요 백화점의 롤렉스 매장을 순회하며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있고, 제품 입고 소식을 듣자마자 반차를 내고 직장을 뛰쳐나와 백화점으로 향한다는 이도 있다. 몇 달, 몇 년을 노력했는데도 구입에 실패했다며, 이제는 롤렉스를 단념하기로 했다는 이도 있다. 이처럼 마음고생한 이들이 롤렉스의 공급, 판매 방식을 성토하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기적적으로 인기 모델을 매장에서 구입한 이에게서는 아파트 청약 당첨에 버금가는 환희가 느껴진다.
높은 프리미엄에 중고 시세 고공행진
중고 시장에서는 롤렉스 시계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고, 시세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 인기 모델인 GMT마스터2 40㎜ 모델은 중고 쇼핑몰 시세가 현재 약 1,900만 원이다. 정가는 1,177만 원으로 6백 만 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
웨이팅 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웨이팅 권리를 2백만 원 이상 주고 판매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롤렉스의 투자 가치를 높여 수요가 더 늘어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매장에는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되팔이를 목적으로 하는 업자들도 장사진을 치고 있다. 조직적으로, 전업으로 롤렉스 시계 구입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다 보니, 일반 소비자가 그들의 구매력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베일에 싸인 롤렉스의 공급 정책
이런 상황에도 롤렉스의 공급, 판매 정책은 베일에 싸여 있다. 매장에 입고 시기를 문의해도 알 수 없다고만 하고, 재고를 물으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기 일쑤다.
품귀 현상 원인이나 앞으로의 공급 계획 등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복수의 롤렉스 관계자는 “품귀 현상은 이전부터 지속되었고, 최근 들어 심해진 양상이다. 공급량에 큰 변화는 없으나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라고 밝혔다. 또한 “롤렉스의 모든 시계는 내구성, 정확성, 실용성이라는 제품 철학을 추구하며, 최고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수작업으로 조립된다. 이처럼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롤렉스 생산량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인기 모델은 매장 구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롤렉스, 명품 시계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 구축
이러한 현상이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동안 롤렉스는 상품성, 브랜드 가치, 투자 가치, 희소성까지 두루 갖춘, 자타가 공인하는 럭셔리 워치의 대명사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현재의 품귀 현상은 오히려 롤렉스의 가치를 높이고, 롤렉스를 갖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롤렉스를 찾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품귀 현상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롤렉스 시계, 가격은 얼마나 할까?
금시계는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18캐럿 옐로우 골드로 만들어진 '데이데이트' 36㎜모델의 경우 4,416만 원이다. 하지만 의외로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의 시계도 있다. 스틸 소재로 만들어진 시계들이다. 지난해 신제품으로 선보인 '오이스터 퍼페츄얼' 41㎜ 제품은 오이스터스틸 소재로 제작됐으며, 716만 원이다. 럭셔리 워치 중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다. 롤렉스와 더불어 ‘예물 시계 삼대장’으로 불리는 오메가, 까르띠에에는 이보다 비싼 시계가 많다. 롤렉스보다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되는 브라이틀링이나 태그호이어에서도 오이스터 퍼페츄얼보다 비싼 제품이 인기리에 판매된다. 브라이틀링의 '내비타이머', 태그호이어의 '모나코'가 대표적인 예다. 롤렉스의 대표 인기 모델인 '뉴 서브마리너'는 전 제품이 41㎜로, 오이스터스틸 소재 제품이 985만 원, 오이스터스틸과 옐로우 골드를 혼합한 제품이 1,741만 원이다.
시계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시계는 자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생기는 자연의 순행에서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이를 물리적으로 표시하는 시계라는 도구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글 장세훈(張世訓)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학계에서는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해시계를 시계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영국의 전설적인 거석기념물인 스톤헨지 또한 실제 용도는 해시계였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은 날씨가 흐리거나 야간에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클렙시드라라는 물시계를 발명했고, 1434년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완성한 자격루 또한 물시계의 작동 원리를 응용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밖에도 모래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래시계와 기름의 연소량을 시간 계측에 활용한 램프시계도 중세시대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시계의 역사는 이토록 오래되었지만, 근대적인 개념의 기계식 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7세기 중반부터다. 물리학 및 관측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기계식 시계의 이론적 토대인 진자의 등시성 원리를 16세기 말에 발견한 것을 기점으로, 네덜란드 태생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이를 최초로 시계에 적용해 시계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가 1675년 개발한 진자시계는 후대의 과학자들과 시계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 다양한 종류의 시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탁상시계와 휴대가 간편한 회중시계가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시계가 인류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만 하더라도 휴대용 시계는 일반 서민들은 쉽게 볼 수조차 없는 사치품이었다. 유명 시계 제작자들은 주로 왕가나 귀족들을 위해서만 소량씩 주문제작방식으로 시계를 제작했고, 긴 체인을 연결해 양복 포켓 안에서 수시로 꺼내 볼 수 있는 회중시계는 특권층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귀금속 케이스로 제작한 시계들이 각광을 받았다.
한편 회중시계는 기술적으로도 당대 시계제작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크기가 큰 추시계류와 달리 회중시계는 부품들의 사이즈부터 매우 작고 더욱 정밀한 가공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마이크론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 절삭할 수 있는 기계들이 앙트완 르쿨트르 등 몇몇 선구적인 인물들에 의해 19세기 초반에 개발되었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스위스 태생의 시계 제작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8세기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시계 제작자이자 시계 역사상 어쩌면 가장 영향력 있는 발명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초의 셀프와인딩(로터의 회전에 의해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형태의) 시계였던 퍼페추엘(1780년)을 비롯해, 훗날 브레게의 상징이 된 정교한 패턴의 기요셰 다이얼(1786년)과 파랗게 열처리를 한 브레게 핸즈(1783년), 충격 흡수장치인 파라슈트(1790년), 브레게 헤어스프링으로 불리는 탄성과 내부식성이 탁월한 밸런스 스프링(1795년), 그리고 지지대 역할을 하는 케이지 안에 끊임없이 밸런스 휠을 회전시켜 중력을 상쇄하는 혁신적인 설계의 투르비용(1801년)에 이르기까지 현대 기계식 시계 제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중요한 발명들이 브레게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브레게는 회중시계 시대를 앞당긴 인물이면서 훗날 손목시계의 등장까지 예견한 진정한 의미의 천재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시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시화된다. 바로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세대교체가 그것이다. 최초의 손목시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친구인 조종사 산토스 뒤몽을 위해 제작한 까르띠에의 ‘산토스’를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꼽는다. 케이스 모서리를 둥글린 사각에 가까운 케이스, 두툼한 러그, 착용감을 고려한 아담한 사이즈는 산토스를 당시의 어떠한 시계와도 차별화시켰다. 까르띠에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프랑스의 전투 장갑차에서 착안한 아이코닉한 사각시계 ‘탱크’를 1917년 탄생시켜 일찍이 손목시계 제조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IWC, 론진, 호이어(태그호이어의 전신) 등 여러 제조사들이 손목시계 제조에 발 빠르게 합류했다. 특히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방수 케이스인 오이스터(1926년)를 비롯해,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퍼페추얼(1931년), 자정 무렵 날짜창이 자동으로 변경되는 시계 데이트저스트(1945년), 최초의 다이버 시계 서브마리너(1953년) 등 몇몇 선구적인 발명으로 손목시계 시대를 앞당긴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손목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시계로 인기를 모으면서 대중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됐다. 종전 직후인 1950년대에는 이미 스위스 시계업계가 주류로 군림했다. 1960년대 말까지 스위스 시계 산업은 전례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시계는 더 이상 사회 고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도 향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세이코를 필두로 한 쿼츠시계의 광풍에 밀려 스위스 시계 산업은 1990년대 초까지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기계식 시계와 달리 수정자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적은 제조비용으로 훨씬 더 많은 시계를 생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특유의 정확함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쿼츠시계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찾기 시작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계식은 쿼츠와 사이좋게 시장을 양분할 만큼 다시 예전의 선호도를 되찾는다. 각종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의 주축이 된 요즘 수백 년 방식 그대로 제작되는 기계식 시계가 다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어찌 보면 난센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쿼츠시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계식 시계만의 예스러운 감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예술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시계란 무엇인가? 명품 시계에도 트렌드가 존재하는가?
좋은 시계의 기준이란 어찌 보면 상대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이다. 기술적으로나 미적으로 그리 훌륭하지 않은 시계일지라도 한 개인의 관점에선 충분히 최고의 시계로 비칠 수 있다. 또한 소중한 추억이 담긴 시계라면 가격대를 떠나서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갖게 마련이다. 특정 시계에 ‘명품’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 또한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주저 없이 명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계들이 분명 존재한다. 단지 고가라서,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을 해서,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브랜드라서 꼭 명품이 아니라, 정제된 디자인과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한 다이얼, 우수한 설계의 무브먼트와 같은 요소들이 명품 시계를 규정하게 한다.
세상 돌아가는 순리가 그렇듯 명품 시계 시장에도 소위 말하는 트렌드라는 게 있다. 가령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사이즈가 크고 대담한 디자인의 시계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만 해도 신생 브랜드였던 위블로, 벨앤로스 등이 이러한 트렌드에 힘입어 시계 업계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가 하면, 전통적으로 빅사이즈 시계를 브랜드의 개성처럼 강조해온 IWC, 파네라이 같은 제조사들도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명품 시계 업계의 트렌드는 과거로의 회귀로 규정지을 수 있다. 빅사이즈 트렌드에 대한 반발로 시계 사이즈를 다시 줄이기 시작한 제조사들이 늘어났으며, 지나치게 화려하고 스포티한 디자인 대신 단순하면서 고전적인 디자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수십 년 전의 헤리티지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하는 것도 업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블랙, 화이트 다이얼 일색인 고급 시계 업계에 최근 들어서는 블루, 그레이, 브라운, 옐로 등 다양한 컬러가 도입되고 있으며, 단순히 색만 입히는 차원이 아니라 기요셰, 그랑푸 에나멜링, 핸드 페인팅 등 다양한 전통 다이얼 제작 기법까지 적용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예거 르쿨트르, 율리스 나르당, 샤넬 같은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양성한 전문 에나멜러와 인그레이빙 장인, 주얼리 세팅 장인들을 활용해 다이얼에 예술성을 가미하는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시계들로 고급 시계 제조의 또 다른 예술적인 경향을 선도하고 있다.
시계와 사회성
시계를 순수하게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소위 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급 시계 소비자들 중에는 해당 시계에 담긴 진정한 가치나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해당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아우라와 이름값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고급 시계가 사회 통념상 일반 소비재가 아닌 사치재로 통하기 때문에, 종종 신문의 사회면이나 방송에서는 부정부패한 방식으로 돈을 축적한 이들이 가진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혹은 불법 로비를 위해 고급 시계를 구입하고 선물했다는 식의 가십성 기사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시계가 어찌 수천, 수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일 수 있는지에 관해 묻기에 앞서 우리는 해당 시계가 지닌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계 칼럼니스트로서 스위스 주요 시계 브랜드들의 시계가 제작되는 매뉴팩처(공장)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매뉴팩처 투어를 거치는 동안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시계가 비싸지 않을 이유를 발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고급 시계에 지불하는 금액 속에는 해당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전통, 제조 노하우가 담겨 있는 데다, 기계식 시계의 경우 수백 개의 작은 부품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어 조립되고 나아가 각각의 부품들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장식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흔한 대량생산형 저가 시계들과는 확연히 다른 프로세스로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오랜 경력과 출중한 실력을 가진 시계제작자를 가리켜 ‘마스터(장인)’라고 칭하는 것도 고급 시계 제조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계는 분명 재화만 있다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지만, 때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시계들도 있다.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들 중에는 시계를 단지 판매 목적이 아닌 브랜드가 지닌 기술력과 추구하는 가치를 최대치로 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험적인 시계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까르띠에가 2009년에 선보인 유니크 피스 ‘아이디 원(ID One)’과 2012년에 발표한 ‘아이디 투(ID Two)’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시계 제조 방식에 새로운 혁신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더욱 완벽에 가까운 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까르띠에처럼 시계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예가 있는가 하면,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반클리프 아펠처럼 최상의 예술적인 시계를 완성하기 위해 전통 공예 장인이 최소 2주에서 길게는 몇 달간에 걸친 수작업으로 완성한 유니크 피스들도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시계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는 MB&F, 그뤼벨 포시, 로랑 페리에 등의 독립 시계브랜드들과 필립 듀포, 카리 보틸라이넨과 같은 존경받는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시계도 매우 한정된 수량만 제작되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계로 손꼽힌다. 이러한 귀한 시계들은 차후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세계 시계 경매에 출품돼 애초의 금액대를 훨씬 상회하는 경매가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흔히 볼 수 없어 희소하고 기술력과 예술적 표현의 한계에 도전한 마스터피스급 작품들은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이다. 고급 기계식 시계가 세계 주요 경매에 단골손님이 된 것도 하나의 완성도 높은 시계는 예술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귀한 시계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물론 기본적으로 부(富)도 따라야겠지만, 단지 부유해서만은 가질 수 없는 탁월한 감식안과 시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열정, 그리고 좋은 시계를 가치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애티튜드(자세)를 지닌 자야말로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싶다.
>>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타임포럼 주 필진으로서 시계 각 분야의 뉴스 및 심층 리뷰와 칼럼을 담당하고 있으며, 매년 바젤월드, SIHH, 워치스 앤 원더스 등 주요 시계 박람회를 취재해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시계 전문지 스페셜을 번역 보완 출간한 를 감수 및 추가 저술했으며, 주요 시계 제조사와 대표작을 선별한 e-북 를 저술했다.
>> 타임포럼 소개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시계에 관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1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직접 시계 구입 후기와 착용 소감, 다양한 질문과 답변 등을 주고받음으로써 시계에 관한 국내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방대한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timeforum.co.kr
롤렉스의 전통은 ‘완벽의 추구’라는 장인 정신에 의해 이어져 내려왔다. 롤렉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은 완벽한 품질의 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직 품질로만 승부한다’는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Hans Wilsdorf)의 경영 철학 아래 품질과 전통의 가치, 참신함 그리고 기술적인 혁신의 완벽한 조화는 롤렉스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비결이다. 그러한 롤렉스 철학이 바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와 방수시계를 만들었고, 전 세계인들에게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사랑을 받고 있는 원동력이다.
◇손목시계 제조의 역사를 이끌다= 장인 정신과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20세기 시계 제조의 역사를 전환시켜온 롤렉스. 세대를 초월한 전통, 고결함, 품위의 가치를 추구하는 롤렉스의 역사는 19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4세의 나이로 런던에 시계 전문 유통회사를 설립했던 바바리아 출신의 사업가인 한스 빌스도르프는 회중시계가 주류였던 당시, 손목시계의 미래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성이 많은 대중들에게 안정성을 보장하고 손목에 착용할 만큼 소형 시계를 제조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제조된 높은 정확도의 무브먼트(Movement)를 장착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손목시계는 유행에 민감한 남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빌스도르프는 그의 창조물에 누구나 발음하기 쉬운 ‘롤렉스(Rolex)’라는 브랜드 명을 부여했다.
그는 시계 무브먼트의 정확성과 품질 개발에 초점을 뒀다. 1910년 스위스에서 손목시계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했고, 1914년에는 그 당시 항해용 큰 시계에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수여하던 영국의 큐(KEW) 천문대로부터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A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이후 손목시계는 정확성과 동의어가 됐다.
◇세계 최초의 방수·태엽시계= 빌스도르프는 1926년 시계의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전 세계에 롤렉스 제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오이스터(Oyster)’라는 이름의 세계 최초의 방수·밀폐·먼지 방지 시계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런던의 속기사였던 메르세데스 글릿즈가 두 번째로 1927년 영불 해협을 헤엄쳐서 횡단한다는 소식을 접한 빌스도르프는 그에게 방수 시계인 오이스터를 협찬했다. 글릿즈는 15시간 15분에 걸쳐 영불해협 횡단에 성공했고, 시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시계 업계의 신화가 됐다. 이 이야기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롤렉스에 대한 수많은 증언의 시작일 뿐이며 그들의 탐험과 용기는 롤렉스 브랜드의 우수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됐다.
이후 빌스도르프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 전면에 방수 손목시계의 성공을 홍보하고 오이스터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오이스터는 곧 또 다른 탁월한 기능을 갖게 된다. 1931년 손목의 움직임으로 태엽이 감길 수 있도록 해 시계가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자동 태엽 메커니즘의 원조가 되는 영구 회전자(Perpetual rotor)를 개발한 것이다. 이 때부터 수동 시계는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1945년 최초의 자동 날짜 표시 기능이 있는 최초의 크로노미터 시계를 비롯해 1953년 최고 100m의 깊이로 방수·반압 기능을 갖춘 ‘서브마리너(Submariner)’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