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어둠 속에서 더 또렷하다. 광공해가 없는 맑은 대기여야 선명하다. 그러기에 도심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기는 쉽지 않다. 첨단의 문명이 별 보기를 더 어렵게 만든 셈이다. 별 볼 일 없는 세상이란 말, 따지고 보면 초고도 현대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팍팍해진 세상에서 별 볼 일을 찾아 떠나보는 일, 해볼 만하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경계의 함백산. 서울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면 새벽 2시 무렵에 도착한다. 산 정상 가까이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어서 야간 산행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게 적응된다. 하지만 일부 걸어서 올라가는 산길은 경사가 가파르다. 숨차게 1572m 정상에 오르니 한낮의 날씨는 간데없이 뚝 떨어진 기온에 한기가 온몸을 휩싼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발아래로 굽어보는 세상, 멀리 낭떠러지 같은 산 아래로 가끔씩 밤길을 달리는 자동차 궤적이 빛을 낸다. 산꼭대기 봉수대 아래의 고사목 앞에서 바라보는 산의 웅장함. 숲 내음과 눈앞에 펼쳐진 산세에 놀라고, 흐르는 은하수를 보며 전율할 수밖에 없는 밤 풍경이다. 함백산은 하늘과 가까이 맞닿은 곳에서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이윽고 별이 지고 나면 산등성이 사이로 멋지게 밝아오는 여명을 맞을 수 있는 산이다.
완벽한 어둠 속에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 하늘이 이렇게나 넓었던가. 이 우주 안에서 작아진 자신의 모습을 단박에 확인한다. 쏟아질 듯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검푸른 하늘에서 별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고도가 높은 산 정상에서 육안으로 올려다보는 별, 비로소 우주와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이젠 신화 속의 별자리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별 궤적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붙잡고 조급해하거나 연연하지도 않는다. 머리 위로 별을 가득 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주 어린 시절 여름이었나. 저녁을 먹은 뒤 마당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아득한 기억이 있다. 그때 어린 눈에 들어오던 또렷한 별들이 선명히 기억난다. 어릴 적 집 앞마당에서 올려다보았던 별을 어른이 되어 이렇게 멀리 달려 나와 밤하늘의 보석을 대하듯 감탄하면서 마주한다. 밤바람이 차서 미리 준비한 두꺼운 겨울 패딩에 털장갑을 끼고도 몸이 떨리는 산중의 밤이다. 추위 속에서도 스스로 들떠서 행복하다.
어느 순간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게 느껴진다. 여명의 신비로움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건 당연하다. 운해 위로 불그스레 조금씩 떠오르는 일출이 물들이는 세상, 저 아래로 굽어보는 능선 사이사이 스며드는 운해, 온 산하에 여명이 번지는 뭉클한 순간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가히 선계의 풍광이다.
바람을 맞으며 밤을 보낸 눈앞의 고사목은 얼마나 무수한 일출을 마주했을까. 빳빳하게 선 채로 생명의 힘을 그대로 전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더니 저 나무는 지금 어느 세월쯤에 있는 걸까.
천상의 화원 만항재
폐부 가득 새벽 찬 공기를 담고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뿌듯하다. 하룻밤의 꿈이었던가. 추위 속에 떨면서 밤을 새우며 바라본 은하수와 별, 세찬 밤바람도, 운해와 여명도, 함백산의 능선도, 아름다운 일출도, 대자연의 선물이다. 선물을 가슴 가득 안고 내려온 함백산의 새벽길. 밤새워 별을 보고 차 안에서 꾸벅꾸벅 쪽잠을 잘지언정 내내 잊지 못할 밤마실이다.
함백산의 만항재는 조선 초기 고향을 떠나 산속 깊은 곳에 터전을 잡은 옛 고려인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원했다는 ‘망향’에서 유래한 어원을 지닌 고갯길이다.
이 지역은 강원도 정선, 고한, 영월, 산동읍과 태백시를 잇는 지점이다. 우리나라의 포장도로가 놓인 길 중에서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1330m). 그래서 드라이브의 재미와 함께 깊은 자연 속의 풍성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으로 알려져 있듯이 울창한 산림이 자연스럽게 우거져 있다. 매해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화 축제가 열릴 정도로 야생화 천국이다. 산상의 꽃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기운을 듬뿍 얻는다. 희귀한 야생화와 풀꽃들이 지천이다. 특히 호랑나비, 산제비나비 등 예쁘고 다양한 나비가 많아 어디서나 나비의 날갯짓을 본다. 때 묻지 않은 빽빽한 숲 그늘에 파묻히는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원 없는 ‘숲멍’의 시간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편히 한나절 쉬어가도 좋을 청정 자연이다.
숨 쉬는 다리, 영월군 주천리 섶다리
산으로 둘러싸인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에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이면 매년 다리가 놓이곤 한다. 여름에 물이 불어나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되는 다리. 영월군 주천리 판운면에 가면 건너보고 싶은 섶다리가 있다. 강을 사이에 둔 밤뒤마을과 건너편 미다리마을의 왕래를 이어주는 정겨운 전통 다리다.
통나무로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참나무와 소나무 가지를 얹어 진흙으로 만들었다. 섶다리 위로 발걸음을 옮기면 약간의 흔들거림과 탄력적인 푹신함이 전해진다. 요즘 곳곳에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출렁다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옛 맛의 신비한 감흥이다. 잔잔한 주천강을 건너 섶다리를 향해 앉아 느긋한 한낮, 잠깐이나마 아날로그 감성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마을 옆으로는 한낮의 햇살이 쏟아지는 밭고랑 사이마다 농작물들이 여물어간다.
예전의 산천을 그대로 간직한 시골 마을에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유유자적한 기분,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몸의 감각을 되찾고 편안하게 마음 정리할 만한 곳이 바로 여기구나 싶다. 은은하고 따사로운 볕에 빛나는 시골 풍경이 아스라하다. 돌아오는 길에 섶다리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상한 바위들의 모임, 요선암도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곳이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요선암 앞에 서면 마치 공룡 시대에 온 듯 신비롭다.
하루나 이틀쯤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 살면서 가끔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는 야생 식물들의 풍경에 취하고 산꼭대기의 운무에 마음을 빼앗겨볼 만하다. 하루 이틀로 도시의 때가 벗겨질 리 없지만, 물질과 소유욕에 잠식당한 현실에서 잠깐 떨어져 나올 수 있는 기회다. 속세를 떠난 듯 일상을 잊어보는 시간, 자연의 따뜻한 본성을 만나고 오면 새록새록 가슴을 두드리며 알려준다. 이 땅의 깊숙한 곳으로 찾아가는 일은 이토록 근사하다는 걸.
‘남원’ 하면 춘향, ‘춘향’ 하면 광한루원만 생각났다. 남원에는 진정 광한루원 말곤 갈 데가 없을까 궁리하던 때에 마침 김병종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이 좋아 남원에 들락거렸더니 식상했던 광한루원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동네 빵집과 걷기 좋은 덕음산 솔바람길도 발견했다. 이 산책로가 미술관과 연결되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남원을 여행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종종 생각났다.
걷기 코스
남원역(남원시외버스터미널)▶차량 이동▶광한루원 북문▶남문▶요천 섶다리▶덕음산 솔바람길 입구▶전망대 레스토랑▶남원국립국악원▶그네매점(또는 약수터매점) 뒤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남원항공우주천문대▶춘향테마파크(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
상상 속 달나라를 구현한 광한루원
광한루원에는 남문(정문)과 서문, 북문이 있다. 오늘 걷는 코스는 북문으로 입장해 남문으로 나가는 것이 동선상 편하다. 북문 앞에는 고품격 한옥 호텔인 남원예촌과 규모 있는 한정식 전문점들이 자리했다. 이 일대는 남원 제일의 관광단지라서 거리가 깔끔하고 작은 쉼터도 조성돼 있다.
주중 낮 동안 일반인 관람이 허용되는 남원예촌을 잠시 둘러본 뒤 광한루원 북문으로 입장한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춘향사당이 코앞이다. 조선 중기 사람들은 달나라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산다고 생각했다. 이 상상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달나라 궁전이며, 광한루 앞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에 섬처럼 떠 있는 세 개의 섬은 지상낙원, 즉 영주산(한라산),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을 뜻한다. 중국 ‘사기’에 등장하는 전설 속 세 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본떠 일컬은 것이다. 나무다리로 연결된 세 섬을 차례로 들러본다. 팽나무가 우거진 영주산 영주각에 올랐다가 봉래산의 대숲을 지나고, 방장산 숲에 숨은 작은 방장정에선 잠시 쉬어간다.
방장정 옆으로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오작교가 보인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널 때 걸었던 오작교를 본떠 만들었다. 다리 길이가 57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연지교다. 조선 후기 소설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작교를 건너며 연못을 굽어보니 잉어 떼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노닌다. 광한루원은 원앙과 잉어에게도 지상낙원인 듯하다. 연못가 버드나무와 짝꿍처럼 잘 어울리는 수중 누각 완월정에 올랐다가 남문으로 나선다.
솔숲이 우거진 덕음산 솔바람길
광한루원 남문으로 나오면 바로 요천변이다. 요천 제방에 올라 벚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가로수가 우거져 그늘이 짙다. 덕음산 솔바람길로 가려면 승월교나 섶다리를 이용해 요천을 건너야 한다. 흔한 시멘트다리 대신 섶다리를 선택해 건넌다. 이 섶다리는 옛날부터 요천에 섶다리 두 개가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근래에 만든 쌍섶다리다. 섶다리를 건너면 춘향테마파크와 식당, 놀이공원, 국립국악원 등이 있는 춘향촌 입구가 보인다. 춘향촌 입구 왼쪽에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가 있다. 나무계단을 조금 오르면 솔숲길이 이어진다. 잔잔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었을까. 숲길이 전망대레스토랑 앞 전망대로 인도한다. 이곳에 서서 남원 시내를 굽어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같고, 도심 가운데로 요천이 흐른다. 남원의 젖줄 요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 남해까지 간다.
탁 트인 남원 풍광을 감상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국립민속국악원 방면으로 내려간다. 국립민속국악원은 판소리의 성지인 남원의 국악 수준을 잘 보여주는 공연장이다. 주말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전통 공연을 선보인다. 주말에 이 길을 걷는다면, 공연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국립민속국악원 뒤쪽으로 이동해 덕음산 솔바람길의 또 다른 입구를 찾는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김병종미술관까지 이어지는 데크 산책로로 연결된다. 길 곳곳에 전시돼 있는 시, 그림, 캘리그래피 작품을 감상하고, 솔숲 향기를 맡으며 느리게 걷는다. 데크에서 내려오면 바로 김병종미술관이 보인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미술관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남원의 뜨는 명소 김병종미술관과 화첩기행 북카페
2018년 3월 개관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남원 출신 한국화의 거장 김병종이 자신의 작품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이 기획됐다. 덕음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실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 숲이다. 김병종 화가의 작품은 1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김병종 화가의 초기작이자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바보예수’ 시리즈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동심이 느껴져 절로 미소 지어진다. 김병종 화가는 여행 에세이 ‘화첩기행’을 저술해 문학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줬다.
상설전시장 옆에는 화첩기행 북카페 ‘미안’도 자리해 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청년 카페지기가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을 담아 ‘미안’이라 이름 지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카페 한쪽 벽면에는 김병종 화가의 작품과 그가 기증한 미술, 인문학, 문학 관련 도서 등 약 20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나머지 벽면은 통창을 설치해 물이 가득한 정원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오랜만에 맘에 쏙 드는 미술관과 카페를 만나 걷는 즐거움이 커진다.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춘향테마파크 걸을까, 오감만족숲을 걸을까
미술관에서 걷기를 마치고 광한루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항공우주천문대를 거쳐 춘향테마파크 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으로 내려가도 좋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광한루원이 멀지 않다.
항공우주천문대는 미술관 뒤쪽으로 난 길 끝에 있다. 미술관에서 약 300m 거리다.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돔 형태의 지붕을 얹은 천문대를 만난다.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밤에는 달과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관측을 할 수 없으니 날씨를 봐가며 입장해야 한다.
천문대 뒤쪽, 솔바람길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춘향테마파크 뒷문이 나온다. 이 문은 춘향테마파크의 가장 위쪽 구역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된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공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세트장이 남아 있다. 뒷문 근처에는 월매집, 춘향과 이몽룡이 첫날밤을 보냈던 월매집 부용정, 춘향이 변 사또에게 고초를 당했던 관아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춘향테마파크에 입장하지 않고, 뒷문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감만족숲/광한루 방면 숲길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오감만족숲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오감만족숲은 2017년에 덕음산 기슭에 조성한 공원으로 걷기 좋도록 지그재그형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승월교로 바로 연결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전통시장의 정취가 물씬 남원공설시장
광한루 서문 앞에 있는 상설시장이다. 오일장날에는 아침부터 붐빈다. 남원에는 산과 강이 있어 농수산물이 풍부하다. 특산물을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원산 미꾸라지가 흔하다. 시골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오래된 뻥튀기 가게도 있다. 온갖 곡식은 물론 무까지 튀겨준다. 남원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즐겨 사 먹는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닭발 튀김. 뼈를 발라낸 닭발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남원시 의총로 51, 4와 9로 끝나는 날이 오일장.
맛의 고장 남원 맛집
남원에서는 남원산 미꾸라지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 추어탕이 유명하다. 광한루원 서문 쪽 요천변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새집’, ‘현식당’, ‘부산집’이 입소문 났다. 광한루원 북문 앞에 있는 남원 한정식 전문점 ‘종가’도 추천할 만하다. 보리굴비 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찜, 육회, 전복구이 등 맛깔난 전라도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돌솥비빔밥 전문점인 ‘반야식당’도 광한루 인근에서 오래 장사한 소문난 집이다. 최근 뜨고 있는 ‘집밥, 담다’는 ‘따뜻한 가정식 한 끼’를 표방하는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다. 정갈한 식단으로 호평받고 있다. 예약은 필수.
남원 사람은 다 안다는 명문제과
남원에서 오래 장사한 동네 빵집이다. 가게는 작고 허름하다. 다른 빵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빵을 개발해 인기를 얻었다. 남원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인데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한 뒤로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평일에도 줄을 서며, 오후 늦게 가면 인기 빵은 동나 살 수 없다. 3대 인기 빵은 생크림소보로, 꿀아몬드, 수제햄빵이다. 광한루원 북문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남원시 용성로 56.
걷기 Tip
❶ 5월 8일부터 12일까지 광한루원과 요천 일대에서 제89회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은 야간 조명을 밝히는 밤에 산책해도 좋다.
❷ 4월 24일부터 5월 19일까지 바래봉 철쭉제도 열린다.
전남 진도의 고군면 회동리에서 의신면 모도리까지 2.8km의 바다가 해마다 두 번씩 3월에 사흘, 4월에 나흘간 조수간만의 차(差)와 인력(引力)의 영향으로, 수심이 낮아지고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한 시간 동안 폭 40여 미터의 길을 연다. ‘모세의 기적’에 비견되기도 하는데, 열리는 바닷길을 걸으며 갯벌을 체험하는 ‘바닷길 축제’가 올해는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린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랬듯이, 어부는 이때를 놓칠세라 등짐을 잔뜩 지고, 어부의 딸은 봇짐을 머리에 이고 그 길을 가고 있다. 한쪽 바다는 격랑의 물결이 사납다. 두려운 이 길을 건너고 있는 부녀는 불편한 돌길에 두 발을 묻고 있다. 옥주산인 김옥진(沃州山人 金玉振, 1928~2017)의 한국화 은 고향의 어느 봄날의 실경(實景)이다. 진도군 임회면에서 출생, 진도의 옛 이름인 옥주(沃州)에서 옥주산인(沃州山人), 옥산(沃山)을 아호로 취했다. 조선 남종화의 시대를 연 운림산방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3)의 아들 미산 허형(米山 許瀅, 1862~1938)에게서 방손(傍孫)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이 묵화를 배우고 그를 사사한 옥주산인이 같은 남종화의 길을 걸었다. 또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만들어진 동양화(東洋畵)라는 명칭을 한국화(韓國畵)로 바꿔야 한다고 주창하고 실천했다.
옥주산인 김옥진
1979년 제28회 국전에서 영예의 초대작가상을 받은 은 전통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진도 앞바다 울돌목(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격전지)의 소용돌이치는 실경을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옥주는 처음 의재를 뵈올 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임화(臨畵)를 그려와 펼쳐 보였을 정도로 남달랐다. ‘진도농업실기학교’를 다닌 바 있는 그는 의재를 사사하며 의재 선생이 1947년 광주에 세운 ‘농업고등기술학교’ 교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10여 년간 시서화(詩書畵)뿐 아니라 춘설헌(春雪軒, 의재 허백련 선생이 1956년 차밭 아래에 화실로 사용했던 곳)의 차 재배와 생산 및 다도(茶道)의 보급 등 명실공히 의재의 고고한 선비정신까지 계승했다. 주위의 예술인들은 “큰 바위와 같이 굵직한 인품을 지니고, 다정다감하면서도 안목이 굉장히 예리하다”고 칭한다.
오래전 한 도예가의 작업실에서 코발트와 철화(鐵畵), 진사(辰砂)의 안료를 붓에 찍어 도자화를 그리던 옥주 화백을 만나 뵈었는데, 두어 시간 차를 마시며 안광(眼光)을 빛내 열강하던 ‘개결한 예술인의 품성’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수선화를 그린 소품도 받았는데, 그 순간 1972년 무등산자락 ‘춘설헌’으로 의재 선생을 찾아가 큰 절로 뵈었을 때 따라주셨던 ‘춘설차’의 깊은 향이 맴도는 듯했다.
을 통해 옥주 화백은 ‘스스로 걷고 있는 예도(藝道)를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지고(至高)하되 그러나 신산한 그 길이 이 어부가 식솔과 가고 있는 두렵고 불안한 천형(天刑)의 바닷길과 같을 것이다. 발을 삐끗하면 격랑의 물결 속에 매몰될 것이고, 빨리 지나가지 않으면 이 길은 바닷물에 덮일 것이기 때문이다. 친한 수집가에게서 빼앗다시피 해서 갖고 온 이 그림을 펼쳐놓을 때마다 ‘나는 과연 내 길을 바르게 걷고 있나?’ 하고 자성(自省)하게 된다.
우현 송영방
봄기운이 슬며시 산자락 밑 개울의 얼음을 녹이더니, 어느새 낮은 산 양쪽 계곡으로 물이 모여 제법 넓은 내를 이루었다. 개울 위 한쪽에는 좁은 섶다리도 놓였고 두 개울이 만나는 얕은 둔덕에 마른 잡초도 촉촉한 생기로 일어서고, 물가의 버들개지일까 잎끝이 연두의 점을 찍었다. 소나무들이 곧게 자라서 무리를 짓거나 작은 길 둔덕에 즐비하다. 개울 건너 경사가 완만한 조그만 산밭에서는 늙은 촌부가 누런 소에 쟁기 매어 밭갈이 한창이고, 노처는 고개 숙여 씨앗을 묻기에 여념 없다. 쟁기를 지고 왔던 지게와 씨앗을 담아온 종다래끼가 빈 밭의 허전한 구도를 깨고 있다. 한 해의 첫 봄갈이가 시작된 것이다. 먹의 농담만으로 그려진 산봉우리는 가로 그은 옅은 붓질이 겹쳐 유현한 빛을 발하고, 담박(淡泊)한 선으로 단숨에 그려진 개울이며 산밭이며 소나무들까지 소박한 실경을 그대로 표현했다. 여느 풍경화보다 고향의 산자락을 생각나게 해, 온라인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를 그린 우현 송영방(牛玄 宋榮邦, 1936~)은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국전에서 특선을 하며 화업의 길로 들어선 분이다. 대학 3학년 중반까지 서양화를 그리다 “물감의 느끼한 기름기가 싫어서 한지에 먹으로 그리는 붓을 잡았다”고 술회했다. 대학 스승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과 산정 서세옥(山丁 徐世鈺, 1929~)에게서 문인화의 높은 경지를 사사한 그는 유년기에 한학을 하던 선친에게서 붓 잡기를 익혔고 고향집 벽장, 두껍닫이에 붙은 민화(民畵)를 따라 그려보곤 했다고 회고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삽화(揷畵)를 그려 용돈을 마련했던 대학 시절에는 하찮게 여기던 삽화의 경지를 심의(心意)의 그림으로 고양(高揚)시켰다는 출판인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삽화를 삽도(揷圖)라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법정(法頂, 1932~2010) 스님 수상집 표지화 등은 지금도 ‘격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 3월 31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은 그의 화업을 정리하는 회고전이었다. 오채라 함은 먹의 농(濃), 담(淡), 건(乾), 습(濕), 초(焦)나 흑(黑)을 가리키며 먹색의 풍부한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불교 재단인 동국대학교에서 교수와 예술대학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뒤에도 불가의 오묘한 세계를 그리기도 했다. 그의 아호는 12세기 북송 말엽 곽암사원(廓庵師遠, 생몰년대 미상) 선사(禪師)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에서 ‘우(牛)’를 취하고, 노자(老子)의 제1장에 나오는 현지우현, 중묘지문(玄之又玄, 衆妙之門, 멀고 또 그윽하도다! 뭇 묘함이 그 문에서 나오는도다!)에서 ‘현(玄)’을 취했다고 한다.
그는 먹을 풀어 담담한 문인화풍의, 그러나 실경을 농축된 심경으로 진솔하게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그의 많은 그림의 특징은 채색 물감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먹만으로 완성했음에도 결코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또 먹의 선이 간결하고 날씬하되 요체(要諦)를 응집시켜 군더더기나 부족함이 없다. “그림을 그릴 때 채색을 피하고 먹을 위주로 그리는데 그 이유는 먹의 오묘함이 어떤 화려한 색보다 그 전달력에 있어 능란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바람은 나의 개성 표현에 있습니다. 자기다운 것을 하기 위해 예술을 덩어리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려한 색채의 화초보다는 길섶의 질경이꽃같이 살고 싶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우현이 한 말이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