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시니어를 뽑는 대회 ‘제6회 전국 시니어 춘향 선발대회’가 오는 5월 3일 열린다. 참여자 모집은 4월 8일(금)까지다.
‘제6회 전국 시니어춘향 선발대회’가 5월 3일(화) 전북 남원시에서 개최된다. 남원시가 주최하고 남원시노인복지관이 주관하는 전국 시니어춘향 선발대회는 노년기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주도적이고 열정적인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신노년 상 정립을 돕기 위한 대회이다.
만60세 이상 대한민국 여성 어르신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희망자는 신청서와 자기소개서 등 구비서류를 접수 기간인 3월 7일부터 4월 8일(금)까지 남원시노인복지관에 방문, 이메일, 팩스로 접수하면 된다. 예선심사는 4월 13일(수)이며, 본선진출자 개별 통보를 통해 5월 3일(화) 본선심사를 진행한다.
대회 수상자에게는 대상 1명 250만 원(부상 드럼세탁기), 금상 1명 100만 원 등 총 7명에게 상장과 상금(520만 원)이 수여되며, 수상자 외 본선 진출자에게도 참가상으로 현금 10만 원이 지급된다.
남원시는 "남원시노인복지관과 함께 철저한 방역관리를 통해 안전하고 건강하게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고 밝혔다.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제주는 유네스코가 2002년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2007년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으며, 2010년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유네스코 3관왕인 셈이다. 문화유산이 아닌 자연유산이니 ‘자연’에 방점이 찍힌 지역이라는 얘기다. 그만한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었나? 동년기자들은 솔직히 제대로 몰랐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 죗값(?)을 치를 겸 제주도를 상세히 돌아보고자 4박 5일간의 일정을 촘촘하게 짰다. 다소 무리해서 차도 빌리기로 했다. 렌트 비용은 생각보다 쌌다!
공항 바로 옆 ‘렌터카’ 업체에서 렌트하자마자 제주 출신 동년기자가 바로 근처에 제주 오일장이 있으니 가보잔다. 제주시 민속 오일장은 규모도 크고 전국에서 손꼽히는 장터라며 열을 올린다. 끌려가다시피 오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가성비 좋은 제주 맛집
오일장이 서는 곳 바로 옆에 별도의 시장이 있다. 그 이름은 할망장터. 제주시가 할머니들을 위해 내준 장터로, 자리 사용료는 받지 않고 전기 사용료 명목으로 하루 1000원만 받는단다. 65세 이상 할망 200여 명이 산과 들, 텃밭에서 가져온 야채와 과일 등을 판다.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꽤 기특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망장터 앞, 할망빙떡집에서 전병을 말고 있는 할망이 있다. 메밀빈대떡을 부쳐 그 속에 익힌 무채만을 넣어 만든 게 빙떡이란다. 메밀전병과 비슷하다. 제주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리고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만들어 먹는다. 간은 약간 싱겁다. 그래서 자꾸 손이 가게 되고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다.
장터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춘향이네 식당’으로 향했다. 직원이 카메라를 보더니 한사코 파전을 먹어보란다. 아침부터 웬 파전?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들이 국밥과 파전을 먹고 있다. 속는 셈치고 시켰다. 독특한 파전 맛, 괜찮다. 국밥 세 그릇 1만8000원, 파전 1만 원, 세 명이 배부르게 먹고 2만8000원을 냈다. 요즘 말로 가성비 괜찮은 식당이네!
제주 시내의 물회 식당 소개는 생략한다. 방송을 많이 타서 손님이 줄을 서 있는데, 가격대가 만만치 않고 차별화된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곶자왈 휴양림에서 힐링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 또는 지형을 일컫는 곶자왈은 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우거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형성된 용암에 따라 크게 4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이른바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 애월 곶자왈 지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다.
그중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에 있는 교래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제주의 걷는 길 대부분이 그렇듯 천천히 걷기 좋은 자연휴양림이다. 시니어를 위한 1시간짜리 산책 코스로, 제주 방문 첫날 몸 풀 장소로 제격이다.
휴양림에서 힐링을 한 후 현지에서 합류한 지인이 예정에 없던 제안을 했다. 1년 가까이 운영해오다 10월 27일 끝나게 될 ‘빛의 벙커:클림트’를 관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시큰둥해했으나 ‘키스’ 작품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주제로 한 전시란 말에 구미가 당겼다. 차를 타고 찾아간 ‘빛의 벙커’는 뜻하지 않은 첫날의 큰 행운이었다.
1시간 반가량 환상적인 음악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 빛의 향연을 즐겼다. 더 매혹적인 볼거리는 관람하는 젊은이들. 바닥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앉아 힐링하는 모습이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을 배운 세대들이라서?
제주에서의 첫날을 보내며
어쨌든 ‘낡은 세대들’로서는 꿈도 못 꾸던 자유분방한 모습의 젊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덕분에 함께 힐링한 셈이 됐다. 저녁식사를 한 흑돼지구이식당 역시 소개를 생략한다. 이번 취재기간에 먹은 제주의 흑돼지 맛은 다 우수했다. 따라서 어느 식당을 특정하기보다는 코스에 맞춰 부근에 있는 흑돼지 식당을 찾기를 권한다. 주머니 사정은 좀 고려해야 할 듯.
둘째 날 취재에도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하며 숙소로 향했다.
(12월호에 이어짐)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1990년대 후반 IMF를 악으로 깡으로 견뎌야 했던 부모 세대에게 묻는다면 ‘평범했노라’ 회상하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넥타이를 매던 손놀림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아버지 중 변용도 동년기자도 있었다. 남들보다 이른 ‘용도폐기’ 인생을 딛고 잇따른 ‘용도변경’ 요구에도 능숙 능란 살아온 인생. 세월 역경을 딛고 여유로운 귀촌생활에 도시생활 잘 섞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푸른 들판이 바라보이는 땅콩집에 산다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 변용도 동년기자와 점심식사를 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와 가깝게 지내던 이웃사촌 부부와 마음이 맞아 경기도 고양시에 대지를 사들이고 건물을 지어 두 가구가 같이 사는 이른바 ‘땅콩하우스’에 산다고 했다. 텃밭을 일궈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채소를 따먹고 집 주위 논밭 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변용도 동년기자는 우렁이 알과 관련한 기사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온라인에 게재하며 귀촌해서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참새에게 모이도 가끔 준다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누리는 귀촌생활이라니. 마침
8월호 커버스토리가 귀농·귀촌 이야기라 변용도 동년기자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햇빛 잘 드는 텃밭에서는 상추, 오이, 가지, 파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집 안 마당에 깔아놓은 잔디도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아내 이흥열 씨가 집에서 딴 부추로 만들었다며 부추전을 부쳐 내오신다.
“논에 가면 우렁이도 있고 오리도 봅니다. 가을이면 밤도 많이 떨어져요. 사실 이곳에는 안사람 때문에 왔습니다. 이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대신 아내가 제 매니저 역할을 종종 해줍니다. 지방 강의가 있을 때 운전을 해주기도 하고 주변 역까지 차로 바래다주고 마중도 나오고 말이죠.”
‘좌절할 시간에 뭐든 했다
멀리 내다보이는 들이며 밭이며 마음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곳에 사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다.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 아닐까? 현재 변용도 동년기자의 직업은 전문강사다. 여가 설계와 생애 재설계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 등을 또래 시니어에게 가르친다.
“정년퇴임 후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취미생활이라든지 봉사활동, 학습 이런 것들에 관해 강연합니다. 제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요. 다행히 강의를 듣는 분들이 잘 호응해주셔서 강의시간이 즐겁습니다.”
뿐만 아니다. SBS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리포터로 시니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시니어 자격으로 노크할 수 있는 매체란 매체는 두루 섭렵했다. 글을 좋아하다 보니 저서도 출간했고 육십 넘어서부터는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연기에 관심이 생겨 연극무대에 설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투 운동을 ‘춘향전’에 접목한 창극 ‘어화둥둥 아.우.성’에서 변사또 역으로 출연합니다. 50플러스영등포센터에 있는 연극 소모임 작품인데 저는 회원은 아니고 이름이 특이해서 뽑혔대요. 이래봬도 제가 고등학교 때와 군 시절에 연극무대에 서본 경험이 있거든요. 7월 30일 공연이고 10월에도 서울시청에서 공연한다는군요.”
말 그대로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살고 있는 이가 바로 변용도 동년기자다. 하지만 은퇴는 그의 생각보다 빨랐다.
“마흔일곱 살에 회사 그만뒀거든요. 쌍용화재 영남권 본부장이었는데 IMF 앞두고 하루아침에 해임됐습니다.”
꽤나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보험 상품을 최초로 개발한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낚시보험, 골프보험 등 특색 있는 보험에서부터 가정종합보험, 해양시추보험 등을 개발했다. 텃새 심한 제주도권 본부장으로 지낼 때 만났던 직원들은 아직까지도 변용도 동년기자가 제주에 떴다 하면 만나기를 청한다.
“회사에서 나오고 나서 참 많은 일을 했어요. 청학동 산골에서 나고 자라다 대학교를 다녀야해서 서울로 왔고 졸업한 뒤로 회사에만 있었으니 제가 뭘 어떻게 했겠어요. 회사 나와서 처음으로 한 사업이 만화방이었습니다. 화정 L마트 옆에서 한 3년 했어요. 요즘 만화방이 유행이던데, 예전에 집에서 만화 보던 식대로 드러누워서 만화를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잘됐어요. 처제에게 인수하고 부대찌개 집을 한 1년 했습니다. 술도 팔다 보니 늦게 끝났습니다. 안사람 고생이 심했죠.”
힘에 부쳐 부대찌개 가게를 팔았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 곳이 당시 호황을 누리던 생활정보지 회사 건물. 보직은 조경관리사였다.
“고양, 일산 이쪽에서 생활정보지가 상당히 잘됐습니다. 그 회사 건물에서 조경관리사를 뽑더라고요. 말이 좋아 조경관리사지 쓰레기도 치우고 허드렛일 다 했죠. 그때 월급이 40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가끔 강의할 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명색이 대기업 임원이던 양반이 대비전 마당쇠 했다’ 그래요.”
나무 좀 가꾸다 쓰레기 치우고, 단풍 치우고, 잔디도 깎았다. 마음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도 기회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한창 정육식당 바람이 불 때였어요. 생활정보지 회사가 500평 정도 잔디밭을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다 정육식당 하면 딱 좋겠다 생각하고 회사에 건의를 했더니 그럼 저더러 점장을 하라더군요. 마당 쓸다가 대형 식당 점장이 된 거죠. 처음엔 젊은 사람 시키라면서 못하겠다고 고사했는데 그동안 제 얘기를 들었는지 믿고 맡기더라고요.”
마음에 안 차도 열심히 덤벼들었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IMF 때는 드라마 엑스트라 출연도 해봤다. 정치인의 주례가 잠시 금지됐던 시절에는 예식장 전속 주례사도 했다.
“여하튼 돈 되는 일이라면 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잘했든 못했든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큰 자산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어쨌든 기회가 되면 그냥 한번 도전해보자고요. 규모가 작건 소소하건 해보면 뭐든 얻는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한 가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변용도 동년기자를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안 해본 일이 거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제대로 인정받을 때까지 파고드는 근성은 타고난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살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고 찾아다니게 된 계기가 있다고 했다.
“두 친구가 비슷한 시기에 죽었어요. 건강하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한 명은 산에 갔다가, 한 명은 차를 몰고 가다가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간 거야. 술도 안 먹고 건강관리도 잘했어요. 다른 친구는 100억대 자산가였고요.”
죽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 날 허망하게 갈 수도 있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람처럼 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사진이었다.
“어렸을 때 친구 권유로 ‘촌놈의 세상보기’라는 문패를 달고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마침 있어 글 쓸 때마다 사진과 같이 올렸어요. 좀 더 잘 찍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두 친구가 죽고 난 뒤에 사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죠.”
점점 사진에 취미가 붙으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까 고민을 하게 됐다. 일산동구청에서 하는 무료 사진교실이 있다기에 찾아가 일주일에 두 번 사진도 배웠다.
“때마침 첫째 아들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하겠다며 사두었던 카메라가 있었어요. 아이가 그 사업을 접으면서 카메라를 저에게 줬습니다.”
2010년 7월에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그해 10월에 공모전에 당선됐다. 스물여덟 번 도전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 시니어 기자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보이고 블로그에서도 덤덤하게 인생 표현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방송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케이블TV 출연 뒤 KBS ‘아침마당’에 은퇴준비 전문강사 중 사진 분야 강사로 출연하며 인생에 큰 계기를 맞이했다. 진짜 다른 사람들 삶에 귀감이 되는 전문강사가 된 것이다.
“육십이 돼서 사진을 배우기 전까지는 먹고살기 위해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제 여유가 좀 생겼어요. 요즘은 아침이 되면 사진기를 들고 나갑니다. 장애인 시설에 가서 사진 찍어주는 봉사도 하고요.”
물론 변용도 동년기자의 사진 실력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도 빛을 발한다. 온라인에 게재하는 기사에 적절한 사진은 기본이고 다른 동년기자 취재에도 사진기자로 참여한다.
“2017년 1월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커버스토리에 장영희 동년기자가 취재했을 때 제가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물으니 사진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변용도 동년기자의 집 3층은 개인 사진 전시 공간으로 쓰인다. 최근 ‘한 달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써낸 자서전에서 자신을 청학빛그림학교 교장으로 소개한 바 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죠. 영상도 배우고 싶고, 책도 3년에 한 권은 내고 싶어요. 무엇보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고 말이죠. 사진이 빛그림이잖아요. 사진은 카메라로 쓰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카메라로 그리는 수채화이기도 하고요. 제 사진 전시회 제목도 ‘카메라로 그리는 수채화’였습니다. 저희 집 3층도 좋은 전시 공간이니 야외전시도 할 수 있겠죠. 두세 명은 이곳에서 충분히 합숙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침에 주변을 돌변서 산책도 하고요.”
훗날 때가 되면 아내 이흥열 씨와 함께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싶다고 했다. 집의 규모를 땅콩하우스로 줄인 것도 훗날 여행을 하면서 살 계획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도 찍지만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도 하니 찾아가는 사진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사람하고도 오랫동안 얘기했습니다. 지금은 강아지 때문에 못 가요. 아직은 챙겨줘야 하니까.”
집 안 가장 따뜻한 자리에서 이불 깔고 사는 반려견 헨리 때문에 아직은 계획을 이행할 수 없다고 했다. 함께 산 지 19년, 앞도 잘 못 보고 귀가 나빠져 잘 듣지도 못해 재롱도 부리지 않지만 가족이기에 늘 마음이 쓰인다.
‘용도변경’ 그리고 ‘다쓰가’
인터뷰를 마치고 변용도 동년기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용어인 ‘용도변경’과 ‘다쓰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첫째 사자성어가 용도변경입니다. 후반생을 바쁘고 즐겁게 살자고 만든 말입니다. 60세에 제 삶을 용도변경했습니다. 사진이 그 출발점이었고요. 취미에 머물지 않고 영역을 확대해 강사로 방송인으로 사진강사로 저술로 활동하고 있죠. 현재 사진작가로 나름의 브랜드도 만들었고요. 포토스토리텔러, 제가 만든 세계 유일한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다쓰가’는 ‘다 쓰고 가자!’를 세 글자로 줄인 말입니다. 은혜를 되갚고 경험과 지혜, 재물을 다 쓰고 가는 것을 후반생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뭔가 물어보려 연락했던 오늘도, 여전히 바삐 살고 있는 변용도 동년기자. 그렇게 부지런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떠나 걷고 있다. 너무도 이른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고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스민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