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치. 넉넉한 허리둘레를 가진 수학 교사였다. 운동과 담쌓고 살던 어느 날.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 책상과 교탁 사이 간격을 좁혀놓은 것이다. 그날이 계기였다. 퇴근 후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마흔일곱에 보디빌딩에 입문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지 않은 시절이라 운동방법을 인쇄해서 파일철에 들고 다니며 몸을 만들었다. 대회도 꾸준히 출전했다. 마그마치 8번. 그러던 2014년, 서울시장배 마스터즈(50~59세)급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퇴직 후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가 예순셋이었다. 평소 다니던 피트니스센터에 취업도 했다. 첫 고객은 중년 여성분이었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지인들을 데리고 왔다. 입소문 덕에 바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내 경험과 노하우를 무료로, 또 지속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사표를 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50+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유튜버 양성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그곳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은 후 바로 유튜브 채널 ‘강철헬스전략’을 개설했다. 예순일곱에 유튜버가 된 것이다.
‘강철헬스전략’을 통해 시니어를 위한 기초 운동 상식부터 장소에 따른 운동 방법, 보디빌딩 대회 전 일상 등 폭넓은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아무래도 중장년은 어깨너머로 배운 운동을 무심코 따라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운동하다 다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느덧 일흔이 넘었다. 퇴직하면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늦은 때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무엇을 시작해 볼지 고민하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이 즐겁다. 내 생에 오늘이 가능 젊은 날이다.
“건강전도사 강철진입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입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디자인 이은숙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1933~2022년) 전 문화부 장관이 영면한 지 2년이 넘었다. 어느덧 구순을 넘긴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남편과의 만남을 다시 떠올린다. 그이만이 아니라 서로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격동기 예술가 부부의 뒤얽힌 삶의 흔적을 차곡차곡 더듬어 신간 ‘만남’에 담았다.
까까머리를 기르고 있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을 안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 것 같다. 머리가 짧아 얼굴이 네모로 보였다. 무언가가 안에 꽉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 호기심에 빛나는 눈이 눈부셨다.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펴낸 신간 ‘만남’ 중 한 부분이다. 그는 가장 아끼는 챕터로 해당 구절이 적힌 ‘이어령과의 만남’을 꼽았다. 핵심이고 본질이라고 했다.
“부모는 하늘이 주니 숙명적인 관계지만 결혼은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동성(同姓) 집단에서 벗어나 타성(他姓)의 인간과 새로이 결합하는 셈이니 그를 고른 과정과 이유가 중요하죠. 한 사람뿐 아니라 상대 가족과의 만남이기도 해서 더 귀중해요. 그래서 ‘만남’이라는 제목을 붙인 겁니다. 결혼 전보다는 후의 기간이 두 배나 더 기니, 그만큼 무겁게 느껴집니다.”
2주기 그 후
강 관장은 오랫동안 자전적 에세이를 써왔다. ‘아버지와의 만남’, ‘셋째 딸 이야기’, ‘서울, 해방공간의 풍물지’, ‘어느 인문학자의 6.25’ 등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자신과 이 세계가 만나는 순간을 탐구했다. 지난해 출간한 ‘글로 지은 집’은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한 여덟 개 집 이야기와 일상을 풀어냈으며, 이번 ‘만남’은 왜 이어령을 선택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곱씹으며 70년의 세월을 되짚었다.
“이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되도록 늦게 쓰고 싶었는데, 눈이 나빠져가서 콤퓨타(컴퓨터)를 오래 보고 있기 어려워졌어요. 금년 들어 자주 염증이 생기니 불안해서 내기로 한 거예요. 내게는 그에 대한 증언을 남겨야 할 것 같은 채무감이 있어요. 이제는 나만큼 알고 있는 이가 없기 때문에 교정도 직접 봐야 합니다. 요즘은 자료들을 종합해 이 선생의 연보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 애매한 곳이 더러 있거든요. 대학원 끝나고 바로 강의를 했다고 기억하는데 ‘바로’가 1960년인지 1961년인지 헷갈리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요. 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부부의 끝없는 창조
이어령, 강인숙 부부는 닮은 듯 다른 한 쌍이었다. 국어국문학과 동창생이라 예술을 최고의 가치로 바라보는 점이 같았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함께 푹 빠지곤 했다. 결벽증이 있고 시간을 구두쇠처럼 쓰며, 혼자 있기 좋아하는 성미도 비슷했다. 그러나 남편의 ‘새것 밝히기’와 부인의 ‘옛것에 집착하기’는 상반되고, 추상적인 사고와 현실적인 사고로 종종 부딪쳤다.
“가정에서는 아이의 배탈, 지붕 누수, 집안 경조사 같은 일상적인 일이 대화의 주를 이룰 수밖에 없어요. 어느 날은 집이 낡아서 온돌 파이프를 전면적으로 갈아야 하는데, 그이가 작업 중이라며 서재는 손을 못 대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새집을 지을 때까지 불을 안 때고 지낸 적도 있어요. 하지만 특유의 추상적이고 지적인 화두들은 귀가 번쩍 뜨이고 경이로웠습니다. 내 세계가 침체되는 걸 막을 수 있었지요. 아이를 기르면서 일을 병행하려니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 지적 영토가 자꾸 줄어드는 게 두려웠거든요. 한편으로는 귀동냥한 지식으로 떠들고 싶지 않아 그에게 영감 얻기를 피했어요. 작아도 좋으니 내 목소리를 지키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못해 미안한 때가 많아요.”
따로 그리고 함께인 동행
부부는 유착되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라는 철학자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강 관장은 부부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대등한 조화를 이루는 관계’였기를 바란다. 이 선생을 떠올려보면 자기 일을 외곬으로 하던 서툰 가장이었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믿을 수 있는 성실한 남자였다. 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던 사람이었다. 내면에 부인의 건강에 대한 공포가 늘 자리 잡고 있었던 사랑 많은 남편이었다. 강 관장은 그가 떠나기 전 마지막 무렵의 행동들을 하나씩 공감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상대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약점을 건드리지 않아요. 서로를 참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싸우고 나면 꼭 잘못한 쪽이 사과했어요. 만약 한쪽이 아무 말 없으면 다른 쪽이 ‘아, 내가 잘못했나 보다’ 해요. 근본적인 신뢰가 있어 가능했을 거예요. 지금에 와서는 ‘이제 당신을 더 이해하게 됐다’ 전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의 뒤를 충실히 밟고 있어요. 시인 보들레르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육체와 영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관조할 힘과 용기를 달라고 신에게 간청하는데, 그 말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눈 감을 때까지 자신을 응시하다 가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번뇌와 피로가 쌓였을 땐 하루쯤 쉬어가도 좋다. 특별히 고요한 쉼터를 찾는다면 ‘템플스테이’ 만 한 것이 없다. 사찰로 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에 들어서는 찰나, 속세를 뒤로하고 불계와 만나게 된다. 굴레와 속박의 시계는 잠시 멈추고,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흐른다. 비움을 실천하는 불계의 하루를 지나 다시 일주문을 나서면 어제와는 또 다른 속세가 펼쳐질 것이다.
2002년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2022년 기준 누적 참여자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아졌다.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내면의 성찰을 꾀할 수 있어 정적인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일상의 고민을 해소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아오는 중장년도 적지 않다. 불교 신자만 가능하다는 오해도 있는데, 템플스테이는 종교와 무관하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스님들과 함께하는 만큼 몇 가지 유의사항이 따른다. 음주 및 흡연이 금지되고, 채식 공양을 하며, 식사 시간에 말을 하지 않는 것 등이다. 사찰 내에서는 손을 엇갈리게 잡는 차수(叉手) 자세로 다니거나, 대웅전 등 법당에 드나들기 전 잠시 서서 합장 반배를 하는 등 예의도 갖추면 좋다. 이렇듯 일상에서 행하던 것들을 삼가거나 낯선 것을 익히는 과정 등을 통해 잠시나마 자기 수련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 또한 템플스테이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
템플스테이, 어디로 가서 무얼 할까?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싶다면 먼저 방문할 사찰을 정해야 한다. 2024년 4월 기준 전국에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은 158곳이다. 매년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템플스테이 공식 운영 사찰을 선정하고 있다. 평균 숙박 요금은 7만 원대로, 독방부터 2~4인방, 단체방 등 규모는 사찰별로 상이하다. 만약 오롯이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방 구성도 사전에 점검해보면 좋다.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크게 3가지 유형(당일형·체험형·휴식형)으로 나뉜다.
템플스테이가 처음인 경우 108배 등을 경험하고 싶다면 체험형을 권한다. 그밖에 발우공양, 연등 만들기 등도 즐길 수 있다. 계절 또는 참가자 특성에 따라 사찰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한 숲 체험이나 갯벌 탐사, 야생 녹차 만들기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자율적으로 고요하게 쉬어가고 싶다면 휴식형이 알맞다. 말 그대로 휴식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일과 중 예불과 공양, 사찰 안내 및 예절 교육 이외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숙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위한 당일형 프로그램도 맛보기로 해볼 만하다.
사찰마다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유형과 세부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 정보 확인은 필수다. 이때 일일이 사찰별로 알아볼 것 없이,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지도 형태로 지역별 템플스테이 사찰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사찰별 운영 프로그램 확인 및 템플스테이 예약도 해당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면, 템플스테이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VR 및 영상, 웹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둘러보며 가볼 만한 사찰을 찾아봐도 좋다.
홀연히 떠나 ‘인연처’를 만나는 기쁨
온라인을 통한 템플스테이 정보 검색 및 예약이 어려운 중장년이라면 오프라인 ‘템플스테이 홍보관’을 찾아가 보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전국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 소개 및 참가 예약 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템플스테이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스님과의 차담, 합장주 만들기, 연꽃등 만들기 등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상시로 운영한다.(전화 문의 및 예약 가능)
템플스테이 홍보관 부관장으로 방문객들을 만나온 선주스님은 “템플스테이 참여자 대다수가 ‘절에 오니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인의 삶은 빡빡하고 여유가 부족하다. 반면 속세를 벗어난 사찰이라는 공간은 여백이 많다. 그로부터 얻는 여유와 비움이 쉼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오랜 고요함 속에서 삶을 관조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관 방문객 중에는 사찰 추천을 부탁하는 이가 종종 있다. 선주스님은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도 많지만, 우연히 발견했거나 나에게 어떤 끌림이 주는 곳을 찾아가도 좋다. 그러면 그게 곧 나의 ‘인연처’가 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곳만의 멋과 즐거움이 존재한다. 특별히 준비할 건 없다. 어떠한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만 가져가면 된다. 계획을 세우고 기대를 갖기보다는 홀연히 떠나보길 권한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템플스테이 홍보관
ㆍ위치 :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6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1층
ㆍ운영 : 월~금요일 09:00~19:00 토·일요일 및 공휴일 09:00~18:00
도심에서 즐기는 템플스테이 ‘화계사’를 가다
‘가장 바쁜 곳(서울)에서의 진정한 휴식’, ‘도심 속 힐링’. ‘화계사 템플스테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참여자들이 남긴 글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화계사는 도심 속에서 템플스테이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접근성이 용이한 서울시민뿐 아니라 지방 및 해외 방문객에게도 인기가 높아 매달 예약 인원이 금세 마감된다.
수유역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화계중학교 옆 언덕배기에 화계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기준으로 속세와 법계가 나뉜다는데, 이곳은 실제 풍경도 그러하다. 문 바깥으로는 도심이, 안쪽으로는 자연이 펼쳐진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화계사 템플스테이’ 건물이 보인다. 참여자들은 이쪽에서 방 배정과 간단한 프로그램 안내를 받는다. 화계사에서는 체험형 프로그램 ‘나를 위한 행복여행’과 휴식형 프로그램 ‘오직 쉴 뿐!’을 운영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휴식형이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지도 법사인 혜량스님과 함께 도량을 산책한다. 이후 일정은 공양인데, 템플스테이에서의 저녁 식사는 다소 이른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잘 차려진 사찰음식을 먹을 만큼 덜어 남김없이 먹는 것이 원칙이다. 묵언 수행도 이뤄진다. 식사 후에는 사용한 식기를 설거지하는 것으로 공양이 끝난다. 이른 저녁 식사로 출출할 참여자들을 위해 숙소 건물에는 주전부리가 놓여 있다. 마지막 일정인 저녁 예불을 마치면 오후 9시에 소등하고 취침하는 것으로 첫날이 마무리된다.
한 중년 남성 참여자(49)는 “직장에서 중견 역할을 하다 보니 고민도 많고 피로감도 크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휴식을 즐기고 싶어 템플스테이를 찾았다”며 “무조건 내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 번쯤 이렇게 쉬어가기도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기도 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템플스테이를 통해 얻었다. 동년배인 아내에게도 권하고 싶다. 체험형 프로그램은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와도 좋겠다”며 소감을 들려줬다.
이튿날에는 보통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 스님과의 차담 등이 이뤄진다. 특히 스님과의 차담은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 은은하게 우린 차 한잔 곁들이며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혜안을 얻기도 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기도 한다.
혜량스님은 “차담을 해보면 연륜 있는 분일수록 불교의 철학과 교리에 대한 흡수가 빠르다. 그동안 산전수전 겪어왔을 중장년들은 인간관계의 고충,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을 털어놓는다”며 “이곳에서 도심을 바라보면, 조금 전까지도 내가 씨름하던 속세가 멀찍이 느껴지고 어떤 풍경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 또한 분리하고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죽을 듯 괴로웠던 문제들도 무언가의 일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거나 손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등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화계사 템플스테이
국적, 나이, 성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만, 서로의 감정이나 반응을 깊게 이해하며 인연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오해가 쌓여 오히려 관계를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며 유대감은 쌓되, 타인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버 밴드,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처럼 다양한 SNS로 나를 표현하고 남들과 교류하는 이들이 늘었다. 소통 방식은 각자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싶어 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런 행동을 질색하며 경조사나 업무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소통하려 한다. 개성 있고 자유로운 SNS 활동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배려하며 예의를 지킨다면 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한 번 더 짚어야 할 예절
누군가를 만날 때는 늘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온라인 환경도 다르지 않다. 말이나 행동은 우리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게시물이나 댓글이 타인에게 나의 가치관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행동이나 무례한 말투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SNS는 글 형태의 메시지가 주된 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과도한 외래어, 전문 용어 대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개인적인 소식을 무분별하게 공유하는 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직접 혹은 단체 공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더욱 피하자. 개인 채널에 게재하는 사진이나 글이 상대방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가 고민해봐야 한다. 폭력성·음란성을 띠거나 차별적인 콘텐츠는 타인에게 상처로 남기 십상이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의 수위와 완급을 조절하듯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맺은 친구와 내가 무조건 같은 이용 행태를 보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룹이나 페이지에 동의 없이 초대하거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라고 강요하거나, 바로 댓글 달기를 바라면 안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포함이다. 관계의 확장이나 활동 주기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존중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직장에 출근한 시간대에만 SNS나 모바일 메신저를 활발하게 주고받는 ‘출근 친구’ 사이도 등장했다. 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최대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줄이고 개인 시간을 지켜주는 셈이다.
저작권 침해 및 개인정보 노출 주의
만남과 소통, 정보 교류, 문화 창조가 이루어지는 무궁무진한 공간이지만 사생활을 침해받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높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생년월일, 주소, 휴대폰 번호 등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프로필 공개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하자. 모르는 사람이 친구를 신청한다고 해서 함부로 수락하면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의심스러운 링크나 첨부파일을 클릭하지 말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이종구 SNS소통연구소 대표는 안티바이러스, 방화벽, 경찰청 사이버캅, 시티즌코난 등 보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것을 권했다.
SNS 활동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오히려 소외감, 뒤처짐, 외로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SNS 사용으로 직접 만남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중년 여성의 스마트폰을 통한 SNS 사용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42~52세 여성 1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을 통한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는 면대면 상호작용 없이도 생활을 공유한다고 오해해 직접적인 연락 횟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일과 가정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나만의 시간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 대표는 “트렌드 파악뿐 아니라 인맥 관리, 비즈니스 관계 맺기, 멘토링 받기 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과도한 이용은 금물”이라며 “개인적인 공격이나 비방을 삼가고 최대한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소통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이어지는 소태정 고개 국도변에 아담한 카페가 있다. 외벽에 진분홍색을 입혀 로맨틱한 멋을 풍기는 가게다. 과하지 않게 잔잔한 인테리어로 개성을 돋운 내부는 봄 햇살 내려앉은 듯 상쾌하다. 통유리창 너머에선 연둣빛 숲이 서성거린다. 이 카페는 귀촌인 임진이(48, 카페 ‘비꽃’ 대표)가 폐허처럼 방치됐던 건물을 임대받아 재생했다. 셀프 리모델링으로 되살렸다. 미술을 전공한 그에겐 결혼 전 미술학원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카페 한쪽 벽면에 흑백 모노톤으로 그린 벽화가 있는데 그의 작품이다. 카페를 차린 건 4년 전이었다.
전주시에서 살았던 임진이는 2014년 이곳 산 많은 고원지구 진안군으로 귀촌했다. 그에겐 세 자녀가 있는데 초등학생이던 딸 둘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시골 생활에 입문했다. 아토피는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과 불편의 강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난치성 질환이다. 그러니 엄마로서 심정이 오죽했으랴.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다. 그러다가 시골의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르는 게 유력한 대안이라고 여겨 시골에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내세워 귀촌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진이는 밀어붙여 뜻을 이루었다. 남편은 전주에 머물러 하던 사업을 차질 없이 계속하고, 나머지 가족은 귀촌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것.
이렇게 주말부부가 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익숙한 도시를 떠나 낯설고 고즈넉한 시골로 삶을 이동한다는 게,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시골살이에 쏟아붓는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만큼 딸들의 아토피 치유에 대한 바람이 간절했다. 그래서인가, 지성이면 감천인가, 마침내 아이들이 피부 건강을 회복했다.
“시골의 좋은 자연환경과 깨끗한 먹거리가 가져다준 성과였다. 정서적인 면에서도 아이들은 바람직하게 성장했다. 매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자랐으니까. 아이들이 시골 생활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의젓하게 성숙한 셈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도 학교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했으나 그마저 기우에 불과했다. 딸들이 자랑스럽다.”
아이들의 건강 회복을 계기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나?
“우리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며 잘 정착했다. 초기 한때 힘에 부쳐 돌아갈 궁리도 했지만 아이들을 고려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나 자신이 한결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귀농·귀촌인 대상으로 멘토 역할도 한다지?
“그렇다. 서서히 일의 범주가 확장되면서 성과가 주어졌고, 자연스럽게 시골살이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처음엔 어려운 게 많았다. 전주 친구들이 이런 얘길 할 정도였다. ‘그것 봐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난 시골에 가지 않는 거야!’ 그랬던 친구들의 말이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어! 나도 촌에서 살아볼까?’로.”(웃음)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나?
“귀촌 직후 집을 지으려다 실패한 경험을 꼽아야겠다. 주민과 진입로를 놓고 분쟁이 빚어져 결국 건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곤 주택을 임대해 사는 것으로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집의 상태가 허술해 여름엔 몹시 더웠고, 겨울엔 몹시 추웠다. 그렇게 초기 4년을 이모저모 불편하게 살다 마을과 좀 떨어진 산 아래에 비로소 집을 지어 이사했다.”
진입로를 둘러싼 외지인과 원주민 사이의 마찰은 하나의 풍속처럼 흔해졌다. 역귀농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법은 무엇이라 보나?
“희한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두 번째 집 역시 진입로 문제가 있어 아직까지 고충을 겪고 있다. 사전에 법적인 문제를 충분히 점검했지만, 저 멀찍이 있는 진입로 일부의 소유권을 가진 주민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진입로가 폭우에 망가져도 아예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귀농·귀촌을 하려는 분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시골의 토지를 살 때 법적인 문제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마을에 믿을 만한 지인 하나쯤 미리 만들어 해당 토지의 현황을 상세히 파악함으로써 불운을 예방하라는 걸.”
원주민의 텃세가 두려워 귀농·귀촌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일까?
“텃세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을망정 그걸로 마을 인심 전체를 측정할 일은 아니다. 한두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불상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난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을 실감하며 살았다. 서로 돕고 나누는 관계를 추구할 때 정착이 수월해진다.”
임진이는 아침 일찍 카페로 출근해 문을 연다. 카페 앞 국도를 통해 전주로 출근하는 직장인 중 카페에 들러 샌드위치 같은 아침 간편식이나 차를 주문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아서다. 운영은 순조로울까?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들이닥쳐 전반적으로 여의치 않았다. 주변 일대에 카페들이 급속히 늘어 경쟁도 심화됐다. 진안에서 생산되는 청정 농산물로 만든 음료와 간편식을 팔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았다. 식재료의 원가 대비 마진도 기대치 이하였다.”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보나?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 다시 뛰고 있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해 공간의 구색을 바꾸었다. 진안 홍삼이나 벨기에 와플이 들어가는 브런치 메뉴도 개발했다. 국도를 오가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메뉴도 만들었다. 으쌰으쌰, 이제 새로 출발한다! 그렇게 속으로 외치고 있는 거다.(웃음) 좋은 반향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뜻밖에 얻은 벽화 그리기 직업
삶이 원래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질주를 했으나 돌아보면 우습게도 원래 자리 그대로다. 그렇다고 무슨 악마의 계략이 거기에 개입됐을 리 있으랴. 관점을 바꾸어 바라보면 시련도 강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다. 임진이는 부진했던 카페의 상황을 그렇게 긍정의 눈으로 읽어낸다. 사실 귀촌의 날들 속에서 그에게 닥쳐온 고통과 불편의 가짓수가 한둘에 그치지 않았단다. 그러나 그걸 위기가 아닌 충전의 기회로 간주해 허들을 넘어서길 거듭한 것 같다. 고생이 오히려 정신을 단련시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해준다는 걸 깨달으며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래 결과적으로 그의 귀촌 생활은 순항을 위주로 펼쳐졌다. 바야흐로 이젠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은 존재로 부상했다. 그럴 수 있게끔 부지런히 뛰었다.
“카페 일만 본업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일감을 갖는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가장 보람차고 즐거운 일은 마을 벽화 그리기다. 이건 재능기부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일이 커졌다.”
마을 벽화를 그려 수익을 얻는가?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그려준 마을 벽화가 맘에 든다며 행정 쪽에서 아예 사업을 위탁해주더라. 그래 주민들과 협업해 본격적으로 벽화 작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진안군 관내 20여 개 마을에 100여 점의 벽화를 그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발휘해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신선한 얘기다.
“내가 미술을 전공했지만 누가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할 경우엔 뜯어말렸다. 그림으로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에. 사실 시골에 살면서 미술 관련 작업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발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그랬는데 직업적으로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주어졌다. 보수는 많지 않지만 돈보다 값진 보람이 크다. 마을 벽화 역시 일종의 창작 행위이기 때문에 작품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벽화를 완성한 뒤 밝고 깨끗하게 변한 마을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지역주민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시골에서 잘 살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얘기가 있다. 주민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당신의 비결은 무엇인가?
“대접받기보다 먼저 대접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이웃에게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가령 고령층이 다수인 시골에선 꼭 필요한 민원조차 넣지 않는 걸 알고 내가 나섰다. 가로등이나 과속방지턱 설치에 관한 민원 신청을 해 해결하는 식으로.”
실로 치열하게 살았다
임진이에겐 동네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하나 있다. ‘민다리’라 불리는데 ‘민원의 다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관심 갖고 찾아보면 나에겐 물론 남에게도 좋은 일은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진안군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주민 편익에 관련한 의견 제시도 한다. 이렇게 생활상의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그러자 도시에 살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열리지 않던 안목이 열리더란다. 아울러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능동적으로 변했고.
“내가 참여하는 공공활동은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소소한 일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에 관심 갖고 움직이다 보면 얻는 게 많다. 우선 인적 자산이 형성된다. 나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선한 사람이 아니건만 남들이 선한 사람이라고 할 때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럴 땐 정말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곤 한다. 이런 감정은 도시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시골도 자본주의의 흐름을 타고 돌아간다. 경제적인 면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귀촌 이후 남편의 사업 부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부를 누린 적도 있지만 졸지에 정반대 상황과 직면한 셈이다. 하지만 돈이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 아닌가? 낙심하진 않았다. 다만 귀촌 10년 중 절반 이상은 실로 치열하게 살았다. 시골이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덕분에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 경제적인 면의 성공? 글쎄, 돈보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삶에 더 큰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귀촌을 통해 비로소 삶의 진정성 있는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산다는 건 복잡한 퍼즐 맞추기와 닮았지만 희로애락을 거쳐 마침내 완성으로 가는 드라마인가? 솔깃한 이야기에 즐거웠다.
임진이가 주는 귀촌·귀농 Tip
•땅을 사거나 집을 짓는 일을 서두르지 말자. 적어도 2년 정도 집을 임대해 살면서 마을의 물정을 익히고 풍토를 파악, 과연 나의 성향과 어울리는 동네인지 판단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땅을 구입할 때는 진입로에 따른 원주민과의 분쟁 소지가 없는지 사전에 철저하게 확인하자.
•시골에 가면 관의 많은 지원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산이다. 자립 의지를 가지고 뛰어들어야 한다.
•시골의 제도권 교육 환경은 오히려 도시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승마, 골프, 사격까지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자녀 교육에 차질이 생길까봐 우려해 시골 생활을 꺼려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시골의 자연환경 속에서 한결 듬직하게 성숙한다.
•재력에 의지한 과시적 처신은 금물이다. 원주민과 갈등을 빚고 외로운 처지에 몰리기 십상이니까.
노후를 활기차게 보내고 싶은 중장년들이 매월 약 3만 명씩 모이는 곳이 있다. ‘중장년의 즐거운 놀이터’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기반 교육 플랫폼 큐리어스다.
‘전화 한 통만 주시면, 아들보다 친절하게 가르쳐드립니다.’ 큐리어스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김진수 큐리어스 대표는 ‘함께라는 가치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김대엽 CTO, 이다엘 COO와 미션드리븐을 공동 창업했다. 김진수 대표는 “중장년분들이야말로 크리에이터”라면서 “지식과 경험이라는 진주가 정말 많은데, 어떻게 목걸이로 꿰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진주를 잘 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화 한 통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다 도와드리는 휴먼터치로 중장년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큐리어스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약 3만 명의 ‘오백이’들
큐리어스를 찾는 이들의 90%는 40대 이상 중장년으로 50대가 가장 많으며, 월 방문자 수는 약 3만 명에 이른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고 있지 않지만 큐리어스를 경험한 사람들이 주변 지인들에게도 적극 소개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큐리어스를 좋아하는 팬덤도 생겼다. 큐리어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참여하는 약 1500명의 팬들은 ‘오백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궁금하면 500원’이라는 농담을 하다가 부르게 된 애칭이다. 참여자들은 ‘오백이들 굿모닝’, ‘오늘도 굿모닝’이라는 뜻으로 매일 아침 ‘오모닝’이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큐리어스 서비스는 크게 전자책과 어울림으로 나뉜다. 전자책은 PDF 형태의 전자책을 올리고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콘텐츠 구성 방법부터 표지 디자인과 내지 템플릿까지 큐리어스 구성원들이 도와준다. 국어 교사, 교정교열 전문가, 블로그 인플루언서, 브랜딩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코치들도 있어 원하면 1:1 유료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해 아직 1년이 채 안 됐지만, 큐리어스에 올라온 전자책은 200여 건에 달한다.
어울림은 온오프라인 모임 플랫폼이다. 어울림에서 모임을 개설하는 이들은 ‘리더’라고 불린다. 중장년이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모임 개설을 원하면 ‘전화 한 통만 거시라’고 한다. 본인도 잘 알지 못했던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상세페이지 구성부터 모임 개설까지 모든 것을 도와준다. 큐리어스에서 모임을 개설한 리더들은 300여 명, 이 중 수익 창출에 성공한 리더는 100여 명에 이른다. 현재 오픈되어 있는 모임은 1000여 개인데, 앞으로 열릴 모임도 1000여 개에 달한다. 큐리어스 플랫폼을 방문하는 사람은 월 약 3만 명으로 이 중 약 1만 명이 회원가입 후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큐리어스에서는 모임뿐 아니라 강의도 열린다. 배우고 싶어 하는 중장년들을 위해 유명 연사들을 초청해 매주 화요일 ‘궁금하면 500원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큐리어스의 가장 큰 특징은 ‘리텐션’이 높다는 것이다. 리텐션이란 소비자가 모임을 참여해본 뒤 다른 모임을 또 참여하는 것, 리더가 모임을 개설해보고 다른 모임을 또 개설하는 것을 말한다. 구매자 리텐션은 지난달 구매 후 다음 달에 또 구매하는 비율이 39%에 이르는데, 이는 유니콘 기업의 리텐션 수준이다.
앞으로 큐리어스는 ‘시니어 커뮤니티 케어’ 서비스로 거듭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활성화된 시장으로, 고령화 시대 고령자들의 배움과 나눔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각광받고 있다. 이에 국내 시니어타운 등 고령자들이 거주하는 시설에서도 언제든 원하는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장점을 결합한 온라인 모임 문화센터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사실 인간관계의 본질은 같다. 1936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지금까지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시대를 거듭할수록 사회적·문화적 변화와 함께 사람들 사이 소통 방식과 관계의 범위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한 번에 완화할 수 있는 한국 사회 속 ‘필승 전략’이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다. 우연히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걸 알았을 때 주변 맛집, 교내 명소, 동아리 등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다 보면 금세 친해진 기분이 든다. 지연이나 혈연은 말할 것도 없이 서로를 이끄는 매력 중 하나다.
속상한 일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세 요소 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상대와 거리를 좁히긴 쉽지 않다고 여긴다. 공통점을 찾거나 재미있을 만한 주제를 꺼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내다 결국 출신 성분으로 다시 돌아가고 말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인간관계의 지평이 흔들리고 있다. 흐름을 파악해 또 다른 필승 전략을 찾아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
◇취향을 통한 ‘모임 속 모임’
전염병이 도래하면서 3여 년 동안 사람들의 교류가 일시적으로 단절됐다. 서로 간 소통의 빈도와 강도는 단박에 복구되기 어려웠다. 그 사이 취향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2023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나이, 사회적 지위, 의례 강요와 같은 견고한 전통적 기준을 통한 관계 맺기를 탈피하고자 하는 정서가 짙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취향이 비슷하면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다고 말한 비율이 84.7%에 달했다.
일부는 익숙한 관계와 개인의 취향이 결합한 모임을 선호하기도 한다. 자신의 과거를 고려한 동창회나 회사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취향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 한다는 의미다. 직장 내 살롱문화(책, 와인, 스포츠, 맛집)가 그 예다. 수평적 형태만 유지된다면 한 번의 모임으로 사내 인맥 관리와 취미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가벼운 경험 공유 소재 외에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의미(비건, 환경보호, 정치 성향)를 공유하고자 하는 모임도 생기고 있다.
◇찐친과 겉친 사이
‘2024 트렌드 모니터’에 따르면 무조건 인맥을 확장하려는 욕구는 줄고, 좁고 깊은 관계를 통해 관계의 효율을 추구하는 추세다. 일부는 SNS도 폐쇄형식으로 운영한다. 최근 개인 SNS의 공개나 운영은 대체로 이미 ‘잘 아는 관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었고(65.8%), 해당 관계끼리만 소통을 시도하는 편이었다.(65.3%) 반면, ‘찐친’ 외에는 필요할 때만 찾는 일회성 관계로 여기기도 한다.
‘티슈 인맥’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목적과 친밀도, 중요도에 따라 의도적으로 색인을 붙여 분류하는 ‘인덱스 관계’를 소개했다. 이명수 연세라이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온라인 만남이 익숙해진 만큼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될 기회도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목적을 기반으로 인맥을 관리하는 경우가 나타난 것”이라며 “다만 활동 기록이나 메시지 답장 시기가 실시간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서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상식? MBTI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처음 본 사람에게 서먹함을 깨는 용도로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최근 온라인에 간이 검사법이 확산되면서 광풍이 불었다. MBTI는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다. 여러 문항을 통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4가지 지표 중 각각 어떤 특성에 가까운지 분류한 뒤 해당 지표를 조합해 총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성격을 구분한다.
SNS나 유튜브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MBTI 유형별 연애·공부·관계법 등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특히 주목받는 지표는 T와 F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고 흐름과 반응 양상에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친구가 “나 우울해서 미용실 가서 머리했어”라고 말했을 때 T 유형은 “어떤 스타일로 했어?”, F 유형은 “무슨 일 있는 거야?”로 반응이 나뉜다고 한다.
이명수 원장은 “MBTI는 원래 팀 프로젝트를 할 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협업 능력을 높이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며 “타인과 대화할 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상대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재미로 파악해볼 수는 있지만 그 특성 안에만 갇히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은퇴 후 소원해지는 인간관계에 실망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안부도 주고받고 종종 식사도 했던 사이인데, 회사를 나오니 연락도 만남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명함이 없다고 얕보나’, ‘내가 돈을 안 번다고 무시하나’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편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만약 그렇다면 주변은 잠시 제쳐두고 나와의 관계부터 돌아봐야 할 때다.
퇴직 이후의 삶이 길어지며, 노후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원활하고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서는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은퇴의 말’, ‘은퇴의 맛’ 등의 저서를 펴내며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을 만나온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얼마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는 자신과의 관계에 달렸다”고 언급했다. 그는 “직장 생활로 생겨난 공적 관계망은 보통 퇴직 후 6개월 이내 소멸된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분일수록 이러한 변화에 취약하다. ‘그동안 나를 잘 따랐던 부하 직원들이 연락하겠지’ 같은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쌓이면 절망하게 된다. 점점 위축되고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도 버럭 하고 화를 내는 등 이른바 ‘앵그리 올드’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서는 회피하고 멀리하게 마련인데, 결국 대인관계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들 좋아할까
한혜경 교수의 경험에 의하면 은퇴 후 화가 많아지고 이를 표출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다고. 겉으로는 타인을 향해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이는 결국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단다.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심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토로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과의 관계가 평온하고 긍정적인 이들은 타인과의 관계 또한 순조로운 편이다. 한 교수는 “최근 뇌과학 분야 연구 중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나에 대한 정보처리와 타인에 대한 정보처리가 동일한 뇌 신경망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나를 좋게 보는 사람이 남도 좋게 보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한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와의 관계, 자기 내면과의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이 곧 타인과의 관계에도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능숙한 사람들은 웬만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회복탄력성 또한 높다. 반대로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소통이 어려운 이들은 사소한 일도 크게 힘들어하고, 회복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교수는 “살다 보면 유난히 사람들이 미워지거나 괜히 무시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혹시 내가 나를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마치 거울처럼 누군가에게 갖는 나의 마음이 알고 보면 나를 향한 마음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인정중독에서 벗어나 ‘셀프 칭찬’ 필요해
경쟁과 성취를 강조해온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중장년 세대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잘 사는 삶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가령 어느 대학과 직장을 다닐지, 얼마만큼의 집을 사고 무슨 차를 타야 할지 등 자신보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따르는 경향이 적지 않다.
한혜경 교수는 “이러한 삶이 계속되다 보면 인정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타인 때문에 상처받으며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았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30~40대에는 타인의 관심과 인정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하지만, 50대 이후까지 이에 얽매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를 더 행복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지 말아야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엔 차이가 존재한다. 그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잘난 척, 괜찮은 척이 아닌 솔직한 나를 드러낼 수 있을 때 개인적으로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도 실제 자신을 향한 칭찬에는 의구심을 갖거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장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한 교수는 자신의 좋은 점과 강점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 매우 가치 있기에, 때때로 스스로를 칭찬해보는 시간도 마련해보길 권했다.
나를 위한 삶, 건강한 자기중심성 갖기
은퇴 후 또는 자녀 출가 후에도 끊임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부모들이 있다. 가령 노후자금이 부족한데도 자녀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거나, 몸이 아프고 힘든데도 손주 육아를 돕는 등 자신보다는 자녀를 중심으로 노후를 살아가는 것이다. 타인 중에서도 자녀가 주는 기쁨이 상당하지만, 결국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지속적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행복한 노후를 가꿔가기 어렵다.
한혜경 교수는 “초고령사회, 수명은 길어지고 1인 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어떻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누가 끝까지 나를 돌봐줄까’, ‘누가 내게 삶의 기쁨이 남아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꼭 해봐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독립돼야만 자신을 스스로 돌보며 잘 지낼 수 있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자식이나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오래오래 유지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나를 위하고 사랑해줄 사람,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할 사람은 곧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한 로저스(C. Rogers)는 말년에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보았고,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내가 매우 아프지만 내 삶을 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 교수는 “로저스의 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결국 나이 들수록 ‘건강한 자기중심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건강한 자기중심성은 본인의 가치와 독특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태도다. 스스로를 홀대하고 혹사하는 건 짧고 굵게 살던 시대의 논리다. 100세 넘게 사는 요즘 시대에 필요한 건 자기중심적인 삶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와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할 때, 타인도 나를 그렇게 존중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역사 쓰기’로 회복하는 나와의 관계
교수 은퇴 후 현장에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나의 역사 쓰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혜경 교수는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의 역사를 쓴다고 해서 유명인이 자서전을 내듯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나의 삶을 한 권의 책이라 여기고 목차를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은퇴 후에는 대인관계를 비롯해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인생의 해답 또한 내 안에 있는 법. 찬찬히 과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발견하게 된다.
한 교수는 “나의 역사 쓰기란 내가 나에게 나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현역 시절 이력서에 보기 좋게 썼던 나의 모습과 달리,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어보는 것이다. 퇴직 이후 인생 2막 또는 3막을 준비하려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잘 이해해야 한다. 나를 헤아리는 과정 속에서 자신과의 갈등 고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나의 역사 쓰기도 너무 말년에 했다가는, 과오를 발견하고도 ‘이제 와서 달라질까’, ‘너무 늦었구나’라며 개선할 시간이 없다고 여겨 절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나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의 역사를 꼭 한번 써보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 저 , '나의 역사 쓰기' 운영)
은퇴 후 밥줄은 대부분 네트워킹으로 연결된다. 인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퇴직하고 나면 일로 만난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줄어든 수입 탓에 있던 인맥도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모든 관계를 깊게 유지할 수 없는 시기지만, 역설적이게도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 마케팅팀 대리입니다.”
이 인사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회사명으로 어느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지 유추할 수 있고, 마케팅팀에 있다고 했으니 그의 직무가 무엇일지도 추측해볼 수 있다. ‘대리’라는 직함이라면 회사에서 일한 지 몇 년 차쯤 되었을 것이고, 어떤 정도의 일을 해봤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회계사, 가정주부, 자영업자 등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는 그가 대략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 나를 나타내는 직함이 없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현재 딱히 하고 있는 일이 없어 내 역량을 표현할 직업이 없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에는 공식적인 채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알음알음’ 채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트워킹을 하려면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기지만 동시에 더 넓은 관계를 형성하기가 부담스러운 시기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깊은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면, 상대가 나를 한 번만 봤더라도 오래 기억하게 할 수는 없을까? 무소속인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을 수 있을지 방법을 알아봤다.
1. 개인 명함 만들기
“아, 제가 지금은 명함이 없어서요….”
은퇴 후 사람을 소개받을 때 상대에게 명함을 받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왠지 작은 목소리로 말끝도 흐리고 ‘지금은’ 없다는 말을 변명처럼 덧붙이게 된다고. 직장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명함이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명함은 자기소개서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소속, 직함,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등 많은 정보가 담기기 때문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 명함 한 장으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된다. 현재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개인 명함을 만들어보자.
회사·직무·직급을 소개하는 명함이 아니기 때문에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네잎클로버나 꽃을 말려 코팅한 명함, 한지로 만든 명함 등 나의 취향이나 특징이 나타나도록 만들어도 좋다. 오히려 보통 명함과 달라 기억에 남는 효과가 있다. 직함은 내가 꿈꾸는 것, 혹은 나를 표현하고 싶은 것으로 적어보자. 자유인, 기업 성장 코디네이터 등 무엇이든 좋다. 내가 규정하는 나, 앞으로 되고 싶은 나를 나타내는 단어면 충분하다.
2. 동물로 표현하기
“안녕하세요, 독수리가 되고 싶은 곰입니다.”
30년 직장 생활을 하며 장착한 내 능력과 이력을 어떻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화려한 경력을 줄줄 늘어놓다 보면 ‘왕년에~’로 시작하는 자기 자랑이 될 수 있다. 자기소개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궁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비유나 은유는 꽤나 인상적인 자기소개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나의 모습을 닮은 동물과 5~10년 뒤 되고 싶은 나를 닮은 동물을 떠올려 소개해보자. 앞서 예시로 든 문장은 ‘곰처럼 우직한 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독수리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는 의미를 담은 소개다.
동물이 아니어도 좋다. 물건, 색깔, 계절, 노래 등을 활용해 나를 표현해보자.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상대에게는 ‘왜 독수리가 되고 싶지?’라는 호기심을 일으키는 소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은퇴 이후라면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도 중요하기에 미래 지향적인 자기소개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3. 나 활용법 소개하기
비즈니스를 위한 자기소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나 활용법’을 안내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 활용법’이란 내가 과거에 무엇을 했고 어떤 점이 강점이어서 앞으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즉 상대가 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리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PR(홍보)인 셈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일방적인 소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까지 짚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과거에 했던 일들을 정리해서 나의 강점을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전문성이 무엇인지 정리됐다면, 만나는 상대에 따라 어떤 협업을 할 수 있을지 소개한다. 나의 전문성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어떻게 도움이 될지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했다면 정리 정돈, 요리, 청소 등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전문성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시간이 없는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위해 도시락으로 건강과 시간을 다 잡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거나, 집 안 정리 컨설팅으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돕는 데 적격이라는 등의 PR을 해볼 수 있다. ‘나 활용법’은 내 이야기를 들은 상대가 필요한 순간에 나를 떠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움말 앙코르브라보노 협동조합 김창렬 이사, 박영록 이사, 박경임 이사장, 윤서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임정민 임파워에듀케이션 대표
문득 일상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계절이 바뀌면서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때로 막연할 때가 있다면, 사찰을 찾는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가만히 품어주고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거기엔 세월의 풍진이 켜켜이 쌓인 느티나무가 버텨왔고, 깊은 역사도 스며 있다.
오래된 큰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윽한 숲이 있고, 산사의 자연 풍광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예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 마음을 간질이는 봄이다. 초파일 즈음 맑고 깊은 기운 가득한 너른 절터로 떠나는 마음 여행이다.
부론, 얼핏 우리말인가 싶었다. 부드러운 외국어 같기도 한 부론은 강원도 원주 서남단에 위치한 지명이다.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골짜기 부롯골의 보를 막아 논농사를 지을 때 보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했던가. 원주 서쪽 경계의 호젓한 섬강과 충주 쪽에서 흘러오는 남한강 합류 지점의 비옥한 평야 덕분에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세곡 운송을 위한 흥원창이 있었고 경제활동의 요지였다. 각 지역의 사람들과 물자가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말이 많이 오가는 언론의 중심지가 되었다. 말 그대로 ‘말이 많이 오가는 곳’, 부론(富論)이었다고 전한다. 당연히 국가 지도 이념이던 불교의 번창으로 이어졌다. 부론면, 여기에 두 곳의 대형 폐사지 터가 남아 있다.
맑은 산천과 강물이 펼쳐지는 아침나절에 원주에 닿았다. 지역이 크고 넓은 들판이라 하여 불리는 원주(原州)다. 들녘 풍경이 유독 눈부신 것은 봄 햇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른 아침 윤슬이 반짝이는 남한강과 느릿한 물길이 산천에 고이 깃든 세월을 헤아리며 기분 좋게 떠밀려가듯 원주 땅에 들었다.
원주에는 3대 폐사지가 있는데 남한강과 섬강을 따라 천년의 흔적을 지닌 법천사지(法泉寺址), 거돈사지(居頓寺址), 흥법사지(興法寺址)가 자리 잡고 있다. 3대 폐사지를 둘러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원주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그중 부론면에 위치한 법천사지와 거돈사지는 천년사지길을 따라 숲과 들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다. 남한강 주변 천년 고찰의 흔적을 따라 걷는 17.5km의 원주굽이길 10코스 천년사지길은 도보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테마 여행길이다. 그 길에서 화려하고 융성했던 시절의 영화로움과 무너져가는 역사를 지켜보며 세월을 견뎠을 노거수를 만나고 들꽃을 만난다.
웅장했을 규모의 전각은 사라지고 폐사지는 드넓다. ‘진리가 샘물처럼 솟는다’는 뜻을 지닌 부론면 법천리의 법천사(法泉寺)는 사적 제466호다. 지금은 너른 터만 남아 휑하니 썰렁하다. 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다. 고려 문종 때 당대 제일가는 고승 지광국사가 승려의 길로 접어든 곳이며, 말년에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법천사지는 입구에서 건너편 끝까지 보이는 마을 전체가 절터라 하니 당시의 규모를 짐작해볼 만하다. 현재는 잘 정비되어 초석을 볼 수 있고, 흙을 걷어낸 석재들이 널리 분포된 모습이다. 이 지역은 예부터 담배 농사가 활발하던 곳이다. 지금은 주민들의 이주로 담배건조장 건물이 철거되었지만, 법천사지 내 건조장은 그대로 남아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드넓은 절터에 서면 상상력이 발동된다. 당시 대사찰 안에서 오가던 수백 명의 승려와 백성들이 오버랩된다. 사찰 건축물이 임진왜란으로 불타기 전에는 당시 내로라하는 승려는 물론이고 서거정, 한명회, 권람 등 학자들이 시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규모의 사찰 공간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당대 논객들의 이야기가 허공에서 맴도는 듯하다. 폐사지터가 주는 공간의 매력이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명봉산 자락 아래 남겨진 절터는 권역별로 구분해놓았다. 걷다가 잠깐씩 멈추어 당시 이미지를 상상해볼 만큼 넓다. 군데군데 석재들이 흩어져 있고, 절터를 둘러싼 산기슭에 탑비가 보인다. 지광국사가 입적하자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과 공적비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수난이 시작된다. 지광국사탑은 한국의 석탑 중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일본의 수탈로 밀반출되었다. 그 후 반환되어 경복궁과 대전 등으로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유랑생활을 해왔다. 최근에 본토인 원주로 돌아왔다.
2023년 법천사지 터 옆에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이 개관되었다. 지상 2층 규모의 전시관 앞쪽으로는 옛 법천사 입구임을 알리는 당간지주가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 기획전시홀이 있고, 로비에 ‘무단 반출 그 후, 112년의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온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해체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머잖아 완성된 모습을 기대해본다.
유적전시관 안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발굴 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전시관 안의 법천사지실과 열린 수장고, 기획전시실에서 영상자료와 수천 점의 귀한 불교 미술품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천년 고찰의 살아 숨 쉬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 법천사지의 매력을 생생히 확인할 기회다.
법천사지를 나와 자동차로 10분쯤 완만한 언덕길을 달리면 느티나무가 보이고, 거기서부터 사적 제168호인 거돈사지 터가 펼쳐진다. 고려시대 국사였던 원공스님이 기거하던 곳으로 의미가 있는 거돈사지(居頓寺址)다. 축대 끄트머리의 느티나무가 절터를 호위하듯 서 있는 옆으로 돌계단을 오르면 보물 제750호 거돈사지 중앙의 삼층석탑이 눈앞에서 자태를 보인다. 단순하면서도 멋스럽다. 탑에 그려진 연꽃무늬 조각이 놀랍도록 사실적이고 자연스럽다. 탑 뒤편으로 금당 터가 반듯하게 잘 보존되었다. 이 자리에 큰 법당이 있었을까 혼자 추정해본다. 절터 저편 산자락 입구에 있는 원공국사탑이 숲과 어우러진다. 그 옆길로 내려오면 길가에 원공국사의 생애와 공적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는 원공국사탑비가 모셔졌다.
부론면에서 조금 떨어진 흥법사지는 원주시 지정면에 자리 잡고 있다. 좁은 마을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밭일을 하던 동네 어르신이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바라보신다. 민가와 밭으로 둘러싸인 진공대사탑비와 삼층석탑이 덩그러니 고적하기만 하다. 한때 왕사가 머물던 대찰이었던 흥법사는 고려 전반기의 선종계 사찰로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를 돌아보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역사 속을 거닐듯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또는 드넓은 옛터에서 도심의 소음을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기도 하다. 요즘의 핫한 볼거리나 복잡한 세상에서 누리는 도시 문화의 즐거움과는 확연히 다른 시간을 맛보는 공간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숨 돌릴 수 있다.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쓸쓸함이 연상되는 폐사지라는 이름과는 달리 본래의 공간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가슴이 뛴다. 깊고도 멋진 시간이다.
깊은 산속 절집과 고판화의 만남
기왕 예까지 왔으니 한 군데 더 가보자. 원주 남쪽 끄트머리 깊숙이 앉혀 있는 절집 명주사에 가면 산사와 박물관의 만남을 경험한다. 명주사는 창건 주지인 선학스님이 운영하는 고판화박물관으로 더 알려져 있다. 절집으로 오르는 길에 전통 판화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판화 수업이나 고인쇄 문화 템플스테이와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 명주사에 이르니 깊은 숲속의 좁은 절마당이 편안하다. 절집 옆으로 고판화도서관과 고판화박물관이 나란하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주지스님의 판화 열정이 박물관 안에 빼곡하다. 한국은 물론 인도나 중국, 티베트 등의 판화 작품이 2500점이 넘는다. 박물관에서 고판화 예술을 접하고 나면 직접 판화 인출 체험도 할 수 있다. 치악산 깊은 산속의 고판화 명상숲길 따라 여유롭게 머무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