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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록의 계절 6월에 읽기 좋은 도서들
- '오름 오름' (박선정 저ㆍ미니멈) ‘제주에서 1년 살아보기’의 저자 박선정 작가가 제주살이 6년 동안 오름을 오르며 정리한 탐방 정보와 노하우를 담은 ‘오름 트레킹 가이드북’이다. 무성한 숲에 가려져 전체를 보기 어려운 오름의 모양을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오름마다 특이사항은 물론 트레킹 순서와 코스, 준비물, 편의시설, 소요시간, 주의점 등을 일러준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몇몇 오름 외에는 초행자가 곧바로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저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알아낸, 승용차는 물론 대중교통으로도 오름을 찾아갈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한다. 특히 노약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지, 여성이 혼자 올라도 안전한지 등에 대해서도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당일치기 제주 여행객들을 위한 ‘원 데이 트레킹(1 Day Trekking)’ 코너를 마련해 시간에 알맞게 효율적으로 오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특정 계절, 시간, 분위기 등 여행 시기나 조건에 따라 가볼 만한 오름도 따로 골라 정리했다. 오름 트레킹과 더불어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이벤트, 서비스 정보도 알차게 실었다.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사진. 각 오름의 사진 찍기 좋은 뷰포인트와 최적의 시간까지 알려준다. '숲은 생각한다' (에두아르도 콘 저ㆍ사월의책) 캐나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이 4년간 아마존 숲속에서 생활하며 사색한 결과물을 담아냈다. 저자는 개미핥기나 고무나무 등 언어가 없는 숲의 생물들도 저마다 생각하고 세상을 표상한다고 주장하며 그들만의 생존 전략이 인간의 역사와 어우러지는 풍경을 묘사한다.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 (노구치 마사코 저ㆍ더퀘스트) 일과 삶에서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프랑스 여성 55명의 우아하고 당당한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온전히 자기 취향대로 살며 자신이 원하는 것에 솔직한 그들은 80세가 넘어서도 설레는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 읽는 엄마' (신현림 저ㆍ놀) “엄마라는 무게에 흔들리고 외로울 때마다 시를 읽으며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신현림 시인이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38편을 엮었다. 시와 함께 실린 ‘딸의 남자 친구가 온 날’, ‘기쁘고 힘겨운 엄마’ 등의 에세이로 따뜻한 공감을 나눈다. '간다, 봐라' (법정 저ㆍ김영사) 법정 스님의 임종게와 사유 노트, 그리고 미발표 원고와 지인들의 편지 등을 최초로 공개한다. 자연과 생명, 침묵과 말, 명상, 무소유 등의 주제로 나눠 스님의 노트 속 글과 메모를 그대로 수록했다. 퇴고의 흔적을 간직한 육필 원고에서 짙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 2018-06-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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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림 시인,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어도 늙지 않는다
- 2011년, 신현림(申鉉林·57) 시인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 2편을 엮었다. 저마다 인생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을 이 세상 딸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녀 역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앞날이 캄캄하게 여겨졌던 어린 시절, 지혜를 갈망하며 시를 읽었다. 삶의 경구로 삼을 시구를 모으며 나약한 정신을 탄탄히 다졌고, 긍정적인 시의 리듬은 자연스레 그녀의 몸과 마음에 깃들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늙어도 늙지 않고, 절망스러울 때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신현림 시인. 그녀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3년 전,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들려줬던 신현림 시인. 이번에는 자녀 세대를 위해 새롭게 엮은 시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개정판, 이하 ‘딸아’)과 ‘아들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이하 ‘아들아’)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베스트셀러인 ‘딸아’를 읽은 독자들이 종종 아들을 위한 시집도 엮어 달라고 했는데, 그 바람이 ‘아들아’로 이뤄진 셈.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전과 같은 인터뷰 장소에서 신 시인을 만났다. 변함없이 호쾌한 특유의 미소에는 그녀의 파란 카디건처럼 청아하고도 따스한 기운이 번졌다. 한쪽 손의 커다란 캐리어가 눈에 띄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느냐 물으니 기부할 새 시집들을 배송하고 오는 길이라고. 미혼모의 집, 소년원, 해바라기 센터 등 기부처를 직접 찾아 정리했는데, 40곳이나 된단다. “요즘 애들이 입시에 관한 것 외에는 책을 잘 안 읽는대요. 물론 이 책들도 곧바로 읽히고 위안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짜로 온 책이니 어디 한구석에 처박아두겠죠. 언젠가 비 오고, 쓸쓸하고, 잠이 안 올 때 불현듯 들춰볼 거예요.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어? 괜찮네?’ 하고 시가 와 닿으면 그때부터 읽는 거죠. 그러다 ‘시가 좋은 거구나’ 알게 되면, 뭔가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어져요. 그렇게 한두 줄 일기라도 쓰게 되고요. 글을 쓰는 여유를 찾았다면, 그 자체로도 인생의 중심을 잡는 데 효과가 있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괴롭고 슬플 때마다 시를 읽으며 자신을 위로한 신 시인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시는 정신의 양식이며 구원의 등불이었다”는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절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느끼게 마련. 그녀는 특히 인생의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이 장차 살아가며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는 시 한 편을 간직하길 바랐다. “부모와 친구에게도 말하기 힘들 만큼 절망스러울 때, 자기 마음을 다스릴 시가 있으면 좋아요. 누군가에게 듣는 잔소리가 아닌 글로 보는 시구는 오롯이 나와의 침묵 속에서 읽힙니다. 내 안에서 진정 위로받는 시를 만났을 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죠.” 신현림 시인의 인생에 버팀목이 돼준 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위로받은 여러 작품 중에서 그녀는 시의 경이로움을 처음 느끼게 해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꼽았다.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하나/ 거짓 많던 내 젊음의 나날/ 햇빛 속에서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이제 나는 진실을 찾아 시들어가리’라는 단 네 줄의 시가 소녀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를 읽으면서, 막연하게나마 늙음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나중에 나이를 먹겠지만, 그래도 지혜를 얻을 수 있겠구나. 늙는다는 건 뭔가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구나. 아주 짧은 시인데도, 긴 여운이 남았었죠. 또 그때부터 시를 사랑하게 됐고요.” 열일곱 소녀는 어느덧 세월이 흘러 쉰일곱이 됐다. 40년 전 읽었던 시 덕분에, 나이 듦이 꼭 두렵지만은 않았다. 시의 제목처럼, 그녀가 나이 듦을 통해 얻은 인생의 지혜는 무엇일까? “아픔까지 놓아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젊을 땐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한 일주일을 끙끙 앓잖아요. 나중에 보면 별거 아닌데도 당시엔 너무나 크게 와 닿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잖아요. 괴로운 건 툭툭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으려 하죠.” 그녀는 평소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얼마나 줬는가’를 자문하며 주변을 돌아본다. 더불어 “이제는 주는 나이”라고 강조하는 신 시인. ‘주는 나이’는 몇 살이냐고 물으니 숫자보다 명쾌한 대답을 들려줬다. “‘선생님’ 소리 듣기 시작할 때부터죠.(웃음) 내게도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선생님, 선생님, 그러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돈도 쓰고, 밥도 사고, 그렇게 사랑을 줘야 할 때가 온 거죠.”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시인을 만나보면 그녀가 시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고 말하자 “아름다우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며 눈을 반짝인다. “시를 사랑한다는 건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거죠. 아름다움은 규정된 게 아니에요. 또 계산 없이 순전한 마음에서 오는 사랑이 아름답듯, 순전한 영혼의 상태에서 써지는 게 바로 시가 아닐까요? 사랑, 아름다움, 시, 이 모든 게 다 같은 거라고 봐요.” 신 시인의 눈에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는 아마 하나뿐인 딸일 것이다. ‘딸아’의 초판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엄마와 입시제도에 관해 논담할 만큼 성숙해졌단다. ‘딸아’ 개정판에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추가됐다. 물론 시집은 세상의 수많은 딸을 위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진짜(?) 딸은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엄마가 엮은 시집을 읽고 딸이 가장 위안을 얻은 시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맨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는 어린 나이라서 읽기 어려웠죠.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데, 새로 나온 책도 어제야 줬어요. 딸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거든요. 아직은 시집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못해봤네요. 그런데 나도 참 궁금해요. 우리 딸이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할까? 꼭 물어봐서 알려줄게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뒤, 그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작가의 수많은 시 중에서 딸이 꼽은 최고의 작품은 바로 엄마 신현림의 ‘슬픔 없는 앨리스는 없다’였다. ‘매일매일 축제이니/ 우울해하지 마/ (중략)/어디에 있든 태양 장미를 잃지 마/ 너를 응원하는 나를 잊지 마’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속 ‘너’라는 주체에 대해 딸은 이 세상 어느 독자보다도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딸을 위해 시를 쓰는 엄마, 엄마의 시를 읽는 딸, 이 뜨겁고 오묘한 감정은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엄마가 시인처럼 자녀를 위해 시를 쓸 수는 없다. 그녀는 좋은 시집을 읽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아들딸에게 시집을 한 권 선물해보세요.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보면 그것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시집을 읽고 좋은 시를 공유하며 서로 인생의 덕담을 나눠봤으면 해요. 부모와 아이 모두 영혼이 유익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되도록 많은 이가 시를 가까이하길, 또 시처럼 살아가길 바란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 짧고 명쾌한 깨달음을 주는 장점도 있지만, 시의 연과 연 사이 공간처럼 이따금 쉬어가는 쉼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매몰되기 쉬운 일상에 시로 브레이크를 걸면 잠시나마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요.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 스스로 묻거나, 잠깐 멈춰 서서 피부에 닿는 바람도 느껴보기도 하고요. 군더더기가 없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삶에서 쓸데없는 걱정과 부정적인 것은 모두 덜어내고 군더더기 없는 인생을 살면 좋겠어요.”
- 2018-05-04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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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사방 백 리를 뒤덮는 백리향!
- “누구든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을 알린다. 꽃은 향기로 자신을 알리고, 해는 찬란한 햇살과 노을로, 새는 새소리로 살아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습니다. 신현림 시인의 말대로 꽃은 향기로 자신을 알립니다. 특히 한여름 해발 1400m가 넘는 고산에 피는 백리향(百里香)은 향기로 자신을 알리는 것은 물론, 삼복더위에 ‘내로라’하는 꽃쟁이들에게 비지땀을 흘리고라도 자신을 알현(謁見)하라고 호령합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오르며 폭염 경고가 발령되곤 하는 7월 하순, 전국의 꽃쟁이들은 백리향의 초대에 군소리 없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경남 합천의 가야산을 오릅니다. 경북 성주의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서성재와 칠불봉을 거쳐 정상인 해발 1430m의 상왕봉까지 4km의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목표로 삼는 것은 오직 하나. 폭염 속에서 피어나는 백리향을 만나는 것입니다. 향기가 나는 식물을 이른바 ‘허브(herb)’라고 일컬으니, 백리향을 허브의 한 종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해외에서 수입된 외래종 허브가 아닌, 토종 허브의 대표로 꼽아도 전혀 손색없는 백리향. 꽃은 물론 줄기, 잎 등 전초에서 진한 향기가 납니다. 인도에서는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는 멋진 말로 허브 향의 강렬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술 더 떠 그 향이 사방 백 리를 간다며 아예 백리향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 향이 직접 백 리까지 번진다는 게 아니라 신발에 묻은 향이 백 리를 걸어도 가시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지만,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발 없는 향이 백 리를 간다’는 말이니 대단한 과장법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참, 삼복더위 속 가야산 산행이 무척 덥고 힘들지 않냐고요? 천만의 말씀! 청량한 계곡물이 흐르면서 한여름의 열기를 날려주고, 또 무성한 이파리는 햇살을 가려주고, 오르내리는 산길은 너른 숲 그늘에 잠기고… 그야말로 여름의 고산은 산 전체가 시원한 냉장고 속과 같습니다. 게다가 이왕이면 일출까지 보자며 어둠을 헤치고 산을 오른다면, 사진을 담는 내내 저 멀리 첩첩 산봉우리 사이로 흰 구름이 넘나들며 장쾌한 풍광을 만들고 바로 앞 둔덕에선 백리향이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는 걸 보며, ‘아, 이런 게 바로 황홀경’이라며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덧붙여 백리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이 폐부를 찌를 듯 파고들면서 온몸은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Where is it? 전국적으로 30곳 이상의 자생지가 있으며 개체 수도 풍부하다지만 어디서나 백리향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을 비롯해 설악산과 지리산, 가야산, 운무산 등 높은 산 바위지대까지 올라야 한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가야산의 경우도 주봉인 상왕봉(1430m)과 최고봉인 칠불봉(1432m·사진) 등 고봉 주변에 주로 자생한다. 백리향보다 줄기가 더 굵으며, 옆으로 가지를 뻗는 섬백리향은 울릉도에서만 자라는데, 북면 나리동의 섬백리향 자생지는 제52호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6월 말에서 8월 초까지 분홍색 꽃을 피우는 백리향과 섬백리향 모두 뿌리와 줄기, 잎 등 전초를 말려 지초(地椒)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강장 효과가 크고 우울증과 피로 해소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 2017-06-1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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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밤에 시집 한권 읽어볼까
- 나이가 들면 사랑이라는 감정과 멀어지고 세상만사에 무뎌지는 줄 알았다. 부모님이 그랬고 주변 어르신들이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아름답고 황홀한 감정을 간직한 채 건강한 심장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필자 또한 겉모습은 점점 나이 들어 변해가지만, 실핏줄처럼 번지는 봄 밤에 두근거림은 여전하다. 이런 날 읽으면 좋을 시집을 한권 골라보았다. 로 유명한 신현림 시인의 ‘시가 나를 안아준다’ 라는 시집이다.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전업작가의 길은 만만치 않았는지 신현림 시인은 밥벌이가 늘 걱정이었다. 열심히 책 내고 애 키우며 생존하기 바빴던 시인은, 한겨울 보일러가 터져 고생을 하기도 하고, 새로 낸 책이 좋은 반응을 얻어 봄날을 맞이한 요즘에도 이사 갈 전셋집을 보러 다니느라 바쁘다. 선인세 받은 빚을 갚기 위해 책을 써왔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는, 선불로 받은 원고료를 위해 소설을 팔아야 했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올랐다. 힘들어 본 사람이 힘든 사람의 마음을 알고,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 어루만져줄 수 있다. 저자는 삶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시가 주는 위로의 힘을 알게 된 것 같다. 시인은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해 베갯머리에서 읽으면 좋을 세계시 91편을 추렸다. 톨스토이부터 만해 한용운 선생과 정호승 시인, 이해인 수녀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추려 고른 시들은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준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그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여도 형편은 여전하다. 내가 힘드니 옆 사람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다. 눈 둘 곳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봄날엔 나만 덩그라니 홀로인 것 같아 외롭다. 그러나 인생은 끝없이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라니, 베갯머리에서 시집을 펴고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행복에 대해 쓴 시를 읽으며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봄 밤에 읽는 시 한 편이 꽃 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이대로 온종일 침대에 누워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잠시 그 갈망과 싸웠다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나를 내려놓았다비 내리는 아침에나를 온전히 맡기기로이 삶을 다시 또 살게 될까?용서 못 할 실수들을똑같이 반복하게 될까?그렇다, 확률은 반반이다그렇다 레이먼 카버의 ‘비’
- 2017-04-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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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 “딸아, 너도 사랑을 누려라”
- ‘내 엄마의 이름은 김정숙. 고향은 평북 선천군 선천면 일신동. 이십대 중반에 남편 신하철을 만나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이남에서 살아왔어도 늘 꿋꿋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38년 야당투쟁을 했고 민주화의 대부로 국회의원직을 지냈던 남편이 서울대총학생회장을 숨겼다가 잡혀 고문 받고 시달릴 때도 경찰들에게 고함을 팍팍 지를 정도로 용감했다. 연약했지만 단단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을 때, 시인 신현림 (申鉉林·54)과 자매는 약소하나마 장례식장에 어머니의 일대기를 걸었다. 수많은 영웅의 인생이 전기로 남듯, 자신에게 영웅과 다름없던 어머니의 인생을 글로 써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어떤 영웅보다 위대했고, 존경스러운 존재였다.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남문시장 딸아이와 함께 시장을 갈 때면, 어린 사 남매를 데리고 장을 보러 다니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시골 약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어머니는 때때로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인근 대도시 수원으로 약제를 떼러 가셨다. 그 시절 신현림 작가의 고향인 의왕에는 큰 시장도 없었고 마땅히 서점도 옷가게도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장을 보러 가는 날은 소풍과도 같았다. “엄마랑 수원 남문시장을 누볐던 기억이 참 사랑스럽게 남아 있어요. 같이 가면 옷이나 학용품을 꼭 하나씩은 사주셨는데 그게 무척 신났고, 길가에 앉아 엄마와 함께 먹던 순대, 떡볶이, 번데기도 참 맛있었어요. 가끔씩 좋은 영화를 보면서 군고구마와 오징어를 부스럭거리며 먹던 기억도 애틋해요. 단골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던 ‘강서면옥’도 떠오르네요. 지금 다시 엄마와 손을 잡고 강서면옥에 들러 자장면 곱빼기를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녀는 엄마에게 시장이란 ‘내 가족에게 가장 좋은 걸 입히고 먹이고 싶은 욕망, 바로 사랑이 투영된 신성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딸아, 외로울 때면 시를 읽으렴 그렇게 시장에 가는 날엔 어머니와 서점에 들르곤 했다. 여고생 시절, 어머니가 사준 ‘세계시인선집’은 그녀에게 뚜렷한 기억으로 남았다. 소설처럼 긴 글은 부담스러웠던 입시생 초기, 짧은 시만큼은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고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인터뷰를 할 때나 책장에 쌓인 시집들을 보면 엄마랑 서점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요. 우리 동네엔 서점이 없어서 수원을 가면 꼭 그 동네 서점을 들렀어요. ‘세계시인선집’같은 시 모음집을 사주셨는데 그때 읽은 시들이 저를 시인으로 이끈 거 같아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대들고 마음 아프게 한 적이 많은데, 그런 괴롭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 게 바로 시였죠. 그렇게 책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찾고, 지혜롭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엄마는 분명 책 읽기의 소중함을 알고 제가 책을 가까이하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녀는 시를 통해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 그녀는 4년 전 이라는 시집을 엮어내 장기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어머니는 책 읽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강조하셨고, 교육열 또한 높으셨다. “엄마는 의대를 2년간 다니기도 하셨지만, 앞을 내다볼 줄 알고 의식이 깨어있는 신여성이셨어요. 사실 저는 대학 진학을 안 하려 했는데, 그때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셨죠. ‘네가 대학을 안 가면 형제간에 학벌 차이로 의가 상하고, 차이 나는 사람이 외로워지게 된다. 그러니 대학을 가거라.’ 그때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안 하셨다면, 어쩌면 정말 그런 외로움에 휩싸였을지도 몰라요. 정말 지혜로우신 분이셨어요.” 중년의 엄마 그리고 중년의 딸 어머니가 떠난 뒤, 영영 만날 수 없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시로 썼다. 그 마음은 그녀의 시 ‘엄마의 유언, 너도 사랑을 누려라’에서 짙게 우러난다. 엄마로서 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나아가던 그녀는 중년 이후 어머니와 점점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예전에는 엄마와 안 닮아서 힘든 적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엄마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중년의 엄마 모습과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요.” 닮아가는 것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엄마의 생활, 엄마의 삶을 이해할수록 그 마음까지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엄마가 돼봐야 엄마를 알게 된다죠. 내가 자식을 키우니까 엄마 생각이 매일 나요. 딸이 속 썩일 때면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얼마나 혈압이 올랐을까? 엄마도 힘들고 가슴 아팠을 텐데’하고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게 돼요. 딸이 행복을 주고 웃음을 줄 때면 ‘나도 우리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을까’하는 생각도 하고요.” 닮아버린 취미, 닮아버린 마음 “또 한 가지 닮은 점이 우리 모녀가 영화를 참 좋아한다는 거예요. 전에 TV에서 이 할 때면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곤 했는데, 한번은 가 하고 있었어요. 여느 때처럼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가 ‘비비안리랑 로버트 테일러가 나오는 영화구나’라고 말씀하셨죠. 새삼 엄마 입에서 영화배우 이름이 줄줄 나오는 것이 신기했어요. 생각해보면 옛날 우리 집 다락방에는 엄마가 모아둔 영화 팸플릿들이 가득했어요. 가끔 수원 중앙극장에 가서 엄마와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그게 엄마에겐 해방구였고, 창이었죠. ” 하지만 그런 일상도 아주 옛날 일이고, 집안이 기울어 어머니가 가장이 되신 뒤로는 좋아하던 취미도 다 잊고 사셔야 했다. 그렇게 영화를 볼 시간도 없이 나이 드신 어머니의 모습도 지금 그녀의 삶에 묻어나고 있었다. “엄마와 영화 이야기도 자주 나눴는데 그럴 때면 엄마의 눈은 더욱 또렷하게 빛났어요. 그렇게 엄마 덕분에 나도 영화광이 되었죠. 사춘기 때는 영화배우 사진으로 방에 도배할 정도였는데, 요즘은 저도 영화 볼 시간 내기가 참 어려워요. 혼자 딸을 키우며 비디오로 보는 영화로 마음을 달래던 때를 생각해보면, 그 옛날 엄마도 우리를 키우며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싶어요.” 엄마의 몸은 한때 나의 몸이었다 “엄마가 쓰러지시기 전 딸아이와 함께 동네 목욕탕에 갔던 적이 있어요. 탕을 가득 메운 수증기 속에서 엄마의 야윈 몸을 보니 너무 안쓰럽고 슬펐어요. 예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힘이 좋았던 엄마가 혈압 때문에 몸을 움직이고 숨쉬기도 곤란해 하시던 모습에 가슴이 아팠죠. 그렇게 ‘작별의 시간이 멀지 않았구나’하는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함께한 목욕탕에서의 그날도 이제는 아껴먹던 빵처럼 소중한 추억이 됐어요.” 그때서야 그녀는 ‘엄마의 몸은 한때 나의 몸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한 몸처럼 지내왔다는 것을. 그리곤 엄마의 몸에서 태어난 행운에 더 없이 감사할 수 있었다. “고향에 엄마 가게 있던 자리가 없어졌어요. 엄마와의 보물 같은 추억이 가득했던 공간이었는데, 그게 없어지니 가슴 먹먹하더라고요. 엄마의 가게처럼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질 때도, 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엄마의 존재도, 우리의 유한한 삶 속에서 함께할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엄마를 뵐 수만 있다면 엄마의 몸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그 외로움과 슬픔을 하나하나 헤아려드리고 싶어요.”
- 2015-03-10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