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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3대가 함께 걷는 배우의 길
- 당당함과 솔직함이 매력적인 ‘쌍칼’, 배우 박준규. 그가 당당할 수 있는 힘은 가족으로부터 생긴다. 박준규의 아버지는 영화 ‘용팔이’ 시리즈로 알려진 배우 故 박노식이다. 두 아들 박종찬과 박종혁 역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부터 두 아들까지, 박씨 가문이 적어도 100년은 연기자 생활을 하는 셈이에요. 가업으로 10대까지 이어졌으면 합니다.” 박준규는 처음부터 배우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의 끼와 재능을 깨닫고서 아버지에게 ‘배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그는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를 통해 비로소 배우 박준규로 주목받았다. ‘박노식 아들’에서 벗어나기까지 15년이 걸린 것. 박준규에게 앞으로의 목표란 없다. 배우는 주어진 것을 잘하는 것이 우선인 직업이라고 생각해서다. 다만 아내 진송아를 ‘죽을 때까지 웃게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촬영 현장을 찾은 진송아 역시 흐뭇해했다는 후문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는 잘될 거야’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사세요!”
- 2023-03-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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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규 “두 아들과 함께, 3대가 함께 걷는 배우의 길”
- 박준규(59)는 인터뷰 중 ‘구태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구태여는 ‘일부러 애써’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는 방송에서든 일상에서든 어떤 일에 대해 ‘구태여’ 거짓말하지 않고, ‘구태여’ 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의 눈에 비친 박준규는 항상 당당하고 솔직하다. 자존감이 높다고도 느껴지는데, 그 힘의 원천은 가족이었다. ‘3대째 가업을 잇는 집안’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는 집안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박준규 집안의 이야기다. 박준규는 ‘1960년대 스타’ 고(故) 박노식의 아들로 아버지를 이어 배우가 됐다. 박준규의 두 아들 박종찬과 박종혁도 아버지를 따라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박준규는 두 아들이 가업을 이어 배우가 된 것을 고마워하며, 배우 집안의 연대가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배우가 어떤 직업보다 좋다고 여기거든요. 아이들이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좋았죠. 다만 ‘박준규의 아들’로서 받을 편견 어린 시선을 잘 알기 때문에 그걸 감수해내라고 얘기했을 뿐이죠. 아버지부터 두 아들까지, 박씨 가문이 적어도 100년은 연기자 생활을 하는 셈이에요. 가업이 계속 이어져서 10대까지도 배우 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박노식과 쌍칼 196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액션 영화 전성시대였다. 그 중심에는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이 있었다. 박노식은 영화 ‘용팔이’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아버지의 성공과 인기 덕분에 박준규는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 자신을 ‘금수저’라고 표현할 정도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가사도우미, 운전기사, 정원사까지 다 있었어요. ‘엄마 손맛이 그리워’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어머니보다 가사도우미가 해준 밥을 더 많이 먹고 자랐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라요. 평생 여사님 대접을 받은 어머니는 지금도 천생 공주 같으세요. 그래서 더 잘 챙겨드리려고 합니다.” 박준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배우로 데뷔했다. 첫 작품은 박노식이 제작쪾감독쪾주연을 맡은 1971년 영화 ‘인간 사표를 써라’다. 이후에도 그는 아버지의 작품에 여러 번 출연했고, TV 광고도 찍었다. 박준규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린애가 배우가 뭔지나 알았겠나. 아버지를 따라 촬영장 다니는 게 그저 재밌었다”고 말했다. 박준규에게 박노식은 배우로서, 아버지로서 어떤 사람일까. 그는 “작품 속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아버지가 매우 엄한 줄 안다. 사실은 유쾌하고 친구 같은 아빠다. 배우를 떠나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박준규는 1980년대 청년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미국에서 졸업했고, 현지에서 일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2년간 운영한 주유소에서도 일했고, 일본 식품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떠나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인지 그때까지만 해도 배우로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단다. 하지만 내재되어 있던 끼와 열정을 발견한 그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한국 친구들과 있으면 늘 제가 제일 웃기더라고요. 사람들을 웃기는 데 남다른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죠. 그리고 비디오를 통해 한국 작품을 접하고는 했는데 ‘나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배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귀국 후 아버지에게 ‘배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제가 배우가 되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아요.” 배우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뭘 해도 대중은 그를 ‘박노식 아들’로 생각했다. 박준규는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쌍칼 역을 맡아 연기하면서 마침내 주목받았다. ‘박노식 아들’에서 벗어나 ‘박준규’라는 이름을 알리기까지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보지 못했다. 박노식은 1995년 세상을 떠났고, 박준규는 아쉬움을 가슴에 품었다. “‘박노식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부담이었어요. 다른 동료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비교당한 거죠. 다행히 쌍칼로 잘 되고 나서는 아무도 ‘박노식 아들’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지금 어린 친구들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만 쌍칼은 알죠. 유튜브에서 ‘야인시대’를 접한 경우도 많고요. 어쨌거나 ‘야인시대’는 저의 인생작이에요.” 이후 박준규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 굳히기에 돌입했다. 그는 “쌍칼이 아닌 내 이름 석 자를 알리는 데 예능 출연은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하며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했더니 계속 나를 찾아주더라. 일주일에 10개까지 녹화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예능에 출연하기 전에는 쌍칼 때문에 대중들이 저를 무섭게 봤는데 이후에는 편하게 생각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구태여 예능에까지 나가서 연기하고 싶지 않았고, 일부러 웃기고 싶지도 않았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니 시청자들이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제 최대 장점은 안티가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아들이 이어가는 배우 집안 박준규의 아내 진송아 역시 배우 출신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진송아는 촉망받는 신예였다. 박준규와 진송아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오디션장에서 처음 만났다. 박준규는 “1989년 1월 30일이었다”라고 정확한 날짜를 기억했다.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아내가 저의 진면모를 보기 시작했죠. 연기 연습도 열심히 하고 착하니까 아내가 먼저 저를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제 이상형이 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내가 저를 좋아하는 게 느껴지니 어느새 아내가 좋아졌죠. 성격상 저를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지 못하기도 하고요. ” 박준규와 진송아는 1991년 결혼해 부부가 됐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두 사람은 변치 않는 부부애를 과시한다. 진송아는 박준규의 표지 촬영 현장에도 동반 참석, 내조의 여왕다운 면모를 뽐냈다. 남편이 촬영을 잘할 수 있도록 옆에서 세심하게 챙겨줬다. 평소와는 다른 남편의 멋진 모습을 보고는 감탄을 쏟기도 했다. 박준규는 “30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그렇게 좋나?”라며 너스레로 화답했다. 박준규에게 아내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존재다.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이 말은 진송아가 시댁살이를 30년 넘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고부 관계는 좋은 편이다. 박준규는 시댁살이보다 아내가 결혼 후 자신의 꿈을 접은 것에 대해 더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가 ‘집안에 배우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아내가 배우를 그만두고 저를 내조하게 됐죠. 아내가 요즘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 촬영은 현장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아내의 출연을 반대하고 있어요. 작은 역할을 맡아서 고생만 하는 것이 보기 싫은 거죠. 그런데 아내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주인공 역을 맡는다든지 연극 무대에 선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생각이 있어요. 좋은 작품이 있다면 둘이 함께 출연할 수도 있겠죠.” 박준규의 두 아들은 부모의 끼를 그대로 물려받아 배우로 활동 중이다. 첫째 박종찬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진송아를 빼닮은 외모를 지녔고, 뮤지컬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박준규를 닮아 다재다능한 둘째 박종혁은 2017년 tvN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로 데뷔했다. ‘박노식의 아들’이었던 박준규는 두 아들이 겪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애들이 어디 출연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박준규가 꽂아줬다’고 하더라. 요즘 시대에 꽂아주기 출연이 가능한 이야기인가”라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두 아들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느낀다. “우리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대학교에서도 연기를 전공했어요. 뮤지컬, 연극 등 오디션을 열심히 보러 다녀서 역할도 자신들이 따냈고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애들인데 매번 제가 꽂아줬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너무 안타까운 거죠. 내 자식이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만큼 좋은 배우가 될 거예요. 언젠가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준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배우는 어떤 목표를 갖기보다 주어진 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배우한테 ‘연기 변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배우가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연기 변신’은 맞지 않은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박준규는 “꼭 지키고 싶은 목표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웃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진송아는 박준규가 인터뷰하는 내내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터였다. “코로나19에 경제까지 어려워지니 사람들이 ‘죽겠다’,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힘들죠. 안 힘든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말이 씨가 되기 때문에 저는 부정적인 말을 싫어합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반드시 좋은 일이 올 테니 ‘나는 잘될 거야’라고 외치면서 당당하게 사세요!”
- 2023-03-0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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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 입은 박준규 가족 나들이
- 카리스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초, 그리고 아버지 故 박노식으로부터 이어지는 3대째 배우 가족의 가장인 배우 박준규(56)를 만난 것은 박술녀 한복연구소에서였다. 새해를 맞이해 생애 처음 그가 아내 진송아 씨, 장모(정갑숙), 어머니(김용숙)와 함께 한복 나들이를 한 자리였다. 촬영 현장에서 가족들을 대하며 보여줬던 즐거운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을 만나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게 되는 에너지가 저절로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에서 보는 그의 모습이 무엇이든, 실제의 그는 열정적이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을 모든 것에 우선해서 두는 사람이다. 그의 남다른 가족 사랑, 그리고 숨겨뒀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준규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보여준 그의 자연스러운 유쾌함이 계속 궁금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다. “긍정적 마인드죠. 저는 현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합니다. 현장에서 연기만 하고 차 안에 있다가 나가고 하는 그런 건 제겐 힘들어요. 어떤 사람은 쉴 때가 되면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거나, 유럽에서 혼자 한 달 동안 지내다 온다는데, 저는 해본 적 없고 그런 생각도 든 적 없어요.” 타고난 기질이 그렇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의 긍정적인 마음은 오롯이 가족을 향해 있었다. “집안 돌아가는 게 모든 것의 우선이죠. 어디 투자도 못하고 꾸준히 먹고살 정도로만 살고 있어요. 빌딩 하나 사도 될 만큼 번 적도 있지만 집에서 놀고먹다가 까먹고.(웃음) 여행도 항상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요. 혼자 있는 거 싫거든요.” 연예인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고 보니 그의 아들인 박종혁 군과 박종찬 군은 둘 다 배우다. 박준규의 아버지인 액션스타 박노식 씨까지 아우르는 3대 배우 가족이다. 그리고 아내 진송아 씨 또한 배우다. 그야말로 가족 전부가 연기 전문가다. “아이들 스스로가 택한 길이죠. 쉽지 않은 직업이고 잘 이겨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많지요. 그런데 앞으로는 제가 되도록 아이들과 같이 TV에 안 나가려고 해요.” 어째서일까? 그 이면에는 연예인 가족이라는 입장이 주는 부담이 있었다.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쓰는 수많은 ‘악플’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받는 근거 없는 조롱과 멸시도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고, 특히 요즘 사회를 경악케 만든 소위 ‘2세들의 갑질’에 대해 민감해하는 대중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진 탓도 있다. “‘네 아버지가 쌍칼이라 잘되는 거지’, ‘애 연기자 시키려고 저러나보다’라는 말들이 큰 상처가 돼요. 그런데 종혁이, 종찬이는 드라마, 뮤지컬 전부 다 스스로 알아서 오디션을 봐서 통과한 거예요. 지금도 계속 오디션을 보고 있고요. 요즘 세상에 어떤 제작자가 아무나 캐스팅하겠습니까. 대충 지인 꽂아서 만들지 않아요. 사실들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물론 그런 과정은 다 겪어야 하는 거지만… 속상하죠.” ‘3대째 하고 있는 칼국수집은 믿음이 간다’ 하면서 ‘3대째 연기자 집안은 끼리끼리 해먹는다’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편견 아닌가, 어쩌면 연기를 전문적인 기술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정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늘 함께하는 가족 그러나 같은 일을 함께 공유하는 가족이어서 얻는 보람과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연기에 대해 얘기하자 그의 침울했던 목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졌다. “따로 연기 공부를 시킨다든지 하는 건 없어요. 종찬이가 뮤지컬 공연할 때 포즈나 행동, 액션에 대해 잠깐 보여주면 ‘이게 낫다’ 하는 정도로만 조언해요. 와이프도 배우이다 보니 네 명이 앉아서 연기나 음악에 대한 주제로 대화가 집중되죠. 우리 가족은 대화 자체가 해피해요. 같은 주제를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대개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되는 이유는 서로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다. 그러나 박준규의 집에서는 연출이나 연기 등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대화가 오간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밖에서 따로 도는 일도 없다. 술 마실 일이 있으면 가족 전부가 모여서 같이 마신다. “저 같은 경우는 금수저로 태어났다가 흙수저가 됐다가 다시 금수저가 되어가는 중이고, 우리 얘들은 금수저죠. 그런데 금수저면 스스로 금수저답게 행동해야지, 누가 가르쳐줘서 되는 게 아니라고 봐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도 맞는 말이지만 좀 늦게 정신 차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1년이 지나 걷는 아이도 있는데 억지로 걷게 해서 더 안 좋아지는 것처럼요.” 박준규의 교육 방침은 기본적으로는 ‘내버려둬’이다. 자기가 살다 보면, 단체 생활을 하게 되면, 때 되면 알게 된다는 게 그의 신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내버려둔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은 가르치고 버르장머리 없고 이기적인 습관들은 지적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잊지 말자는 것만큼은 지키고 살았죠. 아빠가 일하고 들어왔는데 방에서 공부하느라 인사도 안 한다면, 그런 건 잘못됐다고 봐요.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서 인사해야 하죠.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겠다고 약속한 게 있으면, 약속 전날에 밤을 새든 말든 상관 안 하지만 그 약속은 꼭 지켜야 해요.” 그의 교육적 방침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책임질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그 외에는 자유롭게 해주는 것. 다행히 아이들은 단체 생활인 드라마 제작 현장을 어렸을 때부터 봤기 때문에, 자기들이 잘못된 게 있으면 스스로 고치려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게 고맙다고 말한다. “일하다 보면 주변에서 제 아이들이 잘한다는 얘기들을 듣게 되는데, 너무 기분 좋죠. 바쁜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아 아들들한테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 박노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됐지요.” 난데없이 떨어진 7억 빚 그는 사람들에게 “박준규가 나오니 작품이 재미있네”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항상 그렇게 믿음이 가는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망은 그가 가진 연기와 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꾸준한 연극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2년 이후부터는 연출도 맡았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공연 쪽에서 큰 문제가 난 적이 있었다고 사실을 밝혔다. “2016년에 뮤지컬을 제작했어요.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때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굉장히 잘돼서 ‘음, 역시 박준규는 제작이면 제작, 연출이면 연출 못하는 게 없어’라고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그해 12월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사건이 터졌어요. 그러면서 관객 수가 급감해서 망했어요. 그리고 파트너였던 사람이 개인파산을 신청하면서 제작비 전부가 제 빚이 되더군요. 서류상으로 할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래서 저 혼자 갚고 있는 중이에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일로 그가 갚아야 할 빚은 약 7억 원.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채권자 중에는 지인도 있는 만큼 그들에게 도의를 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 1, 2년 더 고생하면 갚을 수 있을 듯해요. 그동안 아이들도 잘되면 좋고. 나도 좋은 작품 한 번 또 열심히 하게 되면 좋고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인생사에 새겨진 굵직한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족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배우가 아닌 가장으로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잘한 일은 지금의 가족을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잘한 일이라면 진송아와 결혼한 거죠. 진송아가 아니었으면 벌써 이혼해서 쓰레기 인생을 살았을걸.(웃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지금의 아이들이 있어줘서 고맙고요.” 그가 보는 아내의 장점은 ‘괴롭히지 않고 잔소리를 안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서 오래 함께 잘 살아온 비법은 아이들을 ‘내버려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을 보면 케미가 좋은 동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부부의 인연을 오래 고스란히 유지하려면 상대가 바뀌길 바라면 안 돼요. 있는 그대로 둬야죠. 대부분의 부부싸움은 상대를 자기화하려고 해서 일어나요. 가르치려고 들고, 서로 몇십 년간 살아온 습관이 있는데 그걸 바꾸라고 강요하다가 다투게 되죠. 와이프와 저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유지하니까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솔직한 박준규, 깨달음을 만나다 박준규의 강점은 솔직함이다. 그의 이름이 몇 년 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적이 있다. 방송에서 아침은 며느리가 차려주는 걸로 먹어야겠다고 말했던 일 때문이다. 요즘처럼 페미니즘이 커다란 화두로 떠오른 시기에는 더 화제가 될 발언이다. “맞벌이 부부라면 아침을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가정주부라면 자기 할 일은 해야지. 그런 말 몇 마디 했다가 ‘망언이네, 간 큰 시아버지네’라며 이상하게 몰아가려 하더라고요. 시아버지가 돼서 며느리 밥 먹겠다는 게 이상한가? 전 지금도 그걸 바라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죠. 뭔가를 힘들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여서 하는 것이 진짜 희생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 발언을 한 후 동네 약국에서 한 사람이 그의 손을 꼭 잡으면서 “내게도 아들이 있는데, 고맙다”라고 말해주더란다. 아마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 그러나 말할 처지가 못 되다 보니 그의 솔직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의 가족도 그의 솔직함을 약간(?) 걱정하는 눈치다. 솔직함이 때로는 까칠해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와이프는 ‘제발 그런 얘기가 나와도 말 좀 가려라, 여성 비하 발언은 조심하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살다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부들을 많이 봐요.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 보면 뭐라고 했는데, 이제는 자제하고 있어요. 아내가 ‘그런 얘기를 들어도 뭐 그런 것도 좋겠네 하면서 대꾸하지 마라’ 해서 그럴려고요.(웃음) 정말이지 훌륭한 할아버지가 되고 싶걸랑요.” I’m the best, so you 2019년의 박준규도 지금까지처럼 바쁘게 움직일 생각이다. 봄이 되면 우선 지난해 방영되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드라마 ‘검법남녀’ 시즌2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역시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혼자가 될지 여럿이 될지는 구상 중에 있다고. 인터뷰 끝에 앞으로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는 그에게 신년 덕담을 주문했다. “요즘은 자신은 안 돌보고 자식들만 돌보는 사람들이 있고, 반면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임 더 베스트, 소 유(I’m the best, so you), 내가 최고고 당신도 최고다. 우리는 항상 베스트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베스트라는 것도요. 모든 사람은 똑같다는 거죠.”
- 2019-02-01 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