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해다. 김대환(60)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생애 또 한 번 청룡의 해를 맞았다. 서예가 취미인 그는 매년 초 휘호를 쓴다. 올해의 휘호는 세심자신(洗心自新). ‘마음을 닦아 새로워지다’라는 의미다. 잘 닦아낸 개인의 삶을 사회와 나누고 싶다는 소망도 담겼다. 그리고 그 소망을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이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봄 김대환 사무총장은 노사발전재단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9월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퇴직 후 반년 만에 제7대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터에 복귀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국제협력관•근로기준정책관 등을 지내며 회갑 생의 절반은 ‘고용노동부’의 명함을 지니고 살았다. 덕분에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노사발전재단의 업무가 낯설지는 않았다. 익숙함은 장기로 발휘하되, 늘 새로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나날 속 어느덧 한 해가 저물었다.
“작년 봄 취임식 때 직원들과 인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새해가 밝았네요. 취임 후 5개 지사, 13개 중장년내일센터, 6개 차별없는일터지원단을 방문해 직원 간담회를 열어 업무 현황을 들어봤어요. 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재단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봤죠. 결국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침 2011년 고용노동부 행정관리담당관 시절 만들었던 ‘한 권으로 통하는 고용노동 정책’이 떠올랐어요. 지금까지 발행되는 책인데, 한 권으로 고용노동부의 정책과 제도를 살펴볼 수 있죠. 재단에도 그런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김 사무총장이 강조하는 소통과 협업의 대상은 본부 내 부서들을 비롯해 지사 및 유관기관, 고객까지 아우른다. 가령 사내에서 부서 단위로 함께 일할 때 다른 부서의 업무도 알아야만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하다. ‘한 권으로 보는 노사발전재단 사업’은 전반적인 사내 업무를 한눈에 조망하는 일종의 참고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재단 직원들뿐만 아니라 유관기관이나 고객인 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재단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손쉽게 알리고, 찾는 발걸음도 늘릴 수 있다고 봐요. 지원책이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면 유명무실하잖아요. 또 직원 간 공감의 장 형성을 위해 직원 소식지 ‘공감레터 : 우리는…’도 매주 발간하고 있습니다. 나름 지난해에는 소통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보고, 올해는 협업 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평생현역 사회를 위한 일터 혁신 필요해
지난해 6월, 김 사무총장은 2022년 지역 단위 총괄 조직으로 신설된 5개 지사에 1~3급 직원 4명을 지사장으로 발령하며 기능 정상화를 꾀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중앙노동위원회, 한국어촌어항공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해운조합 등과 업무 협약을 맺으며 사업 연계 및 확장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관 간 협업 사업 중에는 ‘청춘문화공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업으로 노사발전재단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뜻을 모아 전국 13개 중장년내일센터(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2023년 명칭 변경)에 청춘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청춘문화공간은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이 한 공간에서 고용과 문화 서비스를 동시에 누리게끔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여가·문화생활이 겸비돼야 활기찬 노후가 가능하다고 봐요. 때론 그런 여유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직업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죠. 과거보다는 일자리가 더 다양해졌고, 취미를 살려 소득을 얻을 기회도 많아졌잖아요. 퇴직 후 뭘 할지 고민이라면, 이런 강의를 통해 평생 일자리를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해보셔도 좋겠어요.”
2025년 초고령사회를 앞둔 현재. 은퇴 이후에도 평생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이는 개인의 영역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고령 인력 활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30년 가까이 공직에 몸담으며 고용과 노동에 관련한 현안을 다뤄온 김 사무총장 역시 같은 고민을 하던 터였다.
“OECD는 2018년 고령층 미취업 인구 중 25%가 취업하면 2050년에 1인당 GDP가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2023년 국내 고령층 미취업자 636만 명 중 3분의 1이 장래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고령층 취업자의 93%는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고요. 고령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퇴직한 중장년을 취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평생직장’보다는 ‘평생현역’이라는 맥락에서 중장년에 대한 지속적인 직업 능력 개발과 취업지원 시스템을 마련해나가야 해요. 기업에서도 고령층이 일하기 쉬운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 방식의 도입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터에도 고령화에 따른 혁신이 필요한 셈이죠.”
고령 인력이 지닌 가치, 허비하지 않아야
상당수 기업이 코로나19를 겪으며 근무 방식에 변화를 감행했다. 그러나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작업환경 및 고용문화 개선, 장년 고용안정 체계 및 평생학습 구축 등에 대한 일터혁신 컨설팅을 무료로 시행중이다. ‘재취업지원 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도 제작해 기업 상황에 맞게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결국 고령 인력 활용의 실마리는 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김 사무총장의 고견이다.
“고령 인력 활용에서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OECD에 따르면 고령자는 경험과 지식 활용뿐만 아니라 청년과의 기술 보완을 통해 팀 성과 및 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고령자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숙련된 인재’라고 인식하고, 다양한 연령의 노동력을 통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업의 성과를 제고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채용 시 연령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연령과 경험 및 전문성에 기반한 고용문화를 장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5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연령차별은 2018년 한 해에만 미국 경제에 8500억 달러의 손실을 발생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또한 그는 일본 고용정책 사례도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생애현역사회’를 기본 뱡향으로 한 고령자 고용정책이 이뤄지고 있어요. 정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기업이 고령자 고용연장을 위한 고용확보조치 노력의무 및 다양한 조성금 제도를 통해 아주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의무화했다는 겁니다. 그런 토대를 만든 덕분에 법정의무를 만들었을 때도 기업이나 노동자에게 부담 없이 작용할 수 있었던 거죠.”
아울러 김 사무총장은 일터혁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겠는데요. 일터혁신은 결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중소기업에서도 노사가 함께 각 기업의 상황에 맞게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근로자들이 중심이 되는 참여적 활동을 통해 조직과 제도, 문화와 관행을 바꾸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 재단의 서비스도 이용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개인의 인생이 사회의 쓸모가 되도록
김 사무총장 역시 재단에 몸담으며 우리 사회 고령 인력 활성화와 일터혁신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다. 아울러 임기를 다한 이후에도 ‘평생현역’으로의 삶을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펼쳐가고자 한다.
“중앙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퇴임하고, 평소 찾던 속리산 법주사에 딸린 한 암자의 주지스님을 뵈러 갔어요. 당시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이제까지 공직에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 일했는데, 앞으로는 보너스 인생을 산다고 여기고 더욱더 본격적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 하시더군요. 일단 재단에 머물면서 그 소임에 최선을 다할 테고요. 그 경험까지 아울러서 제가 지닌 것들을 사회에 잘 전수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 수많은 중장년이 스스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길 바랐다. 과거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잘 돌보고 닦아나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면 생애 전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가 쌓아온 것들을 사회에 쓸모 있게 나누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현재의 저로 예를 들면 지나온 60년의 삶과 더불어 앞으로의 여생도 녹아 있는 셈이죠. 그 삶은 나라는 개인뿐 아니라 가깝게는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영향을 끼쳐요. 멀게는 지면을 통해 이 인터뷰를 보는 독자들에게도 자그마한 생각을 던져줄 수 있고요. 그런 의미를 되새기며 나의 과거, 미래, 현재를 아우르는 완연한 삶을 잘 닦아나가야겠습니다.”
△노사발전재단은?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전국에 13개 중장년내일센터를 운영한다. 중장년층의 생애경력설계, 재취업 및 창업 등 일자리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기초역량 증진 교육 ‘내일부스터’, 일대일 심층상담 방식으로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여 경력설계 컨설팅을 제공하는 ‘개인별 경력개발서비스’ 등 중장년 대상 체계적인 경력 관리를 지원한다. 만 40세 이상 중장년이라면 평생현역 활동을 위한 전직·재취업 지원, 산업별 특화서비스, 사업주지원 패키지, 청춘문화공간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동해를 끼고 있는 동해시의 인상은 밝다. 시원한 눈매를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해변 도시다. 바다는 어쩌면 동해시의 모태이거나 모성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로 생존을 이어온 게 아닌가. 수려한 바다 풍경만으로도 동해시는 복 받은 땅이다. 저 웅장한 만경창파를 보라.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보라. 푸르디푸르러 아찔하다. 이 바다에선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그래 동해시를 찾아드는 여행자가 숱하다. 그들은 드넓은 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태초의 일순을 보여주듯이 장엄한 일출을 감상한다. 일출 명소는 촛대바위로 유명한 북평동 추암 일원이다. 해돋이 장소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곳이다.
추암해변에선 기암괴석들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다. 능파대(凌波臺)라 부르는 바위 군락이 해안 경관을 북돋워 절경을 연출하는 게 아닌가. 가히 자연이 펼치는 예술제전이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바람에 닳고 파도에 깎인 바위들의 묘한 형상이라니. 자연에 속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능파대 역시 사람의 상상력을 능가하는 자연의 재능을 웅변한다. 이처럼 빼어난 능파대는 조선이 낳은 걸출한 화가 단원 김홍도의 화첩에도 등장한다. 단원은 금강산과 관동팔경 지역을 여행하며 명승 60폭을 그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을 만들었다. 거기에 능파대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 한 점이 포함돼 현존한다. ‘능파’(凌波)란 ‘물결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가인(佳人)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다. 능파대란 그렇다면 미인의 섬려한 거동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 풍경을 보는 안목에 서정과 낭만이 서려 있다. 조선의 정치가 한명회가 그 이름을 지어 붙였다.
능파대 곁엔 정자가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정자다. 자그마하고 덤덤한 모습이라 정자 앞에 서서 바라보면서도 정작 눈에 쏙 들어오지 않을 수 있는 건물이다. 멋스럽기보다 예사롭다. 그 무슨 미학적 작위를 구태여 구사하지 않은 집이다. 하지만 유서 깊은 해변 정자다. 고려 말 공민왕 때인 1361년에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沈東老)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건립했다. 이후 화재로 스러진 걸 조선 중기인 1530년에 7대손 심언광이 중건했으며, 1794년에 또다시 지어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됐다.
해암정은 작은 규모만큼이나 구조도 간명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해 팔작지붕을 얹었다. 들어 올릴 수 있는 창호 문을 단 정면을 제외한 3면엔 모두 판문을 설치했다. 이채로운 건 처마 아래 걸린 현판이 세 개나 된다는 점이다. 가운데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우암 송시열이 능란하게 붓을 휘저어 쓴 해서체 편액이 있다. 우암이 예송논쟁에서 패하고 함경도로 귀양 가는 길에 들러 쓴 글이란다. 오른편엔 심동로의 18대손 심지황이 쓴 전서체 편액이 걸려 있다. 왼편엔 해암정 뒤편 능파대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종소리에 빗대어 ‘석종람’(石鍾襤)이라 쓴 해서체 현판이 보인다. 이건 송강 정철이 쓴 것이라 하나 정확하진 않다. 정자 내부 벽면엔 시판과 기문 다수가 걸려 있다. 세상의 꿍꿍이로부터 등 돌리고 해변에서 독락(獨樂)하는 심동로의 지향을 알아채거나 교감하는 글들이 시판에 섞여 있다.
심동로는 해암정과 더불어 노년을 한가하게 지냈다. 창망한 바다가 부여하는 위안과 풍류를 낙으로 삼았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건 권문세족의 쉰밥 냄새나는 아귀다툼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괜히 바닷가에 바짝 붙여 정자를 지었겠나? 능파대에서 들끓는 파도 소리를 울타리 삼아 속세의 소음과 두절하고 싶은 심정의 발로이지 않았을까. 일찍이 신라의 고독한 천재 최치원은 가야산의 물소리를 방패 삼아 세상 잡음을 물리치고 은거했다. 심동로의 심회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정치판의 이전투구는 저질러놓은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 난 해변에서 노닐겠어! 그런 심사이지 않았을까. 그는 공민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령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에 공민왕은 ‘노인이 동쪽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렇게 동으로 돌아온 노인은 즐겨 해변을 소요하며 음풍농월로 회포를 풀었다. 이런 그를 일러 사람들은 ‘동해 바닷가의 선옹’(仙翁)이라 일컬었다지. 해암정을 지을 즈음에 쓴 심동로의 문장이 있다. ‘갈매기와 더불어 바닷가에서 늙으니/ 일생의 행적이 바람결 같구나/ 부귀공명이야 다 헛된 것/ 매미 껍질 벗듯이 일찍이 관직을 버렸네’
감성충전소 ‘논골담길 벽화마을’
이제 묵호동으로 간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동해시의 자연경관은 두루 빼어나다. 곳곳에 고유한 승경과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다. 그런데 묵호엔 묵호의 인간사와 사회사, 문화와 풍속, 빛과 그늘을 한눈에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묵호의 유난한 ‘달동네’였던 언덕배기 마을을 2010년부터 시작한 문화재생사업으로 본때 있게 살려낸 곳이다. 이미 ‘전국구 명소’로 부상했다. 동해시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주로 논골담길로 쏠려 기존 명소들이 예전과 다르게 썰렁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초라하고 침침했던 언덕배기 마을에 와락 생기가 감돌다니.
묵호는 1960~1970년대 한때 번영을 누렸다. 묵호 사람들의 생존 기반이었던 묵호항의 성황 덕분이었다. 석탄을 실어 나르는 항구로, 국제무역항으로, 명태와 오징어 등속이 흔전만전 유통되는 어항으로 이름을 날렸다. 화주(貨主)와 외항 선원, 어부, 잡역부 등 갖가지 인력이 집중됐다. 그러면서 경제 효과가 파급돼 ‘강아지조차 지폐를 입에 물고 돌아다닌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 좁은 바닥에 극장이 네 개나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이 저물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바다에서 잡히는 게 드물어지면서 묵호항의 전성시대가 곤두박질치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러잖아도 내동 궁색했던 달동네의 형편은 더욱 나빠져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삶은 이어지는 것.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끌어안고 애면글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떠날 길 없는 사람들은 남아 운명의 횡포에 맞설 수밖에 없는 것. 이렇게 지역의 변천에 따라 달동네 사람들이 껴안고 살았던 애환, 그리고 그 궤적과 사연을 재료로 삼아 예술을 입히고 문화 요소를 돋우어 볼 것 많고 찍을 것 많고 느낄 것 많은 이색 여행지구로 부활한 게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의 골목길은 넥타이처럼 좁고 가랑잎처럼 허름하다. 다닥다닥 밀집한 집들은 하나같이 작고 허술하다. 삶의 파란만장이 한눈에 읽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문화자원을 투입하자 달라졌다. 면밀한 의도로 기획된 다양한 형태의 벽화, 사진, 낙서, 디자인, 공예를 깨알처럼 섬세한 디테일로 흩뿌리자 급변했다. 감성충전소로 변신했다. 언덕 저 아래로 눈길을 던지면 거기에 눈부시게 푸른 동해 바다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노멀 크러시와 뉴트로를 즐기는 이들에겐 한결 적합한 답사지다. 그 무엇보다 문화재생의 힘과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마을이다.
오종식 동해문화원장
올가을 ‘2023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를 펼친다
동해시는 1980년에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면서 출범했다. 북평 권역은 전통적으로 농경이 성행했다. 반면 묵호 권역에서는 어업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번성했다. 따라서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질감이 있었지만 40여 년의 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해시의 특질에 대한 오종식 동해문화원장의 생각은 이렇다.
“두 권역의 상이점이 섞여 융화되면서 풍부한 문화적 스펙트럼을 갖추게 되었다. 바다와 항만을 모체로 한 어로 문화와 해양 문화가 여실한 한편, 과거부터 이어진 농경 문화와 유교 문화, 그리고 불교 문화 역시 지역 정신의 축을 이루고 있다.”
동해시의 대표 문화자원을 꼽는다면?
“동해시의 모산인 두타산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그리고 여기에서 행해지는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를 꼽고 싶다. 천지간의 모든 영혼을 달래고 삼라만상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로, 이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가는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매년 가을 삼화사에서 사흘간 공개 행사로 거행된다.”
동해문화원을 이끌며 그간 펼쳐온 주요 사업을 소개해달라.
“‘동해학기록센터’를 설립, 동해시의 역사와 문화 관련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했다. 청소년을 위한 지역 역사 교재 ‘세상의 아침을 여는 동해시’ 출간과 북카페 ‘소담채’ 조성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동해문화원이 ‘논골담길’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더라.
“그렇다. 우리 문화원의 조연섭 사무국장이 2010년에 ‘논골담길’을 기획하면서 사업이 개시됐는데, 동해시는 물론 마을 주민과 문화 인력이 동참해 진척시켰다.”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답사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새롭고 흥미로워서.
“‘논골담길’은 이미 동해시 최고의 명소로 부상했다. 도시 문화재생의 모범 사례로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주차난이 문제점으로 대두됐을 정도다. 소외된 ‘달동네’였지만 감성마을로 변모시킨 성과가 이렇게 크다. 동해 바다와 동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도 매우 빼어난 곳이다.”
올가을엔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하는 ‘지역문화박람회 in 동해’가 동해시에서 열린다지? 어떤 구상과 준비를 하고 있나?
“10월 20일부터 3일간, 동해와 ‘논골담길’이 바라보이는 천연의 무대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공원’에서 펼쳐진다. 주제는 ‘K-컬처, 뿌리를 만나다’로 설정했다. 지역 문화의 가치를 조명하고 미래 비전을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공연과 전시는 물론 바다불꽃쇼, 대동한마당, 대한민국 팔도 명인전 등 갖가지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이 문화박람회에 전국 231개 문화원도 참여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성대한 문화축제가 예상된다.
귀농·귀촌을 꿈꾸지만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특히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 귀농·귀촌 인구 증진에 힘쓰고 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 지정 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귀농, 귀산촌, 귀어로 세분화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정부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인구가 농가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이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농지와 농가주택 마련 방법, 작물 재배 방법, 판매와 홍보 방법 등을 배운다. 귀농·귀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귀농과 귀촌, 뭐가 달라?
귀농 농어촌으로 이주해 농·어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것.
귀촌 농·어업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전원생활 등을 이유로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것.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채우기
농림축산식품부(농정원 포함), 농촌진흥청, 산림청 및 지자체가 주관 또는 위탁하는 귀농·영농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하면 된다. 단,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주관하는 농업교육포털(www.agriedu.net)에 등록된 교육 이수와 수료증만 인정받을 수 있다.
때문에 귀농·귀촌을 희망한다면 농업교육포털 가입과 이용은 필수다. 온·오프라인 교육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온라인 교육은 참여 시간의 50% 범위만 인정해주며, 최대 40시간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즉 온라인 교육으로 최대 40시간을 인정받으려면 80시간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프라인 교육을 60시간 이상 들어야 100시간을 채울 수 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각 지자체에서는 1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했는지, 농지원부·농업경영체에 등록된 주 경작자인지, 생산물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췄는지, 경작 규모가 기준 이상인지 등의 조건을 충족한 경우 자금을 지급한다.
대표적인 혜택은 농업 창업자금과 주택 구입자금 지원이다. 농업 창업자금은 대출 한도 3억 원 이내에서, 주택 구입자금은 7500만 원 이내에서 가능하다. 대출 금리는 연 2% 고정 또는 변동금리이며, 대출 기간은 15년 만기다.
농업 창업자금은 농지 구입, 온실·하우스·저장 시설 설치 및 구입, 농기계 구입, 농식품 가공시설 설치, 축사 구입 등을 지원한다. 주택 구입자금은 주거 전용면적 150㎡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지자체마다 귀농·귀촌지원센터, 아카데미 등이 있을 정도로 귀농과 관련된 교육 과정은 많고 다양하다. 그중에서 시니어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교육 과정을 꼽아봤다.
귀농·귀촌 맞춤형 교육
전직 창업농 교육은 40·50세대를 대상으로 하며, 농업인으로서 삶과 변화 관리, 농산물 유통 전략, 농촌에서의 가족 생활 등에 대해 배운다. 은퇴 창업농은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농촌에서의 보건의료, 자산관리와 재테크 등을 배울 수 있다.
농업 일자리 체험 교육
농업·농촌 이론 교육 5일, 농작업 실습 교육 5일로 구성되며, 총 80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지자체마다 교육이 진행 중이다. 교육비는 국비 100%로 무료다.
지자체 귀농학교
봉화비나리귀농학교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교다. 봉화의 주요 농산물인 사과, 고추, 수박 등에 대한 농사 기술과 현장실습 위주로 교육이 진행된다. 5박 6일 과정이며, 60시간 인정된다. 현재 8월, 9월, 10월 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창녕생태귀농학교 매년 200명의 수강생이 거쳐가는 곳이다. 8월 26일부터 10월 28일까지 9주 동안 100시간의 교육이 진행된다. 귀농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농장 견학과 체험을 할 수 있다.
임업(林業) 관련 일을 하는 귀산촌은 귀농 안에 속하고, 농업교육포털에도 교육 과정이 등록돼 있다. 다만 귀농은 농업진흥청이, 귀산촌은 산림청이 주무 관청이자 지원기관이다.
귀산촌은 행정적으로 산림기본법상 산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산림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산림 관련 커뮤니티 활동이나 생활·생업을 위해 산촌으로 이주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전원생활, 나무·열매·버섯류·산나물류·약초류 등의 임산물 재배, 산촌 유학, 체험농장 운영, 농·임산물 유통 등의 일을 한다.
임업후계자 교육
임업후계자 교육은 예비 귀산촌인을 위한 대표적인 교육이다. 임업후계자란 임업의 계승·발전을 위해 임업을 영위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산림청 소속 기관인 산림교육원과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청과 함께 귀산촌 교육을 기획·운영하는 곳으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귀산촌 아카데미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무료 공개 강좌로 귀산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더불어 산양삼과 산나물 재배기술 과정도 진행한다.
경남귀산촌학교 퇴직 후 제2의 삶을 찾는 사람,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귀산촌 정착에 관련한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농장디자인 과정, 산림경영 과정 비대면 교육도 있으며, 6월에는 야생화 소득증대 과정 교육이 열린다.
귀어업인은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어업인이 되기 위해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을 의미한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어촌어항공단이 귀어귀촌종합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마다 귀어귀촌지원센터가 있다.
어촌에서 어업, 양식업을 희망하는 이들은 3단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먼저 이론 교육을 받고, 이어 단기 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업, 양식업 분야 현장견학 및 체험 위주의 단기 기술 교육으로 창업 업종을 선택하기 전 다양한 어업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그 다음에는 장기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촌에 임시로 거주하며 어업, 양식업 기술 등을 배우는 교육이다. 귀어학교를 통해 교육받을 수 있다.
귀어학교
이론부터 실습, 어업 소득 기반 실현을 위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는 장기 실습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귀어학교는 경상남도 귀어학교로, 2018년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천시에서 8번째 귀어학교가 개교한다.
인천시 귀어학교 2023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으로, 연간 80여 명의 수산 전문 인력을 배출할 계획이다. 어업과 양식업을 포함해 어촌 관광·서비스업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어촌체험휴양마을
본격적으로 귀어업인이 되고자 마음먹기 전, 어촌체험휴양마을을 찾는다면 어촌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어촌체험휴양마을은 어업 체험을 중심으로 어촌 자연환경과 생활문화 등을 연계해 관광 기반시설을 조성한 곳이다. 현재 전국 121곳의 어촌마을이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남해 문항어촌체험마을 우럭조개잡이, 쏙잡이, 개막이 체험, 자연산 돌굴까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울산 주전어촌체험마을 육지에서 유일하게 30년 이상의 베테랑 해녀 선생님들로부터 물질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해녀 밥상 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스킨스쿠버, 투명카누도 즐길 수 있다.
‘귀농’은 익숙하지만 ‘귀어’는 생소할 수 있다. 더불어 귀어를 하면 어부가 된다고만 생각하는 도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편견과 달리 어촌 관광과 해양 레저 사업을 통해 주목받은 마을이 있다. 타고난 자연환경과 지역민의 어업이 잘 녹아든 결과다. 출신 구분 없이 마을을 향한 귀어인과 어촌 주민의 애정이 모여 탄생한 새로운 매력의 어촌, ‘궁평 어촌체험마을’을 소개한다.
현대 사회가 빠르게 산업화되면서 대도시와 공업 지역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됐다. 반면 농·어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최근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인생 2막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농뿐 아니라 어촌과 어항을 찾아가는 귀어인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귀어·귀촌을 하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는 어업뿐 아니라 양식장에서 전복·미역·김을 길러 파는 양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소금 사업, 수산물 가공업도 있다. 더 나아가 직접 어업을 하지 않고 어촌 관광, 해양 레저 사업 등의 3차 산업으로 자리 잡는 방법도 있다. 2015년 화성 궁평리로 귀어한 김문호 체험 사무장과 ‘궁평 어촌체험마을’이 바로 그 예다.
궁평 어촌체험마을은 아름다운 일몰과 갈매기, 싱싱한 먹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어린이를 위한 체험 활동이 많아서인지 가족 단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전국 어촌체험 휴양마을 운영실태 평가’에서 우수마을로, 7월에는 ‘이달의 어촌 안심 여행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을의 체험 분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귀어인과 어촌 주민들의 협력 덕이다. 갯벌 체험뿐이었던 프로그램은 낚시, 페달보트, 모터보트 등으로 점점 확대됐다. 도시 사람들이 바다에 놀러 왔을 때 좋은 기억만 갖고 돌아가길 바라며, 궁평항의 상황에 맞춰 개발했다.
궁평리를 서해안 명소로 만든 체험 프로그램
●갯벌 생태 체험
궁평 어촌체험마을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어장 황폐화를 막기 위해 갯벌을 3등분해 차례로 개방하고 있다. 1년 동안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한 다음, 2년 동안 쉬게 해 갯벌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방식이다. 덕분에 언제나 잘 보전된 서해안의 갯벌을 만끽할 수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어도 당황하지 마시라. 마을에서 장화와 호미, 장갑, 바구니 대여가 가능하다. 바지락, 동죽, 농게, 소라게, 민챙이 등을 실컷 구경하고, 진흙을 매만지며 신나게 갯벌 탐구를 마친 후 손발을 씻어낼 세면장도 마련돼 있다.
●모터보트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즐길 수 있는 궁평항 모터보트는 김문호 체험 사무장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김 사무장은 모터보트 운영을 위해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도 취득했다. 안전을 위해 파도와 바람 상태를 보고, 체험 시작 전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 후 가족, 연인들이 차례로 보트에 앉으면 모터보트가 출발한다. 물살을 가로지르며 바람을 맞다 보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페달보트
페달보트는 노를 젓지 않고 발로 페달을 밟으며 타는 작은 놀잇배다. 광장의 분수대 공간을 활용한 페달보트장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바닷물을 끌어올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물을 뺐다 채우기를 반복한다. 물은 30cm 정도로 얕게 받아 물놀이 사고에 대비했다. 부모들은 꺄르르 웃음소리를 내는 아이의 사진을 연신 찍기 바쁘다.
●어린이 낚시
궁평 어촌체험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갯벌 체험은 썰물 때 외에는 할 수 없어 시간을 맞춰 방문하거나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밀물 때 즐길 수 있을 체험을 개발한 것이 ‘낚시’였고, 이후 ‘어린이 낚시’로 이름을 바꿨다. 어린이 낚시라고 하나 아이뿐 아니라 부모들까지 합세해 체험에 나선다. 직접 고기를 낚는 성취감도 있겠지만, 한 마리만 낚아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날 것이다.
●아르고 체험
궁평항을 찾은 손님 대부분이 좋아하는 이색 체험이다. 아르고는 지상과 수상에서 모두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차로, 작은 탱크와 같은 생김새여서 탑승 전부터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우렁찬 엔진 배기음과 함께 자유자재로 달리는 아르고 위에서 마을 주변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잊은 채 신나는 함성이 절로 나온다. 웬만한 놀이기구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아르고의 박진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달고나 만들기
겨울 바다는 놀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겨울 궁평항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달고나 만들기 체험은 해마다 좋은 반응을 불러왔다. 김 사무장에 따르면 호황일 때는 하루에 1500여 명이 달고나 체험 부스를 다녀갔다. 체험 초창기에는 손님들을 위해 입이 마르도록 일일이 제조법을 알려줬는데, 새까맣게 태운 달고나를 보며 더욱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보곤 그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올겨울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힘입어 더 잘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물의 흐름을 따라 일렁이는 형형색색의 수초들, 그리고 그 사이로 유영하는 물고기. 일상의 많은 자극을 잠시 멀리하고 수족관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취향대로 돌과 유목, 다양한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이 늘었다. 여행도 운동도 즐거움이 잠시뿐이라면, 실내에서 꾸준히 즐길 취미로 ‘아쿠아스케이핑’은 어떨까?
수경 예술, 아쿠아스케이프는 Aqua(수중)와 Landscape(풍경)의 합성어로 이를 제작하는 행위를 아쿠아스케이핑(Aquascaping)이라 부른다. 다소 비주류적인 취미였지만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멍’(물을 멍하니 바라본다는 뜻의 신조어)으로 마음의 안정을 노리거나, 코로나19의 여파로 실내에서 즐길 취미를 찾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도 올해 수산 양식, 수산업 경영 분야 등 아쿠아스케이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실무 능력을 익힐 수 있는 내용의 교과서를 개발할 정도다.
AGA, IAPLC, KIAC 등 아쿠아스케이프 수조를 예술적 조형물로 심사하는 국제 대회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대회에서는 수조를 촬영한 사진을 출품하면 심사위원들이 기술력, 독창성, 분위기, 장기 유지 가능성 등을 종합해 심사한다.
스무 해 동안의 ‘덕질’
수경 예술의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원하는 크기의 수조를 준비하고, 이물질을 제거한 후 바닥재를 깔고 각종 장식을 배치한다. 그 후 나무에 수초를 끈으로 엮는다. 여과기 및 기타 장비를 설치하고 물을 넣은 후 2주 정도 지나 수초가 자리 잡으면 물고기를 투입한다.
일반적인 수족관의 경우 어류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집중했다면, 수경 예술은 수초가 중심이 된다. 수중 식물의 ‘서식 환경’이 더 강조된 형태다. 다양한 자연 소재를 통한 조형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어류가 건강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독특한 작업이다.
박기민 작가는 수초, 돌, 유목 등을 활용해 수조의 환경을 아름답게 제작하는 사람, 아쿠아스케이퍼다. 2018년 KAC(한국아쿠아스케이핑 콘테스트, 현 KIAC) 특별상, 2019년 KAC 2위와 KAPS(한국관상어산업박람회) 수초 디스플레이 부문 은상을 거머쥐었다. 수경 예술 쪽에서는 꽤 알려진 전문가다. 이 분야에서 굵직한 이력을 가진 그도 처음엔 물고기 몇 마리 키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전주에서 식당을 하셨어요. 3m짜리 어항이 두 개 있었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레 물고기에 관심이 갔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물고기를 키웠죠. 물고기만 있으니 텅 빈 어항이 허전해 보여서 어떻게 꾸밀까 찾아보다 아쿠아스케이프라는 걸 알게 됐어요. 벌써 20년 정도 됐네요.”
관상어에 대한 관심이 그 주변으로 퍼져 수조의 구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박 작가가 ‘물생활’(물고기를 키우는 취미를 뜻하는 신조어)을 시작할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아쿠아스케이프 교육 과정이 없었다. 대신 수경 예술의 기반이 마련된 일본의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그는 일본에 출장 갈 때마다 틈틈이 수족관이나 수족관용품 숍을 찾아다니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일본에는 수족관용품 브랜드 ADA(아쿠아 디자인 아마노)가 있었어요. 창립자는 다카시 아마노인데, 자연 풍경 사진작가였죠. 사진을 위해 우연히 물속에 카메라를 넣었던 게 ‘물생활’의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물속 풍경을 조금 더 아름답게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ADA가 수초와 물고기가 최적의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조명, 흙, 비료, 여과 시스템 등 다양한 재료를 개발했고, 각종 대회도 개최하면서 기반을 많이 닦아뒀어요.”
박 작가가 꼽는 수경 예술의 매력은 무수히 많다. 편한 시간 일부만 투자해도 아름다운 수조를 유지할 수 있고, 어떤 자연환경을 조성할지 고민하는 재미도 있다. 여기에 예쁜 관상어까지. 이들이 번식하면 얻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배설물이나 알레르기, 소음, 산책 등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관찰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삶의 원동력이 된 물생활
이 때문인지 박 작가의 물 사랑은 취미를 넘어 더욱 짙어졌다. 결국 마흔네 살이 되던 해, 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수족관용품과 관상어를 취급하는 ‘아쿠아리스모’를 창업했다. “40대 중반인 데다 원래 직업과는 다른 분야라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졌어요.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죠. 한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치열하게 임했어요.”
취미가 직업이 된 후, 그는 소재의 구도와 배치에 대한 기본기를 다시 닦기 위해 건축학도 시절 전공 책을 펼쳤다. 관상어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대회 출품을 위해 사진 공부도 했다. 생물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전문가라도 모든 종류를 골고루 잘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마다 좋아하는 수질이 다르고 남들과 같은 제품으로 세팅하더라도 지역마다 수질에 차이가 있으므로 미생물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수초가 만족할 수 있는 신비의 비료는 없으므로 수초들을 하나씩 관찰하면서 특정 영양분 결핍에 따른 증세를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쿠아스케이핑이 취미라면 키우고 싶은 물고기의 특성만 알아두면 되지만, 직업으로 하다 보니 연구할 게 많아요. 다양한 수초와 물고기를 한 번에 관리하다 보니 종류에 따라 맞춰야 할 물의 온도나 수질이 조금씩 달라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물고기들이 아프면 어떤 원인으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수산 생명 질병학도 공부했어요.”
반지하에서 시작한 ‘아쿠아리스모’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어느새 번듯한 2층짜리 건물에 입주했다. 박 작가는 현재 전국 각지 물생활 입문자들의 지표가 돼주고 있다. “관상어를 키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수경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순간이 오죠. 20년 전 저처럼요.”
이 작업에 적응하고 나면 한 단계씩, 막연히 품어왔던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면 된다. 이때 필요한 건 기다림과 인내다. 2주 정도 지나야 수초가 자리 잡고, 물속 생태계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수경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기다림 또한 취미를 향유하는 과정일 터. 기다림의 미학을 진정으로 느낄 순간이다.
초보 아쿠아스케이퍼를 위한 Tip
1 수조 조경을 시작할 때 소일바닥재,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 여과기가 필요하다. 영양분이 함유된 소일바닥재와 조명, 이산화탄소 발생기는 수초의 성장을 돕는다. 여과기는 물의 흐름을 만들어 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한다.
2 사육할 물고기의 종류와 원하는 수조의 스타일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다. 생물의 유형에 따라 수조의 크기, 수조 내의 수질 상태, 필요한 장비와 식물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3 수조를 세팅한 후 수초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2주 정도 기다리는 것이 좋다. 물고기를 성급하게 넣으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분진이 떠오른다. 수조 속 생태 환경이 천천히 안정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4 초보자라면 구피나 네온테트라를 추천한다. 구피는 단색과 줄무늬 등 종류도 다양하고 수질에도 크게 민감하지 않다. 네온테트라는 다른 종류의 물고기들과 잘 어울려 살기 때문에 여러 종을 함께 키우고 싶을 때 적합하다.
5 물고기가 예쁘다고 먹이를 여러 번 주는 경우가 있는데, 남은 사료가 물속에서 부패하면 암모니아가 과도하게 발생해 물고기가 죽을 수 있다.
6 관상어는 환절기 온도 변화에 따라 외부 기생충이 달라붙는 백점병을 흔히 겪는다. 물 온도를 28℃ 정도로 올려주고, 메틸렌블루 성분의 약품을 사용해 개선할 수 있다.
7 환수는 필수다. 육안으로는 깨끗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을 2분의 1 정도 남기는 부분 환수를 추천한다. pH와 물속 박테리아를 조절하며 건강한 수조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해양수산부(해수부)는 지난달 29일 인구 감소로 인한 어촌의 소멸을 방지하고, 활기찬 어촌을 만들기 위해 신규 인력 유입 확대, 일자리 창출 및 삶의 질 개선 등의 대책을 담은 ‘어촌지역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어가 인구는 총 10만5000명으로 2019년(12만1000명)보다 약 13.2% 감소했다. 어가수는 4만6000가구로 2019년(5만4000가구)보다 14.8% 감소했다. 고령화 문제는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다. 어촌의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6.2%에 달한다. 전국 평균치인 15.7%보다 약 2배 이상 높다.
해수부는 이런 어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촌지역 활성화 대책’을 실시한다. 이번 대책은 '살고 싶은 어촌, 상생하는 어촌'이라는 비전 아래 어촌지역 인구를 현재 10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2030년까지 평균 어가 소득 8000만 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해수부는 우선 소득기반 확충에 집중한다. 국가 어항을 관광 시설화하고, 위판장을 자동화하는 등 인프라 개선을 중심으로 한 시장 창출이 목표다. 자금은 2026년까지 민간투자 6000억 원을 확보해 추진한다. 만 40세 미만 청년 귀어인을 위해선 창원지원금 지원대상 규모를 올해 200명에서 내년 220명으로 늘린다.
개방성 강화방안은 청년 어선 임대 제도로 도모한다. 2022년 시범사업으로 10척을 우선 임대한다. 이를 통해 청년 어업인 1만 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신규 전입자가 양식업과 마을어업에 더 쉽게 참가할 수 있도록 ‘공공임대형 면허’ 제도도 신설한다. 수협 등 공공기관이 면허를 소유하고 이를 귀어인에게 재임대하는 제도다.
주거 지원도 병행한다. 어촌지역 삶의 질을 향상해 인구 유입을 노리는 셈이다. 이주 계획단계에는 일정 기간 어촌생활을 체험해볼 수 있는 임시 주거시설인 ‘귀어인의 집’을 제공한다. 초기 정착단계에는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어촌지역 빈집을 증·개축하여 임대용 주거시설로 제공한다. 정착단계에는 국토부와 공동으로 ‘주거플랫폼 사업’을 통해 장기 임대용 공동주택을 공급한다.
중장년의 관심은 이러한 지원 방안이 5060 세대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쏠려있다. 인구 유입과 관련한 정책은 40세 미만에 집중되기 마련이지만, 귀어촌의 중심에는 5060 세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해수부 측은 '기우'라고 설명했다.
김성원 해수부 어촌양식정책과장은 “어촌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대상을 청년층으로 설정했지만, 사업 규모가 확대되면 대상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며 "일부 청년 지원 제도를 제외하면, 중장년층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온갖 정치·사회 뉴스와 SNS, 유튜브 등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시종일관 현대인을 괴롭힌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까지 피로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에게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추세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중장년층의 ‘코로나 블루’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중노년기 불안심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 빈도를 물어보는 질문에서 ‘자주 또는 항상 불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가 2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대 19.5%, 60대 이상 10.8% 순이었다. 불안심리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는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미래에 대한 불확실성(20.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19.2%)’, ‘일자리 상실에 대한 염려(8.7%)’가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람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힐링’을 위한 한 방법으로 ‘멍 때리는’ 행위가 인기를 얻고 있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 물을 바라보는 ‘물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 등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공중파 방송까지 사로 잡았다. 공중파 EBS는 지난해 9월부터 매주 월~목요일 밤 ‘가만히 10분, 멍TV’를 방영한다. 초승달·폭포·연못 속 물고기 같은 자연, 맥반석 김·호떡 굽기 등 요리, 괘종시계·인형뽑기·턴테이블 등 일상의 흔한 소음이나 모습을 아무런 설명이나 장면 전환 없이 있는 그대로 쭉 보여준다.
여러 유튜브 채널들도 일상 소음을 담아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 영상을 우후죽순 업로드하고 있다. 머리 감기,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근 배우 이상이는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직접 집 안에 거대한 어항을 설치한 후 수족관을 찾아가 반려어를 사고, 수초수조를 만드는 등 물멍의 기초 작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줬다. 그는 “반려어와 수족관을 하루 2시간씩 그냥 쳐다본다”고 말했다. 물멍을 통해 마음이 정화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이런 ‘멍 때리기’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멍 때리기로 심장박동수가 안정화하고 뇌에도 휴식을 취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호흡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 효과 같은 것이 나타날 수 있다”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의 반(反)작용으로 멍 때리기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다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한다고 직면한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만큼, 이를 도피처로 삼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의 집은 바다에 있다.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산다는 얘기가 아니다. 꿈과 정신의 집, 그걸 바다에 두고 산다. 다시 말해 바다에 홀린 사람이다. 요트를 타고 대양을 누비는 모험에 심취해 달리 남은 욕망이 없다. 이렇게 몰입이 깊어지자 즐거움이 커졌다. 즐거움이 커 몰입이 깊어졌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단 한 번 주어진 생을 으으 즐거운 쪽으로 몰아가는 사람의 정경엔 노련한 인생 항해술이 비친다. 뚝심과 낭만으로 반죽된 고유의 기풍이 서려 있다.
김승진 선장(58). 해양모험가 또는 요트탐험가로 불린다. 요트란 일종의 일엽편주. 버들잎 하나처럼 미미한 동체로 물살을 가르는 미니 선박. 주로 유람이나 경주 목적으로 연안이나 강, 호수에 띄워진다. 그러나 김승진은 요트를 타고 저 창망한 대양을 활개 친다. 이미 지구를 세 바퀴 일주했다. 지난 2014년엔 단독 무기항(無寄港), 무원조(無援助) 요트 항해로 세계 일주에 도전해 성공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기록이라서 당시 언론이 들썩거렸고, 이후 요트 애호가들이 늘어났다.
그의 쾌거에 가장 열렬히 환호한 건 김승진 자신이었겠지. 가슴 깊이 키워온 꿈을 드디어 성취한 만족감으로 말이다. 흔히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며 살더라도 나의 겉과 속은 달라 자주 분열되기 십상이다. 품은 지향과 실제의 삶을 일치시키기가 어디 쉽던가. 알고 보면 갈지자 행보를 일삼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김승진은 바다로 겨냥된 꿈, 모험이 있는 삶으로 뻗은 꿈 하나를 실천으로 이룬 게 아닌가. 자신에게 장미꽃을 바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아직 고프단다. 이왕지사 내친 김에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싶다는 거다.
“무기항 단독 요트 항해로 지구를 일주한 사람은 전 세계에 100여 명이 있다. 이제 나는 더 격렬한 항해에 나서고자 한다. 올 연말 ‘이모카(IMOCA) 오션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할 예정이다. 세계 최정상급 요트맨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레이스로, 속도 경쟁이 벌어진다. 누가 더 빨리 지구를 한 바퀴 도느냐, 그게 핵심이다.”
대양의 거친 파랑과 맞붙기에 이골 난 사람이라 아마도 근육이 울룩불룩한 터프가이이겠거니 했으나 전혀 아니다. 날씬한 체구에 눈매는 온순해 정신의 강골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얼른 짐작되지 않는 인상이다. 가지런히 다듬은 콧수염은 다소 코믹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그윽이 상대를 응시하는 버릇으로 자리를 차분하게 만들어 대화에 리듬이 붙는다.
이 세련된 요트 선장의 원래 전공은 미술. 그러나 미대를 다니면서도 그림보다는 스킨스쿠버에 푹 빠져 살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피디로 줄곧 뛰었다. 고베 대지진의 현장을, 북한 꽃제비들의 참상을, 여전히 석기시대 풍색으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 오지 부족의 태평한 삶 따위를 다큐로 제작해 세상에 알렸다. 지구촌 곳곳의 참경과 진경을 찾아다녔으니 일찍부터 탐험으로 종횡무진했던 셈이다.
해양모험가로서 높아진 인지도
김승진 선장이 막연하게나마 바다를 꿈꾸기 시작한 건 어릴 적에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가슴에 들어와 앉으면서였다고 한다. 요트에 혼이 쏠린 것도 독서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유명한 요트모험가 시라이시 코지로가 쓴 ‘일곱 개의 바다를 건너서’라는 책을 읽고 무릎을 쳤던 모양이다. 바다를 누비고 싶다는 묵은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알려준 책이었기에. 요트로 대양을 질주하는 행위에 노른자처럼 박힌 모험적 요소와 풍부한 가치 역시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요트 조종 기량을 숙달했고, 마침내 크로아티아에서 중고 요트 한 척을 사왔다. 가격은 3억 원. 당시 그는 물심양면의 불황에 시달리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고가의 요트를 사들였다. 이거 발칙한 도발? 인생의 흥미는 도발적일수록 진진해진다.
“다큐 제작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사업에도 꽤 재주가 있어 풍족하게 살았다. 뉴질랜드에서 처자와 함께 수영장이 딸린 집에 살기도 했지.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순간에 다 날아가더라고. 빚을 청산하고 남은 돈을 털어 요트를 샀다. 인생을 새롭게 바꿀 상황이 도래한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래 익혀온 꿈을 실현할 절호의 찬스라 보고 바다로 떠났다.”
“2014년, 마침내 단독 요트 항해를 통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그게 인생의 변곡점으로 작용한 셈인가?”
“그렇지. 다큐멘터리 피디에서 해양모험가로 변신했으니. 지난날, 내게도 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 사람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건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일 게다. 지금 당장 나를 흥분하게 하고 설레게 하는 일에 몰입하기. 늘 그걸 생각하며 살았다. 좀 위험한 상황에서 오히려 생동감을 갖기도 한다.”
“요트 항해도 모험이지만 인생 자체도 어쩌면 모험의 연속이다.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지루한 모험. 이건 달아날 길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다. 당신의 요트 구입에 가족들이 원성을 터뜨리진 않았나?”
“가족은 나를 좀 특별한 사람으로 간주해 그냥 인정해줬다. 게다가 난 허영에 찬 모험가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자금으로 왜 집을 사지 않고 요트를 샀느냐며 이상해들 하지만 그건 투자이기도 했다. 집 대신 요트 모험에 투자했거든. 난 현재 강연 활동 등으로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해양모험가로서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이다. 투자 효과가 발생한 것이지. 국내 해양레저 산업은 아직 불모지이지만 머잖아 블루칩으로 떠오를 거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란 얘기다.”
“실용적 의도가 다 있었구나.”
“맞다. 다 계산이 있었다. 그런 게 없다면 무모한 짓이지. 그러나 이건 본질이 아니다. 난 평생 모험으로 살아왔으며 가급적 모험의 절정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이 점에서 요트를 이용한 항해는 더할 나위 없는 적격이었다. 모험적 항해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자는 것. 이게 내가 추구하는 본질이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시 빨리 찾아 행복을 즐겨라! 이거저거 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데에서만 행복이 나오랴. 아침에 눈을 떠 하루가 더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에서도 행복이 나온다. 급할 때 화장실을 못 찾으면 불행이지만 찾으면 행복이다. 그러나 그런 걸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타성에 안주해 그저 ‘귀차니즘’이 증가하는 걸 바라볼 뿐이다. 어항에 갇혀 주둥이를 뻐금거리는 붕어처럼 굴레에 갇힌 삶. 거기에서 벗어나라고 김승진은 재촉하고 싶은 것이다. 타성을 들어내고 모험심으로 심장을 채우라는 권장이다.
“항해 중엔 그리움이 들솟더라”
김승진의 요트에는 ‘아라파니호’(길이 13m, 폭 4m, 무게 9t)라는 선호(船號)가 붙어 있다.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달팽이의 옛말인 ‘파니’를 조합했다. 바다를 달리는 달팽이! ‘느림의 미학’이 담긴 이름이다. 조급해할 것 없이 유유낙낙 항해를 즐기되 끈질긴 달팽이처럼 좌우간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를 담았을 게다. 바람을 돛에 매달고 해면을 미끄러지는 요트. 힘과 속도와 우아함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동체다. 그는 이 돌고래처럼 아름다운 요트에 꿈과 모험과 낭만을 싣고서 ‘나 홀로’ 세계 일주 항해에 도전해 성공했던 것이다. 출발점은 충남 당진의 왜목항. 태평양을 넘어 남극해를 건너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왜목항으로 귀항하는 코스였다. 총 항해거리는 4만여 km. 209일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209일간 혼자 망망대해를 항해하다니, 황홀한 고행 아니었을까?”
“시련이 많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면 선물처럼 환상적인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규정된 룰을 깨지 않고 기어이 완주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많았지. 성공을 해야만 모험가로서의 위상과 진로가 주어질 거라서.”
“대양이라는 원초적 대자연과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정면으로 마주친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연상된다. 노자가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자비롭지 않다고. 심지어 노리개처럼 가지고 논다고.”
“내가 지금 어마어마한 대자연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전율이 잦았다. 물론 태풍이나 파도는 때로 위협적이었지. 남빙양에서는 9m 높이의 파도를 만났다. 야, 그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요트가 미끄러지는데 살벌한 굉음이 귀청을 찢더라고. 내가 간덩이가 큰 사람이지만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선실이 천국이라면 그 한 치 밖은 지옥이었으니까.”
‘지옥’이라는 표현에서 공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성벽처럼 견고하게 일어서 울부짖는 초대형 파도의 습격 앞에서 떨리지 않을 장사가 있겠는가. 자연의 가공할 위력에 인간의 잘난 콧대는 흔히 납작해진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살아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우리는 자주 인간 역시 하나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위대한 자연에서 나온 강인한 종이라는 걸. 김승진은 인간의 질긴 근성을 입증하듯 위기가 오는 족족 능숙히 처리했다. 물론 그럴 만한 항해의 지식과 경륜에도 힘입었겠지만.
“궁금하다.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즐기기 위해선 어떤 능력이 필요하지?”
“우선은 항해술에 능해야 한다. 기기 작동은 물론, 바람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무동력 항해가 가능하다. 잠시 뒤에 닥쳐올 위험을 미리 예감하는 센스도 중요하다. 멘탈도 빼놓을 수 없다. 두려움과 외로움을 타지 않고 혼자 즐길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 거다.”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구나.”
“겁먹을 거 없다. 누구나 탈 수 있다. 열여섯 나이의 호주 여자애가 지구를 한 바퀴 돌기도 했거든. 인간이 만든 모든 탈것들 중 요트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도 있다. 배가 뒤집힐까 걱정하지만 요즘 요트들엔 ‘발라스트 킬’이라는 장치가 있어 자체 복원된다. 넘어졌다가도 오뚝이처럼 저절로 일어선다고.”
“바다에서 본 가장 특별한 광경은 어떤 것이었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었다. 별들은 잔잔한 수면에도 무수히 어려 환상적으로 반짝였다. 숨이 멎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봤다. 내가 아예 우주에 떠 있는 기분이었지. 삶이 숭고해지더라. 가슴에 고이 담아 돌아온 밤별 풍경이었다.”
“해적도 만났다지?”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서 해적의 추격을 받았으나 간신히 떼어냈다. 물속에 들어가 돌고래를 구경하며 놀다 상어가 덤벼들어 혼쭐이 난 적도 있다. 거대한 유빙(流氷)이 요트 곁으로 떠밀려올 때엔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정말 난처했던 건 무풍(無風)지대를 만났을 때였지. 요트를 움직일 방법이 없으니.”
바람이 잘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무동력 요트는 바람이 잠들면 같이 잔다. 그럼 그도 덩달아 자거나,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라도 추면 좋을 테지만 그러기엔 아깝다. 잠이나 자자고 세상의 변경을 찾아간 게 아니니까. 결국 그는 흘러가는 생각들을 잡아채는 데에다 시간을 쓰곤 했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의 사색. 사색의 끝은 주로 사람에 닿았다지.
“나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항해 중에 거듭 사람이 그리웠다. 아는 사람들의 좋았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르며 그리움이 들솟더라. 별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살아야 인간이다. 그럴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외로움이 뭐야? 난 그런 거 몰라! 그는 그런 투로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러나 항해 중엔 무인도마냥 고독했던가보다. 그걸 피할 길이 있겠나. 해서 가슴으로 사람이 사랑처럼 피어올랐겠지. 나는 그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개중에 저릿하게 남는 한마디. 사람이 그리웠다.
솔향기길 1코스는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 해수욕장까지 약 10km 구간에서 전개된다. 숲길을 거닐며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명품 둘레길. 구간의 일부만을 탐방해도 뿌듯하다. 어느 구간이건 차량 접근도 쉽다.
뭍의 끝자락에, 작은 포구 만대항. 포구에선 들뜬다. 드나드는 고깃배들의 생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낮부터 술 마시는 어부들의 파안대소 때문이다. 한나절을 머물러도 무료하지 않은 게 포구다. 정들기도 정 두기도 쉬운 게 어항이다. 쏠리는 마음을 거두고 산길로 접어든다. 만대항은 솔향기길 1코스의 기점이다.
이 둘레길은 바다로 가는 산길이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산과 바다가 동행하는 해안길이다. 산이 있어 푸르고 바다가 또한 푸르러 천지가 통째 푸르고 푸르다. 잿빛 도시에 발목 잡힐쏘냐, 한달음에 내달아 닿은 게 감옥 밖이다. 철창 없는 철창. 비정한 성시(成市)를 그리 이르는 게 아니다. 감옥이 마음 안에 있지 어디 밖에 있더냐. 좀스러운 자는 자주 마음의 해방을 갈구한다. 그런 나에게 산과 바다는, 자연은 특별사면을 허한다. 자연이라는 유토피아 외 믿을 만한 의지처가 다시 있던가.
해송 숲 사이로 구불구불 길이 펼쳐진다. 뇌수까지 건드리는 솔바람, 콧등을 치는 솔향기에 심취한다. 창고에 처박힌 오감이 훌훌 먼지를 털고 깨어나는 순간이다. 감관이 잠 깨면 눈앞의 사물이 자못 새롭게 느껴진다. 모처럼 공정한 눈으로 풍경의 진실을 살핀다. 나는 지금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오르막을 오르막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보는 방향에 따라 오르막은 내리막이며, 내리막은 오르막이다. 숲 덤불에선 이 꽃이 피고 저 꽃이 진다. 이게 단지 꽃만의 일이겠는가.
숲길 저 너머로, 저 아래로 자주 바다가 보인다. 쪽빛? 코발트블루? 울트라마린? 바다색은 찬연히 푸르다. 반할 게 색뿐이랴. 광활해서 장엄하고, 잔잔해서 은은하고, 쾌청해서 요요한 저 바다. 이 모든 미덕의 총합을 ‘그지없는 아름다움’이라 해두자. 아련한 수평선 위로는 하늘이 피어오른다. 해는 중천에 떠 활을 겨누듯 바다를 겨냥해 햇살을 쏜다. 그러자 수면에 어리는 수천수만의 물비늘들. 찰나에 반짝이다 찰나에 스러지는 저 시리도록 눈부신 빛의 알갱이들. 윤슬이라고 하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건 이슬이지만, 윤슬은 순간에 명멸한다. 저건 어쩌면 잡아둘 수 없는 시간의 허무한 잔상이다. 야야, 덧없다, 생성과 소멸이 한 몸이다, 그런 뉴스를 전하며 황홀하게 떠난다, 윤슬.
산은 낮고, 숲은 무성하다. 길은 거칠 게 없으니 구미에 맞다. 다정도 하여라. 나무들은 그 따뜻한 손을 내밀어 숲길로 인도한다. 내 몸을 어루만진 해풍은 산을 넘어 어느 꿈의 교각 아래에 나를 눕힐 것인가. 딱딱한 바위 벼랑에 뿌리 내린 나무들은 어떤 마법의 묘약을 마셨기에 저토록 굳센가. 보매 의연한 초목이며 사람만 갈피없이 설렌다. 수려하기로는 또한 산경(山景)이며 경이롭기로는 바다다. 보라, 솔향기길의 명소를, 미모를, 쾌활을…. 당봉, 가마봉, 여섬, 칼바위, 용난굴 등 빼어난 조망과 신비를 자랑하는 경승이 즐비하다.
솔향길에는 ‘보은의 길’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지난 2007년, 이른바 ‘태안 기름 유출사건’ 당시 전국에서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불철주야 해안에 들러붙은 기름을 닦아냈다. 당시의 자원봉사자 123만 명이 작업하기 편하도록 지역민들이 황급히 길을 닦고 밧줄을 매단 게 솔향기길의 시발이었다지.
흔쾌히 발 벗고 나섰던 사람들의 선의는 실로 고귀하다. 일왕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의 열정에 맞먹을 장쾌한 행장이었다. 지옥으로 통하는 길조차 선의로 분장된 세태라지만, 계산이 없는 선의는 얼마나 위력적인가. 봉사자들의 선의에 찬 연대는 결국 자연을 살렸고, 사람의 마을을 데웠다.
홀연히 날개를 펼친 선의로 세상과 만나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 자연에 기생하길 습으로 삼은 게 인간사이지만, 그들은 공생의 도리를 알아 사랑을 실천했으니 매혹의 행장이지 아니한가. 솔향기길에 감도는 솔향에 살포시 포개진 저 선의의 향. 두 겹 향이 가슴을 채운다. 일몰의 수평선엔 어느덧 놀빛 너울거리고.
어쩌다 인연
근무가 끝나면 아무도 없는 숙소로 돌아가기를 싫어한 일본인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을 달래줄 애완동물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외로움만 있던 방에 새 식구가 생겼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아 개나 고양이는 기를 수 없었던 그녀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에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를 길렀다.
작은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거피가 싱크로나이즈 선수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아가씨는 우리 아들과 국제결혼을 했다. 며느리는 한국에서 의무 복무기간이 끝났고 아들은 도쿄 나리타공항에 취업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다 싣고 문을 닫는데 며느리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거피가 담긴 어항을 컨테이너에 실을 수도 없고 그냥 두고 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들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항은 아버지가 기르시든지 다른 사람 주세요.”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이라지만 뜻하지 않는 이별이었다. 아들의 마지막 말에 어려운 시절을 거피와 함께했던 며느리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염려하지 마라. 내가 잘 돌볼게.”
내 말에 며느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항의 물을 최소한만 남기고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 거피는 이제 나와 인연이 되어 우리 집으로 왔다. 거피가 게으른 주인을 만나 굶주리며 더러운 물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 안 들으려고 깔끔하게 손질해 놨다.
얼마 후 아들 내외가 전화를 했다. 이사를 무사히 잘했다는 안부 전화였다. 그런데 한참을 통화했는데도 며느리는 전화를 안 끊었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거피의 안부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깨끗이 손질된 어항에서 거피들이 잘 놀고 있는 모습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줬다. 정이 많고 심성이 착한 며느리는 거피가 새로 태어난 아기들과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특별한 아침
“철퍼덕 철퍼덕.”
‘이게 무슨 소리지? 어항이 깨졌나?’
거피가 이사 온 첫날, 자다 말고 일어나서 어항을 살펴봤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창문 밖은 여명으로 훤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거피들이 아침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였다. “그래 알았어, 이 녀석들아. 밥 줄게.”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꼬끼오~” 하며 닭 울음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나는 요즘 거피들이 지느러미로 수면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 아침도 거피가 지느러미로 노크한 수면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그 동그라미 속으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아들 얼굴, 며느리 얼굴, 그리고 예쁜 손녀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