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주현미가 정규 20집 발매를 앞두고 앨범 수록곡 중 2곡을 선공개한다. 소속사 씨씨엔터테인먼트는 주현미의 신곡 '돌아오지 마세요'와 '물망초 사연'이 발매된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주현미는 6월부터 정규 20집에 수록될 12곡을 매달 두 곡씩 디지털 싱글 형태로 발표했다. 공개된 곡은 '여인의 눈물', '꽃 피는 청계산', '세 번의 사랑', '상심' 등 4곡이다.
19일 공개되는 첫 번째 곡 '돌아오지 마세요'는 디스코풍의 밝은 분위기로 남녀노소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다. 곡 제목과 달리 돌아와 달라는 역설적 애원이 담겨있다. 작사는 KBS 2TV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등 드라마 연출로 왕성하게 활동한 김종창 PD가 참여했다. 주현미가 이 드라마의 OST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됐다.
두 번째 곡 '물망초 사연'은 오랜만에 만나는 '주현미 표' 트로트다. 1985년 '비 내리는 영동교'로 데뷔한 이후 주현미는 '등대섬의 추억', '여자는 꽃이 아니야' 등 여러 3박자 왈츠 트로트 곡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적 색채를 그려나갔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물망초 사연' 또한 왈츠 트로트로, 2020년 주현미가 1985년 주현미를 오마주하는 상징적인 곡이다.
씨씨엔터테인먼트는 "주현미의 20집 앨범은 지난 35년간의 활동을 기념하면서도 정통 트로트의 본질을 찾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며 "이번 음반으로 우리 민족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정과 한의 정서를 표현하고 가요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로트의 여제 주현미가 데뷔 35주년을 맞아 새 앨범을 발표한다. 통산 20번째 주현미 정규앨범으로, 총 12곡의 '인생 이야기'가 담겼다.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아 전국 투어 일정에 발맞춰 지난 봄 발표될 예정이었던 이번 앨범은, 최근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이 연기되면서 발매 시점을 늦추게 됐다.
이에 총 12트랙의 수록곡을 6월부터 월 2곡씩 디지털 싱글의 형태로 선공개한 뒤 11월 모든 곡의 발표가 끝난 뒤 아날로그 방식으로 리마스터링 된 LP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첫 음원 공개는 6월 15일 월요일 오후 6시에 이뤄진다.
6월에 선보이는 두 곡은 '여인의 눈물'과 '꽃 피는 청계산'이다. 첫 번째 곡인 '여인의 눈물'은 6/8박자의 리듬에 오케스트라 편곡이 빛을 발하는 노래로 주현미의 파워풀한 보컬이 돋보인다.
두 번째 트랙은 '꽃 피는 청계산'으로 가수 주현미의 인생에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담긴 곡이다. 요즘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통 트로트 곡으로, 유난히 산을 제목으로 하는 노래를 많이 불러온 주현미의 개인적인 추억을 표현함과 동시에 우리에게도 친근한 명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수 주현미는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께 가장 '주현미'다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라며 ”시대를 역행할지라도 트롯의 원류(源流)를 찾아가는 것이 이 앨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주현미의 트로트를 향한 진심은 최근 보여준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11월부터 시작된 유튜브 채널 '주현미TV'를 통해 130여곡에 달하는 우리 전통가요를 직접 불러 업로드하고 있다. 최근 각각 노래의 사연을 고증해 기록한 노래 이야기를 엮어 에세이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펴내기도 했다.
TV조선 프로그램 ‘강적들’에서 나와 같이 방송했던 이준석이 독립야구연맹 총재로 취임하던 날 행사장에서 가수 장혜진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전광석화처럼 “조만간 인터뷰합시다!” 하고 대시했다.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보며 그녀의 노래에 심취했던 한량 이봉규가 동물적으로 반응했던 것. 우물쭈물하는 장혜진을 보더니 내 옆에 있던 김성경 아나운서가 “인터뷰 해, 언니~ 나도 했어!”라고 거들어주는 바람에 운 좋게 다시 만났다.
장혜진은 인터뷰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노래에만 빠져 있을 뿐 모르는 사람과는 말 섞기를 불편해하고 어색해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점을 금세 간파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한량 이봉규 특유의 느물느물 전법으로 그녀를 밀어붙였다면 인터뷰는 무미건조(無味乾燥)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공손한 자세로 노래에 관한 얘기부터 꺼냈다. 다행히 대화가 술술 풀렸다.
장혜진은 겉으로는 야리야리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강한 자기 철학을 가진,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인물이다. 첫 모습을 봤을 때 상당히 까칠할 것 같고 깍쟁이처럼 보였는데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허당’이면서 따뜻한 여인의 성정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종잡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캐릭터가 중첩되는 여인이었다. 그런 성격이 오늘날의 장혜진을 대가수로 만든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완벽하게 감정을 이입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녀에게 다중적인 성격이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열창했던 곡 ‘술이야’를 들었을 때 한량 이봉규가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녀가 매일 술에 젖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순정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사의 마지막 소절 “정말 영영 이제 우리 둘은 남이야 저물어가는 오늘도 난 술이야~”를 들을 때마다 1년에 360일 술을 마시는 주당 이봉규는 영락없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장혜진의 주량은 맥주 한 잔이란다.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술도 마실 줄 모르는 사람이 ‘술이야’를 부르면서 그런 표정과 목소리를 내뿜을 수 있나?”라고 따져 물었더니, “그만큼 힘들고 괴로워서 술에 맨날 젖어서 산다고 감정 이입했다”고 말하면서 몰입이 안 되면 노래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술은 체질적으로 안 맞아 마실 줄 모르지만 술에 취한 사람의 감정처럼 몰입할 수는 있다는 장혜진의 설명이 알듯 모를 듯했다.
체조 선수가 가수가 된 사연
그녀의 이력이 의외로 다채로웠다. 그녀는 대학교에서 기계체조와 리듬체조를 전공했다. 원래는 체조 선수였지만 부상을 당해 선수생활을 접고, MBC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유명 가수들의 백코러스를 담당했는데 좀 더 멋진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 당시 이수만이 경영하던 종로3가의 ‘SM 카페’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차 한 잔 시켜놓고 해외 유명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분석했다. 동작 하나하나, 의상, 조명, 창법 등을 면밀하게 관찰하느라 온종일 뮤직 카페에 있어도 즐거웠다. 본인이 직접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구입해서 의상디자인까지 하면서 “어떡하면 여성 코러스로서 가장 섹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몰두했다. 그때부터 천생 가수의 기질이 나타났던 셈이다.
그 시절 그녀의 오랜 친구였던 강승호가 그룹 ‘소방차’의 막내 매니저로 일할 때 방송국에서 예능 PD에게 발로 차이고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장혜진은 강승호에게 “이렇게 막내 매니저로 살지 말고, 네가 제작자로 나서라. 일단 내가 너의 가수가 돼줄 테니 그다음부터는 나를 발판 삼아 인기 있는 가수들을 많이 키워내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들은 강승호는 일주일 만에 아시아레코드에서 계약을 따내고 신곡을 들고 장혜진을 찾아와 녹음하자고 들이댔다. 이 앨범에 바로 1991년 장혜진을 가요계에 데뷔시킨 ‘꿈속에선 언제나’라는 타이틀곡이 들어 있다. 그녀의 조언대로 강승호는 장혜진을 1호 가수로 내세워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운영을 시작해 김종서, 박상민, 박완규, 캔 등의 실력파 가수들을 발굴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강승호가 한술 더 떠 장혜진에게 결혼하자며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강승호의 집념에 그녀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했다. 남편 강승호는 전형적인 0형 혈액형 성격으로 다혈질이고 저돌적이다. 장혜진을 데뷔시킬 때도 그랬고 결혼을 승낙받을 때도 성격이 그대로 나타났다. 결혼을 망설이던 장혜진은 어느 날 갑자기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거 갖지 말고 친구처럼 이 사람과 살아봐도 괜찮겠다. 남자 뭐 별거 있어?”라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 앨범 작업을 같이 하다 보니 편해지기도 해서 28세 때 강승호의 끈질긴 청혼을 받아들이고 면사포를 썼다.
권태기, 갱년기 그런 거 잘 모른다
인터뷰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장혜진도 이봉규를 경계하는 마음이 슬쩍 느슨해진 듯 보였다. 그 틈을 타 “결혼생활 26년이 되었으면 그동안 권태기도 많았겠다. 그리고 나이도 갱년기를 겪을 시기니까 힘들 때도 있을 것 같다”고 찔러봤다. 그녀는 담담하게 “권태기나 갱년기 그런 거 잘 모르겠다. 예민한 성격이 아니고, 바쁘게 살아서 그런가?” 하고 반문한다. 내친김에 “부부싸움하면 누가 이기나?” 하고 물고 늘어졌다. “남편이 이긴다. 나는 눈물부터 나와서… 울면 지는 것”이라고 곧바로 받아치는 것으로 봐서 이들 부부관계의 권력 서열이 대충 짐작됐다. 결혼생활 만족도를 점수로 물었더니 “80점”이라고 답한다. 곧바로 가수생활 만족도를 물었더니 “100점이 넘는다”고 대답하면서 표정이 확 바뀐다.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직업으로 삼아 평생 노래와 함께 살고 있음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장혜진의 해석, 천생 가수임에 틀림없다.
사실 이봉규도 평소에 가수가 최고 직업이라고 생각해왔고 “다시 태어나면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빤한 답변이 예상되지만 똑같은 질문을 장혜진에게 했더니 “다시 태어나면 야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남자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록 밴드를 좋아하는데 특히 마이클 볼튼이나 레드 제플린처럼 야생의 목소리를 선호해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것. 그래서일까? 장혜진의 목소리에서도 뭔가 끈적끈적하고 야생성이 느껴진다.
1996년 이후 성대결절로 공백기를 거치면서 고음을 자제하고 중저음 위주의 창법을 쓰고 있지만 그녀가 야생의 목소리를 좋아해 그쪽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장혜진은 어릴 적부터 노래를 잘한 타고난 가수이기도 하지만 무시무시한 노력파다. 하루 종일 노래만 생각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팝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건너가 실용음악과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버클리음대에서 3년간 공부했다. 그녀는 또 자신이 고집하는 장르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장르의 가수들과 함께 앨범 작업을 하는 등 가수로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평소 장혜진의 음악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라 할 만큼의 도전이었다.
그녀가 대학 시절 기계체조와 리듬체조를 전공했기에 “노래 부르면서 ‘봉춤’ 같은 것을 시도하면 어떨까?” 하고 다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해봤더니 장혜진은 의외로 반기면서 “핑크가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리본으로 공연을 했는데 참 부러웠다”고 본인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럴 만한 곡을 못 만나서 자신의 전공을 노래에 살릴 수 없었다는 것. 체조 전공자로서 단련된 신체 덕분일까. 장혜진은 암벽등반을 즐긴다. 밧줄을 타고 내려올 때 하늘을 나는 느낌을 받는다니 놀랍다.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까지 보인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해 종잡을 수 없는 여러 캐릭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꿈은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서는 것. 노래에 대한 그녀의 열정과 삶의 철학을 엿본 한량 이봉규는 육십 평생을 돌아본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장혜진과 인터뷰하는 동안 많이 배웠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좋아하는 직업에 감사해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몰입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쳐본다. 땡큐! 장혜진!
‘별은 빛나건만‘의 애절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맴돈다.
고통 속에서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듣는 이에게도 절절하게 다가오게 하는 노래이다.
오페라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은 이렇게 필자 마음에 남아 있다.
처음에 오페라를 영화로 본다고 해서 별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무대에서 생생한 배우들의 몸짓과 노래를 듣는 게 오페라의 묘미일 텐데 영화의 화면으로 오페라를 본다니 그리 감동이 다가오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메가박스 몇몇 극장에서 영화로 보는 오페라를 상영하고 있다.
이 방식은 실제 오페라 무대를 실황 중계하듯 영화로 보여 준다.
날짜마다 레퍼토리가 달랐는데 필자가 선택한 오페라는 ‘토스카’이다.
이번 상영작은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의 오페라로 바덴바덴 축제극장에서 열린 작품이다.
오페라를 영화로 본 느낌은 실제 무대를 본 것만큼이나 생생하고 감동적이었다.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3시간가량을 열연하는 오페라 가수들이 너무나 멋지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성악 하는 오페라 가수는 몸집이 컸다. 그래야 소리가 잘 나오기 때문이라는데 이번 공연의 여주인공 ‘토스카’는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몸매로 열연을 펼쳤다.
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과 격식을 갖고 우아하고 풍부한 선율을 표현했는데 많은 작품 중에서 3대 오페라로 ‘라 보엠’과 ‘나비부인’ ‘토스카’를 꼽는다.
‘토스카’는 전 3막의 아름다운 비극 멜로드라마로 애틋한 감상을 필자 마음에 안겨주었다.
무대는 1800년 6월의 성 안드레아 델라발레 성당이다. 이곳에서 화가 마리오 카바라도시는 여인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띠반티의 기도실에서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리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그림에 반영한다.
그러면서 그림의 여인이 어쩐지 가수인 자신의 연인 토스카의 모습과 비슷함을 보고는 ‘오묘한 조화’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른다.
오랜 시간 기도를 드리던 여인은 정치범인 안젤로티의 여동생이었다. 안젤로티는 로마공화국 수장으로 정치범이 되었지만, 탈옥 중이다.
아띠반티 부인은 자신의 옷으로 오빠를 변장시켜 탈출하게 하려고 기도실에 옷을 숨겨놓았다.
이곳에 안젤로티가 숨어들어 카바라도시와 만난다. 둘은 절친한 친구이다.
그때 카바라도시의 연인 토스카가 찾아오니 안젤로티를 숨기고 질투심이 많은 토스카는 누구와 얘기 중이었냐며 의심한다.
카바라도시는 토스카만을 사랑한다고 그날 저녁 별장으로 여행 가자고 안심시키며 그녀를 돌려보내고 안젤로티를 자신의 집 마른 우물에 숨어있게 한다.
그때 경찰서장인 스카르피아 남작이 들이닥쳐 안젤로티의 행방을 말하라며 카바라도시를 연행한다.
원래 나쁜 놈인 경찰서장은 토스카를 마음에 두고 있어 이번 기회에 카바라도시를 없앨 궁리를 한다.
토스카를 불러 그녀의 연인인 카바라도시를 고문하는 소리를 듣게 하며 자신의 말을 들으라 한다.
계속되는 고문 소리에 토스카는 안젤로티가 카바라도시의 집 우물 속에 숨어있다는 말을 하고 만다.
안젤로티는 카바라도시가 자신을 배반한 줄 알고 자결한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면 연인 카바라도시를 가짜 총으로 쏘고 풀어주겠다는 말에 토스카는 응하는 척하다가 칼로 찔러 경찰서장을 살해한다.
한편 감옥에서 사형 1시간을 앞둔 카바라도시는 애절한 마음으로 토스카를 향해 ‘별은 빛나건만’을 노래한다.
이 장면에서 필자는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형장에 간 토스카는 연인에게 경찰서장이 죽기 전에 약속했다며 가짜 총으로 쏠 테니 총소리가 나면 쓰러지는 연기를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야비한 경찰은 약속을 어기고 진짜 총으로 카바라도시를 쏘았다.
이에 절망한 토스카 역시 권총으로 자살한다.
토스카가 언덕에서 뛰어내려 죽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선 설정이 바뀌었다.
붉은 옷을 입고 열연한 토스카역의 가수는 긴 시간 여러 곡의 노래를 쉼 없이 하면서도 너무나 정열적이어서 찬사가 절로 나왔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주인공들의 최선을 다하는 노래가 매우 인상적이고 멋진 공연이었다.
비극으로 끝나서 안타깝지만, 감동적인 아름다운 무대였다.
문학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나훈아 쇼를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그의 모습이 반갑다. 그는 완전 카리스마 쩌는 남자이다.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클리프 리차드는 70년대 미국의 팝가수이다. 그가 우리나라 이대 강당에서 공연할 때는 흥분한 이대생들이 팬티를 무대 위로 벗어던졌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처럼 광적인 사랑을 받은 클리프 리차드 버금가는 한국의 클리프 리차드가 바로 나훈아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
비 내리는 여름날에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
이쯤 되면 여인네들이 안 쓸어지고 배길 재간이 없다.
그의 노래 '사랑'을 들으며 내 가슴은 심쿵했다. 90년대 '사랑'과 2000년대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가 나를 울렸었다. 호소력 짙은 그의 음성과 어우러진 가사가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사랑노래는 여인의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은 지적이고 몸매 날렵한 영화배우 '이민'같은 스타일이다. 그러나 한국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나훈아의 가치만큼은 인정을 해줘야 할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여장부 김지미를 홀린 남자이다. 재미있는 것은 김지미의 남자들이다. 그녀는 젊고 야성미 넘치는 나훈아와 살아봤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나이 지긋하지만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심장병 전문의 이종구 박사님과도 부부의 연을 맺어봤다. 이 박사님은 오페라에도 해박하여 고정적인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오페라 해설가이기도 하다. 무지크 바움에서 만나 뵌 이 박사님은 전형적인 지성인으로 키 크고 잘 생긴 훈남이었다. 후에 김지미는 나훈아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가방끈 긴 남자는 너무 계산적이라서 별로라고 하였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여전히 제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 자체가 엄청난 파워를 가진 유명 브랜드이고 단번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업체이다.
지금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수입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능력남인 그다. 이혼을 원하는 아내와는 쿨하게 헤어지고 더 이상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때는 사랑했던 여인이다. 항간의 얘기대로 금전적인 손해를 피하려 미적거린다면 그처럼 비겁한 일은 없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그답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사나이로 태어나 비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보통의 남정네들도 견디기 힘든 치욕이다. 하물며 여인네들의 로망인 그가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말이다.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는 팬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다.
다시 한번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나 아직 살아있어' 큰소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가 고맙다. 앞으로 내내 건강하여 수많은 지구촌 여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셋째 주 월요일, 코엑스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티켓이 생겼다.
클래식에 무식한 필자는 실은 그동안 몇 번 참석해 보았던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연상되어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지루할지 모른다는 전제로 공연 좋아하는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동행해 같이 가게 되었다.
공연을 좋아하는 후배가 즐거워하니 필자도 따라서 마음이 즐거워졌고 팸플릿의 프로그램을 보니 다 필자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선곡되어 있어 오늘 밤 공연은 매우 멋질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음악적 언어를 마음껏 구사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재능을 가진 앙상블 팀 ‘DE CODA 디코다’가 첫 내한공연으로 우리 곁에 왔다.
우아함과 열정, 세련됨과 섬세함으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미국, 영국, 독일, 아이슬란드, 일본, 홍콩에서 매혹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디코다 챔버 앙상블이 드디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코엑스의 오디토리움에서 피아노,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프렌치 혼의 악기를 10명의 연주자가 아름답게 들려주었다.
한 명씩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자신의 악기로 들려줄 곡을 설명했고 리더인 듯한 클라리넷의 조원진 씨가 통역했다.
연주자 10명 중 한국인이 세 명 있는데 남자 바이올린 김시우는 5살 때 이민을 갔다는 데도 모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했다.
또 다른 여자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레이스 박은 외국에서 태어나서 간단한 인사말 외는 영어로 설명했다.
음악이 흐르면서 필자는 하마터면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놓칠 뻔했다는 데 가슴이 철렁했다.
첫 번째 음악으로 비제의 카르멘 중 아주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투우사의 노래가 울렸다.
행진곡으로도 많이 쓰이는 귀에 매우 익은 음악이다.
다음은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1악장’이 연주되었고, 젊은 날 가슴 조이며 좋아했던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가 필자의 가슴을 다시 물결치게 만들었다.
슈베르트의 ‘송어’도 좋았고 브람스의 ‘헝가리언 무곡’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은 앉은 채로 어깨를 흔들게 했다.
그리그의 ‘아침 정경’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 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이 울렸다.
재즈는 언제 들어도 끈끈하게 필자를 사로잡는데 다음 곡인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왔던 ‘포르 우나 카베사’에서는 영화 속에서 탱고를 추던 앞을 못 보는 노신사와 아름다운 여인이 떠올라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나기도 했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마음을 달래준 후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연주되었고 생상스의 백조가 울려 퍼졌다.
언제인가 어린 날 피아노를 배우면서 열심히 익혀 건반을 두드렸던 노래들이어서 자꾸만 그때가 생각나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에선 시네마 천국을 들려주었고 관객들이 앵콜! 을 외치자 미리 준비했던 듯 자기들은 뉴욕에서 온 팀이라며 ‘뉴욕뉴욕’ 그리고 빌리 조엘의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선사했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 흥이 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고 필자와 후배도 ‘앵콜’을 외치며 아름다운 곡들을 즐겼다.
마지막 앵콜곡 ‘시월의 멋진 어느 날’은 자막의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이 저려왔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이 있어 줄 친구가 있는 이런 날이 있어 정말 살아볼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다.
어느 대학교의 철학교수가 수업 첫시간에 학생들에게 아는 철학자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외국의 철학자를 들먹이고 아주 드물게 퇴계 이황선생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선조보다 외국의 누구를 알아야 지식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합니다.
퇴계는 조선시대 성라학의 대가입니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너무 깊고 높아 배우려고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학문보다도 그의 인간미에 반하여 그를 존경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퇴계의 손자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는데 년년 생이라 젖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침 고향집 하녀 학덕이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손자며느리가 듣고는 유모로 보내달라고 퇴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퇴계는 이 편지를 받고 엄하게 나무랍니다.
“남의 자식을 죽이면서 제 자식을 살리는 것은 사람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다.” 그리고는 증손자를 위해 약을 지어 보내고 또 증손자가 병이 있음을 듣고 괴로운 심정을 편지로 써서 손자에게 보냈습니다. 왕자도 유모의 젖을 먹고 양반이 유모를 들이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젖이 부족하여 죽어가는 증손자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가 취한 행동은 위대합니다. 결국 이 아기는 증조부인 퇴계를 보지 못하고 요절하였다고 합니다.
퇴계가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둘째아들이 21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아들의 죽음도 슬픈 일이지만 자식도 없이 한평생 과부로 살아야할 며느리가 큰 걱정입니다. 여필종부, 부창부수, 삼종지도 의 봉건적인 조선시대에 여인의 재혼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입니다. 이렇게 재혼금지라는 제도가 강하게 된 이유가 과부가 재혼하면서 배속에든 아이가 전 남편의 자식인지 지금 남편의 자식인지가 아리송한 일이 생기자 1477년에 ‘과부제가급지법’(1896년 감오경장 때 폐지) 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사대부 출신이라 해도 과부로서 재가하여 낳은 아들이라면 관직이 철저히 봉쇄되었습니다.
반면 과부로서 평생 수절하고 정절을 지키면 국가유공자에게 포상하듯 기념비를 하사하고 수절한 과부의 희생을 그 가문과 후손에게 혜택으로 보상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퇴계는 며느리의 인간다운 삶을 고려하여 사돈을 불러서 둘째며느리를 데려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통념을 깬 것입니다. 며느리의 재가는 가문의 큰 수치이지만 퇴계는 가문보다는 며느리의 삶을 걱정하고 결행 했습니다. 사돈도 퇴계의 뜻을 이해하고 은밀하게 그녀를 재혼시켰다고 합니다.
퇴계가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 어느 기와집에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퇴계는 주인집에서 차려준 밥상이 고기보다 채식을 좋아하는 자신의 식성에 맞게 차려진 밥상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아침 식사 후 주인이 예법대로 버선을 선물하였는데 버선의 크기가 자신의 발 치수에 정확함을 알고 이 집의 안주인이 자신의 며느리였었음을 눈치를 챘지만 서로의 체면을 생각하여 모른척했다고 합니다. 주인집을 멀리 떠나와 퇴계가 뒤돌아보니 자신의 둘째며느리가 담 모퉁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배웅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며느리의 재가 사실이 알려지면 퇴계 선생과 그 가문이 받아야 할 치욕은 이만저만 한 게 아닙니다. 지금 까지도 퇴계 후손들은 며느리의 재가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도 버리지 않는 유교문화의 조선사회에서 그가 어렵게 택한 결행은 인간 사랑이고 가족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너무 신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를 가까이 닮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내가 한발만 더 내 디디면 손에 잡힐 듯한 우리의 영웅이 필요합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퇴계의 삶에서 나는 따뜻한 사람의 정을 느끼고 그를 존경합니다.
벚꽃이 지면서 무성한 초록빛 잎만 남겼다. 반면 잎을 먼저 선보인 철쭉이 그 자리를 메운다. 우리 인생사와 비슷하다. 먼저 되었다고 으스댈 일이 아니고 늦다고 투덜댈 일도 아니다. 야산 언저리에는 앵초 미나리냉이꽃이 수줍게 자리를 지킨다. 그야말로 꽃들의 잔치다. 다른 꽃 부러워하는 일 없이 다들 제멋에 겨워 피었다 진다. 인생도 이들과 같으면 얼마나 좋으랴!
눈에 꽃을 담다 보니 영화 가 눈을 끈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타이틀이 무척 시적이면서 왠지 숙명적인 느낌이 들어 사뭇 슬픈 느낌이 든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지칭했다는 이 말은 미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조선 시대 기생을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 시대는 아니지만, 1940년대 아직 기생이라는 신분적 굴레를 벗을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두 여인의 숙명이 가슴을 친다.
전반부의 꽃같이 화려한 기생의 의상과 더없이 맑은 소녀들의 우정이 지나치게 밝고 고와서 빛나는 사금파리를 보듯 오히려 불안을 더한다. 그 두 소녀는 국악인 ‘정가’의 맑은소리를 타고난 정소율(한효주)과 노랫가락이 심금을 울리는 서연희(천우희)다. 여기 그 시대 최고 작곡가 김윤우(유연석)가 소율의 애인으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런데 기생이면서 예인인 소율과 연희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을 만나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두 소녀의 우상인 이난영은 정가보다는 유행가에 알맞은 목소리를 극찬한다. 당시 윤우도 자신의 역작 ‘조선의 마음’을 부를 사람으로 소율이 아닌 연희를 택한다. 결국, 윤우는 연희에게 곡도 주고 마음도 준다.
철석같이 믿었던 애인의 배신에 소율은 윤우의 사랑을 되찾으려 연희같이 유행가 가수가 되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세속적 권력의 논리로 운명에 대적하려는 비극을 내포한다. 그녀는 결국 끝까지 지키려던 정조를 버리고 일본 경무국장의 애첩이 되며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의 맑은 정가 소리를 헌신짝 내버리듯 던져버린다.
권번에서 함께 배우던 기생들이 부러워하던 소리를 버리고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것은 변심한 애인을 되찾기만큼 힘들고 절망적이다. 잃은 것을 찾으려는 급급한 마음은 소율을 점점 불행의 늪으로 빠뜨린다. 결국,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소율은 연희를 따라 윤우도 죽고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도 연희를 쫓는다. 최근 발굴된 연희 앨범을 자기 것이라며 연희 역할까지 한다.
비극과 멜로의 차이는 작지만 분명하다. 주인공의 비극이 보편적 공감을 획득하면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느냐의 여부이다. 마지막 거짓 공연장에서 만난 PD는 “진정 저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사랑은 거즛말이’였어요.” 라고 말한다.” 그것은 죽기 전 윤우가 어쩔 수 없는 변심을 용서하라는 의미로 소율에게 준 곡이다. 이 지점에서 경계선이 애매해진다.
영화는 맑은 정가의 소리와 목포의 눈물, 사의 찬미 등으로 이어져 뮤지컬만큼 다채롭고 화려하다. 성예람 작곡에 조선 중기 문신 김상용의 시조를 붙인 정가 ‘사랑은 거즛말이’는 가슴을 파고들며 에인다. ‘사의 찬미’ 또한 시대를 담고 영화의 결말의 복선으로 알맞다. 진실에 맞닥뜨려 꽃다발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해어화와도 어울리며 사랑의 상징인 꽃, 피었다가 시드는 사랑의 실체 등으로 중의적 의미를 나타낸다.
박흥식 감독은 당시 역사 속에 기생의 삶을 빌어 사랑과 인생에 대해 여러 생각을 영화 속에 담으려 한 것 같다. ‘사랑은 거짓말’ ‘그렇게 좋은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요?’ ‘헛된 나를 잊는 대신 부디 너만은 잊지 않기를····’ 등의 대사 속에 품은 의미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한 가지 주제로 쭉 끌어가는 힘이 옅어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영화가 거의 그렇듯이 마치 뷔페를 차려 놓고 관객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먹으라는 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것이 스타시스템으로 귀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흥행 여부를 떠나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한 바 크다. 남자 배우들의 ‘브로맨스’에 기대는 흥행 공식을 떠나 여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것은 그런 면에서 모험적이며 두 배우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한효주의 눈물 연기와 천우희의 애절한 목소리는 영화를 살리는데 한몫을 했다. 눈물에 섞인 ‘사랑은 거즛말이’ 곡조가 지금도 가슴속에 바람처럼 잦아들며 기어코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