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한국의 조선업, 그러니까 대형 화물선을 만들어 수출도 하고 국내 해운회사에 판매하는 산업인 조선업은 1970년대 초에 시작돼 20여 년이 지난 1990년대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1위 자리를 확보했었다. 그 전까지는 영국이 세계 1위였는데 일본이 영국을 넘어서 세계 1위의 지위를 누리다가 한국에 추월당한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조선소 10개 중에 한국이 7개나 점할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의 조선업이 영업력, 기술력, 생산성과 관리력 등이 뛰어나 이른바 국제경쟁력이 세계 1위 수준에 올랐던 것이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나 위기상황에서도 신의와 공정성을 유지했고 국제계약의 조건들을 이행하는 수준도 선진국에 비할 때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7년 말에 몰려온 IMF 한파로 필자가 근무하던 대형 조선소도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 및 구조조정의 격랑에 휘말렸다. 크게 불안을 느낀 외국의 해운회사들은, 선박들이 한창 건조 중이었지만 끝까지 차질 없이 인도될 수 없다고 판단해 13척이나 선박 건조계약을 취소했다. 당시 싱가포르의 한 해운회사로 갈 선박은 건조가 거의 완료되어 마무리를 위한 잔 공사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사실은 부도사태로 조선소에 현금이 부족해, “1주일 먼저 몇백억원 상당의 인도분할금을 융통해줄 수 없겠는가?” 하고 의사를 타진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융통은커녕 선박 값을 몇십억원 깎아달라는 냉정한 요구였다. 결국 어려움을 참으며 1주일 후 선박을 인도해 인도분할금을 미화로 받아 원화로 환전하니 오히려 몇십억원 환차이익이 생겼다.
그다음 프랑스의 한 해운회사는 선박을 인도하기 몇 주 전에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이 조선소에 와서 매일 현장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고는 기술적 하자 사항을 계속 들먹이며 조선소 관리자들을 자기 회사 부하처럼 부렸다. 정도가 심해 선박 건조계약서의 권리의무 이행관리를 총괄하던 필자가 따졌고 양해할 것들을 서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조선소 사장실에 간 그 기술 담당 수석부사장은 유창한 영어로 조선소를 질타하듯 기술적인 하자 사항을 맹비난하며, 몇십억원을 조선소가 해외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선박을 인수하겠다고 해댔다. 부도난 조선소로서는 몇백억원 인도분할금을 빨리 받아야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으므로 무리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높은 직위의 고객인 외국 선주 대표라 해도 합의내용을 어기거나 거짓말하는 것은 용인하기 힘들었다. 결국 필자가 나섰다. “하키비안 부사장! 당신 어제 나하고 양해하고 합의한 것들을 왜 사장님 앞에서 번복하는 거요? 그리고 왜 거짓말을 합니까?” 그러고는 그날 저녁, 둘이 술자리를 같이하면서 담판을 벌였다. 그른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미스터 리! 아무리 그래도 당신 사장 앞에서 그렇게 면박을 주면 됩니까?”
1년 후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항에 있는 그 프랑스 해운회사를 방문했다. 예치금액을 상호 정산하고 하자보증문제를 종결하자며 그가 우리를 초청한 것이다. 깨끗한 마르세유 항구엔 상당히 큰 조선소도 있었는데 일감이 없어 정막이 흐르고 있었다. 부도난 우리 조선소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하키비안 부사장과 국제 계약서상의 권리의무를 잘 마무리 짓고 나서는데, “미스터 리! 마르세유 산 와인 16박스를 선물로 당신 조선소에 보내겠소. 우리 선박 만드느라 수고한 분들과 함께해주길 바라요.” 했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통관절차를 거쳐 프랑스 산 포도주를 동료들과 마시면서 국제경제력과 공정함, 그리고 인간적 신의의 수준을 되짚어봤다.
2000년대로 들어서자 중국에서는 세계 1위 조선국을 목표로 우후죽순처럼 몇십 개의 대형 조선소들이 생겨났다. 신조선박의 수주량, 생산량, 인도량 등에서 한국을 위협하거나 추월해 1위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 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중국의 많은 조선소들이 문을 닫았다.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도 불황을 겪었다. 신조선박의 건조 수요가 감소하자 해양구조물 생산에 주력해오다 이 또한 유가변동에 따라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몇 년간 대형 조선소들이 위치해 있는 거제도와 울산 지역에서 직장을 잃은 종업원들이 무척 많아 실업급여 받는 인원들 통계가 아직도 다른 지역보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상반기부터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의 선박 건조계약 실적이 세계 1위 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조선업에 오래 봉직했던 동료와 후배들도 괜스레 기분이 좋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진다. 스페인 선주가 발주한 선박을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국제 선박건조계약을 중개한 친구가 있다. 중개수수료 2할을 할인해줬는데도 3년째 6할의 중개수수료를 아직 못 받고 있다고 한다. 중국조선소 사장이 국제중개수수료계약을 고의로 회피하는 것이다. 친구가 몇 번 비행기 타고 받으러 갔는데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거나 아예 피하고 있단다. 국제계약을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고의로 이행하지 않으려는 중국조선소 사장의 태도는 한국 조선업에 오래 근무한 경력자로서 용인하기 싫다. 그래서 친구가 상해 소재 변호사를 선임해 국제 수준의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 적극 지원했다. 중국 조선업의 국제적 수준 향상과 국제신인도 향상을 돕는 방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탐대실하고 미몽에서 깨어나지 않는 중국 조선업의 수준에 안심도 되고 고소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 너희는 아직 멀었어. 남의 돈 떼어먹고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생존하는지 보자.’ 기초와 구조가 국제적 수준으로 단단히 다져진 한국 조선업의 ‘조선입국(造船立國)’의 역할을 긍지를 갖고 기대해본다.
와인의 레이블은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것이다.
와인의 출생을 비롯한 정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마음대로 위조하거나 변경할 수 없듯이, 레이블에 기입하는 사항들은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는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주민등록증의 경우 한 번 기입된 내용에 대해서는 임의로 고치거나 가감을 할 수 없지만, 와인 레이블의 경우는 시음 조건이나 음식 매칭에 관한 내용과 같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생산자나 네고시앙들이 임의로 첨가할 수 있다.
레이블은 1760년경 보르도에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는 병목에다 끈으로 묶은 것이었다. 이전 시대에는 레이블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병도 없어, 오크통째로 판매를 하든지, 아니면 소비자가 2~3ℓ짜리 작은 나무통을 들고 와 양조장이나 매장에서 와인을 받아갔다. 우리 어린 시절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를 사오던 것과 흡사하다. 레이블은 1818년 보르도에서 처음으로 인쇄되었으며, 지금처럼 병에다 직접 붙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레이블에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법적 의무규정이 실시된 것은 20세기 후반에나 들어서이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들이 기입해야 하는 의무규정에 포함되는가? 여기서는 와인 레이블의 원조국이자 그 밖의 모든 와인 생산 국가에서 기본 모델로 받아들인 프랑스 와인의 레이블을 살펴본다. 레이블에 의무적으로 기입해야 하는 항목은 총 8가지다, 그중 하나(납세필증)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등급에서 사라질 우등 한정 와인(AOVDQS)에만 적용되니, 7개 조항이라 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 하겠다.
▶ 프랑스 와인의 레이블
① 병입한 사람이나 양조장 이름과 주소
② 알코올 도수(%)
③ 양(ml)
④ 와인의 법적등급(AOC, 뱅 드 페이, 테이블 와인)
⑤ 생산국가
⑥ 생산 일련번호(No du Lot)
⑦ 보건과 위생관련 사항(아황산함유 여부나 임신부에 대한 경고 등)
모두가 와인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들이다. 특히 ①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법적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밖에도 레이블에는 법적 의무규정이 아닌 다른 많은 내용들이 적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흔한 것으로 생산년도(빈티지: 포도수확 년도 기준), 샤토, 도멘느, 크뤼, 세빠주 등의 명칭과 메달 수상 내용 등이다. 모두가 와인의 특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와인을 구매하기 전에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사용한 세빠주의 경우는 향, 맛, 산도, 타닌 등 그 와인의 특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빈티지는 그 해 생산한 와인의 일부 특성과 보관기간 등에 대한 암묵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샤토, 도멘느, 크뤼 등도 와인에 대해 보다 세부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보르도보다는 메독이, 메독보다는 뽀이약이, 그리고 뽀이약보다는 샤토 라투르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와인의 특성과 등급을 일러준다.
그러나 레이블에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내용도 많으니 읽을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메달의 경우가 그러하다.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수상하는 메달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 경연대회에 출품한 30% 이상의 와인에 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파리 와인 경연대회, 마콩 와인 경연대회, 세계 리슬링 경연대회 정도에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면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참고로 와인 경연대회는 그 수도 많고 종류도 많다.
또한 ‘상급의’(supérieur), ‘예약된’(réservé) 등에다 ‘특별한’(spécial)이란 화려한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대부분 상업적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으니 무시해도 된다. 자신이 생산한 와인에다 좋지 않은 문구를 붙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단지 병입에 대한 정보는 주조에서 숙성은 물론 병입까지 동일한 와이너리에서 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와인의 질, 특히 원생산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 밖에도 와인의 특성, 즉 향과 맛 등에 대한 내용을 하나같이 미사여구로 설명해 놓은 두 번째 레이블을 병 뒷면에 붙이는 것도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데, 마시기에 적정한 온도나 매칭이 잘되는 음식 그리고 마시기에 적절한 시기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소설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
와인에서 레이블은 얼굴이다. 화장을 잔뜩 하고 사람을 현혹하는 것도 있고, 수수한 맨얼굴을 지닌 것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와인의 레이블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브랜드 와인이 등장하면서 레이블의 내용은 물론 디자인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원산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주로 수수한 레이블을 붙이고 있는 떼루아 와인에 비해, 브랜드 와인은 와인의 특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So Fruity’, ‘부드러우며 꽃 향이 나는’ 등의 문구를 레이블에 눈에 띄게 크게 넣어 소비자로 하여금 와인의 맛이나 향에 대한 선택을 쉽게 하도록 도와준다. 심지어는 팩이나 알루미늄 캔에 담아 판매하는 와인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 와인은 팩이나 캔 위에 우유나 맥주처럼 화려한 레이블을 직접 인쇄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부르고뉴의 다이내믹한 네고시앙인 장-클로드 부와세(Jean-Claude Boisset)는 ‘French Rabbit’이란 상표 와인을 다분히 희화적인 디자인을 한 팩에다 담아 판매해서 성공한 경우다. 여성들의 와인 구매가 급증하면서, 당연히 여성들 취향에 맞춘 병이나 레이블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무통-로칠드의 레이블은 그것 자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생길 만큼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해마다 세계적인 유명 화가의 그림을 레이블에 붙이는 호사를 누리기 때문이다.
레이블은 와인의 얼굴이고 ID다. 그래서 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많다. 소비자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춰 새로운 와인이 탄생하는 것처럼, 새로운 레이블도 탄생한다. 조금 깊이 음미하면서 레이블을 쳐다보면, ‘와인이 가득찬 병 위에서는 비자처럼 희망적이고, 텅 빈 병 위에서는 유공자 기념비에 새겨진 비문처럼 비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와인의 레이블은 마시기 전에, 즉 ‘구두시험을 통과하기 전에 치러야 하는 필기시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 장홍와인누리 대표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신이다. 선한 면과 악한 면, 즉 양면성을 지닌 신이다. 그런 면에서 와인도 어딘가 야누스를 닮았다.
와인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역할에 대해서는 오랜 역사를 통해 다양한 접근과 분석이 진행되었다. 반면에 와인과 건강에 대한 본격적이고 과학적인 논의는 최근의 일이다. 물론 고대 그리스 이후 와인은 소량을 규칙적으로 마시면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정설이었다. 이는 의학적인 진실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생활을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공유된 진실이었다.
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이 저서에서 “만약 밀이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산문이라면, 포도나무, 특히 와인은 시이며 우리 국토의 경치를 밝히고 고귀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와인이 지닌 문화적 상징성을 그야말로 시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다고 보인다. 얼마 전 스페인 의회가 와인을 다른 알코올과 분명한 차별이 있는 ‘문화적 산물’로 제정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의사들의 주장은 경치를 밝히고, 고귀하게 하는 양지쪽보다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쪽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와인이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단순히 알코올의 한 종류에 지나지 않으며 와인이 알코올 중독과 암의 유발을 높인다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와인에 대한 의학적 관심은 매우 최근에 들어와서야 불기 시작했다. 그 본격적인 시작은 1990년대 초반으로 르노(Renaud) 박사가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를 주장하면서부터다. 이와 더불어 와인과 건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와인이 심장혈관계통 질병, 알츠하이머 등에 예방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와인은 여느 다른 알코올과는 성격과 특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와인도 다른 알코올과 다를 바 없이 건강에 해롭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논쟁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2009년 2월 프랑스 국립 암 연구소(L’Institut national du Cancer: Inca)가 배포한 브로슈어에는 시한폭탄이 하나 장치되어 있다. 내용인즉 한 방울의 알코올(와인 포함)이라도 마시는 순간부터 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수백 년 이상 하루에 한두 잔의 와인은 건강에 좋다는 믿음과 신화가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국립 암 연구소의 발표는 곧바로 거센 반발과 논쟁을 촉발했으며, 뜨거운 감자는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때로 거칠기까지 한 논쟁은 일반 소비자들을 더욱 어리둥절하게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량의 와인도 암을 유발하는가?’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에 확실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1인당 연 평균 와인 소비량이 54리터나 되고, 450여 AOC를 자랑하며, 6000만 헥토리터(1헥토리터=100리터)를 생산하며, 100억 유로(한화 약 13조원)의 매출(단일 상품으로는 곡물류 다음)을 기록하는 주요한 경제적 산물이다. 게다가 사회문화적으로 와인 소비가 권장되는 분위기이며, 와인 관련 업자들의 막강한 로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내용은 가히 충격이었고 마른하늘에 천둥 같은 것이었다. 프랑스 국립 암 연구소의 발표는 국내의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자, 이제 거칠고 뜨거운 논쟁에서 조금 비켜나 여러 전문가들의 상반된 주장을 차분히 한번 검토해 보자. 이것만이 와인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안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선, 와인은 화학적으로 보면 다른 여느 알코올과 같다. 모든 알코올음료처럼 와인도 에탄올 몰레큘라(CH3, CH2, OH)를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연구는 에탄올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알코올은 프랑스에서 담배 다음으로 피할 수 있는 사망 원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직접적인 원인 외에도 알코올로 인한 교통사고, 폭력 등에 의한 사망을 합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공 건강의 열렬한 수호자인 클로드 고트(Claude Got)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고 있다. “알코올은 두 얼굴을 가진 제품이다. 그것을 마시는 즐거움과 생산하는 자들 혹은 판매하는 자들의 경제적 부라는 측면과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재앙이란 측면이다. 그리고 후자는 중독, 사고, 폭력, 간경화, 정신질환, 암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 잔의 와인이라도 건강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는 없다는 말인가?’라는 절박하면서도 핵심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인은 알코올음료임에는 분명하지만, 다른 알코올음료와 확연히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알코올음료다. 그 이유는 와인을 구성하는 화학적 생물학적 성분이 다른 알코올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잔의 와인 속에는 수백 가지의 몰레큘라가 들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포도 껍질과 씨 속에 다량 함유된 강력한 항산화성 물질인 폴리페놀이 주목을 끌고 있다. 폴리페놀의 특성 중 일부는 나쁜 콜레스테롤의 형성을 막아 심장 혈관 계통의 질병 예방에 효력이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체중 감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와인은 알츠하이머 등에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이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와인과 암 유발에 대한 연관성은 확실하지 않은 만큼 복잡하여 뒤에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이제 ‘와인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기 위해 적절한 양은 얼마인가?’ 하는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운 질문이 남았다. 이 점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상충하고 있다. 소량을 규칙적으로 소비할 때 일부 병에 대한 예방 효과가 있다 해도,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상황적 분위기나 개인적 성향과 알코올 분해 능력, 성별, 유전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적당한 양만 소비하기가 무척 어려운 사람들, 특히 젊은 층에게는 권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간에서 알코올 분해 효소를 관장하는 유전자가 다르다. 아시아인의 50%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활동하지 않으므로 구토, 붉은 반점의 출현, 어지럼증 등의 현상이 나타나 알코올화 진행이 중단되는 반면, 유럽인들에게는 이런 예방적 현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 예방에 관한 한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타고났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와인의 적절한 소비량에 대한 기준은 존재하는가? 대답은 ‘없다’이다. 프랑스의 건강을 위한 국립 예방 및 교육 연구소(Institut national de prevention et d’education pour la sante)나 세계 암 연구 기금(World Cancer Research Fund : WCRF)이나 프랑스 국립 암 연구소의 결론은 와인 소비의 적절한 양을 결정할 수 없다(no threshold is identified/pas de seuil indentifie 혹은 보다 확실하게 There is no threshold/il n’y a pas de seuil)라는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건강을 생각하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권장할 수 있는 충고는 규칙적(매일 혹은 거의 매일)으로 소량(2~3잔)을 식사 중에 마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로부터도 공격당하지 않고 확실하고 안전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알코올이 함유되지 않았지만 와인 이상으로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는 다른 음식이나 음료를 즐기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 녹차, 초콜릿 등에는 와인보다 월등히 많은 폴리페놀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와인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과 분위기는 결코 제공해주지 못할 것이다. 와인은 여전히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와인의 진정한 매력일 것이다.
>> 장 홍 (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