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예정됐던 외국인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범사업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한국에 입국해 서울에서 배정된 가정에 출퇴근하는 방식이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제안했다. 이후 서울시와 고용부가 협의 후 지난해 12월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지연됐다. 시범사업은 심층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규모인 100명으로 서울시에서 운영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과 관련한 사안은 다음달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3개가 구성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체적 현안들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달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현재 돌봄서비스 인력의 수급 불균형과 비용 부담 증가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돌봄서비스 인력난 완화를 위해 내국인 노동자의 종사를 유도하는 것은 처우 개선 등으로 비용 부담이 되레 늘어날 가능성이 크고, ICT, 로봇 등의 첨단 기술은 적기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외국인 노동자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인력도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받는 외국인 근로자의 최저임금 문제와 이들 인력에 대한 관리 방안이다. 입국 후 타 업종으로 이탈한다던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보고서는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 방식으로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방안과 고용허가제 확대와 돌봄서비스업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우회하기 위한 사적 계약 방식은 사용자가 ‘입주’를 제공하지 않으면 숙소와 관리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보고서는 사용자조합이 설립돼 공동숙소를 설립하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관리 공백을 완전히 해결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사적계약 방식은 많은 돌봄 인력이 필요한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등에서는 접근 불가능한 방법이라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노동계의 반발이 커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에도 최저임금 업종별, 지역별 차등 논의가 있었지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정식 장관은 27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수용성 높은 결론을 낼 것”이라며 돌파를 선언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당장 노인 돌봄 인력 수급에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다 줄 지는 미지수다. 당장 시범사업에도 직장 경력을 유지하며 육아 부담을 지고 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임산부 등이 우선 이용 대상으로 선정됐다. 시범사업 서비스 제공기관 모집 공고에는 가사서비스를 가구 구성원의 보호‧양육의 경우 만 12세 이하 아동 대상 육아 관련 서비스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노인 돌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한항공 사태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번엔 한진家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불법고용한 정황이 포착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가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딸은 미국인, 가사도우미는 필리핀인. 국제적 항공사답다. 세간의 숱한 조롱과 성토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묵묵부답하고 있는 대한항공 총수의 의연함 또한 ‘재벌(?)답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지난 5월 12일 서울역 광장에서‘조양호 일가 퇴진’ 2번째 촛불집회를 가졌다. 세종문화회관 앞 첫 촛불집회에 이은 8일 만에 가진 ‘을(乙)의 역습(逆襲)’인 셈이다.
사실 ‘갑(甲)의 횡포(橫暴)’는 예전부터 비일비재했다. 적폐(積弊)였다. 그런데도 이를 묵과 하고 감내했던 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나 하나만 참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방임주의가 자초한 부메랑 효과였다. 그런데 SNS 시대가 뿌리를 내리면서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화 통화를 녹음하는 일은 예전보다 더 쉬워졌고,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는 훗날 근거로 남아 법적 다툼에서 증거 채택의 분수령을 이룬다. 특히, 을을 만만하게 보던 갑의 어긋난 윤리관이 표적이 되면서 변모 또한 요구받고 있다.
‘대한항공 사태’가 4년 전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다시금 발화한 이유는 해(年)가 바뀌어도 마음은 새해처럼 바뀌지 않는 인간성의 고질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흔히 호출되는 ‘경주 최 부자 집 부의 비밀’에 따르면 ‘벼슬은 하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가 돋보인다. 이어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와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역시 자그마치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이나 존경받는 부자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던 초석이기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빈부의 격차가 빈자(貧者)를 부자(富者) 앞에서 고개 숙이게 했다. 이에 부자는 거들먹거리며 ‘역시 사람은 잘 살고 봐야 해!’라며 더욱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빈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반격(反擊)의 비수(匕首)를 부자는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이른바 ‘을의 역습’이다. 이를 방관하거나 무시할 경우 언제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을이 갑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너를 능가할 거야!’라며 속으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칼을 새파랗게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삼십육계(三十六計)를 보면 ‘이일대로(以逸待勞)’가 등장한다. 이는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즉, 적군보다 먼저 싸움터에 당도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아군의 전력을 비축한 뒤에 먼 길을 오느라 힘들어진 적이 쉴 틈도 없이 공격하여 승리를 취하는 전략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자 역시 전장(戰場)의 장수(將帥)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삼십육계’는 경영의 바이블(bible)로 통하고 있다. 재벌의 총수, 즉 장수(將帥)는 사방이 적이므로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이일대로’의 반격으로 전세를 만회하는 승부수의 소지(所持) 역시 장수의 기본 전술이다. 더불어 수신제가(修身齊家)에서도 탄탄한 방어벽을 구축했어야 옳았다. 재벌 회장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이미 뛰어넘었다. 따라서 ‘사방 백 리’가 아니라 최소한 자사(自社) 안에서 ‘굶어 죽는 사람’, 예컨대 불만을 가진 직원의 아우성을 막았어야 했다. 밀수 혐의에 이어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고용이라는 추문까지 겹치면서 그 모양새가 가관이다. 결론적으로 을의 역습과 ‘삼십육계’까지 간과한 때문에 지금 대한항공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내홍까지 겪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이 자식 교육을 올바로 못한 데 따른 자업자득(自業自得)이긴 하더라도.